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랑군千女郞君 - 1부 2장
본문
금정사에서 남쪽으로 작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작은 소가 나온다. 폭포라기도 민망한 다섯 자 겨우 될 듯한 낮은 물줄기로 이루어진 사방 10여 장 정도에 불과한 아주 작은 물웅덩이다. 깊이라고 해봐야 가장 깊은 곳이 겨우 세 자. 헤엄을 못 치는 사람도 허우적대다 보면 어느새 가장자리에 다다를 정도로 폭도 좁다. 멱을 감기에도 작은 웅덩이지만 아이들이 놀기에 이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 그래서 아미파에 머무는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로 곧잘 이용된다.
지금도 아이들 여럿이 모여 물가에 놓인 널찍한 바위에 모여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다. 모두 여섯 명. 남자아이가 하나, 여자아이가 다섯이다. 그 가운데 남자아이를 포함한 셋은 머리를 빡빡 깎고 있고, 다른 세 아이는 머리를 길러 양쪽에서 앙증맞게 묶고 있다.
“하하하...!”
“하하...!”
“호호호호...!”
아이들은 모두 알몸이다. 어리다고는 하지만 모두 열 살 전후의 어느 정도 알 건 다 아는 나이. 특히 정파에 속한 아이들의 경우 성에 대해 알게 되는 나이가 열 살 이전이니 남자가 무엇이고, 여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넘칠 만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알몸으로 서로 어울린다고 하는 것도.
그럼에도 아이들의 모습은 조금의 구김살도 없이 해맑기만 하다. 하긴 물놀이를 하자면 옷을 벗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어쩌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와 존재에 대해 알기에 더욱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더욱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누나도 내년에는 정무각으로 가는 거야?”
“응.”
“헤에...? 그럼 여기랑 여기에도 사저들처럼 금으로 만든 고리를 달게 되는 거네?”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아이의 젖꼭지와 둔덕을 손가락으로 가키릴 수 있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사내아이의 사타구니에 손가락 하나 굵기로 딱딱하게 일어서 있는 옅은 색의 살기둥이 그러한 추측을 무색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제대로 역할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그야말로 작은 고추에 불과하니 그저 귀엽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 여자아이는 그런 사내아이의 고추를 흘끔거리며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수그린다.
“그렇겠지?”
“예쁘겠다...”
“뭐가?”
“누나의 하얀 알몸에 금빛 고리가 출렁이며 반짝인다고 생각해봐. 정말 예쁠 것 같지 않아?”
“그... 그럴까?”
여자아이의 이름은 화진경(華珍璟). 당금 화산파 장문인인 불군자(不君子) 화계항(華契沆)의 둘째 딸이다. 올해나이 12살. 내년이면 정무각에 들어갈 나이가 되는 터라 마지막 여행을 시켜준다고 정파의 각 문파들을 돌아다니는 중이다.
“그럼. 혜란 사저도 2년 전에 정무각에서 돌아올 때 그렇게 하고 돌아왔었는데 얼마나 예뻤다고?”
“그... 그래?”
그녀의 앞에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으스대고 있는 앙증맞은 고추의 주인은 아미파의 제자 호태경(湖泰慶)이다. 올해 나이 열 살. 2대 제자 가운데 가장 두각을 보이고 있는 정화의 아들로 아직 스승이 정해지지 않아 본격적인 수련은 미뤄두고 있는 중이다.
“혜고(慧考) 사저는 어떻게 생각해?”
“나... 나?”
“응. 혜고사저.”
“그... 그게 저...”
태경은 비구니들로만 이루어진 아미파에서 유일하게 고추 달린 사내아이다. 뿐만 아니라 꽤나 잘 생겼다. 아이다운 귀여움은 물론이고 어느때는 어엿한 사내를 보는 듯 늠름한 기상마저 엿보인다. 더구나 사람의 깊은 속까지 비춰낼 것만 같은 깊고도 맑은 눈이라니. 색기마저 느껴지는 그 눈빛엔 장로급 비구니마저 껌뻑 죽는 시늉을 할 정도다. 그야말로 아미파 비구니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미파의 금지옥엽이라고나 할까?
