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야사 - 12부
본문
12장 제왕성을 향하여
사공혜와 고천성은 모옥앞 온천옆의 냉천앞에 서 있었다. 사공혜는 이것이 참 신기했다. 온천 옆에 있는 차가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냉천 ……강호에 이런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들어보지 못했다.
‘참, 신기해요. 어떻게 따뜻한 온천옆에 이렇듯 뼈속까지 시린 냉천이 있을 수 있죠?’
음 그건 좀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혜매 일단 눈을 감아봐’
사공혜는 눈을 감으려다가 아까의 일이 생각나 도끼 눈을 떴다.
‘이 색마야, 계약금은 아까 줬잖아. 또 뭔 짓을 하려고 눈을 감으래? 아무튼 이 인간은 틈만 주면 이상한 짓을 하려한단 말야’ 말을 하면서도 혜아는 아까의 일이 생각나 얼굴이 붉어졌디. 그냥 모른 척 눈 감아 줄걸 그랬나? 굉장히 좋았는데 하며…..
‘너무 오바하지 말고 잘들어. 이 냉천이 불회곡의 입구이자 출구야, 그리고 내가 아무리 밝혀도 그렇지 뽀뽀만 하는 건 별로 취미 없네요, 몸으로 응응응 하는 거면 모를까’
사공혜는 이제 응응응 소리를 귀가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이정도 일로는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에구 그놈의 응응응, 나중에 오라버니는 응응응 밝히다가 죽을거야…… 그런데 정말 여기가 출구라면 어떻게 나가요? 물도 이렇게 찬대’
‘그러니까 눈을 감으라고 한거야, 차라리 안보이면 무섭기나 덜하잖아,나야 뭐 일상생활이지만……’
사공혜는 어쩔수 없이 눈을 감았다.
풍덩,꺅, 사공혜는 몸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자 고성천의 목을 부러져라 꼭 안았다. 죽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흡 사공혜의
숨이 가빠지는 기미가 보이자 고천성은 사공혜의 입에 입을 맞추고 호흡을 불어넣어 주기 시작했다. 뼛속까지 느껴지는 한기에 정신이 없는 사공혜는.사공혜의 사지는 마치 문어의 흡반처럼 고천성의 몸을 꼭 감아안았다.
물 밖으로 나왔으나 사공혜는 아직도 고천성의 입에서 입을 때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천성은 전음으로 말했다.
‘혜매, 정신차리고,이제눈을떠봐’
고천성의 말에 정신을 차린 사공혜는 ‘푸’하고 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온몸에 느껴지는 한기에 그의 몸을 꼭 끌어안은 채로 눈을 뜨자, 자신의 눈앞엔 천성의 두 눈동자가 부드럽게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죽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사공혜는 이내 자신이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자각을 하며, 그의 몸을 벗어나려고 두 손을 그의 가슴을 살며시 밀어내려 했다.
순간”꺅, 꺄악, 꺄악’ 사공혜는 이내 비명을 지르며 눈을 꼭 감고 그의 몸을 더 꼭 끌어 않았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몸의 감각들이 돌아오다 보니 자신의 발에 마땅히 디뎌져야 할 땅이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자신과 그의 몸은 강풍을 타고 회전하며 하늘로 올라 가는 것 아닌가?
‘혜매, 진정해…… 자 마음을 가라 앉히고 바람에 몸을 맡기라고…..’
혜매는 그래도 안심을 못하고 가슴을 거의 어깨에 파 뭍은 채, 덜,덜,덜 떨었다.
바람은 점점 더 강해지고 둘의 몸은 강한 돌풍에 휘말리며 순식간에 절곡 위까지 치달아 날았다.
순간 ‘차앗’하는 기합소리가 들리고 사공혜는 자신의 몸이 무엇인가에 착지하는 반탄력을 느꼈다.
‘혜매 이제 눈을 떠도 돼’
혜매는 눈을 살짝 떠 주위를 확인한 후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슴의 탄력 있는게 느낌이 참 좋은데 헤매?, 으악~~’
혜아는 자신이 아직도 그의 몸을 꼭 안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후 그의 느물거리는 말소리를 듣자 그이 가슴을 세차게 꼬집었다.
