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19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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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199(칠백년의 약속)-32
현원자는 갈림길에서 손에 들고 있는 서찰을 바라본다. 서찰에는 사호팔랑이 숨어 있다는 폐가(廢家)를 찾아가는 길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현원자는 서찰과 갈림길에 위치한 건물들을 비교해보다가 다시 길을 재촉한다. 누가 보냈으며 무슨 목적으로 보냈는지 모른다. 서찰에 사호팔랑이 폐가에 숨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과 사호팔랑이 앙숙(怏宿)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는 놈이 보냈을 것이라는 것이다. 현원자는 사호팔랑이 숨어 있다는 폐가(廢家)가 보이자 달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본 다음 폐가(廢家)가 잘 보이는 나무위로 올라가 폐가(廢家)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밤이 깊은 시간이라 여기저기 부셔지고 허름한 건물들만 보일뿐 사람의 혼적은 찾아볼 수없다. 현원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제운종(무당의 신법)으로 나뭇가지를 차며 날아올라 반쯤 무너진 폐가(廢家)의 담에 사뿐히 착지한 다음 호흡을 멈추고 폐가(廢家)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니 미약하게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 당장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폐가(廢家)지만 분명이 누군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현원자가 더욱 안쪽 깊이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마당과 건물들이 깔끔하게 청소되고 방에서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현원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다시 밖으로 나온다. 폐가(廢家)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들이 사호팔랑이라는 보장은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방문을 열고 확인하고 싶지만 폐가(廢家)에 있는 놈들이 사호팔랑이 확실하다면 자신이 위험하기 때문에 다시 밖으로 나온 것이다. 막말로 혼자서는 마수마랑 한명도 감당하기 힘든 판에 사호팔랑이 모두 있다고 생각해보자. 혼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현원자는 폐가(廢家)가 한눈에 보이는 나무위에 올라가 폐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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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에게도 마양의 서찰이 전해졌다. 란은 희미한 탁자에 촛불하나만 밝히고 서찰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보냈을까? 어떤 목적으로 보냈을까? 사호팔랑이 림산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조금 전에 무경과 풍운을 만나지 않았는가? 란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자신이 존경하며 사랑하는 아가씨를 만났다. 아가씨는 예상대로 마수마랑의 여인이 되었으며, 칠음절맥을 치료하여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예전의 무경은 죽었고 지금 있는 무경은 새롭게 태어났어.......나는 운랑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야. 운랑께서 주신 삶이니 운랑을 위해서 살 거야. 무슨 말이지 알지.’
아가씨의 말이 귀가에 윙윙거린다. 란은 팔을 탁자에 올려 머리를 받친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 터질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모르겠다. 란은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서찰을 촛불로 가져가니 서찰에 불이 붙는다. 란은 타들어가는 서찰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사호팔랑이 아니라 배화교무리를 섬멸(殲滅)하라는 명령을 받았어. 지금은 그 생각만 하는 거야.”
란은 서찰이 타고 남은 재를 털어버리고 침상에 누웠다. 최근에 들어와 따로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어릴 적부터 무경과는 마치 한 몸처럼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밝고 아름다운 무경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향상 병마(病魔)에 찌들어 힘겨워하거나,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메마른 무경의 모습만 보아왔는데, 조금 전에 만난 무경은 건강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너무나 밝고 명령해 보였다. 란은 아가씨의 행복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마수마랑이 아무리 밉고 싫어도 아가씨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아가씨에게 새로운 삶을 준 사람이기에, 그가 없으면 아가씨가 슬퍼하기에 차마 사호팔랑을 공격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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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에 있던 현원자는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다가 눈을 돌려보니 폐가(廢家)의 앞마당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현원자는 재빨리 눈에 내공을 주입하고 그림자들을 살펴보니 폐가(廢家)의 앞마당을 어슬렁거리는 남녀가 보인다. 바로 이막수와 유미림이 나타난 것이다. 현원자는 입술이 타는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적시고 이막수와 유미림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한 마리 제비처럼 나뭇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무림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현원자는 멀리 무림군의 군막들이 보이자 홍인의 군막으로 달려갔다.
