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279부
본문
운명(運命)이란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미래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건조하고 재미없겠는가? 예전에 무경이 풍운에게 천기(天氣)에 대해 알려주려 했다. 풍운은 듣기를 거부했다. 운명(運命)이란 스스로의 선택과 노력 그리고 주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풍운은 수혜와 아라를 포기하지 않는다. 남들은 운명(運命)이라고 포기하라고 하지만 운명(運命)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의 문턱을 지나 한겨울로 들어섰다. 이제 열흘정도만 지나면 올해도 끝났다. 18살을 지나 19살이 되는 것이다. 들판에 앙상한 가지들만 남은 나무들이 즐비하다.
“눈! 벌써 눈이 오는 건가?”
무당산으로 달려가던 풍운이 발걸음을 멈추고 대지(大地)를 뒤덮는 눈을 바라본다. 바쁘게 살다보니 계절의 변화도 모르고 있었다. 풍운은 눈을 보자 가슴이 아려온다. 영장평원에서의 혈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수혜와 아라는 그때 흑풍대의 화살 때문에 생강시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눈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건만........?”
풍운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눈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건만 함께 있던 그녀들은 겉에 없다. 풍운은 머리를 흔들었다. 감상(感傷)에나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해야 할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않는가? 풍운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무당산으로 향했다.
무당산은 호북성 균현에 있다. 남웅주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하늘로 높이 솟아있고 그 모양은 향로 같으며 사시사철 안개에 싸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형주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균현 남쪽 이백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오악의 하나라 한다. 수경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무당산은 산세가 수려해 봉우리가 향로 같으며, 증수가 산기슭에서 발원된다.’ 무당산기에는 보다 자세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산의 둘레는 사, 오백리. 많은 봉우리 중에 삼령이란 봉우리가 있는데 높이가 이십여리에 달하며 늘 구름에 싸여 있다. 해가 이곳에서 떠올라, 이곳에서 저물어 일조산이라도 한다. 하여 많은 참배자가 모여들며, 도관이 많이 세워져있다.’ 여지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모두 72봉과 36암, 24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주봉. 일명 자소봉이라 한다.’
풍운은 밤이 깊은 시간, 소복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자소봉으로 오르고 있었다.
“여기 근처 같은데?”
풍운은 기억을 떠올리며 주변을 살펴보다가 절벽에 위태롭게 자리한 조그만 암자를 발견했다.
“찾았군. 근데 날이 너무 어두워졌군.”
풍운은 주변을 살펴보다가 높다란 나무위로 올라갔다.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가는 것은 예의(禮義)가 아니기에 날이 밝으면 찾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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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을 출발한 배화교 본진이 섬서성 한중(漢中)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주위를 둘려보던 혁린강이 사마(四魔)와 육마(六魔)를 불렸다. 화산파를 책임진 사마(四魔)와 종남파를 담당한 육마(六魔)일행이 동행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르셨습니까?”
“들어오세요.”
사마(四魔)와 육마(六魔)가 마차로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시안의 보고에 의하면 섬서성 서안에 머물고 있던 무림군이 종남산으로 갔다고 합니다.”
“서안 같은 대도시에 머무르기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죠. 그러고 보니 육마(六魔)만 좋아졌네?”
“제가 좋아지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무림군이 계속 서안에 있었으면 육마(六魔)가 종남을 책임져야 하잖아. 그런데 그놈들이 종남에 있으니 공자님과 함께 가잖아.”
“그래서 배알이 꼴려요.”
“당연히 배알이 꼴리지 않겠어.”
“두 분 모두 조용하세요. 제가 두 분을 보자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입니다.”
“말씀하세요.”
“이곳 한중에서 종남산까지는 천천히 가도 이틀이면 도착합니다. 화산은 조금 더 멀죠. 또한 방향도 틀려요.”
“여기서 갈라지자는 말씀입니까?”
“그게 좋아요. 종남과 화산은 지척에 있습니다. 우리가 종남을 먼저 치면, 화산에 종남의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그럼 기습하기 힘들겠죠.”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마(四魔)님께서 서두르세요. 저희들은 느긋하게 따라가겠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5일 후 자시(11~1시 사이) 화산을 공격하세요. 저희들도 시간에 맞추어 종남을 공격하겠습니다.”
