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178부
본문
천상(天上)의 향기 178(칠백년의 약속)-12
연희가 대전에 들어서자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곤륜포를 입은 중년인이 팔을 넓게 벌리며 연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는다. 연희는 풍운을 잡은 손을 놓더니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아버지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아이고.......우리 공주님께서 아버지가 보고 싶었어. 그래........그래. 우리 새끼.”
중년인은 연희의 등을 두드려주니 연희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더니 곧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된다.
“아빠를 만나려는데.........나쁜 놈들이 못 들어가게 하는 거야. 아빠! 혼내 줘요.”
“감히 어떤 놈이 우리 연희를 슬프게 한 거야........알았다. 알았어. 내가 다시는 그린 짓을 못하게 혼내줄 터니 울지 마라.”
아버지의 말에 연희는 다시 밝게 웃으며 아버지의 무릎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탁자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빙긋 웃으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금할아버지.”
“허허허~ 안녕하세요. 공주님 그동안 많이 예뻐지셨네요.”
노인은 가볍게 웃으며 연희에게 인사를 한다. 연희는 노인이 누군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연희는 다음으로 약간 허무하게 보이는 사내에게 인사를 하려했다. 그런데 사내는 연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입구에 서 있는 풍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이아저씨........금이아저씨는 제 인사 받기 싫어요.”
연희가 새침하게 말하자 사내는 그제야 연희를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소인이 어찌 공주님의 인사를 싫어할 수 있습니까?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연희공주님...........그런데 같이 온 분은 누구죠. 처음 보는 분 같은데.......먼저 인사부터 시켜주시죠.”
“아참 그렇지..........풍운 이리와! 인사해야지.”
풍운은 연희의 부름에 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인다.
“풍운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
풍운이 인사한 것은 악양왕을 향해서다. 악양왕은 안 그래도 연희와 함께 온 사내가 누군지 궁금했다. 사내는 겉으로 보기에 20대 초반의 귀공자처럼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특별하게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고, 학식이 깊은 학자 같지도 않다.
“연희야........저 친구는 누구냐?”
“풍운이야. 급한 일로 아빠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어.”
악양왕은 연희의 말에 미간(眉間)을 찌푸린다. 연희의 설명을 들어보면 연희도 사내가 뭐하는 사내이며, 집안은 어떻게 되며, 학식은 얼마나 갖췄는지, 무슨 목적으로 자신을 만나려하는지 등등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눈치다. 그렇다면 연희는 무엇 때문에 사내를 데려왔을까? 악양왕이 보기에 연희가 한눈에 반할 만큼 잘생긴 것도 아니며,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옷차림을 보면 고관대작의 자제(子弟)이거나 돈 많은 집안의 자식 같지도 않다. 어느 것 하나 연희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연희는 사내를 고집스럽게 이곳까지 데려왔다. 그럼 사내에게 자신이 미쳐 못 알아본 특별한 것이라도 있는 것일까? 악양왕은 일단 풍운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풍운이라고 했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이름 없는 미천한 놈이라 왕양께서 들지 못하셨을 겁니다.”
“그런가?........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는가?”
풍운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악양왕을 응시했다. 악양왕은 40대 중반으로 근엄하고 중후한 풍채를 지닌 사내였다. 풍운은 한번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말이 돌리지 않고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왕야께서는 림산의 일을 알고 계십니까?”
풍운의 말에 악양왕을 포함해서 연희가 금이라고 부른 사내와 금할아버지라고 부른 노인이 일제히 풍운을 바라본다.
“자네.......조금 전에 풍운이라고 했나.”
이번에 질문한 사람은 악양왕이 아니라 금노인이었다. 풍운이 노인을 힐긋 바라보니 노인은 백발이 무성하고 멋들어진 하얀 턱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신선(神仙) 같은 풍모를 가지고 있었다.
“예. 맞습니다.”
“혹시 마수마랑 풍운과 같은 사람인가?”
