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천 - 26부 > 무협/SF

배는 요트에 가까운 유람선이었다.

자유 무역항으로 들어가기엔 안성맞춤일 정도로.

물론 그것을 노리고 만들었겠지만 과학자들이 외관까지 생각한다는건 처음 알았다.

호화로운 요트가 내 소유라니 갑자기 모든걸 치우고 바다로 항해나 갈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 요트는 승무원 포한 100명을 수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기를 탑재하진 않았지만 포격을 받아도 끄떡 없을 정도로 튼튼합니다. 유사시엔 잠수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세계 어느 항구를 가더라도 절대 발각될 이유가 없습니다. 앞으로 주군께서 이용하실 교통 수단이니 잘 봐두십시오.”

내가 세계를 누비고 다닐때 타고 다녀야 한다라.

괜찮은 생각이다.

비행기는 개인이 끌고 다니기엔 제약이 너무 많다.

이착륙을 할때마다 관제소의 통제를 받아야 하고 신분을 확실히 알려야 가능하므로 나의 행적이 노출될 수 있고 일반 항공사를 이용하기엔 혹시라도 하이잭을 하면 나라도 죽을 수 밖에 없다.

여러모로 보나 배가 가장 좋기는 한데 속도가 별로라 제외 되었지만 이번에 연구한 엔진은 수상에서도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데다 잠수 기능도 있었다.

레이다에 걸리지 않게 스텔스 기능도 장착하였고 무기만 없다뿐이지 거의 움직이는 요새라고 볼 수도 있다.

앞으로 러시아나 북한의 무기 과학자들을 영입한다면 이 배에 장착할 무기도 생산 될 것이다.

제갈승은 자랑스러운 듯 배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큐슈에서의 일들을 정리했다.

현재 상태까지의 상황을 세밀히 분석하고 쿠마모토조를 흡수하면 어디로 이동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아직 일본엔 3개의 섬이 남아있다.

그리고 세 개의 조직엔 막강한 숨은 실력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일일이 찾아서 격파하는 것은 무리고 가장 큰 집단만을 상대하다 보면 인연의 꼬리를 물고 한명씩 나타날 것이다.

지금도 그 중의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텐진 공원에서 만났던 소매치기 청년이 자신의 사부라는 사람과 함께 날 찾아와서 자신의 무술을 폄하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하란다.

내가 그럴려고 한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냥 넘길 순 없어 일단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내가 있는 건물엔 연무장도 같이 있으니 그들을 잠시 상대하기엔 장소를 옮길 필요도 없고 내가 생각한 천부경 무술의 일파라면 내가 아울러야 할 의무도 있다.

세계에 퍼져 있는 천부경의 무술은 이름이 바뀌었을 뿐 모두 내가 익힌 무술에 근원을 두고 있기에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고 다시 가르친다면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적어도 반쪽짜리 무술이란 평가는 듣지 않겠지.

“그대가 나의 무술을 폄하한 사람인가?”

한 40대 정도로 보였는데 어쩌면 더 들었을 수도 있다.

수련의 성과에 따라 조금 젊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소. 보아하니 천부경에서 떨어져나간 파편을 하나 익힌 모양인데 그 정도론 천부경의 무술이라고 말하긴 어렵지.”

“대단한 장담이군. 그래 그대는 천부경을 알고 있소?”

“제가 천부경의 종사요. 그래도 천부경을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보통의 일본인이라고 보기는 힘들군.”

“재미교포 2세요. 그리고 이 아이 역시 재미교포 3세이고. 그나저나 그 잘난 천부경의 진실 된 위력을 볼 수 있을까?”

“제자에게 들었으면 대충 알텐데. 굳이 망신을 사겠다면...”

난 일어서서 자세를 잡았다.

천부경의 무예는 특별한 기수식이 없다.

이미 자연과 동화를 이루어서 자세가 없어도 상대의 행동에 적절히 반응을 할 수 있는 탓이다.

이자는 확실히 천부경의 권각을 익힌 모양이다.

정석대로의 위력이라면 권으로 바위를 쪼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건 내력이 없더라도 권로만 잘 익혀도 가능한 일이다.

수련의 과정에서 조금의 기는 움직이니 얼마나 제대로 익혔는지가 문제다.

지금 이자의 자세에선 적어도 바위를 쪼갤 정도는 되어 보였다.

“원래 천부경의 무공에 특별한 자세가 없다는걸 안다면 지금 바로 공격해야 하는거 아닌가? 아직 그정도도 모른다면 나의 상대가 되기는 힘들어.”

“허튼 소리. 어떤 무술이든 형이 있고 식이 있는 법. 궤변은 늘어놓지 마라.”

난 소리 없이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마치 유령의 움직임 같은 이 보법은 심즉동의 경지에 오르면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소림의 금강부동신공이 이와 유사하나 그것도 천부경에서 떨어져 나간 일부일 뿐이다.

