천상(天上)의 향기 - 10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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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102(마도(魔道)의 길)-7
풍운과 벽하는 포양호벽을 따라 악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풍운이 바로 악양으로 가지 않고 다시 나루터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풍운이 극마지경에 들었다고 해도 순순한 내력만으로 낙양까지 널빤지 하나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풍운과 벽하는 양자강을 구경하며 강 옆의 길을 따라 악양으로 향한다.
“운랑..........왜 당령님와 옥선님에게 모든 비밀을 말씀하신 거죠.”
“굳이 속일 필요가 없잖아.”
“제가 초벽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문제가 복잡해져요. 그건 운랑도 아시잖아요. 그렇다고 당령이나 옥선이 우리들의 비밀을 지켜준다는 보장도 없어요.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운랑이 본련으로 향하고 있고, 제가 초벽하라는 시실이 중원 무림에 알려질 겁니다.”
“나도 알고 있어. 당령이나 옥선에게 소문내라고 알려준 거야.”
“예?........우리가 천마마련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로 하자고 했잖아요. 그래서 역용까지 한거 아닌가요.”
“세상에 비밀은 것은 없어. 그리고 우리가 천마마련으로 향하고 있다고 소문이 나면 사사천교에 모여 있던 놈들이 천마마련으로 올 거 아니야. 그럼 사사천교가 편해지겠지.”
“운랑은 소하와 사사천교만 걱정하세요. 제가 초벽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본련은 엄청난 혼란에 빠져요. 그건 걱정되지 않아요?”
“벽하 오빠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되잖아. 그럼 벽하가 굳이 오빠행세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가? 벽하도 자신의 인생을 찾아야지.”
“물론 오빠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저도 좋아요. 하지만 5년 넘게 의식도 없는 오빠가 갑자기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치료하면 되잖아.”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오빠를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신지 아세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치료할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내가 치료해 줄게. 오빠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무리하게 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거잖아. 그건 의외로 치료가 간단할 수 있어. 막힌 혈도를 뚫어주고 심마(心魔)의 원인만 제거하면 되는 거야. 그럼 치료 끝이지.”
“그게 말처럼 쉬워요. 할아버지 같은 분도 손도 못쓰고 있단 말이에요.”
“내공의 힘이라면 힘들지도 몰라........하지만 내가 익힌 것은 틀려. 일종의 기(氣)라고 설명하면 되겠군. 기는 일정한 형태도 없고........깊이도 없어.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무한대로 늘어날 수도 있고, 깨알만큼 작아질 수도 있어. 하여튼 설명하지만 복잡하지만 내가 오빠를 치료할 자신이 있어. 물론 오빠의 상태를 봐야 알겠지.”
“정말 운랑이 치료할 수 있어요.”
“꼭 된다고 말하긴 힘들지만.........내가 생각하기론 가능해.”
“휴~ 운랑의 말대로만 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죠.”
“자~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고..........저기 경치 좀 봐~ 아마~ 저기 보이는 거대한 호수가 동정호 일거야.”
“동정호?..........그럼 벌써 낙양에 도착한 게예요.”
“응~ 아마 한 시진 정도만 더 가면 낙양에 도착할 거야.”
풍운과 벽하는 말을 타고 낙양에 도착했다. 낙양은 7대 고도의 하나답게 거리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 풍운과 벽하가 낙양의 자작거리에 들어서는데 반대쪽에서도 갑자기 엄청난 수의 무사들이 자작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풍운과 벽하는 한쪽으로 물러나 무사들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무사들은 먼 길을 달려온 듯이 무척이나 피곤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두건들 사이로 나타나는 얼굴들을 보면 피부색이 하얗고 간간히 눈동자가 푸른색이나 파란색의 눈동자들이 보인다. 아마 중원인들이 아닌 모양이다. 풍운은 가장 선두에 있는 무사들을 살펴봤다. 20대 중반의 젊은 미장부와 40대 중반의 무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놈들이 다시 중원으로 들어왔군.”
“운랑이 아는 놈들입니까?”
“배화교의 흑풍대와 혈영대야.”
“예? 저놈들이 배화교 놈들이란 말씀이세요.”
“확실해.........가장 선두에 있던 놈은 내가 얼마 전에 죽인 혁린영이라는 놈과 비슷하게 생겼어. 아마 배화교 삼공자 중에 한 놈 일거야.”
“큰일이내요. 숫자도 엄청난데...........중원 무림에 다시 피바람이 불겠군요.”
