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47부

본문

검치독인(劍癡獨人)은 검(劍)만아는 어리석은 외팔이라는 뜻으로 생각이 깊지 못하고 그때, 그때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단순한 성격을 보고 주위사람들이 지어준 별호다. 풍운에게 모욕(侮辱)당했다고 생각한 검치독인은 분(忿)한 마음에 평소의 조심성도 잃어버려 풍운이 뒤를 밟고 있다는 것도 눈치체지 못했다.




“으아 화 탁지나! 밖에 누구 없느냐? 술 좀 가져와.” 




마위가 정해준 방에 도착한 검치독인은 분(忿)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라도 안마시면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풍운은 경비무사들의 눈을 피해 지붕에 착지하여 구석진 곳에 몸을 숨겼다. 장원의 여기저기에서 미세한 숨소리가 들린다. 천안통(天眼通)으로 복장을 살펴보면 배화교의 시안무사들이 확실하다. 풍운은 기(氣)로 음파(音波)를 차단하고 기와장를 걷어내더니 건물로 잠입했다. 건물 안은 의외로 경계가 허술하다. 보초 한명 없는 것이다. 풍운은 대들보 위에서 잠깐 생각하더니 검치독인으로 역용하고 천이통(天耳通)으로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리니 이층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얼큰하게 취한 목소리다. 풍운은 소리가 나는 곳을 확인하고 음양비로 빠르게 이동하며 이층과 일층을 수색하다가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발견했다. 이층에서는 지금도 검치독인으로 보이는 노인과 젊은 남자가 떠들고 있다. 지하에 뭐가 있을까? 풍운은 주위를 살펴보고 느릿한 걸음걸이로 지하로 내려가니 두꺼운 철문이 앞을 막았다. 역시 지키는 사람하나 없다. 철문을 살짝 밀어보니 아무런 제약도 없이 스르르 열린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선천강기(先天剛氣)를 끌어올려 양팔에 집중하고 안쪽을 살펴보니 8개의 침상에 시체처럼 누워 있는 젊은 남녀가 보였다. 바로 검산계곡에서 만났던 십이살(十二殺)들이다. 풍운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침상에 누워있는 십이살(十二殺)은 풍운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풍운이 검치독인으로 역용하고 있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는 모양이다. 풍운이 요사(夭死)한 여인들 앞으로 다가가니 여인들은 풍운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풍운은 울렁거리는 감정의 덩어리를 억누르고 여인들을 살펴보았다.




“몸은 괜찮아요.” 




풍운의 질문에 여인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린다. 풍운의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 모양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당신들을 구해 줄게요.” 




풍운은 나머지 십이살(十二殺)을 살펴보고 조용히 지하를 빠져나와 자신이 들어왔던 지붕으로 올라왔다. 당장 구해주고 싶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풍운은 기와를 본래대로 해놓고 하늘 높이 솟구쳐 객점으로 달려갔다. 멀리 객점이 보인다. 풍운은 객점에 도착하기 전에 다시 본래(?)의 얼굴로 역용하고 객점주위를 돌아보았다. 일행이 머물고 있는 후원을 감시하는 놈들이 눈에 띈다. 시안 놈들인 모양이다. 풍운은 시안무사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객점으로 들어가 일행을 불려 모았다. 풍운의 부름에 후원주위를 감시하던 이막수와 도치부부도 한자리에 모였다. 




“말씀도 없이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십이살(十二殺)이 숨어 있는 장원을 둘려보고 왔어요.”


“십이살(十二殺)? 외팔이 노인을 따라가셨던 겁니까?” 


“예~ 이막수님 말대로 수상한 점이 많아 뒤를 밟아보니 십이살(十二殺)이 숨어 있는 장원으로 가더군요.” 


“십이살(十二殺)을 직접 확인하신 겁니까?” 


“장원에 딸린 건물지하에 있었어요. 그리고 장원을 지키는 무사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시안의 감숙성지부 같았습니다.” 


“멍청하게 우릴 감시하려 왔다가 오히려 꼬리가 밟힌 거네요. 하여튼 잘 됐습니다.” 




