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114부

본문

천상(天上)의 향기 114(애증(愛憎)의 그림자)-2




천상루에 들어간 풍운은 천상루의 엄청난 규모와 그 화려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상루는 중원제일의 기루답게 그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 황궁을 능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궁아라와 함께 기루라는 곳을 가본적은 있지만 천상루는 다른 기루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고 화려한 것이다.




“어서오세요. 공자님은 천상루에 처음이세요.”




풍운이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자 중년여인이 달려와 반갑게 인사한다. 아마도 현장(?)에서 은퇴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노기(老妓)인 모양이다.




“예! 처음입니다.”


“그럼 먼저 본루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본루는 총 7층으로 이루어졌으며 기녀는 사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천급(天級) 기녀는 오직 7층에서만 손님을 접대하며. 5층과 6층에는 지급(地級) 기녀가 접대하고 3층과 4층에 있는 인(人級)급 기녀가 접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층과 2층에 있는 기녀들은 특별한 등급은 없지만 미와 끼에 있어서는 다른 기루에 있는 기녀들과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을 겁니다. 다음으로 본루에서 즐기기 위한 가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층은 은자......”




풍운은 중년여인의 설명이 끝나기 전에 품속에서 작은 패를 꺼내 여인에게 보여주었다. 바로 다정화가 주었던 동패다.




“다정화라는 여인을 찾아왔어요. 지금 볼 수 있을까요?”




여인은 풍운이 내민 동패를 보더니 어른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주변을 살핀다. 




“빨리 패를 집어넣으시고 저를 따라오세요.”




여인은 풍운을 1층에 있는 내실로 안내했다. 풍운은 여인이 안내한 방을 둘려보고 혀를 내두른다. 황제의 침실도 여기보다 화려하지 않을 것이다. 금장을 입힌 가구들과 고풍스런 그림들로 장식된 방이 그만큼 화려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위에 보고하고 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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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바로 7층으로 올라가서 다정화를 모시는 시녀에게 동패를 지니 사람이 찾아왔다고 보고 했다. 다정화는 자신의 방에 있다가 령패를 가진 사람이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령패을 지닌 사람이 찾아왔다는 말이냐?”


“예~ 매님의 영패라고 합니다.”




다정화는 심장이 두근거린다. 자신이 영패를 전해준 사람은 풍운밖에 없다. 그럼 풍운이 찾아왔단 말인가? 얼마 전의 풍운이 천마마련에 있다는 보고를 끝으로 풍운에 대한 소식이 끊어졌다. 혹시 풍운이 령패를 다른 사람에게 준건 아닐까? 그건 아닐 것이다. 풍운이 자신이 준 물건을 함부로 남에게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풍운이 직접 찾아왔다는 말이다. 다정화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감춘다. 시녀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긴 분이래.”


“20대 초반의 절대미남자라고 합니다.”


“절대미남자?” 


“마치 여인처럼 아름다운 분이라고 합니다. 또 뭐라고 하더라.......새긴 것으로만 보면 인간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알았다. 그분을 이곳으로 모셔오너라.”


“알겠습니다.”




다정화의 명령을 받은 여인은 풍운이 있는 방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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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나가자 풍운은 벽에 걸린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진품이 아니군.” 




풍운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벽에 걸린 그림들이 진품이 아라는 것은 그림에 대한 조예가 없는 풍운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긴 작품들이 진품이라면 그 가격만 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풍운은 방을 돌아보며 서성거리고 있는데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왔다.




“다정화님께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풍운은 기녀를 따라 7층으로 향했다. 천급기녀인 다정화의 방이 7층에 있기 때문이다. 풍운이 7층으로 올라가니 복도에 다정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정화는 다른 기녀와는 달리 수수한 녹색 궁장에 화장도 하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수수한 옷이 오히려 그녀의 미모를 돋보이게 만든다. 아마 화사한 옷을 입고 있었다면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정화는 한손을 가슴에 얻고 고개를 숙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연스러운 동작이다. 하지만 다정화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기 위해 심장을 누른 것이다. 풍운을 보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서오세요.”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방으로 가시죠.”




