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월 야우 - 5부
본문
소중하고 성의있는 댓글을 올려주신 "고추오빠"님 과
댓글, 추천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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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을 이루신 것을 경하 드립니다. 주군”
연무실안에 있던 검은 색 일색의 옷차림에 검은 두건을 쓴 인영이 벽고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숙인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군..오래 기다렸나? 일영(一影)!”
“아닙니다. 주군!”
“일의 진행 상황은 어떠한가?”
“우문걸은 비영 칠호가, 정하련은 비영 삼호가 감시하고 있고 장하운에게는 비영오호를 붙여 두었습니다.”
“별다른 움직임이 있던가?”
“우문걸이 바쁘게 전대의 흑하보 원로들을 찾아다니는 것 빼고는 조용합니다. 다만 금일 아침에 심천(深圳)의 녹수산장 본장에서 패검 이건학이 창천대 일부를 이끌고 광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심천 쪽으로 비영 십이호를 급파했습니다.”
“잘했네, 일영! 그런데 창천대주(蒼天隊主) 이건학(李建鶴)이라.. 녹수산장 서열 2위의 인물이 직접 행차하는걸 보니 내 생각보다 남천패가와 녹수산장의 알력이 심한 모양이로군.”
“그쪽으로 더 알아볼까요?”
“아니 그건 나중에...일영 자네와 비영(秘影)들 모두 완벽하게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도록 하게. 지시하면 바로 집결할 수 있도록..”
“네! 주군”
검은 인영이 벽고영에게 인사를 하고 연무실을 빠져 나간다.
방금 연무실을 빠져나간 인영은 비영일호(秘影一號) 정철(鄭哲)이다.
총 십오인으로 구성된 비영은 특수전(特殊戰)과 은신(隱身)에 능한 정보조직으로 정철이 그 수장을 맞고 있다.
벽고영이 삼년전부터, 자질이 뛰어난 운검장의 젊은 제자들을 비밀리에 선발하여, 자신이 지옥도시절 배웠던 경험과 무공초식들을 익히게 하고, 각종영약들로 내공을 보(補)한 비영들은, 개개인이 운검장 전주(殿主)급 이상의 무공을 소유하고 있고 오직 벽고영의 명령만을 따른다.
그중에서도 자질이 가장 뛰어난 27세의 정철은 제운칠십이검의 일부를 벽고영에게 전수 받은, 비영 중에서도 벽고영이 가장 신뢰하는 심복으로, 운검장 수하들 중에서 유일하게 연무실과 별채를 둘러싸고 있는 절진을 허락 없이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인물이다.
정철의 무공 수준은 운검장내에서는 노장주 운현과 벽고영을 제외하고는 견줄 자가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벽고영 부재시 운검장내의 일을 막후에서 처리하는 임무도 함께 맡고 있는 벽고영의 심복중의 심복이다.
잔월도 모두 스러진 시월말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
벽고영은 금사강(金沙江)가의 갈대숲에 숨겨놓은 소선(小船)위에 은신해서 저 멀리 강을 천천히 거슬러 오르고 있는 거대한 판목선(板木船)을 주시하고 있다.
검은 야행의 사이로 파고드는 강바람이 무척 차갑게 느껴진다.
따뜻한 이곳 광동성 남부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면 중원의 북부지방은 이미 눈 내리는 한겨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장하운이 타고 있을, 백여 명이 타고도 남을 듯한 저 거대한 판목선 화물칸에는 운검장 총관이 광주 근교의 창고에서 빼돌린 엄청난 양의 목화와 삼베가 실려 있다.
장하운은 그 물건들을 싣고 북경근처의 추운지방에 가서 모두 팔고 돌아올 것이다. 기존의 상인들이 판매하는 금액보다 싼 가격으로..
해마다 운검장은 광주근교의 따뜻한 곳에서 수확한 목화를, 강남상련(江南商聯)을 통해 북부지빙의 상인들에게 판매하여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저 판목선에 실린 많은 양의 목화솜이 싼 가격으로 일시에 풀리면 운검장과 거래하던 상인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운검장의 몫이 될 것이고..