“동시에 치자는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서둘러야겠군요.”
“사마(四魔)님께서 수고 좀 해주세요. 아참~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무리한 공격은 지양(止揚)하셔야 합니다. 적당히 공격하다가 물려나도 관계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마(四魔)님만 믿겠습니다. 출발하세요.”
사마(四魔)는 각각 이천의 흑풍대와 혈영대를 이끌고 화산으로 출발했다.
“벽안환요(碧眼煥妖)언니가 잘 하실지 모르겠네요.”
사마(四魔)가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마(六魔) 중얼거린다.
“무리한 공격은 삼가라고 했으니 잘 하시겠죠.”
“불같은 분이라 조금 걱정이 되지만 저도 믿고 있습니다.”
사마(四魔)가 화산으로 향하고 혁린강과 육마(六魔)가 종남산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중원 각지로 흩어진 배화교는 먹잇감을 찾는 늑대처럼 목표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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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여명(黎明)이 밝아오고 있다. 고개를 돌려보니 숲 속 공터에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 풍운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본다. 특이하기 때문이다. 사내로 보이는 그림자는 장검(長劍)으로 계속해서 원을 그리고 있다. 둥글게, 둥글게, 때로는 작게. 때로는 크게. 사내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원을 그린다. 풍운은 어둠에 구애됨이 없이 모두 사물을 직관할 수 있기에 사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바로 자신과 몇 번 손발을 섞었던 현원자다.
“시작이 있음에 끝이 있고, 끝이 있음에 시작이 있는 것인데, 원이란 그 시작과 끝이 없으니 영원불멸(永遠不滅)하다.”
“누구냐?”
현원자가 풍운이 있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소리친다. 풍운은 엉덩이를 떨고 있어나 현원자 앞에 떨어졌다.
“본의 아니게 수련하는 모습을 홈쳐봤군요. 죄송합니다.”
무림에서 다른 사람이 수련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은 금기(禁忌)로 되어 있다. 현원자는 풍운의 위아래를 흩어보며 미간(眉間)을 찌푸린다.
“처음 보는 분인데, 누구시죠.”
풍운이 역용을 하고 있기에 현원자가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태청진인을 찾아왔습니다.”
“사부님? 누구신데 사부님을 찾습니까?”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풍운의 당당한 태도에 현원자의 얼굴이 구겨진다. 무당의 금역에 무단으로 들어와 사부를 만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여기가 금역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면, 지금 당신이 큰소리 칠 입장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 않나?”
고분고분했던 말투가 단번에 바뀐다.
“알죠. 하지만 예의(禮義)나 따지고 있을 만큼 한가한 입장이 아니네요.”
“말로해서는 알 될 친구로군.”
현원자가 검(劍)을 가슴 높이로 올리며 내공을 끌어올린다.
“죄송하지만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
“흥~ 어딜 도망가?”
풍운이 허공으로 솟구치니 하얀 검기(劍氣)가 다리를 베어온다. 하지만 풍운은 검기(劍氣)를 무시하고 음양비로 더 높은 곳으로 솟구친 다음 제비처럼 방향을 틀어 암자를 향해 날아간다.
“저건, 음양비. 이놈 가만두지 않겠다.”
풍운과 몇 번 손발을 섞어본 현원자는 음양비를 단번에 알아보고 뒤를 쫓는다. 하지만 음양비는 무림에서 가장 빠른 경공이다. 현원자가 전력을 다해 제운종을 펼쳐보지만 풍운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뿐이다. 멀리서 들리는 제자의 고함소리에 태청진인이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빛처럼 날아오는 사내를 발견했다.
“사부님. 조심하세요.”
사내를 쫓아오는 현원자의 고함소리에 태청진인은 손에 내공을 끌어 모아 가볍게 후려쳤다. 풍운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한없이 부드럽고 유연한 기운이 다가오자 수라기를 끌어올려 팔로 원을 그렸다. 부드럽게만 보이자만 그 속에 숨어 있는 힘을 알기 때문이다.
