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73부

본문

수련을 마친 초희가 한쪽에 놓아두었던 옷을 걸치고 방으로 올라왔다. 




“아직 시간이 남았겠지.” 




초희는 자신도 모르게 겨울로 갔다. 




---- 백안(白眼)에 백발(白髮)..........온몸을 비취는 잠자리 날개 같은 궁장 ----




이런 차림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긴 힘들 것 같다. 초희는 옷장에서 다른 궁장을 꺼냈다. 물론 새로 꺼낸 옷도 깃털처럼 가볍고 얇기는 마찬가지지만 본래 입고 있던 옷보다는 약간 두터워 안까지 비추지는 않는다. 




“휴~~ 백안(白眼)에 백발(白髮)! 처음 보는 사람들이 보면 귀신이라고 하겠지.” 




초희는 겨울 속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보게 되는 법이다. 특히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여인은 없다. 향상 무언가 부족하며,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초희는 농염(濃艶)하고 사악(邪惡)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궁아라나 벽궁수혜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은 미(美)를 가지고 있다. 




백안(白眼)과 백발(白髮)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개성과 색다른 미(美)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귀신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괜한 고민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한들 무슨 상관인가? 초희는 고개를 흔들고 밖으로 나가보니 다정화와 장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나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로님들께서도 나오셨어요.” 


“다정화에게 들었습니다. 마수마랑을 만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만나보고 싶어요.” 


“그런 하찮은 놈을 굳이 궁주님께서 만나실 필요가 있습니까?” 


“하찮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행보(行步)에 따라 우리들 계획이 수정될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중에 말씀드리죠.” 


“꼭 만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궁주님께서 하시겠다면 해야겠죠.” 




초희는 다정화를 불렸다. 




“어디 있는지 파악하셨나요.” 


“하기는 했는데.........일이 고악하게 됐습니다.” 


“왜요?” 


“객점이 아니라 배에 머물고 있습니다.” 


“배? 나루터에 정박한 배에 있다는 말인가요.” 


“예! 마수마랑을 비롯한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까지 모두 배에 있습니다.” 


“....................”


“.....................”


“다정화님. 우리가 가면 마수마랑이 만나줄까요.” 


“지금까지의 관계로 미루어보아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요. 가요.” 


“저기.........혹시 천련빙백강시들과 동행하시는 않겠죠.” 


“왜요? 그녀들과 함께 가면 문제라도 있나요.” 


“벽궁수혜와 죽(竹)은 마수마랑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여인들입니다. 그녀들이 궁주님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 마수마랑이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오늘은 그냥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니 천녀빙백강시을 대동할 필요는 없겠죠. 알았어요. 우리 둘만 가죠.” 


“안 됩니다. 둘만 가셨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둘만 가겠다는 말에 장로들이 화들짝 놀라며 말한다. 적지(敵地)나 다름없는 곳에 궁주와 다정화만 간다고 하니 당연히 반대하는 모양이다. 




“저를 못 믿으세요. 일이 틀어져도 별 탈 없이 돌아올게요.” 


“궁주님은 본궁의 하늘입니다. 궁주님만 바라보는 궁도들을 생각하세요.” 


“괜한 걱정하지 마세요.” 


“잠깐! 이렇게 하시죠. 나루터까지는 함께 가는 겁니다. 저희들이 나루터에서 기다리는 동안 궁주님과 다정화가 만나고 오시면 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장로들이 불안한 모양이다. 마수마랑 혼자라면 걱정할 것도 없지만 십이사(十二死) 모두와 장갈수로십팔채 무사들까지 있지 않는가? 




“그렇게 하죠. 하지만 문제가 될만한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천련빙백강시는 두고 갑니다.” 




모든 것이 결정되자 초희를 비롯한 장로들이 나루터로 향했다. 어둠을 뚫고 나루터에 도착하니 거대한 함선(艦船)들이 보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내리시죠. 도착했어요.” 


“다정화님. 마수마랑은 어떤 사람이죠.” 


“예! 그게 무슨 말씀인지?” 


