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11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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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110(마도(魔道)의 길)-15




화원명일행과 별도로 마련에 잠입한 현원자일행은 마련무사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건물을 불을 지르고 마련의 중심부에 있는 마령탑(魔靈塔)으로 갔다. 마령탑은 마련을 상징하는 건물로 마마검제의 집무실과 금검비검의 집무실이 있고, 가장 상층부에는 마련의 정보를 총괄하는 비마당(秘魔堂)이 있는 탑이다. 현원자일행은 천마마련에서 마령탑이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며 평소 마마검제가 마령탑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곳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마령탑은 중요시설이 운집한 건물답게 경비 또한 삼엄해서 조심성이 없었던 현원자일행은 바로 경비무사에게 발각되어 일전을 치루고 있었다. 현원자 일행을 공격하는 경비무사들은 모두 금색무복을 입고 있었다. 바로 천마마련의 금마마령대에 소속된 무사들로 개개인이 다른 문파의 당주급 이상의 무공실력을 가진 천마마령의 정예병들이었다. 현원자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劍)을 막으며 자신의 목을 공격하는 경비 무사의 팔을 베어버렸지만 경비무사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반대쪽 팔로 현원자의 전중혈(젖가슴)을 공격하니 현원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무사의 목까지 베어버린다.




“사숙님........조심하세요.”




무당오검 중 한명이 현원자의 옥침혈(뒤통수)을 공격하던 경비무사의 검(劍)을 막으며 현원자의 겉에 달라붙었다. 




“모두 한곳으로 모여.”




무당오검과 벽력세가의 악무석 그리고 모용세가의 모용천악도 현원자 겉으로 모여들었다.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사방에서 경비무사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마련의 무사들은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현원자일행을 포위했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마련 무사들 틈에서 40대 중년의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현원자일행에게 말했다. 무사는 마령탑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무사였다.




“사숙님.......저희들이 길을 뚫겠습니다.”




무당오검이 오행검진을 펼치며 앞으로 나선다. 천마마련을 비밀리에 조사하기 위해 잠입했지만 마련무사들에게 발각된 이상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었고 이제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려나세요. 제가 뚫겠습니다.”




현원자는 청명검(淸明劍)을 들고 앞으로 나선다. 요즘 들어 현원자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평소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서 날카롭고 과격한 성격으로 변했다. 특히나 적(敵)을 상대함에 있어서 자비(慈悲)란 단어를 모르는 차가운 승부사가 되었다.




“조무래기들에게는 볼일 없다. 가서 마련주를 불러와라.”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군. 여기가 어디라고 큰소리야.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무기를 버리고 포박을 받아라.”


“킥킥킥~ 대가리 수많다고 기고만장(氣高萬丈)이군. 이분이 누군지 알고 까불어. 너희들이나 당장 물러나 마귀새끼들아.”




한쪽에 있던 모용천악이 현원자 옆으로 다가오면 마련무사들에게 욕을 하니 마련무사들은 험악한 표정으로 현원자일행을 노려보았다. 자신들의 처지를 모르는 놈들이다. 마련의 심장부에서 마련을 욕할 정도로 무모한 놈들이다. 놈들은 마련을 무시하고 있다. 무사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경비대장도 화가 나는지 얼굴이 붉어진다. 그는 말없이 팔을 올렸다. 말이 통하지 않은 놈들에게는 매가 약이다. 주위에 있던 무사들이 경비대장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무기를 들었다. 




“쳐라........죽어도 상관없다.”




경비대장의 팔이 내려가며 명령하자 현원자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무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현원자는 처음부터 무당의 최고 검법인 태극혜검(太極慧劍)으로 마련무사들을 상대했다. 현원자의 청명검에서 화려한 검영(劍影)들이 피어나 마련무사들을 향해 날아간다. 마련무사들도 각자의 무기로 현원자가 만들어낸 검영(劍影)들을 막으려했다.




“크아아악~.”


“..............크윽~” 




마련무사들의 팔다리가 사방으로 날아가며 밤하늘에 붉은 안개가 피어났다. 마련무사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피가 안개처럼 보이는 것이다. 현원자이 사용하는 검은 무림십대기병의 하나인 청명검으로 무쇠라도 두부처럼 베어버리는 검이다. 마련의 무사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현원자의 검(劍)을 상대했으니 각자의 무기와 함께 두 동강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놈이 가진 무기를 조심해...........정면으로 상대하지 말고 측면을 공격해라.”




