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중원견문록 - 6부

본문

함백. 


성수산장의 전대 가주이자 당금 무림을 대표하는 일황삼제사왕사선칠기 중 의선. 백염백미에 고고한 그의 모습은 왜 그의 별호에 선자가 들어가 있는지 잘 알게 해준다. 금년 세수 90세로 당장 무덤에 들어가도 이상할거 없는 나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직도 정정했다. 


하지만, 늙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 했다. 그 말대로 새벽잠이 없어진 지 어언 수십 년째! 오늘도 늘 그렇듯이 일찍이 잠에서 깬 그는 가볍게 운기조식을 마치고 의서를 탐독하고 있었다. 




“ 할아버지! 저 소소예요. 긴히 상의할 일이 있어서 왔어요. “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손녀이자 그의 보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의서에 너무 탐독하고 있었나? ‘


“ 들어오너라~! “




함백은 손녀가 다가오는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 의서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온 손녀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으며, 손녀가 낯선 사내를 안고 있는 모습에는 더더욱 놀라고 말았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수심에 잠겨 있어 거칠었던 피부가 그야말로 우유빛 살결로 변해 있었으며, 아무리 급한 환자라고는 해도 손녀가 직접 사내를 안고 자신을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허허~~!! 뭔가 기연이 있었던 게로구나. “




함백은 필시 손녀에게 일어난 일이 사내와 뭔가 관련이 있음을 눈치챘다. 소소는 사내를 조심스레 조부의 침대에 눕히고는, 사내가 인세에 다시 없을 영약을 먹었으며, 그로 인해 주화입마를 당한 것, 그리고 그를 치료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영약을 나눠먹게 되었다고 고했다. 그녀를 끔찍히 위하고 사랑하는 조부라고는 하지만, 낯선 사내의 자지를 만지고, 입으로 빨고, 그 정액을 먹었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 허허허허~~~!! 기연이로구나, 기연이야!! “




함백은 뛸뜻이 기뻐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아들은 무예에 생각보다 뛰어난 소질이 없었다. 절정이 아들의 한계였다. 비록, 정.사.마 모두에게 존중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표면적일 뿐! 실질적인 힘이 없으면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지금은 그가 건재해 있어서 아무도 성수산장을 무시하는 세력이나 강호인이 없지만, 그가 죽고 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요즘만 하더라도 그가 산장에 칩거한 지 5년밖에 안됐지만, 무림엔 벌써 그가 죽거나 은퇴했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은근히 외부의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무림인에게 의원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만약, 성수산장을 산하로 둘 수만 있다면 무림 정복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의술과 더불어 영약의 제조법 또한 성수산장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석달 전에 들어온 남궁세가와의 혼담을 추진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다행이도 손녀가 남궁세가의 장자를 마음에 들어하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도 사후의 일로 골머리를 싸메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듬직한 힘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손녀가 말이다. 




“ 그래, 어디 한 번 보자꾸나. “




함백은 손녀의 손목을 잡고는 조심스레 기를 흘려 넣어 손녀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 보았다. 




“ 이건…….!! “




함백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손녀의 몸은 마치 벌모세수를 받은 것처럼 생사현관은 물론, 온 몸의 혈도란 혈도는 다 뚫려 있었고, 손녀의 기 또한 반백년 이상을 고련해온 것처럼 정순하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손녀의 단전에 자리잡은 단처럼 생긴 것이었다. 힘백은 단번에 그것이 영약의 기운이 뭉쳐서 형성된 것임을 깨달았다. 손녀의 기와 다 융합되지 못하고 단의 형태로 뭉쳐있는 것이다. 만약, 손녀가 이 영약의 ‘단’ 을 모두 녹여 자신의 공력으로 만들게 될 날이 온다면, 손녀는 당대천하제일인 아니, 무림사에 두 번 다시 없을 고금제일인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만큼, 손녀의 단전에 단단하게 굳어있는 영약의 기운은 거대하기 그지 없었다. 




“ 허허......!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기연이로구나. “




함백은 손녀와 침상에 누워있는 사내를 번갈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손녀가 사내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간에 손녀는, 성수산장은 저 사내에게 너무나도 큰 은혜를 입고 말았다. 죽어서도 다 갚지 못할 만큼의 커다란 은혜를 말이다. 


