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231부
본문
침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냉하상의 모습이 도치의 마음을 짓누른다. 곽지향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혹시 상처를 받은 건 아니까? 겉으로는 독하고 냉정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여린 마음을 가진 여자가 아닌가? 도치는 냉하상이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도치의 발자국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도치가 원망스럽다. 나도 아프다고, 나도 힘들다고 왜 말을 못하는가? 왜 내색하지 않는가? 왜 자신만 나쁜 여자로 만드는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금까지 감추며 살아왔건만 도치를 만나며 울보가 된 모양이다. 도치의 다리가 보인다. 도치가 조심스럽게 옷을 내밀었다.
“받아. 무경님이 빨아놓으셨더라.”
도치는 애써 밖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피하려한다. 냉하상이 못 들었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냉하상은 옷을 본 척도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그란 눈망울에 눈물이 맺혀있다. 가슴이 아련하게 아파온다.
“벗어요?”
“뭐?”
“벗으라고 했어요.”
“지금 나보고 하는 말이야?”
“예!”
냉하상의 황당한 요구에 도치는 할말을 잃었다. 냉하상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자신의 눈을 응시하고 있다. 벗어라? 무슨 뜻일까? 옷을 벗으라는 말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도치는 냉하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으니 냉하상이 옆으로 손을 내밀어 허공섭물로 벽에 걸린 일점홍을 끌어당긴다. 도치는 냉하상이 맡긴 일점홍을 소중하게 벽에 걸어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쨍~”
검집에서 튀어나온 일점홍이 허공에 반짝거리며 싸늘한 살기(殺氣)를 뿌린다.
“뭐야. 또 한판 붙자는 거야.”
도치는 냉하상을 일점홍을 뽑는 것과 동시에 검집을 던져버리자 자신도 들고 있던 옷과 약상자를 내려놓고 허공섭물로 구석에 있던 도끼를 끌어당겨 양손에 잡았다.
“옷을 벗어요.”
“미쳤어. 왜 벗으라는 거야?”
“제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벗어요.”
“걸핏하면 죽겠다고 협박이네. 이제 겁나지도 않는다.”
도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점홍이 도치의 당문(가슴)혈을 향해 차가운 빛을 뿌리고, 도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려나며 도끼로 일점홍을 쳐내려 했다. 그런데 도치의 당문혈을 향하던 일점홍이 중간에서 뱀처럼 휘어지며 냉하상 본인의 기문(목)혈을 향하는 것이다. 도치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깜짝 놀라 도끼를 던져버리고 맨손으로 일점홍을 잡았다.
“파악~”
도치의 손에서 붉은 피가 튀어 오르고, 냉하상의 기문혈 앞에 일점홍이 부르르 떨고 있다. 도치가 조그만 늦었더라도 일점홍이 냉하상의 여린 기문혈을 뚫어버렸을 것이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죽겠다고 했잖아요. 왜 말리는 거예요.”
도치는 욱하는 분노(忿怒)에 잡고 있던 일점홍을 던져버리고 냉하상의 뺨을 때리려 했다. 냉하상은 피하지 않았고 도치의 손은 냉하상의 얼굴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하얀 뺨에 흐르는 두 줄기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왜 아프다고 말 안했어요. 왜 힘들다고 말 안했어요. 왜 저만 나쁜 여자로 만드세요. 벗어요. 저에게도 보여 달란 말이에요.”
도치는 들고 있던 나머지 도끼를 떨어트리고 힘없이 팔을 내렸다. 이제야 냉하상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냉하상 때문에 아파했던 것처럼, 냉하상도 자신의 부상에 아파하고 있다.
“볼 필요 없어. 대수롭지 않는 상처야.”
냉하상은 눈물을 훔치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치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도치도 피하지 않았다.
“찌이이익~”
냉하상은 입고 있던 치마를 찢어서 도치의 손을 감아준다.
“당신한테는 대수롭지 않을지 몰라도 저한테는 아니에요. 당신의 손톱만한 상처라도 저에게 크게만 느껴진답니다. 그러니까 보여주세요.”