운검장 총관과 흑하보의 수부주(水府主) 장하운은, 쥐새끼처럼 운검장의 물건을 도둑질 한 것으로도 모자라, 운검장의 평판과 신뢰도에 커다란 타격을 입힐 행위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벽고영의 눈에 은은한 분노의 빛이 흐른다.
벽고영이 왼손을 들어 수신호를 하자 십여명이 타고 있는 소선이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그러나 조용하게 판목선 쪽을 향해 강물 위를 미끄러진다.
갈대숲에 숨어있던 대여섯 척의 소선들이 그 뒤를 따라 움직인다.
벽고영이 일장 남짓 되는 높이의 판목선 외벽을 가볍게 뛰어올라 갑판위로 내려섰을 때에는, 잠입해 있던 비영 오호가 이미 갑판을 깨끗하게 청소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장하운을 감시하고 있던 비영오호는 하오문의 연줄을 이용해 판옥선의 수부(水夫)로 위장해서 미리 잠입해 있다가 벽고영의 공격시간에 맞추어 갑판위에서 경계를 서던 흑하보 무사들을 제압해 판목선의 외주경계를 무력화 시킨 것이다.
운검장 내, 외전주를 비롯해서 엄선되어 선출된 삼십여명의 공격조들이 속속 경공을 이용해 갑판위로 내려선다.
“해천, 장하운은 어디에 있나?”
외부인들이 있을 때에는 비영들의 존재를 철저히 숨겨야하기에 오호를 임시 암호인 해천으로 부르는 것이다.
내, 외전주들도 비영의 존재에 대해 아직 모르고 있다.
“저쪽 선장실에 선장과 함께 있을 겁니다.”
역용을 하여 본 얼굴을 숨긴 허름한 수부차림의 오호가 뱃머리 쪽을 가리킨다.
“호위는?”
“흑하보 수하 두 명 만이 선장실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네는 전주님들을 흑하보 수하들이 잠든 선실로 안내해 주게”
비영 오호에게 지시를 내린 벽고영이 내전주를 돌아보며 말을 잇는다.
“전주님, 금일의 작전은 보안유지가 생명입니다. 흑하보 수하들을 한 놈도 빼트리지 말고 모두 제압 하십시오. 이일이 세어나간다면 차후의 계획은 만사휴의가 되는 거라는 것을 명심하시고 신속하게 처리 하십시오.”
말을 끝낸 벽고영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선장실을 향해 신형을 날린다.
슈욱~,슉~
선장실 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흑하보 수하 두 명의 중완혈과 천돌혈을 향해, 왼손 팔뚝에 장착되어 있던 박궁의 십살시 두발을 발사한 벽고영이 그들의 상태는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부수며 선장실로 난입한다.
우지끈,쿵
선장실 문으로 진입하는 자신의 머리를 향해 휘몰아쳐 오는 싸늘한 예기(銳氣)를, 허리를 뒤틀며 허공을 밟아나가는, 유운신법(流雲身法)의 묘(妙)를 이용해 발밑으로 흘린 벽고영이 요대처럼 허리에 두른 연검(軟劍)을 뽑아 진기를 주입하여 짓쳐 들어간다.
흐늘거리며 낭창낭창하던 연검이 독사의 머리처럼 빳빳하게 세워지며 빛을 발하고, 벽고영의 허리를 노리는 예기(銳氣)와 맞부딪힌다.
챙챙챙~
“흐윽~”
흰색 침의(寢衣) 차림의 장하운이 침상 앞에 자신의 애병인 손도끼 쌍월(雙鉞)을 양손에 하나씩 나눠 쥐고 허리와 허벅지에 피를 흘리며 침중한 얼굴로 서 있다.
문을 부수며 난입하는 적을 향해, 잠에서 깬 창졸간의 순간에도 고수의 풍모를 보이며, 쌍월십이식(雙鉞十二式) 전이식(前二式)으로 선공(先攻)을 했던 장하운이 일순간의 격돌로 손해를 본 것이다.
“네놈의 정체는 뭐냐?..누구 길래 감히 나를..”
