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74부

본문

초희가 돌아간 다음 풍운은 말없이 동정호만 바라보고 있었다. 역용하는 것도 잃어버리고 본 얼굴이다. 수혜와 아라가 천려빙백강시가 되었다. 궁주가 악양에 있는 것을 보면 빙궁의 주력(主力) 또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말이며, 수혜와 아라도 함께 있다는 말이다. 초희는 아라와 수혜가 대부분의 이지(理智)를 상실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직접 들으니 가슴이 찢어진다. 




“운랑! 출항(出航)준비가 끝났어요.” 




옥선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대답이 없다. 풍운은 멍한 눈빛으로 동정호만 바라보고 있다. 옥선은 짧은 한숨을 쉬고 풍운의 손을 잡았다. 




“누구!” 


“저에요. 출항(出航)준비가 끝났어요. 출발할까요?” 


“그, 그래. 그렇게 해.” 




옥선은 무사들에게 출항(出航)명령을 내렸다. 풍운과 멀지 않은 곳에 옥선과 도치를 비롯한 일행들이 모여 있었다. 




“새벽에 빙궁주를 왔었어요?” 


“예! 천상루의 다정화와 함께 왔었어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한거죠.” 


“모르겠어요. 운랑과 궁주만 독대(獨對)를 하셨어요.” 


“일사(一死)님께서 아무말씀도 안 해주셨어요.” 


“궁주였다는 말씀만 하시고 계속 저렇게 계세요.” 




마수는 풍운의 뒷모습을 보고 짧은 한숨을 쉬었다. 궁아라와 벽궁수혜 때문일 것이다. 풍운에게 아라와 수혜는 특별하다. 한명은 목숨을 걸고 모시던 아가씨며 첫사랑이고, 한명은 자신을 남자로 만들어준 여인이다. 




“궁주에게 수혜님과 아라님에 대한 소식을 들으신 모양이군요.”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해요.” 


“답답하네.” 


“고민이 많으실 겁니다. 저희들은 물려가죠.” 


“그래. 나중에 무슨 말씀이 있겠지.” 




십이사(十二死)일행이 각자의 선실(船室)로 돌아가자 이제 부인들만 남았다. 




“운랑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네요. 벽궁수혜와 궁아라가 그렇게 특별한 여인들인가요?” 


“옥선언니는 그녀들을 모르지.” 


“언니는 아세요.” 


“대충 알고 있어.” 


“예뻐요.” 


“남자들이 보면 넋이 빠질 정도야.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벽궁수혜은 운랑의 첫사랑이고, 궁아라는 처음으로 운랑을 사랑해준 여인이야. 둘 다 운랑에게 소중한 여인들이지.” 


“저희들은요? 저희들도 운랑을 사랑하잖아요.” 


“우린 겉에 있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사랑하며 아껴줄 수 있잖아. 하지만 그녀들은 없어. 죽음의 문턱에서 운랑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만을 가지고 천려빙백강시가 된 여인들이야.” 


“벽하언니는 이해심이 많네요.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무경언니. 언니는 이해가 돼요.” 


“몰라요. 얼마나 상심(傷心)이 크시면 저러실까 걱정만 됩니다.”




무경의 말에 옥선이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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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에 있는 인공연못에 위치한 정자에 초희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북해빙궁에서 생활했기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마수마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였으며, 예의바르고 여자를 아낄 줄 아는 남자였다. 그의 겉에 많은 여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혜와 아라를 잊지 않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외모와 여자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남자. 


적수(敵手)를 찾기 힘들만큼 막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예의바르고 겸손한 남자. 


하인(下人)의 신분에서 무림을 좌우할 인물로 성장한 남자. 




세상 어떤 여자가 사랑하지 않겠는가? 마수마랑은 모두가 동경할만한 남자였다. 하지만 빙궁의 입장에서 보면 위험천만한 남자다. 그가 만일 적(敵)이 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의 겉에는 한명, 한명이 일문(一門)의 문주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고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해 온 동지들이 있다. 십이사(十二死)들만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그가 가진 신분이다. 장강수로십팔채의 차기총채주이며, 사사천교와 대륙상회의 태상호법이고 천마마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원 무림의 마도(魔道)와 사도(邪道), 녹림(綠林)뿐만 아니라 엄청난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대륙상회까지 움직일 수 있을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싹부터 밟아버려야 했어. 배화교를 괴롭히는 사냥개쯤으로 남아주길 바랬건만 이제는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목(巨木)이 되어버렸어.” 




