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정풍운(雷霆風雲) - 4부
본문
좌측 숲에서 하나의 날렵한 인영이 질풍같이 날아 내리며 허공으로 튕겨진 고검을 받아들었다. 마치 천상의 선인(仙人)같이 탈속한 기품을 지닌 아름다운 용모의 미청년이었다!
미청년이 날아 내리는 것을 본 칠색화모는 뜻밖이라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녀는 독기 서린 표정을 지으며 교갈을 터뜨렸다.
"네년은… 북산신검영(北山神劍營)의 계집이구나!"
헌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느닷없이 계집이라니? 설마 남장여인이란 말인가? 청년은 나삼여인이 한눈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자 흠칫하는 기색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검을 고쳐 잡으며 서릿발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마교의 잡배 따위가 무엇을 노리고 이곳으로 왔느냐"
그는 싸늘하게 추궁의 어조로 말하며 나삼여인을 노려보았다. 검결(劍訣)을 지은 설하영의 고검으로부터 서릿발같은 검기가 뻗어나왔다. 재차 어검술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칠색화모는 내심 가슴이 섬뜩해졌다. 그녀는 이미 설하영의 어검술의 공포를 경험한지라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같은 신주사패천의 후계자인데 음부삼신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구나. 저 아이들까지 합세한다면"
그녀는 이현성과 미청년 그리고 사희영을 번갈아 보며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이현성은 긴장을 풀지 않고 손에 든 천뢰신검을 고쳐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칠색화모는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흥! 정말 박정한 아이로군."
그녀는 몸을 세우며 홱 이현성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의 충돌 때문인지 그녀의 안색은 백지장같이 희게 변해 있었다.
"…!"
그것을 본 이현성은 멈칫하며 검끝을 내렸다. 창백한 칠색화모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고묘에서의 일을 떠올리곤 미안한 감정을 느낀 것이었다.
칠색화모는 눈치가 빠르고 교활한 여자였다. 그녀가 이현성의 순진한 그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녀의 봉목으로 언뜻 야릇한 광채가 흘렀다.
"호홋! 잡배의 손속이 무정하다 원망치 마라, 어린 계집!"
그녀는 색혼야차를 부축한 채로 한차례 소매를 슬쩍 저었다. 그러자, 빠지직! 하며 그녀의 몸 주위로 시뻘건 핏빛 노을이 벼락같이 번졌다.
그러나 그것은 허초였다. 모두가 멈칫하는 사이, 칠색화모는 색혼야차와 함께 질풍같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아차!"
미청년은 그제서야 흠칫 놀라며 발을 굴렀다. 그러나 이미 늦은 후였다. 그 때는 이미 칠색화모가 까마득히 날아간 후였던 것이다. 멀리서 칠색화모의 음성이 들려왔다.
"기억해 두어라. 다음에 만날 때는 너희들이 나 칠색화모 섭요홍(攝妖紅)에게 베푼 은혜를 그대로 돌려줄 테니까! 호홋!"
칠색화모는 요사스런 교소의 여운을 남기고는 그녀의 모습은 곧 세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교도 검후의 무공을 노리는 것일까? 그럴 리가."
미청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검후의 무공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정사대전 이후 세력이 약해진 그들이 무공 하나 때문에 나설 리는 없었다. 마교에도 수많은 광세절학이 있으니 중요한 것은 비급이 아닌 그것을 익히는 사람의 자질이었다. 그는 칠색화모가 사라진 곳을 주시하며 눈썹을 모았다.
‘역시 그들도 그 걸 노리는 것이겠지.’
이때, 이현성이 검을 집어넣고는 미청년을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위경에서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희영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칠색화모의 뒷모습을 쫓고 있던 미청년은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 렸다. 그는 겸양의 태도로 마주 포권했다.
"별말씀을… 무림동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요. 그보다 우제는 설영(雪孀)이라 합니다만."
“아. 당신이”
사희영이 놀라 탄성을 질렀다. 옥기린 설영은 신주사패천중 하나인 북산신검영(北山神劍營)의 후계자였다. 달리 북패천(北覇天)이라 불리며 뇌정검호각과 함께 천하이대검파로 꼽히는 천년명가(千年名家)였다. 그들은 검법의 기오 막측함으로 환우일절(還宇一絶)이었다.
설영은 항상 남장을 했지만 그녀가 여인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그녀의 본명은 설하영으로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여자로 대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별호도 남자 같은 옥기린이었고 이름도 여자같지 않도록 가운데 글자를 빼고 설영이라 자칭하고 다녔다.