풍운은 노인이 자신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하자 속으로 약간 놀랐다. 사실 마수마랑이라는 별호는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마수마랑의 본명이 풍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노인은 풍운의 이름만 듣고 풍운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풍운은 잠깐 동안 노인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굿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예! 제가 마수마랑 풍운입니다.”
“역시 그렇군.........예전에 십이사 중에 마수라는 사내가 찾아왔더군. 그런데 이번에는 자네가 왕야를 찾아왔군. 한 가지 물어보세! 자네들은 왜 림산의 일에 관심들이 많은 거지.”
노인의 질문에 풍운을 노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노인은 마수가 자신을 찾아왔었다고 했다. 마수가 대륙상회 일로 만난 사람은 악양왕과 금산반 뿐이다. 악양왕은 상석에 있으니 노인이 금산반이라도 된단 말인가? 풍운은 무경의 말이 생각났다. 무경은 금산반의 죽음을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다. 금산반이 살아있을 확률이 더 높다고 했다. 또한 연희는 조금 전에 노인을 금할아버지라고 불렸다.
“대답하기 전에 저도 한 가지 질문하죠. 혹시 노인께서 금산반입니까?”
풍운은 노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노인은 손으로 입을 막고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나중에 알려주겠네.........그것보다 공림공적인 자네들이 무엇 때문에 림산에 일에 관여하는지부터 설명해 보게.”
노인은 풍운의 물음에 대한 답은 피하고 풍운에게 다시 질문을 한다. 풍운은 주위를 한번 둘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배화교 때문이었습니다. 배화교 놈들이 대륙상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그놈들의 야욕(野慾)을 막기 위해 나서게 되었죠. 하지만.........지금은 아닙니다. 배화교가 아니라 림산에 살고 있는 양민들이 불쌍해서 나서게 되었습니다. 현재 림산의 상황이 어떤지 아십니까? 사해방주 육철량은 무사들을 동원해 림산에 살고 있던 양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虐殺)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나서야 합니다. 누군가 나서서 양민들을 구출하고 악행을 일삼고 있는 육철량을 벌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양민들이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죽어야 합니까? 금산반과 육철량의 머리싸움에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까? 자신이 무엇 때문에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야 합니까? 힘없고 기댄데 없는 놈들은 그렇게 죽어야 하는 겁니까?”
“................................”
“휴~ 말이 길어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흥분했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그리고 우리 십이사는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관(傍觀)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라도 나서서 림산의 양민들을 구출하겠습니다.”
풍운의 말이 끝나자 대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특히 노인은 입술을 깨물고 부르르 떨고 있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자네들 능력이라면 육철량의 목가지을 비틀고 양민들을 구할 수 있었을 거야............그런데 굿이 이곳까지 찾아온 목적이 뭐가?”
이번에는 노인대신 금이라는 사내가 질문한다. 풍운은 이번에는 사내를 살펴보았다. 사내는 감색 무복을 깔끔하게 차려있었는데 그의 허리에는 금으로 장식한 허리띠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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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부인 중에 너무 똑똑해서 탈이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가 그러더군요. ‘금산반은 죽지 않았다. 혹시 죽었더라도 이번 사태를 반전시킨 계획을 세워두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육철량을 죽어버리면 금산반의 계획이 엉망이 될 수 있으니 지금은 참아야 한다.’ 만일 그녀의 말이 아니었다면 육철량과 사해방무사들을 제압하고 양민을 구했을 겁니다. 그럼 지금처럼 왕야님을 찾아올 필요도 없었겠죠.”
“자네들은 배화교 때문에 대륙상회 일에 관여하게 되었다고 했지. 아마 배화교에 당한 것이 많아 그들에게 복수하려는 모양인데..........그럼 배화교 놈들이 있는 섬서성으로 가야지 왜 림산으로 간 것인가?”
사내는 풍운의 말을 들은 것일까? 풍운은 분명 처음에는 배화교의 음모를 막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양민 때문에 나서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사내는 엉뚱하게 배화교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말인가?
