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魂 無影客! - 4부 1장
본문
적혈존의 눈에 혈광이 일어났다. 잠시 어금니를 바득! 바득! 갈던 적혈존이 두 손을 높이 들었다.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적혈존의 발밑에서 혈무가 피어올라 전신을 휘감는 것이었다. 온통 벌겋게 된 그의 손에서 투명한 혈구(血球)가 형성되어 설 무영을 향해 날아갔다.
"놈…! 네놈을 기필코 죽인다! 바드득~!"
(헛…!)
설 무영이 강호무림에 나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강기였다. 사악하고 음사한 사기를 마주쳐 가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것을 느꼈다. 설 무영은 급히 몸을 우로 한 바퀴 회전하여 피하고는 검강을 일으켜 적혈존의 옆구리를 베어갔다. 때를 같이하여 적혈존의 좌측으로 이동했던 은비살의 몸에서 은강(銀剛)이 적혈존을 향해 주살같이 폭주하였다.
스으으응! 쐐액!
적혈존은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자, 우수로는 검강을 일으켜 설 무영을 막아가고, 좌수로는 장력을 일으켜 은비살에게 마주쳐 쏟아냈다.
퍼~엉!
극강의 혈무가 은비살의 전신을 엄습하였다. 은비살은 급히 몸을 비틀어 우족으로 적혈존의 턱을 걷어차고는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으…음!"
은비살의 입에서 한 가닥 선혈을 토해냈다. 그러나 그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적혈존을 향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적혈존은 장력과 검력을 모두 설 무영에게 날렸다. 혈무와 혈강이 침실 내를 가득 채우고 그 사기가 설 무영을 향해 태풍처럼 몰아쳤다.
(너무 강하다!)
설 무영의 이마에 땀방울이 주르르 흘렀다. 그는 급히 환영분신술(幻影分身術)로 적혈존의 눈을 어지럽힌 후 몸을 뒤집어 적혈존의 키를 넘어 반대편으로 날랐다. 설 무영은 순간적으로 적혈존을 등지게 된 꼴이 되었다.
"흐흐흐...! 대단한 놈이다."
적혈존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음소를 날리며 공력을 끌어 올렸다.
"흠.....?"
내공을 끌어 올리던 적혈존은 피붕을 푼 것과 산마혼경을 파손하게 한 것을 후회했다. 빛을 차단해 음지(陰地)의 힘을 받아야 그의 공력은 더욱 강력한 기력을 얻는 것이고, 산마혼경의 사기를 받으면 곱절의 공력을 얻는 것이었다.
적혈존은 단전으로 올리던 기력이 순탄치 않음을 감지했다. 허지만, 적혈존은 내공을 극으로 끌어 올렸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그의 하부를 가린 붉은 휘장이 나부꼈다.
"그러나 네놈 정도야.......!"
적혈존은 우수로 검강을 일으키며 투명한 혈구를 일으킨 좌수를 내 저었다. 우수에서 일어난 붉은 검강과 좌수에 피어난 혈강이 파공음을 발하며 맹렬한 속도로 날아갔다. 모든 것은 순간적인 일, 등을 돌리게 된 기회를 이용하여 설 무영의 등을 노린 것이었다.
"안 돼!"
위기일발의 순간, 은비살이 검강을 일으켜 설 무영과 적혈존 사이를 파고들었다. 설 무영을 보호하고자 하는 은비살의 살신성인(殺身成仁). 그러나 은비살은 당황지간에 미처 잊었던 것이었다. 설 무영은 어느 자세이던 발검을 할 수 있는 신검지경이라는 것을.
또한, 은비살은 항마삼공도 익히지 않은 탓에 사기가 실린 혈장을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콰르르…! 콰르르릉 쾅!
건물이 흔들리고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은비살의 몸이 낙엽처럼 날아가 대리석 벽에 부딪쳤다. 그는 또 한 번 울컥! 거리며 피를 토해냈다. 설 무영은 어느새 몸을 뒤집어 허공에서 환신비공술을 펼치고 있었다. 허공에서 몸을 엎드린 채 그는 우수에 용상검, 좌수를 신검(身劍)으로 검강을 일으켜 천상무형검결의 이절인 무형어검술(無形馭劍術)인 우주공벽류(宇宙空壁流)를 양손에 모두 펼쳤다.