사희영은 정신을 추스리고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소매는 사희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이현성 소협이구요!"
“아! 서시독화 사소저였구려”
설하영은 남자같은 말투로 인사를 받았지만 이현성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흠. 남장여인이군. 뭐 무협지의 정통 패턴이지. 저 얼굴이 어떻게 남자냐. 좀 못생겼으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속는 사람이 바보 아냐!’
설하영은 맑은 봉목을 빛내며 이현성을 응시했다. 추수같이 서늘하고 깊은 그녀의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소저의 위명은 많이 들었지만 함께 계신 이형제의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 구려. 형제의 사부님은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오. 색혼야차를 물리친 실력으로 보아 필시 대단한 분이실 것인데."
그녀는 몹시 궁금한 듯 관심을 보이며 이현성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현성의 입에서는 그녀의 기대에 미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때를 대비해 나름의 무협지 말투를 연습했던 그였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소제의 사부님은 오래 전에 세속의 명리를 초월하신 분입니다. 말씀드려도 모를 것입니다."
"그렇소?"
설하영은 적잖이 실망의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 때였다.
"검주(劍主)님!"
다급한 음성과 함께 한 명의 장한이 장내로 날아들었다. 장한의 나이는 삼십 전후 정도 되어 보였는데, 중후한 인상에 검 은 경장을 날렵하게 걸치고 있었다. 그의 어깨너머로는 수술이 달린 장검의 손잡이가 보였다.
이현성은 세 사람 앞에 갑자기 등장한 검수를 바라보았다. 검수 는 뭔가 급한 용무가 있는 듯 초조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검수는 한 무릎을 꿇며 급히 보고했다.
"현음마부(玄陰魔府)의 가주 현음노조(玄陰老祖)가 북서쪽에 나타났습니다. 그자의 현음강살(玄陰剛殺)에 이미 본영의 정영 여러명이 살상당했습니다. 급히 가보셔야겠습니다!"
"현음노조가…!"
설하영은 안색이 일변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일시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사희영도 그 말에 흠칫했다.
"음부삼신재나 옥기린뿐만 아니라 사패천의 총수 중 한 명도 이 적석산에 나타난 것 일까? 검후의 유물이 그만한 가치를 지닌 것인가?"
그녀는 내심 의아함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득 설하영이 서두르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소저! 이형제! 우제는 급히 가볼 곳이 있어 이만 헤어져야겠소."
이현성은 선선히 답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형산(衡山) 근처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북산신검영(北山神劍營)으로 한번 들러 주시오. 그럼."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질풍같이 신형을 날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뒤로 흑의검수도 급히 몸을 날려 사라졌다.
남겨진 두 남녀는 저마다의 생각에 빠졌다.
‘뭔가 얻은 것도 없이. 죽을 뻔 하고. 이런 상황 맘에 안 들어, 역시 수월암으로 돌아가는 게’
‘신주사패천의 수장에, 마교 과연 노리는 것이 검후의 무공뿐인 걸까.’
“관계하기엔 일이 너무 커져버린 것 같네요. 검후의 유물은 포기하는 편이 좋겠어요.”
사희영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현성 역시 어차피 신외지물에는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았다.
“그러죠.”
“근처 암자에서 수련을 하고 계시다고 했죠. 잠시 쉬어갈 수 있을까요?”
“아 예? 예”
뇌온려와 함께 있는 곳에 사희영을 데려가기엔 매우 어색했지만 그다지 거절할 만한 이유도 찾기 어려웠고, 사희영 그녀는 너무 예뻤다. -_-
“그런데 검후가 누구죠?”
“에엣 몰랐어요?”
“예. 원래 무림에 대해서 잘 모르거든요.”
둘은 수월암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희영은 이현성에게 칠존오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칠대천존과 오대천후는 무림의 역사가 시작되고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한 열 두 고수를 일컫는 이름이었다. 칠존오후 중 가장 근래의 인물인 마교의 천마후만 해도 백여년전의 정사대전에서 구파일방의 최고수 열명의 합공을 받고도 버틴 인물이었다. 만약 그녀가 갑자기 실종되지 않았다면 세상은 마교천하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왠지 이현성에게 친밀하게 구는 사희영의 태도 덕분에 둘의 대화는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사문을 밝히려 하지 않기는 하지만 무공도 뛰어나고 심성도 착하고, 욕심이 많지 않은 것도 나름대로 장점일 수 있으니 내 한 몸 맡겨도…. 어머 나 혼자 무슨 망상을…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현성의 망상이었다.
