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여아 (風雲女兒) - 1부
본문
1화, 벽승조(擘勝朝), 담덕을 만나다.
항주(杭州).
중원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이 곳에는 당연하게도 명문파들이 여럿 존재했다. 근간 항주는 사파와 마교의 대적지로도 유명했는데 사파의 최고인 구적신파(救敵神波)의 장문 역시 항주에 소재했다. 구적신파의 문주, 검황 보주해 (普主海) 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보웅해 (普熊海) 라는 이름의 그는 천하의 망나니로 항주 시내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가 하는 일은 시장의 잡배들을 데리고 부녀자를 희롱하는 것뿐이었고 그에게 겁탈당한 여자의 수는 손에 꼽을수 없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의 뒤에 서 있는 육천명이 넘는 막강한 구적신파의 무사들은 정부의 치법권의 밖에 있는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날 역시 보웅해는 십수명이 넘는 여러 무사들과 함께 객잔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보웅해님 저 여자아이는 어떻습니까?”
보웅해는 부하중 한명이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키가 작은 십대의 소녀가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그 자태가 가히 서왕모가 돌아온 모습이라고 해도 어울릴만큼 아름다왔다. 또한 두툼한 옷에 가리고 있긴 했지만 커다란 유방과 잘록한 허리는 보웅해가 본 어떠한 여자중 가장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단한데?”
그 말을 듣자마자 보웅해의 곁에 있던 무사 한명이 입맛을 다시며 여자 쪽으로 다가갔다.
“아름다운 소녀.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그녀는 무시하고 밥을 먹고 있었다. 무사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가 본데…”
그 순간 소녀는 그의 팔목과 어깨를 잡아 휙 돌렸다. 쾅! 엄청난 굉음이 나고 보웅해가 정신을 차렸을때 바닥에 그의 호위 무사가 누워있었다.
“아니, 어떻게!”
무사는 눈과 코, 입, 그리고 귀에서 모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외상이 없는것으로 보아서는 체내에 강력한 내공(內空)이 담긴 내상을 입은것 같았다. 보웅해는 치를 떨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건방진 년!”
그것을 신호로 그의 무사들이 동시에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소녀는 한숨을 푹 쉬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운룡제오장, 설화입무(雪花入舞)!”
그녀는 작은 손을 움직여 날아오는 검들을 잡고 모두 밖으로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무기를 잃어 어안히 벙벙한 그들은 곧이어 날아오는 그녀의 또다른 장풍을 몸으로 그대로 받고 나가 떨어졌다. 보웅해는 순간 자신이 호랑이를 건드린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을 끝낼 틈도 없이 자신에게도 날아오는 또다른 장풍에 기억을 잃고 말았다.
“여자 몸이 되니까 별 불편한 일들도 많군.”
소녀는 바로 열 다섯살이 된 벽승조였다. 폭포의 물을 완벽하게 끊을 수 있을때까지 동굴에 남아 수련을 계속 한 그녀는 처음으로 숭산 밖으로 나왔다. 첫번째 목적은 표국으로 돌아가 습격자들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이었다. 오랜 명상과 수련의 결과로 습격자들에 대한 복수심은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지만 매일 잠을 청할때마다 그의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부친의 얼굴이 생각이 나고는 했다. 운룡십구장을 완벽하게 연마한 승조의 힘은 사실 자신도 잘 몰랐지만 사파의 신진고수인 칠악장인(七惡長人)에 어깨를 견줄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그가 먹은 뱀은 사실 태고신의 마지막 남은 흔적이라고 불리는 철중사(鐵重蛇) 였다.
“또 덤빌 녀석 있냐?”
“…대단한 녀석이다!”
승조는 밥맛이 떨어져 일어섰다. 그리고 보웅해의 품을 뒤져 은량을 꺼내 품속에 넣었다.
“여비가 좀 필요할테지…”
그는 음식점을 나와 거리쪽으로 걸어나왔다. 오랜만에 항주에 오긴 했지만 이곳에서 표국으로 가는 일 쯤은 간단했다. 커다란 시장거리를 나와 걸어간 외진 골목에는 거대한 건물이 세워져 있다. 북풍표국! 2년전의 습격 뒤로는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은듯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승조는 간단하게 담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그 누구도 없었다. 그는 커다란 마루바닥에 앉아 벌떡 드러누웠다.