하물며 혜고의 나이 이제 11살. 태경보다 한 살 많은 또래의 여자아이다. 처음 아미파에 들어섰을 때 태경의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가? 이제 서서히 가슴에 몽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둔덕이 모습을 갖춰가게 되니 아예 태경의 한 마디에도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예... 예뻤어요.”
“음?”
“정말 예뻤어요. 혜란 사숙.”
하긴 그녀의 탓만은 아니다. 묻지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끼어들어 대답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항예(恒睿)를 보라. 몰래 태경을 훔쳐보는 눈빛엔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어울리지 않는 춘정마저 내비치지 않는가.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문하제자 가운데 남자의 수가 많아 남자에 대한 면역이 기본적으로 되어 있는 화진경마저 태경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다른 아이들도 얼굴을 붉힌 채 흘끔거리며 태경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 이를테면 태경을 가운데 두고 다섯 여자아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그래? 그렇지?”
“네.”
태경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안다. 너무도 잘 안다. 알고자 해서가 아니다. 그냥 안다. 본능인지 재능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다. 그래서 아닌 척 하면서도 은근히 즐기고 있다. 그를 보는 여자아이들의 눈빛을. 그의 한 마디에 붉어지는 여자아이들의 얼굴을.
“진경 사저도 무척 예쁠 거에요.”
“그럴... 까?”
같은 말이지만 더이상 진경의 말투에서는 반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부끄러움도 많이 사라져 있다. 그 대신 막연한 기대로 목소리가 수줍게 떨리고 있다. 모두 태경으로 인한, 그이기에 가능한 변화다.
“봐봐요.”
슬쩍 진경의 보지 둔덕을 만진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보지는 둔덕조차 이루지 못한 채 겨우 모습만 갖춰가고 있을 뿐인 둔덕을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훑는다. 계곡이 시작되는 자리에 부드러운 살점이 잡힌다. 붉은 보석을 품고 있는 아직 피지 않은 꽃잎이다.
“이렇게 예쁜 걸요. 아마 정무각을 나올 때면 누구보다 예쁘게 자랄 거에요.”
“그... 그래...?”
“그럼요. 그건 내가 보장해요.”
“헤헤헤...”
그제야 진경은 마음을 놓고 활짝 웃는다. 붉어진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하다. 태경에게 칭찬받았다는 것이 그리고 기쁜 모양이다.
“나는? 나는?”
진경이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태경의 옆에 바짝 붙어 앉자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아이가 태경에게 매달린다. 유난히 동그란 얼굴에 눈까지 동그란 아이. 하북 팽가의 셋째딸 팽삼홍(彭參鴻)이다.
“삼홍이 너도 예뻐.”
“진짜?”
예쁜지 아닌지 알 게 무언가? 아직 동그랗고 밋밋하기만 아이를. 나이는 태경과 같은 10살이건만 몸의 발육은 늦은 편이라 7살인 사질 항인(恒引)보다 키만 클 뿐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도 자라면 꽤 예쁠 것 같다. 그건 진심이다. 그것은 그동안 수많은 여자아이들의 알몸을 보아왔던 태경의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헤헤헤... 있잖아...”
“음?”
“나중에 정무각에서 나오면...”
“응.”
기분좋게 웃던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꽤나 말하기 힘든 이야기인 듯.
“저기 나랑...”
“야!”
그러나 힘겹게 이어지던 삼홍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옆에서 울그락불그락 얼굴색을 바꾸고 있던 진경이 중간에 끊어버린 때문이다.
“너 그러면 반칙인 거 알지?”
“하지만 진경 언니는 나보다 먼저 정무각에서 나오잖아?”
“흥! 그래도 그러는 건 반칙이야.”
“그래도...”
