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일벌록(日伐錄) - 1부

본문

임금께서 날 부르셨다. 사역원(司譯院) 도제조(都提調) 영감께서 급히 사람을 보내 입궐(入闕)을 명했다. 사역원 하급 역관(譯官)인 나는 서둘러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임금께서 계시는 궁으로 향했다. 임금이라면 예전에 궁중행사 때 먼발치에서 잠깐 뵌 게 다인 나였는데 어찌 나와 같은 하급 역관을 부르시는지 덜컥 겁부터 났다.




대궐 무관(武官)들에게 신분을 확인 받고서는 궁 안으로 들어섰다. 확 트인 크고도 널따란, 웅장한 궁궐이 시야에 들어왔다. 임금께서 계시는 근정전(勤政殿)까지 직선으로 꽤 먼 거리였다. 위축된 나에게는 그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압박으로 밀려왔다. 대궐 양쪽으로는 몇 무리의 나인들이 줄을 지어 이동했다. 근정전 앞에 다다르자 기다리고 있던 내관(內官) 하나가 위엄서린 얼굴로 날 내려다보더니 길을 안내했다.




임금이 계신 근정전 복도에 다다르자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 영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다부진 체구의 건장한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인(武人)임이 분명했다.




“전하 앞이시네. 각별이 언행에 신경 쓰도록 하게. 알겠는가..!!”


“네.... 영감..”




도승지 영감은 행여나 내가 실수라도 할까봐 긴장한 얼굴로 나와 사내를 단단히 바로잡았다. 내관이 문을 열었고 도승지 영감과 그 무인으로 보이는 사내 그리고 나 이리 셋이서 근정전 안으로 들어갔다. 힐끗 안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임금 혼자께서 상청(上廳)에 계시었다. 내관이 물러갔다. 도승지 영감이 옆으로 길을 비켜 서 있었고 그 무인으로 보이는 사내와 나만이 전하의 정면에 서서 큰절을 올리었다. 감히 두려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하문(下問)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승지... 이들이 내가 말한 그 적임자들인가?”




임금께서 도승지에게 물었다. 처음 듣는 전하의 육성(肉聲)이었다. 




“네, 전하... 역관 문영재는 이제 갓 약관(弱冠)의 나이를 넘겼기는 하나 일본어(日本語)에 능통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나라의 풍습과 지리에도 밝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 보기엔 큰일을 맡기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 거 같은데...”


“사역원 도제조 영감이 천거(薦擧)한 인물이니 믿고 쓰셔도 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어릴 때부터 지 애비를 따라 일본을 자주 드나들어 그쪽에 여러모로 밝다했습니다.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겁니다.”


“흐흠.... 네 나이를 거스르는 재주가 있나보구나.”




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일본’이라니...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서는 나도 모르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불길했다. 짐작컨대, 사역원 도제조가 나를 천거했고 그 책무(責務)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자는 ‘장광재’라는 무관으로서 혼련도감 사수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무예가 출중하여 앉은 자리에서도 예닐곱은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자입니다. 




나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광재’




그가 누구인가... 바로 ‘조선제일검(朝鮮第一劍)’이다. 그가 바로 풍문(風聞)으로만 떠돌던 조선제일검 장광재였던 것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에 격전이 벌어졌다 하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왜군을 도륙했던 그였다. 역모(逆謀)에 연루된 가문이라 하여 그 무예와 기량이 출중함에도 번번이 무과시험에 최종낙방해 초야에 묻혀 대장장이로 쇠를 달구던 그를 왜란(倭亂)이 꺼낸 것이다. 




한 무리의 왜군이 그의 고을을 침입해 살육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러자 몸 안에 연철(軟鐵)을 휘두르고 혈혈단신으로 물러나던 그들의 뒤를 밟아 한 명도 남김없이 그 자리에서 모조리 도륙을 내버린 인물, 바로 그였다. 근접거리에서 왜군은 조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켜보던 세인(世人)들이 말하길 그의 양손에서 장검과 날카로운 비수가 현란하게 움직였고 그때마다 그의 주위로 피보라가 뿌려졌다 했다. 왜군들 사이에 뒤섞여 있는 그를 조준 발사하던 총알이 되레 아군인 왜군의 몸에 맞았고 장광재는 조총의 총알을 맞아도 끄덕없다 했다. 바로 그가 특수제작한 연철(軟鐵) 덕이었을 게다.