“문제는 저놈들이 아니라........아무도 저놈들이 중원까지 진출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설마.......옥문관을 거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몰랐겠어요.”
“글쎄. 지금부터 알아보면 알겠지. 하지만 우리가 사사천교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저놈들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어..............혹시 천마마련은 알지 모르겠지.”
“이거.........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누가 우리말을 믿어주기나 하겠어. 차라리 잘됐어. 백도 놈들도 당해봐야 알겠지. 놈들이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킬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
“그래요. 백도 놈들도 뜨거운 맛을 봐야 합니다........그런데 저놈들이 어디로 가는 거죠.”
“저쪽은 천상루가 있는 방향이야. 아무래도 북해빙궁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모양인데..........”
“북해빙궁이요.”
“천상루는 북해빙궁이 만든 거야. 쉬~ 놈들이 듣겠다.”
풍운은 달려가던 무사들이 힐긋 자신들을 바라보자 입을 닫고 골목길로 들어갔다. 지금 배화교 놈들과 싸울 수는 없지 않는가? 풍운과 벽하는 그길로 낙양을 벗어났다. 혹시라도 배화교 놈들에게 정체가 발각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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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과 란은 골라라는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사사천교에서 천마마련이 있는 장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평강을 거쳐서 가는 육로가 가장 빠르지만 골라로 통하는 길이 양자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가장 경치가 좋기 때문이다.
“아가씨........장사로 통하는 길은 많습니다. 평강이나 류양으로 가는 길도 있잖아요. 마수마랑이 이곳으로 올 거라고 어떻게 단정하시죠.”
“혹시 몰라 평강 쪽에는 사람을 보냈어.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야. 우리 중에서 마수마랑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거기에.........마수마랑이 역용을 한다면.........그가 바로 옆을 지나가도 모를 거야.”
“그걸 아시는 분이 무작정 이곳에서 기다린단 말씀이세요.”
“내가 그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그분이 나를 찾게 해야지. 그래서 이렇게 관도에 군막을 치고 있잖아.”
“그 사람이 우릴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이곳으로 온다는 보장도 없어요.”
“그분은 그냥 와. 꼭 올 거야.”
“어떻게 장담하시죠.”
“내가 아니라 널 보고 싶어서라도 오실 거야.”
“예? 저요? 왜요?”
“그분과 너는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지.”
“저는 그에게 아무 느낌도 없는데요. 무슨 힘이 있다는 말씀이세요.”
“란이 아직 그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기다리면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란과 무경이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차 밖에 있던 무사가 란을 부른다. 란은 면사를 하고 창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죠.”
“소림의 홍인스님과 사대금강님이 아가씨를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홍인스님과 사대금강이요. 그분들이 무슨 일이죠.”
“본가의 깃발을 보고 찾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곳에 아가씨가 계시다고 하니 한번 만나 뵙고 가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무경은 옆에 두었던 면사를 했다. 그녀도 무사와 란의 대화를 들었다. 홍인이라면 앞으로 백도 무림을 떠받질 4개의 기둥 중에 한명이라고 평가되는 사람이다. 그가 자신을 찾아왔다면 만나야 한다. 자신도 백도 무림에 속해 있으며........배분으로 따지면 그가 자신보다 한참이 높기 때문이다.
“마차로 모셔라. 란아...........너는 차를 준비해 주겠니.”
“알겠습니다.”
무사와 란은 동시에 답하고 란은 차를 준비하려 간다. 잠시 후 마차의 문이 열리며 20대 초반의 준수한 외모를 가진 스님과 4명의 스님들이 앞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홍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본사의 사대금강입니다.”
“무경이라고 합니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사대금강과 홍인은 자리에 앉았고 무경이 반대쪽에 앉으니 란이 차를 준비해서 나왔다. 란도 차를 대접하고 무경의 옆에 앉는다.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소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저도 제갈무경님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마침 길을 가다 제갈세가의 깃발을 발견하고 혹시 무경님의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하여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무림에 나온 일도 없는 소녀의 미천한 이름이 홍인스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니.......소녀.......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소승의 사부님께서는 평소에 제갈세가와 무경님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제가 무림에 나오기 전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무림에 수많은 문파와 세가가 있지만 오직 제갈세가만이 진정한 현자의 가문이며....... 어려운 문제에 복장하면 반드시 무경님을 찾으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무혜성승께서 본가와 본녀를 그리 높게 평가해 주시는지는 몰랐습니다.”