“홍인님.........홍인님.”
현원자는 군막을 지키는 경비무사들을 뒤로하고 홍인의 군막으로 들어가 보니 이제 막 침상에서 일어난 홍인이 졸린 눈으로 현원자를 바라본다.
“아침부터 무슨 일입니까?”
“사호팔랑이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당장 무사들을 집합시키세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무사들을 집합시키라니요?”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사호팔랑이 숨어 있어요. 그러니까 놈들이 눈치체고 도망치기 전에 공격하자는 말입니다.”
“사호팔랑이요?..........우린 배화교잔당을 섬멸(殲滅)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전에 사호팔랑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까? 지금이 기회입니다.”
홍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현원자를 바라본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새벽부터 찾아와서 무사들을 집합시키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말씀인지 정확하게 말씀해 보세요.”
현원자는 답답하다는 식으로 가슴을 치더니 크게 숨을 몰아쉰다.
“휴~ 잘 들으세요. 이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사호팔랑이 숨어 있습니다. 제가 방금 직접 확인하고 왔으니 확실해요. 그러니까 놈들이 도망치기 전에 공격하자는 말입니다.”
“사호팔랑이 확실해요?”
“제 눈으로 확인하고 왔다고 했습니다.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현원자님은 놈들이 있는 곳을 어떻게 아셨죠?”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어서 빨리 놈들을 공격해야 한다는 겁니다.”
“흠~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현원자님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배화교잔당을 섬멸(殲滅)하라는 명령 받았어요. 사호팔랑은 문제는 차후 문제에요.”
“정말 답답하네?...........좋아요. 홍인님이 나서지 않겠다면 저 혼자라도 나서겠습니다.”
현원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흥분하지 마시고 제 이야기부터 들어보세요. 놈들을 잡아들이는 것은 좋아요. 당연히 잡아들어야죠.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지금은 배화교잔당을........”
홍인의 말을 듣고 있던 현원자는 홍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난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일단 제가 지휘하는 좌군을 데려가겠습니다. 나머지 일은 홍인님께서 알아서 하세요.”
현원자는 그 말을 끝으로 나가버린다.
“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홍인은 부라부라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보니 현원자는 자신이 지휘하는 좌군들의 군막을 돌아다니며 무사들을 집합시키고 있었다. 무림군은 홍인을 대장으로 좌군은 현원자가 지휘하고 우군은 화원명이 지휘하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현원자가 지휘하는 좌군은 화산과 개방을 제외한 나머지 구파(九派)로 이루어지고 우군은 화산과 개방 그리고 칠대세가의 무사들로 이루어 있다. 현원자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장먼저 무당의 무사들이 집합하고 아미와 청성 무사들 순서대로 집합하고 있다. 홍인은 무사들을 독려(督勵)하고 있는 현원자에게 달려갔다.
“정말 맹의 명령을 거역(拒逆)하고 사호팔랑을 공격하시겠다는 겁니까? 나중에 잘못되면 어떻게 하시려고 하세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벌을 받아도 제가 받고 상을 받아도 제가 받겠습니다. 그러니까 홍인님은 그냥 보기나 하세요...........뭐해. 시간이 없다. 빨리 빨리 집합해.”
현원자는 홍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무사들을 독려(督勵)하며 집합상태를 점검한다. 화원명은 밖이 소란하자 옷을 입고 나와 보니 구파의 무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화원명은 허겁지겁 무기를 챙겨 달려가는 곤륜의 무사를 붙잡았다.
“이봐~ 무슨 일이야. 비상이라도 걸렸어!”
“현원자님이 집합하라고 하셔서 달려가는 길입니다.”
“현원자가 집합하라고 했다고.........무슨 일이지?”
