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244부
본문
중원전역에 배화교가 쳐들어왔다는 소문이 펴졌다. 소문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시장과 나루터를 시작으로 대륙상회와 장강수로십팔채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고,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처럼 순식간에 산간벽지까지 무림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전달되었다. 소문의 진위(眞僞)여부를 떠나 나이 많은 노인들은 50년 전의 악몽(惡夢)을 떠올리며 공포에 떨었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당장 무림군을 조직하여 배화교를 응징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림을 영도(領導)한다는 구파일방이나 칠대세가는 배화교가 쳐들어 왔다는 소문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지 않고 있었다.
천마마련의 깊은 곳에 위치한 아담하고 아름다운 정자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다. 여인은 무릎에 천을 올려놓고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었고 남자는 실없이 웃으며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그만해라. 네가 바느질하고 있으니까 정말 안 어울린다.”
“아이 정말!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자꾸 옆에서 부채질할래.”
“이게 어디서 짜증이야. 누가 하라고 했어. 그만두고 술이나 마시면 되잖아.”
남자의 말에 여자는 바늘과 천을 집어던지고 벌떡 일어나 정자 밖으로 나가버린다. 상대하기도 싫다는 태도다.
“삐쳤어. 어디가?”
“오빠 말대로 술이나 퍼마시려 간다.”
“하여튼 누가 취봉(醉鳳) 아니랄까봐~ 꼬신다고 바로 넘어가요?”
“오빠도 같이 갈래. 답답한데 술이나 한잔 하자.”
“싫다. 나는 읽던 책이나 읽으련다. 너도 술 말고 책이나 읽어라.”
여인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남자를 두고 가버린다. 남자는 천마공자 초하벽고 여자는 취봉 초벽하다. 초벽하는 최근 들어 좋아하던 술도 끊고 의학과 바느질을 배우고 있었고 초하벽은 무공을 익히는데 매진하고 있었다.
초벽하는 자신의 말과는 다르게 숙소로 돌아와 책을 폈다. 눈으로 책을 읽지만 한 줄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림산전투가 끝나자 풍운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천마마련의 정보망을 총동원하고 사사천교에 물어봤지만 누구도 풍운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 도대체 풍운은 어디로 간 것일까? 초벽하는 읽던 책을 덮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무슨 일이야.”
“련주님께서 집무실로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지.”
초벽하가 서둘러 련주의 집무실에 가보니 아버지와 오빠가 미리 와서 기다라고 있었다.
“모두 왔구나! 앉아라.”
초벽하가 아버지와 오빠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자 자신의 책상에 있던 마마검제로 가족들이 있는 탁자로 왔다.
“아범도 소문을 들었겠지.”
“예! 어제 밤에 들었습니다.”
“확인해 봤어.”
“모두 사실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감숙성에 있는 몇 개 문파가 몰살당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두 분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희들에게도 알려주세요.”
초벽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질문한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배화교 본진이 쳐들어 왔어.”
마마검제의 말에 초벽하와 초하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배화교 삼공자나 이공자가 끌고 왔던 소수의 병력이 아니라 본진이 쳐들어 왔다면 본격적인 전투가 임박했다는 말이다.
“아범아. 다른 놈들의 움직임은 파악해봤어.”
“북해빙궁의 대단위 병력이 남하(南下)하고 있지만 포달랍궁이나 흑독애의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빙궁이 남하(南下)해? 배화교 놈들과 합류(合流)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냐?”
“아직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50년 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50년 전에 새외연합합군은 배화교가 있는 신강에 모여 한꺼번에 중원으로 쳐들어왔다. 그런데 지금은 배화교가 단독으로 옥문관을 거쳐 감숙성으로 들어왔고 북해빙궁은 흑룡강성을 거쳐 남하(南下)하고 있으며 흑독애나 포달랍궁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50년 전에 함께하던 새외세력이 각자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범 생각은 어때?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50년 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 한 세대가 바뀔 만큼 긴 시간입니다. 50년 전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각자의 상황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 세대가 바뀐 만큼 생각도 틀려지기 마련이지.”
“저기~ 아버님. 혹시 풍운에 대한 소식은 없습니까? 배화교 본진이 쳐들어 왔다면 가마있을 풍운이 아니지 않습니까?”