“이래도 허튼소린가?”

그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나의 신법은 계속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 갔고 이내 땀을 흘리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아마 평시라면 이정도로 땀을 흘리지 않겠지만 내가 보내는 기의 압박과 처음 보는 신법이 그를 긴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따위 신법은 치우고 정당하게 겨루자.”

“이것도 천부경의 무공이야. 아직 수련이 모자라군.”

난 슬쩍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가렸다.

따라가면서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가렸으니 날 보려고 해도 공격을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내 손을 쳐오면 뱀처럼 팔을 휘돌려 그의 공격을 뿌리치고 다시금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온통 허점으로 보이던 내 몸이 이젠 손바닥에 가려 전혀 보이지가 않을 것이다.

지금 그의 눈에는 그저 내 손바닥이 세상을 다 덮고 있는 듯이 보일테니.

난 진각을 밟으며 장을 그의 가슴에 붙였다.

“이런 식의 기공 공격은 처음 일거야.”

난 장에 기를 모으고 강하게 뻗었다.

물론 죽지 않을 정도로.

“퍽억...”

“어때? 이정도로 죽지는 않을테니 소감을 말해봐.”

“크윽... 이건 뭐지? 천부경을 익히면 이런것도 가능한가?”

“물론. 지금 세계의 무술은 그저 술의 무술일 뿐이야. 내가 익히는 천부경은 기를 포함하고 있지. 다른 무술도 기를 다루긴 하지만 모두 퇴색되고 현재 자연계에선 익히기 힘들지.”

“그렇군. 그래도 내가 기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졌네.”

“의외로 쉽게 인정하는군. 그래 천부경의 일부를 잘 봤나?”

“그 정도가 일부라면 아마도 천부경을 당할 무공은 없겠구먼.”

“당연하지. 모든 유파는 천부경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될테니까.”

“졌으니 이만 가겠네.”

“잠깐. 남아서 우리 조직의 무술 사범이 되지 않겠나?”

“난 조직엔 손대지 않아. 그저 내가 수련을 하며 지낼 뿐이지.”

“그정도로 간단한게 아냐. 난 지금 일본을 정복하는 중이야. 그 사이에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다치거나 죽을지 모르지. 단 내게 복종하는 사람들은 받아들일 생각이야. 그런 사람을 통솔할 누군가가 필요한데 자네가 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키운 사람들은 다시 자네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고?”

“왜 한쪽으로만 생각하지? 솔직히 난 그들이 없어도 일본은 정복할 수 있어. 단지 민족 감정이 안좋아질까 그게 걱정이지. 아무래도 스스로가 나서서 한다면 한국인인 내가 일본을 정벌한다는 타이틀 보단 좋을 것 같지 않아?”

“그도 그렇군. 그럼 내 제자도 같이 받아주게.”

“그러지. 그럼 저들을 따라가서 숙소를 배치 받도록 해.”

“정식으로 소개합니다. 정한수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이진우입니다. 장문께 인사 올립니다.”

난 크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들에게 숙소로 들어갈 것을 종용했다.

지금 정한수의 말에 따르면 난 천부경을 익힌 문파의 문주로 대우 받은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장문의 직위라니.

조직내에서 차라리 하나의 문파를 만들어 버릴까?

최고의 정예들만 골라서 내가 익힌 천부경의 기초를 일러주고 그것을 익혀내는 사람만 모아서 따로 문파를 만든다면 어떨까?

사람이라면 당연히 상위 클래스로 올라가려는 생각을 가질 것이고 그러한 경쟁은 실력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파의 이름을 뭘로 할까?

천부파?

너무 식상한 생각이 드는군.

그냥 조직 이름인 천황파를 그대로 이어야겠다.

대신 직위의 이름을 따로 두어 일반 조직원과는 차별을 두어야겠지?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은 아무도 모르게 준비하여 직위를 받는 것 자체가 영광이 되도록 해야겠다.

지금 오행과 나의 친위대는 당연히 이름을 바꾸어 집어넣고 나머지 사람은 태수의 부하들과 기존 조직원 중에서 충당해야 할 것이다.

개편이 완료된다면 정한수에게 무술교두란 직위를 줘서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다.

유사시에 가장 큰 힘이 될테니 항시 수련으로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하도록.

큐슈는 그런대로 입성에서 공략까지 힘들게 없었지만 앞으로는 걸리는 문제가 많을 것이다.

큐슈를 방어할 병력을 빼고 다른 곳을 쳐야 하기 때문에 인원의 모자람을 고려해야 하고 나머지 조직의 연합도 방해해야 한다.

깨끗하게 보스끼리의 대결이라면 내가 우위에 있지만 결코 이들은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을테니 번거롭더라도 머리싸움에서 이기고 들어가야 한다.

오행을 모두 풀어 그들의 정보를 차단함과 동시에 요인 암살을 시도하고 각지구의 10대나 20대 조직을 꼬드겨 소란을 일으키게 할 것이다.

