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미인(月下美人) -무림편- - 프롤로그 7
본문
섬서성(陝西省) 화음현(華陰縣)
천길 낭떠러지가 병풍처럼 이어진 계곡과 울창한 수림(樹林)을 자랑하는 이곳은, 바로 도문의 정종(正宗)이라 불리는 화산파의 근거지이다. 화산은 중원오악(中原五嶽)의 하나로 그 중 서악(西嶽)에 해당되며 진령산맥(秦嶺山脈)의 북쪽지맥으로서 동서(東西)로 달린다. 이 화산의 서쪽에는 소화산(小華山)이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여 태화산(太華山)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옛 사람들은 또한 오악을 오경(五經)에 비유하여 화산을 춘추(春秋)라고 부르기도 했다. 산손정(山蓀亭), 도림평(桃林坪), 희이갑(希夷匣), 사몽평(莎夢萍), 회심석(回7心石), 선인봉(仙人峰), 낙안봉(落雁峰), 연화봉(蓮花峰) 등이 있다. 연화궁의 정상에 무림의 정통일파(正統一派)인 화산파의 근원지 상궁(上宮)과 옥녀지(玉女池)라는 한담(寒潭)이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려하는 때이른 저녁. 촌부들은 하루농사를 마무리하고, 아낙네들은 집으로 곧 돌아올 남편의 저녁상을 차리기위해 분주해는 시각. 경장 무복을 차려입은 두여인이 막 폐장하려는 화음현의 시장을 거닐고 있다.
"이모, 여기가 유서깊은 검종(劍宗)으로 이름난 화산파가 있는곳이에요? 그냥 여느 촌구석과 별다를게 없어보이는데....."
"그렇단다. 이곳이 바로 곤륜과 함께 양대 도문(道問)으로 이름 나있는 화산파가 자리한곳이지. 속세를 등지고 구도의 길을 가는 도사들이 복잡한 번화가에서 수양을하고 있을리는 없잖겠니. 이름난 불문이나, 도문들은 대게 이렇듯 도외지에 세력을 형성하고 있단다. "
"피...그래도 그렇지 이런 한적한 시골에 있는 문파라면 보나마나겠네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담소를 하며 걸어가는 두여인은, 대화내용으로 보아 숙질 지간인듯 하였다. 백생경장을 입은 작은 여인은 홍시같이 새빨갛게 익은 볼에 땋은 머리칼이 허리 끄트머리까지 내려앉은 모습이 무척 귀엽게 생긴 열서너살쯤 되어보이는 소녀였고, 이모로 추정되는 흑생 경장을 입은 여인은 30대 중반쯤 되어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미부였다.
흑색 경장을 입은 여인이 석양 너머로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소녀에게 말했다.
"오늘은 늦은듯 하니, 객잔을 잡고 내일쯤 화산에 올라가야겠구나"
"이모! 이런 촌구석에 하루를 더먹으라구요? 난 싫어요. 아직 날이 완전 저물려면 시간이 남았으니 얼른 화산에 올라가 용무를 마치고 빨리 집에가요. 네?"
"혜미야, 네 너를 그리 가르친적이 없었건만, 명문정파의 제자를 자처하는 우리가 그렇게 경우없어야 되겠니. 잔말말고 이 이모말을 따르렴"
중년미부가 인상을 궂히며 꾸짖자 혜미란 이름을 가진 소녀는 그런 이모의 나무람에 기분이 상했는지 입을 쭉내밀고 툴툴거렸다.
"피.. 이모는 이런 촌구석이 뭐가 좋다고 하루를 더먹어? 혹시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거야?"
"혜미야."
중면미부가 재차 꾸짖으려 하자 소녀는 잔소리가 지겨웠는지 입을 닫아버렸다.
옥녀지(玉女池)
화산파 상궁(上宮)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연못이 하나있는데, 속인(俗人)들은 이곳을 옥녀지라 불렀다. 하늘의 옥녀가 달 밝은 밤이면 강림하여 머리를 감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화산의 험준한 산세과 어우러져 가히 절경이라 할만했다.
그 옥녀지에서 막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를 보듯한 절세미모를 가진 여인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휴..심마(心魔)로다. 내 이런 흉측한 마음을 품고 어찌 그아이의 낯을 볼까."
십존의 일인이자, 화산파 전대장문 백수연이였다. 엊그제 진유하와 있었던 일이 줄곧 마음속에서 파문을 일자 지금껏 잠들지 못하고 이렇게 옥녀지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알수없는 희열이 가득차 혼란스러웠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흥분과 달콤함이였다. 진유하를 향한 연심이 엊그제에 일로 봇물터지듣 터지자 감정을 주체할수가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120년여간의 고된 수련을한 도사였다. 고작 어린 남자아이에게 마음을 뺏겨 평생 깨우친 도가 무너지려 하자, 또한편으로는 피가 마를 지경이였다.
한참 진유하의 일에 몰두하고 있던 백수연의 귀에 사람의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사부님 저 병옥이에요, 부탁드릴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바로 백수연의 제자인 손병옥이였다.