화원명은 무사를 놓아주고 현원자를 찾아보았다. 현원자는 화산를 제외한 무사들이 집합하자 무사들의 무장상태를 점검하고 곧바로 풍운일행이 숨어있는 폐가(廢家)를 향해 출발했다. 화원명은 현원자를 필두(筆頭)로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무사들을 바라보다가 홍인을 찾아갔다.
“홍인스님........무슨 일이죠. 현원자가 무사를 이끌고 어딜 가는 겁니까?”
화원명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멀어지는 무사들을 바라보고 있는 홍인에게 다가가서 물어본다.
“현원자님께서 사호팔랑을 치겠다고 갔어요.”
“예? 사호팔랑이요? 홍인님께서 허락하신 겁니까?”
“당연히 안 된다고 했죠.”
“그럼! 홍인님 허락도 없이 지기 멋대로 무사들을 끌고 갔단 말입니까?”
“쩝~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하더군요.”
“허참~ 그게 말이 됩니까? 누가 뭐라도 대장은 홍인님 입니다. 명령을 해도 홍인님이 하시고, 책임을 져도 홍인님이 지셔야죠. 막말로 일이 잘못되면 현원자님께 책임을 물을까요? 아닙니다. 무림군의 수장인 홍인님께 책임을 물을 겁니다. 그게 대장 아닙니까?”
화원명의 말에 홍인이 쓰게 웃는다. 화원명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화원명님.........나머지 무사들도 모두 집합시키세요. 저는 군사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게요. 현원자를 쫓아가시게요.”
“어쩔 수없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밀어 붙어야죠.”
홍인의 말에 화원명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홍인의 말은 현원자와 함께 사호팔랑을 공격하겠다는 말이다. 물론 현원자 일행이 이미 출발했으니 어쩔 수없이 현원자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홍인이었다면 처음부터 일이 이렇게 되도록 방치(放置)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원명은 홍인의 명령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없이 무사들을 집합시켰다. 홍인은 자신의 군막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란을 발견했다.
“란님.......현원자님이 사호팔랑을 공격하겠다고 출발했습니다.”
“저도 들었어요. 왜 말리시지 않으셨죠. 우린 배화교잔당을 섬멸(殲滅)하라는 명령을 받았잖아요.”
“당연히 말렸죠. 하지만 제 말도 듣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휴~ 홍인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현원자님를 내버려 두실 겁니까?”
“이미 작정하고 출발했으니 돌아오라고 해도 듣지 않을 겁니다. 이제 방법이 없어요.”
“무슨 말씀이지 알겠습니다. 이미 엎지르진 물이라는 말씀이죠. 그럼 빨리 무사들을 집합시키세요. 우리도 따라가야죠.”
홍인일행은 화산과 개방 그리고 칠대세가의 무사들이 집합하자 서둘러 현원자일행을 쫓아갔다.
폐가(廢家)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지붕에 한 사내가 엎드려 있었다. 바로 폐가(廢家)를 감시하고 있던 배화교 시안의 무사다. 그는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무림군이 달려오자 피식 웃으며 폐가(廢家)와 무림군을 번갈아 바라본다. 어제 밤부터 정체를 알 수없는 사내가 폐가(廢家)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무림군이 오고 있다. 아마도 마양이 무림군에 정보를 흘린 모양이다.
현원자는 폐가(廢家)가 가까워지자 무사들을 정지시켰다.
“모두 활과 불화살을 준비하라.”
현원자의 명령에 무사들은 활과 화살을 꺼내고 좌우로 정렬한다.
“저기 보이는 폐가(廢家)에 사호팔랑이 숨어 있다. 일단 놈들이 눈치체지 못하도록 포위한 다음 한번에 공격한다. 아미파는 뒤쪽을 포위하고, 곤륜은 좌로, 청성은 우로 포위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나를 따르라.”
현원자의 명령이 끝나자 무사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폐가(廢家)를 포위하고 활을 준비한다. 현원자는 무사들이 모든 준비를 끝내자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고, 무사들은 화살에 불을 붙인다.
“발사하라.”