다정화는 풍운을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풍운은 다정화을 따라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정화의 방은 1층에서 보았던 방과는 달리 작고 아담한 방이었다. 




“앉으세요.” 




풍운은 방을 둘려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여긴 아담하군요.”


“실망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일층에서 보았던 방보다 깔끔하고 정갈해서 정감이 가네요. 사실 일층 방은 앉기도 불편할 정도였거든요!”


“왜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넘치느니 모자라니 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층 방은 화려함이 지나쳐 불편할 정도였죠.”


“그래요? 하지만 사람마다 취향이 틀려서 그런 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도 드리지 못했군요.”




다정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왜~ 일어나세요.”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죠!”


“그냥 안으세요. 다정화님이 일어나시면 저도 일어나야 하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풍운님이 찾아오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이렇게 찾아주신 것만도 영광입니다.” 


“그런데 제가 풍운으로 이름을 바꾼 것을 어떻게 아셨죠.”




풍운이 다정화를 만났을 당시에는 아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고 스스로 자신을 이름을 말해준적도 없다.




“본루의 정보망은 중원전역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습니다. 특히나 풍운님은 본루에서 주목하는 분이라 세세한 변화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풍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천상루의 정보망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자신이 이름을 바꾼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천상루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할말이 없군요. 그럼 지금까지의 제 행적도 모두 알고 계시겠군요?”


“본루의 정보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두 알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풍운님께서 사사천교의 태상장로님이 되셨고, 천마마련에 계시다는 정도였습니다.”


“사사천교의 태상장로가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죠?”


“사사천교나 천마마련에도 본류의 손님들이 계세요.” 


“손님이 아니라 간자(間者-첩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건 본루의 비밀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대충 알아듣죠.”


“어머~ 내 정신 좀 봐~ 잠시만 기다리세요. 술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술 먹자고 찾아온 건 아닙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시면 섭섭하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풍운의 말류에도 다정화는 밖으로 나와 시녀를 불렸다.




“가서 간단한 술상을 준비해. 그리고 가영이를 들라고 해라.”


“가영님이라면 최근 천급기녀가 되신 그 가영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가서 손님을 모시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다정화가 다시 방으로 들어와 풍운의 앞에 다소곳하게 앉는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술을 내올 겁니다.” 


“쩝~ 할 수없군요. 그럼 간단하게 한잔만 하겠습니다.”




다정화는 빙긋 미소 지으며 풍운을 바라본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공중에 뜬 느낌이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자기가 어떻게 된 것 아닐까? 왜 이렇게 긴장하는지 모르겠다. 다시 보아도 풍운이라는 남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잘생긴 남자다. 얼음처럼 차가운 심장을 가진 궁아라가 사랑에 빠진 이유를 알 것 같다. 풍운은 다정화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자 쑥스러운 모양인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분위기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험험~ 수혜아가씨나 아라누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풍운은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수혜와 아라에 대해서 물어봤다.




“둘 다 무사히 생강시가 되는 마지막과정에 들어갔다고 하니 늦어도 육개월 후에는 깨어날 겁니다.” 


“그럼 육개월 후에 볼 수 있는 겁니까?” 


“그........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모든 결정권한은 궁주님께 있으니까 궁주님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다라질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혹시 누님이나 아가씨를 나쁜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니겠죠?”


“죄송합니다. 그 질문은 제가 답변하기 곤란하군요?”




다정화는 직답(直答)을 피한다. 생강시가 된 수혜나 아라의 처리는 궁주나 상급자들이 결정할 문제기 때문에 다정화도 대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풍운도 다정화의 입장을 이해한다. 다정화는 빙궁의 사군자일 뿐이다. 그녀 위로 호법이나 장로 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저도 순순히 보내주진 않을 거라고는 알고 있어요. 생강시로 만들기 위해 투자한 노력이 있는데 아무런 대가도 없이 보내주지 않겠죠.” 


“............”




빙궁도 수혜와 아라를 생강시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돈과 노력을 투자했을 것이니 당연히 대가를 받으려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없다. 빙궁도 무슨 목적이 있으니 수혜와 아라를 생강시로 만들었을 것이다.




