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42부

본문

요란한 배화교의 행보(行步)와는 다르게 얼어붙은 북해에서 출발한 북해빙궁의 이동은 조용하고 은밀(隱密)했다. 눈처럼 하얀 무복을 입은 기마대가 앞장서고 궁주가 타고 있는 거대한 마차가 뒤를 따르고 있고 그 뒤로 냉기(冷氣)가 흐르는 관을 실은 수많은 마차들과 마차를 호위하는 여인들이 따른다. 그리고 가장 후미(後味)에는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얇은 궁장만 입은 수천의 여인들이 주위를 경계하며 따르고 있다. 거대하고 웅장한 마차에 8명의 여인들이 모여 있었다. 궁주인 설초희와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3명의 천려빙백강시 그리고 4대 장로 중 2명과 사군자 중 2명이다. 




“지금 어디쯤이죠.” 


“조금 전에 막하(漠河)를 지났습니다.” 


“막하(漠河)라면 아직 흑룡강성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군요.” 




막하(漠河)는 흑룡강성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이곳에서 중원까지는 아직 많은 길이 남아 있다. 




“배화교에 대한 소식은 없나요.” 


“배화교는 현재 3부대로 나누어졌다고 합니다. 본진은 감숙성의 군소문파 몇 개를 몰살(沒殺)시키고 기린산으로 향하고 있고, 한개 부대는 사천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십대마왕 중 쌍마(雙魔)가 이끄는 나머지 부대는 난주근방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본진이 기린산에서 어디로 간다는 소식은 없나요?” 


“배화교에 심어놓은 간세의 보고에 의하면 공동파를 치기 위해 공동산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대공자가 처음부터 강수(强手) 두는 군요. 사천으로 출발한 2진은 선발대일 겁니다. 공동파를 멸문(滅門)시키고 곧바로 사천에 있는 문파들을 치겠다는 거겠죠?”


“설마! 그렇게 무리하게 몰아붙일까요?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잡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기선(機先)을 제압하겠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중원의 힘은 몇몇 명문문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많은 군소문파에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50년 전에 우리 연합군이 패배한 것도 백도나 흑도의 명문문파들 때문에 패한 것이 아니라 모래알처럼 많은 군소문파를 하나로 뭉치게 만든 영웅들에게 패한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몇몇 영웅들에게 패배했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의명분(大義名分), 하나의 뭉칠게 만드는 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가 아닌 우리, 그런 것들을 중원 무림인들의 가슴속에 용솟음치게 만들어 모래알처럼 흩어진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영웅들 때문에 우리가 패배했다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대충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고, 용수철은 누르면 누를수록 튀어 오르는 힘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억압하면 할수록 반발하는 힘도 크다는 겁니다.”


“50년 전의 중원 무림이라면 장로님의 말씀대로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현재 중원은 흑백도로 나누어져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군소문파들도 서로 많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지금 상태에서 중원을 하나로 합칠만한 세력도 없고, 영웅도 없습니다. 대공자는 이런 시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아예 감히 반항할 마음도 못 먹게 확실하게 짓밟아버리겠다는 겁니다.”


“백도 무림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4명의 절대기재들이 있습니다. 또한 흑도에도 최근 들어 새로운 영웅들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영웅이 아닌가요?”


“너무 부족해요. 아직 나타나지 않은 남해의 절대기재는 모르겠지만 소림의 홍인은 우유부단(優柔不斷)하고, 현원자는 편협(偏狹)하며, 화원명은 너무 가벼워요. 그들에게는 대중을 이끌만한 힘이 없어요. 또한 요즘 흑도에서 부각되고 있는 하후소하나 초하벽은 스스로의 힘이 아닌 다른 이의 힘을 빌려서 영웅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영웅이라 부르기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궁주님 말씀대로라면 현재 중원에는 영웅도 없고, 영웅이 될 만한 재목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서 대공자가 처음부터 중원 무림인들의 희망의 싹을 밟아버리겠다고 신속하고 잔인하게, 처음부터 감히 반항할 마음도 먹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밟아버리겠다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대충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쌍마(雙魔)는 무엇 때문에 난주로 간 거죠.” 


“난주에 있는 천상루지부로 마수마랑이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마수마랑일행이 난주근방에 숨어 있었고 그걸 배화교가 알아내고 그들을 섬멸(殲滅)하기 위해 본진에 앞서 난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요?” 


“마수마랑일행이 난주근방에 있었다는 말입니까?”