함백은 진지한 표정으로 손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어떠냐? 너만 괜찮다면 혼사를 다시 생각해 봄이….. “




조부의 그 말은 소소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남궁세가의 장자와 혼인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쩌면 저 사내와 함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 고민에 고민을 하던 소소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일이예요, 할아버지. 만약, 저희 쪽에서 먼저 파혼을 청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저흴 욕할 뿐만 아니라 성수산장의 위엄도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걸요. 그리고, 저 남궁천 공자 싫어하지 않아요. 창천룡을 마다한다면 세상 여자들이 절 미쳤다며 손가락질 할걸요. “




창천룡 남궁천. 남궁세가의 장자이자, 오룡중 인물이나 무공면으로도 으뜸인 사내로, 세상에 다시 없을 신랑감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남궁세가가 성수산장과의 혼담을 발표하자 첩으로라도 좋으니, 혼약을 맺자고 매파를 보냈을 정도다. 




‘ 이자와 뭔가 있었구나. ‘




평**면 바로 대답했을 손녀가 고민을 했다. 더군다나, 입가에 얼핏 씁쓸한 미소까지 지었다. 




‘ 정절을 바친 것인가…..? ‘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좀 전에 살펴본 바로, 손녀는 여전히 처녀였다. 




‘ 하지만…………. ‘




손녀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함백은 그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 모든 걸 떠나서 현명한 손녀가 결정한 일이다. 힘이 되주지는 못할 망정 앞길을 막아서는 안된다. 다만,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손녀가 말한대로, 남궁천은 세상에 다시 없을 일등 신랑감이다. 




“ 그래서 부탁이 있어요, 할아버지. “


“ 그래, 말해 보아라. “


“ 잠시 열흘정도 폐관에 들고 싶어요. “


“ 오냐, 알았다. “




모든 것이 새로워진 이상,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꼼꼼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 죄송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께 말씀좀 부탁드릴께요. 그리고, 남궁공자에게도….. “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소소의 마음이 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배우고 익힌 모든 무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고 싶었다. 




“ 오냐. 걱정말고 이만 가보거라. “


“ 네. 그럼. “




소소가 나가자, 함백은 의서를 더 볼까 하다가 사내 생각에 침상으로 다가갔다. 




“ 허~! 이 비단을?! “




함백은 놀랐다. 사내를 감싸고 있는 비단은 서역에서 들여온 것으로 손녀가 무척이나 아끼고 아끼는 것이었다. 사왕중 상인의 왕이라 일컬어지는 상왕 금적자가 그에게서 치료를 받고 상당량의 치료비를 건네줄 때, 서역에서 들여온 것이라며 같이 준 것이었었다. 


새삼 손녀가 이 사내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 깨달은 함백은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 모든 것은 바람이 흐르는 대로…. “




손녀가 원하고 결정했으면 다 끝난 일. 새삼스레 마음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비단을 치우고 사내의 알몸을 바라본 함백은 또 놀라고 말았다. 사내의 몸은 정말이지 놀랍도록 완벽에 가까운 무인의 몸이었다. 군살이라곤 한점도 없었으며 근육 모두가 이상적인 근육으로 다져져 있었다. 




“ 허허…….. !! “




사내의 손목을 잡고 조심스레 기를 흘려본 함백은 이젠 놀랍다 못해 허탈해지기까지 했다. 사내의 기는 그 몸에 알맞게 정순하기 그지 없었으며, 사내의 온 몸 구석구석에 잠들어 있는 기운 또한 거대하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도 더욱 놀란 것은 사내의 단전에 형성되어 있는 주먹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단이었다. 손녀처럼 영약이 채 융화되지 못해 뭉쳐있는 것이 아닌, 순수한 내단 그 자체였다. 


실상, 잠력은 말이 좋아 잠력이지 평생을 가도 그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단은 다르다. 단은 정순하기 그지 없는 공력이 뭉치고 뭉쳐서 형성된 것으로, 순수한 힘 그 자체일 뿐더러 그 힘 또한 강대하기 그지 없다. 문제는 그 단을 형성하는 데 있다. 