“대답하기 곤란하신 것 같은데 저도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궁주님께 이 말은 전해주세요. 만일에 수혜아가씨나 아라누님이 잘못되면........용서치 않을 겁니다. 내 목숨을 걸고라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거라고 전해주세요.”




풍운의 단호한 말에 다정화의 표정이 탁탁하게 굳어진다. 지금까지 지켜본 풍운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결코 허언(虛言)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정화는 공중에 떠있던 기분이 날개 없는 새처럼 곤두박질치는 느낌이다. 그녀는 애써 마음을 추수(秋收)이고 밝게 웃으려 노력한다.




“알겠습니다.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장기님은 어떻게 됐죠.” 




장기는 수혜나 아라와는 달리 죽은 상태로 빙궁으로 갔다. 




“죄송해요. 끝내 장기님을 살리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됐죠.” 


“사강시가 됐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빙백강시가 된 거죠.”




풍운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다. 신이 아닌 이상 한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진 못할 것이다.




“다정화님이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죠. 저도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때 문이 열리며 상이 들어왔다. 다정화는 얼른 일어나 상을 받아 풍운의 앞에 놓았다. 술상은 생각과는 달리 간단한 안주와 술이 전부였다. 풍운이 부담되지 않도록 조졸하게 마련한 것이다. 상을 가져온 시녀들이 물려가고 자주색 궁장을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가영이 왔구나.........네가 풍운님을 모셔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인은 다정화의 명령에 고개를 들고 풍운을 보더니 소매로 얼굴을 살짝 가린다. 풍운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모양이다.




“뭐하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




가영은 손을 내리고 밝게 웃으며 풍운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가영이라고 합니다.”




가영은 10대 후반으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 송이 모란처럼 화사한 미모를 가진 미인이었다. 인사를 마친 가영은 풍운의 겉으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는다.




“자~ 한잔하세요.”




다정화가 주전자를 내밀었다. 풍운은 옆에 앉은 가영이 때문에 불편한 모양이다.




“우리끼리 한잔하면 안 될까요?”


“왜요? 가영이가 마음에 안 드세요. 그럼 다른 아이를 불러드릴까요?”


“그게 아니라........좀 불편해서..........”




풍운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님 제가 싫으세요.” 




가영은 촉촉한 눈망울로 풍운을 올려본다. 곧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망울이다. 풍운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한숨을 쉰다. 자기가 싫다고 하면 가영은 곧이라도 울어버릴 기세다. 풍운은 답답한지 술잔을 내밀었다.




“휴~ 한잔 주세요.”




다정화가 빙그레 웃으며 술을 따라주니 풍운은 단숨에 마셔버린다. 입에서 불이 나고 목구멍과 식도가 따끔거린다. 술이 넘어가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다정화가 따라준 술은 오량액주(五糧液酒)라는 술로 다섯 가지 곡물과 소량의 약재로 빛은 무척이나 독한 술이었다. 풍운이 술을 마시자 가영이 잘게 썰어서 갖가지 양념에 버물린 고기를 내미었다. 




“아~ 하세요.”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풍운은 젓가락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상에는 다정화의 것과 가영이 들고 있는 젓가락밖에 없다. 




“흑~ 공자님은 제가 싫으신 거죠.” 




가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소매로 살짝 얼굴을 가리는데 그녀의 뺨에 눈물이 흐른다. 여자의 눈물에 약한 것이 남자라고 했던가? 풍운은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는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가영이 눈물을 보이니 황당한 것이다.




“아.......아니.......그게 아니라.......머........먹을 게요.......먹으면 되잖아요.” 


“정말이세요. 자~ 그럼 아~ 하세요.”




가영은 언제 울어나 싶은 표정으로 밝게 웃으며 안주를 풍운의 입에 넣어주었다. 여자가 요물이라고 하지만 가영의 어르고 뺨치는 솜씨에 풍운은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맛있죠.” 




풍운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인다. 맛없다고 하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혼자만 드시는 겁니까? 저도 한잔 주세요.” 




다정화가 자신의 술잔을 내밀었다. 풍운이 술을 따라주자 다정화는 조금만 마시고 내려놓는다. 술과 가영이 들어오며 탁탁하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수혜아가씨나 아라에 대한 소식이 궁금해서 오신 겁니까?”