“예! 확실합니다. 천상루에서도 마수마랑일행이 감숙성 일대에 있다고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음! 대공자가 준비는 확실하게 했군요. 역시 이공자나 삼공자와는 생각부터가 다른 사람이에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인지.........이놈의 늙은이는 궁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장로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하자 설초희는 빙긋이 웃는데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에 피어난 미소가 무척이나 어색하게 보인다.




“조금 전에 중원에 영웅이 없다고 했죠? 있습니다. 바로 마수마랑과 그의 동료들이 중원 무림의 영웅들이며, 그들이 배화교와 우리 새외연합군의 가장 무서운 적(敵)입니다.”


“말도 안 됩니다. 배화교의 사냥개 따위가 어떻게 중원의 영웅이란 말씀입니까?”


“스스로의 노력과 배화교가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어요.”




설초희가 단정하듯이 말하자 2명의 장로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린다. 하지만 2명의 사군자는 궁주의 말에 수궁하는 눈치다.




“장로님들은 못 믿겠다는 표정들이군요. 좋아요. 그럼 이렇게 질문하죠. 현재 중원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누굴까요. 우내십기일까요. 백도가 자랑하는 절대기제들 일까요? 구파일방의 문주나 가주들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마수마랑과 그의 동료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흑도 무림인들과 흑백양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림인들의 영웅이며, 대중의 영웅입니다. 다만 백도 무림과 배화교만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궁주님 말씀대로라면 그놈들은 우리에게도 위협적인 존재라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양면의 검(劍) 같은 존재들이죠. 우리가 배화교에 대한 건재(健在)만 생각한다면 유익한 존재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적(敵)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복잡하군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지금은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라고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중에 배화교와의 관계가 정리되면 그들과의 관계도 다시 생각하면 됩니다.”


“.............”


“조금 전에 하던 말을 계속하죠. 배화교가 중원으로 쳐들어오기 위해서는 감숙성을 거쳐야 하니 마수마랑일행이 감숙성에 숨어 있었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쌍마(雙魔)만으로 그들을 섬멸(殲滅)하긴 힘들 것인데 쌍마(雙魔)가 얼마나 끌고 온 거죠.” 


“새로운 십이사(十二死)만 끌고 왔다고 합니다. 참~ 새로운 십이사(十二死)를 십이살(十二殺)로 부르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쌍마(雙魔)는 십이살(十二殺를)을 이끌고 시안무사들과 함께 마수마랑일행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마수마랑이 천상루를 찾아왔다면 그들도 배화교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는 말이겠죠?” 


“감숙성지부장이 모두 알려주었으니 알고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알고 있다면 쉽게 당하진 않겠죠. 그게 외에 별다른 소식은 없나요.” 


“서장과 운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포달랍궁과 흑독애를 말하는 건가요.” 


“예! 그들도 서서히 중원으로 쳐들어올 준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배화교에서 협조요청이 있었던 모양이죠?” 


“우리 빙궁에는 아무런 소식도 없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배화교를 감시하는 것처럼 배화교도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모두에게 서두르라고 하세요. 우리도 빨리 중원으로 가야합니다.” 


“알겠습니다.” 




초희가 말을 마치고 피곤하다는 듯이 의자에 등을 기대자 장로들과 사군자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초희가 앉아 있는 옆에 마치 유령처럼 공중을 부유(浮遊)하는 3명의 여인들이 있다. 보는 것만으로 영혼(靈魂)이 흔들릴 정도로 요기(妖氣)를 뿌리는 여인들, 그녀들은 천려빙백강시가 된 벽궁수혜와 궁아라 그리고 장옥이라는 여인이었다. 




:----------------------------




풍운일행으로부터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쌍마(雙魔)와 나머지 일행은 꽁지가 빠지라고 난주까지 도망쳤다. 쌍마(雙魔)가 극심한 부상을 당하고 십이살(十二殺) 중에 2명은 죽고, 2명은 생사(生死)조차 모른다. 지나친 자만심이 부른 패배이며, 목숨이나마 부지한 것이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치욕스러운 패배다. 난주에 있는 시안의 비밀지부에 도착한 일마(一魔)는 먼저 내상대법으로 자신의 부상을 치료하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이마(二魔)를 살펴보았다. 이마(二魔)의 상처는 심각했다. 부려진 갈비뼈가 허파와 오장육보를 찔려 속이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척추가 탈골되어 잘못하면 평생 앉은뱅이가 될 수도 있다. 일마(一魔)는 자신의 내공으로 이마(二魔)를 치료하는 한편 마위에게 의원을 불려오라고 했다. 