초희는 고개를 흔들다가 뒤를 돌아본다. 정자로 통하는 다리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요기(妖氣)를 발산하는 여인들이 있었다. 바로 벽궁수혜와 궁아라 그리고 장옥이라는 여인들이다. 초희는 수혜와 궁아라를 바라보고 다시 연못으로 눈을 돌렸다. 마수마랑이 적(敵)이 된다면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빙궁의 최종 목표인 중원정복을 위해서 반드시 제거해야할 거목(巨木)이다. 




“이제 누구와 먼저 손을 잡을 것이냐의 문제인가?” 




북해빙궁의 힘만 가지고 중원을 정복하기는 힘들다. 또한 배화교와의 정면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힘들다. 결론은 배화교와 손을 잡고 마수마랑을 비롯한 중원을 먼저 칠 것인가? 아니면 마수마랑과 손잡고 배화교를 먼저 칠 것인가만 남았으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빙궁의 행보(行步)가 달려져야 한다. 




“당신들께는 미안하지만 마수마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초희는 수혜와 아라를 돌아보며 중얼거린다. 배화교와 빙궁은 중원정복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전대궁주인 냉가령이 교주의 부인이기에 일정지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중원을 정복한 이후 흑독애나 포탈랍궁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할지 모르지만 빙궁만은 최소한의 지분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적(敵)이 될 수밖에 없는 마수마랑과 손을 잡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마치 찬바람이 스며든 것처럼 가슴이 아려온다. 광야(曠野)에 버려진 어린 늑대가 온갖 위험을 극복하고 한 마리 맹수(猛獸)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도 모르게 정(精)이 들었기 때문일까? 초희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버려. 동정(同情) 때문에 대사(大事)를 그르칠 수는 없어.” 




초희는 자꾸만 약해져가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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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出航)준비를 끝낸 배들이 출발하려는데 동정호만 바라보던 풍운이 옥선을 부른다.




“부르셨어요.” 


“천상루와 빙궁에 대해 조사해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조사하라는 말씀이죠.” 


“천상루와 빙궁에 관한 일이라면 뭐든지 좋아. 특히 악양 근교를 철저하게 조사해봐.” 


“알았어요. 총채에 연락해서 조사하라고 할게요.” 


“나는 잠시 다녀올 때가 있어. 당신들 먼저 군산으로 가.” 


“어딜 다녀오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대륙상회, 그쪽에도 부탁하려고.” 


“그럼 운랑이 오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먼저 출발해.” 


“어떻게 운랑을 두고 저희들끼리 갑니까?”


“시간이 없어. 먼저 가서 장인어른께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해드려.”“휴~ 알았어요. 그럼 쾌속선을 남겨두고 갈게요. 그걸 타고 오세요.” 




풍운이 배에서 내리려는 순간 벽하가 달려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풍운을 만났는데 또다시 헤어지긴 싫었다. 




“운랑! 나도 갈 거야.” 




풍운은 벽하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벽하와 혈선(血腺)까지 내리자 배들이 출발했다. 풍운은 벽하가 머물던 객점으로 갔다. 사사천교의 혈장장로가 이끄는 사사철기군과 거패를 만나기 위해서다. 풍운은 객점에 도착하자 혈장장로를 불렸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벽하와 함께 군산으로 갈 겁니다. 장로님께서는 사사천교로 돌아가세요.”


“교주님께 별다른 명령이 없었습니다. 저희들도 함께 가겠습니다.” 


“교주께는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태상장로님만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벽하를 보호하던 혈장장로와 사사철기군이 돌아가고 이제 거패만 남았다. 




“거패. 너도 마련으로 돌아가.” 


“안됩니다. 저 혼자가면 죽어요.” 


“말도 안돼. 누가 거패를 죽어.” 


“생각해 보세요. 허락도 없이 아가씨를 모시고 도망쳤는데, 저만 딸랑 돌아가 보세요. 가만 두겠어요.” 


“그건 거패님 말씀이 맞다.” 