“다정화님이 생각하는 마수마랑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글쎄요. 아름답고 정(精)이 많은 의협남아라고 할 수 있겠죠.” 


“아름답다?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은 표현이군요.” 


“잘못된 표현이 아닙니다. 마수마랑은 세상 어떤 여자보다 아름다워요.” 


“다른 분도 아니고 다정화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어야겠네요. 정(精)이 많다는 말은 무슨 뜻이죠?” 


“벽궁수혜와 죽(竹)이 본궁으로 떠나던 날의 모습을 기억해요. 그는 한없이 울었어요. 벽궁수혜와 죽(竹)이 달래줄 정도였죠.” 


“심약(心弱)한 사람이군요.” 


“마수마랑이 걸어온 길을 보세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참~ 지금 조옥선과 함께 있다고 하셨죠.” 


“조옥선과 제갈무경 그리고 천마마련의 초벽하와 함께 있습니다.” 


“3명이나?........모두 부인들인가요?”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았으니 부인이라고 하긴 힘들고 마수마랑의 여인들이죠.” 


“그녀들 말고도 또 있지 않았나요.” 


“사사천교의 하후소하가 있어요.” 


“모두들 쟁쟁한 여인들인데, 그런 여자들이 마수마랑에게 매달리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만나 보세요. 그럼 아실 겁니다.” 


“그래요. 만나보면 알겠죠. 이제 내려요. 아참. 제 신상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세요. 제가 직접 말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수마랑과 독대(獨對)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세요.” 


“노력해 볼게요.”




풍운은 술 때문인지 아니면 초벽하와의 정열적인 정사 때문인지 새벽이 되도록 잠자리에 있었다. 남들보다 잠이 없는 풍운으로써는 예외적인 일이다. 




“똑~ 똑~ 똑~” 


“운랑! 아직 주무세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풍운이 정신을 차린다. 향상 칼날위의 삶처럼 예민하여 작은 소리에도 금방 정신을 차리는 모양이다. 




“누구세요.” 


“옥선이에요. 들어가도 되나요.” 




풍운은 아직도 곤하게 자고 있는 벽하를 확인하더니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부터 무슨 일이야.” 


“손님이 찾아왔어요.” 


“손님? 이 시간에.......?” 


“천상루의 다정화라고 하더군요.” 


“뭐~ 다정화님이 찾아왔단 말이야. 지금 어디 계셔.” 




옥선은 약간 들뜬 음성으로 말하는 풍운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천상루의 천급기녀가 찾아오니 기쁜 모양이죠.” 


“어찌 말에 가시가 있다.” 


“당연한거 아닌가? 서방님께 기녀가 찾아왔는데 좋아할 년이 어디 있어요.” 


“다정화님은 그동안 우릴 많이 도와주신 분이야.” 


“하여튼 기분 나빠요. 악양에 도착한지 얼마나 됐다고 기녀가 찾아온담.” 


“그녀는 기녀가 아니야. 북해빙궁 사군자(四君子)란 말이야.” 


“알게 뭐예요. 저한테는 그냥 기녀로밖에 안보여요.” 


“지금.........질투하는 거야.” 


“기가 막혀. 제가 기녀 따위를 질투할 것 같아요.” 


“그럼 됐네.” 




풍운의 뻔뻔스러운 말에 옥선은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차갑게 돌아선다. 




“옷이나 똑바로 입고 나오세요. 속옷차림으로 만나자는 것은 아니겠죠.” 




풍운은 급하게 나오느라 속옷만 걸치고 있었다. 풍운이 다시 방으로 들어가 갈색무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옥선이 위아래를 살펴보다가 머리까락을 정돈해준다. 




“대충하고 가자.” 


“가만있어요. 머리가 이게 뭐예요.” 


“기분 나쁘다며........머리까지 정리해줘~”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아세요. 운랑이 엉망으로 나가면 운랑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욕한단 말이에요.” 




풍운이 피식 웃으며 가만히 있으니 옥선은 머리까락을 건으로 단정하게 정리해 준다. 




