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98부 > 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98(마도(魔道)의 길)-3

마수일행이 태산에 도착한지도 한달이 넘어갔다. 처음에는 일행모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한달이 넘어가며 각자의 생활에 적응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모두들 잠마동에 들어간 이후 이렇게 편안한 한때를 보내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잠마동에서는 생사의 기로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벌어야했던 처절한 사투가 있었고, 잠마동을 출관한 이후에는 마령단의 족쇄에 묶어 잠마동주의 명령에 따라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험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대로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는 지극한 평범한 삶이지만 운명의 수레바퀴에 치여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지금의 삶이 너무나 행복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한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마령단의 발작증상이다. 며칠 전에도 단체로 마령단이 발작하여 위험한 지경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나마 다독마의가 지어준 약을 복용하고 불굴의 의지로 별 탈 없이 위험을 극복할 수는 있었지만 마령단의 발작증상은 마수일행은 두고두고 괴롭히는 족쇄가 되고 있었다. 

한풍(寒風)과 열풍(熱風)이 몰아치는 동굴에 도치일행이 화령마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도치와 이막수는 동굴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있었고, 도치와 이막수의 뒤쪽에는 금막비와 사우가 자리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마수, 유미림, 곽지향 등이 자리했다. 시간이 가면서 화령마공의 화후에 따라 수련하는 위치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운기조식을 하는 도치와 이막수는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금막비와 사우는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다. 도치는 신법(身法)이나 경공은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만 내공에 있어서만큼은 절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내공수련이 무던하고 참을성 많은 도치의 적성에 맡기 때문이다. 물론 이막수 같은 천재도 있다. 그는 이가살수문의 무공뿐만 아니라 화령마검과 절정마검까지 완벽하게 익히는 천재성을 보여준다. 내공수련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막수는 내공에 있어서도 도치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막비와 사우의 화후가 늦는 것은 그들이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내공보다는 각자가 익히고 있는 무공을 연마하는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풍이 끝나고 다시 한풍(寒風)이 불어온다. 한백마공을 익히지 않은 이막수와 곽지향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도치는 한풍이 물어오자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갔다. 화령마공보다 한백마공의 화후가 더 깊기 때문도 있지만 열풍보다는 한풍이 견디기 쉽기 때문이다. 도치가 휘어진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자 동굴이 둘로 갈린다. 지금까지는 이곳까지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굴이 둘로 갈라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풍은 오른쪽에 있는 동굴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다시 말해 두개의 동굴에서 시차를 두고 한풍과 열풍이 교차했던 것이다. 

“야~ 마수야.........내말 들려.

“말씀하세요. 잘 들립니다.

“이곳에 동굴이 둘로 갈라졌다. 오른쪽 동굴에서는 한풍이 불어오고........나머지 한쪽 동굴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아.”

“그래요. 잠시만 기다려요. 제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도치는 한풍을 뚫고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화령마공으로 몸을 보호해도 이빨이 덜덜 떨릴 정도의 추위라 더 이상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그때 마수의 뒤에 있던 사우와 금막비가 마수의 양팔을 잡아준다. 마수는 양쪽 맥문을 통해 들어오는 열기에 힘을 얻어 휘어진 동굴을 지나치니 멀리 도치의 모습이 보인다. 도치는 한풍이 불어오는 동굴을 피해 반대편 동굴에 있었다. 마수일행도 한풍을 뚫고 도치 앞에 도착했다.

“어서 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유미림님과 악무룡님은 수련하는데 정신없어요.”

“그래............관심 없는 모양이군.”

도치와 금막비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마수는 동굴주위를 살펴보았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동굴의 표면은 좀 전까지 열풍이 몰아쳤기 때문에 손으로 만지기 무서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다. 곧이어 불어온 한풍에 식어서 망정이지 열기가 고수라니 남아있었다면 손으로 만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수는 한백마공을 끌어올리며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모두 따라오세요. 우리 안쪽으로 가봐요.”

마수를 선두로 해서 도치일행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간다. 동굴은 밑으로 한없이 이어져 있었다. 마수는 시간을 계산했다. 열풍이 멈추고 한 시진(2시간)정도는 한풍이 분다. 다시 말해 한 시진 이내에 동굴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시간을 잘못 계산하면 동굴에서 통구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수가 화섭자에 불을 붙인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살이 익을 것 같은 같은 열기가 전해진다. 마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휴~ 점점 뜨거워지고 있어요. 이제는 한백마공을 끌어올려도 견디기 힘들겠는데요.”