“꼭 보고 싶어?”
“보고 싶어요.”
도치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냉하상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냉하상이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 그녀의 진심을 외면할 용기가 없다.
“손 좀 놔줄래. 벗어야 하잖아.”
도치의 조용한 말에 냉하상이 손을 놓고 한걸음 물려났다. 도치가 상의를 벗으니 우람한 근육들로 가득한 상체가 드려났다. 냉하상은 도치의 상체(上體)를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산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군살하나 없이 매끈한 근육질과 거미줄처럼 빽빽한 상처들 때문이다. 도치의 상처들 보니 마음이 아려온다. 상처들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냉하상의 시선이 도치의 허리에 감긴 빛바랜 붕대로 향했다. 삼일동안 한번도 갈지 않아 빛바랜 붕대에는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다. 냉하상은 조심스럽게 도치의 앞에 앉아 손을 내미니 도치가 한발자국 물러났다.
“뭐하려는 거야.”
“가만있어요.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혼자 할 수 있어.”
“제가 해드리고 싶어요.”
냉하상이 다시 한발자국 다가온다. 도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운 얼굴로 자꾸만 몰려난다. 안 그래도 얇은 속옷만 입고 있는 냉하상이 바로 앞에 앉아 있으니 봉긋한 젖가슴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냉하상은 도치가 자꾸만 피하자 벌떡 일어나 도치의 손을 잡았다.
“따라오세요.”
냉하상은 황소만한 도치를 침상으로 끌어가 자리에 앉히더니 다시 그이 앞에 앉았다. 도치는 이제 도망갈 구멍도 없어 얼굴이 붉히며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니 냉하상이 빛바랜 붕대를 잡았다. 냉하상의 하얀 손이 스쳐갈 때마다 산만한 덩치가 떨린다. 조심스럽게 붕대를 풀다보니 붉은 피가 진하게 배인 부분이 상처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삼일동안 갈지 않아 엉겨 붙은 모양이다. 평소의 냉하상이라면 망설임 없이 단번에 띄어냈을 것이나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짐에,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다. 도치는 시나브로 벗겨지는 붕대에 따라 짜릿한 통증이 계속되자 짜증이 밀려왔다.
“잠깐만.........내가 할게.”
도치가 붕대를 잡고 단번에 띄어버리니 상처에 엉겨 붙은 붕대와 함께 딱지까지 벗겨지며 붉은 피가 줄줄이 흘러내린다.
“이걸 어떻게.........?”
냉하상은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또다시 치마를 찢어 상처를 막아보지만 얇고 얼마 되지 않는 천으로 한번 터진 피를 막기란 역부족이다. 냉하상은 아예 치마를 벗어 상처를 막는다. 사람들은 당황하면 평소에 알고 있는 것도 기억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상처와 연결된 혈도를 점하면 간단하게 지혈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단순무식한 도치야 혈도를 외우지 못하니 못한다고 하지만 냉하상은 아니지 않는가?
도치는 냉하상이 치마까지 벗어버리자 아픔도 잊어버리고 멍하니 냉하상을 바라보지만 냉하상은 그것도 모르고 피를 지혈시키는데 정신이 없다.
“저기.......치료도 좋지만 옷 좀 입고하면 안 될까?”
“지금 그게 중요해요.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 아이 정말 속상해!”
냉하상은 도치의 말을 들은 척도하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한쪽에 떨어진 자신의 옷을 발견했다. 도치는 겨우 상의만 걸친 냉하상이 옷을 줍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끓어오르는 욕화(慾火)를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겨, 몇 개월 동안 그녀를 잊지 못하고 다시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갑자기 나타난 냉하상과의 대결............부상당한 냉하상을 간호하며 그녀의 대한 정이 깊어 갔고, 그녀에게 좋아한다는 고백(告白)까지 들었다. 눈부신 은발에 중원여인들과는 달리 군살 없이 매끈한 몸매, 거기에 치부(恥部)만 살짝 가리고 있는 모습은 도치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 충분했다.
