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17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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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177(칠백년의 약속)-11
풍운은 무경을 두고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날뛰고 있는 혈선을 붙잡았다. 혈선은 풍운이 나타나자 풍운의 몸에 머리를 비빈다.
“혈선 무슨 일이야. 왜 갑자기 날뛰는 거야.”
풍운이 혈선이 쓸어주며 진정시키고 있는데 윤기 흐르는 검은 말을 타고 나이어린 소녀가 다가왔다.
“너는 누군데 혈선과 함께 있는 거지.”
소녀는 검은 말을 탄 상태에서 허리에 손을 얻고 풍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풍운은 소녀를 보고 그녀가 주연희공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희는 오늘도 다른 사람 몰래 흑선을 타고 산책을 나왔다가 객점 마구간을 보게 되었고 마구간에 있는 붉은 말이 혈선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연희는 혈선에 대한 애착(愛着)이 많아 혈선에게 접근하니 혈선은 연희가 자신을 붙잡으려 하는 줄 알고 마구간을 뛰쳐나온 것이다.
“안녕하세요. 연희공주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군요.”
풍운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연희는 의아한 눈으로 풍운을 바라본다.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야..........잠깐만.......혹시.........풍운.......그렇지? 또 천면 어쩌고 하는 무공으로 역용을 한 거지.”
“하하하~ 예! 맞습니다. 풍운입니다.”
풍운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연희는 흑선에서 뛰어내려 풍운에게 다가와 풍운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거지.”
연희는 풍운의 천면역용술이 신기한지 풍운의 얼굴을 만져보기까지 한다. 풍운은 연희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으나 연희가 흑심(黑心)을 품고 만지는 것도 아니고 어린소녀이기 때문에 굿이 피하려 하지 않았다.
“참~ 그건 그렇고 여기까지 웬일이야. 저번에 림산으로 간다고 했잖아.”
“급한 일로 악양왕부에 볼일이 있어서 왔어요.”
“우리 집에 볼일이 있어. 무슨 일이데.”
“그게.........그러니까?”
풍운이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않자 연희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풍운을 올려다보더니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때린다.
“.어휴~ 답답해........그냥.........속 시원하게 말해.”
“공주님께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네요.”
“씨~ 저번에도 말해지. 공주라고 부르지 마. 그냥 연희라고 불려.........그리고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말해보란 말이야.”
풍운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악양왕님을 뵈려 왔어요.”
“우리 아버지를 만나려 왔어?.......뭐~ 별일도 아니네. 그런 걸 가지고 머뭇거렸단 말이야.”
그때 객점에서 무경이 걸어 나온다. 무경은 창가를 통해 풍운과 연희가 만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두 사람의 대화가 길어지자 기다리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안녕하세요. 연희 공주님.”
무경이 연희에게 인사를 하자 연희는 무경을 힐긋 바라보더니 인사도 받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저 여자하고만 온 거야. 아니면 그때 봤던 사람들하고 같이 온 거야.”
“이번에는 우리 둘만 왔어요.”
“그래........”
연희는 뭐가 못마땅하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풍운을 바라보다가 풍운의 팔에 팔짱을 낀다.
“우리 아버지 만나려 왔다고 했지. 당장가자. 내가 만나게 해줄게.”
연희는 풍운의 의사와 상관없이 팔짱을 낀 상태에서 풍운을 악양왕부 쪽으로 끌고 간다.
“저기~ 공주님.........갑자기 이러시며.........”
“바보야. 방금도 말해지. 공주라고 부르지 말라 말이야. 그냥 연희라고 불려.”
“아.......알았어요. 연희님 일단 팔부터 놓고.........”
풍운이 다리에 약간의 기(氣)를 불어넣고 버티자 연희가 아무리 힘을 줘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연희는 몇 번이가 힘을 주더니 풍운의 팔을 놓고 풍운을 노려본다.
“우리 아버지 만나려 왔다고 했잖아. 내가 만나게 해준다는데 싫어.”
“아닙니다. 만나긴 만나야죠. 하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렇게 불쑥 뵙는다는 것이 좀~”
“상관없어. 내 손님이라고 하면 돼. 우리 아빠는 내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신단 말이야.”
“휴~ 알겠습니다. 그럼 무경과 함께 준비하고 내려오겠습니다. 객점에 아직 짐이 있거든요.”
“저 여자는 안돼. 우리 아버지를 만나는 건 풍운뿐이야.”
“예?.........”
연희의 단호한 말에 풍운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연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연희도 지지 않고 풍운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경과 함께 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무경은 조용히 풍운과 연희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연희는 풍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자신이 인사를 했는데도 본 척도 하지 않더니 풍운을 끌고 악양왕부로 가려 한다. 그리고 풍운이 자신과 함께 가야한다고 하자 절대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풍운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풍운과 단둘이 있고 싶은지도 모른다. 무경은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연희가 귀엽게 보이기 때문이다.