“뒤로 빠져. 내가 선두로 갈게.”

마수의 말에 도치가 화섭자를 받아들고 선두로 나선다. 도치는 한백마공을 끌어올려 열기를 차다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일행이 어느 정도 들어가니 다시 동굴이 두개로 갈린다. 한쪽에서는 엄청난 열기가 전해지고 한쪽에는 한기(寒氣)가 전해진다. 도치는 일단 한기가 전해지는 동굴로 들어갔다. 이젠 도치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행이 한기가 전해지는 동굴로 들어가 보니 동굴이 넓어지며 광장이 나타났다.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었네.........어라..........저기 봐~ 이런 곳에 연못이 있어.”

도치는 광장 중앙에 있는 연못으로 갔다. 연못의 물은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바닥이 환하게 보일정도로 투명하고 물속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물고기들이 헤어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목마르지 않아. 나는 물 좀 마셔야겠다.”

도치는 연못의 물을 마시기 위해 연못으로 손을 가져갔다.

“윽~ 차가워~.”

도치는 재빨리 연못에서 손을 빼낸다. 손에 물이 닫자마자 전신이 떨릴 정도로 한기 엄습했기 때문이다. 

“마수야. 무슨 물이 이렇게 차갑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마수는 주변을 돌아보다가 마땅한 물건이 없자 자신의 옷가지를 조금 찢어서 물속에 담겨본다. 

“윽~ 차가워~”

“쨍그랑~”

마수가 잡고 있던 옷가지를 놓아버리니 옷가지가 연못을 빠져나오며 바닥에 떨어져 유리조각처럼 깨져버린다. 옷가지 물속에 들어가자 순간적으로 어름덩어리로 변해버린 것이다.

“뭐가 이래.......어떻게 된 거야.”

마수는 옷가지를 잡았던 손을 비비며 한기를 식히고 연못과 주변을 살펴본다.

“저기........제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연못의 물은 천빙수(天氷水)라는 물입니다. 그리고 저기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은 오직 천빙수에서만 산다는 천빙어(天氷魚)라는 물고기들입니다. 예전에 고서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확실합니다.”

“천빙어..........그런 물고기도 있어.”

“저도 전설에나 등장하는 물고기로 알았는데 이렇게 현실에 존재할 줄은 몰랐어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죠. 제가 읽은 고서에 의하며 천빙수는 세상에 존재하는 물중에서 가장 차가운 물로 오직 화산지형에만 존재한다고 해요. 왜냐하면 보통 물은 어느 정도 기온이 내려가면 열어야 정상인데 천빙수는 뜨거운 지기(地氣)에 의해 얼지 않고 물로 존재하는 거죠. 또한 천빙수에는 오백년이라는 수명을 가진 천빙어라는 물고기가 사는데 일반인들이 먹으면 어름덩어리로 변해 죽음을 면치 못하지만 빙공을 수련하는 무림인들이 먹으면 한순간에 일갑자의 내공이 생긴다는 전설이 있어요.”

“그럼 저놈이 들이 보물이라는 말이잖아........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우리 이럴게 아니라 한 마리씩 잡아먹자.”

도치은 당장이라도 연못에 헤어치고 있는 천빙어를 잡아먹을 기세다. 

“그냥 먹으면 죽어요.”

“뭐야. 방금 빙공을 수련하는 무림인이 먹으면 일갑자의 내공이 생긴다고 했잖아.”

“제 말을 끝까지 듣고 말씀하세요. 고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천빙어가 사는 곳에는 반드시 멀지 않은 곳에 화열어(火熱魚)라는 물고기가 사는데 천빙어는 화열어와 함께 먹어야 한다고 했어요. 화열어는 천빙수와는 반대로 천화수(天火水)라는 물에 사는 물고기 입니다.”

“천화수?...........뭐가 그렇게 복잡해........대충 먹으면 안돼는 거냐?”

도치의 말을 무시하고 이번에는 금막비가 마수에게 질문했다.