“뻥~”
작은 폭음과 함께 태청진인이 낭패한 표정으로 비틀거리고, 그의 앞에 풍운이 착지했다.
“멈추세요. 적(敵)이 아닙니다.”
태청진인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내공으로 온몸을 보호하며 풍운을 살펴본다. 가볍게 생각하고 사성 내공으로 면장을 뿌렸다. 그런데 자신의 장(掌)이 바다에 빠진 조약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상대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자신이 밀려났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태청진인은 상대가 자신보다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거나 최소한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사부님. 괜찮으세요.”
현원자가 두 사람사이에 떨어졌다.
“괜찮다. 그런데 저놈은 누구냐?”
“마수마랑입니다.”
“마수마랑? 저놈이 네가 말하던 마수마랑 풍운이라는 놈이란 말이냐?”
“확실합니다.”
태청진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풍운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조금 전에 보았기에 상대가 극강(克剛)의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을 보면 무공을 익힌 흔적은 고사하고 곱상하게 생긴 젊은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상대가 무공을 익힌 흔적이 없어져 평범한 사람처럼 변한다는 반박귀진 (返撲歸眞)의 경지란 말인가?
“허황된 소문이 아니로군.”
태청진인은 내공을 거두고 바짝 긴장하고 있는 현원자의 어깨를 잡았다.
“물러나라.”
“제게 맡겨주세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네 상대가 아니다.”
“제가 합니다. 저놈은 반드시 제 손으로......?”
“물려나라고 했다. 일단 찾아온 목적부터 들어보자. 그냥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 아니냐?”
“위험합니다. 저놈이 어떤 놈인지 아시지 않습니다.”
풍운은 사제간의 실랑이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공격하려면 벌써 했겠지. 일단 검(劍)부터 치워라.”
태청진인이 검(劍)을 잡고 있는 현원자의 팔을 잡고 질문한다.
“자네가 마수마랑인가?”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마수마랑 풍운입니다.”
풍운이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한다.
“태청진인이라고 하네. 그래. 무슨 일로 왔나?”
“태청진인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나에게?”
“사부님 속지 마세요. 거짓말 입니다.”
“너는 가만있어.”
당장이라도 풍운에게 달려들려는 현원자에게 태청진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니, 현원자는 입술을 깨물고 검(劍)을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결판을 내고 싶지만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다.
“할말이 뭔가?”
“차라도 한잔 주시죠.”
“하하하~ 배짱하나 두둑하군. 사내라면 그만한 배짱은 있어야지. 좋아. 마음에 들어. 현원자. 차를 준비해라.”
“예? 차요..........아~ 알겠습니다.”
현원자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풍운을 노려보다가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부엌으로 갔다.
“들어가세요.”
남자끼리만 사용하는 암자치고는 깨끗하다. 풍운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태청진인과 마주앉았다.
“자네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네.”
“아름답지 못한 소문만 무성하죠?”
“같은 사물이라도 보는 사람의 시각(視覺)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 같은 소문을 들어도 듣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법이라네.”
“현원자님께서 좋게 말씀하실 분이 아닌데?”
“하하하~ 자네라면 이를 갈더군. 하지만 그건 그놈의 생각이고, 나는 생각이 달라. 자네는 최근 들어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네. 혜성처럼 나타나서 수많은 기행(奇行)을 일삼고 있지.”
“기행(奇行)?”
“왜~ 기행(奇行)이라고 하니 이상한가?”
“남들은 모두 욕하는데 좋게 해석해 주시는군요.”
“사부님. 들어가겠습니다.”
밖에서 들리는 현원자의 말에 태청진인이 입을 다물었다. 현원자가 차를 내려놓고 자신도 자리에 앉는다. 풍운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사부를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들게.”
“감사합니다.”
풍운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는다.
“이제 잡담을 그만두고 찾아온 용건을 말해보게.”
풍운은 현원자를 힐긋 쳐다보더니 입술에 침을 바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배화교에 대해 들으셨을 겁니다. 놈들은 50년 전의 패배를 설욕(雪辱부끄러움을 씻음)하고 중원 무림을 정복하기 위해 또다시 옥문관을 넘어왔습니다.”