“아, 벌써 2년이라니… 아직 간판도 멀쩡한데 누구도 찾아와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아볼 생각도 안했단 말인가?”
그 순간 건물 내에서 기척이 들렸다.
“앗, 누군가 있나?”
그 때 잠겨진 표국의 커다란 대문이 부서지며 열렸다. 승조는 벌떡 일어서서 문쪽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곳엔 삼십대가 조금 넘어보이는 큰 몸집의 남자가 서 있었다.
“누구냐!”
“하하, 제 동생이 실례를 범한것 같군요. 저는 구적신파의 장로중 하나인 보감해 (普鑑海) 라고 합니다.”
그의 뒤로는 다섯명의 인물들이 보았다. 얼핏 내공을 읽어서는 보통 실력들이 아닌듯 했다.
“마침 소동을 일으키기 귀찮았는데 알아서 이런 외진곳으로 와주다니… 이곳에서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지요.”
그는 얇은 검을 하나 뽑아 순식간에 승조의 간격으로 들어왔다. 승조는 기를 운용할 틈도 없이 소리를 쳤다.
“운룡제팔장, 천감초(川鑑草)!”
설화입무가 상대의 무기를 빼앗어 제압하는 초식이라면 천감초는 무기의 타격을 최대한으로줄이며 반격을 해나가는 초식이었다. 그 변화무쌍함과 응용도는 승조가 완벽하게 익히는데도 다섯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했을 정도였다. 그는 몸을 빠르게 틀어 검을 손바닥으로 쳐 올리고 손에 공력을 실어 보감해의 턱을 가격했다.
“우욱!”
하지만 그것은 승조의 실수였다. 보감해의 뒤에 있던 다섯명의 무사는 기척을 숨긴채 보주해를 따라들어와 사방에서 승조에게 검기를 날렸다.
“이런!”
승조는 대부분의 공격을 피했지만 검기에 잘린 부분의 옷이 흘러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아뿔싸… 실수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알몸으로 동굴에서 수련하는데 보냈기 때문에 뛰어난 무공을 갖게 되었으나 대인 전투에는 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때문에 상대에게 알몸을 보인 순간 당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보감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승조의 뒤로 넘어들어가 점혈을 찍었다.
“으윽…!”
목의 점혈을 찍혀 상반신이 마비가 된 것을 느낀 승조는 빠르게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또다시 날아오는 공격에 허벅지와 종아리의 점혈 함께 찍혀 힘을 채 쓰지 못한채 쓰러졌다. 보감해는 가격당한 턱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후후… 간단하군. 이렇게 실전 경험이 없다니. 무공 실력이 아까운데?”
그는 검으로 그녀의 몸을 덮고 있는 천조가리를 들어올렸다. 승조는 사지를 들어올릴수 없는 무력감에 미칠 것만 같았다. 보주해는 검을 들어 그녀의 가슴을 훽 하고 베었다. 검은 그녀의 살갗은 닿지 않고 가슴을 동여매고 있던 천만을 깨끗하게 잘라내었다. 그러자 모양이 좋은 유방이 출렁하고 튀어나왔다. 누워있는 그녀의 몸에도 불구하고 두개의 열매는 마치 잘린 수박이 업힌것같은 모양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단한 몸이군. 얼굴은 완전 꼬마앤데 말이야.”
“으윽…”
목의 점혈이 찍힌 관계로 말조차 할 수 없다. 보감해는 그녀를 번쩍 들어 마루로 던졌다.
“후후, 동생녀석에게 주기는 아까운 몸이군.”
그는 무사들을 손을 휘저어 밖으로 내몰고 옷을 벗었다. 곧 나타난 그의 중심부엔 커다란 물건이 흉흉하게 서서 위압적으로 승조를 바라보았다.
‘뭐야, 남자의 물건이란게 이렇게 무섭게 생긴거였나? 어떻게 되는거지?’
승조는 아직도 어린 나이 였기 때문에 성관계의 경험이 없었다. 보감해는 그녀의 하반신을 가리고 있던 천조가리를 들어낸후 속옷까지 끌어내렸다. 무방비하게 벌려진 다리 사이에는 그 무엇도 침범하지 않았던 속살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주해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주름을 살짝 벌려 그곳에 숨어있는 돌기를 툭 건드렸다.