설 무영의 전신에서 일어난 가공할 무형의 기류가 수천수만의 검날이 되어 그대로 천지를 휩쓸었다. 마치 빗발치듯 수천 가닥의 무형검기가 휩쓸어 혈존에게 향했다. 경악한 적혈존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에는 핏줄이 돋아났다.
"놈! 상상외의 무공이다. 실전된 천상무형검결이 빛을 보다니......."
실로 끔찍하고 가공할 광경이 일어난 것이다. 전설의 최상승 검술이 적혈존의 눈앞에 펼쳐 진 것이었다. 혈장을 맞고 벽에 부딪쳐 피를 토한 은비살도 눈앞에 펼쳐지는 설 무영의 무공에 입을 쩌 억 벌렸다. 너무나 빨라 인간의 시력으로 검의 방향과 실체를 볼 수가 없다.
설 무영의 전신에서 맹렬한 잠경이 일고, 삽시에 설 무영의 전신은 수많은 빛의 검이 뻗어 나와 뒤덮였다. 마치 온몸에 눈부신 빛의 검날을 품은 듯하였다. 적혈존은 식은땀을 흘리며 허공을 향하여 검강과 혈강으로 막아갔다.
우르릉! 콰쾅!
번개와 천둥이 일어나듯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석실 전체가 흔들렸다.
"우~욱!"
검흔과 함께 온몸에 선혈이 낭자한 적혈존은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 시뻘건 피를 토해냈다. 그의 두 눈은 선혈이 흐르듯 시뻘겋게 충혈 되고 검에 찢겨 간신히 하체만 가린 붉은 휘장은 피가 뭉친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무서운 놈이다. 본존이 패하다니......."
적혈존이 충혈 된 눈빛으로 설 무영을 노려보았다. 흑립에 가린 설 무영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다만 우뚝 서 있는 그의 몸에서는 적막감만이 흐르고 있었다. 적혈존은 쉽사리 감당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는 이를 바득 바득 갈았다.
"이 치욕을 반드시 갚으마.……!"
적혈존이 쌍장을 다시 내저었다. 설 무영은 몸을 비스듬히 비껴 세우고는 검강으로 막아갔다. 적혈존의 허초였다. 허초를 유발해놓고 적혈존은 바람같이 석실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우…욱!
설 무영은 뒤늦게 울컥! 핏덩이를 바닥에 쏟아냈다. 그도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지옥철타군(地獄鐵駝軍)에게도 당하지 않은 내상을 한사람과의 대결에서 입은 것이다. 그만큼 적혈존은 그에게 부담스러웠다.
"아, 음......!"
그를 쳐다보고 있던 은비살은 그때서야 혼절하여 쓰러지고 있었다. 설 무영이 급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은비살을 껴안은 설 무영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대경하였다.
"헛…!"
은비살은 적혈존의 혈공에 기혈(氣血)을 손상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설 무영을 당황케 한 것은 은비살의 모습이었다. 장력에 의해 은비살의 검은 부복은 너덜너덜 찢겨 있었다. 은비살의 찢어져 벌어진 앞가슴에는 백옥 같은 피부의 앙증맞은 젖가슴이 들어나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느꼈던 체취가 맞았던 것인가.......!?)
설 무영은 처음 은비살을 만나 격투를 벌였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뒤늦게 은비살이 남자가 아니라, 동영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인의 몸으로 고도의 상승무공을 익힌 자객이라니.......)
쓰러져 있는 은비살의 모습은 작은 암고양이처럼 탱글탱글한 자태였다. 지체할 수 없는 설 무영은 은비살을 안고 청사각을 빠져 나왔다. 은비살을 안고 나오는 설 무영의 모습을 보고 무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걸레 조각처럼 찢긴 의복에 선혈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은 지옥에서 나오는 혈인 같았다.