풍운은 무경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자신이 살펴본 온 장원을 그렸다. 




“장원의 구조는 대충 이렇게 됩니다. 십이살(十二殺)은 여기 중앙건물 지하석실에 있었습니다.” 


“혹시 외팔이 노인이 누군지 알아보셨습니까?.” 


“제 생각에 삼마(三魔) 검치독인이 아닐까 합니다. 십대마왕 중에 검치독인이 외팔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마(一魔)와 이마(二魔)에 이어 삼마(三魔)까지 우릴 잡으려 나섰다는 말입니까?”


“그럴 가망성이 많아요. 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사(一死)님이 오기시 전에 이막수님께 노인에 대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삼마(三魔)가 확실하다고 봅니다. 검산계곡전투에서 일마(一魔)와 이마(二魔)가 부상을 당했으니 삼마(三魔)까지 보낸 모양입니다.”


“참~ 일마(一魔)와 이마(二魔)에 이어 삼마(三魔)까지 나선걸 보면 배화교가 다급했던 모양입니다.”




곽지향의 말에 마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공자는 대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중원공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우리부터 죽이려는 겁니다.”


“대공자? 그놈은 또 누구야.”


“이번 중원침략군의 총책임자가 대공자입니다. 대공자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으니 어떤 사람인지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대공자는 교주인 혁린무진의 첫째 아들로 어릴 적부터 백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하는 절대기재라고 평가받던 사람입니다. 그는 10살이 되기 전에 배화교가 자랑하는 10대 마공을 모두 익혔고 군사인 마재갈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했던 천재입니다.” 


“그놈이 천재라고 치자, 결론이 뭐야.” 




도치가 중간에 말을 자르자 마수는 입맛을 다시며 결론만 이야기 했다. 




“대공자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삼공자나 이공자와는 다른 사람이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 그렇게 짧게 설명하니까 얼마나 좋아. 알아듣기도 쉽잖아. 일사(一死)님! 이제 말씀하세요.” 




도치의 말에 마수가 쓰게 웃으며 자리에 앉으니 풍운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합니다. 십이살(十二殺)을 구출했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때요.” 


“우리가 먼저 치자는 말씀입니까?” 


“이미 전쟁은 시작됐어요.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저들이 우릴 공격할 겁니다. 또 오늘 같은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릅니다. 일마(一魔)와 이마(二魔)는 저번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어요. 그들이 부상에서 회복하면 힘들어져요?”


“나는 일사(一死)님 의견에 무조건 찬성입니다. 이번 기회에 일마(一魔)하고 이마(二魔)도 죽이고 십이살(十二殺)을 구출하는 겁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도치와 이막수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도 찬성하는 분위기다.




“반대하시는 분은 없겠죠. 좋아요. 무경과 마수님은 작전을 생각해 보세요.” 




무경은 장원의 지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장원은 십이살(什二殺)이 머물고 있는 건물을 중앙에 두고 전후좌우로 부속건물들이 포위하고 있는 형태였다. 




“십이살(十二殺)을 안전하게 구출하려면 혼수모어(混水摸魚)계책을 이용해야 합니다. 먼저 적(敵)을 혼란시켜 당황하는 사이 십이살(十二殺)만 구출하고 빠지는 것이 작전의 요점입니다.” 


“이번 기회에 일마(一魔)와 이마(二魔)까지 죽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후환이 없죠.”


“기회가 되면 죽여야죠. 하지만 그건 십이살(十二殺)을 구출하고 난 다음에 생각할 문제예요. 운랑. 제 말이 틀렸나요.”


“맞아요. 이번 작전의 핵심은 십이살(十二殺)의 구출하는 겁니다.”


“다들 들으셨죠. 계속 설명할게요. 악무룡님과 곽지향님께서 벽력탄과 독(毒)으로 경비무사들을 혼란시켜주세요. 그 사이에 운랑과 냉소저가 적진(敵陣)에 침투하여 십이살(十二殺)을 구출하는 겁니다.” 


“잠깐만! 일사(一死)님과 냉소저만 침투하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뭐하죠.” 