‘좌우지간 인간이 어떻게 그쪽으로만 생각을 할수 있냐? 이 변태야!!!! ‘
사공혜는 그의 품을 벗어나 주위를 둘러 보았다.
‘불회곡’ 이라는 석비가 보였고, 자신이 며칠전 절망에 차 왔던 그 골짜기의 정상에 다시 올라와 있는 것을 알았다. 절망 과 공포, 그리고 분노의 심정을 안고 달려왔던 곳, 한가닥 실낱 같은 희망에 목숨을 걸고 고독과 공포와 싸우며 달려왔던 곳, 불회곡……
그러나 이제는 그의 존재감이 그녀의 그런 고독과 공포를 잊게 하였다.
사공혜는 착찹한 심정으로 불회곡 이라 쓰여진 석비를 바라보았다.
그런 사공혜의 심사를 이해 하는듯, 고천성은 천천히 말을건넸다.
‘여기는 우리 사부가 은거하기 위해 만들면서, 귀찮은 사람들을 쫓아 내려고 강호에 유언비어를 퍼뜨린거야. 돌아오지 못하는 계곡이라고’
지금은 없지만 실제로 이전엔 사부가 이 계곡 주위에 절진을 펼쳐놔서 이곳에 들어오는 자들은 다 길을 잃고 헤메이다가 엉뚱한 산의 지류로 가거나 혹은 환영에 시달리다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일반인이건 무림인이건 오기를 꺼려했던 곳이 되어갔고, 후에 사부는 애꿎은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게 미안해서 절진을 거두었어.’
하지만 절진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계곡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돌풍이거든, 저 돌풍에 휩쓸리면 일반인들은 다시 튕겨나와 산 어딘가에 처박히지만, 무림인 이란 것들은 괜히 무공으로 버티네 하다가 다 절벽에 부딛혀 피곤죽이 되곤 해…… 그 이후로 여기는 정말로 불회곡이 되었지.
‘아, 그랬군요. 그런데 우린 왜 멀쩡하게 나왔죠?’
‘그건 내가 내공을 일으켜 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
‘이건 절대 비밀인데 혜매는 남이 아니니까 이야기 해줄께. 여기서 계곡 밑으로 내려갈땐, 천근추의 신법으로 단번에 계곡밑의 호수에 처박히도록 해야 해. 한마디로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죽지못해 환장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지. 천근추의 수법으로 뛰어내리면 오히려 돌풍의 핵인 중심으로 들어가 온몸이 그자리에서 회전하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밑의 호수에 처박힌다고. 그리고 그렇게 처박히면 바로 모옥의 한담으로 연결된 수로로 인해 모옥 앞으로 튕겨 나오는 거고…..
반대로 모옥에서 들어갈때는 혜매도 알다시피 있는 힘을 다해서 헤엄을쳐서 호수로 나가야되, 그러면 거기가 또 돌풍이 시작되는 곳이거든, 거기서는 몸을 물위로 솟구친 다음에 온몸의 힘을 빼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거야, 그러면 마치 돌풍에 몸이 날아가듯이 바람의 안쪽에서 서서히 바깥쪽으로 몸이 날아가면서 돌풍의 꼭데기까지 올라가는 거야, 돌풍은 계곡의 정상에 오르면 사그러지고 그때 일학충소의 신법을 펼쳐 몸을 떨쳐내면 돌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과연 귀왕의 안배는 대단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자신을 넘어뜨리려는 힘에 저항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저항본능을 버리고 흐름에 맡겨야지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계곡입구, 이런 것은 귀왕과 같은 식견과 지혜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안배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대단하군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이 돌풍은 어떻게 생성되었죠? 그리고 곡안에 온탕과 냉탕이 같이 있는 것도 그렇구요……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음, 원래 이곳은 말이야 태양열지 라고 해. 몇 백년 전에 활동을 멈춘 화산의 분화구이지만 이곳의 곡저엔 어마어마한 용암이 들끓고 있다고’