“됐어요. 이제 가요. 아참. 다정화라는 여인 외에 특이한 여인이 함께 왔더군요.” 


“특이한 여인?” 


“2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백발(白髮)에 백안(白眼)이에요.” 


“백발(白髮)에 백안(白眼)” 


“맹인인가?” 


“모르겠어요.” 


“특이하군. 지금 어디에 계시지.” 


“갑판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풍운이 옥선을 따라 갑판으로 나가보니 분홍색 궁장을 입은 다정화가 눈처럼 하얀 궁장을 입은 여인과 함께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어요.” 




풍운이 반갑게 인사를 하자 다정화는 고개만 끄덕거리고 풍운의 위아래를 살펴본다.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이니 진짜 풍운인지 의심하는 모양이다. 




“마수마랑님........이신가요?” 


“하하하~. 아닌 것 같으세요.” 


“역용을 하고 계시니까? 모르겠네요.” 


“옥선! 어떡하지? 다정화님께서 의심하는데. 역용을 풀어 버릴까?” 


“운랑을 얼굴을 알고 계세요?” 


“알고 계셔.” 


“치~ 마음대로 하세요.” 




옥선이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극소수만 알고 있는 풍운을 본얼굴을 다정화도 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옥선은 차를 준비해 주겠어.” 


“준비 끝났을 거예요. 가시죠.” 




풍운을 찾아가기 전에 미리 준비한 모양이다. 옥선을 따라 아담한 선실(船室)로 들어가니 무경이 차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제갈무경이라고 합니다.” 




무경이 다정화에게 인사하자 다정화도 인사한다. 




“다정화라고 합니다.” 


“옆에 계신 분도 소개시켜 주세요.” 


“그건 나중에 본인께서 말씀하실 거예요.” 




다정화는 초희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녀의 뒤로 갔다. 




“다정화님도 앉으세요.” 


“제가 어떻게 감히.”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알겠습니다.” 




다정화가 초희 옆에 앉자 풍운과 부인들도 자리에 앉았다. 




“새벽부터 죄송합니다. 아침에 군산으로 떠난다는 소식에 실레를 무릅쓰고 찾아왔어요.” 


“잘하셨어요. 그래. 무슨 일로 오셨죠.” 


“마수마랑님을 보고 싶다는 분이 계셔서 모셔왔어요.” 


“옆에 계신 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런데 저기........제가 모셔 오신 분께서 마수마랑님과 독대(獨對)를 원하세요.”


“독대(獨對)? 둘만 이야기하자는 건가요?” 


“어려운 부탁인가요?”




풍운은 미간(眉間)을 찌푸리며 다정화와 초희를 바라본다. 상대방은 아직 정채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다정화가 대하는 태도를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무경, 옥선. 미안한데 자리 좀 비켜주겠어.” 




풍운의 조용한 말에 옥선이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무경이 다급하게 손을 잡는다. 




“알았어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옥선언니! 우리 나가요.” 




무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팔을 끌자 옥선은 눈살을 찌푸리며 밖으로 끌려간다. 




“저도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말씀들 나누세요.” 




옥선과 무경이 나가자 다정화도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는다. 이제 선실에 풍운과 초희만 남은 것이다. 풍운은 말없이 초희를 살펴본다. 먼저 옷차림을 보면 가을을 지나 초겨울에 접어들어 제법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얇은 궁장만 걸치고 있다. 몸에서 풍기는 기운을 보면 빙공 쪽의 고수인 모양이다.




얼굴을 보면 뚜렷한 이목구비에 커다란 눈, 오뚝한 콧날은 도도하게 보일 정도며, 하얀 피부와 대조적인 붉은 입술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윤기 흐르는 하얀 백발(白髮)과 하얀 눈썹, 그리고 검은자를 아예 찾아볼 수없는 백안(白眼)은 신비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한마디로 눈의 나라에서 온 공주 같다고 할까? 




“인사드릴게요. 설초희라고 합니다.” 


“풍운입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 


“다정화님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 


“직접 만나 뵙고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서 왔어요.” 


“...............” 