“어이 그림 좋은데.”
“이거 우리 같은 홀애비들은 외로워서 살겠나.”
그때 갑작스럽게 두사람의 귓가를 두드리는 목소리. 그 내용들은 뭔가 무협스럽지 않았다.
“누구야!”
이현성이 주위를 둘러보니 석장쯤 떨어진 바위 위에 세 명의 녹포괴인들이 앉아 있었다.
‘저들은!’
사희영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파락호 같은 말투와 바짝 마른 녹포삼인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단 하나였다.
녹혈삼귀(綠血三鬼), 연수합격(連手合擊)의 달인들로써 세 사람이 일시에 손을 쓰면 지상의 그 누구도 당해내지 못한다는 마인(魔人)들로 독마갱(毒魔坑)의 삼대교령들이었다.
“이거 참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계집일 세 그려.
“맛있는 게 있으면 당연히 어르신한테 먼저 대접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럼. 그럼.”
[소협. 도망가요!]
녹혈삼귀들이 시답잖은 소리를 지껄이는 동안 사희영은 이현성에게 전음을 보내고 함께 달아나려 했다. 그들이 상대하지 못할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뜻대로 될 리 없었다. 녹혈삼귀의 몸이 일순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세 방향을 점하고 이현성과 사희영을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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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를 아는가? 본래 공간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그것은 기 혹은 마나라고 하는 형이상학적인 힘들과는 다른 절대적 평형 상태에 이른 실체적 에너지다. 온수와 냉수를 섞으면 평형점을 찾아 미지근한 물이 되어버리듯이 절대적인 균형 상태에 이른 에너지는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절대적 평형 상태로 공간에 가득 찬 에너지를 학자들은 영점(zero point)에너지라 부른다. 영점에너지는 웬만해선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 평온을 깨트리는 것은 바로 신의 영역 ‘엔트로피의 역전’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닫힌 차원일 때의 이야기다. 만약 한 순간이나마 차원이 열린다면 어떻게 될까? 양 차원 간의 에너지의 절대량이 동일하지 않는 한,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그 열린 틈을 타고 에너지의 교류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 끼어든 생명체는 백중 백은 그 에너지의 막대한 분류에 치여 흔적도 없이 완벽하게 소멸될 것이다. 그렇다면 백의 하나, 천의 하나, 만의 하나, 그 생명이 살아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 생명이 살아남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그 에너지의 흐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치 풍선의 안과 밖의 기압 평형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터지지 않는 것처럼, 몸을 그릇으로 삼아 그 분류하는 에너지를 품고 몸 안의 에너지와 밖의 에너지가 평형을 이뤄야만 살아날 수 있다. 그 순간이 비록 수억만분의 일초라 하더라도, 공간을 이루는 에너지를 담게 된 육신을 어찌 평범하다 할 수 있겠는가.
차원이동을 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담았던 이현성의 육체는 생체내 초전도성의 강화로 그의 존재가 양자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인간의 몸이 초전도체로 변화하면 인체 주위에 형성되어 있던 마이스너장(오라)이 강화되며,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도가(道家)에서 양신(陽神)을 이루는 것과 같다.
전위궤도단원자원소로 이루어진 인간은 생명과 의식차원에서 제3종 초전도체가 되어 양자 현상이 거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기의 흐름에 저항도 전혀 없어져서 용정혈지의 기운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현성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용정혈지로 인해 생겨난 막대한 내력으로 증폭된 마이스너장은 육체의 외부에서 가해지는 에너지를 밀어내므로 직접적인 타격이 아닌 강기류는 그것에 담긴 힘이 이현성의 잠력보다 강한 힘이 아니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효과는 이현성이 쥔 검에도 해당하여 그의 검은 적의 호신강기를 갈기갈기 찢었다. 색혼야차의 싸움에서 이현성이 이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싸움은 삼대 일 녹혈삼귀와 이현성만의 싸움이 되어 있었다. 사희영은 그들의 십초를 받아내지 못하고 장력을 얻어맞고 쓰러져 있었고, 이현성은 빠른 몸놀림으로 피해냈고 가끔 얻어맞더라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이 애송이는 괴물인가. 칠성의 녹혈강기에도 전혀 내상을 입은 것 같지 않다니. 게다가 진기도 서리지 않은 검으로 호신강기를 두부처럼 뚫어버리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벌써 수십초가 흘렀다. 녹혈삼귀는 자신들의 연수합격을 이렇게 오랫동안 버텨내는 이는 무림에 출두하고 처음이었다. 마치 팔무제와 싸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녀석이 이번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면 독을 쓴다.]
