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천 - 91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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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림은 전무후무한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마냥 정도의 하늘이라 생각했던 무림맹이 그 존재의 이유가 흔들리고 있다.
구심점이 흔들리는 조직은 아무래도 그 힘이 약해지기 마련이지.
거기에 비해 마도는 정말이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나를 구심점으로 해서 거의 모든 마도인들이 하나로 뭉쳤다.
원래 마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한 것이 아니다.
정도에서 숭상하는 바름이란 것도 어찌보면 상대적인 것인데 강함을 추구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나쁘게 비춰지고 그렇게 악으로 단정지어진 것일뿐 마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의 길을 걷는 사람보다 더욱 순수할 수도 있다.
단지 하나만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므로.
자신이 강할 수 있는 한계로 스스로를 몰아가는 사람이므로.
지금이야 변질되어 온갖 사악한 짓을 하는 자들을 통틀어 마라고 하지만 원래 순수한 마도인은 힘이 필요한 세상에 절대적으로 존재해야 할 인물들이다.
난 그런 마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싶어졌다.
녹림과 천마교 만으로도 이미 하나로 묶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사파의 사람까지 끌어들이려면 뭔가 확실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간만에 들른 천마교에서 교주와 마주 앉았다.
금소소 역시 같이 앉으려 했지만 내가 일이 우선이라 말하고 물러가게 했다.
뭐 눈을 흘기는 것을 보니 피곤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장인어른.”
“왜 그렇게 무게를 잡고 그러시나?”
“장인어른이 보시기에 제가 어떻다고 생각되십니까?”
“갑자기 무슨 선문답인가?”
“지금 마도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보게나.”
“장인어른은 무림이 통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흠... 그거야 무림의 오랜 숙제지만 막상 통일이 된다해도 문제가 생기긴 마찬가지지.”
“역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군요. 제가 아는 무림의 역사도 정파에서 무림일통을 부르짖진 않지만 항상 그들이 무림을 통일했더군요. 그리고 평화의 시기를 조금 거쳐 다시 혼란에 빠지는 무림이 형성되구요.”
“맞네. 사실 우리 천마교도 한번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때야 우리를 건드렸으니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명분도 없는 상태에서 사고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전 그보다 무림이 통일 된다 해도 평화의 시기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싶습니다. 어짜피 오래가지 않을 평화라면 통일이 되어도 문제가 있다는 거지요. 그럴바에야 통일이 안되는게 좋고 통일이 안될 것 같으면 정파는 정파대로 마도는 마도대로 서로의 세를 균형있게 잡아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야 좋겠지만 그게 현실에 반영될 수 있을까?”
“반영을 시켜야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왔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우선 현 무림의 상태를 살펴보면 정, 사, 마가 서로 대치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금천단이 있고 구미호가 있다.
즉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세력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그들의 세력을 자연스럽게 세상으로 드러낸다면 무림 연합 대 세외세력의 다툼으로 만들 수 있다.
크게는 삼분의 계를 써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숨어 있는 얘기를 좋아하지만 직접 보지 않고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괜히 설득한다고 힘을 빼는 것보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를 인지시켜 따라 오게 만드는 것이 좋다.
녹림과 천마교로 일통되는 마도천하.
무림맹과 신도문으로 일통되는 정도천하.
천사교가 봉문을 깨고 나오는 사도천하.
이렇게 세 개의 세력으로 확실하게 구분을 지어줄 필요가 있다.
그럼 어정쩡하게 중도를 지키는 세력을 어떻게 하느냐.
마의 이름으로 그들을 없애버리는 수 밖에.
지금은 중간을 지키며 박쥐처럼 왔다갔다할 놈들은 필요가 없다.
이 대대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뭔가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눈치를 볼 것 같으면 간판 내리고 산으로 숨어야지.
이렇게 세력을 분할하면 일단은 전면전 보다 서로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집안 단속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 눈으로 보기에는 절대로 일통된 각각의 세력이 아니니까.
우선 마도 역시 녹림과 천마교가 뭉쳤지만 그 외의 세력들은 어정쩡하게 흩어져 있다.
그저 사람들이 마도라 함은 천마교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녹림이 커진 상황이고 그러다 보니 천마교의 권위가 약해져 전에 따르던 세력들이 주춤거리고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마도가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고 소문을 내는 것이지.
