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소설가 유관필 - 9부
본문
유관필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목소리는 긴장되어 있었다. 유관필은 당철기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어르신, 예인이를 부르겠습니다."
"그럴 것 없네. 그저 좀 쉬고 싶다네. 힘이 없어 그러니, 사랑에 방 한 칸 내어줄 수 있겠나."
"그러시지요."
유관필의 안내를 받아 방에 드러누워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당철기가 큰 한 숨을 쉬었다.
"허무하구만."
답답한 마음에 창을 열었다. 찬 바람과 함께 날카로운 그믐의 달이 떠있는 하늘은 어두웠다. 그뭄이던가. 인생이란 덧없음을 이미 알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건만. 속이 차질 않았다. 담배를 피울까 해서 장죽을 찾다가 유관필을 협박하느라 부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방을 휘휘 둘러봤지만, 보이지 않아서 유관필에게 혹시 장죽이 있나를 물어보려 다시 식사가 차려진 주방으로 향했다. 두런두런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들의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동생의 말은 아버님은 괜찮으실거란 말인가?"
"네. 어르신은 괜찮으실 겁니다."
"내 평생 아버님의 저런 얼굴은 본 적이 없네. 내 엄친이시지만, 독왕 당철기가 몇 마디 말에 무너지다니, 나로서도 충격이네. 그런데, 자네는가 무엇을 말했기에 아버지께서 저리 실의에 빠지신 건지 좀 쉽게 설명해줄수는 없겠나."
"원래 뭔가를 얻을수록 잃어가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죠. 살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실패를 통해 배웁니다. 적송자 어르신도, 형님도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으시지요?"
"뭐, 나야 자네가 아는대로 그렇지만, 적송자 어르신은 청성의 최고 고수신데..."
"나도 자네 가친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네. 이 나이 먹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그런데, 장주는 그 작달막한 양반이 자네의 이야기에 저리 될 것을 어찌 알았나?"
"내내 이겨온 사람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이라도 져서,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해본 적이 없는 사람만이 계속해서 도전을 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이 있지요. 화경을 깨달은 분들은 모두가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 벽이라는 것이 있지 않겠나. 화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그 커다란 벽에서 한 번쯤은 큰 절망을 한다고 들었네."
"제가 졌다고 한 것은 싸움에서의 패배가 아닙니다. 마음에서의 패배를 말하는 겁니다. 마음에서 지지 않는 사람만이 큰 열매를 따지요. 하지만 벽을 넘어 새로운 세계가 열리면 다시 두 부류로 나뉘죠. 계속 걸어가는 자와 뒤의 벽을 만지며 그 자리에서 새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요. 계속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찌됐건 세상과는 멀어지게 되지만, 벽을 기댄 사람은 벽에 의지해서 살아갈 건덕지가 생기는 겁니다."
"자네 말이 어렵군. 쉽지 않네."
"정성껏 준비한 식사인데 식겠습니다. 식사를 하시죠."
당철기는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화경에 기대서 살아왔기 때문이라니. 마교의 교주는 현경을 향해 나아가는 자라서 유관필의 이야기를 감당할 수 없지만, 자신은 화경을 기대는 것으로 어떻게든 살 수 있을거라는 말에 큰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화경에 기댄다.. 화경에 기댄다.. 그런 것이었나.
화경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환골탈태를 경험하면서, 몸이 세상과 강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육신을 통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관조하는 시선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세상사의 이치를 자기를 통해 나타내게 된다. 쉽게 말하면 자기 멋대로 살아가도 거리낄 것이 없게 되고, 부족하거나 더 상승의 경지를 노리지 않아도 될만큼 거대한 안도감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 거기서부터가 문제였어. 압도적인 안도감이 문제였던 것이다. 수련을 할 때는 늘 불편한 길을 선택하곤 했었다. 몸이 아프지 않으면 수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화경을 깨닫고 나선 어떤 일을 해도 어렵지 않게 되다보니 시간이 흐르며 잊게 되었던 것이다. 수련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라는 것을. 당철기는 화경의 함정에 빠져 현경의 길을 찾기를 실상 놓고 있었던 지난 십여년의 삶이 너무 아까웠다. 이 사내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당철기는 손가락을 들어 명진이 곱게 장식하고 있던 벽에 육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길지 않은 글의 내용은 간단했지만, 각오가 서려있었다.
"현경이 되어 돌아오마. 그 전에 내 손녀딸을 어찌 한다면 현경의 매운 맛을 봐야 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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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오늘은 이만 씁니다. 야담소설가 유관필을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쯤 10부를 아주 길게 쓸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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