“아직 설명이 끝나지 않았어요. 끝나면 질문하세요. 악무룡님과 곽지향님이 공격을 시작하면 십대마왕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이때는 이막수, 도치, 사우님께서 악무룡님과 힘을 합쳐 십대마왕을 막아주셔야 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있을 겁니다. 왜? 운랑과 냉소저만 적진(敵陣)에 침투하느냐? 십이살(十二殺)은 십이사(十二死)를 죽이라는 최면이 걸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얼굴도 모두 알기 때문에, 여러분을 보면 무조건반사적으로 공격합니다. 하지만 제가 살펴본 결과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공격적이진 않았습니다. 냉소저는 우리와 합류(合流)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배화교도 존재를 모르고 있으며 운랑은 천면역용술을 익히고 계시기 때문에 십이살(十二殺)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천유소저나 무경님도 우리랑 한편이지 십이살(十二殺)이 모르지 않습니까?”


“왕소저는 우리와 같이 한지 오래되어 혹시 몰라 제외해야 하며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뭐하느냐? 저와 나머지 분들은 여러분이 싸우는 사이에 장원 주위를 감시할 겁니다.” 




무경이 대략적인 작전 설명을 끝내자 사람들은 무경의 작전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각자의 능력을 배려한 치밀한 작전이지만 몇 가지 의문이 있다. 풍운과 냉하상이 십이살(十二殺)이 어떻게 데려올 것인가? 일살(一殺)이나 삼살(三殺)처럼 혈도를 제압하여 짐짝처럼 들고 올 것인가? 그렇다면 두 사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두 사람이 들고 올수 있는 사람은 4명이 한계가 아닐까?




“무경님. 일사님(一死)님과 냉하상소저가 무슨 수로 십이살(十二殺)을 데려오죠. 혈도를 제압해서 짐짝처럼 들고 온다고 해도 4명이 한계 아닙니까?”


“검산계곡전투를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시 팔이 날아가고 허리가 잘려도 끝까지 싸우던 십이살(十二殺)이 일마(一魔)의 명령에 후퇴했어요. 이걸 보면 십이살(十二殺)은 일마(一魔)의 명령을 듣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사(一死)님이 일마(一魔)로 역용해서 십이살(十二殺)을 데려오면 된다는 말씀이군요. 음~ 말이 된다.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이야기야. 하지만 문제는 또 있어요.”




풍운과 냉하상이 십이살(十二殺)을 데려오는데 성공해도 장원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십대마왕과 마주칠 가망성이 많다. 십대마왕이 그냥 두겠는가? 십이살(十二殺)에게 공격명령을 내릴 것이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십이살(十二殺)과 또 싸워야 한다.




“무경님........십이살(十二殺)을 데리고 장원을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겠습니까? 나오는 길에 십대마왕과 마주치며 모든 일이 허사(虛事)가 되지 않습니까?” 




이막수의 질문에 무경대신 마수가 대답했다. 




“무경님께서 확인하지 못한 사실이라 섣불리 말씀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장원이 시안의 비밀지부라면 반드시 외부와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을 겁니다. 무경님을 비롯한 나머지 분들은 여러분이 싸우는 사이에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를 찾아 일사(一死)님이 들어가신 건물로 찾아갈 겁니다. 물론 우리 예상이 틀려서 비밀통로가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죠.” 




마수의 설명이 끝나자 풍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체적인 계획이 잡혔으니 모두 준비하세요. 오늘 밤 안으로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풍운일행은 저녁을 든든히 먹고 각자 무기를 점검하며 명령을 기다렸다. 인시(새벽 3~5시 사이)를 알리는 북소리가 난다. 풍운은 자신의 방으로 일행을 불려 모았다. 




“밖에 우릴 감시하는 시안 놈들이 있을 있습니다. 이막수님께서 동쪽을 청소해 주시고, 냉소저가 북쪽을 청소해 주세요. 제가 서쪽과 남쪽을 청소하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제가 신호하면 창문을 통해 빠져 나오세요.” 