그렇다고 정파가 멀쩡한 것도 아니다.
알다 싶이 무림맹은 금천단의 껍질인 셈이다.
그것을 하나둘씩 눈치 챈 사람은 신도문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
그러니 정파 역시 지금 두 세력 간의 알력으로 무림일통이란 꿈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천사교야 봉문 상태이니 논외로 빼도 되고.
“그럼 자네는 지금부터 마도의 하늘로서 군림하겠다는 소린가?”
“그렇습니다. 장인어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허허. 무슨 도움이 필요하겠나. 마도는 힘일세. 자네에게 거슬리는 것은 무조건 쓰러뜨리고 나가면 되는거지. 마도의 명숙들이 어디 있는지는 내가 알려줌세.”
내가 원하는게 바로 그것이다.
잔챙이까지 일일이 다 상대할 필요는 없다.
알맹이만 처리하면 힘이 없는 것들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내 위상이 조금만 더 높아지면 마도는 그냥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된다.
거기다 천마교주의 위세가 조금 죽었다 해도 아직 마의 하늘은 천마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런 천마교의 부마가 나이니 명분도 내 쪽이 우위에 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뭘 그런걸 가지고. 오히려 내가 부탁해야 할 일이지.”
금성우와 이런 저런 계획을 주고받고 서로의 할 일을 다시금 되짚었다.
차질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적에게 허점을 남기는 일이니까.
그리고 녹림의 최고수가 파견될 지역도 미리 현사에게 언질을 주었다.
내가 일일이 부쉬는 것도 좋지만 세력간의 싸움에선 이쪽의 힘을 확실히 보여줄 필요도 있다.
혼자서 너무 설쳐대면 나만 두려워하지 나의 수하들은 그저 종이로 볼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거사는 보름 뒤로 미루고 착실히 준비 시켰다.
금소소는 내가 교주와 면담을 마치고 나오자 바로 자신의 방으로 날 끌고 갔다.
뭐가 그리 급한지 다짜고짜 내 입을 찾으며 나의 옷을 벗기려 했다.
“어어. 뭔 일 있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녀는 열심히 나의 옷을 벗기더니 침대로 날 눕혔다.
살다보니 별 희안한 일도 다 겪는다.
아무리 여자가 밝힌다 해도 이렇게 적극적인 애는 보질 못했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순식간에 한번의 열풍이 지나가고 그녀는 내 팔을 베고서 물었다.
“이번엔 몇 명의 여자가 더 생겼어요?”
“그거였어?”
아마도 자신에게 연락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은게 다른 여자 때문이라 생각했던가?
그렇게 어리숙한 여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여자가 생겼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봐요. 질투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도...”
의외로 귀여운 면이 있군.
난 소소를 꼭 안아 주었다.
뭐 나 때문에 마음 고생을 했다는데 내가 달래야지.
“그래도 당신은 나의 부인이야. 그것은 잊지말아야지.”
그 한마디가 그렇게도 좋았던가?
내 품으로 파고 들며 더욱 응석을 부렸다.
나도 아까처럼 그런 어정쩡한 관계가 아닌 간만에 소소의 몸을 달래주기 위해 혀를 움직였다.
아직 보름의 시간이 있지만 그 안에 그녀의 몸을 달래두어야 내가 가더라도 외로움이 덜하지 않겠어?
소소의 신음이 방안 가득 넘치며 천마교에서의 첫날은 저물어 갔다.
아침 일찍부터 천마교의 내부가 어수선 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닌 듯해서 잠을 더 청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날 찾는 다는 교주의 전갈을 받고 옷을 챙겨 입었다.
소소는 내가 옷을 입는 것을 시중들며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글방글 웃었다.
“뭐 좋은일 있어?”
“가보시면 알아요. 호호.”
알 수 없는 웃음으로 날 황당하게 만들던 그녀는 내 등을 떠밀며 얼른 가보라고 했다.
그냥 편하게 잠이나 자는게 좋은데.
교주가 불러서 간곳은 천마교에서 가장 큰 연무장이었다.
그곳엔 내단에 있는 모든 인원이 모여 있었고 교주와 평소엔 잘 보이지도 않는 장로들까지 참석해 있었다.
‘무슨 일이지?’