“찌이이익~”
냉하상은 치마를 주워 길게 찢어서 도치에게 달려와 상처를 감싸준다. 도치는 차라리 눈을 감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냉하상의 손이 스칠 때마다 야릇한 상상이 스치고 지나가 이제는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끝났어?”
“움직이지 마세요. 이제 겨우 지혈 됐으니 약을 발라야죠.”
냉하상은 도치의 사정도 모르고 상처를 깨끗하게 닫아내고 곽지향이 주고 간 상자를 가져와 약을 바른다. 도치는 눈을 감고 있으니 자꾸만 이상한 상상이 떠올라 아예 눈을 뜨고 냉하상을 지켜보기로 했다. 냉하상은 상처에 모두 약을 바른 다음 다시 치마를 찢어서 정성스럽게 상처를 감싸준다.
“휴! 이제 됐어요. 바지도 벗어보세요.”
“뭐! 뭐라고?”
“여기도 상처가 있잖아요.”
냉하상은 도치의 허벅지를 가르친다. 치료하는 과정에서 왼쪽허벅지에도 상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거, 거긴 내가 할께.”
“하는 김에 마저 해야죠. 여서요.”
“안돼! 그냥 내가 한다니까?”
“고집부리지 말고 빨리 벗어요.”
“아니 이 여자가 창피한 것도 모르나?”
“몰라요. 창피한 걸 알면 이런 차림으로 당신 앞에 있겠어요.”
냉하상은 도치가 계속 미적거리자 바지를 잡고 벗기려했고, 도치는 냉하상의 손을 피해 도망친다.
“여긴 혼자 할게. 정말 혼자 할 수 있다니까.”
“누가 못한다고 했어요? 아직도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
도치가 한쪽에서 당장이라도 도망칠 자세를 하고 있으니 얇은 상의만 걸친 냉하상은 조용히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울먹인다. 도치는 성욕(性慾)으로 인한 바지에 천막을 치고 있는데 냉하상이 벗으라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울지 말고, 우리 이렇게 하자. 너는 일단 옷부터 입어. 나는 상처부위까지 바지를 걷어 올릴게.”
“제가 미덥지 않으세요. 아직도 저를 의심하세요.”
“또 무슨 소리야.”
“제가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당신도 저를 좋아하시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숨길게 있나요? 저는 숨김없이 보여드리는데, 당신은 왜 감추려고 하죠.”
“그게 아니야. 내가..........참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 당장이라도 너를 안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단 말이야.”
“그럼 안으시면 되잖아요. 왜 망설이죠.”
도치는 냉하상의 담담한 말에 말문이 막힌다.
“당신이 원하시면 드릴게요. 이미 마음을 드렸는데 무얼 망설이겠어요. 솔직해 지세요. 마음이 가는대로 하세요.”
냉하상은 말을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치에게 다가와 탄탄한 가슴에 머리를 기댄다. 도치의 손이 냉하상의 은빛 머리카락으로 다가와 부르르 떨고 있다.
“망설이지 마세요? 저도 당신을 원합니다.”
냉하상의 달콤한 속삭임이 도치의 귀에 파고들었다. 떨리던 도치의 손이 냉하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주니 냉하상이 고개를 들어 촉촉하게 젓는 눈길로 도치를 바라본다. 도치는 마술에 걸린 것처럼 고개를 숙였고, 냉하상은 다가오는 도치를 보며 눈을 감았다.