한명의 전음에 다른 두 명은 움찔했다. 무림의 대선배인 자신들이 애송이 하나와 수십초를 겨루고도 결판을 내지 못하고 독까지 쓰다니,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살심이 일었다.
"고약한 애송이, 각오해랏!"
녹혈삼귀는 아주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그들이 함께 수련한 삼상섬뢰(參象閃雷)의 절학이 전개되었다. 벼락치는 소리가 나며 땅에 금이 갔다.
"흥, 이 인간들은 모양만 요란하지 실속이 없다니까."
얼마전의 이현성이었다면 두려움에 떨만한 상황이었지만 지금까지의 수십초동안 이어진 화려한 공격이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하자 그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존지로(世尊指路)-!"
"선인해영(仙人解影)-!"
"귀화출묘(鬼火出廟)-!"
세 방향에서 녹혈삼귀 각자의 절기가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할 곳이 없었다. 이현성도 이번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강기류가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은 싸우면서 깨닫고 있었지만 이번 공격은 웬만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무심코 최대한의 힘을 짜내어 복마구식의 후삼식 중 하나인 뇌정멸겁파(雷霆滅劫波)의 초식을 펼쳤다. 그의 몸 주위에 수십개의 검의 환영이 나타났지만 여전히 기운이 담겨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녹혈삼귀가 쏘아낸 강기들은 이현성의 검에 걸려 사방으로 튕겨났다.
이현성은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타격에 부르르 떨었지만 자신이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반격에 나섰다.
“이야압.”
그의 몸이 돌며 선풍(旋風)이 일어났다. 회선강기(廻旋剛氣)가 일어나며 회오리바람에 휘감기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_-) 그의 몸은 회전의 탄력과 함께 녹혈삼귀 일인을 향해 쇄도 했다.
모양만 뇌정자해(雷霆刺海)인 초식이 펼쳐지며 녹혈삼귀 일인의 상체가 갈가리 찢겨나갔다.
“크아악.”
남은 녹혈삼귀 둘은 깜짝놀랐다 상대가 이토록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인간일 줄 몰랐던 것이다. 사실 녹혈삼귀가 이현성의 공격에 당한 이유는 이현성이 초식명을 외치지 않는다는 것도 한몫했다. 본래 초식의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닌 진언(眞言)의 성격이 강했다. 초식의 이름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내력을 끌어내어 삼라만상의 힘에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현성은 초식 이름을 외치지 않았고 무공의 본래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으나 덕분에 상대보다 반박자는 빨랐다. 이것은 녹혈삼귀들에게는 마치 암습처럼 느껴졌다.
“마왕토혈공(魔王吐血功)!”
분을 참지 못한 다른 녹혈삼귀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입에서 검은 독무를 뿜어냈다.
“젠장!”
피할 곳이 없었다. 이현성은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숨을 멈추고 독무를 가르며 앞으로 뛰어나가 천뢰신검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녹혈삼귀의 입을 꿰뚫고 척수를 끊어버렸다. 뒤편으로 일장쯤 나가떨어지는 녹혈삼귀.
“으으윽. 마귀비행(魔鬼飛行)-!”
혼자 남은 녹혈삼귀는 염두를 굴리다 경공을 펼쳐 달아나려했다. 그러나 이현성은 그의 뒤통수를 향해 천뢰신검을 뿌렸다. 천뢰신검의 날카로운 검날에 그는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과 동체가 분리되어 버렸다.
“난 강간범(强姦犯)이 제일 싫다고..”
첫 살인의 충격이고 뭐고 없이 제자리에 서서 망연하게 중얼거리는 이현성. 한 동안 그렇게 있던 이현성은 뇌 속이 하얗게 변하며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살인자가 되버렸….’
이현성의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일각여의 시간이 흐른 뒤, 사희영이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니 녹혈삼귀의 시체들이 널 부러져 있고 그 사이에 이현성도 쓰러져 있었다.
‘이소협이 해치운 건가. 설마 동귀어진(同歸御眞)!’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이현성에게 다가갔다. 울긋불긋한 수포가 일어나는 이현성의 몸은 그가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살아있어!”
