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210부
본문
풍운은 상관장로 무사들에게 달려가며 입고 있던 흑풍대의 옷을 벗어버렸다. 상관장로 무사들은 식사 후에 상은계곡에서 떠난다는 말을 듣고 한곳에 모여 있었다. 풍운은 남들 눈을 피해 초하벽의 겉으로 다가갔다.
“왔어. 옷은 벗어버렸네.”
“볼일 끝났으니 벗어야지. 다 이야기 했어?”
“모두 전달했어. 그런데 밥은 언제 나오는 거야.”
“준비가 끝났으니 나오겠지.”
풍운과 초하벽이 떠들고 있으니 옆에 있던 무사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풍운은 초하벽에게 눈짓으로 뒤쪽으로 몰려나자고 했다. 음식이 나오면 앞에 있는 놈들부터 먹을 것이 뻔하니 뒤에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풍운이 먼저 후미(後味)로 이동하니 초하벽과 여언상도 풍운을 따라왔다. 그리고 머리에 금색 두건을 한 무사들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뒤쪽으로 이동하니 멀리서 밥과 국물을 가져오는 흑풍대 무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풍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분명 어딘가에 사사배연대 무사가 있을 것이다. 풍운이 수라기를 끌어올려 눈에 집중하고 천안통을 살펴보니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두 명의 사사비연대가 떠있는 모습이 보인다.
‘처남 무사들에게 긴장하라고 해...........상관장로 무사들이 쓰려지면 저쪽 벼랑에서 바위와 벽력탄이 떨어질 거야. 그리고 하늘에서도 벽력탄이 떨어지니 바위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무조건 동쪽으로 도망치라고 해.’
풍운이 전음을 보내자 초하벽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여언상과 주변에 있던 무사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밥이다..........아니 이게 뭐야. 겨우 주먹밥에 야채국이 전부야. 이걸 먹고 어떻게 싸우라는 말이야.”
가장 먼저 주먹밥과 국을 받은 무사가 툴툴거리니 주먹밥을 나누어주던 흑풍대 무사가 째려본다. 자기들이 뼈 빠지게 준비해 주었더니 어디서 잔소리냐는 표정이다. 주먹밥을 받은 무사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한쪽으로 물려났고 다음 사람이 음식을 받았다. 음식을 나누어 주는 곳은 5곳이었다. 무사들 중에서 절반 정도가 음식을 받았을 때 구석에서 국물을 마시던 무사가 가슴을 붙잡고 쓰려졌다.
“헉~.........아이구 배야..........아악~”
무사는 손에 들고 있던 주먹밥과 국물을 던져버리고 배를 붙잡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왜 그래.........모든 일이야.”
“으악~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아..........누가 좀........으아아아악~”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던 무사가 비명을 지르며 입을 거품을 문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도와죠.........으악~”
“으악~..........배........배가 녹고 있어.........으아아악~”
“도.........독(毒)이다. 음식에 독이 들었어.”
상관장로 무사들은 먹던 음식을 던져버리고 음식을 나누어주던 흑풍대 무사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음식에 무슨 짓을 한거야.”
“아.........아니야. 아무 짓도 안 했어. 정말이야.”
수백 명의 무사들이 험악한 얼굴로 흑풍대 무사들에게 다가가니 흑풍대 무사들은 음식들을 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관장로 무사들의 분위기로 보아 당장 자신들을 쳐 죽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잡아..........놈들을 잡아라.”
상관장로 무사들이 도망가는 흑풍대 무사들을 쫓는다. 여기저기 고통에 신음하며 녹아내리는 무사들과 도망치는 흑풍대 무사들 그리고 그들을 쫓는 상관장로 무사들 때문에 장내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다. 풍운과 초하벽일행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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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은 벼랑위에서 밑으로 내려보고 있었다. 상은계곡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무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무경은 남아있는 십이사와 사사비연대를 불렸다.
“모두 준비하세요. 지금부터 주변에 있는 바위를 밑으로 굴리세요. 그리고 거기 있는 두 분은 이걸 받으세요.”
무경이 지목한 사람은 사사비연대 무사들이었다. 무경은 그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벽력탄을 주었다.
“바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두 분은 벼랑 양쪽 기슬에 벽력탄을 떨어트리세요. 물론 벽력탄을 던진 다음에는 다시 돌아오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두 명의 사사비연대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니 금막비를 비롯한 사람들이 벼랑에 있는 바위를 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우르르르~”
거대한 바위들이 상은계곡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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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군막에서 밥을 먹고 있던 혁린무는 밖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군막에서 나와 보니 일단의 흑풍대 무사들이 죽어라 도망치고 있고 상관장로 무사들로 보이는 무사들이 도망치는 흑풍대 무사들 쫓고 있었다.