한 번 나타났다 하면 세상을 떠들석 하게 만드는 영물도 내단을 형성하기까지는 수 백년이란 인고의 시간이 걸린다. 영물이 그러할진데, 백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단을 형성할리는 만무하다. 한때, 단을 형성할 수 있다는 내공심법이 나타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이내 잠잠해지고 말았다. 단을 형성할 수는 있되, 최소 50년 이상을 고련해야 하며, 화기가 든 음식을 태어나면서부터 평생토록 먹지 말아야 했다. 무엇보다도 가관인 것이, 태어나자마자 벌모세수를 받은 아기라야 하며, 아기때부터 내공심법을 익힌 이가 아기에게 꾸준히 기를 전해주면서 그 기초를 쌓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설혹,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반 평생 이상 고련하여 얻게 되는 단의 크기는 좁쌀만 하며, 그 단이 쓸모있냐 하면 왠 걸! 5년 동안 내공심법을 꾸준히 단련해온 이만도 못하다. 


삼류문파라 하더라도 ‘금단심법’ 이라 칭해지는 이 심법을 지니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익히지 않는다. 단지, 버리기가 그래도 좀 아까워서 소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할진데, 이 사내는 단을 완벽히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도, 좁쌀만한 크기가 아니라 주먹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단을 말이다. 




“ 허허…. 10년 동안 놀랄 일을 오늘 다 겪게 되다니… 앞으로 놀랄 일은 없겠군. “




함백은 우스개소리처럼 내뱉었다. 여담이지만, 그 말대로 향후 그는 죽을때까지 결코 놀라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각설하고. 


그의 짐작대로라면 지금 여기 누워있는 사내는 당대천하제일인 아니, 어쩌면 고금제일인일지도 모른다. 손녀가 지니고 있는 공력과 영약도 거대하기 그지 없었지만, 이 사내에 비하면 세발의 피나 마찬가지다. 




“ 대체 어느 가문의 자제일꼬….?! “




함백이 보기에, 사내의 몸은 명문가나 구파일방에서 체계적으로 수련을 쌓아온 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손녀가 곁에서 도움을 주었다 하더라도 절대! 이렇게까지 영약의 기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수는 없다. 


삼류문파의 제자가 우연히 비를 피하려 동굴에 들었다가 기연을 얻어 절세의 고수가 된다는 얘기는 책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명문가문이나 구파일방에서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무예를 닦지 않는 한, 삼류문파에서는 일류고수조차도 나오기 힘들다. 영약이나 영물의 내단을 얻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절차없이 욕심에 바로 복용했다가는 죽기 쉽상일 뿐만 아니라 운좋게 살아난다 하더라도 폐인이 되는 게 전부다. 


삼류 건달이나 삼류문파의 제자가 영약이나 내단을 얻어 단숨에 절세의 공력을 얻는다? 미친 헛소리에 불과하다. 영약이나 내단을 복용하기 위해서는 그 영약이나 내단을 중화시켜서 좀 더 쉽게 그 기운을 융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약제가 필요하며, 설혹, 바로 복용해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영약이나 내단이라 하더라도, 그 기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융해시키는 데에는 자신의 능력에 달려 있으며, 그 기간 또한 아무도 알지 못한다. 구파일방이나 명문가에서 어려서부터 꾸준히 고련해온 자라 하더라도 혼자 힘으로 그 기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에는 최소한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것도 그 이름에 걸맞는 심법을 익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할진데, 보잘 것 없는 삼류문파의 심법으로 영약이나 내단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지나가던 똥개가 코웃음 칠 일이다. 우연히 입수하게된 잠력을 격발시키는 방법으로 얻으면 되지 않을까?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요, 안죽었다 하더라도 폐인이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책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 현실에선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돈 꽤나 있다는 상인이나 부자들이 막대한 돈을 갖다 바치기까지 하면서 자식을 구파일방이나 동문수학을 목적으로 명문가에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산제자는 못돼도 적어도 일류고수는 바라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일류고수라 하더라도 삼류문파의 일류고수와는 그 배움의 깊이와 무게가 천양지차이며, 그 실력 또한 하늘과 땅 차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커다란 격차가 있다. 또한 그 이름이나 연줄을 이용할 수가 있기도 하다. 구파일방의 속가제자나, 어느 가문의 누구와 동문수학했던 사이라고만 칭해도 그 효과는 커다랗기 때문이다. 