풍운은 사내의 질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분위기를 살펴보니 노인이 금산반이 가능성이 많으며 지금 질문하는 사내는 정확하게 누군지 모르겠지만 금산반과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대륙상회와 관련된 인물일 가능성이 많다. 쉽게 말게 대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림산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건의 당사자들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이 입 아프게 떠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금산반이 악양왕와 함께 있다면 자신이 악양왕에게 부탁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금이의 말에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배화교가 노리는 것은 대륙상회의 장악이며 그들은 사해방과 손을 잡았죠. 그리고 잔가지 몇 개 처낸다고 무너질 대륙상회가 아니니 섬서성쪽의 피해는 심각하지 않을 겁니다. 심각한 것은 사해방의 음모(陰謀)였습니다. 사해방에게 대륙상회 본산인 림산이 넘어가면 대륙상회가 넘어가는 것이고 그건 곧 배화교에 넘어가는 것과 같죠. 그래서 림산으로 간 겁니다. 대답은 이것으로 끝내죠. 그리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분위기를 보니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군요.”
“....................”
“저는 바로 림산에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 연락해서 림산의 양민들을 구출하라고 하겠습니다. 나머지 일은 여기 있는 분들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우리 역할은 양민들을 구출하는 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풍운은 미련 없이 돌아선다. 한시도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다.
“허허~ 그놈 참 당돌하군.........이놈아. 여기가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는 곳으로 아느냐? 당장 멈추지 못할까?”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던 악양왕이 풍운에게 근엄하게 소리친다. 풍운은 다시 돌아서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악양왕에게 인사를 한다.
“깜박 잊고 왕양께 하직 인사드리는 것을 잊었군요. 불쌍한 백성들........굽어 살펴 주세요. 선정을 베푸시면 백성들도 왕양을 추앙한 겁니다. 그리고 들어올 때도 제 발로 들어왔으니 나갈 때도 제 발로 나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풍운은 인사가 끝나자 다시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악양왕의 겉에 있던 연희가 풍운에게 달려와 풍운의 손을 잡는다.
“풍운! 그냥 가면 어떻게..........안돼 가지마. 천면역용술하고 섭물진기하고 알려주기로 했잖아.”
풍운은 연희의 손을 뿌리치고 갈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건 하지 못하고 연희를 돌아본다.
“천면역용술이나 허공섭물은 지금 알려줘도 연희님에게 도움이 되질 않아요. 연희님은 흔히 말하는 내공이 없기 때문에 펼치지 못하죠. 먼저 내공부터 착실하게 수련하세요. 그럼 때가 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거짓말.........조금 전에는 기초만 익히면 된다고 했잖아. 알려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풍운은 연희가 억지를 부르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음~ 이렇게 하죠. 제가 연희님이 익히기 적당한 내공심법과 몇 가지 무공을 알기 쉽게 풀어서 정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걸 사람을 보내 연희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연희님께서 제가 알려드린 내공심법과 무공들을 모두 익히면 그때 천면역용술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됐죠.”
풍운은 연희의 손을 살며시 빼내려 했다.
“씨~ 지금 그 여우같은 여자한테 가려는 거지. 안돼. 가지마........금이아저씨.......풍운 좀 잡아주세요. 빨리요.”
연희는 풍운의 손을 놓지 않고 억지를 부른다. 연희는 풍운이 무경에게 가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풍운은 입장이 곤란했다. 연희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풍운은 약간의 힘을 주어 연희의 손을 뿌리치고 곧바로 수라기를 끌어올려 다리에 집중한 다음 음양비로 박차고 날아올랐다.
“무례한 친구로군. 왕야나 공주님께서 허락지 않았는데 어디 가려는 건가?”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오른 풍운을 향해 강맹한 장풍(掌風)이 엄습(掩襲)해 왔다. 풍운은 마지막 차크라까지 각성된 이후 예전에 비해 무공이 한 단계 더 발전했다. 더구나 무경을 치료하며 각 차크라에 잠들어 있는 선천강기까지 마음먹은 대로 조율(調律)하고 빙백정의 정기까지 흡수했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신의 무공수준이 어느 정도에 있는지 모를 정도다.