“저것들이 미쳤나?.........형오삼살~”
혁린무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형오삼살을 부르니 군막 앞을 지키고 있던 무사가 달려왔다.
“형오삼살님을 부를까요?”
“그냥 두고...........저 새끼들..........왜 저 지랄을 하는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무사가 막 출발하는 순간 계곡전체가 들썩거리는 폭음과 함께 한쪽 벼랑에서 거대한 바위들이 상은계곡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저건 또 뭐야~..........갑자기 저런 바위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
혁린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벼랑을 굴려온 바위들은 밥을 먹고 있던 무사들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벼랑의 양쪽 기슬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치더니 벼랑에서 떨어지는 바위와 함께 엄청난 양의 흙까지 계곡을 덮치기 시작했다.
“저길 봐~.........어제 왔던 박쥐들이야.”
“기습()이다. 도망쳐.........모두 도망쳐라.”
가장 먼저 밥을 먹던 흑풍대 무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산사태를 방불케 할 만큼 엄청난 바위와 흙들이 자신들을 덮치고 있다. 또한 하늘에는 어제 밤에 나타났던 박쥐(?)들이 벽력탄을 떨어트리고 있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바위에 깔려죽던........흙에 깔려죽던.........그것도 아니면 벽력탄에 터져 죽는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다. 그것이 목숨을 부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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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은 벼랑에 있던 바위들을 모두 굴리자 금산반일행과 사사비연대을 불려 모았다.
“대륙금위들이 숨어있는 쪽을 제외한 나머지 일대에 불을 지르세요. 물론 불을 지른 이후에는 모두 이곳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우리가 불을 지르면 이곳에도 불길이 미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불을 지르는 사이에 저는 이곳에 피화진(避火陣)을 설치할 거예요. 다른 곳은 불바다가 된다고 해도 피화진 안은 안전할 거예요.”
“피독주나 풍화주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피화진도 있습니까?”
“환영(幻影), 환청(幻聽), 환각(幻覺) 등을 일으키는 진도 있지만 본래 진이라는 것은 위험으로부터 인명(人命)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겁에요. 시간이 없으니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죠. 자~ 빨리 가세요.”
금막비일행과 사사비연대는 곧바로 계곡일대에 흩어져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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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와 흙무더기 그리고 박쥐(?)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사방으로 도망치던 무사들 앞에 거대한 불길이 솟구쳤다. 동쪽을 제외한 계곡전체에 불길이 솟구친 것이다.
“불이야.........불이다.........다른 곳으로 도망치자.”
“십팔~ 정신이 없군.........저쪽~..........저쪽으로 도망치자.”
동쪽을 제외한 나머지 곳으로 도망치던 무사들은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불길을 피해 아직 불길이 미치지 않은 동쪽을 향해 도망친다. 풍운과 초하벽 일행은 벼랑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순간 이미 동쪽으로 피해 있었다.
‘처남.........먼저가라. 나는 좀더 살펴보게 갈게.’
풍운이 초하벽에게 전음을 보내자 초하벽은 여언상을 먼저보내고 풍운의 겉으로 왔다.
‘나도 매제나 함께 남을게’
‘위험해.........먼저 가’
‘위험한 것은 매제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나중에 벽하년에게 무슨 욕을 먹으려고 매제나 남겨놓고 가겠어.’
‘벽하가 왜 욕을 해.’
‘자기 남편만 위험한 곳에 남겨놓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다고 욕하겠지. 어라~ 저기 봐~ 놈들이 몰려온다. 피하자.’
초하벽은 풍운의 손을 잡고 나무위로 날아올랐다. 초하벽의 말대로 상은계곡에 있던 무사들이 풍운일행이 있던 곳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언상소저는 어떻게 된 거야.’
‘다른 사람들과 먼저 피하라고 했어.’
‘혼자 보내도 돼. 불안하지 않아?’
‘아버님과 동해어부장로님이 겉에 있으니 안전해.’
풍운과 초하벽이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상은계곡에 있는 혁린무는 형삼삼살을 불렸다. 형오삼살은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조건 도망치는 무사들을 수습하다가 혁린무에게 달려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십이사와 흑도 놈들이 다시 기습을 한 모양입니다.”
“계곡 일대에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놈들이 기습을 하난 말이야?”
“모르겠어요. 혈영대의 말로는 수상한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아무래도 놈들이 숨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빌어먹을.........그건 그렇고.........상관장로 무사들은 왜 흑풍대 무사들을 쫓고 있었던 거야.”