“그것도 그거지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어요.”


“그래요.”




다정화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오지 않았을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풍운의 입으로 직접 확인하고 보니 마음 한쪽에 찬바람이 분다. 하지만 다정화는 다시 밝게 웃었다. 이유가 어떻게 됐던 풍운이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부탁할 것이 뭐죠?”


“얼마 전에 악양에서 배화교도들을 보았습니다. 혹시 천상루에서도 알고계세요.”


“알고 있어요.”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어요.”


“목적이 뭐죠?” 


“제가 왜 그걸 알려드려야 하죠.” 


“예?” 


“우리도 그들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많은 희생이 치렀어요. 그런데 그걸 공자로 알려달라는 말씀이세요?”




풍운은 갑자기 할말이 없었다. 다정화가 이렇게 나올지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풍운이 말도 못하고 머리만 긁적거리고 있자 다정화는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린다. 풍운의 표정이 너무나 귀엽기(?) 때문이다. 




“왜~ 웃으시는 거죠?”


“호호호~ 죄송해요.............제가 장난이 심했네요. 모두 말씀드릴게요. 이번에 들어온 배화교도들은 2천명이 조금 넘어요. 흑풍대 일천명, 혈풍대 일천명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는 혁린무와 그를 호위하는 소수의 호위무사들로 구성되었죠. 혁린무는 배화교주인 혁린무진의 둘째 아들로 성질이 포악하고 저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


“그들이 중원에 들어온 목적은.........장강수로십팔채와 대륙상회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입니다.” 


“대륙상회와 장강수로십팔채요?........배화교가 왜 그들을 노리는 거죠?”


“정확한 목적은 저희들도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 했어요.”


“장강수로십팔채나 대륙상회는 백도나 흑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세력들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하지만 장강수로십팔채는 중원의 모든 강과 호수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이고, 대륙상회는 중원 상권의 절반이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입니다. 만일에 장강수로십팔채가 배화교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면 배화교는 중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이동로를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남교통로를 장악함으로 강남 무림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강남교통로확보라는 의미는 뭐죠?”


“북마남수(北馬南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자강을 중심으로 북쪽은 말을 이용하고 남쪽은 강이나 수로를 이용하다는 말입니다. 즉 중원의 강과 수로를 장악한 장강수로십팔채를 장악하면 강남지방의 주요교통로인 강과 수로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륙상회는 중원 상권의 절반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병사들을 훈련도 시켜야하고, 병기도 만들어야합니다. 또 안 먹고 싸울 수는 없죠. 먹어야 힘내서 싸움도 합니다. 이 모두가 돈입니다. 또한 대륙상회를 배화교가 장악하게 되면 돈도 돈이지만 대륙상회의 유통망을 장악함으로 원활한 전쟁물자의 공급해 질뿐 아니라 중원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음~ 다정화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문제가 심각하군요.”


“풍운님 문제는 그것뿐만 아닙니다.........배화교가 장강수로십팔채나 대륙상회를 장악하려는 목적이 제가 말씀드린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분명 복합적인 목적이 있을 겁니다. 가령 대륙상회는 우리 천상루에 뒤지지 않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으니 대륙상회의 정보망을 이용해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트릴 수도 있어요. 극단적인 예로 장강수로십팔채가 대륙의 모든 강과 수로를 막아버리면 무림뿐만 아니라 중원전체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겁니다.”




풍운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다정화의 설명을 들어보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소녀의 잔도 받으세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가영이 분위기가 탁탁해지자 아양을 떨며 술을 따라준다. 풍운은 술을 마시고 가영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가영은 이번에도 안주를 집어준다. 풍운은 이번에는 쓸데없는 반항(?)을 포기하고 안주를 받아먹었다. 




“제가 마셔도 됩니까?” 




가영이 다정화에게 물어본다.




“그걸 왜 나에게 묻지? 풍운님께 여쭈어봐~” 


“공자님.......소녀가 마셔도 됩니까?” 


“드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가영은 술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풍운에게 잔을 내밀었다. 




“또 달라는 겁니까?” 


“다시 잔을 받으셔야죠.” 




풍운이 잔을 받자 가영은 술을 따라주었다. 