그렇게 정신이 없을 때 하나씩 정리를 한다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한대로 된다는 가정이고 그걸 위해선 나도 직접 움직여야 한다.

물밑 공작과 동시에 내가 나선다면 초점은 내게로 몰릴 것이고 속는 것을 알면서도 날 잡기위해 달려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서서히 준비를 하면 된다.

일본의 전체 정벌을 위한 준비.

태수의 부하들도 들어온 마당에 내가 인원으로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최대한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고 조직을 흡수할 것이다.

최고의 전사들이 최고의 작전으로 한바탕 폭풍을 일으키면 일본은 자연히 내 손으로 떨어진다.

그날을 위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현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표면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전여옥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큐슈의 상권을 집어 삼키고 있었고 그에 비례하여 조직의 자본은 더욱 탄탄해 졌다.

항구를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라 밀무역도 성행했는데 다만 마약만은 손대지 못하게 했다.

무역업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무기도 밀매하게 되었는데 그건 어마어마한 이익을 가져왔고 조직의 일부를 떼내어 진행할 정도로 거대해 졌다.

슬슬 세계적인 조직으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아키라는 정확히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자 날 보자고 했다.

여러명을 대동하고 만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몇몇의 호위만 대동하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여 오랜만이군.”

“적을 보러 오는데 친구처럼 구는구만.”

“난 너를 친구로 삼으려는데 넌 그게 아닌가 보군.”

“그래도 넌 적일뿐이야. 그것도 조센징인...”

“의외군. 네게서 그런 말을 듣다니. 좀 더 호탕한 인물인줄 알았는데...”

“화 낼거라 생각했는데 통하지가 않는구만.”

“뭐 그런거야 나와 상관없으니... 그래 결정은 했어?”

“넌 말이야...”

아키라는 마치 회상을 하듯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 자신의 세력이라곤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나와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저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듣고 있으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어릴때 어떻게 살았는지 아나? 고아에 소매치기였지. 그러다 운이 좋아서 조직에 들어왔고 의지 할곳이 없는 인생이라 시키는대로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거야. 내 주위에 인물들은 모두 날 믿는 사람들이고 자연스럽게 조직을 이어받았지. 하지만 내가 원한 삶은 이게 아니야. 갇혀 있는 삶이 아닌 하늘을 날아보는게 꿈이었지. 비록 조직에선 내가 하늘이라곤 하나 언제나 외롭고 쓸쓸했지. 너를 보니 한 조직의 수장이면서도 항상 자유를 가지고 있는거 같아서 부럽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잘도 조직을 이끌고 있었구만.”

내가 보기에 아키라의 능력은 대단했는데 정작 본인을 그런 삶을 비관하고 있었다.

아마도 생각의 차이가 아닐까?

정상의 위치에 있으면 항상 위협을 느끼기 마련이고 따라서 측근이라도 약간의 거리를 두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감추어야 하고 상대보다 강하게 보이기 위해서 약간의 위장도 필요하고.

그러다보면 고독한 신세로 쳐지기 마련이다.

“난 말야... 조직이란 가족이라 생각해.”

“......”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가족 말야. 너처럼 혼자서 모든걸 짊어지려고 하니까 외로운거야. 같은 가족인데 나누면 편한거 아냐? 물론 네가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 하지만 절대자의 고독이란건 모두 미완의 절대자이기 때문이야. 나처럼 무적의 절대자라면 절대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지.”

“하하. 대단한 자신감이군.”

“뭐 이 몸이 좀 잘나서 말야. 그리고 난 권력이니 이런거에 관심이 없어. 그저 맘이 가는데로 행동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거지.”

“마음이 가는데로 행동한다라....”

아키라는 잠시간 생각을 하다가 날 쳐다 보았다.

“만약에 말야... 내가 죽더라도 내 부하들은 책임질 수 있냐?”

“뭐 상황봐서. 쪽바리도 근성이 있더라구.”

아키라는 뭔가를 결심을 했는지 날 바라보는 눈빛에 긴장감이 돌았다.

“한번의 승부로 끝내자.”

“그래. 나도 길게 끌고 싶지 않아.”

우린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며 자세를 잡았다.

내게 특별한 자세는 없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주먹을 쥐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키라에게서 퍼져 나오는 기운은 종찬 정도의 기운이었다.

뭐 종찬 정도면 다른 조직에선 보스를 해도 상관없을 정도지만 내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나와 꼭 싸워야 겠나?”

“나보다 강한건 인정하지만 그냥 물러날 순 없지.”

“그렇군. 그럼 조심하게.”

난 몸에 기운을 돌리며 아키라 쪽으로 몸을 날렸다.

p.s 간만에 올려보네요... 기다리신 분들이 있으면 좋으련만... 

새 생명이 돋아나는 봄이네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