“그건 진경 언니 말이 맞아!”
구경하고 있던 점창파의 단조연(段操娟)이 끼어들자 분위기가 사뭇 심각해진다. 왠지 태경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분위기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번엔 항예 사질까지 끼어든다. 움찔움찔 입술을 달싹이는 것을 보니 혜고도 가세할 기세다. 가장 나이가 어린 항인만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먹울먹 하고 있을 뿐이다.
“어... 어이...”
“태경이 너는 빠져 있어!”
“그래요! 태경 사숙은 끼어들어선 안 돼요!”
역시나 태경의 작은 시도는 시작도 전에 좌절되고 만다. 삼홍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태경을 보고 있지만 이래서야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그저 여자아이들의 눈을 피해 고개를 움츠릴 뿐.
“태경 사제니?”
구원은 뜻밖의 곳에서 찾아온다.
“설마...?”
많이 달라진 듯하지만 역시나 본능인지 재능인지 태경은 한 번 들은 여자의 목소리는 결코 잊지 않는다. 그녀다. 6년 전 정무각으로 떠난 그녀다.
“혜련 사저...?”
그러고 보니 오늘 돌아온다고 했다. 오늘 돌아오니 어디 가지 말고 산문 안에서 기다리라고.
“많이 자랐구나...”
혜련이 던진 첫마디가 그녀가 혜란에게서 들은 말이라는 것을 태경으로서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사저에게 어린 사매일 뿐이었듯이 어린 사제에게 성숙한 사저이고자 하는 아직은 어린 10대 다운 욕심에서라는 것은 더더욱.
“사저? 그럼...?”
“사숙?”
그제야 혜련의 등장을 느낀 듯 아미파의 여자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혜련을 본다.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하얗게 밀고 있는 알몸의 여자가 보인다. 정무각을 나온 여자들에게서 보이던 금빛 고리를 젖꼭지와 음핵, 계곡 사이 삐죽이 모습을 내밀고 있는 작은 입술에 매달고 있는.
“혜련 사저!”
태경이 달려가 안기는 것으로 보아 분명 그녀들의 동문이다. 그것도 사저이거나 사숙인 그녀들의 윗사람.
“제자 혜고가 혜련 사저를 뵙습니다!”
“제자 항예가 혜련 사숙을 뵙습니다!”
“제자 항인이 혜련 사숙을 뵙습니다!”
아미파 여자아이들이 급히 일어나 인사를 하자 다른 여자아이들도 그 두를 따라 몸을 일으킨다. 같은 정파인 아미파의 제자라면 결코 남이 아니니 인사를 하여 예를 갖추기 위함이다.
“화산파의 3대 제자 화진경이 혜란 사저를 뵙습니다!”
“팽가의 팽삼홍이 혜란 사저를 뵙습니다!”
“점창파의 3대 제자 단연홍(段娟虹)이 혜란 사저를 뵙습니다!”
발가벗은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하니 그 또한 장관이다. 묻어날 듯 하얀 살갗 위로 햇살이 반사되어 눈이 부실 지경이다.
“아미파의 3대 제자 혜련이에요.”
사실 여기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혜련으로서는 거의 모르는 얼굴들이다. 아니 태경을 제외한 모두가 오늘 처음 보게 된 얼굴들이다. 가장 나이 많은 진경조차 이제 갓 12살이라 6년 전에는 6살 어린아이였으니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아이들의 선배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사부와 같은 항렬의 사숙이 된다. 알면 알아서 행하고, 모르면 몰라서 행하는 것이 강호의 예. 혜련은 선배로서 자세를 바로 하고 반갑다는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의 인사를 받는다.
인사를 마치기도 전에 태경이 그녀의 벌거벗은 품 안으로 달려들 듯 안겨온다. 따뜻하다. 익숙한 따뜻함이 제법 묵직한 무게까지 실어 그녀의 품에 가득 차 온다. 태경의 눈빛은 여전히 사타구니가 저릴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색기를 뿌린다.