“글쎄. 풍운에 대한 특별한 소식을 못 들었다.”
초하벽이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초벽하가 실망하는 눈치다. 초벽하는 풍운의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백도 놈들의 움직임은 어때. 소문이 퍼졌으니 놈들도 들었을 거 아니야.”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지금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모양이죠.”
“그게 말이 돼. 개방거지새끼들은 뭐하는 놈들인데. 중원 최고의 정보통이라고 자랑하는 새끼들이 아직까지 소문의 진위여부도 파악하지 못했단 말이냐?”
“그건 아니겠죠. 지금까지 풍운이 떠드는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가 막상 배화교가 쳐들어오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겠죠.”
“꼴좋다 멍청한 새끼들! 죄도 없는 십이사(十二死)를 공적임내 뭐내 하면서 못 죽어서 안달하더니 막상 십이사(十二死) 말대로 배화교가 쳐들어오니 지들도 창피한 모양이지.”
“아마 지금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일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십이사(十二死)말은 믿지도 않고 무림공적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오히려 그들을 잡기 위해 무림군까지 조직했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닭 쫓던 개꼴이 되었죠. 이젠 배화교까지 쳐들어와서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이 만천하에 알려졌죠. 배화교가 쳐들어 왔는데 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죠. 아마 자기들이 생각해도 황당할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멍청한 새끼들이라는 거야. 지네들이 언제까지나 떵떵거리며 살줄 알았겠지. 이제 두고 봐~ 아주 처참하게 당할 거야.”
마마검제는 고소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50년 전에 은하대평원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도 40년 전에 벌어진 흑백대전의 패배로 큰소리한번 치지 못하고 백도에 눌려 지냈는데 이제야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아버님. 백도 놈들이야 그렇다고 치고 우리라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어 죽을.........준비는 무슨........감숙성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최소한 몇 달은 거려. 그냥 모른척하고 있어. 잘난 백도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배화교 본진이 천마마련이 있는 호남성 장사까지 쉬지 않고 달려도 한 달 이상은 걸린다. 더구나 중간에 산제(散劑)한 문파들을 섬멸(殲滅)하며 진군(進軍)하려면 최소한 몇 달은 거려야 장사에 도착할 것이다. 미리 걱정하고 준비할 필요 없이 사태를 지켜보다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한동안은 그냥 모른척하고 있겠습니다.”
초벽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더 있어야 들을 이야기도 없다.
“아범아. 운이 놈 소식은 정말 없는 거냐?”
마마검제가 초벽하가 나간 문을 힐끗거리며 질문하자 금검비검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속삭인다.
“대륙상회 쪽에 알아보니 현재 난주근방에 있다고 합니다. 배화교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거기에 숨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배화교에 원한이 많은 아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한동안 벽하에게는 비밀로 해라. 운이가 난주에 있다는 말을 들으면 또 뛰쳐나갈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하벽아. 너도 알지. 벽하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 알았지.”
“알겠습니다.”
금검비검이 다짐하라는 듯이 말하자 초하벽은 마지못해 대답한다. 마마검제나 금검비검은 백도와 손잡고 배화교와 맞서 싸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백도 놈들도 당해보아야 한다. 놈들이 처참하게 당해서 도와달라고 무릎 꿇고 빌 때까지는 절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초벽하는 아니다. 풍운이 배화교와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만사(萬事)를 팽개치고 달려갈 것이다. 그럼 마련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풍운이야 그렇다고 쳐도 벽하까지 싸움에 말려들면 모른 척 할 수 없지 않는가?
초벽하는 숙소에 도착하자 짐을 챙겼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눈치가 이상하다. 분명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 간단한 짐을 챙긴 초벽하는 거패를 불렸다. 거패는 본래 초하벽을 모시는 호위무사였으나 하벽이 주화입마에 빠져 벽하가 오빠를 행세를 하면서부터 벽하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부르셨습니까?”
“온주에 갈 거야. 말을 준비해.”
“온주요? 절강성 온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사천교로 간다는 말이야. 아참~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마. 소하하고 비밀리에 만나기로 했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 몰래 남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조심해서 오세요.”
덩치는 크지만 순진하기 짝이 없는 거패는 초벽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아무도 모르게 말을 준비하여 남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오랜만에 남장을 한 초벽하가 달려왔다.