풍운의 명령을 받는 이막수가 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동안 객점주위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안 놈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다. 검은 하늘에 두 자루 단검(短劍)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컥~” 




나무위에 숨어 있던 시안무사의 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맞은편 나무에 숨어 있던 무사가 피를 토하며 떨어진다. 이막수는 날아오는 검(劍)을 회수하고 은신술로 몸을 숨기며 다른 곳에 숨어 있는 놈들 뒤로 접근했다. 




“사각~” 




뼈가 베어지는 섬뜩한 음향과 함께 두 명의 시안무사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다. 이막수가 중원의 전설적인 이가살수문 출신이라면 냉하상은 신강제일의 천인살막의 막주다. 냉하상의 일점홍이 공기를 가르자 심장에 구멍이 뚫린 무사가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쓰려지고, 옆에 있던 무사는 이마에 바람구멍이 뚫려 멍한 눈으로 쓰려진다. 냉하상은 귀신같은 신법으로 객점지붕에 숨어 있는 무사들에게 접근했다. 




“누구.........윽~” 




냉하상을 발견하고 검(劍)을 뽑으려던 무사가 목을 붙잡고 쓰려지는데 그의 손가락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냉하상의 검(劍)은 살수검(殺手劍)답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의 급소만을 뚫어버린다. 




풍운은 선천강기를 끌어올려 손가락에 집중했다. 속전속결(速戰速決)로 끝내야 한다. 풍운은 음양비로 날아올라 바람 같은 신법으로 숨어 있는 시안무사들의 겉을 스치고 지나갔다. 




“푸하하하~” 




풍운이 지나간 이후 두 사람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지며 하얀 뇌수(腦髓)가 흘러내린다. 풍운은 바람이었다. 살며시 다가와 번개처럼 스쳐가는 바람. 시안무사들은 풍운의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차가운 시체로 변해간다. 풍운은 천안통(天眼通)과 천이통(天耳通)으로 주위를 돌아보더니 일행에게 손짓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풍운일행이 날렵한 신법으로 장원을 향해 달려간다. 예전에는 도치 때문에 발걸음이 늦춰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도치도 남부럽지 않는 경신법을 익히고 있어 일행의 이동속도는 바람처럼 빠르다. 멀리 장원이 보인다. 




“멈추세요. 저기 보이는 장원이 놈들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풍운의 말에 일행이 어둠에 묻힌 장원을 살펴보지만 하늘에 낀 먹구름 속으로 별도 달도 숨어버려 겨우 건물의 형태만 분간할 수 있을 정도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오늘 작전은 십이살(十二殺)을 구출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여의치 않으면 그냥 도망치세요. 절대 사생결단(死生決斷)식으로 싸우지 마세요. 여러분은 저와 냉하상소저가 십이살(十二殺)을 구출 할 때까지 시간만 끌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미리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풍운이 고개를 숙이니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살가죽이 춤을 추더니 주름살 가득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어때요? 비슷합니까?” 




풍운이 고개를 들자 일행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풍운이 순식간에 일마(一魔)의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한번 보고 역용한 것이라 잘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하여튼 저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이 모습을 유지할 겁니다. 진짜 일마(一魔)와 혼동하지 마세요.” 


“옷과 목소리로 구분하면 되겠죠. 설마 목소리까지 일마(一魔)랑 똑같지는 않겠죠?” 


“십이살(十二殺)과 있을 때만 빼고 본래의 목소릴 겁니다. 준비가 끝났으면 시작하죠.” 




풍운의 말에 악무룡과 곽지향이 먼저 출발하고 도치와 사우가 뒤를 따른다. 




“무경과 나머지 분들은 비밀통로를 찾아보세요.”


“저희들이 먼저 찾으면 운랑께 가겠지만 혹시 모르니 운랑도 안쪽에서 찾아보세요.”


“그럴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군. 내 생각에는 굳이 비밀통로를 찾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뒷문으로 빠져나오면 되잖아.”


“뒷문? 좋아요. 이렇게 하죠. 혹시 모르니 제가 뒷문 쪽에 은닉(隱匿)진을 만들고 기다릴게요. 마수님은 비밀통로를 찾아보세요. 혹시 놈들이 그쪽으로 도망칠 수도 있잖아요.”