“아~” 




가영이 주전자를 내려놓고 병아리처럼 작은 입을 벌린다. 풍운에게 안주를 먹어달라는 말 같다. 




“빨리 주세요. 자~ 아~” 




풍운이 망설이고 있자 가영이 재촉한다. 풍운은 코끝을 찡긋거리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안주를 집어 가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기루에 오면 모두 이렇게 하는 건가? 풍운은 쓰게 웃더니 다시 술을 마신다.




“어머~ 급하기도 하셔라........천천히 드세요.” 




가영은 말로는 천천히 마시라고 하면서도 풍운의 잔을 가득 채워준다. 고양이 쥐 생각 하는 것 같다.




“저기 다정화님.......다른 부탁 있어요.” 


“말씀하세요.”


“제가 마련을 나왔다고 소문 좀 내주세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제가 마련에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마련이 곤란할까봐 그러시는 군요. 알았어요. 또 있나요.” 


“없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배화교에 대한 문제는 시간을 두고 고민해 봐야겠군요. 이제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풍운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하자 가영이 풍운의 팔을 잡고 매달린다.




“벌써 가시면 안돼요. 잠시만 더 있다가 가세요.” 


“그냥 가시면 섭섭하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한곡 연주하겠습니다.” 




다정화도 풍운이 가는 것이 섭섭한 모양이다. 그녀는 한쪽에 있던 칠현금을 가져와 연주를 시작했다.




夜別韋司士(야별위사사)




高館張燈酒復淸(고관장등주부청) 


夜鍾殘月雁歸聲(야종잔월안귀성)


只言啼鳥堪求侶(지언제조감구려) 


無那春風欲送行(무나춘풍욕송행)


黃河曲裏沙爲岸(황하곡리사위안) 


白馬津邊柳向城(백마진변유향성)


莫怨他鄕暫離別(막원타향잠이별) 


知君到處有逢迎(지군도처유봉영)




등불 밝은 곳에 술 빛은 더욱 맑고, 종소리 들리는데 달 아래 가는 기러기, 새는 짝 찾아 울러 밤을 새우는가, 어찌 하리 봄바람 따라 헤치는 이 심정, 황하 굽은 골에 모래 씻는 물소리, 백마진 강변에는 버들만 우거졌다, 원망하지 말아다오 잠시 나뉘는 것을, 그대 가는 데마다 반가이 맞아 주리.




다정화는 칠현금을 연주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고적(高適)의 시를 읊조린다. 풍운은 시가 무슨 뜻이지 모르겠지만 잔잔하게 울려 펴지는 칠현금 소리와 다정화의 목소리에 취해 있었다. 가영은 풍운이 몽롱한 시선으로 다정화를 바라보고 있자 얼른 술잔을 들어 내밀었다. 분위기에 취한 풍운은 가영이 주는 술을 마셨고, 가영은 재빨리 다시 술을 따라준다. 오량액주은 독한 술이다. 더구나 풍운은 기(氣)로 술기운을 몰아내지 않고 편하게 술을 마시고 있기 때문에 점점 술기운이 올라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다정화의 연주가 끝났다.




“미천한 재주를 부렸습니다. 혹시 귀를 더럽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하하하~ 무슨 말씀을.......아주 잘 들었습니다.”




다정화는 칠현금을 치우고 자신의 잔을 비우더니 풍운에게 내밀었다.




“제 잔도 한잔 받으세요.” 




풍운은 다정화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고 자신도 다정화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아이........공자님 저도 한잔 주세요.” 




가영이 풍운의 팔에 매달리며 아양을 떤다. 풍운은 가영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가영은 술을 마시더니 주전자를 흔들어본다. 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술이 떨어졌네요. 제가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가영이 밖으로 나가자 다정화가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이제 어디로 가세요?”


“천상루의 정보망이라면 제가 어디로 가던 금방 알아낼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알아보려면 알아 볼 수는 있지만 풍운님께 직접 듣는 편이 좋잖아요?”


“요동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요동이면 아무리 서둘러도 보름 이상은 걸리겠군요.”


“아마 그렇겠죠.” 


“그럼 중원에 들어온 배화교 놈들을 두고 보고겠다는 말씀인가요?”