“.........”
“공동파가 피에 잠기고, 아미와 청성이 불바다가 되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놈들의 마수(魔手)가 중원 전역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죠. 배화교에 동조하는 북해빙궁이 악양 깊숙이 들어와 칼을 갈고 있고, 흑독애는 흑독애 대로 야욕(野慾)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풍운의 이야기가 계속되자 태청진인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한다. 취걸개에게 들어 배화교의 야욕(野慾)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됐는지는 몰랐다.
“방금 놈들의 마수(魔手)가 중원 전역을 뒤덮고 있다고 했나?”
“사천을 장악한 배화교가 열패로 갈라져 중원전역으로 흩어졌습니다. 또한 빙궁의 본진이 악양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5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려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네는 아는 것이 많군.”
“........”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의도가 뭔가?”
“지금은 위기상황입니다. 한사람이, 한문파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중원 무림인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
“진인께서 도와주세요.”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군. 다 늙어빠진 날보고 도와 달라? 그게 가당치나 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나.”
“50년 전에도 진인의 역할은 지대했습니다. 진인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중원 무림은 그때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때하고 지금하고 같다가 생각하나.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장문인을 찾아가야하지 아무런 힘도 없는 나를 찾아와서 매달린 듯 무슨 소용이 있겠나?”
“사부님.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당장 쫓아버리세요. 아니다. 이런 놈은 단칼에 베어버려야 합니다.”
사부 때문에 힘들게 참고 있던 현원자가 폭발한 모양이다.
“가만있어.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사부의 호통에 현원자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풍운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인께서는 무림인들 모두가 경외(敬畏)하는 분입니다. 50년 전처럼 힘을 모야주세요.”
“50년 전과는 상황이 틀려. 나하나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네.”
“금정신니님께서도 힘을 보태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답답한 친구로군. 무혜성승이나 금정신니가 문제가 아니야.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와 등을 돌린 마마검재나 천외자는 어떻게 할 건가? 또한 천무일룡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라.”
“마마검제님과 사인마도님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태청진인은 풍운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무엇을 믿고 큰소리치는지 모르겠지만 불가능한 이야기야.”
“믿어주세요. 자신이 있습니다.”
마수마랑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마마검제의 손녀와 사인마도의 딸이 놈과 각별한 사이라는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영감탱이들이 콧방귀나 안 뀌면 다행일 것이다. 자신들이 당한 것이 있는데 나서겠는가?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마마검제와 사인마도 그리고 천외자를 먼저 설득하게. 그럼 나도 군소리 없이 동참하겠네.”
“그, 그런?”
“왜! 자신 없나?”
풍운은 할말이 없는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인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가려고.”
“가야죠. 가서 또 다른 분을 만나야죠.”
“자네를 위해 충고하나 하지. 괜한 헛수고 하지 말고 일찌감치 포기하게. 그렇게 쉽게 설득당한 늙은이들이 아니야.”
“중원 무림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쳐했는데 노력을 해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고집 하나는 대단한 친구로군. 멀리 나가지 않겠네.”
풍운이 태청진인께 인사하고 나오니 현원자가 따라온다. 태청진인은 마당으로 나와 제자와 풍운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맑기만 하거만 중원 무림은 먹구름에 쌓여 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좋단 말인가?
“거기 서.”
암자에서 멀리 떨어지자 현원자가 차갑게 말한다. 풍운은 천천히 돌아섰다.
“네놈을 이대로 보내줄 수는 없지. 무기를 들어라.”
현원자가 살기(殺氣)를 뿌리며 검(劍)을 잡는다.
“보내 주세요.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히 경고했다. 나중에 원망하지 마라.”
“쓸데없는 싸움에 정력을 낭비하지 마시고, 지금의 그 분노와 살기를 새외 놈들을 향해 돌리세요.”
“말이 많군. 이거나 받아.”
번쩍하는 빛과 함께 날카로운 검기(劍氣)가 허리를 베어온다. 풍운은 수라기를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며 칠성둔형을 펼쳤다. 검기(劍氣)가 아슬아슬하게 허리를 스치고 나간다.
