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천 - 90부
본문
90부--------------------------------
천사교를 장악한 구미호는 내게 당한 앙갚음을 위해 부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천사교에서 쓸만한 놈들을 골라서 자신의 환술에 대해 가르쳤다.
배워온 것이 같은 종류다 보니 가르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한계가 있어서 인지 만족할만한 수준은 못되었다.
자신이 천사교로 향하며 죽인 놈들이 정예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매일 그들의 수련과 마완과의 잠자리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내게 이를 갈았다.
환계에서 도망쳐 왔다고 하지만 환계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인데 한낫 인간에게 쫓기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그저 심판자가 와서 자신과 상대할 줄 알았지 인간이 파견되다니...
아무튼 지금 수련을 하고 있는 놈들이 조금만 더 똑똑해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텐데...
구미호는 천사교를 중심으로 또 다시 아공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천사교에서 최정예만 두고 나머지는 아공간의 밖으로 배치하고 아공간에서의 전투법을 일러주었다.
모든 것은 구미호의 의지에 있지만 그런 의지를 조금 익히게 되면 구미호에 동조하는 놈들도 충분히 아공간에서 싸울 수 있다.
그것도 평시보다 두배의 위력을 내면서.
마치 내가 처음 녹림의 모든 것을 바꾸듯이 구미호도 천사교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었다.
이들도 처음엔 실력보다는 계집의 환술에 모두가 놀아난다고 생각을 했지만 지금처럼 듣도보도 못한 기술을 이용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마완의 존재도 처음엔 천사교의 교주로서 구미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마완보다 그녀 자체를 따르는 무리가 더욱 많았다.
상징적인 존재라고나 할까?
없애기는 뭣하고 해서 밤시중을 들게 살려두는 입장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내공이 깊어서 인지 자신의 욕정을 어느정도는 해소해 주었으니까.
천사교의 변화는 무림에 막대한 피해를 주겠지만 한번 강해지려고 하는 놈들은 주위에 보이는게 없으니 말릴 방법도 없다.
아주 은밀하게 조금씩 강해지고 있는 천사교를 누가 대적할 것인가?
나는 운지와 정천을 데리고 녹림으로 복귀했다.
집을 너무 오래 비워두면 안되잖아?
나의 입성에 모두가 열광하고 있었지만 지화만이 살짝 눈물을 비췄다.
그간 떨어져 있느라 맘 고생이 심했나 보다.
난 그녀의 허리를 안아주며 안으로 들어갔다.
녹림삼군의 보고를 받고 정보대에서 준비한 현황판을 둘러보았다.
현재의 세력 분포도가 나와 있는 지도는 제법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무림의 세력이 대충 사등분이 되어 있었다.
무림맹, 천사교, 천마교, 녹림.
무림맹의 경우는 지금 분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별 문제가 없지만 천사교가 조금 수상했다.
이젠 나올 때가 됐는데 아직 잠잠하니 말이다.
그들이 준비해온 시간을 보자면 벌써 튀어나와서 설치고 있어야 하는데.
정보대에 일러 천사교의 움직임에 좀 더 신경 쓰라고 일렀다.
“현사.”
“네 주군.”
“니가 봤을 때 무림맹을 어떻게 흔드는게 가장 좋을 것 같냐.”
“무림맹을 흔든다구요?”
“그럼 그냥 부쉴까?”
그냥 부수는 것도 가능은 하다.
아마도 녹림의 피해도 만만치 않겠지만 충분히 없애버릴 수 있다.
정과 마의 대 혈투가 시작되겠지만 나야 상관없는 일이니 당장이라도 진행할 수 있지.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무림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선 안됩니다.”
“그러니까 흔들어보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이미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도문에 들르셨을 때 이미 파악했습니다.”
역시 머리 좋은 놈이 있어야 한다니까.
“지금 신도문으로 보낸 물자들은 신도문의 주변에 있는 방파를 흡수하는데 쓰일 것입니다. 얼마전 신도문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림맹에 약간이라도 원한이 있는 정파의 사람들은 신도문을 중심으로 모일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뭐?”
“적당한 시기에 무림맹의 비리만 들춘다면 무림맹은 그야말로 종이호랑이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림맹의 껍질을 벗기고 금천단의 본 모습을 보이는 거다 이거지.
결국 내게 또 큰 일을 시키는구만.