“저기.......본래 말씀이 없는 분인가요.” 




혼자서 떠들던 초희가 풍운을 바라보며 말하자 풍운이 자세를 바로 잡는다. 




“본인의 신분부터 밝혀야 되지 않을까요. 누군지도 모르는 분과 이야기 한다는 것이 껄끄럽네요.” 


“제 신분이 중요한가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났다면 묻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다정화님의 소개로 왔어요.” 


“다정화님과 함께 왔다는 것이 중요한 건가요?” 


“다정화님은 천상루 천급기녀라는 신분 외에 북해빙궁 사군자(四君子)라는 신분을 가지고 계시죠. 당신도 빙궁과 관련된 분 아닌가요.” 


“왜요? 제가 빙궁 사람이라면 문제라도 있나요.” 


“없어요. 다만 빙궁에서 오신 분이라면 제가 물어볼 것이 많아서요.” 


“문제가 없다고 하셨나요? 빙궁이 새외연합군의 하나라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겠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없나요?” 


“저는 50년 전에 태어나지도 않았었어요. 빙궁과 어떠한 원한도 없죠.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빙궁이 은인(恩人)이란 말인가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은인입니다.” 


“빙궁은 당신이 필요했고, 당신은 빙궁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생각은 안하세요. 은인(恩人)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잠시 협력한 거죠.” 


“빙궁에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저는 빙궁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은 사람입니다.”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군요.” 


“특이하지 않습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었을 때...........세상 모두가 우릴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을 때...........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빙궁만은 우리 도와주었습니다.” 


“그건 궁아라님을 도운 것이지 당신을 도운 것이 아닙니다.”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왜 도와주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아요. 이렇게 이야기 해 볼까요. 빙궁이 중원 무림을 공격한다면.........이해하기 쉽게 장강수로십팔채를 공격한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 


“막아야죠.” 


“빙궁이 은인(恩人)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적(敵)이 되겠다는 말씀인가요.” 


“빙궁의 행위가 적절치 못하니 막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시하고 당신들까지 공격하면 어떻게 하실 거죠.” 


“싸워야겠죠.” 


“단순하군요.” 


“옮지 못한 행위를 하는데 보고만 있을 수는 없죠.” 


“빙궁의 목표는 중원정복입니다. 당신 입장에서야 빙궁이 장강수로십팔채를 공격하는 것이 옮지 못하겠지만 빙궁 입장에서는 당연한 겁니다.” 


“저랑 논쟁(論爭)을 하자고 오셨나요.” 


“아닙니다.” 


“그럼 이제 신분부터 밝혀주시죠.” 


“불공평 하군요.” 


“뭐가 불공평하다는 거죠.” 


“당신은 가면을 쓰고 있으면서 저보고는 모든 걸 밝히라고 하시잖아요.” 


“역용한 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군요. 그게 중요한가요.” 


“당연하죠. 누군가를 만났는데 얼굴도 모른다면 기분 나쁘잖아요.” 


“그런데 제가 보이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백안(白眼)은 처음이라 궁금해서.......?” 


“보여요. 제가 장님인줄 아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한지 아시면 이제 그만 역용이나 푸시죠.” 


“좋습니다. 보여드리는 것은 어렵지는 않습니다.” 




풍운은 잠시 얼굴을 숙였다가 역용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아하!” 




풍운의 얼굴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초희도 짧은 탄성과 함께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제 됐죠. 말씀하세요.” 




초희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제야 그 많은 여인들이 풍운에게 매달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천인(天人)처럼 아름다운 풍운에게 누구나 호감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의 외모는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빙궁의 궁주에요.” 


“역시. 다정화님이 대하시는 것을 보고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 


“궁주님께 궁금한 것이 많지만 질문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먼저 찾아오신 용건부터 말씀하세요.”


“말씀드렸잖아요.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왔어요.” 