“흥~”
현원자의 냉소와 함께 검(劍)이 빙글 회전하니 둥근 원의 검기(劍氣)가 목을 베어왔다. 풍운은 자세를 낮추어 검(劍)을 피하며 물려나려 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는지 보자.”
검(劍)이 회전하며 무수히 많은 검기(劍氣)가 피어나 풍운을 압박한다.
“좋은 검법(劍法)이군요. 하지만 저를 붙잡기는 부족합니다.”
풍운이 손가락에 수라기를 모아 튕기니 열개의 붉은 강기(剛氣)가 빨랫줄처럼 날아가 검기(劍氣)들을 베어버린다. 풍운이 음양지(陰陽指)로 압박하던 검기(劍氣)를 날려버린 것이다.
“이놈~”
하지만 현원자는 포기하지 않고 풍운을 향해 돌진하며 검(劍)을 뿌리니, 검(劍)이 일자나 늘어나 거대한 원을 만들어 풍운의 전신을 베어왔다.
“힘이 넘치는 군요.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풍운은 양손을 가운데 모으더니 앞으로 내밀었다. 현원자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음양장(陰陽掌)의 환(幻)결을 응용한 것이다.
“헉~ 이게 뭐야.”
현원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것 꿈이다. 어떻게 이게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무학이란 말인가? 하나의 점에서 시작한 장영(掌影)들이 백만 송이 장비가 피어나듯 사방으로 펼쳐진다. 두려움, 공포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마친 꿈을 꾸는 듯이 아름다고 황홀한 느낌이다.
“퍽~”
작은 파공음과 함께 장영(掌影)들이 사라지고,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는 현원자만 남아 있다. 현원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졌다. 마수마랑은 자신을 철저하게 조롱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엄청난 패배감이 짓누른다.
“일어나라.”
“사, 사부.........보셨습니까?”
“보았다.”
“주, 죽어주세요. 저 같은 놈은 살아있을 가치도 없습니다.”
“아프냐.”
“...........”
“분하냐?”
“..........”
“태극검은 강하다. 패한 것이 아니야.”
“보셨지 않습니까?”
“이정제동(以靜制動), 후발제인(後發制人)이라고 했다. 정으로 동을 제압하고, 느림으로서 빠름을 제압하라고 했다. 너는 마음을 다스리는데 실패했다. 의욕이 너무 앞서 기다리지 못했다.”
“제가 태극검을 오의를 깨달지 못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서 졌다는 말씀입니까?”
“상대가 너무 강했다. 네가 감당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
“그만 하산(下山)해라.”
“사, 사부.”
“더 이상 너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지금의 패배를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라.”
“저, 저를 버리시는 겁니까?”
“못난 놈! 무림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쳐해 있다. 남들이 무림공적이라 손가락질하던 놈도 저렇게 열심히 뛰고 있는데, 무당의 제자가 언제까지 산속에 처박혀 있을 거냐. 가라. 가서 무당이 결코 죽지 않았음을 천하들에게 고하여라.”
현원자가 흙을 움켜잡고 피눈물을 흘린다. 현원자라고 어찌 사부의 뜻을 모르겠는가? 비록 패배했으나 자신은 무당의 자랑이며 희망이다.
“명심해라. 태극검은 강하다. 마수마랑이 인간한계를 벗어났다고 해도, 네가 태극검을 완벽하게 익힌다면 절대 폐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나를 다스리지 못하면 검(劍)을 다스릴 수 없다. 사부는 너를 믿는다.”
태청진인이 천천히 돌아서서 암자로 향한다. 현원자는 멀어지는 사부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풍운은 터벅터벅 무당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설득하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태청진인은 끝내 자신의 청을 거절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나서면 자신도 동참하겠다는 말은 사실상의 거절이나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부딪쳐보니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포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차라리 이 시간에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야. 아니야.”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버린다. 무엇이 최선인지 모르겠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가자. 소림으로 가는 거야.”
풍운이 하늘 높이 솟구쳐 숭산을 향해 날아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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