해남성을 장악했던 남혈부의 잔당들이 소탕된 상황이다. 장승처럼 서서 사태를 파악하던 설 무영이 청사각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우선 외딴 곳의 누각으로 은비살을 안고 갔다. 누각의 깊은 침실에 은비살을 눕히고 혈도를 찍어 응급조치하였다.
상화각(象花閣).
해남성의 성주 검절군황(劍絶郡皇) 백상익(帛象翊)이 거처하는 곳이다. 설 무영과 검절군황이 마주 앉아 있었다. 검절군황의 진중한 목소리가 흐른다.
"대협의 은공을 어찌 갚아야 할지......?"
"미약하나마, 응당히 해야 할 일이였습니다."
해남성은 백팔비파대원에 의거 모두 수습되고 평온을 찾았다. 검절군황과 사룡패왕(四龍覇王), 그리고 해남성의 살아있는 군사들은 모두 구출되었다. 지금은 해남성은 구출된 해남성 군사들이 경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조치는 설 무영의 지시를 받은 흑백쌍사와 십천간룡이 수행하였다.
사룡패왕 중 연조음왕(姸鳥陰王) 곽요화는 무공을 전폐 당한 채 뇌옥에 갇혔다. 혈존의 첩자인 그녀가 모든 음모의 하수인이었던 것이다. 검절군황에게 미혼독약을 복용케 한 것도 그녀이고, 전도련의 남편이자 검절군황의 영식인 백도준(帛跳峻)과 검절군황의 부인을 죽게 한 것도 그녀였다.
더욱 가공할 일은 검절군황의 입에서 쏟아진 실토였다. 검절군황과 곽요화가 은밀히 정을 통하는 정부사이였다는 것이었다. 곽요화는 검절군황 부인의 친척으로 자매 같은 사이였다. 그러하기에 해남성의 누구도 곽요화를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내가 천추의 죄인이야......! 으 흐흑!"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털어 놓는 해남검법의 달인이었던 검절군황의 모습은 처참하였다. 흩어진 장발 사이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는 얼굴이 반쪽 문드러졌고, 다리가 절단된 상태였다.
"그것이 어디 성주님 혼자의 잘못입니까? 자책하지 마십시오. 해남성 가솔들 전부의 책임도 있습니다."
이때 검절군황의 뒤에 죄지은 사람처럼 서 있던 사룡패왕 중 세 노인이 부복을 하였다. 그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이유는 있었다. 검절군황을 인질로 그들을 제압하는데 어찌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가신(家臣)인 저희의 책임이 크옵니다. 벌을 주십시오."
그들을 대표해서 금룡패왕(錦龍覇王) 전광문(顚洸雯)이 말을 하였다. 검절군황이 손을 내 저었다.
"아니오! 그대들의 충절을 어찌 모르겠소. 그대들은 오히려 본주 때문에 고통을 당한 것이오."
"성주님!"
그들은 다 같이 애절함 슬픔을 자아냈다. 검절군황이 설 무영의 손을 맞잡았다.
"대협! 대협의 이야기는 모두 들었소. 부디 중원무림이 평온을 찾는데 힘이 되어 주시오."
"아닙니다! 미약한 소출은 자신의 일도 다 못하는 미생이옵니다. 다만 그들이 다시 해남성을 찾고자 무슨 음계를 쓸지 모르니 만전을 기해야 할 것 입니다."
"아니오! 본주는 이번에 굳게 결심한바가 있소. 미력하나마 이것이 대협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오! 받아주시오."
검절군황이 내민 것은 해남성주의 권위를 표시하는 군황옥패(郡皇玉牌)였다. 설 무영은 펄쩍 뛰며 거절하였다.
"아닙니다! 소성주가 살아 있습니다."
"뭐라고.......?"
이것이 무슨 말이란 말인가? 검절군황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설 무영을 바라보았다. 삼룡패왕도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설 무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전도련과의 일을 설명하지만 육체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것이, 우연한 기회에 소출이 두 모녀를 구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 딸아이도 살아 있단 말이오?"
금룡패왕이 한발 나서며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연락을 취했으니 머지않아 이곳에 올 겁니다."