풍운은 수라마령신공의 착(捉-잡다.)결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장풍을 잡으려 했다. 풍운을 공격한 사람은 감색무복을 입고 있던 사내였다. 그는 자신이 쳐낸 장(掌)이 자석에 쇠붙이가 딸려가듯 풍운의 손바닥으로 급속하게 빨려 들어가자 내공을 더욱 끌어올려 좌우로 손을 흔드니 대전에 마치 한 마리 황룡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황금색으로 빛나는 기류(氣流)가 풍운의 온몸을 감싸려한다. 풍운은 사내의 공격을 보고 머릿속에 스쳐가는 무공이 있었다. 바로 잠마동 석벽에서 보았던 천룡폭풍장법(天龍爆風掌法)이다. 석벽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50십년 전에 홀연히 나타난 천무일룡의 무공으로 한번 펼쳐지면 황금빛 기류가 적(敵)의 숨통을 단박에 끊어버리는 무공이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세한 구결이나 익히는 방법은 전해지지 않는다.’
천무일룡은 우내십기의 일인으로 지금까지도 정확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금이라는 사내가 천무일룡의 천룡폭풍장법을 사용하고 있다. 풍운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내가 천룡폭풍장법을 사용한다면 천무일룡과 관련이 있을 것이며 베일에 가려진 천무일룡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다.
풍운도 지지 않고 허공에 뜬 상태에서 수라기를 끌어올리니 풍운의 몸이 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풍운은 양손을 좌우로 활짝 벌리고 수라기를 팔에 집중한 다음 수라마령신공의 인(引-끌다.)결로 황색으로 꿈틀거리는 기류(氣流)를 끌어당기더니 팔을 십자로 교체하며 접(接-붙이다.)결을 펼쳤다. 사내는 풍운이 자신이 쳐낸 장(掌)을 서로 충돌시키려하자 손을 거두고 자리를 박차고 풍운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오며 연속으로 권(拳)을 쳐내 단중, 수월, 인하(가슴)혈을 연속으로 공격한다. 풍운은 상대방의 권법(拳法)이 천룡폭풍장법과 비슷한 천룡삼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이하군.........악양왕부에서 천무일룡의 무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 하지만 천무일룡의 무공이라 하여 무적(無敵)은 아니랍니다. 아수라삼권 지옥혁파~”
풍운은 순간적으로 수라기를 거두고 마기(魔氣)를 끌어올려 천마마련의 아수라삼권으로 금이의 천룡삼권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쾅~ 쾅~! 쾅~”
허공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대전 전체가 진통할 정도로 엄청난 강기(剛氣)가 대전 전체에 휘몰아친다. 아수라삼권으로 천룡삼권으로 맞받아친 풍운은 천근추 신법으로 바닥에 착지한 다음 아직까지 허공에 떠 있는 금이를 향해 아수라삼권의 다음 초식을 쳐내니 풍운의 주먹에서 검은 기류(氣流)가 뻗어나가 거대한 흑룡(黑龍)처럼 길게 꼬리를 만들며 금이를 향해 날아간다. 본래의 아수라삼권을 극성으로 익혀도 지금처럼 흑룡의 형상은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풍운의 무공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같은 아수라삼권이라도 더욱 위력적이고 강맹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금이는 풍운이 처낸 주먹들이 자신의 다리 요혈들을 향해 날아오자 공중에서 한바퀴 회전하여 주먹을 피한다음 풍운과 조금 떨어진 곳에 착지했고 풍운은 금이가 권(拳)을 피해버리자 아수라삼권을 재빨리 회수(回收)해버린다. 그대로 두면 권풍(拳風)이 대전을 박살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기가 막히는군. 마수마랑이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한번 방출한 기(氣)를 회수할 정도일 줄은 몰랐어. 오랜만에 피가 꿇어 오르는 군.”