“현사. 그게 내가 할 일이냐?”
“꼭 그렇지많은 않습니다. 다만 주군이 하시는게 확실하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습니다.”
이놈의 시키가 점점 얼래고 달래는데 선수가 되는거 같다.
언제 한번 잡아야 할텐데 지금은 때가 아니니...
“알았다. 조만간 다시 출도를 하지.”
“제가 준비는 해 놓겠습니다.”
그 외에도 녹림의 운영에 관한 문제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을 다른 곳에 좀 쓸까 합니다.”
“재투자가 아니라 따로 쓴다고?”
“황궁에서 사람이 왔었습니다. 지금 황실의 재정이 궁핍하다고 해서...”
“지들이 처먹는 거나 조절하라고 해. 그럼 재정이 남아 돌테니까.”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예부터 관과 무림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서로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참에 관부에 연줄을 심어두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니가 알아서 해. 그리고 사람이 필요하다면 적당히 니가 보내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직 남은게 있어?”
“아닙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봐. 그리고 내일까지 아무도 날 찾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들어온다면 죽여버릴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부인과의 소중한 시간을 보낼거니까...
모두가 물러가자 지화가 간단한 술상을 봐왔다.
역시 내 맘을 아는건 조강지처뿐이다.
일이 피곤하다기 보다 정신적으로 좀 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고생 많았지?”
“아니예요. 밖에서 고생하셨을 텐데... 운지가 많이 괴롭혔죠?”
“그야 당신이 붙여준 첩자인데 어련하겠어?”
“뭐예요?”
눈꼬리가 조금 올라가지만 그렇게 귀엽게 보일 수가 없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단숨에 그녀를 안아 들었다.
“정말 보고 싶었어.”
“정말요?”
“그래. 운지도 못들어오게 했잖아.”
지화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는 이를 따라왔다.
타국에서 혼자 지내면서도 늘 그의 사랑을 느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눈앞에 있는 현실이 너무도 좋았다.
내가 힘을 주는 만큼 그녀도 내게 꼭 매달려왔다.
날 그리며 매일 깨물었을 입술이 유난히 붉게 보였다.
그 입술을 덮으며 역시 내가 사랑하는 여인은 이 여인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방으로 스며드는 달빛도 그녀의 아름답고 매끄러운 피부를 시기하는지 산산히 부서지며 그녀의 피부를 더욱 희게 보이게 했다.
몇 달 만에 이 방안에 열정의 광풍이 부는 것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일어났는지 지화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어제의 일을 상기하고 피식 웃었다.
그래도 좀 정숙해 보였었는데 어제는 완전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욕정을 완전히 불사르려고 작정을 했는지 몇 번을 까무러치면서도 요구를 했다.
막 이불을 걷고 일어나자 지화가 세숫물을 들고 들어왔다.
굳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런건 하녀를 시켜도 될 것을.”
“아니예요. 제가 직접하고 싶어요.”
천에 물을 적셔 직접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을 닦듯이 꼼꼼하게 세심한 신경을 썼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또 음심이 동했다.
어제의 그런 얼굴은 어디가고 지금은 정숙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아무리 내가 그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지시를 내렸다 하더라고 일이 많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 현명한 그녀는 자신이 양보하는 것이다.
“돌아오시자마자 계집과 논다고 시간을 보내시는 것은 보기 좋지 않습니다.”
이럴 때 보면 다른 사람 같다니까.
난 그녀의 시중을 받으며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현사는 내가 나올 줄 알았는지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여러 가지 사안을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상계에 펼쳐놓은 일들은 이미 규모가 장난이 아니게 커져 따로따로 분리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알아서 잘 할테니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고 단지 형평성에 주의할 것만 지시했다.
이번에 새로 차출된 경비 인원의 상태를 점검하고 그간의 수련 성취도 알아보았다.
잠깐이라고 생각한게 벌써 점심이 지나 저녁으로 가고 있었다.
도대체 쉴 틈을 안주니...
아마 평상시에는 알아서 잘 돌리다가 내가 있으니 확인 차원에서 그러겠지.
그래도 피곤한건 질색이다.
구미호는 앞으로 반년을 목표로 천사교를 탈바꿈 시킬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내 외곽의 무사들을 수련시키고 그들에게 적절한 환술도 전수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사라진 꼬리를 대신하기 위해 음기가 강한 여인을 잡아들여 그녀들에게 꼬리의 역할을 시키려고 했다.