“이상하네..........천빙어가 빙공을 익힌 무림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화열어는 화공을 익힌 무림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거 아니야. 세상에 빙공과 화공을 동시에 익힌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금막비의 말에 마수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금막비님의 말씀이 맞아요. 천빙어나 화열어는 일반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림인들에게도 그림의 떡이죠. 고서에서 전하기를 천빙어와 화열어를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음양인 밖에 없다고 했어요. 음양인은 선천적으로 음공과 양공을 동시에 익힐 수 있잖아요.”

“그럼 우리들에게도 그림의 떡이란 말이잖아.”

“아닙니다. 그림의 떡이 아니라 양손의 떡이죠. 곽지향님과 이막수님을 제외하고 우리 모두는 화령마공과 한백마공을 동시에 익히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먹을 수 있다는 거야.”

“가능합니다. 다만 문제는 한빙어와 화열어를 동시에 먹어야하는데........지금 이곳에는 화열어가 없다는 겁니다.”

“잡아가면 되잖아. 어딘가에 화열어가 있겠지.”

도치의 단순무식한 말에 마수는 피식 웃어버린다.

“도치님 제가 말씀드렸죠. 한빙어는 오직 한빙수에서만 살수 있어요. 반대로 화열어는 천화수에서만 살수 있습니다. 다시 말에 잡자마자 먹어야지 잡아놓고 잠시라도 시간이 지나면 바로 죽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천빙수까지 담아가면 되잖아.”

“바보야............천빙수는 오직 화산지대에서만 존재하다고 했잖아. 여기서 나가면 바로 얼음덩어리가 된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해죠. 조금 전에 받지.........옷이 한순간에 어름덩어리로 변했어. 세상에 천빙수를 담을 용기도 없을뿐더러.......담는다고 해도 여기서 나가자마자 어름덩어리로 변할 거야. 이제 알아들어.”

곁에 있던 금막비가 마수대신 대답한다. 도치는 머리가 복잡한지 머리를 박박 긁는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그래서 먹을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일단 화열어를 찾아봐요. 화열어를 찾아야 무슨 방법이 나오죠. 잠깐.........그전에 우리 빨리 나가합니다. 시간을 보니 이제 곧 열풍이 불어 닫친 시간입니다.”

마수는 나머지 일행을 이끌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화열어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하면 통구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굴을 빠져나온 도치일행은 오두막에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빙어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제 생각에 화열어는 한풍이 불어오는 동굴에 있을 겁니다. 천화수는 천빙수와 반대로 냉기가 흐르는 지형에만 존재하는 물이거든요.

“음~ 이곳에 그런 보물들이 있을 줄은 몰랐군. 그럼 내일을 한풍이 부는 동굴로 가면 되겠네.”

“예~ 그럼 되겠죠.........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어요. 한풍과 열풍은 향상 교차한다는 겁니다. 한풍이 멈추면 열풍이 불어오고..........열풍이 멈추면 한풍이 불어오는 식이죠. 쉽게 말해서 지금의 우리 실력으로는 동시에 양쪽 동굴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한풍이나 열풍을 뚫고 그곳까지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마수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수궁하는 분위기다. 그때 한쪽에 있던 곽지향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마디 한다.

“저기요. 여러분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는 한품이나 열풍이 불지 않았어요. 마수님 기억 안나요?”

“아~ 그래요. 그날은 한풍도 열풍도 불지 않았어요. 그때가 언제들아........우리가 처음 들어온 날이 며칠이죠.”

“이월 보름으로 기억하고 있어. 그날 우리가 나무를 베고 있을 때 하늘을 보름달이 보였거든.”

“그래.........나도 기억난다. 내가 악무룡에게 술 없냐고 했던 날이야.”

“그럼 한달에 한번씩은 한풍과 열풍이 멈춘다는 말인데...........오늘이 며칠이죠.”

“삼월 열사흘정도 되지 않았을 가요. 제 기억에는 그래요.”

“음~ 제가 계산한 날자와 일치하는 군요. 그럼 이틀 후에 바람이 멈춘다는 말이 됩니다.”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나나 곽지향님은 한백마공을 익히지 않았으니 소용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잖아. 이틀 후에 모두 동굴로 가보는 거야. 다들 불만없지.”