어릴 적에 풍운도 수혜를 모시던 사람이라 거패의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수혜가 잘못한 일들 때문에 자신이 혼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거패님. 이렇게 하시죠. 나루터에 가시면 장강수로십팔채의 쾌속선이 있을 겁니다. 제가 보내서 왔다가 말씀하시고 배에서 기다리세요. 볼일이 끝나면 쾌속선으로 갈게요.” 




풍운의 말에 거패가 벽하의 눈치를 본다. 벽하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풍운 말대로 하라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배에서 기다릴게요.” 




풍운과 옥선은 혈선(血腺)을 타고 대륙상회 악양지부로 향했다. 사실 풍운은 벽하만 아니었다면 림산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금산반을 만나서 직접 부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하가 있으니 림천까지 다녀오긴 힘들 것 같다. 풍운이 악양지부에 도착해 막사검을 보여주자 지부장이 달려왔다. 




“낙양지부장 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지부장의 안내를 받아 접객실로 들어가니 지부장이 차를 준비했다. 




“도착하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제가 가서 인사드려야 하는데 송구스럽네요.”


“별말씀을.......부탁할 것이 왔어요.” 


“말씀하세요.” 


“성도지부에 관을 맡겼습니다. 군산으로 가져다주세요.”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최근 빙궁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있나요?” 


“배화교가 옥문관을 넘을 때쯤 북해빙궁도 북해를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사천성이 배화교의 수중에 떨어질 때쯤에 빙궁의 본진이 악양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시다보면 동정호변에 작은 산이 있고, 야산 언덕에 거대한 장원이 있을 겁니다. 천상루가 주위일대의 땅을 모조리 매입해서 최근에 새운 장원입니다. 바로 그곳에 빙궁의 본진이 있습니다.” 


“숫자가 얼마나 되죠.” 


“대략 일만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천개가 넘는 관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관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죠.” 


“혹시 대륙상회 회원들 중에 장원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 경계가 워낙 철저하여 개미새끼 한 마리 접근하기 힘듭니다.” 


“그들도 먹고 살려면 필요한 물자가 있지 않습니까?” 


“모든 물자는 천상루를 통해 들어갑니다. 다시 말해 천상루 사람 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께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전해주세요.” 




풍운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지부장이 급하게 일어났다. 




“벌써 가시는 겁니까?” 


“가야죠.”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군산으로 갈 겁니다. 연락할 일이 있으면 군산으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풍운과 벽하는 인사가 끝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혈선(血腺)에 올랐다. 




“이제 어디가.” 


“나루터로 갈 거야. 벽하도 거패와 함께 기다려.” 


“혹시 혼자서 장원에 다녀올 생각은 아니겠지.” 




벽하의 질문에 답이 없다. 




“가면 안돼. 빨리 안 간다고 약속해.”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사실 확인만하고 올게.” 


“안돼. 위험해.” 


“보고만 온다니까?” 


“그럼 같이 가.” 


“날 믿어. 내가 약속 어긴 적 있어.” 


“정말 꼭 그렇게 해야겠어.” 


“알잖아. 모르겠어.” 




왜 모르겠는가? 풍운에게 수혜와 아라는 특별하다. 그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풍운이 있는지도 모른다. 벽하는 풍운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다녀와. 하지만 약속 꼭 지켜야 돼.” 


“걱정하지 마.” 




풍운은 벽하와 혈선(血腺)을 나루터에 남겨두고 서쪽으로 날아갔다. 벽하는 초조한 얼굴로 풍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번화가를 벗어나니 한가한 길이 나타났다. 마음이 급한 풍운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음양비로 날아간다. 멀리 야산 언덕에 위치한 거대한 장원이 보인다. 풍운이 하늘로 솟구친다. 아무리 경계가 철저해도 하늘까지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발밑의 사물들이 장난감처럼 작게 보인정도로 솟구친 풍운이 장원으로 향해 화살처럼 날아간다. 이제 장원이다. 곧바로 내려가면 장원 중앙이다. 풍운이 사기(邪氣)를 끌어올려 검은 안개처럼 변하더니 장원 중앙에 있는 연못을 향해 번개처럼 떨어진다. 호수처럼 넓은 연못을 지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초희는 아직도 정자에 있었다. 고민 중인 모양이다. 갑자기 거대한 힘이 느껴지며 온몸이 사늘해진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연못위에 뭉클거리고 있는 검은 안개가 보인다. 초희는 빙백신공(氷白神功)을 끌어올렸다. 검은 안개가 예사롭지 않다. 정확한 실체는 모르겠지만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누구냐.”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지만 검은 안개가 순간적으로 흔들거린다. 초희가 빙천후(氷天吼)라는 음공(陰功)절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풍운도 정자에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 눈처럼 하얀 궁장과 백발(白髮)의 여인. 새벽에 만났던 빙천주다. 경비무사가 피하기 위해 한적한 연못에 착지했는데 하필이면 궁천주가 있는 곳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대로 도망쳐야 하는가?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좋은 뜻으로 찾아오진 않은 모양이군. 그럼 죽어야지.” 