“슝~ 슝~ 슝~ 슝~”
새벽이 밝아오는 하늘에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엄청난 숫자의 불화살이 십이사가 숨어 있는 폐가(廢家)를 향해 날아간다.
란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폐가(廢家)로 돌아온 풍운과 무경은 무척이나 피곤했던지 새벽이 밝아도 단잠에 빠져 있었다. 풍운은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소리가 들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니 엄청난 수의 불화살이 폐가(廢家)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이게 뭐야. 불화살이잖아”
풍운은 옷을 걸칠 생각도 못하고 침상으로 달려가 잠든 무경을 안고 밖으로 달려 나왔다.
“모두 일어나.......적(敵)이 나타났다.”
풍운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랫배에 기(氣)를 주입하고 사자후를 터트리니 아직까지 잠들어 있던 나머지 십이사들도 잠에서 깨어났다.
“일사님..........무슨 일이죠.”
가장 먼저 튀어나온 사람은 새벽부터 깨어있던 있던 이막수와 유미림이다.
“조심해요.”
풍운은 한 팔로 무경을 잡은 상태에서 나머지 팔에 수라기를 불어넣어 하늘을 향해 장(掌)을 뿌리니 자신과 이막수를 향해 떨어지던 불화살이 사방으로 튀겨나간다.
“퍽~ 퍽~ 퍽~ 퍽~”
폐가(廢家)의 지붕과 기둥 등에 불화살이 꽂히며 폐가(廢家)가 불타기 시작한다.
“운랑........무슨 일이죠.”
풍운의 품에 안겨있던 무경이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적(敵)이 나타났어. 일단 무경은 이사님께 함께 있어. 나는 도치와 무룡을 구해올게..........이사님.........무경을 부탁해요.”
풍운은 재빨리 무경을 이막수의 겉으로 데려간 다음 불타기 시작하는 건물로 들어갔다. 도치와 악무룡도 풍운의 사자후를 듣고 침상에서 일어났다. 비록 부상이 심하기는 하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쾅~”
문이 부셔지며 속옷차림의 풍운이 들어온다.
“둘 다 무사하구나. 다행이다.”
“무슨 일입니까?”
“설명할 시간 없어.”
풍운은 도치와 악무룡을 양쪽 옆구리에 끼더니 건물을 빠져나왔다.
“일사님........무림군입니다. 놈들이 폐가(廢家)를 완전히 포위했어요.”
풍운이 도치와 악무룡을 안고 뛰쳐나오자 금막비가 유성우를 날려 풍운일행을 향해 떨어지는 화살들을 쳐내며 말한다. 다행이 풍운의 사자후를 듣고 모두들 밖으로 뛰쳐나온 모양이다.
“모두들 무사하군요. 금막비님과 마수님은 도치와 악무룡을 보호하세요.”
풍운은 마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확인한 다음 도치와 악무룡을 금막비와 마수에게 넘기고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쏴라. 놈들에게 화살을 퍼부어.”
현원자의 명령에 폐가(廢家)을 포위한 무사들이 마당에 모여 있는 사호팔랑을 향해 불화살을 쏘지만 대부분의 화살은 사호팔랑에게 날아가기도 전에 그들이 쳐낸 장(掌)이나 검(劍)에 사방으로 튕겨나간다. 현원자의 눈에 마수마랑으로 보이는 놈이 하늘로 솟구친다.
“저놈이 마수마랑이다. 쏴라.”
도치일행을 향해 날아가던 화살들이 이번에는 하늘로 솟구치는 풍운을 향해 날아간다. 풍운은 차가운 얼굴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화살을 확인하더니 수라기(修羅氣)를 끌어올려 양팔에 몰아넣었다.
“수라마령신공 인(引-끌다, 도(挑-휘어지다.)”