“헉~ 헉~! 누구! 일마(一魔)! 자넨가?” 




이마(二魔)가 힘들게 눈을 뜨고 힘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가슴으로 내공을 불어넣어 주는 일마(一魔)를 바라본다. 




“정신이 들었으면 아무 말하지 말고 내가 불어넣어주는 진기로 치료에 저념하게” 


“헉~ 헉~ 괜한 고생하지 말게. 나는.......이미 틀렸어.” 


“무슨 소리야? 이거보다 더한 시련과 역경도 극복한 우리야. 이런 일로 포기하면 안돼.” 


“오장육보가 망가지고 척추가 부려졌어. 운이 좋아 살다고 해도 평생 병신으로 살아야 해.” 


“척추는 부러지지 않았어. 그냥 탈골된 것뿐이야. 이마(二魔)! 이대로 죽으면 안돼. 나를 보아서라도 다시 일어나야 해.” 




일마(一魔)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어. 쌍마(雙魔)는 나이 사십에 만나 지금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마치 한 몸처럼 지내온 사이로 서로가 서로를 세상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마(二魔)도 일마(一魔)의 마음을 알고 있다. 자신이 이대로 포기하면 일마(一魔)가 슬퍼할 것이다. 




“휴~ 알았네. 한번 해보세.” 




이마(二魔)는 온몸이 부셔지는 고통이 밀려왔으나 이를 악물고 내상요법에 들어갔다. 이마(二魔)와 일마(一魔)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마위가 배화교에 소속된 의원을 모시고 왔다. 의원은 쥐새끼 같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내상요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쌍마(雙魔)가 동시에 긴 한숨을 쉬었다. 




“의원입니다. 잠시 진찰을 하겠습니다.”




의원은 고개만 까닥거리고 쌍마(雙魔)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음~ 일마(一魔)님은 한달정도 치료하면 본래대로 돌아가시겠지만 이마(二魔)님은 힘들어요.” 


“그게 무슨 말인가?” 


“보통사람이라면 벌써 죽었을 상처입니다. 특히 탈골된 척추를 완벽하게 치료하긴 힘들어요.” 


“방법이 없단 말인가?” 


“척추를 바로잡고 꾸준히 치료하시면 생활하시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무공을 사용하긴 힘드실 겁니다.” 


“아니야.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잘 생각해 보게.” 




일마(一魔)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의원을 다그친다. 의원은 쓰게 웃으며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




“증폭마환단을 드시면 순간적으로 예전의 기량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의원의 단호한 말에 쌍마(雙魔)의 얼굴이 구겨진다. 쌍마(雙魔)도 증폭마환단이 어떤 약이지 알고 있다. 이마(二魔)는 입술을 깨물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 수고했네. 증폭마환단이나 주고가게.” 


“정말 드립니까? 그 약을 먹으면 죽습니다.” 


“알고 있어. 내 운명이 여기까지라면 받아들어야지.” 


“이마(二魔)! 안돼.” 




일마(一魔)가 이마(二魔)의 어깨를 잡았는데 그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자만심이 이마(二魔)를 불구로 만들고 이젠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 한다. 이마(二魔)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과 함께 싸우기 위해 증폭마환단을 달라고 한 것이다. 




“구차하게 살기 보다는 자네와 함께 멋지게 싸우다 죽겠네. 자네도 내 심정 알지.” 




이마(二魔)의 떨리는 말에 일마(一魔)는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일마(一魔)라도 왜 이마(二魔)의 심정을 모르겠는가? 




“결정하셨습니다. 그럼 우선 부려진 뼈를 맞추어야 합니다.” 




의원은 시체처럼 누워있는 이마(二魔)를 엎드리게 하더니 뒤틀린 척추를 확인했다. 




“아플 겁니다. 참으세요.” 


“으아아악~” 




의원은 짤막한 경고와 함께 이마(二魔)가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뼈를 맞추었다. 




“헉~ 헉~ 헉~ 끝난 건가?” 


“아직 입니다. 이제 갈비뼈를 맞추어야 합니다.” 




의원은 이마(二魔)를 앞으로 눕히더니 갈비뼈를 하나하나 맞추었다. 




“휴~ 끝났습니다. 이마(二魔)님은 최소한 3일 동안 꼼짝하지 말고 누워 계세요. 일마(一魔)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외상은 심하지 않지만 내상이 깊어서 최소한 삼일정도는 요양해야 행동하는데 지장이 없을 겁니다.” 