두개의 입술이 하나가 된 순간...........냉하상은 머릿속이 백지처럼 변하고 온몸의 감각들이 마비되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모를 지경이다. 사랑이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도치의 입술이 자극하자 냉하상의 입술이 벌어지고, 도치의 혀가 거침없이 들어온다. 냉하상은 숨이 막히고 심장이 터질 지경인데, 부드러운 혀가 입속으로 들어오자 욕망의 폭죽이 터진 듯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도치는 냉하상의 머리를 끌어당겨 입에 들어간 혀를 깊숙이 집어넣어 냉하상의 혀를 찾았고, 냉하상도 도망치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며 희롱하니 두 사람은 열락(悅樂)의 세계에 빠져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냉하상이 하얀 팔로 도치의 목을 감고 매달리니, 봉긋한 젖가슴이 도치의 가슴을 자극한다. 도치는 몽클몽클한 느낌에 온몸이 불타올라 자신도 모르게 냉하상을 안는 팔에 힘을 주니 냉하상의 허리가 휘어지며 포개진 입술이 떨어졌다.
. “음~ 하이, 하이~”
냉하상은 작은 입을 벌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도치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냉하상의 머리까락을 쓸어준다. 들판에 핀 야생화처럼 가꾸어진 꽃은 아니지만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지만 그건 욕심일 것이다. 그녀의 송고한 사랑을 자신의 욕망(慾望)으로 더럽힐 수는 없다. 꽃은 그 자리에 있음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진정 사랑한다면 그녀의 순결을 지켜주어야 한다. 도치는 끓어오르는 욕화(慾火)를 억누르고 냉하상을 잡은 손을 풀었다.
“여기까지만 하자. 더 하면 너를 범하게 될지도 몰라.”
“하이.........하이.........저는...........?”
“들어봐. 사랑이 뭔지는 몰라. 남들처럼 감정이 풍부한 놈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몰라. 다만 너를 아끼고 사랑해주고 싶어.”
“저도 사랑해요. 사랑하기에 당신께 모두 드리고 싶어요.”
“냉하상!........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당장 너를 안고 싶어. 하지만 이건 아니야. 도망치지 않을게. 너의 겉에 있을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확인했잖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가 부름에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입에 발린 백 마디 말보다 달콤하고, 그 어떤 값진 선물보다 소중하다. 냉하상은 대답대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거렸고, 도치는 냉하상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침상에 눕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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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막비일행은 뇌옥에 갇힌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그 동안 많은 조사했다. 뇌옥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경계가 느슨했다. 무림을 장악한 칠대세가의 하나인 당가의 뇌옥에 침입할 간 큰 인간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금막비일행은 뇌옥에 대한 조사가 끝나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귀왕삼영과 사영은 이곳에 마차를 준비하고 퇴로(退路)를 확보하세요.”
금막비는 탁자에 펼쳐진 지도를 가르치며 삼영과 사영을 바라본다. 지도에는 당가건물들과 주변이 지형이 그려져 있고, 금막비가 가르친 곳은 경비가 허술한 북쪽이었다.
“마치는 이미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마차보다는 말이 빠르지 않을까요?”“물론 말이 빠르지만 가족들 중에 부상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마차를 준비하라고 한 겁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일영과 이영은 여길 주목하세요. 제가 동쪽과 서쪽의 경비들을 제거하는 동안 일영은 남쪽, 이영은 북쪽의 경비들을 제거하세요. 여기 지도에 표시된 부분이 경비들이 있는 곳이니 다시 한번 확인하세요.”
일영과 이영이 지도를 보며 경비들의 위치를 숙지했다. 금막비일행은 모든 준비가 끝나자 당가로 출발했다. 그믐달이 아스라이 당가를 밝혀주고 있는 시간 4개의 그림자가 당가의 지붕을 넘어 뇌옥으로 향했다. 금막비 일행은 이미 당가의 경비망을 파악하고 있어, 경비들을 피해 뇌옥이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뇌옥의 입구는 다른 건물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금막비 일행은 뇌옥입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붕위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경비들이 교대하는 시간이다. 금막비일행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으니 뇌옥주위에 숨어 있던 경비들이 새로 도착한 사람들과 교대하는 모습이 보인다.
‘비랑! 이제 시작해야죠!’
‘기다려. 방금 교대한 놈들이라 긴장하고 있을 거야. 조금만 더 있다가 시작하자.’