경비대장의 고함소리를 들은 마련무사들은 현원자의 청명검을 피해 측면을 공격하려했다. 하지만 현원자가 어떤 사람인가? 어릴 적부터 우내십기의 일인인 태정진인에게 무당의 모든 무학을 베운 절대기제다. 현원자의 청명검이 춤을 추니 전후좌우로 검영(劍影)들이 날아간다. 단 일식의 초식으로 사방의 방위를 한번에 차단한 것이다.




“크아아악~~” 


“크악~” 




현원자를 공격하던 무사의 어깨위에 있던 머리가 굴러 떨어지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어떤 무사는 허리가 베어져 하체와 상체가 분리되고, 어떤 무사는 뼈가 베어지는 ‘서걱’소리와 함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일자로 가라지며 붉은 피를 뿌린다.




무당오검은 오행검진으로 펼치며 마련무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오행검진(五行劍陣)은 화산의 진산절예로 다섯 사람이 마치 한사람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적을 상대하는 검진으로 소림의 백팔나한진에 필적하는 검진이었다. 천마마련의 정예병이라는 금마마령대도 현원자와 오행검진의 상대는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에 반해 악무룡과 모용천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모용천악은 속으로 이런 무모한 일에 끼어든 자식을 탓하고 있었다. 그냥 집구석에서 계집질이나 하는 건데 괜한 공명심에 나섰다가 잘못하면 이곳에서 뼈를 묻게 생겼다. 




“죽어 새끼야.......더러운 마련새끼~!”




모용천악은 현원자에게 청명검에 팔이 날아가 무사의 목을 치며 욕을 하고 있었다. 




“모두 멈춰.......본련의 무사들은 모두 물려나라.”




장내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사자후가 울러 퍼지며 금검비검이 나타났다. 마련의 무사들은 부련주인 금검비검이 나타나 명령하자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려났다. 금검비검은 장내를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장내에 마련 무사들의 시체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현원자.......이게 무슨 짓인가? 마음대로 들어와서 난동을 부려도 될 만큼 우리 마련이 우습게 보이는가?”




금검비검은 오전에 보았던 현원자를 기억하고 있다. 현원자는 청명검을 거두지 않고 금검비검을 노려본다.




“당신에게 볼일이 없어요. 가서 마수마랑을 잡아 오던가 마련주를 나오라고 하세요.”


“련주님은 바쁜 분이네. 할말이 있으면 나에게 하게.”


“흥~ 좋아요. 마수마랑을 우리에게 넘기세요. 그럼 군말 없이 물려가겠습니다.”


“마수마랑은 본련에 없다고 해잖소. 없는 사람을 어떻게 내 놓으라는 말이요. 그리고 설사 그를 본련이 보호하고 있다고 해도 그건 무당파가 상관할 일이 아니잖소.”


“마수마랑은 무림공적입니다. 무림공적을 보호하는 것 또한 죄가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무림맹이 무림공적이라고 하면 무림공적이 되는 거요. 백도무림에서나 통할 법을 본련까지 강요할 생각은 마시오.”


“흥~ 말하는 걸 들어보니 향간의 소문이 맞는 모양이군요.”


“무슨 소문을 말하는 거요.”


“사호팔랑의 배후에 천마마련이 있다는 것은 무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한심한 친구들이군..........아무리 진실을 말해주어도 믿으려하지 않으니..........당신들 마음대로 생각해요.”


“순순히 인정하는 겁니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군. 귀가 먹고, 눈이 멀었어. 누구와 대화를 하려면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 하는 건데...........”




그때 장내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장로와 호법들이 도착한 것이다. 




“부련주님.........본련에 침입한 악도(惡徒)들과 무슨 대화를 하십니까? 저런 놈들은 모두 잡아들어 물고를 내야합니다.”




사람들 중에 무정공자 소행표도 있었던 모양이다. 소행표는 이번기회에 자신을 무공을 뽐내고 싶은 건지 부련주인 금검비검의 명령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검을 빼들고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금검비검은 눈살을 찌푸리고 장내를 돌려보다가 쓰게 웃고 말았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부련주님 무엇을 망설입니까? 어서 놈들을 잡아들이라고 명하세요.”




