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187부

본문

천상(天上)의 향기 187(칠백년의 약속)-21




림산 외곽에 있는 폐가(廢家)에 도치를 피해 도망친 오영(五影)이 도착하자 냉하상의 마차를 모는 마부가 반갑게 인사하려다가 일(一), 이(二), 삼영(三影)이 부상을 당한 것을 보고 다급하게 마차 문을 열었다. 부상자(負傷者)가 생기면 부상자(負傷者)를 마차에 태우고 나머지 사람들이 마차를 보호하며 후퇴하게끔 미리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태우세요.”




오영(五影)은 마차 문이 열리자 모두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마부는 오영이 모두 마차에 오르자 불안한 눈으로 오영이 왔던 곳을 바라본다. 아직 냉하상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출발해요.”


“아직 막주님이 도착하시지 않았습니다.”


“조금 늦으실 겁니다. 막주님께서 일단 우리 먼저 피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요. 그럼 먼저 출발하세요. 저는 막주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막주님은 우릴 쫓아오는 혈무도부를 처리하고 오시느라 늦으시는 겁니다. 일단 사영(死影)님도 약속된 이차집결지로 가시죠. 이곳에 우리가 없으면 막주님도 그곳으로 오실 겁니다.”


“저는 남아서 막주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먼저 가세요.”




오영은 마부가 고집을 부리자 자신이 직접 마부석에 앉았다. 마부는 천인살막에서 막주외에 아무도 진정한 모습을 모르는 신비한 인물이다. 평소에는 냉하상의 거처에서 잡일이나 하며 보내다가 냉하상이 직접 살행(殺行)에 나서면 냉하상과 동행(同行)을 한다. 그렇다고 사영이 누굴 죽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냉하상과 동행을 한다 해도 대부분 냉하상의 잡심부름이나 하다가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천인살막 내에서 누구도 사영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사영은 막주가 어릴 적부터 그녀의 겉을 지켜주었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냉하상도 향상 사영(死影)을 겉에 두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들이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오영은 사영을 두고 마차를 몰아 폐가(廢家)를 떠난다. 오영이 냉하상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출발한 것은 살행(殺行)이 실패한 경우 일차 집결지인 폐가를 버리고 이차 집결지에서 만나기로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영은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다가 품속에서 수라검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오영은 냉하상이 자신들을 추적하는 혈무도부를 처리하고 오느라 늦는다고 했다. 혈무도부는 냉하상이 직접 처리하기로 했던 놈인데, 일행을 추적했다는 것은 냉하상이 살행(殺行)에 실패했다는 말이며, 냉하상이 오영(五影)을 먼저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위급했다는 말이다. 




냉하상이 익힌 무공은 속전속결(速戰速決)의 살수무공으로 단 일합에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오영(五影)이 도착한지 일다경(一茶頃-15분정도)이 지났건만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사영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귀식대법으로 숨소리까지 감추었다. 




냉하상은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苦行)의 연속이었다. 도치의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 대결에서 입은 내상을 치료하지 않아 한걸음 옮길 때마다 오장육부(五臟六腑)거 뒤틀리는 고통이 전해왔기 때문이다. 도치는 냉하상이 답답할 정도로 늘리게 걷자 짜증이 밀려왔다. 냉하상이 시간을 벌기위해 일부러 늦게 걷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쌍~ 빨리 가지 못해.” 




도치가 앞서가던 냉하상의 등을 떠미니 냉하상이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주저앉는다. 도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냉하상을 바라보다가 냉하상의 은빛 머리까락을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이년이! 어디서 꾀를 부려.........계속 이런 식으로 잔대가리를 굴려보겠다는 거지. 좋아. 이건 내년이 자초한 일이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도치는 냉하상의 머리를 잡은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니 냉하상은 머리가죽이 벗겨질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억지로 도치를 따라간다. 




“악~ 아파요. 정말 아파서 그래요.” 