“아...!”
“드디어 돌아온 거에요?”
“그래. 그동안 잘 지냈어?”
“당연히 잘 지냈죠. 사저는요?”
“나도.”
태경은 어렸을 적부터 무척이나 혜련을 따랐다. 혜련이 친어머니인 정화의 제자이다 보니 왠지 누나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아니 그보다는 혜련이 아미파의 또래 가운데 가장 예뻤다는 것이 더 컸을 것이다. 태경은 어려서부터 꽤나 여자의 얼굴과 몸매를 밝혔으니까.
“와아... 모두 어디 보자... 18개하고... 20개... 모두 합해서 21개나 되네요?”
“그래.”
“와아! 대단해요! 21개라니!”
“후훗... 그렇게 대단해?”
“그럼요. 아미파에서 지난 10년 동안 최고기록이잖아요. 그렇다는 건... 아미제일미?”
“까분다!”
“하지만 사실인 걸요.”
태경은 아미파에서 나고 자랐다. 아미파 비구니들, 특히 무승들 사이에서 그녀들의 보살핌 속에 그녀들의 일상을 보며 자라왔다. 정무각으로 떠나는 사저와 사숙들을 배웅하며 울기도 했고, 돌아오는 또다른 사저와 사숙을 웃음으로 맞이하기도 했다. 무서운 사숙들이 더 무서운 마교 고수들의 밑에 깔려 신음을 토하는 것도 헤아릴 수 없어 보았다. 당연히 그에게는 정조니 순결이니 하는 개념 자체가 없다. 아예 처음부터 생겨나지도 않은 것이다.
알몸의 여자아이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여자아이들의 은밀한 부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질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성숙한 사저의 알몸을 보면서도, 그 알몸에 꿰인 고리라고 하는 수치와 굴욕의 상징을 보면서도 오히려 웃을 수 있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아미파 비구니들에게 있어 구원인지도 모른다. 당장 산문만 나가도, 아니 산문 안에서도 무승임이 밝혀지는 순간 멸시와 혐오와 탐욕의 시선 속에 던져져야 할 그녀들에게 있어 아무런 사심없이 웃어줄 수 있는, 그것도 사내인 태경의 존재는 그녀들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소중한 증거인 것이다. 아미파 비구니들이 태경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데에는 그러한 것도 적지 않게 작용할 것이다.
“엉큼한 녀석!”
“뭐가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여자를 밝히면 어떻게 할래?”
“그냥 예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안 돼요?”
“여자는 칭찬받는 걸 무척 좋아한단 말야.”
“그게 뭐가 문제에요?”
혜련 또한 막 정무각을 나온 터라 그런 태경에게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다. 서안에서 아미산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눈초리에 시달린 터라 더욱 그렇다. 태경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6년 전과 같이 살갑게 대해준다면 그녀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릴 것 같으니까.
“칭찬받는 거 좋아하다가 넘어오면?”
“아...!”
“저 좋다고 쫓아오면 그냥 내버려둘 거야?”
“저기... 그... 그게...”
“대답해봐!”
“사... 상관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건 좀 아니다. 장난으로 묻던 것이 어느새 진지하게 되어 혜련의 눈꼬리가 상큼 위로 치켜 올라간다.
“사... 상관 없어?”
“그... 그렇잖아요? 한 여자가 여러 남자와 살거나, 한 남자가 여러 여자와 살거나, 아니면 여러 남자와 여러 여자가 함께 살거나 그렇게 문제될 건 없잖아요? 어차피 서로 좋아서 그러는 것인데...”
“뭐... 뭐...?”
“남자는 한 여자만을 사귀고 여자는 한 남자만을 사귀어야 한다는 법은... 있나? 어쨌든 처으부터 그렇게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그랬다면 아방궁도 없고 정무각도 없었을 걸요.”
“얼씨구?”