앙칼진 목소리에 함께 하얀 강기(剛氣)가 번개처럼 날아온다. 풍운이 맞서지 않고 피하자 강기(剛氣)가 연못을 후려쳤다. 




“쩍~ 쩍~ 쩍~” 




순식간에 연못전체가 얼어붙으며 지독한 한기(寒氣)가 느껴진다. 




“제법이군. 이것도 피해 보거라.” 




초희가 손을 흔들자 벚꽃이 바람에 날리듯 무수한 그림자들이 피어나 풍운을 향해 날아온다. 상하좌우, 어디에도 피할 공간이 없는 완벽한 공격이다. 풍운은 사기(邪氣)를 끌어오려 팔로 원을 그리니 풍운의 앞에 검은 방패 같은 강기(剛氣)막이 형성되었다. 




“콰아앙~”


“쩍쩍쩍~” 




약간의 폭음과 함께 얼어붙은 연못이 갈라지며 어름조각들이 솟구친다. 




“하얏~”






초희가 풍운을 향해 날아오며 팔을 흔들자 공중으로 솟구친 어름조각들이 화살처럼 풍운을 향해 날아온다. 풍운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름조각들은 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름조각들과 함께 이빨이 떨릴 정도로 차가운 강기(剛氣)가 날아오고 있다. 풍운을 감싸고 있는 안개가 순간적으로 짙게 변하며 밑에 있던 어름들과 물이 하늘로 솟구쳤다. 풍운이 사기(邪氣)로 음양벽(陰陽壁)을 펼치자 나타나는 현상이다. 




“파파파파팍~ 꽝아아앙~” 


“하흑~” 




검은 안개는 마치 팽팽한 가죽주머니 같았다. 바위도 부셔버리는 쇄빙장(碎氷掌)이 엄청난 반발력(半撥力)에 튕겨지며 오히려 자신이 내상을 입은 것이다. 초희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피를 억지로 삼키며 검은 안개를 바라보았다. 물론 풍운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음양벽을 뚫고 들어온 냉기(冷氣)에 뼈가 시릴 정도다. 다행이 얼마 전에 몸속에 잠들어 있던 빙백정의 정기를 흡수하였기에 이정도로 끝난 것이지 보통사람 같았으면 얼음덩어리로 변했을 것이다. 




“검은 안개와 빛처럼 빠른 검은 도(刀). 사사천교에서 오신 고인이신가요?” 




초희가 검은 안개의 정체를 파악한 모양이다. 풍운은 초희의 물음에 대답지 않고 주위를 둘려본다.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연못으로 달려오고 있다. 초희와 싸우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시간을 끌면 위험하다. 궁주 혼자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이곳은 빙궁의 정예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가? 검은 안개가 꿈틀거린다. 도망치려는 모양이다. 




“어딜 도망가?” 