“알았네. 수고했네.” 


“마위! 두 분의 치료는 끝났네. 지어주는 약만 꾸준히 드시면 돼. 다른 환자들은 어디 있는가?” 


“따라오시죠. 다른 방에 있습니다.” 




마위는 의원을 모시고 반대편에 있는 방으로 갔다. 방에는 8개의 침상이 가지런하게 놓여있고 침상에는 벌거벗은 8명의 남녀가 누워있었다. 의원이 첫 번째 침상으로 가보니 온몸이 군고구마처럼 붉고 상처투성인 젊은 사내가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의원은 할말이 없다는 듯이 쓰게 웃으며 나머지 침상을 살펴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요기를 뿌리는 두 명의 여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남녀들은 첫 번째 사내와 별반 다름없이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십이사(十二死)가 파놓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대체 어떤 함정에 빠졌는데 이 모양, 이 꼴들인가?” 


“벽력탄에 당했습니다. 다행히 잠마동에서의 수련을 통해 강철 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보통 사람이라면 모두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겁니다.” 


“벽력탄? 이제야 왜 이 모양인지 대충 알겠군. 십이사 중에 화무폭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조심성 없이 마구잡이로 쳐들어간 모양이군.”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알았네. 의원이 치료나 하면 그만이지 말이 많다는 말이군. 어디보자.” 




의원은 첫 번째 침상에 있는 사내의 살펴보더니 손가락으로 가슴을 문질려본다. 




“살가죽이 워낙 질긴 놈들이라 화상이 덧나진 않겠군. 하지만 폭발의 여파로 오장육보가 뒤틀렸는데 무리하게 싸우다가 내상이 깊어졌어.” 


“어떻게? 치료는 가능한 겁니까?” 


“치료는 무슨! 그냥 마령단이나 잔득 먹이면 아무 일없다는 듯이 일어날 거네.” 


“마령단만 주면 끝난다는 말씀입니까?” 


“마령단을 먹으면 먹을수록 이지(理智)를 상실하고 강시로 변하는 기간이 짧아지겠지만 이놈들에게 마령단은 만병통치약이야.” 


“내상이야 그렇다고 쳐도 외상은 어떻게 합니까?” 


“금창약이나 발라주면 끝나. 어차피 소모품인데 대충 쓰다가 망가지면 강시로 만들면 그만 아닌가?” 




의원의 말에 마위는 고개만 끄덕거린다. 배화교에게 십이살(十二殺)은 인간이 아닌 도구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다. 




:---------------------------




풍운일행은 검산계곡을 떠나 난주로 향했다. 배화교가 본격적으로 쳐들어온 이상 더 이상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 이젠 배화교와의 일전(一戰)을 준비해야 한다. 도치와 사우는 관처럼 생긴 상자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사로잡은 일살(一殺)과 삼살(三殺)의 혈도를 제압해서 상자에 넣어둔 것이다. 풍운은 난주에 도착하자 가장 번화가에 있는 객점으로 향했다. 




“운랑! 정말 저 객점으로 가시자는 말씀이세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무경이 불안한 얼굴로 풍운을 바라본다. 




“더 이상 숨죽이며 지낼 필요 없어. 다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행동가자.” 


“무경님! 걱정하지 마세요. 일사님께 생각이 있으시겠죠.” 




마수의 말에 무경은 마지못해 풍운을 따라갔다. 백도무림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그런데도 풍운은 사람들의 이목(耳目)이 집중된 가장 크고 화려한 객점으로 가자고 한다. 백도무림인들에게 발각되어 곤란을 겪을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풍운은 객점 후원 건물을 통째로 빌려 각자의 방을 정해준 다음 무경과 마수를 불렸다. 




“부르셨습니까?” 


“저는 장강수로십팔채와 대륙상회 사람들을 만나려 갈 겁니다. 그동안 두 분은 사로잡은 사람들을 치료할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알았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무경이 빙긋이 웃으며 배웅하자 풍운은 객점을 빠져나와 대륙상회 난주지부를 찾아갔다. 저번에 찾아간 회원업소가 아닌 대륙상회의 태상장로 자격으로 난주지부를 찾아간 것이다. 풍운이 마차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장원 앞에 이르니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중년인이 달려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곳 책임자를 만나려 왔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누구지 알아야 전해드리죠?” 