“아무도 본 사람 없겠지.”
“마구간 상식이 놈이 보기는 했지만 제가 그냥 사냥을 간다고 했어요.”
“잘했어. 가자.”
초벽하는 거패와 함께 사사천교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풍운의 소식을 알고 있는 눈치다. 그런데 자신에게 숨기고 있다. 저번처럼 무단으로 가출해서 풍운을 찾아갈까봐 걱정하는 모양이다. 물론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천마마련 사람들은 배화교가 쳐들어오던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배화교가 쳐들어 와서 가장먼저 공격할 문파는 곤륜파나 공동파가 될 것이다. 그럼 구파일방이나 칠대세가는 배화교와 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하강 남쪽까지 쫓겨난 천마마련이나 사사천교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 흑도문파가 백도에 밀려 황하강 남쪽에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배화교을 위시한 새외문파가 쳐들어오려고 해도 한참이 걸리기 때문이다.
풍운이 떠난 이후 하후소하는 사사천교를 정비(整備)하는 한편 초대교주의 무공을 익히는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소하는 먼저 초대교주의 무덤에 있던 재물을 팔아 새로운 무기와 장비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사사천교의 주력인 사사철기군이나 사사비연대는 특수한 무기와 장비가 필요해 인원은 있으나 장비가 없어서 부대수를 늘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소하는 새로 구입한 장비와 무기로 오백 명의 사사천기군수를 이천 명으로 늘리고 일천의 사사비연대수를 삼천으로 늘렸다. 또한 교주의 친위부대와 나머지 부대의 수도 대폭 늘려서 막강한 전력(全力)을 갖추고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사사천교가 4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새롭게 비상(飛上)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소하의 집무실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사천교도 배화교에 소문을 들은 모양이다.
“교주님! 감숙성에 있는 몇 개 군소문파가 몰살당한 것으로 보아 배화교 본진이 쳐들어 왔다는 소문이 진실인 모양입니다.”
사인마도의 직전제자로 교주를 꿈꾸다가 풍운에게 크게 혼난 이유 소하에게 충성을 맹세한 지옥혈검이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저도 들었어요. 그래서 여러분을 모이라고 한 겁니다.”
“놈들이 쳐들어온 이상 우리도 가만있을 수는 없습니다.”
“가만있지 않으면 무사들을 이끌고 감숙성으로 달려가기라도 하자는 말입니까?”
“물론 그건 아니죠? 잘난 백도 놈들도 가만있는데 왜 우리가 먼저 나서요?”
“그럼 뭡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보자는 말이죠.”
“무사들의 숫자를 늘리고 장비도 새롭게 장만했어요. 본교의 전성기였던 50년 전의 전력(戰力)보다 훨씬 막강한 전력(戰力)을 구축했으면 끝났지 뭘 더 준비하자는 겁니까?”
“물론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우리 전력(戰力)만 가지고 배화교와 상대하긴 힘들잖아요. 최소한 천마마련이나 배교에 연락해서 의견을 들어보자는 말입니다.”
“놈들이 여기까지 밀고 들어오려면 아직 멀었어요. 벌써부터 준비는 무슨.”
“모두 조용히 하세요.”
소하의 말에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던 장로들이 입을 다물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백도랑 손잡고 싸우자는 의견은 없으며 절대 먼저 나서자는 의견도 없다. 백도와 배화교가 피터지게 싸우는 것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전부다.
“천마마련이나 배교의 움직임은 어때요.”
“별다른 움직임 없이 평소와 똑같습니다.”
“연락도 없나요.”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랑 같은 생각일 겁니다. 잘난 백도 놈들도 있는데 우리 흑도 무림이 자청해서 싸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알아요. 그냥 한번 물어본 겁니다. 혹시 십이사(十二死)에 대한 소식은 없나요?”
“감숙성에서 보았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소하는 이마에 손을 얻고 잠시 고민했다. 배화교가 감숙성으로 쳐들어왔고 그곳에 풍운이 있다. 풍운은 배화교와 싸울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만 생각한다면 당장이라도 풍운에게 달려가고 싶다. 풍운과 함께 싸우고 싶다. 하지만 자신은 사사천교의 교주다. 개인보다는 사사천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사천교를 위시한 흑도 무림은 이번 일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교주라도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화교랑 싸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긴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사사비연대 백 명을 감숙성으로 보내 배화교를 감시하라고 사시고 나머지는 별도명령이 있을 때까지 훈련이 열중하세요.”