방금 전 격돌의 여파로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앞쪽으로 흘러 내려 얼굴이 반쯤 가려진 벽고영을 향해 장하운이 으르렁 거린다.
때마침 불어오는 강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려 얼굴이 드러나자 장하운이 놀라며 묻는다.
“너..너는 운검장의 소장주? 허..헌데 네놈이 왜?”
“이 판목선에 본장의 물건들이 실려 있다고 해서 말이죠..화물칸에 있는 목화와 삼베를 말하는 겁니다. 장.하.운.수.부.주.님.”
마지막 음절을 뚝뚝 끊어 말하는 벽고영을 보며 장하운이 경악한다.
“네..네가..그걸..어떻게..?”
“문답무용(問答無用)”
짧게 말을 마친 벽고영의 연검이 장하운을 향해 싸늘한 검광을 발하며 넘실거리고, 장하운의 쌍월이 휘둘러진다.
챙챙챙챙
불똥을 튀겨대며 격돌하는 칼과 도끼의 기세가 침상위로 쳐있는 휘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챙챙챙
슉~
“크악~”
둘이 격돌한지 몇초식이 지나지 않아 장하운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널브러진 장하운의 우수 팔꿈치 안쪽에는 장난감 화살 같은 손가락 하나길이의 가느다란 철시(鐵矢)가 깃까지 박혀 있다.
“비겁한 놈! 암기를 사용하다니..”
“하하..암기라니요? 이것은 엄연한 화살입니다..하하”
“네 이놈!..우리 형님이 이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장대운 흑하보주님 말씀이신가요?..하하..잠시 기다리시면 곧 만나게 해드리지요. 두 분의 만남이 유쾌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말을 하는 장하운의 아혈(啞穴)과 마혈(痲穴)을 차례로 짚은 후, 구석에서 떨고 있는 선장도 점혈(點穴)하여 무력화시킨다.
장하운보다 무공수위가 월등히 높은 벽고영이 박궁까지 써가며 장하운을 제압한 이유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밤늦은 시간이라 나다니는 사람은 없겠지만 혹여라도 강가에서 밤낚시를 하는 강태공이 있어 사단을 눈치 챌까 싶어서 무리하게 박궁(膊弓)을 사용한 것이다.
아직 박궁은 외부에 노출된 적이 한 번도 없고 오직 비영들의 훈련단계에서만 사용됐었다.
실전에서 사용해본 성능은 기대 이상이었다.
팔소매를 걷어 박궁을 내려다보는 장하운의 눈빛에 강한 자신감이 어린다.
팔뚝, 즉 하박(下膊)에 장착하여 사용하는 활이라 하여 박궁(膊弓)이라고 이름붙인 이 활은, 벽고영이 지옥도 생활을 할때 지옥도 서고중 병기편에서 읽은, 서역에서 쓰인다는 석궁(石弓)이라는 활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게 된 것이다.
운검장에 입문하기 전 광주근교의 한 주루에서 점소이 생활을 할때, 진씨철방(陣氏鐵房)의 주인인 진관(陣關)을 찾아낸 직후부터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벽고영이 설계를 한 도면을 가지고 진관이 제작을 맡았는데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손바닥만한 몸체의 활로 인명을 살상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을 내게 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제작을 시작한지 사년이 가까와 오는 지난 작년 여름에서야, 진관이 한철(寒鐵)과 심해묵철(深海墨鐵)로 접쇠해 만든 강력한 용수철을 발명하게 되어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총 열여덟기(機)가 제작된 박궁은, 비영들 각자에게 하나씩 나누어주고 벽고영 자신이 한기(機)를 가진 후에 나머지 두기는 연무실 비밀장소에 보관중이다.
한철과 심해묵철이 고갈된 관계로 현재는 제작이 중단된 상태이다.
팔뚝에서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을 이용해 강력한 용수철을 조작해서 발사하는 박궁은, 살상 유효거리가 사장(四丈) 정도로 근접전에서 최고의 위력이 발휘된다.