“마수마랑이라고 전해주세요.” 


“마, 마수마랑님이요? 자, 잠시만 기다리세요.” 




중년인은 풍운을 다시 한번 살펴보더니 안쪽으로 다급하게 달려갔다. 풍운이 품속에서 막사검을 꺼내서 기다리고 있으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신발도 신지 못하고 달려왔다. 




“헉헉~ 안녕하세요. 마수마랑님이라고 하셨습니까?”




노인의 질문에 풍운은 대답대신 막사검을 보여주니 노인은 막사검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인사드립니다. 감숙성지부장 염포라고 합니다.” 


“남들이 봅니다. 일어나세요.” 




풍운이 가볍게 손짓하자 염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하죠.” 




풍운은 염포의 안내를 받아 내당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에 회원업소를 다녀가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우선 앉으세요. 앉아서 이야기해요” 


“아이고! 말씀 낮추세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연세도 많으신데 어떻게.......자자~ 일단 앉으세요. 제가 불편합니다.” 




지나친 겸양(謙讓)도 예의가 아니기에 염포는 조심스럽게 풍운의 앞에 앉았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간단하게 용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번에 제가 부탁드릴 것은 어떻게 됐죠. 진행은 되고 있나요.” 


“상부에 보고했으니 곧 있으면 거미줄처럼 연결된 모든 회원들에게 전달될 겁니다. 물론 장강수로십팔채에도 협조를 구했으니 길면 보름, 짧으면 사일 안에 중원전역에 배화교가 쳐들어 왔다는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잘 하셨어요. 다음으로 사람을 좀 찾아야 합니다. 천수독랑 금막비일행이 사천으로 갔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을까요?” 


“사천지부에 연락하고 나머지 회원들도 모두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은 잠시 사천당가를 다녀오겠다고 했으니 이곳에서 성도로 가는 길을 찾아보면 될 겁니다. 참고적으로 천수독랑 금막비와 당령 그리고 귀왕사영이 동행하고 있습니다.” 


“찾으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냥 태상장로님께 위치만 전해드리면 되는 겁니까?”


“현재 저와 나머지일행은 난주에 있어요. 금막비일행을 찾으면 저희들 위치를 알려주시고 최대한 빨리 저희들을 오라고하세요.”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할 말은 끝났습니다. 이만 일어나야겠네요.” 


“아니 벌써 일어나십니까?” 


“급하게 갈 때가 있어요. 아참~ 금산반님께 제가 연락할 때까지는 무림에 피바람이 몰아쳐도 모른척하라고 하세요.” 


“그렇게만 전해드리면 됩니까?” 


“조만간에 제가 림산으로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만 이만!” 




풍운이 마지막 말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자 염포는 귀신을 홀린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휴~ 태상장로님께서 신(神)과 같은 무공을 익히고 계신다고 하더니 정말인가보군.” 




염포는 바로 수하들을 불려 풍운의 명령을 전달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대륙상회 난주지부을 빠져나온 풍운은 장강수로십팔채를 찾아보았으나 감숙성이 내륙(內陸)에 위치한 곳이라 장강수로십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차기 총채주로 내정된 놈이 십팔채의 위치도 모르고 있으니 한심 하군!”




풍운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고란산(皐蘭山-가오란산)으로 갔다. 검산계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혈선(血腺)이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고란산에 풀어 놓았다. 음양비로 한달음에 고란산에 도착한 풍운이 길게 휘파람을 불고 서서히 저물어가는 석양(夕陽)을 바라본다. 쌍마(雙魔)와 십이살(十二殺)과의 첫 번째 전투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끝났다. 쌍마(雙魔)의 자만심과 조심성 부족으로 다시없는 기회를 잡았으나 자신도 십이살(十二殺)에 대한 애처로움 때문에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많은 아쉬움이 전투다. 조금만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면 쌍마(雙魔)뿐만 아니라 십이살(十二殺) 전부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어찌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夕陽)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풍운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 자신이 힘들고 고달픈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죄 없이 죽어가야 할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이히히힝~”




붉은 갈퀴를 휘날리면 혈선(血腺)이 달려온다. 풍운은 복잡한 상념(想念)을 떨쳐버리고 혈선(血腺)을 향해 팔을 벌렸다. 혈선은 풍운 앞에 이르려 앞다리를 들고 울부짖더니 풍운의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오랜만에 만난 주인이 무척이나 반가운 모양이다.




“이놈........잘 지냈어.”