“교주님 말씀은 모른 척 하라는 말씀이죠?”
“여러분 말대로 우리가 먼저 나설 필요는 없어요. 다른 문파들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물려가자 소하는 집무실 문을 잠그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슴이 아파 자꾸만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이가 싸우고 있는데도 자신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교주가 된 것이 후회스럽다. 교주가 아니라면 혼자라도 풍운에게 달려갈 수 있지 않는가?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가 있는 군산이 시끄럽다. 아침부터 무사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동쪽나루터에 있는 최신식 함선(艦船)이 출항출비에 여념이 없다. 나루터에 있는 그늘진 나무 밑에 두 명의 남녀가 모여 무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인 조철봉과 아봉 조옥선이다.
“옥선아! 꼭 너까지 가야겠어. 너는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니?”
“이미 끝난 이야기잖아요. 왜요? 불안하세요.”
“당연하지! 입장 바꿔서 네가 내 입장이라면 불안하지 않겠어.”
“저도 이젠 강해졌어요. 예전처럼 쉽게 당하지 않아요.”
“그건 알지만.........여전히 육지(陸地)로 올라가면 쟁뱅이 아니냐?”
“꼭 그렇게 집어서 말씀하셔야겠어요.”
조옥선이 허리에 손을 얻고 째려보자 조철봉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는데 괜히 성질이네. 아예 정말~ 시집가면 남이라고 하더니........옛말하나 틀린 말이 없어요. 시집도 안간 년이 벌써부터 이러니 나중에 얼마나 더 하겠어. 아주 지 서방밖에 모를 거 아니야.”
“그만하세요. 더 하면 성질내요.”
“이년이 이젠 협박까지 하네. 더러워서 내가 피해야지. 나는 가련다. 조심해서 다녀와라.”
조철봉은 손을 흔들며 총재로 올라간다. 배화교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조철봉은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풍운의 부탁대로 배화교에 대한 소식을 중원전역이 알리는 한편 풍운을 도울 방안을 모색했다. 장가수로십팔채는 천마마련이나 사사천교와는 입장이 다르다. 40년 전에 벌어졌던 흑백대전과 무관하고 백도나 흑도와 특별한 원한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각 당의 당주들과 채주들은 차기 총채주로 내정된 풍운을 돕자는데 의견을 일치했다. 풍운이 없었다면 배화교의 주구(走狗)로 전락(轉落)했거나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장강수로십팔채의 은인(恩人)이고 영웅(英雄)이며 차기 총채주를 돕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회의 중에 풍운을 돕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나왔다. 하지만 풍운의 뜻을 몰라 섣불리 나서기도 힘들었다. 그때 일단 풍운을 만나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지금 풍운에게 가기 위한 함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옥선은 풍운에게 자신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조철봉은 언제 전장(戰場)으로 변할지 모르는 곳에 옥선을 보내고 싶지 않았으나 옥선이 하도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옥선은 멀어지는 아버지를 향해 허리를 숙인다. 옥선이라고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아마 자신이 아버지라도 보내기 싫었을 것이다.
옥선은 화포로 무장한 4척의 함선(艦船) 중에 장강수로십팔채의 깃발이 나부끼는 대장선으로 올라갔다.
“어서 오세요.”
남자처럼 구릿빛 피부에 건장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여인이 옥선에게 인사한다. 바로 흑룡방주의 딸인 음소빈이다. 음소빈은 군산해전에서 흑룡방이 혁린무을 배신하는데 앞장서 장강수로십팔채가 승리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고, 나중에 혁린무의 보복을 피해 흑룡방이 장강수로십팔채로 귀순(歸順)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옥선은 같은 여자입장에서 혁린무에게 무참하게 짓밟힌 소빈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장강수로십팔채의 독문심공이자 풍운이 여자가 익히기 적당하게 바꿔준 명옥풍파심공(明玉風波心空)을 전해주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소빈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빈은 옥선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명목풍파심공을 열심히 익혀 이젠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 중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절대고수로 성장하였다.
“준비는 끝난 겁니까?”
“바로 출항하셔도 됩니다.”