냉하상은 치욕(恥辱)감 부르르 떨었다. 천인살막의 우상과 같은 냉하상이 언제 이런 모욕을 당해보았겠는가? 생각 같아서는 당장 혀라고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자신의 어깨위에 천인살막의 운명이 걸려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그들을 배신(?)하고 자기 혼자 편하겠다고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오늘 당한 치욕(恥辱)은 개인적인 치욕(恥辱)도 치욕이지만, 천인살막 최고의 무공인 광풍천인도가 일계 중원무사가 창안한 혈무도법에 패했다는 치욕도 있기 때문에 천인살막의 명예를 위해서도 반드시 오늘 패배는 갚아주어야 한다. 냉하상은 머리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인내하며 도치에게 질질 끌려가다가 바닥에 쓰려진다. 아무리 강철(鋼鐵)같은 의지(意志)를 지닌 냉하상이라도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쓰려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하이........하이.........꾀병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아파서 그래요.” 




냉하상은 자신도 모르게 애원(哀怨)하니 도치는 쓰려진 냉하상을 차가운 눈길로 바라본다. 겉으로 보기에 냉하상은 아무런 상처도 없다. 자신과의 대결에서 내상만 입은 모양다. 도치는 바닥에 쓰려진 냉하상의 상의를 잡아당겨 그녀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 냉하상은 아픈 중에서도 도치에게 풍기는 주향(酒香) 때문에 미간(眉間)을 찌푸린다. 도치는 아침부터 마신 술이 아직까지도 깨지 않았던 모양이다. 




“힘드냐?........아파 죽겠어? 그러기에 내가 전해주는 내공으로 치료를 했어야지. 왜 고집을 부려서 사서 고생을 해.........그러니까 내가 멍청한 년이라고 하지.”


“................”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또 한번 고집을 부리면 그때는 정말 개처럼 끌고 간다.” 




도치는 냉하상을 똑바로 앉힌 다음 등에 손을 대고 내공을 전해준다. 냉하상은 도치의 내공이 노도(怒濤)처럼 들어오자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죽는 한이 있어도 도치의 도움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또다시 고집을 부린다면 도치의 성격상 정말 개처럼 끌고 갈 것이다. 냉하상은 이를 악물고 도치의 내공을 받아들어 내상치료에 들어갔다. 도치는 냉하상이 내공을 일주천(내공이 한바퀴 회전)할 때까지 내공을 전해주다가 손을 거두고 냉하상을 바라보니 냉하상은 이제 고집을 부리지 않고 가부좌를 트고 앉아 내상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다. 




냉하상은 중원여인들과는 다르게 시원시원한 생김새와 은빛머리카락이 어울려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도치는 냉하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두근거리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하늘에 붕 떠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며 멍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도치는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냉하상은 악무룡을 죽이려 한 악독한 살수다. 그런 년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냉하상은 어느 정도 내상이 치료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낙 내상이 깊어 하루, 이틀에 완쾌될 상처는 아니지만 도치의 도움(?)으로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다. 도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냉하상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자신이 눈이 잘못된 모양이다. 냉하상이 입고 있는 옷은 자신이 토한 피에 엉망이 되었고 머리까락도 산발을 했다. 그런데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도치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냉하상의 어깨를 툭~ 친다.




“끝났으면.........가자.” 




도치의 차가운 말에 냉하상은 도치를 힐긋 바라보더니 전력을 다해 폐가(廢家)를 향해 달려간다. 조사의 의하면 도치의 경신법은 형편없다고 한다. 그에 비해 냉하상의 경신법은 현존무림에서 초일류에 속할 것이다. 비록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태로 펼치는 경신법도 일류에 속하니 경신법이 형편없는 도치가 쫓아오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것이다. 냉하상은 도치에게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신법은 느릴지 모르지만 도치의 도끼까지 느린 것은 아니다. 도치가 지금이라도 마음먹고 도끼를 던진다면 자신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그걸 잘 알면서도 냉하상이 전력을 다해 달리는 것은 이런 식으로라도 도치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살만하게 보군.......어라........뭐가 저렇게 빨라?” 