금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풍운을 응시했다. 처음 허무감에 빛나던 눈빛이 아니라 사나이의 승부욕에 불타는 눈빛이다. 풍운은 조금 전에 아수라삼권을 회수했다. 보기는 쉽게 보이지만 자신이 한번 방출한 기(氣)를 다시 회수한다는 것은 쳐내는 힘의 두 배, 세배의 힘이 필요하며 잘못하면 자기가 자신을 공격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위험한 짓이다. 그런데 풍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기를 회수해 버리니 금이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천무일룡은 검(劍)으로 유명했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룡마라십이검이던가?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지금 보니 수중에 지닌 검(劍)이 없는 것 같은데........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죠.”
풍운이 손을 거두고 다시 나가려 하자 이번에는 악양왕이 앞으로 나선다. 정말 붙잡는 사람이 많다.
“이놈.......멈추지 못할까? 내가 허락지 않았는데 감히 어딜 거라는 거냐. 금장군은 잠시 물러나요.”
상석에 앉아있던 악양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니 금이는 쓰게 웃으며 뒤로 물려났다. 풍운은 악양왕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미세한 소리를 감지했다. 풍운은 귀에 기(氣)를 집중하고 천이통(天耳通)으로 주위를 살피니 대전 구석구석에서 수많은 움직임들이 감지되었다.
(최소한 30명은 넘겠군. 그것도 하나같이 고수들이야.)
풍운은 대전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위치와 무공수위까지 파악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악양왕을 바라보았다.
“왕야께서 저에게 볼일이 남으셨습니까?”
“나는 볼일이 없는데 우리 공주님은 볼일이 많은 모양이네. 연희야.........이 친구에게 뭘 배우기로 했느냐?”
“예! 천면역용술하고 허공섭물을 알려준다고 했어요.”
“그래 알았다.”
악양왕은 풍운의 앞에 멈추더니 타이르듯 말한다.
“사내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그냥가면 되겠냐?”
“알려줘도 ‘그림의 떡’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알려주지 않는 겁니다.”
“그럼의 떡이 될지 살이 될지 자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자네는 알려주기로 했으면 알려주면 되는 거야. 나머지는 연희가 알아서 할 문제겠지.”
풍운은 부녀(父女)의 억지에 골머리가 아파왔다. 풍운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처음 목적은 악양왕을 만나 림산의 상황이 빨리 끝날 수 있도록 육철량이 유혹을 뿌리치고 금산반이 이끄는 대륙상회를 지지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왔다. 그런데 막상 악양왕을 만난자리에서 금산반으로 보이는 노인과 천무일룡의 제자로 보이는 사내가 악양왕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과 십이사를 의심하면 자신들의 의도를 알아내려했다. 그건 그들이 대륙상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며 하야 수염의 노인이 금산반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만일 노인이 금산반 본인이며 악양왕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면 자신이 악양왕에게 부탁할 것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므로 자신은 이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런데 연희공주 때문에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 풍운은 입술을 깨물고 잠시 고민하더니 손가락에 수라기를 집중하고 대전 한쪽 석벽을 향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는 시늉을 했다.
“파파파파파팍~”
풍운의 손놀림에 따라 단단한 대리석이 두부처럼 갈라지며 글씨들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자욱하게 피어난 돌가루가 가라앉으면 벽면 가득히 새겨진 글씨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허공을 격(隔-사이)하고 단지 기(氣)로써 대리석에 글씨를 쓸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하기위해서는 엄청난 내공의 소모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울 정도의 글을 쓰고도 풍운은 전혀 지친기색이 없다는 것이다.
“천면역용술의 구결과 해설 그리고 허공섭물을 펼칠 수 있는 무공 구결입니다. 지금부터 3번만 천면역용술을 펼치겠습니다. 사실 제가 배울 때는 딱 한번 보고 배웠지만 연희님께서는 무공의 기초가 없으시니 세 번을 보여드리는 겁니다.”
풍운은 연희가 보는 앞에서 천면역용술로 대전에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연희는 얼굴뿐만 아니라 골격까지 변한 풍운의 모습을 보고 겉에 있는 금할아버지와 풍운을 번갈아 쳐다본다.