“운랑.........그렇게 하세요. 저는 객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뭐?.........하지만......”
“저 여자도 가라고 하잖아. 자자~ 시간 끌지 말고 가자. 빨리~”
연희는 무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풍운의 팔을 잡고 고집을 부린다. 풍운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무경을 바라보니 무경은 다녀오라고 손짓을 한다.
“무경.......혼자 있을 수 있겠어.”
“잠깐인데요. 뭘~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휴~ 알았어. 그래 다녀올게.”
풍운은 어쩔 수 없이 연희와 함께 악양왕부로 가기로 했다. 일이 이상하게 흘려간다. 연희는 풍운혼자 왕부로 간다고 하자 풍운의 팔을 풀고 흑선에 올라탄다.
“풍운도 혈선을 타..........걸어가긴 멀어.”
풍운도 이미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무경에게 눈짓을 보내고 혈선에 올라탔다.
(운랑........연희공주를 잘 이용하세요. 잘하면 일이 쉽게 해결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풍운이 출발하기 전에 무경의 전음이 풍운에게 전해졌다. 풍운은 고개만 끄덕거리고 연희와 함께 악양왕부로 달려간다. 무경은 멀어지는 풍운을 바라보다가 다시 객점으로 향했다. 꼬마아가씨 덕분에 사랑하는 풍운과 떨어졌지만 이상하게 나쁜 감정은 들지 않는다. 연희가 깜찍하고 귀여워 친동생 같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연희와 풍운이 바람처럼 악양왕부를 향해 달려간다. 연희가 탄 흑선도 혈선에 견주어 절대 뒤지지 않을 명마로 두 마리 말은 서로 경주를 하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전력을 다해 달려간다. 풍운과 연희는 말(馬)의 속도가 너무 빨라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악양왕부의 정문을 지키던 무사들은 두 마리 말이 화살 같은 속도로 달려오자 모두 경계자세를 취하려 했다. 그런데 고참 무사 한명이 검은 말을 타고 오는 사람이 연희임을 알아보고 무사들에게 고함을 지른다.
“문을 열고 모두 비켜서........어서.”
무사들은 재빨리 성문을 열고 좌우로 비켜서자 두 마리 말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쏜살같이 정문을 통고해 버린다.
“콜록~ 콜록~ 콜록~.........빌어먹을..........까닥 잘못했으면 골로 갈 뻔 했군.”
경비무사들은 자욱하게 피어난 흙먼지 때문에 기침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중얼거린다.
“으그~ 저놈의 말괄량이 공주님 때문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어요.”
“이 사람아........그나마 공주님이라고 계시니까 왕부가 사람 사는 것 같지 않는가?”
무사들은 다시 문을 닫고 평소와 다른 없이 경비를 선다.
연희는 왕부에 들어서자 풍운을 거대한 대전이 있는 곳을 끌고 갔다. 곧바로 자기 아버지를 만나게 해줄 모양이다. 두 마리 말이 대전의 입구에 도착하자 수십 명의 무사들이 앞을 막는다. 연희는 풍운에게 멈추라고 손짓하고 자신도 무사들 앞에 멈추었다.
“아버님 안에 계시냐.”
무사들은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연희임을 알아보고 허리를 숙인다.
“지금 손님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그래........알았다.”
연희는 흑선에서 내리더니 풍운에게도 내리라고 손짓했고 풍운도 연희의 옆으로 내려왔다.
“마침 아버지가 계신다니 만나러 가자.”
연희는 풍운의 손을 잡고 무사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려하니 무사들이 연희의 앞을 막는다.
“왕야께서 아무리 들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지금 나를 막겠다는 거야. 당장 비키지 못해.”
연희가 앙칼진 목소리로 말하자 무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연희는 악양왕의 하나밖에 없는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악양왕도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편이다.
“저기.......공주님.......왕야께서.......”
“내가 책임질게. 내가 책임지면 되잖아.”
“아.........알겠습니다. 그럼 공주님만 들어가세요.”
무사들은 감히 연희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길을 비켜준다. 하지만 풍운은 남고 연희만 들어가라고 한다. 풍운은 말없이 지켜보다가 연희의 손을 살며시 뿌리쳤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연희님만 가세요.”
“씨~ 풍운은 가만있어. 내가 알아서 해.”
연희는 풍운의 말에 화를 내더니 허리에 손을 얻고 무사들을 노려본다.
“나는 풍운이랑 같이 갈 거야. 앞을 막는 놈은 용서치 않는다.”