다섯 명이나 되는 여자아이들과 알몸으로 어울리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알아 봤다. 정조니 순결이니 하는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없어 좋지만, 덩달아 태경 스스로의 정조관념 자체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10살 꼬마가 알몸으로 다섯 여자아이를 끼고 노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그것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혜련의 눈꼬리가 더욱 위로 치켜 올라가는 것과 함께 주위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화진경과 혜고 등의 여자아이들의 눈초리도 매섭게 면한다. 아무리 태경이 좋다손 치더라도 여자로서의 당연한 본능이 그의 말에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그럼 좋아한다면 여기 있는 모두랑 같이 살 거야?”
역시 먼저 나서는 건 가장 나이가 많은 화진경이다.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얼굴은 그러나 얄궂게도 발그레하니 홍조가 맺혀 있다.
“응!”
화가 나는 데도 더욱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이어지는 태경의 말에 혜련마저 얼굴을 붉힌다.
“혜련 사저도 포함해서 여섯 명이랑 함께 살 거야.”
“뭐... 뭣...?”
혜련은 비구니다. 출가하여 부처의 법을 따르는 승려의 신분이다. 그런 그녀와 함께 산다니. 그것도 다른 다섯 여자아이들과 함께.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하기만 하다.
“너... 너...!”
그러나 태경의 표정은 너무도 당당하기만 하다. 뭐 어떻냐는 듯.
“싫어? 싫으면 말면 되지. 어차피 같이 산다는 건 서로 좋아해야 하는 거니까...”
“하... 하하...!”
이쯤 되면 혜련으로서도 할 말이 없다. 더 할 말 없게 만드는 건 얼굴을 붉힌 채 수줍게 고개를 떨구고 있는 다섯 여자아이들이다. 항인은 이제 7살 밖에 되지 않은 게 뭘 안다고 저리 몸까지 꼬고 있단 말인가? 어라? 그녀 또한 은근히 몸을 외로 꼬고 있다.
“태경 사제... 너...”
“음?”
이번엔 혜고다.
“나... 좋아...?”
“응.”
“정말...?”
수줍게 수그러져 있던 혜고의 고개가 발딱 들리면서 환한 웃음을 짓는다. 뒤질새라 이번엔 다시 진경이 나선다.
“나는?”
“진경 사저도 좋아!”
“나는? 나는?”
“나도! 나도!”
“태경 사형! 사형!”
진경을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다른 여자아이들도 경쟁적으로 손을 들고 나선다. 이래서야 혜련으로서도 할 말이 없다.
“하여튼!”
“뭐가요?”
“바람둥이!”
“엑?”
“바람둥이 아냐!”
이번에도 태경의 역성을 들어주는 것은 여자아이들이다. 팽삼홍. 얼굴을 발갛게 붉히고 있는 그녀다.
“뭐?”
“그... 그냥 모두를 좋아할 뿐이에요!”
“그런 걸 바람둥이라고 하는 거야!”
왠지 기분이 나빠진 혜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러나 삼홍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의 뒤에는 다른 네 명의 여자아이들이 있다. 그녀들의 표정 또한 삼홍과 마찬가지로 비장한 각오로 굳어 있다.
“아니야! 아니에요!”
“맞아! 아니에요!”
“우리가 아니라는데 누가 뭐라겠어요?”
“하... 하하...!”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는 태경을 보니 한 대 세게 때려주고 싶어진다.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난 것일까? 또 그런 놈 때문에 질투를 느끼는 자신은 또 뭐고? 부처를 모시는 비구니 주제에 말이다.
“말을 말자.”
“헤헤헤헤...”
하긴 저렇게 웃고 있으면 화낼 것도 못 내고 만다. 자르르르 어느새 사타구니에도 힘이 풀린다. 역시 좋아하는 게 죄인 거다. 저런 어린 아이를.
“후우...”
그저 한숨만 내쉬고 만다. 그녀가 숨을 내쉴 때마다 젖곡지에 달린 금빛 고리가 햇살을 나부끼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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