무경과 홍인은 일다경정도 틀에 박힌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탐색전을 했다. 홍인은 내공을 눈에 집중하여 무경과 란의 얼굴을 보고자 했다. 하지만 무경과 란의 면사는 천잠사로 만든 것이라 홍인 같은 고수도 면사를 투과(透過)하지는 못했다.
“스님 같은 분이 제 얼굴이나 보자고 찾아오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로 절을 보자고 하신 겁니까?”
무경은 홍인에게 자신을 찾아온 목적을 물어보았다. 홍인도 이제는 본론에 들어가기로 했다.
“저는 사호팔랑과 흑도 무림의 관계를 조사해 달라는 장문인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요. 조사는 어느 정도 하신 모야이죠.”
“얼마 전에 사호팔랑의 우두머리인 마수마랑도 만났고 사사천교도 돌아보고 왔습니다. 지금은 천마마련으로 가는 길이죠. 듣고 계십니까?”
“계속 말씀하세요.”
“마수마랑은 흑도 무림과의 관계를 부인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무림맹이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다.”
홍인은 풍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무경에게 들려주었고, 사사천교에 탐문할 결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홍인과 사대금강은 풍운일행과 헤어지고 바로 사사천교로 향했다. 풍운일행은 중간에 황보세가와 남궁세가와의 전투와 화원명과의 전투로 이동속도가 느려져 홍인일행이 먼저 사사천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홍인일행은 사사천교 주위에 있는 진세를 뚫고 사사천교에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사천교가 사호팔랑과 관련되었다는 증거는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무경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림맹의 주장이 맞는 겁니까 아니면 마수마랑의 주장이 맞는 겁니까?”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마수마랑의 말을 믿고 싶어요. 하지만 사사천교가 마수마랑을 감싸고도는 것으로 보아 그의 말을 무조건 믿을 수도 없습니다. 무경님.........무경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승보다는 영특하신 분이니..........무경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사사천교와 천마마련은 마수마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그럼 마수마랑이 저를 속인 겁니까?”
“마수마랑님은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저도 얼마 전에 마수마랑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겉에는 하후소하와 초하벽이 있었죠. 혹시 홍인스님도 하후소하와 초하벽을 보셨습니까?”
“예! 저도 그들을 보기는 했어요.”
“하후소하는 사사천교주의 딸입니다. 그리고 초하벽은 남장 여인입니다. 아마 초벽하가 오빠 행세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후소하와 초벽하는........마수마랑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사천교가 마수마랑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교주의 딸인 하후소하가 그을 보호하고 있는 겁니다..........또한 천마마련이 영장평원의 전투에 관여한 것도 련주의 손녀인 초벽하가 마수마랑을 구하기 위해 꾸민 계략일 겁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마수마랑이 절 속였다는 겁니까?”
“아니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수마랑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하후소하와 초벽하는 개인적으로 마수마랑을 사랑하는 겁니다. 사사천교나 천마마련과는 관련이 없어요.”
“그러니까?.........하후소하와 초벽하 그리고 마수마랑간의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사사천교와 천마마련이 그를 보호했다는 말이군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자세한 것은 스님께서 직접 알아보셔야 합니다.”
“음~.................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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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과 벽하는 밤이 깊어 악양을 벗어나 제갈무경이 있는 골라에 들어서고 있었다.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악양에서 투숙하고 다음날 아침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배화교 놈들 때문에 악양에서 잠도 못자고 밤길을 달려온 것이다. 그들이 관도를 따라 골라로 들어가자 길가에 길게 늘어서 군막이 보인다. 풍운은 군막 끝에 매달린 깃발을 보았다. 바로 제갈세가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벽하야. 피곤하지 않아. 우리 쉬었다 갈까?”
“어디서 쉬죠. 주위에 객점도 없잖아요.”
“저기 마차 보이지.........기억 안나. 바로 제갈세가의 제갈무경이 타고 다니는 마차잖아.”
“정말이네요. 잠깐만........지금 운랑은 제갈무경을 만나겠다는 말씀이세요.”
“몸도 피곤하고 배도 고프니까 잠깐 쉬었다가 가자. 설마 문전박대야 하겠어.”
“혹시 제갈무경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죠.”
“하하하~ 그건 덤이지. 왜 싫어. 사실 무경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그래.”
“제가 싫다고 하면 속 좁은 여자라고 욕하실 거죠. 좋아요. 운랑의 뜻에 따르겠어요.”
