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제갈천 - 28부

본문

일단 혜선과 정아는 제갈승과 함께 유람선에서 기다리게 하고 시코쿠의 사가로 들어갔다.


많은 수의 인원은 아니니 적당히 분산해서 들어갔고 광현만이 내 옆에서 묵묵히 따르고 있었다.


이미 나의 모습은 일본의 야쿠자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들은 그저 잘생긴 남자라고만 생각할뿐이라 이렇게 당당히 걸어도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야쿠자라 해도 고위급만 알지 양아치 수준의 인원이 알 리가 없다.


사가의 작은 술집에서 간단한 요기와 반주를 하고 곧바로 여관으로 들어갔다.


들어온 첫날부터 사고를 칠 수는 없으니 말야.


광현은 내 옆방에 자리를 잡았고 나도 느긋하게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했다.


혜선과 정아가 따라오려는걸 억지로 말리느라 진땀을 흘려 피로가 일시에 몰리는것 같다.


두어시간이 지났을까?


밤 손님이 찾아온건지 복도엔 몇 명의 인원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나의 행적이 노출되진 않았을텐데...’


그 생각으로 몸을 돌렸을 때 바깥에선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나와 대각선 옆방. 그러니까 광현의 방 앞일까?


“놔. 놓란 말야.”


여자의 악쓰는 소리와 함께 사내들의 거친 소리가 들렸다.


“야이 썅년이 어디서 소리치고 지랄이야. 조용히 못해?”


‘그러는 네놈이 더 시끄럽다 이놈아.’


약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걸 보면 광현이 밖으로 나가려고 옷을 챙기나 보다.


이런 일에 말리기 싫어서 전음으로 움직이지 말라고 알렸다.


‘잠깐. 그냥 있어라. 괜히 끼어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광현의 움직임이 멈출걸 보니 내가 날린 전음이 효과가 있나보다.


앞으로 전음을 얘들에게 가르칠까 생각을 해 본다.


내공이 있으니 쉽게 배우겠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약 10분여를 악쓰던 여자는 지쳤는지 고분해 졌고 남자들도 서둘러 여관을 나가려는지 그녀를 들쳐 엎는 듯 했다.


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사태는 젠장.


여자는 메치기의 기술을 익혔는지 남자를 던졌고 그게 내방의 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왔다.


신경쓰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 썼지만 그녀는 내가 있는 침대로 달렸고 덕분에 난 그녀의 발에 깔리는 신세가 되었다.


“컥. 뭐야...”


“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젠장.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


광현은 내 소리를 들었는지 바로 뛰쳐나와 내 방으로 들어왔고 사내들은 광현의 출현에 주춤한지 뒤로 물러났다.


“그년을 내 준다면 조용히 물러가겠다.”


“이 자식들이 사과는 못할망정 어디서...”


광현은 사나운 기세를 뿜으며 그들을 둘러봤고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과 비슷한 실력자가 없자 약간 긴장을 푸는 듯 했다.


“아아. 이게 무슨 난리람. 당신들 누구요? 그리고 당신은 누구고?”


난 그들과 여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없었고 그녀는 나보단 광현이 믿음직 했는지 그에게로 몸을 날렸다.


“살려주세요. 저들이 절...흑...”


“이봐요. 떨어져요. 이것 참...”


광현은 그녀의 육탄공세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날 바라본다.


아마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 표정이다.


난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고 사내들은 그런 내게 황당함을 느꼈는지 아님 겁먹어서 돌아섰는지 판단을 못하고 있었다.


“이봐들. 이제 그만하고 가지.”


“그러니까 그년을 달라니까. 그년만 주면 조용히 사라진다고 하잖아.”


“일단 내게 몸을 의탁한 이상 그냥 줄 수는 없지.”


갑자기 여자는 물건으로 변했고 그런 물건은 광현의 말에 힘을 얻음과 동시에 사랑이란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5명이나 되는 사내들 앞에서 이리도 당당히 자신을 감싸고 있으니 그녀로선 당연하겠지.


순간 난 광현에게 질투를 느꼈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나가서 싸워.”


베고 있던 벼게를 광현에게 집어 던져 버렸다.


“예? 예... 죄송합니다. 나가지.”


광현이 내게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이자 사내들은 얼떨떨한지 웅성 거렸고 광현의 나가자란 말에 순순히 따라 나갔다.


설마 한놈에게 당하겠나란 생각이겠지.


이미 여관에 투숙중인 사람들은 모두 잠이 깨버린 상태고 나도 피로는 풀렸기에 창가에 서서 광현과 대치하고 있는 놈들을 보았다.


뭐 자세를 보나 뭘 봐도 광현이 압도적이지만 그래도 쌈 구경은 재밌다.


서로가 뭐라고 떠들기 시작했지만 난 기다리는게 싫어서 소리쳤다.