사희영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어떻게든 그를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희영은 그를 들쳐 업고 빠르게 장내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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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혈삼귀의 시체들이 너부러져 있는 장내에 삼십대 사내가 십수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옥기린 설하영을 부르러 왔던 그 사내였다. 그의 수하들 역시 북산신검영의 검수들이라 하나 같이 검기가 엄정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녹혈삼귀! 독마갱이 마교의 지원을 나온 것인가..”
“독마갱 따위가 무슨 문제가 된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그의 옆에서 조금은 젊은 검사가 의문을 표시했다.
“물론 독마갱의 세력이야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지만 이들 녹혈삼귀는 다르다. 검주(劍主)님도 이들 중 한 명을 겨우 상대하실 정도야. 그런 이들이 이런 곳에서 죽어 있다니.”
“만약 노검주(老劍主)님이라면 쉽게 이기실 수 있지 않을까요?”
젊은 검사의 반문에 사내는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녹혈삼귀와 싸운 자는 둘…. 아니 하나는 먼저 당했군? 제대로 싸운 건 단 한명, 그것도 엄청난 고수.”
사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 옆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계속했다.
“주변에 남겨진 엄청난 초식의 흔적들은 모두 녹혈삼귀의 무공들 뿐. 그들과 싸운 자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단지 흩어진 발자국들 뿐. 대체 어떤 무공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녹혈삼귀를 죽일 수 있단 말이냐. 시체의 흔적을 봐도 중수법(重手法)따위를 쓴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검에 베인 상처뿐이야. 녹혈삼귀는 초절정 무공들은 난발했는데 상대는 마치 삼류무사처럼 싸운 것 같으니 이게 말이나 되는 건가. 마치 가지고 논 듯 하구나. 팔무제(八武帝)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일지도…. 팔무제 중에 이렇게 싸우는 이는 아무도 없어. 이번 일은 정말 쉽지 않게 되었다. 마교에 현음마부 그리고 독마갱에, 알려지지 않은 팔무제급의 고수, 과연 ‘그것’의 이야기가 얼마나 퍼진 건지 모르겠구나. 서둘러야 한다. 가자!”
사내의 외침에 십수명의 검사들은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때 적석산 기슭에 자리한 은밀한 동굴, 퇴락한 덩굴에 덮여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 안에서 한 여인이 흐느끼고 있었다.
"흐윽! 죽으면 안 돼요, 소협!"
그녀는 천하제일미녀(天下第一美女)라 해도 손색이 없는 출중한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듯한 하얀 피부에 그린 듯한 눈썹, 까맣게 반짝이는 눈동자, 기품이 엿보이는 도톰한 입술, 조각같은 콧날에 갸름한 턱 선하며, 어느 하나 빠지는 데 없는 미녀였다.
서시독화 사희영!
바로 그녀였다.
사희영이 이현성을 데려온 이 동굴은 본래 그녀가 색혼야차에게 겁탈당할 뻔 했던 곳이었다. 다른 곳을 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일단 색혼야차가 패퇴한만큼 이곳을 찾을 이는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다시 온 것이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이현성이 죽은 듯이 안겨 있었다. 지금 그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으며 호흡마저 지극히 미약했다.
그의 몸에는 치명적인 상처는 없었지만 녹혈삼귀가 뿜은 독무에 의해 중독되어 있었다. 용정혈지의 약효로 인해 거의 백독(百毒)이 불침하는 경지에 이른 이현성이었지만 녹혈삼귀의 독공은 너무나도 지독했다. 만약 기연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얻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녹혈삼귀와의 싸움에서 사희영이 입은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다만 충격이 심해 기절했던 것뿐이었다.
그녀에게는 지금 이현성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분명 가지고 있었다.
흡독조화심법(吸毒造化心法)
-바로 그녀가 익힌 심법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무림에 전설로 내려오는 한 가지 해독비결(解毒秘訣)이었다. 이 기이한 무공의 창시자는 만독노조(萬毒老祖)란 인물이었다. 한 때 독문(毒門)의 최강자였던 그에게는 한 명의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부부생활을 하는 데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가 독인(毒人)이라는 것이었다. 아내를 사랑해 주는 것은 고사하고 곁에 두 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에 만독노조는 아내에게 한 가지 해독신공(解毒神功)을 전수하여 그 난관을 해소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흡독조화심법이다. 그리고 사희영의 사부인 호접독모가 이 심법의 당대 전수자였던 것이다.