“ 으음~~!! “




문득, 사내의 신음 소리에 함백은 사색에서 깨어나 사내를 바라보았다. 




“ 정신이 좀 드는가? “


“ ……….. “




하지만, 사내는 눈만 깜빡거릴 뿐이었다. 이제 막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듯 했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주변을 두리번 거리시 시작했다. 




“ 허허! 진정하게나. 여긴 의원이라네. “


“ …………. !! “




사내가 놀란 눈으로 함백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 여긴 어디입니까? “




사내의 입에서 나온 건 뜻밖에도 동방의 말이었다. 




“ 허허~~! “




함백은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실상, 그가 배운 의술의 모든 기초는 젊었을 적 동방의 한 의원으로부터 배운 것으로, 실질적인 그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동방의 말도 그때 익힌 것이었다. 그가 어느정도 기초를 닦았다 싶자 그만하면 세상에 나가도 된다며 훌쩍 떠나버린 후, 한 번도 못만났지만 늘 그가 찾던 스승이요, 마음속에선 언제나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데, 그런 스승과 같은 동방의 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 너무 놀라지 말게나. 여긴 의원이라네. “


“ 의원…. 이라니요? “




사내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 허허… 성수산장이라는 보잘 것 없는 의원일세. 그래도 강호에서는 그럭저럭 알아주는 곳이네. 그러니, 그리 걱정하지 말게나. “




그럭저럭이 아니라 성수산장이라는 말만 들어도 존경심을 보일 정도다. 하지만, 사내는 더욱더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 네? 강호라니요? “


“ 허…. ? “




사내의 그 표정에 함백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깊은 산속에 묻혀 살지 않는 이상 성수산장 이라는 이름을 모를리가 없다. 강호에서도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 자네… 성수산장을 모르는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성수산장하면 강호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꽤나 알려진 의가인데 말이네. “


“ 성수산장이라니요? 그것보다도 지금 강호….라고 하셨습니까? “


“ 그렇네. 자랑인 듯 싶지만, 실상 성수산장은 강호에서 제일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네. “


“ 무림인…. 들의 세상이라는 그 강호….말입니까? “


“ 그렇다네. “




대답을 하면서 함백은 뭔지 점점 더 이상하단 것을 느꼈다. 사내의 표정이 너무나 이상했다.마치, 애써 어떤 사실을 부인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 구파.. 일방이 있고…… 오대 세가가 있는….그 강호 말이죠? “


“ 오대 세가? 지금은 팔대 세가라네. “




사내의 표정이 허탈하게 변하더니, 이내 넋나간듯 중얼중얼 거리기 시작했다. 




“ 하!하! 이건 꿈이야. 분명 꿈이야. 결코 사실일리 없어. 분명히….. 분명 꿈이야…. “




그러다가 자기 뺨을 떼리기도 하고 허벅지를 꼬집기까지 했다. 그러다 자신이 알몸인 것을 깨달았는지 비단을 끌어다 몸을 덮다가 이내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그 표정이 마치, 혼백이 나간 듯한 모습인지라 함백은 자기도 모르게 조심스레 물었다. 




“ 자네…. 괜찮은가? “




사내가 허탈한 표정 그대로 함백을 바라보았다. 




“ 어르신. 어르신은 어떻게 한국말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말이 혹 중국어 입니까? “


“ 응? 한국말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나야 젊었을 적에, 스승으로부터 의술을 배우면서 동방의 말을 익힌 것 뿐이라네. “


“ 허어……………! “




사내가 탄식하더니, 이내 다시 주위를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허탈한 표정을 짓더니만, 넋나간 눈빛으로 그저 한 곳만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 이보게! 자네 정말 괜찮은가? 이래뵈도 내 의원일세. 잠시 진맥이라도 했음 싶네만…. “




함백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나직히 말했다. 




“ 어르신. 죄송하지만, 잠시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


“…. 알겠네. 내 이따 잠시 오도록 함세. “




처연한 듯한 사내의 표정에 함백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자신의 처소를 나왔다. 그러다 이내 뭔가를 깨닫고는 실소를 지었다. 




“ 허허.. 이것 참! 내 처소에서 내가 쫓겨난 듯한 꼴이잖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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