“야 이자식들아. 싸움을 주둥이로 하냐.”


그 말에 광현은 맨 앞에서 말싸움을 하던 놈을 쓰러뜨리고 뒤이어 두 놈에게 손과 발을 날렸다.


역시 내가 키웠지만 싸움하난 잘한단 말야.


한방에 한명이라.


예전의 두환이 형님이 그랬나?


나머지 두명은 뭐라고 소리를 쳤지만 자신들의 상대가 아닌줄 알았는지 덤비지도 못하고 도망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광현을 보았다.


“데리고 꺼져라. 한번은 용서해 주마.”


광현의 영웅 포즈는 계속 되었다.


아마도 뒤쪽의 여자를 의식해서 인지 더욱 멋있게 보이는 순간이다.


에혀.


내가 저런 부하의 모습에 질투를 하다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저렇게 변한건지 아님 날 따라 다니다 보니 성격이 변한건지 도무지 알수가 없지만 그래도 녀석의 변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항상 말이 없고 어눌한 표정이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웃는 얼굴에 내게 농까지 거는걸 보면 많이 변한 모습이다.


이제 잠도 안오고 한시간만 있으면 해도 뜨니까 나갈 준비를 했다.


뭐 저놈이야 여자랑 좀 놀게 만들면 될테니까 최대한 조용히 나가야겠지.


일단 씻고 옷을 입은 후 부서진 문을 밟으며 살며시 나가려는 나의 뒷통수가 갑자기 뜨끈뜨끈해서 뒤 돌아 보았다.


역시나 광현의 눈이었고 웃는 얼굴이 아니라 약간의 살기마저 도는 눈빛이었다.


“주군 어디르 그렇게 가시나요.”


“아하하. 뭐 네가 재미나게 놀라고 자리를 피하는 중이지.. 하하하.”


“설마 절 떼놓고 가시려는게 아니구요?”


눈빛이 다시 한번 변한다.


잘 나가다가 이런식의 눈빛을 띠면 조금 곤란하다.


앞으로의 행동에도 많은 제약이 걸릴 수 있고 재수 없으면 친위대 모두에게 둘러싸여 돌아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하하 설마. 알았다고. 아침이나 먹으러 가지. 저기 숙녀분도 배가 고플테니 말야.”


사태를 수습하고 앞장 섰다.


여자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 못한 눈치고 난 광현의 뒤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젠장. 잘하면 혼자서 시코쿠를 누빌 수도 있었는데.’


물론 그런 상황은 불가능 하다는걸 안다.


그 빌어먹을 제갈승은 내 몸에다가 전파 발신기를 숨겨놨고 웬만한 탐색기는 그걸 찾지 못하니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그놈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광현이 날 지키고자 하는건 거의 광적인 수준이라 제갈승도 광현의 기세에 못 이겨 내게 설치를 했을테고 그 수신기는 광현의 품안에도 하나가 들어있었다.


한마디로 내가 어딜 가더라도 이놈들은 날 찾아 낼 것이고 장난을 치기라도 하면 친위대 전부가 날 호위한다는 명목하에 날 끌고 다닐 것이다.


부하가 걸림돌 같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 일까?


“주군. 혹시라도 해서 말씀드립니다. 주군의 몸은 이미 주군 혼자의 것이 아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웃을 수 있도록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짜식이 인상은. 알았다고.”


그제야 이놈의 인상이 펴진다.


뭐 충성심이 강하니까 내가 용서하는 거지만 이런 놈이 부하란게 행인지 불행인지.


여자는 우리둘의 모습을 보더니 약간은 두려운 모양이다.


마치 야쿠자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니 말이다.


내가 그런 재수 없는 쪽바리와는 비교가 안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지만 어짜피 말한다고 아는 것도 아닐테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속삭인다고 하는 말이 내게는 모두 들렸으니까.


“혹시 두분 야쿠자세요?”


광현이 당황한 얼굴.


“아닙니다. 저흰 한국인입니다.”


여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우릴 봤지만 난 야쿠자로 오인 받은 사실에 노기를 띠었다.


“이봐 여자. 내가 야쿠자로 보여?”


“예? 들렸어요?”


놀란 토끼눈을 하지만 내겐 소용이 없다.


“거참. 쪽바리 세끼와 날 비교하다니...”


“주군 모르고 한 일입니다.”


“어쭈구리. 너 이 여자 맘에 드냐? 잘하면 나도 치겠다.”


“허엇. 설마요... 헤헤 제가 그런 일을 저지르겠습니다.”


저 자식이 제갈승의 흉내를 낸다.


원수는 닮는다더니 어느새 배운 것인가...


“됐다. 그리고 밥 먹고 나면 헤어질건지? 아님 나혼자 다니고.”


광현은 순간 흔들리는 눈빛이었지만 자신의 임무를 생각했는지 이내 대답했다.