설 무영은 흑백쌍사와 백팔비파대를 보내고, 십천간룡에게 모종의 지시와 함께 전도련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사전조치를 취해 놓은 것이다.
"손주가 살아 있었구나. 천운(天運)이야!"
눈물이 글썽한 검절군황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대협!"
금룡패왕이 불쑥 설 무영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무릎을 꿇으려던 금룡패왕이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 있다가 강력한 기도에 의해서 일어섰다.
금룡패왕, 전도련의 부친인 그가 누구인가? 해남성에 가신으로만 남아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웬만한 무림종파의 종주도 그의 금각패류공에 오십초를 견디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그가 설 무영의 공력을 당하지 못한 것이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금룡패왕이 설 무영을 바라봤다.
(대단한 잠룡이다!)
그러나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설 무영의 입가에는 여인내의 미소 같은 아름다움이 흘렀다. 설 무영이 금룡패왕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소출의 빙장이십니다."
"허........!"
금룡패왕은 설 무영의 전음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비운의 과부가 된 딸의 생명을 구해 준 것도 고마운데 거두어 주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잠룡이 자신의 사위라는 말이다.
"으하하하.......!"
금룡패왕은 앙천대소를 하였다.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었다. 허지만, 설 무영이 다른 사람과의 입장을 생각해서 자신에게 전음으로 말했다는 것을 알고는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다. 감정을 감추다 못한 그는 입을 막고 큭큭 거리며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어리둥절하였으나 모든 것이 잘 되어서 그러려니 하였다.
그들은 다시 해남성의 앞날에 대해서 방안을 강구하였다. 그들의 회포를 풀며 앞날을 계획하는 동안 밤이 물러가고 여명(黎明)이 밝아오고 있었다.
해남성의 깊은 내실.
전도련이 예전에 사용하던 내실이다. 설 무영은 지금 임시조치로 혈을 집힌 채 침대에 잠들어있는 은비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상되고 엉킨 기혈을 치료하자면 기혈(氣穴)과 경락(經絡) 혈맥(穴脈)을 두루 타혈하여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
그녀의 검은 복면을 풀어냈다. 복면 속의 그녀는 동영여자 특유의 깜찍하고 귀여운 봉옥을 지니고 있었다. 철면냉심(鐵面冷心)으로 살인을 하는 인자답지 않게 순진하고 청초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검은 무복을 벗기고, 여인임을 감추기 위해서 가슴을 꽁꽁 싸맨 흑삼도 풀어냈다. 윤기가 흐르는 피부로 감싸인 두 개의 탱글탱글한 수밀도가 들어났다. 그것은 아담하고도 탐스럽기 그지없는 젖가슴이었다.
그녀의 벗겨진 모습을 바라보는 설 무영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가 어쩔 수없는 기연으로 전도련과 하루미와 정을 나누었고, 부지불식간에 소류진의 혈도를 풀기위해 나신을 보긴 했지만, 이처럼 적나라하게 여인의 알몸을 보긴 처음이었다. 그녀의 나신은 마치 요정(妖精)같은 인형의 자태였다.
수련으로 단련되어 건강미가 넘치는 은비살의 날렵한 나신은 앙증맞고 탐스러우며 탄력 넘치는 자태였다. 버들잎 같은 아미(蛾眉)와 살아있는 콧날, 붉은 장미 꽃잎을 물고 있는 듯 작은 입술과 볼그레한 도화색의 봉옥은 대단한 매력을 소유하였다. 섬세하게 다듬은 듯 봉긋한 젖가슴, 가녀린 허리와 풍만하지 않지만 탱탱한 허벅지와 매끄러운 둔부는 뇌쇄적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소유 욕망을 일으키는 몸매였다.
그녀의 비단결 같은 방초 사이로 살 프시 내 비치는 은밀한 다홍빛 비역에 시선을 향한 설 무영은 호흡을 깊게 들이켰다. 춘심이 일어나는 것을 억제키 위함이었다. 그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그녀를 살려야 할 것인가에 고심하였다. 혈마와 대화를 하는 장소에 그녀가 있었다.