초희가 다시 손을 흔들자 무수한 장영(掌影)들이 피어나 풍운을 향해 날아온다. 음양비로 도망치면 그만이지만 이대로 물려나긴 자존심이 상한다. 풍운이 음양장(陰陽掌)을 펼치자 거대한 손모양의 안개가 피어나 초희가 만들어낸 장영(掌影)들을 부셔버린다. 인(引-끌다.)결로 장영(掌影)들을 빨아들어 벽(劈-쪼개다.)결로 부셔버린 것이다. 초희는 팔성의 공력으로 펼친 공격이 무위로 끝나자 미간(眉間)을 찌푸렸다. 사사천교에 저만한 고수가 몇 명이나 될까? 사사연무신공은 교수만 익힐 수 있다고 알고 있다. 현재 교주는 하후소하이며 전대교주인 사인마도가 살아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하후소하나 사인마도라는 말인가? 아니다. 사사천교가 자신들을 공격할리 없다. 그럼 누구란 말인가? 사사연무신공을 이정도로 익힌 사람이 또 있단 말인가? 그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언젠가 천상루의 보고서에서 마수마랑이 사사연무신공을 펼쳤다는 내용을 읽었다. 그럼 상대가 마수마랑이란 말인가? 




“잡아놓고 보면 알겠지.” 




초희가 한손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풍운은 주위를 돌아보다가 다리에 기(氣)를 집중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위험하다. 피해야 한다. 




“흥~ 감히 어딜.” 


“딸랑~ 딸랑” 


“잡아라.” 




청명한 방울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구치는 검은 안개를 향해 세 개의 하얀빛이 날아간다. 풍운은 순식간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빛을 보고 사기(邪氣)를 끌어올려 음양벽(陰陽壁)을 펼쳤다. 




“콰아아앙~” 


“크윽~” 




넷 개의 빛이 교차하며 검은 안개가 연못으로 떨어지고, 세 개의 하얀 빛이 검은 안개를 포위한다. 연못에 떨어진 풍운은 한모금의 피를 토하며 힘들게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 아가씨..........누님.” 




안개가 크게 흔들거리며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초희는 물위를 걸어 천천히 다가왔다. 천녀빙백강시들이 포위했으니 서둘을 필요는 없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초희가 소리치지만 풍운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풍운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벽궁수혜와 아라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던 아가씨와 누님인가? 그녀들이 지금 눈앞에 있다. 




“아가씨. 누님. 저에요. 풍운입니다.” 




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며 수혜와 아라에게 다가갔다. 




“쉬이이익~” 




아라가 검은 안개를 향해 장(掌)을 뿌린다. 




“뻥~” 


“콜록~ 콜록~” 




안개가 흩어지며 허리를 숙이고 피를 토하고 있는 사내가 나타났다. 허리까지 물에 잠긴 사내는 머리를 산발하고 있는데 고개 밑으로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이 연못이 붉게 물들고 있다. 이해할 수 없다. 사내는 아라의 장(掌)를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자신이 마음먹고 공격한 쇄빙장도 어렵지 않게 막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상하게 아라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무방미 상태에서 얻어맞는 것이다. 풍운의 머리 속에 오만가지 상념(想念)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만난 아라와 수혜 때문에 충격을 받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으나 가슴에서 밀려오는 통증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라와 수혜가 무사하다. 하지만 천녀빙백강시가 되어 백지처럼 변했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겉모습은 아라와 수혜지만 예전의 수혜와 아라는 이제 없다. 오직 빙궁의 꼭두각시가 된 천녀빙백강시만 남은 것이다. 




“서, 설마. 마수마랑.” 




갈색무복과 머리를 묶었던 검은 건. 새벽에 만난 마수마랑의 모습이다. 초희의 말이 끝나자 풍운이 천천히 입술을 닫더니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당신이군요.” 


“..............”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죠.” 


“................” 




풍운는 아라와 수혜만 바라보고 있다. 아라와 수혜는 풍운을 보고도 멍한 눈빛이다. 




“누님. 아가씨. 저를 모르시겠어요.” 




풍운의 부름에 수혜와 아라가 힐끗 쳐다보고 고개를 돌려 초희를 바라본다. 초희는 쓰게 웃었다. 마수마랑은 자신의 질문에 대답도 없이 오직 수혜와 아라만 바라보고 있다. 




“헛수고 하지 말아요. 수혜와 죽(竹)의 기억에서 당신은 사라졌어요.” 




차가운 말에 풍운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초희를 바라본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당신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잖아요.” 


“.............” 


“우리가 강요하지 않았어요. 당신들이 선택했어요.”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는 말인가?” 




풍운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울분(鬱憤)을 억지로 참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노파들이 초희를 향해 날아왔다. 장로들이 도착한 모양이다. 