그 후로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생겨났고 수적 열세로 인해 주로 기습작전을 감행해 여러 차례 승리로 이끌었다. 일종의 의병이었다. 그때부터 그에게 ‘조선제일검’이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조정(朝廷)에서는 점차 커지는 그의 세(勢)를 두려워해 관군에 편입시켜 통제를 받게 하였다. 임란(壬亂) 이후에는 그를 훈련도감 사수대장으로 임명해 곁에 두었다. 바로 그가 나와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옆에 서 있는 그에게서 대단한 무형(無形)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묵직한 쇳덩이가 옆에 자리한 느낌이었다.




“이리 올라오너라.”




임금께서 말씀하시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임금의 곁으로 올라오라는 말씀이시었다.




“저... 전하...”




곁에 서 있던 도승지마저도 임금의 그런 파격적인 행동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괜찮다. 이리 올라오너라.”




다시금 임금께서 전하와 같은 높이인 상청(上廳) 바닥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대저 저 상청이 무엇인가. 조정대신 고관대작(高官大爵) 정삼품(正三品) 중에서도 당상관(堂上官)만이 올라서서 전하와 마주할 수 있다 하여 상청인 게다. 그런 자리를 어찌 나 따위의 하급 역관과 무관 따위가 올라설 수 있단 말인가.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주저했다.




“뭐 하느냐...!!!”




전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도승지가 서둘러 재촉의 눈짓을 했다. 나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장광재와 함께 상청에 올라섰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심하게 요동을 쳐댔고 귀는 막혀 먹먹했다. 전하의 앞에 예를 갖춰 앉았다. 전하의 용안(龍顔)을 그리 가까이서 본 건 당연 처음이었다. 도저히 감잡을 수 없는 인상이었다. 일견(一見) 보기에 인자함과 근엄함이 묻어나오는 듯한 인상이면서도 다소 신경질적인 면 또한 엿보였다. 아니 범인(凡人)이라면 모를까 임금님의 용안이라 감히 판단할 수 없었다.




“한 잔 받거라.”




임금께서 어주(御酒)를 친히 내리셨다. 미리 차려진 황금봉황 장식의 주안상에서 술잔이 하나 조선제일검 장광재에게 내려졌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단숨에 들이켰다. 이어 내게도 어주가 내려졌고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한 방울도 흘림 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왜왕(倭王)의 목을 가져오너라.”




임금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난 너무 놀라 잘못 들었나 싶어 얼른 고개를 들어 임금님의 용안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얼른 눈을 내리깔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혼란스러웠다. 놀라기는 무관 장광재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고개를 들라...”




다시금 임금님의 육성이 흘러나왔고 장광재와 나는 고개를 들어 임금님의 용안을 올려다보았다.




“어명(御命)을 내리겠다. 왜왕의 목을 가져오너라.”


“전하... 왜왕이라면 지금 일본의 왕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무관 장광재가 감히 임금께 여쭈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배포(排布)였다.




“그렇다. 임란(壬亂)의 치욕을 씻고자 왜왕의 목이 필요하다. 반드시 가져 오거라. 알겠느냐.”


“........... 네.. 전하... 전하의 명을 받들어 왜왕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무관 장광재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바로 하는 말이었다. 뭔가 일이 잘못돼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왜왕의 목’이라니... 다른 곳도 아닌 일본 열도(列島), 그것도 그곳 심장부 깊숙이 기거해 있는 왜왕의 목이라니....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가고 있다. 생각이 불안하게 멈춰져 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너는 왜 말이 없느냐.”




전하께서 말씀하셨다.




“네...네네....전하...그리 하겠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답했다. 전하께서 나를 지목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떨렸다. 무조건 그리 해야 했다.




“승지는 이들을 데려가라.”