혁린무의 물음에 형오일살이 대답하려는 순간 형오이살이 하늘을 가르치며 소리를 지른다.
“저.......저기.........사사비연대가 또 나타났어요. 저건.........피하세요. 벽력탄입니다.”
혁린무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상은계곡 상공(上空)을 선회(旋回)하던 사사비연대가 어린아이 주먹만한 구슬을 떨어트리고 있다. 형오이살의 말대로 벽력탄일 것이다. 혁린무는 이를 갈았다. 생각 같아서는 하늘로 날아올라 사사비연대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지만 사사비연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이 쫓아가면 바로 도망칠 것이다. 더구나 놈들은 벽력탄까지 가지고 있으니 쉽게 접근하기도 힘들다.
“공자님..........피해야 합니다. 빨리요.”
“빠드득~ 그래! 피하기는 해야지........가자.”
혁린무도 형오삼살과 함께 무사들이 몰려가는 동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언제 자기 머리위로 벽력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무공이 높고 불사마공을 익히고 있다고 하지만 벽력탄에 온몸이 갈가리 찢어지면 불사마공도 소용없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혁린무와 형오삼살까지 도망치기 시작하니 이제 상은계곡은 통제 불능의 난장판이 되었다. 멀리서 거대한 불기둥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갈가리 찢어진 무사들의 시체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살려줘~ 살려줘~”
바위에 다리가 깔린 무사가 살려달라고 절규(絶叫)하지만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모두들 정신적인 공황(恐惶)상태에 빠져 자기 살기도 바쁜 마당에 누굴 도울 정신이 있겠는가? 풍운과 초하벽은 형오삼살과 혁린무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나무에서 날아올라 무사들의 뒤를 따라간다. 무경이 준비한 작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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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철량은 첫 번째 비명 비명소리가 들리는 순간 가장 먼저 도망쳤다. 그에 반해 사해맹룡은 아직까지도 계곡에 남아 있다.
“부상자들을 데려가...........거기 너........뭐해. 빨리 와서 들쳐 업어.”
사해맹룡은 혼자서 도망치는 부하를 붙잡아 부상자를 부축하게 했다. 단 한사람이라도 더 구출해야 한다. 어제 밤의 습격으로 절반 이상이 죽고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방에서 불길에 덮쳐오는 이때 부상자들을 버리고 간다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똑같다. 사해맹룡에게 잡힌 무사가 한쪽 다리가 끊어진 무사를 들쳐 업었다.
“이제 됐어. 가~ 빨리 가~”
“맹룡님도 같이 가세요. 이곳에 남아계시면 위험합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달려..........빨리 가란 말이야.”
무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사해맹룡을 바라보다가 등에 업은 무사와 함께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해맹룡은 우왕좌왕하고 있는 무사들을 붙잡아 계속해서 부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이제 불길이 코앞까지 접근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군막에 불이 붙을 것이다.
“맹룡님.........이제 가셔야 합니다. 가세요.”
“나는 괜찮아. 너희들부터 먼저가?”
수많은 부상자들이 땅을 기어서라도 사해맹룡에게 다가왔다. 사해맹룡은 주변을 돌아보며 남은 무사들을 찾고 있었지만 이미 대부분의 사해방 무사들은 도망치고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과 부상자들만 남은 것이다.
“맹룡님..........죽어도 맹룡님의 은혜만은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맹룡님도 가세요.”
수많은 부상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사해맹룡에게 말한다. 사해맹룡까지 가면 이젠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자신들 때문에 사해맹룡까지 죽게 할 수는 없다. 사해맹룡은 최선을 다했다. 사해맹룡은 무뚝뚝하고 거친 사내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사내다. 사해맹룡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들도 그걸 알고 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사해맹룡님..........당신이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당신의 부하라는 것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었습니다. 비록 뱃놈이 배에서 죽지 못하고 여기서 죽지만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가세요. 당신의 부하였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세기며 죽겠습니다.”
“이놈들...........이놈들이...........”
사해맹룡이 끝내 참고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자신의 무능함으로, 자신의 불찰로 부하들을 사지(死地)인 이곳까지 끌고 왔다. 그런데 부하들은 자신을 원망하기는커녕 기쁘게 죽겠다고 한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생살을 도려내도 이것보다 아프진 않을 것이다. 사해맹룡은 끝내 바닥에 주저 않으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해맹룡님........뱃놈이 이런 일로 울면 되겠습니까? 거친 풍랑을 만나도, 폭탄과 화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도 당당했던 우리들 입니다. 여기서 죽는다 해도 아쉬울 것은 없습니다. 자~ 가세요. 저희가 아니라도 맹룡님이 보살펴 주어야 할 부하들은 많습니다. 지금도 맹룡님을 가다리는 부하들이 많아요..........자~ 그만 일어나세요.”