금막비는 반시경이 조금 지나자 당령과 귀왕이영에게 손짓하며 자신이 먼저 몸을 날렸다. 뇌옥 입구를 밝히고 있는 횃불에 검은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가지만 경비무사들은 그곳도 모르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금막비는 품속에서 수라검을 꺼내 동쪽 구석에 숨어 있는 무사들을 향해 두 자루 수라검을 날렸다.
“퍽~ 퍽~”
밤공기를 울리는 작은 소리와 함께 구석에 숨어있던 무사들의 옥침(뒤통수)에 수라검이 자루까지 파고들었고, 소리도 없이 무사들의 옆에 착지한 금막비는 무사들의 향해 검은 모래를 뿌렸다. 나중에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확실하게 죽이는 것이다.
일영은 가죽장갑을 낀 상태에서 바람의 방향을 확인하고 가루를 날려 보내니, 멀리 몸을 숨기고 있던 무사들이 거품을 물고 쓰려진다. 일영은 숨을 멈추고 무사들의 옆에 착지하더니 단검(短劍)으로 쓰려진 무사들의 목을 베어버린다.
당령이 초조하고 지켜보고 있으니 뇌옥주변에 숨어있던 경비들을 처리한 금막비이행이 돌아왔다. 금막비는 뇌옥입구를 살펴보다가 품속에서 유성우를 꺼냈다. 뇌옥입구는 횃불이 있어 접근이 쉽지 않으니 유성우을 사용할 모양이다.
“위이잉!”
유성우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려내고 경비무사들을 향해 날아간다.
“저게 뭐야.”
“윽~”
무사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유성우를 발견하고 검(劍)으로 쳐내려 했지만, 유성우는 검(劍)을 수수깡처럼 날려버리고 무사들의 목까지 베어버린다. 금막비는 반원을 그리며 날아오는 유성우를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다량의 수라검과 표창들을 경비무사들을 향해 뿌리니 유성우에 의해 목이 날아간 무사들뿐만 아니라 나머지 무사들도 고슴도치처럼 변해 쓰려진다. 설명은 길지만 금막비가 유성우를 날리고 표창을 날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촉간에 지나지 않아 경비무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황천으로 간 것이다. 금막비일행은 경비무사들을 제거하자 재빨리 무사들의 시체를 한쪽으로 치우고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다.
“당령은 뒤에 따라와. 일영, 이영 갑시다.”
문이 열리자 금막비가 앞장서고 그 뒤로 일영과 이영이 당령을 호위하여 따라왔다. 금막비는 멀리서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리자 수라검을 들고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육중한 철문 앞에 있는 탁자에 경비무사 4명이 투전을 하고 있었다. 금막비는 차갑게 웃더니 당령일행에게 손짓하고 수라검을 날리는 동시에 무사들에게 날아가니 당령일행도 금막비를 따라 한번에 무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누구........욱~”
“우드드득~”
금막비는 수라검이 박힌 무사의 목을 독수리처럼 잡아 비틀었고, 나머지일행도 자신이 담당한 무사를 처리했다. 금막비일행이 철문을 열어보니 지하로 연결된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미약하게 들리던 신음소리가 자꾸만 커진다. 당령은 복도 양쪽으로 늘어선 뇌옥에서 가족들을 찾아보았다. 뇌옥에는 당가에 죄를 지은 일반인들과 반역자들이 별도로 수감되어 있는 모양이다. 당령도 뇌옥이 처음이라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비랑.........없어요. 분명히 뇌옥에 있다고 했는데........?”
“저쪽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또 있어. 혹시 그곳에 있을지 모르니까 빨리 가보자.”
금막비는 일행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가 보니 긴 복도에 다른 뇌옥과는 달리 어린아이 손목만큼 두꺼운 철장으로 만들어진 뇌옥들이 나타났다.
“너희들..........여기 있었구나.”