‘헉…!’
승조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에 목을 부르르 떨었다. 간지러운것 같기도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전율에 가까웠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만져보지 못한 속살이 외간남자의 손에 의해 범해지고 있었다. 보감해는 돌기를 꾹꾹 누르거나 톡톡 치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온몸의 점혈이 막혀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승조는 돌기가 희롱당할 때마다 등골깊이 스며오는 전율에 등을 떨었다.
“반응이 좋군.”
그는 입을 살짝 열어 혀를 뺐다.
‘무, 무슨짓을…!’
혀는 변화무쌍하게 돌기를 가지고 놀았다. 살짝 살짝 건드리거나 입술로 바람을 불거나 하는 그의 기술에 승조는 눈꺼풀을 뒤집으며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신의 몸을 한탄했다. 아직 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그녀의 조갯살은 어느새 물기로 가득차고 있었다. 보감해의 혀는 돌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녀의 질의 입구를 공략하고 있었다. 혀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느낌에 승조는 금방 미칠것만 같았다. 보감해는 점점 물기가 차오르는것을 보며 손가락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대단하군…!”
그녀의 질은 마치 손가락을 삼키듯 쑤욱하고 그것을 먹어버렸다. 단지 손가락 하나를 넣었을 뿐이지만 꽉조이는 그녀의 계곡은 그가 경험했던 어떠한 여자보다 일품이었다. 더 이상 참을수가 없었던 그는 그의 육봉(肉峰)을 구멍 입구에 조준했다.
“이야, 보기 좋은걸? 너 그렇게 어린 여자애를 가지고 노는게 재미있냐?”
보감해는 획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함께 온 다섯 장로들이 모두 쓰러져 있는 한 가운데에는 작은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기껏해야 열살이 조금 넘었을까.
“누구냐!”
“동쪽에서 온 미소년… 이라고만 해두지.”
그는 말을 채 마치지도 않은채 보감해에게 휙 달려갔다. 순식간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거대한 도가 보감해를 덥쳤다. 쾅! 보감해는 가까스로 자리를 피해 구석으로 떨어졌다. 소년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자신이 들고 있는 거대한 직도를 두손으로 들어올렸다.
“이게 바로 고구려의 보도, 삼족오천강 절마대도 (三足烏天强 切魔大刀)다.”
“삼족오천강 절마대도?”
보감해는 그러한 이름의 도는 들어본적도 없었다. 폭이 반뼘정도 되어 보이는 날은 얼추 보아 4척 (1.20m) 이 넘었고 그 곳에는 남방의 국가 고구려의 상징인 세 발이 달린 까마귀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또한 손잡이 또한 칼의 손잡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길었으나 창이라고 보기에는 어설프게 짧은 괴상한 형태의 무기였다.
“아 길어서 부르기 귀찮다면 그냥 삼족오도라고 불러.”
“그나저나 이 어린 녀석이 무슨 무례냐!”
“무례는 네놈이다. 옷이나 입어라.”
보감해는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그 순간 소년의 강맹한 두번째 공격이 날아왔다.
“장백도법, 귀어속절! (長白刀法 鬼魚速切)”
보감해는 순식간에 난도 당했다. 승조의 눈 위로 엄청난 피가 뿌려지는 것이 보였다.
“크악!”
“구차하군.”
소년은 삼족오도를 빠르게 휘둘러 그의 목을 날려버렸다.
“어이, 누님, 괜찮아? 혈도가 눌린건가?”
소년은 승조에게로 걸어가 승조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더니 혈도 몇 곳을 눌렀다. 승조는 천천히 사지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입을 몇번 움직이니 기도의 혈도 풀린듯 하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아,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일단은 옷에 몸을 걸치는 걸로 갚는건 어때?”
“아…”
소년은 보감해가 벗은 옷을 가리켰다.
“아, 감사합니다.”
승조는 자신의 몸보다 훨씬 커다란 보감해의 옷을 걸치고는 멍한 얼굴로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런 엄청난 일을 당할뻔 하다가 살아돌아왔으니 당연할수 밖에. 거친 옷감이 자신의 달궈진 몸을 스치는 기분이 가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소년은 머리를 긁고 승조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런 외딴 곳엔 왠일이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말해줄수 있겠어?"