이막수의 말에 다들 찬성하는 분위기다.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나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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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다. 곽지향은 혼자지내는 오두막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외롭다는 생각을 든다. 같이 있는 동료들 중에서 유일한 여자인 유미림은 이막수와 부부지연을 맺고 있어 이막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그래도 도치와 많은 시간을 보내서 다른 사람들 보다는 살갑게 대하고 싶은데 도치라는 놈은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고 무공을 익히는데 정신이 없다. 봄이 되자 18살꽃다운 나이인 곽지향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요즘 들어서 유미림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부럽게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여자로써 매력이 없는 것일까? 자신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유미림은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악무룡이 걸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멀리서 보니까? 곽지향님이 안주무시는 것 같아서 말동무나 해드리려고 왔어요.”

“조금 있으면 들어갈 겁니다. 하여튼 고마워요.”

“고맙기는요? 저도 심심했던 참입니다. 참~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네요. 지향님이 주신약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곽지향은 자신을 먹으려 제조한 약을 악무룡에게 주고 있었다. 악무룡은 다른 사람에 비해 내공이 뒤쳐지기 때문에 지향이 지어준 약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도움이 되었다는 다행이네요. 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사실 약이라면 치가 떨려요. 마령단과 다독마의가 만든 독약까지 배터지게 먹고 있잖아요. 거기에 이제는 지향님이 지어준 약까지 먹고 있으니.........제가 약복이 터진 모양입니다. 그래도 지향님이 지어주신 약이 제일 달콤해요.”

“호호호~ 저도 마령단이나 다독마의님의 약이라면 치가 떨려요. 맛도 없죠, 먹으면 고통스럽죠. 배부른 것도 아니고.......하여튼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아요.”

무룡을 말을 하면서 슬며시 곽지향의 겉으로 다가와 그녀가 기대고 있는 벽에 나란히 기대었다. 지향은 무룡을 힐긋 보다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향님.........요즘 들어서 얼굴이 어두워요. 무슨 고민 있어요.”

“고민은 없어요. 단지 가끔 외롭다는 생각을 해요. 친구가 없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친구요. 도치도 있고, 저도 있고, 마수도 있고..........우리 모두 친구 아닙니까?”

“제가 원하는 친구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말하는 겁니다. 유일한 여자인 미림님은 향상 막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다른 분들은 모두 남자라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긴 힘들어요. 왜 있잖아요. 동성끼리 할말이 있고, 이성끼리 할말이 있잖아요.”

“지향님 혹시........연인을 원하시는 거 아닙니까? 연인끼리는 동성끼리 못할 말도 모두 할 수 있잖아요.”

“글쎄요. 누가 저 같은 여자를 좋아하기나 하겠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향님이 얼마나 아름다운데........지향님 같은 분의 사랑을 받는 그놈이 행운아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가 정말 예뻐요.”

“참~ 속고만 살았어요. 제 눈을 보세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어요. 제가 거짓말을 한다면 당장 번개 맞아 죽을 겁니다.”