풍운의 손바닥에서 무형(無形), 무음(無音)의 기(氣)가 불화살들을 향해 날아가자 화살들이 마치 자석에 끌리는 쇳덩이처럼 한곳으로 모여들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무림군을 향해 날아간다. 풍운이 수라마령시공의 인결로 불화살을 끌어 모아 도결로 무림군을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뭐야. 이런 빌어먹을.......피해. 욱~”
오른쪽을 포위하고 있던 아미파 무사들은 자신들이 쏜 불화살들이 날아갈 때의 속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되돌아오자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어깨와 가슴 등에 화살을 맞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살려줘~ 옷에 불이 붙었어.”
무사 한명이 상의에 불이 붙자 바닥을 구르며 처절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주위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이 붙여 뒹굴고 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원자는 순식간에 오른쪽 포위망이 허물어지자 이를 악물고 청명검을 뽑아 검(劍)에 내공을 주입하니 청명검이 살기를 토하며 하얀빛을 뿌린다. 처음부터 전력(全力)을 다하려는 모양이다.
“차얍~ 태극혜검.”
현원자의 청명검이 동근 원을 그리자 수많은 검영(劍影)들이 피어나 공중으로 솟구친 풍운을 향해 날아간다. 풍운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영(劍影)들을 보고,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이 현원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원자와 여러 번 싸워보았기 때문에 검영(劍影)들이 날아오는 형태만 보고도 태극혜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운은 검영(劍影)들을 무시하고 마치 유영(遊泳)하듯 공중을 한바퀴 돌며 폐가(廢家)주위를 돌아보더니 마치 눈을 달린 것처럼 자신을 쫓아오는 검영(劍影)을 향해 장(掌)을 날렸다.
“수라마령신공 벽(劈-쪼개다)”
“퍼어어엉~”
궁중에서 검영(劍影)과 장(掌)이 충돌하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전해진다. 풍운은 현원자의 검영(劍影)을 날려버리고 일행이 모여 있는 마당으로 착지했다.
“무림군이 확실합니다. 현원자가 지휘하는 구파의 무사들이에요.”
“현원자가 어떻게 알고 공격하죠?”
풍운의 말에 이막수가 알 수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무림군은 어제 도착했으며 자신들은 무림군이 도착하기 전에 객점을 빠져나와 이곳으로 왔다. 혹시 무림군이 전부터 림산에 첩자를 심어놓고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었다면 말이 된다. 하지만 그것도 설득력이 약하다. 객점에서 이곳으로 이동할 때, 풍운과 자신이 미행하는 사람이 없는지 철저하게 점검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풍운과 자신의 이목(耳目)을 속이고 이곳까지 미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다.
“현재 림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미줄처럼 엉켜있어요. 무림군이 아니라도 우릴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다는 거죠.”
“물론 그렇지만 저희가 이곳으로 이동할 때는 미행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이후 발견했을 수도 있죠.”
“둘 다 그만하세요. 그건 나중에 따져도 됩니다.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해요.”
풍운은 이막수와 무경이 따지고 있자 그들의 말을 자른다. 지금은 무림군의 포위망을 뚫고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하기 때문이다.
현원자는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쳐내고 다시 일행에게 돌아간 마수마랑을 보며 이를 갈았다. 도대체 말이 되질 않는다. 어떻게 놈은 볼 때마다 더욱 강해진단 말인가? 저번에 풍랑채에서 상대했던 마수마랑도 강했지만 최소한 자신의 공격을 이렇게 가볍게 쳐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마수마랑은 자신의 공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간단한 손짓만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고 일행에게 돌아갔다.
“빠드득...........개자식...........오늘은 반드시 죽인다. 쏴라...........놈들이 지칠 때까지 멈추지 말고 계속 쏴~”
현원자의 명령에 다시 수많은 화살이 풍운일행을 향해 날아간다.
“위이이이잉~”
“파~ 파~ 파~ 파~”
“쉬이익~”
무섭게 회전하는 원반이 풍운일행의 머리 위를 선회(旋回)하며 화살들을 쳐내고, 두 자루 단검이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화살들을 튕겨낸다. 금막비의 유성우와 이막수의 단검이다.