소행표가 금검비검에게 명령을 재촉했다. 금검비검의 솔직한 심정은 되도록이면 현원자일행과의 정면대결은 피하고 싶었다. 현원자는 무당파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무당파가 들고 일어날 것이다. 잘못하면 무당파와 천마마련간의 전면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현원자나 무당오검이 순순히 잡힐 사람들도 아니다. 나머지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명은 벽력세가의 대공자고 또 한명은 모용세가의 대공자다. 그들이 잘못된다면 양쪽세가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벽력세가의 악무석이 지금까지 벽력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의 품속에 다량(多量)의 벽련탄이 있을 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마련의 무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동료의 시체가 뒹굴고 있고 부상당한 동료들의 신음소리가 귀가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소행표는 부련주의 명령이 없자 현원자에게 전음을 보냈다.




‘백도 나부랭이 새끼야........덤벼. 왜~ 겁나냐.......덤비란 말이야. 새끼야.’




현원자는 소행표의 전음에 화가 치밀었다. 나이도 어린(?)자식이 앞에서 알짱거리며 심기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련주인 금검비검까지 나선이상 곱게 물려가기는 틀렸다. 그렇다면 못된 송아지처럼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어린놈부터 베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평소의 현원자라면 이정도 격장지계(激將之計)에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풍운에게 자존심의 상처를 입고 난 이후 현원자는 소심하고 날카롭게 변했다. 금검비검이 머리가 복잡해서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기합소리와 함께 검이 번쩍거린다. 현원자가 소행표를 공격한 것이다.




현원자의 청명검이 둥근 원을 그리니 검영(劍影)들이 돌개바람처럼 피어나 소행표의 전신사혈을 향해 날아간다. 소행표는 현원자가 만들어낸 빛의 소용돌이로 파고들며 현원자의 자궁혈을 향해 검을 날렸다. 소행표의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쾌검에 현원자가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뒤로 물려나는 사이 소행표의 검은 현원자의 영태혈(가슴)을 노리고 뱀의 혓바닥처럼 파고들었다. 현원자는 상대가 쾌검에 능한 검수라는 걸 알아차리고 이번에는 빠른 보법(步法)으로 소행표의 검을 피하는 동시에 태극혜검의 절초로 소행표의 전신을 공격했다. 소행표는 마치 꽃잎처럼 살랑거리며 날아오는 청명검의 검영(劍影)들을 보고 빠르게 뒤로 물려났지만 청명검의 검영(劍影)들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소행표의 뒤를 따라온다. 소행표가 자신의 실력도 모르고 현원자에게 덤볐다가 위험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소행표는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마련의 무사들과 가까워져 더 이상 물려날 공간이 없자 입술을 깨물고 검영(劍影)들 사이를 파고들며 암혹마검(闇惑魔劍)을 펼쳤다. 암흑마검은 마련의 검법 중 지옥십팔검 다음으로 위력적인 검법이다. 하지만 상대는 무당의 현원자였다. 무당은 예로부터 검법으로 일가를 이룬 문파이며 현원자는 무당의 모든 검법에 통달한 사람이다.




“쾅아아아앙~” 


“크윽~~~” 




검과 검이 충동하며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짧은 신음소리가 들린다. 소행표는 현원자의 청명검에 소행표의 옆구리가 베어지며 비틀거리고 있었고 현원자는 상대의 숨통을 끓어버린 심산인지 공격을 멈추지 않고 소행표의 목을 향해 청명검을 내리친다. 소행표는 어깨의 통증을 참으며 현원자의 공격을 받아쳤다. 현원자와 소행표의 대결을 지켜보던 금검비검이 앞으로 달려간다. 소행표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당오검도 가만있지 않았다. 




“비켜라.” 


“흥~ 어딜 끼어들어........물러가라.”




다섯 자루 검이 풍차처럼 돌아가며 금검비검을 공격한다. 금검비검도 발검(拔劍)과 동시에 무당오검을 공격해 보지만 오행검진을 펼치고 있는 무당오검을 뚫기란 만만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급해졌다. 그들도 소행표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두 한번에 공격해...........공격”




누구의 명령인지 모른다. 현원자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무사들은 반사적으로 현원자일행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늘과 땅에서 검이 번쩍이고 피가 튄다. 악무룡은 입술을 깨물고 품속에서 벽력탄을 깨냈다. 상황이 다급해지면 언제라도 터트리기 위해서다. 현원자는 소행표를 무섭게 몰아붙인다. 청명검이 소행표의 상곡혈(아랫배)를 향해 날아오니 소행표는 눈앞에 캄캄해졌다. 도저히 막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하늘에서 하얀 검영(劍影)들이 폭우가 솟아지듯 떨어진다. 현원자는 깜짝 놀라 소행표를 공격하던 검을 멈추고 몸 주변에 검막(劍幕)을 쳤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검영(劍影)들의 공격이 너무나 신랄했기 때문이다.