전하의 하명(下命)이 내려졌고 우리는 임금께 예를 갖추고 도승지를 따라 근정전을 벗어나게 되었다. 마지막에 뵌 전하는 여전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도승지가 별각 안채로 이끌었다. 상석에 도승지 영감이 좌정하고 그 양쪽으로 훈련도감 사수대장 장광재와 내가 마주 앉았다. 다시 한 번 장광재의 용모를 보았다. 어깨가 떡 벌어져 기골이 장대하고 다부진 턱 선을 하고 있는 30대 사내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게. 자네들은 열도 왜왕의 목을 가져오기 위해 천거(薦擧)되어 차출(差出)된 자들이네. 이 일은 극비사항으로 조정에서도 아는 이가 없네. 오로지 전하와 나만이 알고 있는 일이니 외부에 절대 발설해서는 아니 될 것이네. 만에 하나 추후 이 계획이 밖으로 누설된다면 자네들 목을 취하겠네.”




도승지 영감의 말에 두려움은 확신으로 다가왔다.




“아울러 열도 내에서도 절대 자네들의 신분이 노출되어서도 아니 될 것이야. 거사(巨事)를 벌이다 실패하더라도 자네들은 조선왕실과는 하등(何等) 연관이 없는 자들이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도승지의 말은 협박에 가까웠다. 우리의 대답을 듣고 나서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 역관 문영재를 열도의 길잡이로 삼아 ‘왜왕 척살단’이 꾸려질 것이네. 물론 단주는 장광재 자네가 맡게 될 것이고 궁에서 차출된 소수정예병들이 자네를 보좌해줄 거네. 자네 또한 손발이 맞는 측근 몇을 기용할 수 있게 해주겠네.”




장광재의 얼굴을 봤다.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 아니 의욕마저 느껴졌다. 허나 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열도라니!!! 왜왕이라니!!!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무모하게 들어가라는 것이다. 무기를 정비해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도 쉽지 않을 터인데 고작 소수정예 몇 명으로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다. 




물론, 눈에 띄지 않는 비밀결사조직이 원하는 목적물만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마는 무관도 아닌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허나 도승지 앞에서 어명을 거부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일단 훗날을 기약해야겠다는 비겁한 생각만이 떠올려졌다. 나는 역관인 게다. 내 본분에 벗어나는 일인 게다.




‘따닥’




눈앞에 큼지막한 금덩어리 두 개가 올려졌다. 작히 집 두어 채는 살 수 있을 만큼의 거금이었다.




“한 달 후에나 상단으로 위장해 출발할 걸세... 그동안 요긴하게 잘 쓰시게들.”




흡사 목숨값이니 한 달 동안 마음대로 쓰라는 말처럼 들렸다.




“만약 일을 성사시켜 복귀한다면 전하께서는 자네들이 바라는 건 뭐든 다 들어주시기로 약조하셨네. 그게 관직이든 재물이든 토지이든 뭐든 말일세.”




도승지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무관 장광재와 따로 자리를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대장님.... 대장님 존함(尊啣)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무관 장광재를 대장님으로 불렀다. 품계도 나보다 서너 단계 높았고 연배 또한 한참 위였기 때문이다.




“어허....이거 낯 뜨겁습니다.”


“말씀 낮추십시오. 이제 단주님이신데...그냥 문 역관이라 하십시오. 저도 그게 편합니다.”


“좋네... 문 역관...잘 부탁함세...”




장광재는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문관의 풍모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여느 무관과는 다른 인자한 인품마저 느껴졌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칼을 휘두르며 왜구들을 도륙 내는 그림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역적의 가문만 아니었어도 무관이 아닌 문관으로 과거를 준비했을 위인이었다. 그 무관마저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낙방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임란이 그에게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나와는 닮은 점이 있었다.




궁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어찌한다 어찌한다. 이 일을 어찌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를 골몰하게 만들었다. 임금의 명대로 하다간 저 머나먼 열도 이국땅에서 개죽음을 당하기 십상인 게다. 묘안을 떠올리려 해도 마땅히 해답이 없었다. 장수(將帥)들이나 해야 할 일을 왜 나 같은 하급 역관 나부랭이를 끌어들인단 말인가. 내, 나라에 그 무슨 큰 녹(祿)을 받아먹은 게 있다고 그리 큰일을 맡긴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두려움이 괘씸함으로 번졌다.