‘사부는 한가지 극양의 무공을 연성하기 위해서 이곳을 은거지로 택했어. 극양의 무공을 익히는데 태양열지 만큼 좋은 곳은 없거든.근데 문제는 워낙 익히기 까다로운 극양의 무공인지라, 무공을 익히면서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지기 쉽거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북해에서만 난다는 태음신주를 이곳에 가져오기로 한거야. 혹시 양기가 치우쳐 주화입마에 빠질 때, 이곳 극음의 호수에서 양기를 중화해야 하거든. 모든 음의 정화라고도 하는, 북해의 만년설 속에 몇천년간 얼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의 정화를 흡수해 지극히 강한 음의 기운을 띤다는 태음신주……, 그것을 호수의 아래에 놓으면서 이곳에서는 바닥의 태양열지와 호수위의 태음신주가 일으키는 찬기운과 뜨거운 기운의 충돌로 인해 자연스럽게 돌풍이 형성된거야……’
‘우리 노털이 이것까지 계산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공혜는 그의 말을 들으며 다시한번 귀왕산인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 치사한 노털이 100년전의 혈사에 참여한 거라구. 그당시 태음신주가 제왕성에 있었거든, 태음신주가 북해의 보물이긴 해도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돌덩어리 하나일 뿐인데, 제왕성주로서 그 당시 귀왕산인과 같은 사람의 조력을 얻는 것은 이득이 많이 남는 장사거든……’
‘그나저나 우리도 이만 가야지?’ 말을 하다가 사공혜의 모습을 보니 물에빠진 생쥐꼴이 아닌가?
‘그 모습으론 가기가 좀 힘들겠다. 자 내손을 잡아’
사공혜도 자신이 지금 온몸이 물에 젖어 꼴이 말이 아닌 것을 알았다.
‘자, 내손을 잡고 내가 전해 주는 진기를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
사공혜는 잡은 손으로부터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한 강한 기운을 느꼈다.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온몸의 옷은 바짝 말랐다.
‘이것이 그가 말한 양강의 무공일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온몸의 한기가 씻은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우리가 빠져나온 한담의 한기는 너무나 지독해서 만약 태양열지가 아니었다면 벌써 호수는 얼음바닥이 되었을거야. 그런 물에 빠진후 바로 몸을 말리지 않으면 나중에 풍한증에 걸려 고생한다고…..’
이 사람, 처음엔 경박하게만 여겨졌지만,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이 사람,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내 일생을 맡길만한 사람일까? 하고 사공혜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 가자구’
고천성은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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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주모자
안락한 의자에 편안히 앉아 있는 중년인, 그는 지금 막 전서구가 놓고간 첩보들을 읽고 있었다.
첩보 1 특급
유령삼마의 시신 해부 결과, 강력한 장력에 의해 늑골이 으스러짐. 사용한 무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령합격장임.
첩보 2 특급
불회곡의 수색대는 모두 전멸함. 불회곡에서 부는 강한 용권풍으로 인해 모두 피떡이 된채 사방에 흩어진 시체로 발견됨. 불회곡 수색은 현재 불가능한 것으로 사료됨.
첩보 3 특급
사공혜 와 귀왕전인 불회곡 정상에 등장함. 현재 남쪽으로 이동 중. 이동 속도는 마치 산보하듯이 느린 속도로 움직임. 놈의 무공수위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근접 감시가 불가능함.
‘음, 귀왕의 전인이라, 이거 참 흥미롭게 되었군, 그렇지 백년 전의 복수를 하려면 귀왕도 나와야 겠지…… 이제 좀 더 재미있게 되었어.’
중년인은 안락의자에 몸을 푹 담그며 생각에 잠겼다.
지긋이 눈을 감고 있던 중년인은 감았던 눈을 뜨며, 나직히 읇조렸다.
‘환사, 놈의 무공실력, 사용하는 무기 및 무공의 종류, 그리고 놈의 배경을 조사해 보도록 해라. 귀왕과 놈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놓치지 말고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환사라 불리운 흑의인
마치 어두움의 일부분인듯 한쪽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뭍혀있던 검은 인영이 소리없이 문 밖으로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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