“알겠습니다. 제가 의심나는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야기 끝났지. 그럼 우리도 출발해야지. 냉하상님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손 좀 주세요.” 


“예? 손이요?” 




냉하상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미니 풍운은 냉하상의 손을 잡고 하늘 높이 솟구쳤고 냉하상은 순식간에 집과 사람들이 점처럼 변하자 풍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풍운이 무림최고의 경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십이살(十二殺)이 머물고 있는 건물지붕으로 내려갈 겁니다.” 




풍운은 냉하상과 함께 지붕에 사뿐히 착지하여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악무룡은 품속에서 벽력탄을 깨내 양손에 잡았다. 




“지향님. 제가 먼저 시작할까요.” 


“아무래도 독(毒)보다는 벽력탄이 효과적이겠죠. 한방 날리세요.”


“하하하~ 오늘 날 잡았다. 시원하게 불꽃놀이나 한번 해보자.” 




무룡의 손에서 두 개의 벽력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장원을 향해 날아간다. 장원을 지키던 경비무사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멀리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게 뭐야. 누가 장난하나.” 




무사는 날아오는 벽력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술 취한 주정뱅이가 장난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아앙~” 


“크아아악~” 




어둠을 밝히는 불기둥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주위에 숨어 있던 무사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사방으로 날아간다. 




“나도 간다. 혈파~” 


“콰아아앙~”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붉은 강기(剛氣)를 머금은 도끼가 날아가 정문을 날려버린다. 




“적(敵)이다. 비상. 비상. 적(敵)이 침입했다.” 




마위도 소리를 들었다. 재빨리 옷을 걸치고 창문을 열어보니 정문 쪽에서 불기둥이 솟구치며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저건 벽력탄?”




검산계곡에서 벽력탄이 터지는 모습을 보았기에 소리와 불기둥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설마? 십이사(十二死)가 쳐들어 왔단 말인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십이사(十二死)가 보라는 듯이 객점에 머물고 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그들이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은 못했다. 향상 자신들이 쫓고 십이사(十二死)가 도망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마위는 재빨리 검치독인의 방으로 달려갔다. 




“삼마(三魔)님 일어나세요. 삼마(三魔)님.” 




마위의 고함소리에 검치독인이 머리를 감싸고 일어났다.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서 뒷골이 댕기는 모양이다.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십이사(十二死)가 쳐들어 왔습니다. 빨리 일어나세요.” 


“뭐야! 십이사(十二死)? 빠드득! 잘 됐군. 네 이놈들을 그냥 두지 않겠다.” 




아직까지 취기가 남아있는 검치독인은 십이사(十二死)라는 말에 광분(狂奔)하여 마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정문을 향해 날아갔다. 




벽력탄이 터지는 소리를 시작으로 장원 곳곳에 숨어 있던 무사들이 정문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풍운과 냉하상은 지붕 위에서 무사들이 몰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건물 주위에 아직 몇 명이 남았지만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한다. 




“냉소저에게 위험한 일을 맡겨 죄송합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한배를 타기로 한 이상 저도 다른 분들과 똑같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게 저도 편해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출발합시다.” 




풍운이 저번처럼 기와를 걷어내고 있는데 검치독인이 정문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시간이 없다. 풍운은 냉하상과 함께 안으로 잠입하여 지하를 향해 달려갔다. 다행이 지하를 지키는 놈이 없다. 풍운이 재빨리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십이살(十二殺)들이 침상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깨긴 했지만 아무런 명령이 없으니 멍하니 있는 모양이다. 이살(二殺)이 가장 먼저 풍운을 발견하고 뚫어지라 쳐다본다. 일마(一魔)로 역용한 풍운을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다.




“모두 나를 따라와라.”




풍운이 일마(一魔)의 목소리로 명령하자 멍하니 앉아있던 십이살(十二殺)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대로 일마(一魔)의 명령을 따르는 모양이다. 




‘냉소저. 뒤를 맡아주세요.’


‘알았어요. 먼저 출발하세요.’