원래의 꼬리만은 못하겠지만 급할 경우 자신의 힘을 늘리는 것이 가능하므로 없는 것 보단 있는게 유리했다.
기존의 꼬리 세 개는 매일 남자의 정혈을 흡취하며 도력을 키웠다.
자신이 생각하는데로만 진행이 된다면 나와의 대결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마완. 당신이 보기에 어때요? 전보다 더 강해진것 같지 않나요?”
“확실히 그렇군. 당신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오.”
“호호.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요.”
처음에 만날 때야 서로를 죽이느니 어떠니 했지만 지금은 완벽한 동업이다.
구미호는 나를 죽이는데 목적이 있고 마완은 무림의 정복에 목적이 있다.
그 둘은 엄밀히 따지면 같은 목적이랄 수 있으니 이들이야 말로 최고의 콤비가 아닐까?
하나는 실력이 있고 하나는 인원이 있으니...
이렇게 바뀌고 있는 천사교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녹림에 들어온지 거의 한달이 될 무렵 정보대에서 소식이 들어왔다.
무림의 대소사는 거의 이들에게 걸리게 되어 있으니 가장 확실한 정보통이라 볼 수 있다.
우선 무림맹은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신도문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정파 임에도 무림맹에 반기를 드는 무리는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신도문과 어울리는 문파는 퇴출하겠다고 했다.
신도문이야 이미 무림맹과 뜻을 달리하니 상관없지만 규모가 작은 방파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이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방향을 정하지 못하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금천단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신도문을 아예 없애버리려고 하는지 주된 세력을 파견했다.
지금 그들의 움직임은 워낙 은밀하여 정보대에서도 간신히 파악한 것이라고 했다.
현사는 이미 파견해 놓은 수하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주고 2차 병력도 파견했다.
진여여가 내 여인이 된 사실을 알았으니 그런 병력은 아까워하지 않고 보냈다.
마지막 보고가 천사교에 관한 것이었는데 조금 황당했다.
봉문.
천사교가 봉문을 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봉문 할 문파는 없다.
정보대에서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보면 이유가 나올듯도 했다.
웬 여인이 천사교를 방문했다.
물론 자신을 해하려 했던 교도는 다 죽었다.
그녀가 천사교에 들어간 뒤 얼마 되지 않아 천사교는 봉문을 했고 현 상태까지 왔다.
난 여인의 몸으로 천사교를 뒤 흔들 고수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단연코 없다.
그럼 딱 한명 있는데 그건 구미호 뿐이다.
그녀가 천사교라는 세력을 손에 넣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환술이라는 무기가 인원을 가지고 장난치게 되면 나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결과가 나온다.
당장 천사교로 쳐들어가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인원을 많이 데리고 간다고 좋은 것이 아니므로 참았다.
무림의 인물들은 서로 얼굴보고 싸우는 것에는 이골이 났지만 사술이라 불리는 환술에는 어리숙한 면이 없지 않아 피해만 늘어날 뿐이다.
난 현사에게 일러 따로 사람을 뽑아서 운지에게 훈련을 받으라 했다.
지금 내가 그들을 훈련할 정도로 한가하진 않으니 운지가 맡는게 좋다.
게다가 그녀도 양자로 받은 운천의 교육 때문에라도 남아 있는게 좋을테고.
대충 정리를 하고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이제 마지막 정리를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금천단에서 파견한 세력도 막아야 하고 그런 금천단을 감싸고 있는 무림맹의 껍질도 벗겨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미호를 잡아야 내게도 휴식이 찾아온다.
내 호위를 두려는 현사를 겨우 말리고 수뇌부에게만 인사를 하고 바로 빠져나왔다.
지화는 그저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했지만 그녀의 눈가에 맻히는 이슬을 보니 좀 미안했다.
내가 향하는 곳은 천사교다.
이들이 봉문을 했다지만 좀 더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아직은 이들을 상대할 시기가 아니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진식을 총동원하여 천사교가 있는 지역 전체를 하나의 진으로 묶었다.
사람의 출입이 전혀 되지 않도록.
어짜피 이들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니 자신들이 출도할 때나 그걸 알게 될 것이다.
우환이 하나 없어졌으니 다른 우환을 해결해보러 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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