“아, 저는 북위표국의 주인이었던 벽력호의 아드… 딸입니다. 일이 있어 몇년동안 집을 비웠는데 돌아와보니 아무도 없고…”
“엥? 이 표국 망한거 아니었어? 내가 와서 살기 시작했을때는 이미 완전한 폐허였는데?”
“네?”
소년은 표국의 한 쪽을 가리켰다.
“일년전부터 저 방을 쓰고 있었어. 혹시 문제라도?”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그나저나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아, 내 이름은 담덕이야. 나이는 이제 삼백살이 가까워 지는듯 싶은데 사실 나도 세기를 그만 두어서 잘 기억이 안나.”
“네?”
담덕이라 말한 소년은 머리를 다시 긁었다. 말을 생각해낼 때마다 하는 버릇인거 같았다. 그러고보니 그의 옷은 명문가의 옷이었으나 머리는 대충 길게 놔두어 덮수룩한 모습이었다. 슬슬 승조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에게는 이상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물론 저런 작은 체격에 거대한 칼을 쓴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결정적으로 담덕은 바깥으로 보이는 살 구석 구석에 작은 문신이 새기고 있었다.
“아까 잠깐 봤는데 신기한 무공을 쓰더군. 무공의 이름이 뭐지?”
“아, 운룡십구장이라 합니다.”
승조는 왜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남자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삼백살이 넘었다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도 확신이 가지도 않았으나 일단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남자에게 예의를 갖추기로 했다.
“그나저나 삼백살이 넘으셨다니요?”
“아, 그게, 음… 이게 세번째 삶이야. 전생소입법 (前生蘇入法) 이라는 금지무공을 죽을때다 싶으면 쓰거든. 첫번째 삶에선 왕이었고 두번째 삶에서는 신선이 되었는데 세번째 삶은 이제 막 시작하다 보니 뭐가 뭔지도 모르겠네. 일단 안으로 들어갈까?”
“아, 네.”
담덕은 자신이 묵고 있다는 방을 가리켰다. 그 순간 문이 휘릭 하고 열리고 그는 승조의 허리를 낚아채 한달음에 방문에 돌입했다. 승조가 뒤를 돌아보자 마루바닥은 적어도 방문에서 삼십걸음 이상은 되어보였다. 사실 승조는 권법만을 연마했기 때문에 잘 몰랐으나 담덕의 경공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 이곳은…”
승조는 기억이 차츰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담덕이 묵고 있다는 그 방은 승조가 예전에 쓰던 방이었다. 자신은 침대 밑에 숨어 열린 문으로 커다란 마당에서 아버지가 죽는것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자의 몸으로,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봐, 왜 그래, 갑자기.”
승조는 눈물을 스윽 닦고 화제를 돌렸다. 여자의 몸이지만 아직 명문가의 아이로 자랐던 자존심은 있었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항주로 오신거죠?”
“아, 원래는 중원으로 내려올 마음도 없었는데 사실 한곳에서 이백년 가까이 있다보니 지겨워 지더라고.”
담덕은 승조의 침대에 털썩 누웠다.
“그래서 도대체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여기 남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찾아갈 꺼야?”
“아, 그게…”
사실 승조 역시 알고 있었다. 돌아와 보았자 바뀌는것은 없다는 것을. 처음의 계획은 표국에 돌아와 부친을 살해한 인물들의 단서를 찾아 그들을 추적해 복수할 계획이었지만 그것은 마치 소설에서 나올 법한 줄거리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무공을 연마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자신이 운룡십구장을 익히긴 했어도 그때 괴한들에게 죽어간 벽력호는 지금의 승조보다는 배 이상으로 강했다. 즉 얕은 무공을 가지고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자신은 왜 이년동안 무공을 배우고 여자의 몸이 되어 다시 표국으로 돌아온 것일까.
“아까 운룡십구장이란걸 익혔다고 했나? 꽤나 강한 무공인듯 한데… 무술 사범이 누구지?”