“궁주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성질 급한 매(梅)장로가 초희의 위아래를 살펴보면 질문한다. 궁주의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오셨어요.” 


“감히 어떤 놈이.” 




매(梅)장로가 곧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풍운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남자가 있을까? 우수(憂愁)에 젖은 눈빛과 조각 같은 외모에 눈이 부실정도다. 




“네놈은 누구냐?” 


“마수마랑이에요.” 




풍운 대신 초희가 대답했다. 




“저놈이 마수마랑이란 말입니까?” 


“예!” 


“저놈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죠.” 


“물어도 대답이 없네요.” 


“쾌심한 놈. 궁주님께서 물어보시는데 대답도 없었단 말씀입니까? 내가 이놈을 당장.” 


“멈추세요. 장로님까지 나서실 필요 없습니다.” 




발끈한 장로가 풍운을 덮치려하자 초희가 팔을 잡는다. 내상을 입기는 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마수마랑. 무슨 일로 오셨죠. 대답하세요.” 




풍운은 이를 악물고 복받치는 슬픔을 억누르며 하늘을 바라본다. 가만히 있으며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놈~” 




안하무인(眼下無人) 같은 풍운의 태도에 매(梅)장로가 불같이 화를 내며 날아올라 머리를 향해 용두장(龍頭仗)을 내려친다. 매(梅)장로는 풍운을 무시하고 있었다. 배화교의 사냥개였던 놈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더구나 놈은 내상까지 입지 않았던가? 




“콰아아앙~” 


“우, 욱~” 




매(梅)장로가 날아갈 때 속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튕겨 나오는데 용두장(龍頭仗)을 잡고 있던 손아귀가 찢어지고, 더운 피를 토하고 있다. 감정이 격해진 풍운이 자신을 공격하는 매(梅)장로를 보고 선천강기를 끌어올려 음양벽을 펼친 것이다. 




“매장로, 매장로.” 




다른 장로들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치는 매(梅)장로를 잡아주었다. 




“헉~ 헉~ 내가 저런 놈에게 밀리다니.......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때. 괜찮아.” 


“놔~ 이 자식. 죽어버리겠어.” 




매장로가 다른 장로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를 갈며 풍운을 노려본다. 억울한 모양이다. 풍운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고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른다. 생각 같아서는 빙궁이고 나발이고 모두 죽이고 아라와 수혜를 데려가고 싶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빙궁이 수혜와 아라에게 무슨 금제(禁制)를 해놓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놈이 도망치려고 합니다.” 




매(梅)장로가 용두장에 내공을 주입하고 풍운의 위중혈(다리)을 향해 던졌다. 풍운이 무섭다는 것을 체득(體得)했기에 직접 공격하지 못하고 무기만 던진 것이다. 천천히 떠오르던 풍운이 회전하며 음양각(陰陽脚)으로 걷어차 버리니 용두장이 산산이 부셔지며 수많은 파편들이 장로들을 향해 날아온다. 




“허걱~ 이게 뭐야.” 




기겁한 장로들이 당황하자 초희가 장(掌)을 뿌리니 파편들이 순간적으로 얼음덩어리로 변하며 힘없이 떨어진다. 




“물려나세요. 놈은 천려빙백강시들이 상대할 겁니다.” 




초희의 말에 장로들이 똥 씹은 표정으로 물려났다. 제자들이 보기에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더 큰 창피를 당하기 전에 물려나는 편이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마수마랑을 생포하세요.” 




초희의 명령이 떨어지자 멍하니 서있던 천녀빙백강시들이 풍운을 향해 쇄도(殺到)하며 장(掌)을 뿌리고 천천히 솟구치던 풍운이 빙글 돌며 천녀빙백강시들이 만들어내 장(掌)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풍운이 화살처럼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시야(視野)에서 사라진다. 차마 아라와 수혜를 공격할 수 없었던 풍운이 음양장(陰陽掌)의 탄(彈)결로 받아치고 그 힘을 이용하여 자리를 피한 것이다. 




“저, 저런~ 궁주님! 놈이 도망갑니다. 당장 추격해야 합니다.” 


“늦었어요. 나중에 기회가 또 있겠죠.” 




초희는 찹찹한 표정으로 풍운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돌아선다.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풍운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었다. 빙백신공이 십성에 이른 자신조차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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