그래서 설 무영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다. 중원족도 아니고 야래향을 배신하고 그의 수하로 오듯이 언제인가 배신할 수도 있고, 언젠가 그녀는 동영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설 무영, 그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그녀는 몸을 던져 부상을 입지 않은가? 내가 상대를 믿지 않으면 상대도 나를 믿지 못하는 법은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다.
(그래! 일단 상처를 치료하는 게 도리이거늘........)
설 무영은 심중을 굳히고 그녀의 나신을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거궐(距蹶), 유부(蹂府), 음고(陰曲), 장문(障門), 정인(庭咽)등 기혈과 십팔경락(十八經絡)을 두루 타혈하고 잠시 숨을 돌이켰다. 이제 여인에게 중요한 음혈을 타혈하여야 한다.
그는 서슴지 않고 젖가슴에 있는 유근혈(乳根穴)을 비롯해 삼근혈(三根穴), 청정혈(鯖井穴), 요추혈(腰推穴), 강장혈(腔腸穴) 그리고 그녀의 치부에 있는 회음혈(會陰穴)을 타혈하고 장문혈(掌門穴)에 장심(掌心)을 대고 기도를 불어 넣었다.
그가 타혈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에 은비살이 눈을 뜨고 깨어났다. 그녀는 무심코 일어나다가 설 무영의 앞에 나신으로 있는 자신을 보고는 동영어로 외마디를 질렀다.
"으악! 와루단시(나쁜놈.惡男子).!"
"......!"
그녀는 벗어 놓은 무복으로 치부를 가리고, 금방이라도 살수를 펼칠 듯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설 무영을 바라봤다. 잠시 그녀는 온 몸의 기맥을 살폈다. 예전보다 더 활기 넘치게 기도가 넘치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내공도 예전보다 높아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이내 모든 상황을 알아채고는 급히 설 무영 앞에 자객의 모습으로 한쪽 무릎을 꿇어 좌궤(左跪)를 했다.
"주군! 무례를 범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동영 자객은 툭 하면 목숨을 버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가치 없는 목숨인가?"
설 무영이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은비살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 동정녀로서 청백지신(淸白之身)의 몸이었다. 그녀가 여인인 것을 중원천지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본능에 의한 무의식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은비살은 이미 생명을 바친 주군에게 무례를 범하는 언사를 내 뱉은 것이었다. 그녀는 설 무영의 가신이기에 마음뿐만 아니라 여인의 육체까지도 주군의 것이었다. 동영에서는 주군에게 무례를 범할 경우 그 즉시 참형을 당하고 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마땅한 잘못입니다. 주군!"
"나도 그대를 죽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 중이었어. 왜 그런 줄 아는가?"
"......?"
은비살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모든 상황을 살핀 설 무영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신분에 대해서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야."
"소저의 이름은 유끼고입니다. 죽여주십시오!"
그녀는 여인이라는 의미보다는 생명을 받쳐 주군을 모시는 무사로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이 뽀얀 피부의 무릎에 떨어져 내렸다.
똑!
문득 설 무영은 은비살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사연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어린나이의 여인으로 머나먼 이국에서 남자들도 거친 자객 생활을 하는 그녀에게 아련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대는 지금 여인일 뿐이야......."
설 무영의 그 말 한마디에 그녀의 봉목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속하는 주군의 것 입니다......."
"아니야! 나는 그대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네. 그대를 아낄 것이네."
설 무영은 진정한 마음이 울어나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으흐흐…흑!"
그러자 그녀는 봇물 터지듯이 눈물을 흘렸다. 남자로 살려고 마음먹은 그녀로서는 처음으로 들어보는 다정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대의 생명이 내 것이라면, 나의 생명을 그대에게 맡긴 것이다. 너는 나의 그림자이고, 너는 나의 그림자이니라. 나를 지키려면 너의 생명을 지켜라."
설 무영은 의미 있는 말이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은비살은 이처럼 가슴 넓은 깊은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은비살이 설 무영의 가슴에서 벗어나 무릎을 꿇었다.
"주군! 신명을 다해 주군을 따르겠습니다."