풍운은 피식 웃더니 제갈세가를 무사들을 찾아가 제갈무경에게 풍운이 찾아왔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무사들은 풍운과 벽하의 말을 전하기 위해 마차로 달려왔다.
마차에는 밤이 깊도록 홍인과 무경의 대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홍인은 밤이 깊도록 무경과 백도 무림과 흑도 무림.........그리고 여러 가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경도 홍인을 내치지 않았고 홍인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란이 문을 열었다.
“풍운이라는 분이 아가씨를 만나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풍운님이 오셨어요.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란보다 먼저 무경이 답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풍운이 찾아온 것이다. 무사는 풍운과 벽하에게 달려갔다.
“손님이 오신 모양이군요. 저희들은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홍인과 사대금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님도 아시는 분이세요. 급하지 않으면 만나보고 가세요.”
무경은 홍인과 사대금강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그들은 어차피 언젠가는 한데 뭉쳐야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홍인도 무경이 붙잡으니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잠시 후에 풍운과 벽하가 들어왔다. 풍운은 마차 안에 있는 홍인과 사대금강을 발견했다. 하지만 홍인과 사대금강은 풍운이 역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예전에 만났던 아군인지 모르는 눈치다. 물론 벽하도 남장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다.
“어서 오세요.”
무경은 풍운과 벽하를 금방 알아보는 모양이다.
“우리 말고 먼저 온 손님이 있었네요. 저희가 방해가 된 건 아니지 모르겠군요.”
“들어오세요. 강호에서 만나면 모두가 친구라고 하지 않습니까?”
홍인이 무경보다 먼전 답한다. 벽하는 홍인과 사대금강을 알아보고 풍운의 팔을 끌었다. 그냥 가자는 말이다. 하지만 풍운은 벽하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하는 불안한 표정으로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모르시는 분들도 아니고........인사는 생략하죠.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저희가 알고 있는 분들이라고 했는데...........전혀 모르겠군요. 무경님이 인사 좀 시켜주시죠.”
“풍운님이나 벽하님은 홍인스님과 사대금강님을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홍인스님이나 사대금강님은 풍운님이 역용을 해서 알아보지 못하시는 모양이군요. 참~ 벽하님.........남장을 벗으니 정말 아름답군요. 역시 무림사봉입니다.”
“고마워요. 무경님은 전부터 제가 초벽하라고 알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예!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풍운님도 이름을 바꾸셨네요.”
“안 바꾸면 액운이 낀다는데 바꿔야죠. 홍인스님도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누.......구신지..........죄송합니다. 소승은 잘 모르겠군요.”
“마수마랑 입니다. 제가 역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마수마랑?...........그럼 옆에 있는 분은 그때 보았던 초하벽공자.......”
홍인은 무경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며 얼마 전에 보았던 초하벽과 지금 들어온 초벽하의 얼굴이 하나로 합쳐진다.
“이렇게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홍인과 사대금강은 이제야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가 마수마랑이라는 걸을 알아보았다. 홍인의 얼굴에 긴장감이 설리고 사대금강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어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앉으세요. 우리 모두 제갈세가의 손님들입니다. 싸움을 하려면 나가서 해야죠. 남의 집에 와서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풍운의 담담한 말에 사대금강은 홍인을 바라본다. 홍인은 마수마랑과 제갈무경을 번갈아보다가 사대금강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풍운의 말대로 제갈무경의 마차에서 싸울 수는 없지 않는다.
“풍운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자신이 풍운을 기다렸다는 것은 내색하지 않고 무경이 물어본다.
“지나가는 길에 제갈세가의 깃발이 보여서 주린 배를 채우려 왔습니다. 배화교 놈들 때문에 밤새도록 달려왔더니 배가 고파서요.”
“예? 배화교 놈들이요. 배화교도들을 보셨단 말씀이세요.”
“악양에서 봤어요. 본래는 그곳에서 쉬고 오늘 아침에나 출발하려고 했는데..........재수 없게 배화교 놈들이 만난 겁니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한판 붙고 싶었지만 놈들의 숫자가 이천 명이 넘어서 혼자 날뛰다가는 제명에 못 죽겠더군요. 그래서 발바닥에 땀나도록 도망쳐오는 길입니다.”
풍운은 마치 화원명처럼 말한다. 화원명과 한두 번 만나더니 그에게 물든 모양이다.