“끙~ 몸도 아픈데 빌어먹을 자식들까지 귀찮게 구는군. 일사님.........이거 받으세요.”
금막비의 부축을 받고 있던 악무룡이 품속에서 벽력탄을 꺼내 풍운에게 내밀었다.
“벽력탄이잖아. 그걸로 뭐하라고 주는 거야.”
“죽지 못해 안달하는 놈들을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리세요.”
“됐어. 다시 집어넣어. 아무리 미운 놈들이지만 벽력탄으로 날려버릴 수는 없잖아.”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저놈들은 우릴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데.......그냥 이대로 죽자는 말씀입니까?”
“저들 중에는 벽력세가 사람들도 있고 사천당가 사람들도 있어. 또한 제갈세가 사람들도 있을 거야. 너를 비롯한 당령과 귀왕사영 그리고 무경과 연관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야. 물론 우리가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약간의 희생이 따를 거야. 그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사생결단(死生決斷)을 보자는 식으로 저들을 공격하지는 말자. 우리가 저들을 공격하다면 우리도 또 같은 놈이 되잖아. 무슨 말이지 알지”
“모르겠다. 일사님 뜻대로 하세요.”
악무룡은 벽력탄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풍운의 말대로 무림군 중에는 자신의 형이나 동생이 끼여 있을 수도 있으며, 당령이나 귀왕사영의 친구나 친척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제갈무경과 연관된 사람들도 섞어 있을 것이다. 다들 각자의 사정 때문에 가문을 버리고 이곳에 있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자신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자신을 키워주었던 가문의 사람들이란 말이다. 막말로 배다른 가족이지만 형과 동생을 죽일 수는 없지 않는가? 그건 당령과 귀왕사영 그리고 제갈무경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이막수님은 오른쪽, 사우님이 왼쪽을 맡아주세요. 그리고 마수님과 금막비님은 도치와 악무룡을 맡아주시고 나머지 분들은 후방을 맡아주세요.”
“운랑........어디로 가실 거죠. 먼저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야죠.”
풍운일행이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현원자는 무사들에게 신호를 보내 활을 버리고 무기(武器)를 들라고 명령했다. 화살이 통하지 않으니 쪽수로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놈들이 강하다고 하지만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모두 돌격(突擊)하라. 놈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돌격(突擊)”
“와아아~ 쳐라...........동료들의 원수를 갚자.”
현원자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폐가(廢家)을 포위하고 있던 무사들이 한번에 풍운일행을 향해 돌격한다. 풍운은 수라기(修羅氣)을 극성까지 끌어올려 양팔에 몰아넣었다. 시간을 끌면 희생자(犧牲者)만 많아질 것이다. 단번에 포위망을 뚫어야 한다.
“모두 준비하세요. 단번에 포위망을 뚫고 림산을 벗어납니다.”
풍운이 선두로 치고 나가며 말하자 나머지 일행도 삼각형의 진형을 이루고 풍운의 뒤를 따른다. 풍운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현원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수라마령신공..........벽파(劈破)~”
풍운의 양손에서 무형, 무색, 무음의 강맹한 기(氣)가 현원자일행을 향해 날아간다. 풍운의 수라기와 수라마령신공이 극성에 이르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엄청난 힘의 기(氣)의 덩어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현원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엄청난 힘을 느끼고 청명검을 한바퀴 돌려 검막(劍幕)을 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악~”
엄청난 폭음(爆音)소리와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나며 풍운일행에게 돌격(突擊)하던 무사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극마지경에 이른 풍운의 수라마령신공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의 무공이었던 것이다.
현원자의 뒤를 따라온 홍인과 화원명이 엄청난 폭음과 무사들의 함성소리를 들었다.
“홍인님.........벌써 시작한 모양입니다.”
“서둘러야겠네요...........란님..........저희들 먼저 가겠습니다. 란님은 무사들이 이끌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먼저 가세요.”
홍인과 화원명은 란과 무사들보다 먼저 폭음소리가 들리는 폐가(廢家)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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