도치는 냉하상이 순식간에 멀어지자 자신도 다리에 내공을 집중하고 힘차게 출발했다. 혹시라도 냉하상을 놓치게 되면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니 냉하상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다리에 내공을 집중하고 경신술을 실천하니 단전에서 올라온 내공이 전신에 퍼지며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더니 어느 순간 앞서가던 냉하상을 따라잡았다. 냉하상은 순식간에 도치가 자신을 쫓아오자 깜짝 놀랐다. 자신들의 조사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뭘 봐~ 굼벵이처럼 미적거리지 말고 달리기나 해.” 




냉하상은 이상하다는 듯이 도치를 바라보다가 전력을 다해 달려보지만 도치는 너무나 느긋한 표정으로 자신과 보조를 맞추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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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영(死影)은 공기가 파동(波動)치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 폐가(廢家)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영은 누가 오는지 모르기 때문에 몸을 숨긴 상태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냉하상과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폐가(廢家)의 앞마당에 나타났다. 사영은 냉하상의 모습을 보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냉하상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은 온데간대 없고 머리는 미친년(?)처럼 산발을 했으며, 상의(上衣) 곳곳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냉하상은 철이든 이후 다른 사람 앞에서 절대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여자이길 포기하고 천인살막 막주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남들도 자신을 막주로만 보아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가 냉하상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평생 동안 막주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그도 나를 사랑한다면...........막주의 삶이 아닌 여자로써의 삶도 살아보고 싶다.........그때는 나의 가면(?)을 벗고 그에게 만큼은 여자가 되고 싶다.’




냉하상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냉하상이 겉으로는 강한척하지만 내면을 파고들면 여자로써의 삶을 동경(憧憬)하는 약한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냉하상은 자신을 감추고 있던 가면(?)을 벗어 벗어버렸다. 남에게 절대 보이지 않던 얼굴을 보인 것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타인에게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영은(死影) 숨을 죽이며 냉하상과 도치를 계속해서 지켜본다. 




“여기가 놈들이 도망친 곳이냐?” 




도치의 물음에 냉하상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거린다. 도치는 냉하상을 마당에 두고 폐가(廢家) 안으로 들어가 방안을 둘려보니 아직까지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 전까지 누군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탁자에 펼쳐진 종이에 자신이 머물고 있던 성안객점의 도면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냉하상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치는 방안을 둘려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의리(義理)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없는 놈들이군.........어떻게 동료를 버리고 도망칠 수 있는 거지........그것도 여자를 말이야.........더러운 새끼들.........죽을 놈의 새끼들........이런 새끼들을 살아있을 가치도 없어.” 




도치는 냉하상이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떠들며 냉하상의 겉으로 다가왔다. 냉하상은 놈들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 것이다. 




“이봐~ 놈들이 어디로 도망쳤지.” 


“몰라요.” 




도치는 냉하상의 짤막한 대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처음부터 성실(?)한 대답은 기대하지지도 않았지만 막상 모른다는 짤막한 대답을 듣고 보니 화가 나기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오는 것이다




“지랄을 한다!...........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 


“말을 못하는 걸보니 찔리는 모양이지. 우리 서로 힘 빼지 말자. 놈들이 어디로 갔지.” 




냉하상은 도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숙어고 있다. 도치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냉하상의 머리까락을 잡고 위로 번쩍 들어올리니.......도치보다 키가 작은 냉하상은 도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었다. 냉하상은 고통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도치의 손을 잡았다. 




“악~ 아파요.” 


“말했지! 서로 힘 빼지 말자고.......대머리 되기 전에 어디로 갔는지 말해.” 


“아........알았어요. 일단 이거부터 놓고 말해요.” 




냉하상이 고통 때문에 애원(?)하자 도치는 잡고 있던 머리카락을 놓아주었고, 바닥에 떨어진 냉하상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사영은 도치가 냉하상을 대하는 것을 보고 끓어오르는 분노(忿怒)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신이 모시는 냉하상이 모욕(侮辱)을 당하고 있다. 대충 상황을 보니 덩치 큰 사내는 혈무도부이며, 냉하상은 혈무도부의 포로가 된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포로가 되었다고 해도 천인살막의 막주인 냉하상을 저렇게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더구나 상대는 여자가 아니가? 사영은 끓어오르는 분노(忿怒)를 참지 못하고 손가락에 끼우고 있던 수라검를 도치를 향해 날렸다. 