“세상에 어떻게.........얼굴뿐만 아니라 골격과 머리색까지 변할 수 있는 거야.”
“얼굴만 변한다면 상대를 속이지 못하죠.”
풍운이 입을 열자 금노인의 목소가 흘러나온다. 목소리까지 변한 것이다.
“두 번째 입니다. 이번에는 똑바로 보세요.”
풍운의 얼굴근육들이 꿈틀거리고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풍운은 금이라는 사내와 똑같이 변한다. 금이라는 사내는 풍운의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 쌍둥이도 아니고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이상한 무공으로 자신으로 변하지 않았는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는 연희님으로 역용해 드리죠.”
“자.........잠깐만.........그런 것 필요 없어. 그냥 역용을 모두 풀어봐.”
풍운이 다시 역용을 하려는 순간 연희가 급하게 말한다. 연희는 지금까지 풍운의 진정한 모습을 딱 한번 보았다. 처음 혈선을 잡으려다 우연히 만난 남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치 꿈속에 나타난 사람처럼 몽롱하게 보였으며 몸에서 마치 광체(光體)가 나는 것처럼 너무나 성스럽고 아름답게 생긴 사람이었다. 자신은 그를 보고 처음에는 여자로 알았다. 너무나 아름답고 고결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남자였다. 자신보다 백배는 아름다운 사람이 여자가 아닌 남자였던 것이다. 연희는 당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억누르고 자신의 속마음을 숨겨야 했다. 자신이 잡으려하면 곧바로 날아가버리는 나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만남 이후 한동안 연희는 하루에 한번씩 그와 만났던 들판을 돌려보았다. 혹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악양 근교에서 혈선을 발견했다. 혈선은 그와 자신을 만나게 해준 말(馬)이다. 연희는 혈선을 따라왔고 처음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풍운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천면역용술이라는 이상한 무공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겉에는 자신보다 아름답고 성숙한 한 여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연인사이로 보였다. 연희는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가 바쁜 일이 있다하여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역시나 자신보다 성숙한 여우같은 여자와 함께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녀와 그가 함께 있는 것이 싫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가 다시 그녀에게 돌아간다고 하니 너무나 화가 난다. 그를 잡으려 했다. 억지도 부려보고 아버지께 부탁해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겉을 떠나려 한다. 자신이 억지를 부려도, 아버지가 힘으로 눌려 앉히려 해도 그는 가려 한다. 이젠 방법이 없다. 억지를 부릴 건수도 없다. 그럼.........보내 주어야 한다. 자신이 계속 억지를 부리면 아버지는 그를 힘으로라도 잡아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가 슬퍼할 것이다. 그가 슬퍼하는 건 싫다.
자신이 왕족이 아니라면..........공주가 아니라면........모든 걸 포기하고 그에게 매달렸을 지도 모른다. 그는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다. 또한 그에게는 여자가 있다. 하지만 그를 보내주기 전에 자신의 가슴이 깊은 상처(?)를 남긴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풍운은 연희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연희의 눈망울을 보고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다. 풍운이 몸에 흐르는 기(氣)를 한순간에 풀어버리니 금이로 변했던 역용이 풀리며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天人)의 외모로 변한다.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멍하니 풍운의 바뀐 모습을 바라본다. 저게 사람이란 말인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성스럽게 아름답게 생길 수 있는 것일까?
“연희님.........이제 그만 가볼게요.”
“아.........알았어. 가야지. 참~ 풍운을 다시 만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지. 연락할 곳이라도 있어.”
“장강수로십팔채로 연락하시면 되요. 그럼 그들이 저에게 연희님의 소식을 전해줄 겁니다.”
풍운은 마지막 많은 허공에서 들리고 있었다. 풍운이 음양비를 최대로 발휘하여 바람처럼 살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계속>>
ps : 악양왕부에서의 일을 지루하게 끌었다고 질책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별다른 내용도 없는데 엿가락처럼 늘려서 장수만 늘렸다고 하시겠죠. 하지만 악양왕부에서 만난 사람들은 앞으로 파트3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상세하게 기술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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