“그럼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아직도 많아요. 하지만 그건 차차 알아보기로 하죠. 이제 질문하시죠. 궁금한 것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상대는 북해빙궁의 궁주다. 궁주라면 벽궁수혜와 궁아라의 소식을 알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다정화는 수혜와 아라가 천녀빙백강시가 되는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했다. 그녀들은 천녀빙백강시가 된 것일까? 혹시 실패한 것은 아닌가? 심장이 두근거린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몰라 질문하기 겁난다. 풍운은 순간적으로 말라버린 입술에 침을 바르고 앞에 있는 찻잔을 잡았다. 




“수혜아가씨..........아라누님.........” 


“............” 


“어떻게 됐죠?” 




지금까지와 다르게 긴장한 표정이 역역하다. 찻잔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지 않는가. 조금 전에 조옥선을 옥선이라 부르고, 제갈무경을 무경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벽궁수혜를 아가씨라고 부르고 아라을 누님이라고 불렸다. 그에게 벽궁수혜와 궁아라는 특별하다는 의미다.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있다. 수혜와 아라는 천려빙백강시가 되는 마지막 단계에 있었다. 무사히 천련빙백강시가 되었다는 의미일까? 




“강시가 되었다는 말씀인가요?” 




지금까지와 다르게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음성까지 떨리고 있다. 




“의지가 강하더군요. 무사히 천려빙백강시가 됐어요.” 


“지금................어디에...........있죠?”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악양에 있다는 말씀인가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군요.” 


“왜죠?” 


“천려빙백강시에 대한 사항은 본궁의 기밀이에요.” 


“기. 기밀............저에게도 말씀해 주실 수 없다는 뜻인가요?” 


“당신이 가장 위험한 분이죠.” 


“퍽~~” 




풍운이 잡고 있던 찻잔이 박살나며 찻물 일부가 초희를 향해 날아간다. 




“휘익~” 




풍운이 손을 흔들자 사방으로 날아가던 찻물들이 둥글게 뭉치더니 한순간에 증발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수혜와 아라에 대한 풍운의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으며, 풍운의 무공이 얼마나 높은지 말해준다. 




“죄송합니다. 조금 흥분했군요.” 


“............” 


“언제 만날 수 있죠.”


“누구요?” 


“아가씨와 누님.”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무슨 뜻이죠?” 


“연인(戀人)으로는 불가능해요. 그녀들은 대부분의 이지(理智)를 상실했기 때문에 당신을 알아보지도 못할 겁니다.” 


“..........” 


“당신이 본궁에 협력 한다면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적(敵)으로 만나게 될 겁니다.” 


“협박처럼 들리는 군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풍운은 탁자에 깨져 있는 찻잔 조각들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저에게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나요.” 


“차차 알아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오늘 만남은 이것으로 마치시죠.” 


“이제 궁금한 사항이 없나요.” 


“물어도 대답하지 않으시잖아요.”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어요.”


“저도 차차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초희는 잠시 동안 풍운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보니 무혜나 옥선뿐만 아니라 벽하까지 기다리고 있다.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부인들을 옆에 두고 다른 여자를 끌어들어.” 




벽하의 말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풍운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손님들 보내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벽하가 풍운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창피한 모양이지.” 


“손님 가시면 죽었어.” 




풍운도 지지 않고 벽하의 귀에 속삭이니 벽하가 풍운의 가슴을 가볍게 때리고 초희에게 인사했다. 




“초벽하라고 합니다. 제 말이 기분 상하셨죠. 죄송해요.” 




초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린다. 




“다정화님께서 정확히는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빙궁에서 나오신 분 같았더군요. 역시나 운랑을 보니 제 짐작대로였어요. 그래서 농담을 한 것이니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초희는 말없이 벽하와 옥선 그리고 무경을 차례차례 바라보더니 벽하의 말에 대답도 없이 다정화를 부른다. 




“우리 그만 가요.” 


“예! 알겠습니다. 마수마랑님. 시간 내주셔 감사합니다.” 




다정화가 먼저 나서자 초희는 풍운에게 목례를 하고 다정화를 따라갔다. 풍운과 초희의 첫 만남은 이렇게 끝났다. 




<<계속>>




----------------- 작가주 -------------




芳心( 방심 ) - 꽃답고 애틋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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