박궁에 장착되는 화살의 길이는 중지손가락 보다 약간 짧은데, 그 화살의 촉은 호신강기도 능히 깨트릴 수 있는 금강석(金剛石)을 다듬어 만들었고, 화살대는 휘는 성질이 있는 연철(軟鐵)로 제작 되었다.
한 번에 열개를 장착하여 동시발사도 가능하고 단발발사도 가능한 화살의 명칭은 십살시(十殺矢)라고 붙였다.
십살시에 독을 바르면 독살시(毒殺矢)로 명칭이 바뀐다.
벽고영이 장하운과 선장의 혈도를 제압하여 갑판으로 끌고 나왔을 때에는 내, 외전주들도 판목선 선실에서 자고 있던 흑하보의 수하들을 모두 제압하고 신분에 따라 분류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갑판위로 이십여명의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판목선을 탈출하는 흑하보 무사들에 대한 대비로 소선을 타고 판목선 주위를 경계하던 운검장의 수하들과, 해부주 우문걸이 파견한, 탈취한 판목선板木船)을 움직일 뱃사람들 이었다.
“하하하! 소장주님 정말 놀랐습니다. 채 일각도 되지 않아 장하운 수부주와 40여명의 흑하보 무사들을 모두 제압하시다니..하하하”
치하의 말을 하는 오십대의 텁석부리 장년인은 전(前)흑하보주 우문황 때부터 우문가에 충성을 다하던 임무열 이라는 뱃사람이다.
이배의 선장을 맡게 될 것이다.
<공자님! 오호입니다. 수상쩍은 서찰이 흑하보 수하의 몸에서 나왔습니다.>
<선장실로 가지고 오게..>
임무열 등과 정리를 하고 있던 벽고영에게 전음성이 들려온다.
“유난히 불안해하는 흑하보 무사를 수색하였더니 품속에서 이것이 나왔습니다.”
선장실에서 받은 서찰은 겉봉투가 밀봉이 되어 있었다.
밀봉된 봉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밀봉을 뜯어내고 서찰을 읽던 벽고영이 경악의 눈빛을 하며 오호에게 빠르게 지시한다.
“어서 가서 이 서찰의 소지자를 선장실로 데려오게. 그 후에 이곳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서고...어서..”
서찰은 흑하보주(黑河堡主) 장대운(張大運)이 남천패가(南天覇家) 가주 혼원장(混元掌) 혁세기(革勢期)에게 보내는 밀서였다.
새해 첫날인 춘절(春節)에 같은 철련(鐵聯)소속인 녹수산장을 기습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남천패가주에게, 남천패가 무사들의 이동을 수로로 할 것을 제안하며, 장대운 자신이 그 운송을 책임지겠다는 밀서였다.
광동성(廣東省)의 패자(覇者) 자리를 두고 패가와 산장간에 알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벽고영도 몰랐었다.
춘절은 앞으로 두 달 남짓 남았을 뿐이다.
서찰에 쓰인 내용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무사들 대부분을 춘절 명절휴가를 내보낸 녹수산장은 패가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고, 그 후 남천패가(南天覇家)는 철련(鐵聯)의 제가를 받아내어 산동성의 패자(覇者)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녹수산장이 무너지고 나면 운맹(雲盟), 만보해(萬寶海)와 중원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 철련 수뇌부는, 남천패가의 전력이탈을 염려하여 강력한 재제를 패가에게 내리지 못할 것이고,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되었으니 슬그머니 남천패가를 산동성의 맹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런것이 정치니까...
그러므로 서찰의 진위여부는 무척 중요했다.
흑하보 수부(水府)소속의 대주(隊主)라는 밀서 소지자를 이각(二刻)정도 심문하고 나서 벽고영은 서찰이 진짜라는 결론을 내렸다.
심문 초반에는 서찰의 내용도 모르고 내용에 비해 서찰운반자의 신분이 보잘것없어 가짜가 아닌가 의심했었는데, 가끔 장대운의 지시로 이런 서찰을 전달했었다는 말과 함께 작금의 상황을 유추해본 결과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일 저녁, 장대운이 직접 자신에게 찾아와 밀봉된 서찰을 전하며, 장하운이 타고 있는 판목선에 함께 승선하여 있다가 모레 아침 남천패가의 본가(本家)가 있는 청원(淸遠)의 나루터에 판목선이 잠시 계류할 때 하선하여, 나루터 근처 주루의 주인에게 서찰을 전해주고 곧바로 흑하보로 돌아오라는, 예전과 같은 명을 받았다고 했다.