"네가 이늦은시각에 왠일이냐, 밤도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보거라"
혼란한 심사를 달랠길없어 답답해하던 차에 손병옥이 방해하자 언짢아졌다. 손병옥은 사부의 심기가 그리 좋아보이지 않음을 눈치채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부님, 각설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어요. 한달후 있을 유하의 15세 생일날 예정대로 순례에 보내겠어요."
손병옥의 입에 진유하의 일이 언급되자 깜짝 놀란 그녀였다.
"그일은 안된다. 내 이미 장문에게 단단히 일러뒀으니 재론하지 말아라."
"사부님, 대체 그아이의 순례를 그렇게 막으시는 이유가 뭔가요?"
도전적인 손병연의 어조에 백수연은 이상한 낌새를 느꼇지만, 평소 사제를 무단히도 아낀 그녀였기에 그러려니 지나쳤다.
"그...그이유는 그래, 유하는 아직 어리고 경험도 없어서, 강호에 내보내면 무슨일을 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내 그아이를 위해 반대했던게야."
"사부님 그건 말이 안되요, 수백년간 깨지지 않았던 전통이에요. 그간 사제보다 나약한 제자들도 순례길에 올라 모두 무사히 마쳤는데, 사부님께서는 유독 사제의 경우에만 반대하시니, 저로써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유하 본인도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사부님이 진정 그아이를 위하신다면 보내주세요."
이미 자신의 명으로 결정난일에 대해 꼬치꼬치 말대답하는 제자를 보자 손백연은 울화가 치밀었다.
"네, 이년! 네가 지금 문파에 막중한 위치에 있다고 간덩이가 부었는게로구나! 어디 사문의 존장이 결정한일에 말대답을 하는것이냐!"
"그런게 아니에요. 다만 제가 사부님의 명을 어기려는게 아니라, 여러 동문사제들이 이일로 사부님에게 다른맘이 있지는 않은지 의아해 하고 있어요. 수백년간 지켜온 전통이 유독 사제의 경우만 예외라는점이 납득이 가지않을수밖에요."
백수연의 호통에도 아랑곳않고 손병옥은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사부님이 사제의 외유를 반대하는건 아마 다른 이유가 있으실거라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화산파 제자들에 있어 일생에 단한번 있는 순례행사를 막으실리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혹시 유하가 화산밖으로 나가서는 안되는 제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건가요?"
"그....그건 그렇지 않다"
손병옥의 날카로운 지적에 백수연은 크게 당황했다.
"그렇다면 제가 납득할수있도록 말씀해주세요. 그사유가 타당하다면 저도 사부님의 명에 따르겠어요"
"흥, 너는 몰라도 된다. 나는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니 더이상 너와 말을 섞고 싶지 않구나. 그만 물러가거라"
제자와 논쟁하다가 자칫 진유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탄로날것을 우려한 백수연은 등을 돌려 다른곳으로 이동하려하였다. 그러자 손병옥은 그런 그녀를 향해 나직히 말했다.
"그제 새벽 사부님과 유하가 함께있던 장면을 목격했어요"
예상치 못한 손병옥의 말에 충격을 받은 백수연은 혼절할만큼 어질거렸다.
"무.무...무슨소리냐?
"우연히 사부님과 유하가 함께있는 모습을 목격하게됬다구요, 그럼 그자리에 있던 여인이 사부님이 아니셧어요?"
유하와 자신외에 어제의 일을 아는사람이 더있다는걸 사실을 알자 당혹스러워 온몸에 힘이 쭉빠졌다..
"그...그래, 내 유하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내릴게 있어 몰래 불렀다. 무..무슨 일이 있느냐"
말을 더듬는 사부의 모습을 보며 손병옥은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졌다. 얼굴을 더욱 굳히며 이야기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혹시 사부님께서는 사제에게 온당치 못한 감정을 품고 계신거 아니겠죠?"
백수연은 손병옥이 자신 마음깊이 숨겨둔 감정을 들추어내자 깜짝놀라 낯빛이 흑색으로 변했다.
"네..네 이년! 그런 망발을 짓거리면서도 살기를 바라느냐?!"
"사부님 오해하지마세요. 설마하니 사부님이 사제에게 설마하니 불순한 감정을 품었으셧겠어요. 현무림의 최고 고수중 한분이자 화산의 중심이 사부님께서, 그깟 어린아이에를 마음을 품고 있다는게 말이안되죠. 다만, 자꾸 지나치게 사제를 감싸도시니까 동문사형제들이 온갖 무성한 추측을 낳고 오해를 하길래 드리는 말씀이에요."
백수연은 손병옥이 자신을 감싼듯 하면서도 비꼬자, 속이 부글부글 끟기 시작해다.
"가...감히 누가 날 능멸하고 있단 말이냐. 당장 그이름을 대거라!"
"아직 사석에서 그와같은 발언을 한 사형제들은 없어요. 하지만 이번일처럼 노골적으로 사제를 싸고돌면 오해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사제로 하여금 순례길을 주청드리는거에요.."
백수연은 내외의 상황이 모두 여의치 않게 돌아가다는 손병옥의 지적에 마음이 흔들리시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내 진유하가 자신의 곁을 떠나 세상밖으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가슴한구석이 시려와 손병옥이 청을 들어줄수 없었다.