“식사만 하고 헤어질 겁니다. 헌데 숙녀분은 어디로 가십니까?”


끝까지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놈을 보고 기가 막혔다.


갑자기 저런식으로 변한놈을 내가 과연 믿어야 할까?


언제나 덤덤한 표정으로 나만을 묵묵히 지키던 놈이 어째서 변했을까?


“광현아. 어째 너 많이 변한거 같다.”


“헤헤. 변하다니요?”


또 다시 비굴 모드로 들어간다.


“군사의 얼굴로 대답을 한다고 내가 화를 안낼 줄 아냐?”


슬며시 주먹을 들어보지만 그놈은 여전히 비굴 모드다.


“헤헤. 주군이 때리면 맞아야죠. 하지만 무엇이 변했는지...”


“그만두자. 근데 식당은 왜 안보이는거야.”


여자는 주군이니 군사니 하는 말을 듣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따라왔다.


아마도 야쿠자들은 이런 단어는 쓰지 않을테니 의구심이 생기겠지.


밥을 먹으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일단은 시코쿠에 들어왔지만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지 정하지 않은 상태다 보니 그저 빈둥거리며 놀 수도 없는 처지라 광현에게 물었다.


“군사에게선 아무런 연락없냐?”


“아직은 없습니다. 근데 다른 생각을 하시는건 아니겠죠?”


“무슨 생각?”


“뭐 뻔하지 않습니까? 어디가서 여자를 안는 다든지 하는 생각이요.”


“허어. 넌 내가 색만줄 아냐?”


“제가 이렇게 변한게 누구 탓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럼 그게 내 탓이란 말이냐?”


“물론 아니라고 변명하시진 못하시겠죠?”


너무도 당당히 물어오는 말에 순간 할말을 잃었다.


아무리 이놈이랑 집단 섹스를 했어도 그땐 별 말이 없던 놈이 이제야 끄집어내다니.


“흠. 그럼 여자라도 꼬시러 가야겠군. 여기 물 좋은데 없나?”


나의 얼굴이면 어디를 가더라도 여자 후리기는 쉽다.


워낙 잘났어야지.


아마도 제갈승에게 연락이 오려면 일주일은 있어야 할테니 그사이에 이곳 지리도 익힐겸해서 천천히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녀는 료코란 여자인데 원래 술집에서 일하다가 돈을 다 갚았는데도 불구하고 야쿠자들에게 쫓겨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뭐 우리와 상관은 없지만 광현이 맘에 들어하는 입장이라 가이드 삼아 같이 다니기로 했다.


현지인이 길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사가에서 바로 스가키를 거쳐 토사로 들어갔다.


어짜피 코찌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코찌조라 그곳만 깨더라도 시코쿠는 점령된다.


제일 작은 구역이라 철저하게 조직화가 되어있어 작은 조직이라도 코찌조의 말은 법으로 여길 정도로 구역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 조사됐다.


료코는 우리와 다니는 내내 광현에게 붙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이것저것을 설명하며 길안내를 했다.


우리야 편하게 다니니까 좋긴 하지만 내 옆구리가 시린게 왜 광현의 탓 같을까?


만약 료코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단 두말하지 않고 정의의 기사가 될거란 생각을 가지며 토사의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벌써 3일째 같이 다니다 보니 료코도 우리를 편하게 대했고 더구나 광현과는 몸까지 섞었는지 더욱 찰싹 달라붙어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내게도 광영이 비추는 것일까?


음식점 안에서는 갑자기 접시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번득이는 횟칼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순간 내가 횟집에 들어왔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고 아마도 강도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은 천재가 아니라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모두 대가리 숙여. 그리고 너 너 이리와.”


총 4명의 인원 중 한놈은 입구를 지키며 문을 잠궜고 나머지 세명은 여자둘을 인질로 잡으며 주인에게 돈을 요구했다.


여기가 무슨 영화 촬영장도 아니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얼떨떨하지만 이런때 나서면 한명이라도 건지지 않을까?


난 접시를 날려 두놈이 인중을 맞추고 그와 동시에 뛰어들어 주인을 위협하는 놈의 뒷 덜미를 후려쳤다.


그리고 떨어지는 칼을 발로 차서 문 앞에 있는 놈의 오른손을 옷깃을 맞추었다.


순식간에 4명의 강도가 쓰러지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내가 멍청한 표정을 지을 소리가 들렸다.


“캇. 저 자식 뭐야.”


정말 영화 촬영장이라니...


젠장 간만에 폼 한번 잡으려 했더니 되는게 없구만.


아무래도 이번 시코쿠 행에 여자는 없을라나 보다.


난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단 말을 했고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은 일련의 상황을 테입으로 다시 보더니 내게 웃으며 다가왔다.


“이보게 영화해볼 생각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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