“도련님..!!!”




낯익은 목소리... 덕쇠의 목소리이다. 저만치 토담에서 덕쇠가 고개를 삐죽 내밀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예전에 집에서 부리던 종놈이었다. 내게로 조르르 달려왔다.




“여기... 마님 서신(書信)입니다요. 아이구... 겁나죽겠습니다요. 이거 관군들이 알면 왜국의 간자(間者)라고 아주 난리가 납니다요...”




하더니 품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두리번거리더니 얼른 내 소매로 넣고는 줄행랑을 쳤다. 서신을 그대로 소매에 갈무리한 채로 집으로 향했다. 근 여섯 달 만에 받아보는 어머니의 서신이었다. 내용이 궁금했지만 집에 당도해 펼쳐보기로 했다.




“아버님, 소자 다녀왔습니다.”




‘덜컹’




방문이 열리고 아버님이 기다란 곰방대를 입에 물고선 물으셨다.




“그래... 궁에는 어인 일로 갔느냐... ‘콜록..’...‘콜록콜록..’....‘크흠..’....”




망팔(望八)의 연세로 늙으신 양부(養父)께서 요즘 부쩍 기침이 심하여 걱정이 되었다. 아버님 또한 역관이셨다. 지금은 퇴임한 일본 통역관(通譯官)이셨다. 때문에 조선통신사(朝鮮通信社) 수행에도 동참해 사신을 수행하셨고 나 또한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사역원 역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 또한 일본 통역관으로 임해졌다. 




일본에는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자주 가게 되었다. 때로는 왕족부터 조정대신들의 사적인 부탁으로 오가는 일 또한 더러 있었다. 임란 이후 일본과의 사무역이 철저히 통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왕족이나 사대부(士大夫)란 작자들의 수요는 끊이지 않았다. 일본 본연의 물품부터 서양에서 들여온 진귀한 물품까지 가리지 않고 요구를 해왔다. 그런 경험의 연유로 ‘왜왕 척살단’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일에 내가 말려들 게 된 것이다.




“별거 아닙니다. 사역원 도제조 영감께서 가끔 그러시지 않습니까.”




아버님을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의관을 탈의하고선 어머니의 서신을 읽어 내렸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으레 몇 달에 한 번씩 보내는 안부서신이었다.




‘역적의 집안이다.’




우리가문은 임란 당시 역적의 집안이 되었다. 아니 어찌 역적의 집안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조선의 임금과 조정대신이란 자들은 백성들의 고혈(膏血)을 짜내 부귀영화를 누리다 왜구가 쳐들어왔다는 말에 혼비백산하여 저 멀리 의주까지 몽진(蒙塵)을 가지 않았던가. 그런 나라를 위해 그 누가 목숨 걸고 싸우겠는가. 이는 장수(將帥)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주인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셈이다. 




왜군이 순식간에 도성은 물론이고 평양성까지 손에 넣자 백성들 사이에서는 조선이 망했다는 소문이 파다해졌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조명연합군을 편성해 다시금 평양성을 탈환했지만 남쪽으로 후퇴하는 왜군들을 더 이상은 쫓지 않았다. 명나라 또한 전쟁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더욱이 남의 나라 전쟁에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왜군은 남쪽 해안가에 자리를 잡고서는 ‘왜성(倭城)’을 쌓기 시작했다. 그 휴전상태에서 정유재란이 재발하기까지 수년을 지내며 여전히 조선땅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 가문이 그들 왜구에게 협조를 했던 것이다. 당시 친부(親父)인 아버님께서는 당쟁(黨爭)의 희생양으로 동인, 서인 모두에 배척을 당한 상태로 정계복귀는 사실상 영원히 불가능한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아버님의 권력욕은 대단했다.




그 왜군을 이용해 새로운 권력을 거머쥐려고 했던 것이다. 그 권력을 향한 집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까지 수용했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 말이다. 어쩌면 당시 아버님은 단순한 권력욕이 아니라 임금과 조정대신 모두를 응징의 대상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당시 지방의 부호였던 아버님은 ‘왜성’으로 군량미와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해 주었다. 우리 집 또한 그 왜성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왜장(倭將)들이 곧장 찾아와 대접을 받고 가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상다리가 부러져라 술과 고기가 올려졌고 집안의 하인들이 바빠졌다. 