백수연은 다시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입을 열었다.
"안된다... 그아이는 아직 어려. 배신과 모략으로 넘쳐난 험난한 강호를 이겨낼수 있을리 없다."
"유하는 사부님이 생각하는것처럼 어린애가 아니에요. 이미 강호의 후지기수를 통털어 그아이만큼 뛰어난아이는 찾아볼수 없을거에요. 아니 본문의 2대배분의 제자들조차 그아이를 감당해내던가요? 언젠가 강호로 나가야할 아이에요. 후일을 위해서라도 잠시간의 외유는 허락해주는게 유하에게 도움되는일이라 생각해요."
백수연은 자신의 억지주장이 손병옥의 의해 핵심이 찔리자, 더욱 흥분되어 그녀의 말을 자르며 외쳤다.
"그아이는 아직 안돼!"
분노에 가득찬 백수연의 외침이 옥녀지를 가득 매웠다.
"사부님 지나치시군요. 정,그아이의 앞길을 막으시겠다면 저도 어쩔수없어요. 사제들에게 어제 유하와 있었던일을 의논하겠어요"
재차 어제일로 끄집어들며 약점을 잡자 그녀는 분노하기 시작했다.
"뭐?!!! 네가 감히 나를 겁박하는게냐!!"
"저는 사부님께서 주장사힌바대로 어제일에 떳떳하시다면 화내실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이번일은 유하 그자신을 위한일이에요. 하물며 본파의 대장로로써 화산의 정통을 지켜나가야할 의무가 있어요. 아무리 사부님이시라지만 이번일만큼은 양보할수가 없습니다. "
백수연은 손병옥의 말에 재차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녀의 논리정연한 지적한 지적에 아무대답을 할수가 없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을본 손병옥은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진유하를 두고 싸우는 연적이라 하지만, 눈앞의 사부는 70여년간 자신과 함께 동고동락 해오며 살아오지 않은 부모님 같은 존재이지 않은가.
손병옥은 한숨을 크게 들어마쉬더나 백수연을 향해 의지를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열었다..
"사부님께 화내지 마세요. 사실 저 사부님께 고백할게 있어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차분히 진정하시고 제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도전적인 어조로 줄곧 자신을 추궁하던 제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자 분노하는 와중에도 그녀가 말하고자하는 내용에 호기심이 일어 귀를 기울였다.
손병옥은 백수연의 이목이 자신의 입에 집중하자, 아까와 달리 긴장이되어 입술이 떨렸다
.
"그.저...저는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제를 사랑하고 있어요.,
예상치 못한 손병옥의 고백에 백수연은 황당함을 넘어 까무랄칠듯 놀랐다.
"더군다나 제몸은 이....이미 그아이에게 줘버린걸요.."
"뭐....뭐라고 그랬느냐.다..다시한번 말해봐라."
"저는 이미 도사의 길을 포기하고 그아이의 여자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사부에게 농을 하는것이냐? 어떻게 네가 그아이와 맺어질수 있단말이냐. 더구다나 너는 도사가 아니더냐! 감히 네가! 그아이는 안돼! 너따위가 차지할 아이가 아냐, 어떻게 감히 네가 나에게서 뺏아간단 말이냐!! 네가 나보다 낳은게 무엇이 있어서!"
백수연은 분노에 이성을 잃어 지금 자신이 무슨말을 하는지 조차 깨닫지 못했다.
"사부님?"
백수연은 번뜩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닫고 손병옥을 쳐다보았다. 눈앞의 자신의 제자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씁쓸한 미소를 짖자 그녀는 아차했다.
손병옥또한 사부의 마음이 확인되자 괜시리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사부님, 이래도 사제를 안보내주실건가요? "
"........"
손병옥이 자신의 의도한바대로 상황이 흘러갔지만, 이모든게 백수연과 반목하여 얻어진 결과기에 슬픔을 감출수 없었던것이다.
더이상 할말이 없어진 손병옥은 얼이 빠져 멍해진 백수연을 향해 포권을 하고 몸을 돌려 옥녀지를 떠나려했다. 그러자 백수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렸다..
"정말.. 네,가 그아이와 맺어졌느냐?"
백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손병옥은 가던길을 멈추어 서서 말하였다
"그건 사부님의 상상에 맡길께요. 그리고 이번 그아이 외유에 저도 따라갈거에요. 오늘일은 죄송해요. 그럼 편히 쉬세요."
손병옥이 떠나자, 백수연은 끓을듯한 분노가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이 감정이 가라앉지 않을것 같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허리춤에 매단 보검을 들어 미친듯이 주변의 사물들을 배어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날띈 그녀는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의 불꽃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내 다시 미친듯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눈앞에 서린 검기가 허공을 가를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한올한올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그녀는 몰랐다. 손병옥의 배신보다도, 진유하가 자신보다 다른 여자의 몸을 탐했다는 사실이 더 가슴 아프다는것을..그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40년전 자신의 사부가 등선한후 단한번도 내비치지 않았던 눈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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