장대운 늙은 여우의 허허실실(虛虛實實) 계책이었다.
전서구를 이용하자니 노출이나 분실의 우려가 크고, 흑하보 중량급 인사를 보내자니 산장의 감시가 무섭고, 결국 하급무사에게 서찰을 들려 보내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나루터에 정박한 배에서 내린 무사들이 갈 곳이야 주루가 뻔했으니 나루터 주루하나를 패가의 정보조직이 운영하게 하여 자연스럽게 서찰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 시각에 청원에 파견된 산장의 정보원들은 장하운의 동태에만 눈길이 쏠리고 있을 터였고..
이 사실을 안 이상, 자신이 세워 두었던 원(原) 계획의 전면적인 수정은 불가피 했다.
자칫 잘못하면 패가와 산장 사이에 낀 운검장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자신이 흑하보주를 축출했다는 사실을 패가에서 알게 되면 산장을 치기 전에 운검장부터 멸망시키려 할 것이 분명하고 산장에서 패가의 공격사실을 미리 알게 되는 상황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산장에서 운검장과 새로 보주가 바뀐 흑하보를 대(對)패가전의 화살받이로 내몰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도 운검장의 위치는 매우 안 좋은 상황이다.
남천패가의 본가는 광주의 북쪽 청원(淸遠)에 소재하고, 녹수산장의 본장은 광주의 동쪽에 위치한 심천(深圳) 있어, 해로와 육로를 막론하고 상대의 본장으로 가기위해서는 운검장이 있는 광주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수로를 이용하면 청원에서 심양까지 이틀 반나절정도 소요되는데 주강(珠江)을 운행하는 대부분의 배들이 광주에서 정박을 하고 보급을 받은 후에 출발한다.
남천패가의 기습조들이, 정박을 하고 있는 배에서 하선하여 운검장을 쓸어버릴 시간이 충분하다는 말이다.
계획변경을 해야 한다.
원래의 계획은 벽고영 자신이 장하운을 잡고, 내일 우문걸이 흑하보주의 친위대 수장이며 동생인 흑하특무대주(黑河特務隊主) 장명운을 제압하고 억류하여 특무대의 발을 묶은후, 자신과 힘을 모아 흑하보주의 심복들을 제거하거나 연금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후의 계획은, 미리 예정되어 있던 이틀후의 운검장 노가주와 흑하보주와의 회견장에, 우문걸과 녹수산장의 고수를 대동한 자신이 참석해서 무력시위를 하며 장하운의 절도행각과 상도의를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성토하고 그 책임을 장대운에게 물어 보주직을 내놓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계획대로 되면 손발이 모두 잘린 장대운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보주직을 우문걸에게 이양할 것이라는 예상 하에 그것이 운검장에서 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흑하보주 축출이 대외적으로 알려져서는 않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남천패가는 물론이고 녹수산장에서 광주로 오고 있는 이건학 까지도 속여야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위기였지만 또 기회이기도 했다.
패가와 산장의 전면전은 분명해 보였고 자신은 패가의 기습일정과 공격로까지 알고 있다.
산장은 물론이거니와 패가에서도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녹수산장의 편에 서서 자신이 가진 정보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녹수산장이 전쟁에서 승리할 시점에는 산동성내의 강호문파는 물론이고 철련에서도 자신을 주목하게 만들어야 한다.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인 이 밀서(密書)를 잘만 이용하면 지옥도주가 자신에게 내린 밀명을 완성하는데 한 발짝 다가 설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서있는 느낌이다.
태풍에 휘말려 침몰할 수도 있지만 바람을 타고 한 번에 목적한 곳까지 빠르게 갈수도 있다.