지향은 고개를 돌려 무룡의 눈을 주시했다. 무룡의 눈은 별빛처럼 반짝인다. 무룡은 아픈 기억을 간직한 남자다. 그는 진심으로 수혜를 사랑했다. 수혜의 사랑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만 수혜를 향한 마음만은 순순했던 것이다. 수혜를 강간(?)한 것도 일종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찍는 놈이 임자라고 나중에 무슨 욕을 먹더라도 수혜의 사랑만 얻을 수 있다면 모든 걸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혜는 자신을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발가락에 낀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수혜에는 오직 아군(풍운)만을 사랑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군(풍운)과 수혜의 사랑싸움에 자신이 끼어들어 상처만 받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아픔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황패해진 대지에 꽃을 피우기는 힘든 법이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마음 아파하지 않으리라. 악무룡은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모르는 법이다. 아무리 사랑의 아픔 때문에 얼어붙었던 마음이라도 따뜻한 봄빛이 들면 스스로 녹아내리는 법이다. 한번 열렸던 마음은 다시 열리기 쉽다는 말이다. 곽지향............수혜와는 향기가 다른 여인이다. 수혜가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장미라면 지향은 동백꽃 같은 향기를 지닌 여인이다. 겸손하고 아름다우며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는 남자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여인이다. 지향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처음 보았을 때 무룡은 경박한 사람이었다. 말도 함부로 하고 성질도 난폭했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도 없으면서 알량한 벽력탄을 믿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더욱이 그는 아군(풍운)을 사랑하는 수혜를 사랑하는 눈치였다. 영장평원의 혈투가 벌어지기 마지막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날 이후 무룡은 처음 보았던 모습과는 달리 고민과 변민의 나날을 보냈다. 처음에는 영창평원의 혈투가 벌어진 첫날부터 부상을 당해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향상 자심감이 넘치던 무룡이 막상 전투가 시작되고 아무런 활약도 보여주지 못했으니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룡의 변민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수혜의 겉을 맴돌면서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혼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수혜와 아군(풍운)은 영창평원의 혈투가 진행되면서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서로를 깊게 이해하며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 그것이 무룡의 빈민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룡은 수혜를 사랑하는데 수혜가 방황을 끝내고 아군(풍운)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지향은 다독마의의 오두막에서 북해빙궁으로 떠나는 수혜를 바라보던 무룡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당시 무룡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 후에 무룡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혜일행이 빙궁으로 떠나고 자신들은 아군(풍운)과 헤어져 이곳 태산으로 들어온 후에 무룡은 묵묵히 무공을 연마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풍과 열풍이 몰아치는 동굴에서도 자신이 지어준 약을 먹어가면서까지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무룡을 보면서 지향은 그가 경박하고 난폭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아군(풍운)과 이막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십이사 중에서 도치와 금막비는 여자 자체에 관심이 없는 눈치다.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사우, 배화교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마수 또한 자신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그나마 자신을 여자로 보고 배려해 주는 남자는 무룡이 유일하다. 잠깐 사이에 지향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 자신은 십이사들 외에 다른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줄 사람은 같은 상처를 가진 십이사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룡님...........”

“지향............”

무룡이 지향의 손을 잡았다. 지향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지만 무룡의 손을 거부하진 않았다. 무룡은 용기가 얻어 지향을 살며시 안아준다. 지향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무룡의 반짝이는 눈과 지향의 눈이 엉킨다. 지향은 살며시 눈을 감는다. 무룡은 지향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잠시 망설인다. 자신이 지향을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지향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혹시 수혜를 잊기 위해 지향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신이 지향에게 자꾸만 끌리고 있다는 것이다. 무룡의 고개를 숙여진다. 지향은 심장이 터질 지경이다. 숨이 막히고 몸속의 모든 세포들이 긴장해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무룡 뜨거운 입술이 느껴진다. 이것이 남녀간의 입맞춤인가? 다리에 힘이 빠지고 짜릿한 흥분이 느껴진다. 무룡의 혀가 지향의 입술을 핥다준다. 지향의 입술은 굳게 닫힌 성문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다. 무룡은 서두르지 않고 손으로 지향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다른 한손으로 지향의 허리를 받친다. 지향은 숨이 막힌다. 이젠 참을 수 없다. 지향의 입술이 벌어지니 부드러운 무룡의 혀가 입속으로 들어온다. 지향은 깜짝 놀라서 무룡의 가슴을 밀어버린다.

“하이..........하이..........하이.........죄.........죄송해요.”

무룡은 얼굴이 붉히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지향을 보았다. 지향은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이 처음이라 겁을 먹은 것이다. 무룡은 지향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무룡은 지향의 어깨에 팔을 올려 힘을 주니 지향이 힘없이 무룡의 품에 안겨온다.

“미안해요. 처음이라..........바보 같죠.”

지향이 무룡의 귀에 속삭인다. 

“지향의 지금모습........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지향이 고개를 들었다. 무룡의 입술이 다가온다. 지향이 다시 눈을 감고 무룡은 안아준다. 무룡은 지향의 어깨를 잡아 몸을 빼니 그녀가 떨어지며 무룡을 올려다본다. 무룡은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니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무룡의 입술이 반짝거리는 지향의 입술을 덮고, 두 사람의 입술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된다. 지향의 입술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무룡은 살짝 입맞춤을 하고 다시 입술을 때고, 지향를 바라본다. 지향는 눈을 감고 있는데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입술은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무룡은 다시 지향의 입술을 찾는다. 이번에는 무룡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빨아주며 혀를 내밀어 입술을 자극하니 지향를 안고 있는 팔에 그녀의 떨림이 느껴진다. 그녀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무룡의 혀가 계속해서 입술을 자극하자 그녀는 숨이 막힌 지 입술이 조금 벌어진다.