“깡.........깡........까가가가강~” 




청명검에서 불꽃이 일어나며 현원자가 몇 발자국 뒤로 물려나니 현원자와 소행표의 사이로 하벽으로 역용한 풍운이 떨어졌다. 하벽의 처소에서 출발한 풍운이 이제야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멈춰~” 




풍운은 아랫배에 아수라참마심공의 마기(魔氣)를 몰아넣으며 마황후(魔皇吼)을 터트렸다. 마황후는 소림의 사자후와 비슷한 마련의 무공이었다. 사람들 중 일부가 귀를 막고 비틀거리고 멀리 떨어져 있던 마령탑이 마황후에 의해 부르르 떨린다. 현원자의 이마에 핏발이 선다.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놈이 자신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죽어라.” 




현원자가 풍운의 가슴을 향해 태극혜검(太極慧劍)를 펼치니 청명검에서 차가운 살기를 머금은 검영(劍影)들이 피어나며 풍운을 공격한다. 풍운도 건위혈검(乾威血檢)으로 지옥십팔검을 펼치니 아수라의 호곡성 같은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하얀 검영들이 현원자의 청명검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검과 검이 출동하며 엄청난 강기의 회오리가 몰아친다. 풍운은 칠성둔형으로 강기의 회오리를 피하며 현원자의 거골혈(어깨)를 공격했다. 현원자도 물러나지 않고 청명검으로 풍운의 심장을 공격했다. 풍운은 상대를 물려나게 할 생각으로 일부러 사혈을 피해 공격하는데 현원자는 악독하게도 풍운의 심장을 베어오는 것이다. 풍운은 건위혈검에 마기(魔氣)을 주입하는 것과 동시에 지옥혈검의 제9초인 수라나상(修羅羅像)를 펼치니 건위혈검에서 피어난 검영(劍影)들이 마치 아수라의 형상처럼 변해 현원자를 베어갔다. 현원자도 아수라형상을 보자마자 청명검에 태청강기(도가비전 기공의 한 가지)를 몰아넣어 아수라형상을 베어갔다. 태청강기는 도가 비전으로 마기(魔氣)와 상극(相剋)이었기 때문이다. 




“쾅아아아앙~” 


“음~~~” 


“윽~”




검과 검이 충돌하며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짧은 신음소리가 났다. 현원자은 청명검을 늘어트리고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풍운을 노려보고 있었고, 풍운은 병자 같은 하얀 얼굴로 담담하게 서 있었다.




“하벽야. 왜 나왔어.”




엄청난 강기의 충돌에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있었다. 금검비검은 풍운과 현원자의 동작이 멈추자 이제야 풍운을 보았는데 풍운을 하벽으로 착각하고 하벽의 이름을 부른다. 




‘장인어른 풍운입니다. 제가 처남으로 역용하고 왔어요.’




풍운이 금검비검에게 전음을 보내자 금검비검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풍운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부모인 자신조차도 진위여부를 모를 정도로 풍운의 역용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한쪽에 있던 소행표도 풍운과 현원자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원자와의 대결에서 단 한순간도 우세도 점하지 못했던 자신에 비해 하벽은 너무나 쉽게 현원자를 상대하고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6년 전만 해도 하벽과 자신의 실력차는 크지 않았다. 아니다. 하벽보다 자신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거 어떻게 일이지 모르겠다.




“빠드득~ 너는 누구지.”




현원자는 이를 갈며 풍운을 노려보았다.




“초하벽이라고 합니다.”


“네놈이 천마공자 초하벽이란 말이냐?”


“듣기 거북하군요. 여긴 무당파가 아니라 천마마련입니다. 예의를 지키세요.”


“이건 말이 안돼. 말이 안 된다고.......어떻게 말이 돼........어떻게 내가 밀려........태청강기는 마공(魔功)의 상극이란 말이야. 왜 내가 밀리는 거야.”




