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풍운여아 (風雲女兒)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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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여아 (風雲女兒)




숭산(嵩山).




오악(五岳)의 하나라고도 알려진 이 명산에는 예로부터 알려진 폭포가 있다. 많은 무림의 고수들이 수양을 하기 위해 들리는 곳으로도 유명한 이 무명의 폭포는 여러가지 비밀이 많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숭산굴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폭포 아래의 동굴. 최고의 고수들도 동굴의 문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수압 때문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이 곳에 한명의 소년이 알몸으로 누워 있다.




벽승조(擘勝朝). 유명한 북운표국 (北雲驃局)의 주인 벽력호의 아들이다. 그가 잠에서 깨 눈을 뜨자 순식간에 지난 며칠동안 있었던 일이 빠르게 그의 눈앞으로 지나갔다. 표국에 난입한 열댓명의 남자와 결투를 벌인 벽력호 (擘力護) 는 한 무사의 손에 거짓말처럼 쓰러졌고 침대 아래 숨어있던 승조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그의 아버지가 부탁한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산 속으로 도망쳤다. 숨을 때마다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던 무사들이 사라진것은 사람보다 더 커다란 뱀 한마리가 그를 물어서 폭포안으로 숨어들어온 이후이다.




그 날 이후로 뱀은 매일 같은 시간에 돌아와 토끼니 늑대니 하는 산짐승들을 물어 승조에게 주었다. 영문도 모른채 승조는 뱀이 가져다 주는 동물들을 구워 먹고 있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문득 그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도대체 13년동안 잘 살고 있었던 그의 가족이 어째서 하루 아침에 그렇게 무너진것일까. 중원 최고의 표국중 하나의 후계자로 무술공부를 하고 소일거리로는 마을의 여자들과 노닥거리며 살아가던 그의 인생이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일어서서 자신의 옆에 떨어져 있는 책을 바라보았다.




“운룡십구장 (雲龍十九掌) 이라.”




무공서인듯 했지만 그리 공력이 높지 않은 승조에게 있어선 난해한 책이었다. 그는 몇번 그것을 뒤집어 보다가 휙 던지고 일어섰다. 며칠 동안 동굴에 쓰러져서 울기만 한것이 전부였다. 그가 숙식하고 있던 동굴의 안은 이곳저곳 횃불로 밝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정기적으로 드나드는듯 했으나 그가 쓰러져 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무섭기만 했던 첫날밤과는 달리 동굴에 슬슬 익숙해진 승조는 안쪽이 궁금해졌다.




“거기 누구 없소?”




어릴때부터 귀공자로 자라서 아이답지 않은 말투를 가진 승조에게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예의를 갖출 여유는 있었던걸까. 며칠전처럼 소리쳐서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승조는 던진 책을 줍고 안을 탐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천천히 발을 떼며 주위를 둘러보자 그가 알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벽에는 절대로 그가 아는 언어가 아닌 글자가 씌여져 있었고 승조는 그것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으음… 무서운데.”




이상하게도 동굴은 계속 안쪽까지 횃불로 밝혀져 있었다. 그건 바로 얼마전에도 누군가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는 안쪽에서 커다란 묘지를 하나 발견했다.




“이건…?”




묘지에 새겨진 한자는 승조의 짧은 지식으로도 대충 읽을 수가 있었다. 내용을 대충 훑어보아 “운해” 라는 무인이 죽기전에 자신의 일생을 남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 좋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 기본적인 줄거리인 듯 했다.




승조가 정신이 한참 팔려 있을 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나며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냐.”




승조는 소스라치게 놀라 휙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늙은 노인 한명이 승조에게 매일 같이 음식을 가져다 주던 뱀과 함께 서 있었다. 노인은 승조를 의심적은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승조는 며칠만에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것이 반가워서 소리쳤다.




“저는 북운표국의 주인, 벽력호의 아들, 벽승조라 하옵니다! 표국이 몇명의 남자들에게 기습을 당해 사라진 후 이 동굴 안에 숨게 되었습니다. 노장은 누구신지요?”


“벽승조? 벽력호?”




노인은 이름을 되씹어 보더니 뱀을 획 쳐다보고 뱀에게 느닷없이 꿀밤을 먹였다. 뱀은 낮은 쇳소리를 내며 옆으로 기어갔다.




“네가 정말로 벽승조냐? 네 아버지가 너에게 준건 없고?”


“아… 책 한 권을 남겨주셨습니다.”




노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책? 운룡십구장?”


“아, 네.”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묘지로 다가가 비석을 어루만지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골치 아픈 녀석… 이런 귀찮은 일만 떠맡기다니. 네놈은 분명히 저승에서 웃고 있겠구나.”


“저희 아버지를 아십니까?”


“알지, 그 빌어먹을 자식을.”




승조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으나 말을 꺼내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다시 돌아 승조를 쳐다보았다. 뱀은 어느새 승조의 곁에 다가가 뙤아리를 틀었다. 영물 (靈物) 을 바라보며 노인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참 운명이란 대단하구나. 네가 이런 곳 까지 오다니. 그것도 다 부처님의 덕일테지. 운룡십구장은 어디 있느냐?”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그에게 내밀었다. 노인은 표지를 스윽 훑어보더니 승조에게 다시던졌다.