“사범님은 없습니다만…”
승조는 잠시 망설였다. 자신의 정체가 들켜질수도 있단 생각이 덜컥 들었다. 하지만 담덕의 말을 믿어서는 그는 중원의 사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했다.
“과심 거사란분이 도와주셨습니다.”
“과심 거사? 과심이라…”
담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벌떡 떴다.
“과심? 혹시 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졌으며 별로 멋지지도 않은 흰 수염을 기르는 녀석 말이냐? 그, 뭐더라, 무슨 뱀하고 같이 다니는?”
“네.”
승조는 그가 과심 거사를 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녀석 어디있지?”
승조는 담덕의 기세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렇게 물어보아도 자신 역시 궁금한 형편이었다. 과심 거사는 승조가 수련하고 있던 2년동안 단 한번도 숭산굴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승조가 자고 일어나면 매일 같이 그녀의 옆에 산짐승이 죽은채로 던져져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그것들은 죽은지 채 반시간이 되지도 않아서 도착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일단 그런 작은 것들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느끼고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저를 잠시 도와주시고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시며 사라지셨습니다.”
“이런…”
“아시는 분이십니까?”
담덕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하면 웃기겠지만 저번 삶에 파문된 내 제자다. 녀석이 이상한 일을 꾸미고 있길래 파문시켰는데 아직도 돌아다닐 줄이야.”
담덕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는 승조를 이곳 저곳 살펴보았다.
“손을 줘봐.”
“네?”
“손을 달라고.”
승조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담덕은 그녀의 손목을 지긋이 잡으며 혈 쪽을 눌렀다. 담덕은 일단 그녀의 기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내공은 15세의 소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대했지만 그녀는 아직 무공의 기초도 모르고 있는듯한 운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수들이 내공을 온몸에 고르게 분포해 안정된 기를 발산하는것에 비하면 소녀의 기는 이곳저곳에 몰려있거나 어떤 부분에는 아주 없는 곳도 있었다. 또한 어떤 사람이건 음과 양의 기가 조화하게 마련이지만 그녀에겐 양의 기는 전혀 찾을수가 없었다. 마치 이것은 어떤 사람이 소녀에게 양의 기를 전부 흡수해버린것과도 같은 모양이었다. 담덕은 눈을 들어 승조를 쳐다보았다.
“너 아직 나한테 이름을 안가르쳐 줬어. 이름이 뭐지?”
“벽승조입니다.”
“벽승조라… 결심했다.”
“네?”
담덕은 벌떡 일어섰다. 다시 보니 그의 키는 보통 남자아이의 몸이라고 해도 큰 편이 아니었다. 체격 역시 조금 마른편에 가까웠다.
“일단 나와 함께 장백산으로 가자. 거기엔 내가 이끄는 문파가 있어. 구적신파에게서는 안전할꺼다.”
그제서야 승조는 자신이 쓰러뜨린 인물이 어떠한 소속인지 알게 되었다. 구적신파라면 그의 아버지도 생전에 무서워하던 사파 최고에 우뚝 서 있는 문파였다. 문주인 보주해는 경천동지의 무공에 올랐다는 소문이 들었으며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들은 그와 밀교 (謐敎) 의 교주 (敎主) 석곤 과의 전투는 오랜 시간 후에도 생생하게 승조의 귀에 박혀 있었다. 그런 소속의 무사들을 쓰러뜨렸으니 자신의 목숨은 이곳에 남아있다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살아서 무슨 소용일까.’
승조는 문득 자신이 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가 들었다. 도대체 자신은 무엇을 위해서 2년이라는 시간동안 미친듯이 무공을 수련한 것일까. 결국 자신보다 강한 자는 있기 마련이거늘.
“이봐, 결정을 서두르라고. 아마 구적신파가 슬슬 냄새를 맡고 이곳으로 오고 있을꺼다. 나도 보주해의 아들을 죽였으니 그 녀석과 붙어야 되겠는데… 사실 자신이 없거든, 지금은.”
“아…”
승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담덕이란 이 꼬마아이도 굉장히 강해보였지만 그보다 더 강하다는 보주해에게 잡혀 이런 여자의 몸으로 어떠한 고통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적어도 담덕은 승조가 어떤 몸을 가지고 있던 관심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승조는 그와 함께 있는것이 일단은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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