흡독조화심법을 연성하면 몸에서 기이한 꽃향기를 풍기게 되는데 사희영이 몸에서 발하는 향기도 이 심법때문이었다. 흡독조화심법은 세상의 어떤 극독이라도 해독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통의 해독공이나 극양(極陽)의 신공을 익힌 자들은 명문(命門)혈을 통해 내기를 주입하여 상대의 몸 안의 독기를 태워버림으로써 해독을 하게 된다. 그러나 흡독조화심법은 본래 만독노조가 부부생활을 하기 위해 만든 심법이라 그러한 묘용이 불가능했다. 사실 사희영의 무공이 정체되고 있는 이유도 그 심법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녀가 흡독조화심법으로 타인의 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 방법이 있을 뿐인데 그것은 음부를 통해 상대의 독기를 흡수하여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녀의 망설임으로 인해 이현성의 상세는 더욱 나빠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남자에게 이십여년동안 간직해온 순결을 바치고 싶겠는가.
‘흑, 어떻게 해야 할까.’
사희영이 이현성을 만난 지는 하루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동안 함께 겪은 일들은 그리 흔하다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정조를 잃을 위기에서 구해지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만지게 했으며 쉽지 않은 상대들과 두 차례의 싸움을 함께 했다. 만약 그녀 혼자였더라면 진즉에 산중고혼이 되었을 일들이었다.
그녀는 지난 만남을 반추하며 이현성을 살려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이현성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처음에 자신을 대할 때는 우유부단한 듯한 성격에 순진한 듯 보였지만 싸움에서는 거리낌이 없어보였다. 몸에서 느껴지는 내력은 자신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행동 하나 하나에는 무공을 익힌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별다를 거 없는 무공으로 녹혈삼귀의 합곡을 맞아 대등하게 싸웠다. 결코 외모와 같은 약관의 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어쩌면 반노환동(反老還童)의 고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어. 내가 그를 구해준다면 분명 모른 척 하지는 않겠지.’
그녀는 이미 가슴 깊이 이현성을 담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쉽게 버릴 인연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사희영은 떨리는 손으로 이현성의 옷을 벗겨 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어 이현성의 옷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가 보는 사람도 없건만 처녀 특유의 수줍음으로 두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이현성의 하의를 조심스럽게 벗겨 내렸다. 건장하고 탄탄한 이현성의 알몸이 이내 그녀의 눈 앞에 드러났다. 생전 처음 보는 사내의 실체였다.
‘이…이게 몸 안에 들어가는 거야…!’
그녀도 잘근 입술을 깨물며 일어나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도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당당하고 균형잡힌 탄력있는 몸매, 풍만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의 눈부신 나신이 드러났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찬 공기와 맞닿은 나신을 떨자 그에 따라 유방이 흔들렸고 그 위에 매달린 분홍빛 작은 돌기 역시 잔 떨림을 보였다. 하얀 살결의 아랫배 밑에는 도톰한 두덩, 그리고 수풀이 있었다. 그리 무성하거나 짙은 음모(陰毛)는 아니었다. 오히려 적은 편에 가까운 거웃이 사희영의 비부를 살짝 감출정도로만 가지런히 솟아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건만 사희영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옮겨 자신의 젖가슴과 비부를 가렸지만 그녀의 작은 손으로는 미처 가려지지 않는 가슴,
사희영은 절로 화끈거리는 얼굴의 열기를 느끼며 이현성의 하체(下體)로 시선을 돌렸다. 삐죽삐죽한 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현성의 큼직한 물건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이것을… 세워야 해!"
비록 처녀의 몸이지만 그녀도 남녀 간의 정사(情事)에 대해서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론과 행위는 반드시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가녀린 교구(嬌軀)는 어쩔 수 없는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으로 이현성의 실체를 쥐었다. 그리고는 명주고름 같은 섬섬옥수로 그것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색혼야차에게 범해질 위기에 쳐했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사내의 실체를 스스로 만지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사희영이었다. 하지만 더러운 음마(淫魔)가 아니라 순진한 이현성의 몸이라 생각하자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급박한 상황임에도 약간은 흥미로운 감정을 품고 만지작거리자, 이현성의 그것은 미미하게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육봉(肉峰)이 기운을 차리는 그 모습에 사희영은 수십초가 수시간처럼 느껴졌다.
"아아... 너무 굉장해! 어머..어머...."
힘찬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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