검치독인이 깼다면 쌍마(雙魔)도 깨어났을 것이다. 비밀통로를 찾을 시간은 없다. 어서 빨리 건물을 빠져나가야 한다. 풍운이 앞장서서 계단으로 올라가자 십이살(十二殺)이 뒤를 따른다. 냉하상은 마지막 십이살(十二殺)까지 빠져나가자 주위를 돌아보고 일행을 따라갔다.




마위는 창문 넘어 검치독인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말린 틈도 없었다.




“혼자가시면 안되는데.........할 수 없군. 쌍마(雙魔)님. 쌍마(雙魔)님”




마위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쌍마(雙魔)의 방으로 달려갔다. 장원을 지키는 무사들이 많기는 하지만 십이사(十二死)의 상대는 아니다. 또한 검치독인이 십대마왕 중 한명이라고 하지만 혼자서 십이사(十二死)를 상대하긴 벅찰 것이다. 특히 일사(一死)가 무섭다. 검산계곡전투에서도 보았지만 쌍마(雙魔)가 일사(一死) 한명을 당해내지 못했다. 쌍마(雙魔)도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나 옷을 걸치고 있었다.




“쌍마(雙魔)님. 큰일 났습니다. 십이사(十二死)가 쳐들어 왔습니다.”




쌍마(雙魔)의 방문을 열자마자 마위가 소리쳤다. 




“십이사(十二死)가 확실해?”


“확실합니다. 그놈들이 아니라면 우릴 공격할 놈들이 없지 않습니까? 어서 빨리 십이살(十二殺)에게 놈들을 막으라고 명령하세요.”


“소리를 들어보니 삼마(三魔)는 이미 출발한 모양이지.”


“말릴 사이도 없었습니다. 지금 쯤 놈들과 싸우고 계실 겁니다.”


“빌어먹을! 도망쳐도 시원찮을 놈들이 우릴 공격한단 말이지. 빠드득~ 이마(二魔)! 자네는 여기 있게.”


“혼자가도 되겠나. 나도 함께 가겠네.”


“저번에야 방심해서 당했지만 이번에는 쉽게 당하지 않아. 또 삼마(三魔)도 있으니 십이살(十二殺)을 데려가면 충분할 거야. 그러니까 자네는 쉬고 있어.”




이마(二魔)는 이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라 싸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증폭마왕단을 먹으면 된다. 하지만 증폭마환단을 먹으면 잠시 동안 본래의 무공을 회복할 수 있지는 모르겠지만 끝내는 죽게 된다. 이마(二魔)도 그걸 알기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알았네. 조심하게.”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말게. 마위! 가세.”




일마(一魔)는 이마(二魔)를 두고 마위와 함께 지하로 달려갔다. 현재 십이살(十二殺)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쌍마(雙魔)뿐이다. 혁린강이 쌍마(雙魔)의 명령에만 따르도록 최면을 걸었기 때문이다. 마위도 그걸 알기에 쌍마(雙魔)를 먼저 찾아온 것이다. 




화(火)와 독(毒)은 상극이다. 불이 독(毒)을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곽지향은 독(毒)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악무룡을 보호하는데 주력했다. 두 자루 화살이 날아가 어둠 속에서 달려오던 무사들의 목을 관통했다. 왕천유가 어느새 높은 담에 올라 화살을 쏘고 있었다. 이막수의 단검(短劍)이 무사들의 가슴을 관통하니 무사들은 피를 토하며 쓰려진다. 시안무사들은 더 이상 풍운일행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놈들. 당장 멈추지 못할까?”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외팔이가 날아온다. 도치는 검치독인을 보자마자 도끼를 날렸고, 검치독인의 검(劍)이 빛을 뿌리자 강기(剛氣)을 머금은 도끼가 힘없이 튕겨진다. 




“마령월광도법 도파(刀破)”




사우가 도(刀)를 내리치자 하얀 도기(刀氣)가 검치독인을 향해 날아간다. 검치독인은 날렵한 신법으로 도기(刀氣)를 피하며 날아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사우의 목을 공격했다. 빠르다. 지금까지 상대하던 무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사우는 검(劍)을 피할 시간이 없자 도(刀)로 맞받아치려 했다. 