지향은 무룡의 입술이 다가오자 창피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무룡과 입맟줌를 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조금 전에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여전히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지향은 눈을 감고 기다리자 그의 뜨거운 입술이 느껴진다. 가슴이 뛰고, 심장이 떨린다.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덮어버리고 가만히 있다. 조금 있으면 그의 달콤한 혀가 입술을 두드릴 것이다. 한데 그의 입술은 약만 올리고 다시 멀어진다. 향기(?)만 남기고 떠나가는 무룡의 입술이 야속하다. 그는 입맞춤이란 것이 이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고민도 잠시..............다시 그의 입술이 다가와 촉촉한 입술을 덮는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강렬하게 입술을 빨아준다. 몸이 떨리며 숨을 쉴 수가 없다.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다. 그의 혀가 입술을 핥다준다. 지향은 숨이 막힌다. 몸속에서 알 수 없는 열기가 올라와 목이 마르다. 입술을 조금 벌려보았다. 거침없이 들어오는 달콤한 혀의 감촉이 느껴지며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무룡의 혀는 자기 집에 들어온 주인처럼 자신의 입안을 이러저러 휘젓고 다니다. 자신도 슬며시 혀를 내밀자 무룡의 혀가 반갑게 인사하며 혀를 희롱한다. 혀와 혀가 엉키니 정신이 없고, 몸이 나른해진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입안에 침이 가득하고 목이 말라 침을 삼켜 보았다. 달짝지근한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몸속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무룡은 지향의 혀를 희롱하다가 혀를 빼내자, 지향의 혀가 아쉬운 듯 자신의 혀를 따라온다. 무룡은 자신의 입안으로 지향의 혀를 인도했다. 지향의 혀는 무룡의 입술을 핥다 주더니 살며시 입안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린다. 무룡은 지향의 혀를 살짝 깨물어 주더니 이내 다시금 혀가 엉킨다. 지향의 혀는 뜨겁고 달콤했다. 그녀의 침이 전해지고 무룡도 입안에 침이 가득해 지자 침을 꿀꺽 삼킨다. 

지향는 답답했다. 장시간 숨을 멈추고 있어 머릿속이 멍해진다. 지향는 살며시 무룡의 가슴을 밀어본다. 조심스럽다. 무룡이 자신의 행동을 오해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무룡은 살며시 입술을 거둔다.

“하이.........하이........하이..........하이”

지향는 말도 못하고 거칠 숨을 몰아쉬고, 무룡은 지향를 안아준다. 지향는 어린아이처럼 무룡의 가슴에 파고든다. 무룡은 지향을 살며시 안아준다. 지향는 힘이 빠져 무룡의 어깨에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 무룡은 지향의 어깨를 잡아주니. 지향이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붉게 물든 얼굴이 보인다. 그녀의 입술은 서로의 침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지향 사랑해요.”

“저도 사랑합니다.”

“우리.........들어갈까요.”

무룡은 오두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향은 무룡의 눈빛을 보고 고개를 숙인다.

“그.........그건 좀..........무룡님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너무 빠른 것 같아서.........”

“알았어요. 그럼 여기서 이야기나 좀 해요.”

“그.........그럴까요.”

무룡과 지향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다. 밤이 깊어진다. 무룡과 지향은 밤하늘을 바라보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밤은 이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 작 가 주 ------------------------------

** 백척간두(百尺竿頭) : 백 자나 되는 장대 끝이라는 말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임을 말한다. 막다른 위험에 놓이게 됨을 뜻하는 말로 "백척간두에 서다"로 쓰이며 줄여서 "간두"라고도 한다. 또, 노력한 위에 한층 더 노력하는 상태 또는 마음가짐을 뜻하기도 한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 하여, 어떤 목적이나 경지(境地)에 도달하였어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노력함을 뜻하거나, 충분히 언사(言辭)를 다하였어도 더 나아가서 정묘(精妙)한 말을 추가함을 말한다. 1004년(경덕1) 송나라의 도원이 저술한 불교서적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쓰여 있으며,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극한상태에 올려놓고 정신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다.

** 동백꽃 : 자랑, 겸손, 아름다음, 매력의 꽃말을 가진 꽃.

ps : 도치일행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지네요. 다음 편에도 도치일행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