한쪽 팔과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무사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저앉은 사해맹룡을 일으켜 세운다.
“거친 파도 불어와도 우리는 간다............”
한 무사의 입에서 사해방 전투선단의 노래가 흘려 나온다. 사해방 전투선단의 무사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불렸던 노래.........사해방 전투선단을 상징하는 노래가 난장판으로 변한 상은계곡에 울려 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 무사의 입에서 시작된 노래가 이제는 주위에 있는 모든 무사들이 입에서 흘려 나온다. 사해맹룡은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양쪽 다리가 날아간 무사도.........가슴에 커라난 구멍이 뚫린 무사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맹룡님..........이제 가십세요. 가서 대륙의 강과 바다에 우리의 노래가 올려 퍼지도록 만들어주세요. 우리가 아니라도 우리 후배들이 지금의 이 노래를 부르며 대륙의 강과 바다를 호령하게 해주세요.”
“그래........가마.........너희들을 잊지 않으마. 나도 너희들과 함께 했던 지난 세월이 너무해 행복했다.”
사해맹룡이 떠났다. 이제 상은계곡에는 부상자들의 비명소리와 사해방 무사들의 노래 소리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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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이 지정한 장소에 숨어 있던 금산반과 명운은 수많은 무사들이 몰려오자 마른 침을 삼킨다. 그들은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에 검정 칠을 하거나 변장을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사해방이나 상관장로의 무사들 중에서 자신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나름대로 변장을 한 것이다. 무경은 도망치는 무사들을 공격하지 말고 그들 틈으로 잠입하라고 했다. 하지만 혼비백산(魂飛魄散)한 표정으로 제대로 무기도 챙기지 못하고 도망치는 무사들을 보니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사부.........지금 치면 될 것 같은데.......공격할 까요?”
명운의 말에 금산반을 고개를 흔들었다. 명운의 말대로 지금 공격하면 힘들이지 않고 도망치는 놈들을 도륙(屠戮)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경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다. 자기들 때문에 무경의 계획이 틀어지면 무슨 낮으로 풍운을 본단 말인가?
“아서라.........일단 선두로 내려오는 놈들을 그냥 보내주고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때 놈들 틈으로 잠입한다. 모두 신호를 보내.”
“쩝~ 기회가 좋은데.........알았어요.”
명운이 숨어있는 대륙금위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금위들은 잡고 있던 무기에서 손을 치우고 한명, 한명씩 도망치는 무사들 틈으로 잠입하기 시작했다. 상관장로나 배화교 무사들은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라 갑자기 옆에서 사람이 나타나도 확인할 여력도 없이 도망치기 바쁘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금산반과 명운도 혼란스러운 무사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금산반과 함께 있던 이백 명의 대륙금위들이 무사히 사해방이나 상관장로 무사들 틈에 잠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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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의 지시로 사방에 불을 지른 금막비일행과 사사비연대가 무경이 설치한 피화진으로 돌아왔다. 무경은 진이 설치된 벼랑위에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상은계곡은 한마디로 지옥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바위에 깔려 있던 무사의 머리위로 불길이 치솟은 나무가 쓰려지며 무사를 태우기 시작했다. 무경이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보니 일단의 부상자들이 땅을 파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제가 계획한 일지만 처참하네요.”
무경이 씁쓸하게 말하자 당령이 무경의 겉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준다.
“무경 언니도 마음이 여리시군요.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어요. 그게 전쟁이라고 말씀하신분이 언니잖아요?”
“그래도 그것이 전쟁이죠. 휴~...........하여튼 이제 우리도 천천히 내려가요.”
“예~ 어딜 가지는 말씀인지.........?”
금막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멀쩡한 놈들은 모두 도망갔으니 조금 있으면 대륙금위들이 몰려올 거예요. 그들에게 상은계곡을 청소하라고 했거든요.”
“위험하지 않겠어요. 아직 불길이 사나워요.”
“불길이 지나간 곳을 따라가면 돼요. 그리고 사실 여기 있는 분들이 저만한 불을 무서워할 분은 아니잖아요.”
“쩝~ 하긴 태산의 열풍(熱風)에 비하며 이만한 열기는 열기도 아니죠. 하지만 사사비연대나 귀왕사영은 위험하지 않을 까요?”