“깡~” 




짧은 금속성과 함께 검치독인의 검(劍)이 튕겨진다. 이막수가 용천검(龍泉劍)으로 검치독인의 검(劍)을 쳐낸 것이다.




“이게 뭐야. 이빨이 나갔잖아.”




어느새, 몇 발자국 물려난 검치독인이 이빨이 나간 검(劍)을 보고 중얼거린다. 비록 무림십대기병 같은 전설적인 검(劍)은 아니지만 신강제일의 장인이 평생 동안 단 2자루만 만들었다는 명검(名劍)이 단 한 번의 충돌로 이빨이 나갔다. 




“이제 보니 좋은 검(劍)을 가지고 있군. 잘 됐어. 네놈을 죽이고 검(劍)을 차지하면 이석이조(一石二鳥)겠지.”




검치독인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용천검을 바라본다. 검사(劍士)에게 검(劍)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에 명검(名劍)을 보면 상대를 죽어서라도 빼앗고 심은 심정일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십이사(十二死)아니가?




“용천검을 빼앗겠다. 할 수 있으면 해봐~”




이막수는 배화교 무공보다는 가전 무공을 즐겨 사용하기에 용천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단검(短劍)으로 펼치는 가전무공만 사용해도 당해낼 무사가 겨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도 검치독인의 검(劍)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내공을 끌어올린 것 같지도 않는데 검기(劍氣)가 감돌고 있다. 검기(劍氣)가 검(劍)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다른 검(劍)들처럼 용천검에 잘려나갔을 것이다.




“이사(二死)님은 나서지 마세요. 저놈은 제가 처리합니다.”




이막수보다 먼저 성질 급한 도치가 검치독인에게 달려들었다. 붉은 강기에 감싸인 도끼가 검치독인의 도처(가슴)혈과 비중(목)혈을 향해 날아간다. 검치독인은 날아오는 도끼를 검(劍)으로 쳐내려 했다.




“콰아아앙~”


“이런 빌어먹을.........”




강기(剛氣)를 머금은 검(劍)과 도끼가 충돌하자 검치독인이 뒷걸음친다. 황당하게도 내공이 전혀 뒤지지 않고 오히려 힘에서 밀리고 있다. 도치는 검치독인이 물려나자 연속해서 도끼를 휘둘려 가슴과 목을 후려친다. 힘으로 상대하면 불리하다. 힘을 앞세우는 상대는 빠름과 날카로움으로 상대해야 한다. 




“섬(閃-번쩍할 섬)”




검치독인의 검(劍)이 도끼와 도끼사이를 파고들어 도치의 목을 향해 날아온다. 빠르다. 피할 시간이 없다. 도치는 이를 악물고 도끼에 내공을 몰아넣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계산이다.




“위험해. 절정마검.”


“깡~”




또다시 용천검(劍)이 검치독인의 검(劍)을 쳐내고 검치독인의 운월(어깨)혈을 향해 날아간다. 검치독인은 도끼와 용천검이 한꺼번에 날아오자 재빨리 물려나며 검막(劍幕)을 쳤다.




“까까까깡~”




두 자루 검(劍)과 도끼가 충돌하며 불꽃이 튄다.




“빌어먹을..........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내가 먼저 지치겠군. 안되겠어.”




혼자서 도치일행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검치독인은 재빨리 시안무사들 틈으로 후퇴했다. 검(劍)만 아는 바보가 아니라 싸울 때와 도망칠 때를 확실하게 아는 똑똑한 놈이다. 악무룡과 곽지향은 때로 몰려오는 시안무사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꽝아앙~”


“크아아악~”




악무룡에게 달려오던 무사가 온몸에 불이 붙어 비명을 지른다. 뭔지 모르고 악무룡이 던진 소이탄을 검(劍)을 쳐냈기 때문이다. 악무룡은 때로는 소이탄으로, 때로는 화령화무장으로 시안무사들을 요리하고 있었다. 곽지향의 장(掌)이 가슴을 때리자 시안무사가 진흙처럼 녹아내린다. 곽지향은 가죽장갑에 독(毒)을 발라 시안무사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시안무사들 틈으로 들어간 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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