“한 달 후에 마수일행을 만나기로 했어요. 그들은 만나서 대책을 논의해 봐야죠.”


“한달이면 배화교 놈들이 장강수로십팔채를 접수하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장강수로십팔채는 그렇게 허약한 세력이 아닙니다. 대륙상회도 마찬가지구요.”


“혹시 모르잖아요.” 


“중원전역에 산제해 있는 장강수로십팔채를 한달 안에 접수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해요.” 


“뱀은 머리를 제압하면 끝납니다. 저들이 왜 악양에 온지 아세요. 군산에 있는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를 접수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들이 배를 사들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때 술을 가지러갔던 가영이 술을 가지고 왔다. 




“자~ 한잔 받으세요.” 




풍운의 겉에 앉은 가영이 풍운에게 술을 따라준다. 풍운은 사양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저보고 어쩌라는 거죠?........저 혼자서 배화교를 소탕하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아닙니다. 참고 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자~ 한잔 하시죠?”




이번에는 다정화가 술을 권하고 풍운은 술을 마셨다. 다정화는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 이백과 두보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풍운은 가영이 권하는 술을 마시며 다정화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다정화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중간에 일어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빈병이 늘어난다. 




“아~ 취하는 군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풍운은 자신이 취했다는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비틀거린다.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자리에 일어나자 한꺼번에 술기운이 올라온 것이다.




“어머~ 조심하세요.” 




가영이 얼른 일어나 풍운을 부축한다. 




“이.......이런~ ” 




풍운은 황급히 가영에게 떨어진다. 가영에게 풍기는 진한 여인 향기에 성욕이 불근거리면 솟구쳤기 때문이다. 아예 처음부터 여자를 모르면 모를까 이미 여자 경험이 풍부한 풍운이 여인의 향기에 성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더구나 천상루에서도 가장 상급에 속하는 천급기녀인 다정화와 가영이 은근히 유혹하고 있으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이다.




“취하셨어요. 술이라도 깨고 가세요.” 




가영은 풍운의 팔을 끌어 다시 자리에 앉힌다. 




“가영이 말대로 하세요. 가영아.........풍운님을 편하게 해드려.” 


“알겠습니다.” 




가영은 풍운을 자신의 무릎에 눕게 했다. 




“아닙니다. 그만 일어나야죠.” 


“공자님이 그냥 가시면 가영이 혼나요. 제발........” 




가영은 또 다시 울먹이는 표정으로 풍운에게 사정을 한다. 풍운은 차마 가영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의 뜻대로 무릎을 베고 누웠다. 다정화는 다시 칠현금을 가져와 연주를 시작한다. 풍운은 가영의 무릎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모르겠다. 솟구치는 성욕 때문에 온몸이 세포들이 바짝 긴장한다. 풍운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눈으로 느끼고, 여자는 몸으로 느낀다는 말이 있다. 남자는 눈으로 보아야 흥분하고 여자는 몸(촉간과 분위기)으로 흥분한다는 말이다. 풍운은 차라리 안보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가영은 풍운의 머리를 쓸어준다. 풍운은 술기운과 은은하게 들려오는 다정화의 칠현금소리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잠드셨어요.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잠시만 더 있어. 깨실지 모르잖아.”


“알겠습니다.”




다정화는 칠현금을 한쪽으로 치우고 풍운의 잠든 얼굴을 살펴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은 왜 풍운을 붙잡을 것일까? 풍운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심장 두근거리고 귀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친 꿈속을 헤매는 아이처럼 모든 것이 몽롱하고 기분이 들떠 있다. 혹시 자신이 풍운을 사랑하는 것일까? 말도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풍운은 막내인 궁아라의 남자다. 궁아라와 풍운은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풍운은 언젠가는 빙궁의 적(敵)이 될 남자다. 빙궁의 최종목표도 무림정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풍운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다정화는 앞에 있던 술을 입에 떨어 넣었다. 술이 쓰다. 사랑해서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도 자꾸만 풍운에게 끌리는 자신이 싫다. 모든 수를 써야한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사랑하면 안 된다. 풍운은 사랑해선 안 되는 남자다.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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