내가 나타나자 물살이 갈라지듯 통로가 하나 생겼다.
난 그 길을 걷는 동안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교주의 웃음을 보며 그냥 앞으로 걸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느낌은 위기감으로 바뀌었고 그 많은 인원이 일제히 날 공격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
분명 교주가 시켜서 한 일 일테니 이들을 상하게 할 수도 없고 환장한다.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해서 그 모든 인원이 일제히 날 공격할 수는 없다.
많아야 8명.
내가 움직임에 따라 각기 다른 방위의 8명이 일제히 날 공격했다.
한두명을 쓰러뜨릴 때는 몰랐는데 이것도 하나의 진법인지라 내가 쓰러뜨린 수만큼 바로바로 보충이 되었고 형식을 보아하니 이 인원이 다 쓰러져야 멈추는 진법 같았다.
정말이지 끔찍한 차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땐 방법이 하나뿐이 없다.
다 죽이던가 그냥 무시하고 가던가.
죽일 수는 없으니 그냥 무시하고 나가기로 했다.
몸을 보호하는 호신강기를 적당히 끌어올린 뒤 약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기 위해 창룡음을 냈다.
이미 내공이 약한 놈들은 쓰러졌고 그나마 뼈대가 있는 놈들은 나의 호신강기를 파훼하지 못하고 나뒹굴렀다.
천천히 단상으로 향하며 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내겐 통하지 않지만 언젠가 써먹을 일이 있을 테니까.
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단상까지 걸었다.
그 사이 날 공격하던 놈들은 알아서 찌그러졌다.
만약 내가 이들을 봐주면서 공격하려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장인어른. 아침부터 이게 무슨 장난 입니까?”
내가 골탕을 먹었으니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지금 천마교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판에 장난이라니.
“허허. 장난이라는 구료. 장로들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교주의 말이 끝나자 장로들이 일제히 날 둘러쌓다.
이들의 수양 정도를 보니 적당한 호신강기로는 오히려 다칠 위험이 느껴졌다.
난 그들의 앞에서 한점의 기도 느끼지 못하게 내 몸의 모든 기를 풀어버렸다.
아마도 이정도의 수련을 했다면 내가 지금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런...”
그들의 그토록 바라던 자연체의 경지.
흔히들 말하는 현경의 경지.
그들은 스스로 내게 무릎을 꿇었다.
교주는 내게 다가와 내 손에 반지를 쥐어 주었다.
‘천마환.’
바로 천마교주의 신물이다.
“이제 자네가 교주일세.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봤군.”
이 아침부터 난리친 이유가 날 교주로 만들기 위한...
하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벌이려면 하나로 지휘체계가 통일 되는 것이 좋겠지.
게다가 외부인이다 보니 장로들에게까지 확실하게 신임을 얻으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겠지만 난 영문도 모르고 광대가 된 기분이었다.
뭐 그래도 좋은게 좋은거라고...
마도의 통일은 이렇게 천마교부터 시작했다.
금성우가 날린 전서구에는 각 지역에 있는 마존들의 피를 끓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천마교에서 마의 진정한 주인을 가린다. 이곳에서 주인이 된자 천마교와 녹림을 지배하며 무림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한번 정도는 도박을 할만한 조건이다.
아직 인식은 못하고 있지만 천마교와 녹림이라면 이미 마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정식으로 세상에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내가 직접 나가지 않고도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도 있군.
게다가 녹림과 천마교를 걸었으니 딴에는 실력이 있다는 놈들은 죄다 올 것이다.
세상은 술렁이고 있었다.
마의 하늘이 정말 열릴 것인가?
게다가 사파에서도 이 대회에 참석할 의사를 보이고 있었다.
현재 천사교가 봉문한 지금 그들을 찬양하던 세력들은 완전 계륵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버리기엔 아까운 존재들.
그래서 한가지 더 제안을 했다.
세상에 사라는 것은 없다.
오로지 마가 있을 뿐이다.
마도의 길을 걷는 자는 누구는 이번 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
천사교의 방해가 없는 지금 그들을 모두 끌어 들여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마도의 일통이 이루어지므로.
사람들은 꾸역꾸역 천마교로 모여들었다.
이제 대회가 몇일 남지 않았으니 바쁜 걸음들이었다.
마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정파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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