귀왕일영과 이영이 가족들을 발견한 모양이다. 당령은 경비무사에게 빼앗은 열쇠로 문을 열어주고 벽에 걸려 있던 횃불을 가져왔다. 아직 자신의 가족들을 찾지 못했다. 당령과 금막비는 귀왕일영과 이영에게 가족들을 구하라고 눈짓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당령은 뇌옥들을 살펴보다가 가장 안쪽에 있는 뇌옥 앞에 멈추었다. 뇌옥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외복을 걸친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아버지.........어머니.”
당령은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으며 아버지의 이름을 불렸다. 뇌옥 속에 당령의 가족들이 갇혀 있었던 것이다.
“누........누구냐? 당령이냐?”
“예! 못난 자식이 이제야 왔습니다.”
40대 중반의 부인이 철장 가까이 다가와 당령의 손과 얼굴을 만져보다. 하지만 당순기는 차가운 눈길로 당령 뒤에 있는 금막비를 노려본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당장 꺼지지 못할까?”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당순기의 목소리에 울먹이던 당령일행이 깜짝 놀랐다.
“부인 뭐하는 겁니까. 당장 이리와요. 저놈은 우리 자식이 아닙니다.”
40대 중반의 부인은 눈물을 당령의 손을 놓고 당순기의 겉으로 갔다. 당령은 황당한 현실에 멍하니 당순기를 바라본다.
“아버님 왜?..........저희들은 아버민을 구하기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는데.....”
“누가 누굴 구한단 말이냐? 너는 이미 내 자식이 아니다. 그러니까 썩 꺼지지 못할까?”
“아버님.........정녕 저를 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어허~ 이놈이 귀가 먹었나. 인상아.........저년을 당장 내쳐라.”
당순기가 등을 돌리며 말하자 한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20대 중반의 사내가 철장으로 다가왔다. 당순기의 아들이자 당령의 오라버니인 당인상이다.
“우리 걱정하지 말고 빨리 가?”
“오라버니.........저 때문에.......”
“아버님이 더 역정 내시기 전에 빨리 가라니까?”
“같이 가요. 밖에 마차까지 준비했어요.”
“바보야. 우리가 도망치면 정말 반역자가 되는 거야. 왜 그걸 몰라!”
“하지만 저 때문에 모두들 고생하시는데........”
“원료님들도 언제까지 우릴 이곳에 두지는 않으실 거야. 하지만 우리가 도망치며 정말 반역자가 되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해. 거기..........금막비........빨리 당령을 데리고 나가?”
당인상의 말에 금막비가 주저앉은 당령을 일으켜 세웠다. 당순기나 당인상의 뜻을 알기 때문이다.
“당령! 가자. 우리가 잘못 생각했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자는 말씀이세요.”
“본인들이 싫다고 하시잖아. 싫다는 사람을 어떻게 데려가니?”
“하지만.........하지만............”
“당령은 물려가고..........금막비........잠깐 좀 봅시다.”
금막비는 당인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령이를 잘 부탁합니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아버님도 내색은 하지 않으시지만 령이를 많이 걱정했어요.’
‘알겠습니다.’
당인상의 전음에 금막비는 짧게 대답했다.
“당령! 인사드려. 이제 가야해.”
당령도 이제 가족들의 뜻을 알고 당순기와 어머니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아버님........어머님..........갈게요.”
당령이 먼저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자 금막비는 당순기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당령과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금막비도 당령을 따라가니 그제야 당순기가 당령이 사라진 복도를 바라본다. 겉으로는 냉정하게 딸을 내쳤지만 마음속으로는 딸의 행복을 빌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자식이 아닌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갔으니 잘 살겠죠?”
“금막비라는 놈........무책임한 놈은 아니니 잘 해줄 거야.”
당순기와 부인은 그렇게 딸을 보냈다.
금막비와 당령은 귀왕사영이 구출한 가족들과 함께 뇌옥을 빠져나와 삼영과 사영이 기다리고 있는 북쪽 문으로 향했고, 기다리던 가족들을 만난 귀왕사영은 가족들을 마차에 태우고 객점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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