“그럼 출항(出港)하라고 하세요.”
옥선의 명령에 따라 대포로 무장한 4척의 함선(艦船)이 사천으로 출발했다. 사천까지 배로 이동하고 사천에서부터는 육로(陸路)를 통해 풍운을 찾아갈 계획이다.
무경은 방안에서 들리는 삼살(三殺)의 비명소리에 마음이 무거웠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풍운이 밖에서 기다리라고 할 정도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란 말인가? 풍운은 안전한 것일까? 혹시 무리하게 선천강기를 끌어올려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그때 삼살(三殺)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문틈사이로 눈부신 광채가 새어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일다경(一茶頃-1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몇 시진은 지난 것 같다.
“밖에 있어요.”
차분한 풍운의 부름에 마수가 얼른 대답했다.
“예~ 앞에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마수가 문을 열며 입을 막는다. 방안에 아직도 검은 연기가 남아있다. 풍운은 마수의 모습을 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자 방안에 남아있던 연기들이 순식간에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무경은 풍운을 먼저 살펴보고 아무런 이상이 없자 삼살(三殺)을 살펴보았다. 삼살(三殺)은 풍운 앞에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치료는 끝난 겁니까?”
“마령단의 독기(毒氣)을 제거하고 수라섭혼을 풀어주었어요. 이제 감각기관만 살려주면 끝납니다.”
“방금 수라섭혼을 풀었다고 하셨나요. 그게 정말입니까?”
“아직 장담하긴 일러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를 지켜봐야지.”
마수와 풍운의 대화 사이에 무경이 끼어들었다.
“운랑. 힘들지 않으세요. 무척 피곤해 보여요.”
“약간 힘들긴 해.”
“그럼 운랑은 다른 방에서 쉬세요. 저는 금침대법으로 나머지 치료를 끝낼게요.”
풍운은 고개를 사양하지 않고 일어나 마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마수도 벌거벗은 삼살(三殺)과 함께 있기 미망했던 모양이다.
“사내는 내일 치료할게요. 그동안 마수님이 지켜주세요. 저는 좀 쉬어야겠어요.”
“알겠습니다. 나머지일은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풍운이 다른 방으로 가자 마수는 일살(一殺)을 다시 상자에 담아 자신의 방으로 옮기고 무경이 있는 방문 앞으로 돌아왔다. 혹시라도 삼살(三殺)이 깨어나 무경을 공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경은 풍운과 마수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삼살(三殺)을 반듯하게 눕히고 금침을 꺼냈다. 금침대법은 조금만 잘못돼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례하기 때문에 실천자는 정신을 집중하나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한다. 무경은 숨을 길이 들이마시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풍운이 생사현관을 뚫어준 뒤로 무경의 내공을 몰라보게 높아졌다. 금침에 내공을 실어주면 더욱 효과적이다. 무경은 삼살(三殺)의 몸을 자세히 관찰하여 혈도들을 확인하고 금침을 꼽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무경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지만 정신을 집중하느라 땀이 나는 것이다.
“휴~ 이제 끝났군.”
무경은 이마에 흘려 내리는 땀을 닫고 눈처럼 희고 탄력 있는 피부로 변한 삼살(三殺)을 살펴본다. 풍운이 치료하는 과정에서 마령단의 독기(毒氣)와 함께 몸에 침입한 화기(火氣) 및 피부에 낀 이물질까지 빠지면서 막 태어난 아기 같은 피부로 변했다. 또한 금침대법으로 감각기관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검산계곡에서 당한 부상도 말끔하게 치료되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삼살(三殺)은 십이살(十二殺)이라는 가면을 벗고 새롭게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무경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삼살(三殺)의 알몸을 가려주었다.
“혹시 밖에 마수님 계세요.”
“예! 밖에 있습니다.”
“죄송한데 밖에 나가서 옷 좀 사다주실 있나요. 삼살(三殺)과 일살(一殺)에게 입힌 옷이 없어서 그래요.”
“치료는 끝난 겁니까?”
“끝났어요. 이제 옷을 준비하고 혈도만 풀어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녀올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수가 약간 문을 열고 여자 옷을 전해준다. 무경은 잠들어 있는 삼살의 옷을 입히고 침상에 눕혔다. 이제 결과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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