현원자의 귀에 풍운의 말이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현원자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태청강기는 마공의 상극이다. 상대가 펼친 검법에는 진한 마기를 품고 있었고 더욱이 아수라의 형상까지 보였다. 마기를 기본으로 하는 마공이란 말이다. 마(魔)는 정(正)을 이길 수 없다. 태정강기는 마기의 상극이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자신이 형편없이 밀린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천마마련의 련주나 부련주도 아닌 천마공자 초하벽이란 애송이다.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이 누군가? 무당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이다. 백도 무림의 기둥이다. 무당의 모든 무학을 완벽하게 익힌 사람이다. 그런데............그런데 자신이 밀린다. 얼마 전에도 마수마랑이라는 괴물 같은 놈에게 패했다. 현원자는 고개를 흔들고 다시 풍운을 노려보는데 그의 눈에서 살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뭐가 잘못된 거야...........믿을 수 없어. 다시 확인해 보겠다.”




현원자는 미친놈처럼 혼자서 중얼거리며 태정강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려 청명검에 불어넣었다. 태청강기가 주입된 청명검이 길게 늘어나며 차가운 살기를 뿌린다.




“헉~ 거........검강(劍剛)이다.”




풍운의 옆에 있던 소행표라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을 친다. 상대가 검강(劍剛)까지 펼칠 수 있는 고수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다. 풍운도 현원자의 자세와 청명검을 보았다. 현원자는 마지막 힘까지 짜내어 최후의 일초를 준비하고 있다. 단 한번으로 결판을 내려는 것이다. 현원자의 몸이 하얀 빛의 덩어리로 변하고 있다. 풍운도 건위혈검을 가슴 높이로 들어올린다.




“모두 물려나세요.”




풍운의 입에서 낮게 깔리는 목소리가 흘려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풍운의 목소리가 모든 사람들의 귀에 명확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마련무사들은 금검비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다.




“모두 물려나라.”




금검비검은 풍운을 믿는다. 풍운은 이미 지옥십팔검과 아수라참마심공을 극성까지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금검비검의 명령에 현원자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마련의 무사들이 빠르게 물려났다. 무당오검도 뒤로 물려난다. 잘못하여 검의 폭풍우에 휩쓸리게 되면 자신들도 무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용천악과 악무석도 무당오검과 함께 물려난다. 그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풍운이 사람들이 물려나자 아수라참마신공을 극성까지 끌어올리니 풍운의 주위에 거대한 아수라의 형상이 만들어진다. 소행표는 풍운의 모습을 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풍운의 주위에 아수라의 형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아수라참마심공이 9성 이상에 이르렸다는 것을 알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놀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수라 형상이 점점 변하기 시작하며 위엄이 가득한 장군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저건...........하벽공자가 아수라참마심공을 극성까지 익혔단 말인가?”




사람들 중에서 냉혈혈화(冷血血花)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건 냉혈혈화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수라참마심공은 오직 마마검제만이 극성으로 익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하벽공자가 아수라참마심공을 극성까지 펼치고 있는 것이다.




풍운이 아수라참마심공의 마기(魔氣)를 건위혈검에 불어넣으니 처음에는 하얀색으로 빛나던 검이 점점 색깔이 붉게 변하더니 나중에는 붉은 혈검(血檢)으로 변하며 길게 늘어났다. 태청강기를 극성까지 끌어올린 현원자는 상대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태극혜검의 최후절초를 펼쳐냈다. 하얀 빛의 덩어리에서 누에가 실을 뿜어내듯 수백가닥의 하얀 검기(劍氣)들이 피어나며 허공을 향해 부챗살처럼 펴져나가더니 풍운을 향해 날아온다. 아름답다. 다른 말로 표현할 말이 없다. 풍운의 손에 있던 견의혈검이 부르르 떨린다.




“지옥십팔검..........역천역지(逆天逆址)” 




붉은 검의 폭풍이다. 지옥십팔검의 마지막 초식인 역천역지는 붕검과 분검이 융합하여 붉은 검풍(劍風)을 만들어내며 현원자가 만들어낸 하얀 검기를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천지가 진동하는 엄청난 광음과 함께 주위에 있던 돌들이 충격이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셔져 사방으로 날아오른다. 소행표는 멍청한 표정으로 장내를 주시하고 있었다. 과연 저것이 인간들의 무학이란 말인가? 저게 하벽이 펼친 무공이란 말인가? 작은 돌멩이 하나가 소행표의 이마를 행해 날아왔다. 소행표는 피하지 못한다.




“퍽~~~” 




소행표의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 하지만 소행표는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금검비검은 손에 땀을 쥐고 장내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풍운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장내에 피어난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풍운과 현원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현원자는 무릎을 꿇고 앉아 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고 풍운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처음 자세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우와~~~..........와~~~”




주위가 떠나갈 정도의 함성이 터진다. 풍운의 승리를 확인한 마련의 무사들이 함성이 지른 것이다. 