왜구들의 잔학성을 풍문으로만 들었던 내게 당시 그 왜장들은 그런 풍문과는 달리 되레 친절하고 인상이 좋았다. 가끔 거친 왜장들도 더러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주둔하는 왜군에게 우호적으로 협조를 해줘서 그랬을 게다. 




인근 지방이 사실상 왜군의 관할 하에 있었기에 조선 조정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어 가능했다. 사실 인근 지역에 왜군과 관계를 돈독하게 지내는 지방 토호(土豪)들이 많았다. 아버님도 그들 중 하나였고 그들과 친분을 돈독히 쌓아두었다.




문제는 정유재란에서 일본군이 패퇴(敗退)해 자국의 열도로 물러나고서부터였다. 조선의 역사와 우리 가문의 역사는 반대로 가기 시작했다. 조선은 안정을 찾아갔지만 우리 가문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왜구가 물러가자 그들에게 협조했던 이들을 색출해내기 시작했다. 그 대상에는 전란 중에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병장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아버님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지원군으로 참전한 명나라 군대를 따라 명나라로 망명했다는 설도 있고 왜군이 퇴각할 때 백성들에게 쫓겨 생사를 달리했다는 설도 있고 무성했지만 확실한 건 없었다. 단지 어머니만은 확실했다. 왜군이 퇴각할 때 조선 내에서는 역적의 집안이라 하여 우리 가문을 아작 내려 관군들을 보냈다. 그때 조선 땅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어 퇴각하는 왜군들 사이에 끼어 집안의 비(婢)들을 데리고 열도로 몸을 피신했다. 




당시 왜군은 조선의 유명한 ‘도공(陶工)’들의 기예(技藝)를 높이 사 후한 대접을 해 데리고 갔다. 평소 우리 가문에 도자기를 대던 외거노비 도공 ‘이정언’의 아내로 신분을 둔갑해 무사히 조선 땅을 빠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천만다행이었다. 역적 가문으로 몰렸던 집안들의 결말이 어찌되었는가. 모조리 멸문(滅門)이 되었다. 당시 환도(還都)한 임금의 성정이 그러했다. 어머니는 그 후로 일본에서 기예로 부를 축적한 도공 이정언의 보필을 받아 큰 상단을 일구게 되었다 했다. 의외였다. 삶이란 때로는 그렇게 한순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당시 어린 나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렸다. 그때 나를 거두어주신 분이 바로 지금의 양부(養父)이신 역관 ‘문사윤’이었다. 양부께서는 전란 중에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져 그 생사를 모른다 하셨다. 날 양자(養子)로 거두어주셨다. 나의 내력(來歷)을 알게 되자 함구하라 하셨다. 그날부로 나는 양부의 친아들로 입적(入籍)이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상단을 통해 예전 집으로 서신을 보내셨다. 그 집은 임란 중에 군공을 세운 공신에게 하사되어져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예전부터 그 집에서 부리던 남자 종놈인 ‘덕쇠’가 그 집에 딸려서 새로운 주인에게 예속되었다. 일본을 오가던 조선 상단 일행 중 하나가 어머니로부터 서신을 받아들고 그 옛집을 찾아갔고 미리 정보를 갖고 있던 그가 덕쇠에게 선별적으로 그 서신을 전했던 것이다. 나 또한 덕쇠와는 몰래 왕래를 해오던 차였기에 그를 통해 어머니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내 안위가 저어되었는지 내게로 직접 서신이 전달되지는 않았다.




당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死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장악해 ‘쇼군’의 지위에 올랐고 ‘에도지방’에서 그의 시대를 열었다. 그간 지방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다이묘’들을 통제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불안정한 정국(政局)에서, 보다 안정적인 막부시대를 열었다. 아들 삼남(三男)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쇼군의 자리를 물려주고 ‘오고쇼’로서 섭정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어머니가 계신 일본의 정국이 안정이 되어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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