“배화교도들이 악양에는 무슨 일이죠.”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겠죠. 설마 구경삼아 중원에 왔겠습니까?.........그러나저러나 란이라고 했죠. 뭐 좀 먹을 거 없어요. 뱃가죽이 등짝에 붙으려고 해요. 아무 음식이나 상관없으니 있으면 좀 주시겠어요.”
“아참~ 배고프다고 하셨죠. 란.........음식을 준비해 주겠니.”
“음식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건량이나 좀 주세요. 어찌 우리가 낄 분위기가 아니군요. 저희들은 건량이나 받아서 가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당장 음식을 준비할게요.”
“말씀은 고맙지만.........저분들이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 음식이나 넘어가겠습니까?”
“죄송하지만 건량은 없어요.”
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짤막하게 말한다. 풍운은 입을 삐죽거리며 란을 올려다본다.
“란님은 제게 불만이라도 있어요. 한마디 한마디가 영~ 듣기 거북하군요.”
“불만 없어요. 불만도 상대에게 관심이 있어야 품게 되는 감정입니다.”
“관심이 없으니 불만도 없다..........쩝~ 그렇군. 벽하야.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찾아온 모양이다. 그만 일어나자.”
풍운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벽하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말 이대로 가실 겁니까?”
“전할 말은 전했으니 그만 가야죠.........무경님..........무경님이라면 배화교도들이 악양에 들어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시는지 아실 겁니다. 무림을 영도하는 고명하신 분들이 어련히들 알아서 하시겠지만.........우리들 꽁무니나 쫒아 다니다가 뒤통수를 맞을까 걱정돼서 잠깐 들린 겁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려가겠습니다. 황새들 노는 곳에 까마귀가 끼면 되겠습니까?”
풍운은 벽하의 손을 잡고 마차 밖으로 나갔다.
“란아........저분들을 다시 모셔와~ 어서.”
무경이 급하게 란에게 명령했지만 풍운은 벽하를 안고 이미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사숙님.........우리도 쫒아가야 합니다.”
“저들이 가는 방향은 천마마련입니다. 우리도 천마마련으로 가고 있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저들이 마련으로 들어가면 기회가 없습니다. 그전에 잡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저놈은 반각대사님을 원수입니다.”
“사대금강님도 방금 보셨죠. 금강님들 경공으로 그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거야...................휴~ 알겠습니다.”
사대금강도 홍인의 말에 수궁하는 눈치다. 잠깐 사이에 점이 되어 버리는 풍운의 경공실력을 보지 않았던가? 지금 전력을 다해 풍운의 뒤를 쫒는대 해도 그들을 잡기는 힘들 것이다.
“저희들도 그만 일어나야겠군요.”
“스님도 가시겠습니까?”
“가야죠. 참! 무경님은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글쎄요..........배화교도들이 악양에 들어왔다고 했으니 악양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무경님의 마수마랑의 말을 믿으세요.”
“악양에 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죠.”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들도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홍인과 사대금강도 천마마련을 향해 출발했다. 무경은 사대금강까지 떠나자 바닥에 주저앉는다. 란은 급하게 무경의 곁으로 달려간다.
“아가씨. 아가씨.”
“괜찮아.”
“오늘 너무 무리하셨어요. 그만 쉬셔야 합니다.”
“그래야지...........란아.”
“왜요. 말씀하세요.”
“도와준다고 했잖아.........왜 그분을 그냥 보냈어.”
“예?..........제가 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제 발로 간 겁니다.”
“붙잡아야지.”
“제가요? 아가씨가 잡아도 그냥 갔잖아요.”
“란이가 잡았으면 가지 않았을 거야...........왜 붙잡지 않았어. 쿨럭..........쿨럭.........쿨럭!”
무경은 말을 하면서 피를 토한다. 약한 몸에 쉬지도 못하고 잠시간 홍인과 사대금강을 접대하느라 병이 깊어진 모양이다. 란은 얼른 손수건으로 무경의 입을 닦아주었다.
“란........왜 붙잡지 않았어........왜............왜~”
“고정하세요. 다음에는 절대 그렇지 않을게요. 제가 꼭 붙잡겠어요?”
“정말이야. 정말 그렇게 할 거야.”
“예~ 맹세합니다.”
“알았어.........그만 쉬고 싶다.”
무경은 눈은 힘들게 자리에 누웠다. 무척이나 피곤한 모양이다. 란은 무경이 잠들 때까지 그녀의 겉을 지켜주었다. 날이 밝았다. 잠에서 깨어나 무경과 란은 악양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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