“이...........이건 말도 안돼........내.........내가 또 다시............푹~~”




현원자는 끝내 말을 잊지 못하고 바닥에 머리를 박는다. 내상이 심해 혼절해버린 것이다.




“사.........사숙.........사숙님.”




무당오검이 현원자에게 달려갔다. 물론 무당오검과 함께 있던 악무석과 모용천악도 현원자에게 달려갔다.




“싸움은 끝났다. 모두 포박을 받아라.”




금검비검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앞으로 나서며 무당오검에게 말했다. 무당오검은 현원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눈에 결연한 빛이 가득하다. 무당파의 제자로써 수치스럽게 목숨을 구결하기보다는 끝까지 싸우다가 죽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악무석은 생각이 틀린 모양이다. 




“모두 물려나세요. 이게 뭔지 아실 겁니다.”




무석은 손에 들린 벽력탄을 마련 무사들에게 보여주었다. 




“벼..........벽력탄이다.......모두 물려나라.”




금검비검은 무석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마련의 무사들도 벽력탄이 어떤 물건이지 너무나 잘 알기에 감히 현원자일행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제가 현원자님을 부축하겠습니다. 무당오검님들은 우릴 보호해 주세요.”




무당오검은 악무석의 말뜻을 재빨리 이해했다. 악무석이 현원자를 부축하면 자신들이 오행검진을 펼쳐 보호해 달라는 말이다. 무당오검은 다시 눈빛을 주고받았다. 악무석의 계획대로 된다면 천마마련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벽력탄은 천악님이 가지고 계세요. 사용법은 간단합니다. 그냥 던지면 터져요.”




무석은 벽련탄을 모용천악에게 전해주고 현원자를 부축했다. 무당오검은 모용천악과 악무석을 중심으로 오행검진을 펼치며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련의 무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길을 내주지 않는다. 금검비검은 쓰게 웃는다.




“보내줘라.”


“저들을 그냥 보내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벽력탄이 어떤 물건인지 아시잖소. 저게 터지면 우리도 엄청난 손실을 입어요.”


“하지만 다 잡은 물고기를 놓아준다는 것이.........왠지.........”


“다음에 기회가 있겠죠.”




금검비검에게 따지듯 물었던 장로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금검비검의 명령을 받은 마련의 무사들은 현원자일행의 퇴로를 열어주었다. 현원자일행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풍운과 마련무사들은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천마마련의 정문이 가까워졌다. 정문을 지키던 무사들은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정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무당오검이 막 정문을 통과한 순간 모용천악이 들고 있던 벽력탄을 마련무사들을 향해 힘껏 던졌다. 끝까지 치졸한 모용천악이다.




“죽어라.........새끼들아.”


“벽력탄이다.........모두 엎드려.”




마련무사들은 벽력탄이 날아오자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모두 바닥에 엎드렸다. 풍운과 금검비검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날아오는 벽력탄을 잡기 위해서다. 둘이 동시에 출발했지만 역시 풍운이 더 빠르다. 풍운이 허공섭물로 날아오는 벽력탄을 끌어당기니 벽력탄이 안전하게 풍운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저놈들을 잡아라.”




벽력탄을 풍운이 처리한 것을 확인한 금검비검이 화가 치밀어 마련무사들에게 명령했다. 마련무사들은 바닥에서 일어나 현원자일행을 쫒으려 했다. 그런데 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현원자와 모용천악, 악무석를 안고 바람처럼 달려갔고, 무당오검도 그들의 뒤를 따라 도망쳐 버린다. 마련무사들은 현원자 일행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풍운은 조금 전에 나타난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있다. 바로 화산의 화원명과 무뇌쌍괴가 현원자일행을 데려간 것이다.




<<계속>>




------------------ 작가 주 ---------------------------------




격장지계(激將之計) : 상대 장수의 감정을 결정적으로 자극시켜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계책, 흔히 성격이 급한 적장을 상대로 사용한다.




적벽대전 직전에 제갈량이 강동으로 손권을 방문하여 조조에게 항복하라고 권하니까 손권이, "왜 유비는 항복하지 않느냐고." 하니, "우리 유예주는 백성들에게 추앙받는 사람인데 어찌 항복을 하겠느냐" 고 손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것이 대표적인 격장지계의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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