풍운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혈선은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지금부터 네가 많이 도와주어야해. 자~ 한번 가볼까?”




풍운이 혈선의 등에 올라타자 혈선은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사천에 장가수로십팔채 중 한곳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혈선이라고 해도 하루저녁에 사천까지 다녀오긴 무리다. 장강수로십팔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풍운은 혈선과 함께 일행이 기다리는 객점으로 돌아왔다.




무경과 마수는 풍운이 내주고간 숙제를 풀기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십이살(十二殺)은 마령단에 중독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감각기관이 죽어서 살아있는 인형이라고 할 정도다. 또한 배화교 비전인 수라섭혼에 영혼까지 제압당해 있다. 풍운이 이런 사람을 정상으로 만들라고 한다. 




“마령단의 독기는 운랑의 선천강기로 태워버리면 되고, 죽어있는 감각기관은 금침대법으로 되살릴 수 있어요. 문제는 섭혼술을 어떻게 푸느냐 입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수라섭혼은 현존하는 섭혼술 중에 가장 강력한 섭혼술입니다. 영혼의 주인이 풀어주기 전까지는 절대 풀어날 수 없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해요. 그런데 정말 수라섭혼이 그렇게 무서운 건가요. 많은 섭혼술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수라섭혼은 잘 몰라서 묻는 겁니다.”


“저도 많은 섭혼술을 알고는 있어요. 사사천교나 배교에서 전해오는 섭혼술도 알고 있고 섭혼술들이 각자 특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 수라섭혼처럼 강력한 섭혼술은 없습니다.”


“음~ 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믿어야죠. 그럼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요.”


“저는 모르겠군요.”




무경은 턱을 받치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쪽에 있는 상자를 돌아본다. 상자에는 혈도가 제압된 일살(一殺)과 삼살(三殺)이 있다. 풍운에게 붙잡힌 일살(一殺)과 삼살(三殺)은 말도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위는 살피지 않고 무조건 일행을 죽이려고만 했다. 보다 못한 도치가 깨끗하게 죽이고 말자고 난리를 쳤으나 냉하상이 조용히 한쪽으로 끌고 갔고, 나중에 나타난 풍운이 혈도를 제압하여 지금 상자에 가두었다. 




“마수님.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때요.”


“위험해요. 저번에도 보셨지만 저놈들은 의식만 있으면 우릴 못 죽어서 안달입니다.”


“마수님은 빠지세요. 저번에 보니까 저에게는 적대감(敵對感)이 덜하더군요.”


“섭혼을 한 놈이 무경님을 뺀 모양이죠.”


“마수님은 여기 계세요. 제가 한번 살펴볼게요.”




무경은 관 앞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보니 이십대 초반의 여인이 죽는 듯이 누워있었다. 검마관을 출관한 삼사(三殺)이다. 삼살(三殺)은 머리가 산발이며 걸레처럼 찢어진 옷을 입고 있어 붉게 물든 젖가슴과 허벅지가 그대로 드려나 있다. 무경은 애처롭게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흔들어 보니 삼살(三殺)이 힘들게 눈을 뜬다. 




“정신이 들어요.”




무경의 말에 삼살(三殺)은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얼굴을 찡그린다. 움직이려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짜증나는 모양이다. 




“미안해요. 당장 풀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힘들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요.”




무경이 다정한 목소리를 물어보지만 삼살(三殺)은 들은 척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려 힘을 주고 있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은 기억해요.”


“삼살(三殺)”




짧은 대답이다. 삼살(三殺)은 자신의 이름도 모르고 오직 삼살(三殺)이라는 이름만 기억하는 모양이다. 




“몇 살이에요. 무엇 때문에 여기 왔어요.”


“죽여라..........십이사(十二死을 죽어라. 죽인다. 죽인다.”




무경의 질문에 삼살(三殺)이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린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명령이 생각난 모양이다. 무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삼살(三殺)은 언어구사 능력도 없고, 사물에 대한 인지(認知)능력도 없다. 한마디로 무언가 부족한 사람 같다. 과연 일살(一殺)과 삼살(三殺)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계속>>

[19금]레드썬 사이트는 성인컨텐츠가 합법인 미주,일본,호주,유럽 등 한글 사용자들을 위한 성인 전용서비스이며 미성년자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사이트는의 자료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작권,초상권에 위반되는 자료가 있다면 신고게시판을 이용해 주세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881건 31 페이지    AD: 비아그라 최음제 쇼핑몰   | 섹파 만나러 가기   |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