“열기 때문에 상승기류가 생겼으니 사사비연대분들은 공중으로 이동하세요. 그리고 저와 당령님 그리고 귀왕사영은 여러분이 지켜주시면 됩니다.”
무경의 말에 금막비와 사우가 앞으로 나섰다.
“저희들이 길을 뚫죠. 나머지 분들은 저희들을 따라오세요.”
“무경님..........그럼 저희들은 먼저 출발합니다.”
사사비연대 무사들은 계곡이 불타며 생긴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고 무경일행은 사우와 금막비를 선두로 상은계곡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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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해맹룡까지 상은계곡을 떠나자 몸을 숨기고 있던 대륙금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경은 대륙금위들을 3개조로 나누었고 그중에서 한개 조만 잠입하고 나머지는 상은계곡으로 들어와 배화교나 사해방 잔당(殘黨)을 청소(?)하라고 했다.
“대장님!..........회장님조가 잠입한 모양입니다. 저희들은 어떻게 하죠.”
“무경님이 상은계곡으로 오라고 했으니 가야지.”
“조금 있으면 이곳까지 불길이 번질 겁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미리 탈만한 것들을 모두 치우고 길을 뚫는다. 나무들을 베어서 주변으로 치우고 바닥에 깔린 낙엽들은 장풍으로 날려버려.”
“내력소모가 극심하겠지만 숫자가 많으니 불가능하지는 않겠군요. 알겠습니다.”
상은계곡 밑에 남아있던 대륙금위들이 나무와 낙엽들을 치우고 길을 뚫기 시작했다. 미리 탈만한 것들을 모두 치워버리는 것이다. 대륙금위의 대장이 지휘하는 금위들과 부대장이 지휘하는 양쪽 무사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길을 만들며 상은계곡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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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일행이 계곡에 도착할 때쯤에 동쪽에서 일단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계곡 밑에 잠복하고 있던 대륙금위들이 나타난 것이다. 무경일행은 상은계곡입구에서 대륙금위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과 함께 계곡으로 들어갔다. 벼랑위에서 볼 때는 잘 몰랐지만 가까이서 지켜본 본 계곡은 한마디로 지옥도를 방불케 했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 그리고 혼(魂)을 빼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벽력탄에 찢어진 흉물스러운 살덩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피는 강물을 이루고 바위틈이나 흙무더기에 깔려 있는 사람, 온몸이 불타고 있는 사람, 독(毒)에 팔다리가 녹아내리는 사람 등등이 보인다. 무경과 당령은 처참한 상은계곡의 모습을 보고 속이 울렁거려 곧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귀하게만 자란 무경이나 당령이 언제 이런 끔찍한 모습을 보았겠는가? 물론 대륙금위들 중에서도 아침에 먹는 음식을 확인하는 놈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곽지향이나 유미림 등은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무심하기만 하다. 잠마동에서의 경험과 그동안 전장을 누비며 보아온 것이 많은 그녀들에게 상은계곡의 모습은 특별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그냥 두면 화마(火魔)가 깨끗하게 청소할 겁니다.”
상은계곡을 살펴본 금막비의 첫마디다. 허리를 숙이고 있던 무경은 속이 진정되자 힘들게 허리를 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세요. 빠른 시간에 처리해야 합니다.”
“금막비님 말씀대로 우리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어요. 도망칠 놈은 모두 도망쳤고 나머지 놈들은 그냥 두어도 모두 타죽을 거예요.”
유미림이 손에 들고 있던 편(鞭)을 회수하며 말한다.
“물론 그냥 두어도 죽겠죠. 하지만 급한 일이 있어요. 빠른 시간 안에 확인해서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이세요.”
무경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륙금위들이 불타는 상은계곡으로 달려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부상자들을 도륙(屠戮)하기 시작했다. 구해주지 않을 것이라면 고통 없이 죽어주는 것이 유일한 배려일 것이다. 금막비 일행은 쓰게 웃으며 대륙금위들이 부상자들을 모두 도륙(屠戮)할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대륙금위들이 돌아오자 앞으로 나섰다.
“사우님. 혹시 모르니 깔끔하게 덮어버리죠.”
“알겠습니다. 그게 좋겠군요.”
사우가 도(刀를 뽑아 넓게 휘두르니 계곡 주위에 불타고 있던 나무들이 한순간에 계곡으로 날아간다.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급한 일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출발하죠. 시간이 촉발합니다.”
무경은 상은계곡에서의 일이 끝나자 상은계곡 상공(上空)을 선회하고 있는 사사비연대에게 신호를 보내고 빠른 속도로 상은계곡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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