“쐬아아아악~” 




도치는 공기의 파동(波動)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검은 물체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얼마 전의 도치였다면 신법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애초에 피할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이지 모르겠지만 냉하상과의 대결이후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경신법까지 놀라보게 빨라져서 암기를 피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도치는 몸을 날려 암기를 피하려다가 허리에 차고 있던 도끼로 암기를 쳐내려 했다. 자신이 암기를 피해버리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냉하상이 위험하다.




“깡~ 깡~ 깡~”


“퍽~ 퍽~” 


“빌어먹을........” 




도치가 8자루 수라검 중 6자루를 쳐냈지만 나머지 2자루 수라검은 도치의 가슴과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처음부터 피하거나 쳐내려 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으나 잠깐의 망설임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사영(死影)은 수라검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치며 다시 수라검을 뿌리고 도치를 향해 번개처럼 돌격한다. 도치는 또다시 암기가 날아오자 한 자루 도끼를 가슴 위로 던지니 도끼가 엄청난 속도로 도치와 냉하상의 주위를 회전하기 시작했다. 바로 혈무도법 절대방어초식인 혈망(血罔)이 펼쳐진 것이다. 




냉하상은 그림자만 보고도 도치를 암습한 자가 사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영(死影)은 사실 냉하상의 아버지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리에 키운 고수로........냉하상이 막주가 되기 전부터 냉하상의 그림자가 되어 그녀를 보호하는 일에만 모든 것을 받쳐온 사람이다. 아마 사영은 자신이 돌아오지 않자 이곳에 남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이 혈무도부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암습(暗襲)을 했을 것이다. 




다만 냉하상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치의 대응(對應)이다. 도치는 암기를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암기를 쳐내는 선택을 했다. 그때까지는 순간적인 판단착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도치는 사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뿐만 아니라 냉하상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그물을 만들었다. 혈망은 도끼를 빠르게 회전시켜 그물 같은 방어망을 만드는 초식으로 초식이 빠르고 촘촘하게 펼쳐야 자신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방어해야 할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그만큼 방어망이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치는 그럼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까지 보호하려 하고 있다. 




“땅!........깡~ 깡~ 깡~” 




사영은 수라검이 도치가 펼친 혈망을 뚫지 못하고 사방으로 튕겨나가자 팔목 속에 감추고 있던 연검(軟劍)을 꺼내 수라검과 충돌하며 생긴 작은 틈으로 파고들었다. 




도치는 백사(白蛇)처럼 꿈틀거리며 혈망을 뚫고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연검(軟劍)을 보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피하는 것이나 자신이 피해버리면 뒤쪽에 있는 냉하상이 위험하다. 도치는 혈망을 펼치고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남아있는 도끼를 잡은 손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혈파~” 




도치의 손에 있던 도끼가 무섭게 회전하며 사영의 연검(軟劍)을 향해 날아간다. 




“피.......피해.” 




도치의 뒤에 있던 냉하상은 도치의 도끼주위가 붉은 안개처럼 변해 사영을 향해 날아가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냉하상은 도치와 대결해 보았기 때문에는 혈파라는 초식이 주위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콰아아앙~” 


“크윽~” 


“음~” 




거대한 폭음과 함께 한 자루 도끼가 멀리 날아가는 모습과 사영이 비틀거리며 빠르게 물려나는 모습이 보인다. 도치는 한손으로 옆구리를 잡고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비록 심장은 비켜갔지만 사영의 연검(軟劍)이 뱃가죽을 핥고 지나가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다. 하지만 전신(戰神)이란 불리는 도치에게 이런 상처쯤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도치가 괴로워하는 것은 무리해서 혈망과 혈파을 동시에 사용하여 내공이 뒤틀려 버렸기 때문이다. 사영은 도치가 비틀거리자 다시 땅을 박차고 도치를 향해 돌격한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세(氣勢)다. 비록 자신도 부상을 당했지만 한번 승기(勝氣)를 잡은 이상 폭풍처럼 몰아 붙어야 한다. 사영의 연검(軟劍)이 혓바닥을 꿈틀거리며 도치의 자궁혈(목)을 향해 날아온다. 