연희는 다시 풍운의 손을 잡고 대전으로 끌고 간다. 무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조금씩 뒤로 물려나더니 급기야는 길을 열어주고 만다. 연희가 한번 고집을 부리면 왕야도 말리지 못한다는 것을 무사들도 잘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길을 내준 것이다. 연희와 풍운은 무사들의 한숨소리를 뒤로하고 대전으로 걸어간다.
“저기.........연희님 악양왕님께서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계신 모양인데........그냥 다음에 만나죠.”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예? 무시라니요? 제가 언제 연희님을 무시했습니까?”
“지금 무시하고 있잖아. 내가 만나게 해주겠다는데.......왜 싫다는 거야. 그게 무시지.”
풍운은 연희의 억지에 골머리가 아파온다. 누가 언제 자기를 무시했단 말인가? 악양왕이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있으니 다음에 만나자는 말이 무시란 말인가? 풍운은 쓰게 웃고 말았다. 연희가 고집을 부르니 그녀 마음대로 해보라고 할 참이다.
“좋아요. 연희님 뜻대로 하세요.”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가자.”
연희는 다시 풍운의 손을 잡고 대전으로 들어가니 대전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무사들이 또 다시 연희의 앞을 막는다.
“너희들도 날 막겠다는 거냐. 당장 비키지 못해.”
“왕야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 같이 똑같은 말만 반복하지. 그 말은 입구에서부터 들었던 말이야. 잔소리하지 말고 비켜.”
“안됩니다. 절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대전을 지키는 무사들은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과는 다르게 완강하게 저항한다. 연희는 짜증이 났다. 풍운에게 당장 아버지를 만나게 해준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무사들이 계속 앞을 막으니 짜증이 나는 것이다. 연희는 화를 참지 못하고 품속에서 단검(短劍)을 꺼낸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단검(短劍)인 모양이다.
“비키지 않으며 베어버린다.”
연희는 풍운의 손을 놓고 단검(短劍)을 검집에서 빼내니 검(劍)에서 푸른빛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대단한 명검(名劍)인 모양이다. 하지만 무사들은 연희가 단검(短劍)으로 위험해도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죽어도 물려나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연희는 무사들이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자 단검(短劍)으로 바로 앞에 있는 무사의 배를 향해 내리친다. 풍운은 계속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가 연희가 끝내 단검(短劍)으로 무사를 찌르려하자 팔에 수라기를 끌어올려 허공섭물로 연희의 단검(短劍)을 끌어당기니 연희는 눈 깜짝할 사이에 풍운에게 단검을 빼앗긴다.
“제가 악양왕님을 뵙는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하시죠.”
풍운은 연희에게 뺏은 단검을 다시 연희에게 내밀며 말하자 연희는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풍운을 바라본다.
“방금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내손에 있던 단검에 풍운 손에 있지.”
“허공섭물이라는 간단한 무공입니다.”
“그래. 이것도 무공이야............신기하네.......천면 어쩌고 하는 무공도 알려주고 방금 그 무공도 알려줘. 그럴 수 있지.”
“연희님이 무공의 기초를 익히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풍운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허공섭물은 최소한 이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 펼칠 수 있는 상위무공이다. 연희가 지금부터 무공을 익힌다 해도 평생 동안 천면역용술은커녕 허공섭물도 익히지 못할 지도 모르는 것이다. 풍운과 연희의 대화를 듣고 있는 무사들의 표정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을 것처럼 생긴 풍운이 허공섭물을 쓰는 것에 놀랐고, 연희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것에 두 번 놀랐다. 더욱이 그걸 연희에게 가르쳐주겠다는 대목에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건 그렇고.........방금 뭐라고 했지. 우리 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포기한다고 했어?”
“예!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 뵙게 해주세요.”
“정말이야..........급하다고 했잖아.”
“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까지 뵙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 받으세요.”
풍운은 연희의 손을 잡아 단검을 쥐어주었다.
“저는 이만 가야겠네요.”
풍운은 자신이 계속 있으면 연희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밖에 무슨 일이냐.”
풍운이 떠나려는 순간 대전 안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연희는 목소리의 주인이 아버지인 것을 알고 최대한 슬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빠~ 제에요. 아빠를 만나려 왔는데 경비무사들이 못 들어가게 해요.”
“연희로구나.......감히 어떤 놈이 감히 우리 연희를 울렸어.”
“경비무사들이요.”
“무사들은 그만 물려가라.........연희는 들어오너라.”
무사들은 왕야의 명령에 쓰게 웃더니 길을 비켜준다. 왕양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더 이상 길을 막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연희는 무사들에게 혀를 내밀더니 풍운을 손을 잡고 대전으로 들어갔다. 풍운이 대전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본 것은 거대한 탁자에 위치한 곤륜포를 걸친 근엄한 중년인과 바로 밑에 있는 좌석에 앉은 나이 지극한 노인 그리고 약간은 허무하게 보이는 30대 중반의 사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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