철련 핵심부로 침투하라는 지옥도주(地獄島主)의 밀명을 완성할 수 있는 계단이 나타난 것이다.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흔들리는 등촉을 바라보는 벽고영의 눈빛이 침중해진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지옥도에 일곱명의 흑의(黑蟻)들만이 남았을 때 지옥도주와 교두들이 커다란 배를 가지고 와서 우리 흑의들을 배에 태웠다.
배의 가장 아랫부분 어두운 선실로 흑의들은 몰아넣은 지옥도주가 이제 지옥도는 폐쇄되었다며 잊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가리고 눈 안쪽의 정명혈(睛明穴)을 점혈하여 시신경을 마비시킨 후에, 앞으로 명이 있을 때까지 입을 열거나 흑의들 간에 사사로이 신체접촉을 하는 이들은 즉살한다고 했다.
눈을 가리는 목적은 지옥도의 위치를 우리 흑의들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의도 같았다.
그 어두운 선실의 일곱 흑의(黑蟻) 중에 732호도 있었다.
오랜 시간 흔들리던 배가 멈추고 여전히 눈을 가린 채로 교두들의 손에 이끌려 간곳은 선실보다 훨씬 좁은 곳이었다.
흑의들이 숨소리가 훨씬 가까운 곳에서 느껴졌다.
바퀴 구르는 소리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서책에서만 배웠던 마차에 탄 듯 했다.
어느 순간 곁에 앉은 흑의가 732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찾아서 쥐고 손바닥에 빠르게 글씨를 썼다.
‘현월(玄月)’?
답이 왔다.
‘야우(夜雨)‘?
지옥도를 떠나기 얼마 전 비가 주륵주륵 내리던 밤에 732호가 나를 찾아 왔었다.
그리고 내개 입맞춤을 하며
“네 눈속에 비가 내려..야우(夜雨)가..”
라고 말했었다.
교두들의 눈이 무서웠지만 그래도 재빠르게 다른 글을 손바닥에 적었다.
‘칠년후(七年後) 동정호(洞庭湖) 악양루(岳陽樓)’
732호 ..아니 ‘현월‘이 내손을 깍지 끼어 한번 힘차게 쥐고는 손을 떼었다.
지옥도에 있던 어린 시절부터 우리 흑의들은 수천 년 중원의 역사와 세외의 언어를 배웠고 각종 종교와 그 학문을 배웠다.
수만이 존재하는 강호문파의 연혁과 무공초식의 투로를 외웠다. 내공운기를 빼고서..
중원의 지리와 방언을 익혔다.
몸으로 익히고 머리로 외워야 했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흑의들은 바닷가 바위투성이 절벽으로 던져졌으니까.
현월이 중원지리를 제대로 익혔다면 칠년 후에는 현월을 동정호변(邊)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동안 마차를 타고 가던 중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흑의들의 숨소리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얼마 후에는 누군가가 내손을 위쪽으로 잡아끄는 것이 느껴지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알았을 때 누군가가 내 손을 붙잡고 경공을 시전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후에 경공을 멈춘 그 사람은 눈가리개를 풀어주고 눈의 점혈을 해혈한 후, 다시 내 눈을 얇은 천으로 가리고, 오랜 기간 눈을 감고 있어서 급격하게 햇빛을 보면 맹인이 될 수도 있다면서 사흘정도의 적응기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말했는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가 지옥도주 라는 것을 알았다.
사흘간 곁에서 숙식을 도와주던 지옥도주가 내 눈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후에 바로 떠나갔다.
그의 머리에는 여전히 피처럼 붉은 두건이 씌워져 있었다.
그가 떠나면서 한 마지막말은
“철련(鐵聯)의 팔수회의(八首會議)에 참석해라. 기한은 구년..이것은 명령이다.”
였다.
철련 팔수회의는 철련(鐵聯)의 련주(聯主)와 군사(軍師), 그리고 무상(武相) 그 외에 철련을 구성하는 문파수장들의 평의회(評議會)에서 선출된 다섯명만이 참가할 수 있는 철련의 최고 의결기관이고, 팔수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은 철련의 련주도 따라야 한다고 배웠다.
팔수회의 ... 구년... 그리고 명령...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지옥도에서 치 떨리게 경험했다.
장기적이고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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