냉하상이 보기에 도치는 핏덩이를 토하고 있으며, 온몸은 망신창이가 되어 사영의 검(劍)을 피할 힘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허리를 숙이고 있던 도치가 벌떡 일어나며 백사(白蛇)처럼 꿈틀거리는 사영의 검(劍)을 맨손으로 잡더니 나머지 손에 있던 도끼로 사영(死影)의 어깨를 내리 찍는다. 사영은 검(劍)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지만 검(劍)이 마친 단단한 바위틈에 끼어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자 검(劍)을 놓고 한바퀴 회전하더니 발끝으로 도치의 백회혈(머리)을 공격했다. 도치의 단순무식한 공격에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대처한 것이다. 도치는 철판교(鐵板橋-온 몸을 꼿꼿이 한 채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수법이다.)수법으로 사영(死影)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냉하상은 초초한 심정으로 사영과 도치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데 사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도치의 커다란 몸이 나무토막처럼 자신에게 쓰려지고 있다. 냉하상은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자신이 약간만 손을 쓰면 도치는 사영의 공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도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 냉하상은 손가락에 내공을 주입하여 도치의 신도(등)혈을 공격한다. 도치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사영을 위하는 마음이 켰기 때문이다.




도치는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끼고 몸을 회전하며 뇌려타곤(지랄병이 든 당나귀가 정신을 잃고 땅바닥을 마구 뒹군다는 뜻)의 수법으로 바닥을 구른다. 사영은 물구나무자세에서 다시 한바퀴 돌아 바닥을 구르고 있는 도치를 향해 떨어진다. 도치는 빠른 속도로 바닥을 굴려 사영의 공격을 피한 다음 벌떡 일어났다. 




“헉~ 헉~ 헉~ 개자식........죽어버린다.” 




도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성난 멧돼지처럼 도끼를 던지고 사영을 향해 돌격한다. 사영은 힘없이 날아오는 도끼를 쳐내고 도치의 제문혈(배에 있는 사혈)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손에 있던 검(劍)은 도치에게 빼앗겼고(?) 암기를 꺼낼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권(拳)으로 공격한 것이다. 




도치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주먹을 보고도 피하지 않고 도끼를 들고 있던 손을 말아 쥐고 사영의 주먹을 향해 뺏으며........사영에게 빼앗은 검(劍)으로 사영을 공격했다. 




“퍼어어억~” 


“윙이이이~” 




검(劍)이 백사(白蛇)처럼 요동을 치며 도치의 손등을 베어버리고 사영의 얼굴을 향해 날아간다. 사영의 검(劍)은 손목에 감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연검(軟劍)이라 검(劍)을 휘두르는 도치의 손등을 베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도치의 실력이 좋은지 모르겠지만 연검(軟劍)은 비틀거리는 사영의 미간(眉間)을 향해 날아갔다. 




사영은 설마 도치가 이렇게 무식한 공격을 해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도치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주먹과 주먹이 충돌하자 뼈마디가 부러지며 비틀거렸고, 갑자기 날아온 검의 손잡이가 미간을 강타(强打)하자 정신이 멍해졌다. 만일 도치가 검(劍)날을 잡지 않고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면 검(劍)의 손잡이 대신 검신(檢身)이 사영의 머리를 파고들었을 것이다. 




도치는 사영이 비틀거리자 사영의 어깨를 잡아 자신에게 잡아당기며 무릎으로 허리가 굽혀진 사영의 얼굴을 찍어버리니 사영의 몸이 순간적으로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도치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도치의 비명에 가까운 기합소리와 더불어 공중으로 튀어 오른 사영이 짐짝처럼 바닥에 떨어지더니 다시 공중으로 솟구쳐 반대편 바닥에 떨어진다. 도치가 공중으로 솟구친 사영의 양쪽 다리를 잡고 무지막지한 힘으로 패대기를 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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