“어차피 사용못할 책이로다. 이름이 벽승조라고 했지? 내 이름은 과심 (瓜尋) 이다. 보통 과심 거사라고 부르지. 들어보지 못했을게다. 늙은이가 목숨을 부지하려고 몇년 산에 숨었지만 이제 그것도 여의치 않구나.”


“저어, 무슨말을 하시는건지. 전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됬어. 너 알아들으라고 한 얘기는 아니다. 어서 이곳에 와서 앉아라.”




승조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가 하는 말대로 그의 앞에 가서 앉았다. 그의 옆에 뙤아리를 튼 뱀 역시 그의 옆에 가서 다시 눈을 감았다.




“이 뱀이 며칠동안 너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었느냐?”


“네.”


“그럼 길게 얘기할 필요 없겠구나. 이 뱀은 복희와 여와의 막내 딸이다. 주인은 자기가 정하지.”




그는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뱀의 머리를 들었다. 승조는 복희와 여와가 중원을 창조한 창조신이라는 것은 어렸을때 본 책에서 알고 있었다. 그런 창조신의 막내 딸이라니. 이 노인은 살짝 정신이 이상한 것이 아닐까 내심 겁이 나기 시작했다. 과심은 승조를 지긋이 노려보며 뱉듯이 말했다.




“자 이 녀석을 먹어라.”


“네?”


“먹으라고.”




승조는 노인이 역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것을 알게되자 이 동굴에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그리고 며칠만에 처음으로 말을 하게 된 사람이 정신이 이상한 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승조가 어리둥절해 하자 과심은 답답해 하며 승조의 입을 벌리고 뱀의 머리를 밀어넣었다. 그리고 뱀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어억…!!!”




승조는 정신이 아득해 지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 앞의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검은색으로 변했다. 몸이 뜨거워 지고 머리는 하얘진다. 눈은 보지 못하고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한다. 뱀의 몸은 끝없이 끝없이 길어지며 그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뱀은 몸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뙤아리를 틀기 시작한다. 그리고 승조는 정신을 잃었다.






승조가 정신이 들었을때는 동굴에 있는 것은 자신 혼자 뿐이었다. 과심이라는 노인도, 뱀도, 묘지도 없었다. 오직 운룡십구장 뿐이 그의 옆에 놓여있었다. 운룡십구장을 열자 첫번째 장에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는 편지를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게 되었다면 승조 네 녀석이 성공적으로 변신을 끝냈다는 이야기이다. 말이 변신이지, 네 녀석이 경험 한 것은 거의 변태에 가깝다. 너의 새 몸으로는 너를 알고 있는 사람도 너를 모르게 될 것이지만 앞으로 네가 모르는 사람들이 너를 알아 보기 시작할게다. 너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었다. 운명이려니 생각해라. 운룡십구장 역시 읽을수 있을테니 천천히 정독해라. 과심.”




승조는 몸이 예전과 같지 않게 가벼움을 느꼈다. 그리고 어떠한 부분은 좀더 무거워 진것 같기도 했다.




“…헉!”




그가 무거워 진 부분중 하나인 가슴을 보았을때 그는 커다란 유실(乳實)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가 또래의 여자아이 들과 노닥거릴때 훔쳐 보았던 어떠한 것보다도 훨씬 풍만했고 거대했다. 또한 그의 엉덩이 역시 도톰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그제서야 그는 오른쪽에 여자의 옷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옷을 집어올렸다. 움직일때마다 가슴이 흔들리며 거추장 스러웠다. 그는 처음으로 입어보는 옷이지만 일단은 입는데 성공했다. 옷은 그의 풍만한 유방을 조금이나마 가려주었지만 아직도 옷 위로 두툼하게 올라온 가슴은 부자연 스러웠다. 승조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내가 여자가 된 거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그곳에 그 질문을 대답해 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운룡십구장을 펼쳐 읽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신기하게도, 그가 전혀 알아들을수 없었던 문자들의 조합이 천천히 그의 머리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때는 어느새 책의 마지막 까지 모두 읽은 상태였다. 몇시간이 지났는지 어느새 배가 고파졌다. 그는 눈을 감고 책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운룡십구장! 북풍표국의 고유 검법인 북풍검법을 어느정도 연마한 승조는 운룡십구장의 내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수 있을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적은 양의 내공을 최대한의 외공으로 바꿔내 극의에 다다른 수비로 무기를 상대로한 최고의 무술이었다.




그리고 내용상 운룡십구장은 완벽한 음의 무공이었다. 즉, 여자만이 익힐수 있는 무공이다. 때문에 음의 속성인 땅의 기를 끌어올리는 술이 다소 존재하고 있었다. 승조는 엄청난 물이 쏟아지고 있는 동굴의 문으로 뛰어갔다.




“지박호장(地拍護掌)!”




그는 큰 소리를 내며 물을 쳐냈고 순간 물줄기가 끊어진 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하지만 물은 곧 다시 동굴의 문을 덮었다. 승조는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직 연마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구나.”




그리고 2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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