은비살의 말은 신념으로 가득하지만 목소리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한마디가 설 무영의 분신이며 여인으로서도 수호가신(守護家臣)이 되는 순간이지만, 장차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이 벌어질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그래, 고맙소! 헌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소?"
"하명하십시오!"
"야래향을 그렇게 배반해도 괜찮은 것인가?"
"야래향은 법칙이 있습니다. 살수를 실패하여 신분이 나타나거나 배반하면 추살되거나 동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동영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운명입니다."
"허허…! 그러면 죽음을 각오하고 남아 있었다는 말인가?"
설 무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한편으로 문득 은비살의 내면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의구심읋 알 수 있었는지 그녀가 몸을 사리며 입을 열었다.
"단지…!? 중원에 살아남으려면.......!"
".........?"
은비살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하려고 했다. 문득 물기가 젖은 은비살의 눈빛이 설 무영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은비살의 동영 이름은 유끼꼬! 그녀는 자신의 사부였던 요시테루(義輝) 사부의 진언을 떠올렸다. 그녀의 설화(雪花)같은 봉목에는 상대를 흡입하는 눈빛이 담겨 있었다. 또한 유끼꼬의 오목조목하고 앙증맞은 자태는 비에 젖은 한 떨기 금영화 송이 같았다.
설 무영과 눈빛이 마주치자 슬며시 시선을 밑으로 떨어트린 은비살이 말을 이었다.
"야래향의 수석 향주(香主) 해당화(海棠花)가 되어야 합니다."
"해당화(海棠花)?"
"네…! 수석 살수이자 향주의 암호 명칭이 해당화입니다."
"어떻게.......? 야래향은 사인(四人)의 수석자 의결에 움직인다던데......."
"야래향의 자객은 주로 동영인입니다. 동영인은 인자(忍者)라 하고, 다른 민족의 자객은 은자(隱者)라 합니다. 수석회의 참석자는 삼인의 인자와 일인의 은자로 되어 있고 그 증에 수석향주가 해당화입니다. 한명의 수석자는 동영인으로 사정이 있어 동영으로 돌아갔고, 또 한명의 중원인 수석자는 살수 수행 중 며칠 전 주군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허…! 그럼 다른 한 사람과 무술 대련이라도......?"
"아닙니다! 같은 소속의 자객끼리는 대결을 안 합니다. 그건 영원한 적이 됩니다. 단지 자객원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건 어려운 일이겠군?"
"그게......."
은비살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괜찮으니. 말하라."
"자객원 끼리는 상대를 볼 수 없고, 집회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향주를 선출한다는 다수 수석자의 의견이 일치되면 야래향의 자객들만이 아는 향주 선출 비방(秘枋)에 의거 자객원의 비밀 투표로 향주를 선출합니다."
"그러면 지금 입장에서는 향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이군. 왜 그러면 지금까지 수석이 네 명이었지?"
"그것은........"
은비살은 말을 중단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설 무영이 다그쳐 물었다.
"무슨 사연이라도......?"
"지금 남은 수석자는 그 자와 속하 둘인데....... 그자는 깊은 내막이 있어 표면에 나타날 수 없는 은둔자 입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암호명이 해당화인 향주가 있었으나 한명의 향주가 공석이 되면 야래향의 조직이 흔들렸고, 유고시에 대행하는 문제가 있어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설 무영이 물었다.
"흠…! 그러면, 수석자가 되는 길은.......?"
"야래향에는 철칙이 있습니다. 수석 입관을 위한 지옥의 삼문을 통과하고, 향주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열 명의 고수로 구성된 살수자하고 대련을 통과해야 됩니다."
"그럼, 내가 할까?"
"주, 주군!?"
은비살이 놀라며 설 무영을 쳐다보았다. 설 무영은 빙긋이 웃고 있었다.
"왜?"
"그, 그건 생사를 거는 일인지라......."
"후후…! 여인의 몸인 그대도 인자로 통과하지 않았는가?"
짓궂은 웃음을 띠고 바라보는 설 무영과 시선을 마주친 은비살이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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