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13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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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136(반근착절(盤根錯節))-12
풍운은 모든 사람들이 나가자 침상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옥선에게 다가갔다. 옥선의 얼굴은 핏기하나 없이 창백하고 입가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또다시 스스로 경략을 끊은 모양이다. 풍운은 옥선이 왜 또다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외간남자에게 알몸을 보였다는 것이 자살을 선택해야할 만큼 거대한 사건일까? 풍운은 한숨을 쉬고 옥선의 맥을 짚어보니 경략이 가닥가닥 끊어져 위급한 지경이다. 당령의 말대로 이대로 두며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번에는 쉽지 않겠군. 힘들게 이어놓은 경략이 또다시 끊어졌으니.........휴~”
풍운은 한숨을 쉬고 옥선을 안아 침상에 앉히고 수라기를 끌어올렸다. 옥선은 의식이 없는 상태라 앉아있는 모습이 곧이라도 쓰려질 것처럼 위태롭다. 풍운은 수라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린 상태에서 옥선의 등에 손을 붙이고 수라기를 불어넣으니, 강맹한 수라기가 옥선의 몸에 스며들어 경략을 타고 흐르며 가닥가닥 끊어진 옥선의 경략을 본래대로 이어주기 시작했다.
옥선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었다. 옥선의 앞에는 어둠이 깔린 강이고 보이고 허름한 나룻배에 걸터앉은 검은 망토를 걸친 뱃사공이 옥선에게 손짓을 한다. 옥선은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은 아직 하얀 모래를 발고 있는데 바로 앞에 검은 모래가 깔려 있다. 한발에 더 내딛으면 이세상과는 이별일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 누굴까? 누가 자신을 부르는 것일까? 옥선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르는 사람을 보았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눈과 태산처럼 오뚝한 코, 여인의 입술 같은 붉은 입술........인세(人世)의 사람이 아니라 천상(天上)의 선인(仙人) 같은 풍모(風貌)를 가진 풍운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 옥선은 갈등한다. 풍운은 자신을 거부했다. 자신이 싫다고 했다. 그에게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진다.
풍운의 몸에서 6개의 차크라가 찬란한 빛을 뿌리니 옥선과 풍운은 오색찬란한 빛의 덩어리가 되어 어두운 방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풍운은 수라기를 옥선의 임독양맥으로 인도했다. 선상(船上)에서는 시간이 촉박하여 옥선의 임독양맥과 생사혈관를 뚫어주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넉넉하니 옥선을 위해서라도 임독양맹과 생사혈관을 타동시켜줄 생각이다. 수라기의 기운이 옥선의 임독양맥을 살짝 건드려보다가 한발 물러나 숨을 고른 다음 강맹한 기세로 임독양맥을 향해 돌진한다.
“쿵~~”
옥선의 몸이 크게 흔들거린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옥선은 천지(天地)가 진동하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탁기를 접함으로 막혀버린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이 뚫리는 충격과 고통은 상상을 불허했던 것이다.
“음~~ 헉~ 아악~”
옥선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수라기가 임독양맥뿐만 아니라 생사혈관까지 단번에 뚫어버렸기 때문에 충격이 큰 모양이다. 풍운은 옥선의 몸에 돌고 있는 수라기가 아무런 막힘없이 전신을 타고 흐르자 옥선의 등에서 손을 거두었다.
“옥선소저.......정신이 들으며 스스로 내공을 끌어올려 보세요.”
옥선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 풍운의 말대로 내공을 끌어올려보니 내공이 막힘없이 흐른다. 이상한 일이다. 자신은 스스로 경략을 끊었다. 당연히 죽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자신이 또다시 살아났다. 어떻게 살아난 것일까?
풍운은 옥선의 상태를 지켜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위험한 고비는 지났다. 이제 자신이 해줄 일은 끝난 것이다. 풍운은 수라기를 일주천시켜 피로를 풀었다. 배화교 및 흑룡방의 무리들과 악전고투를 치루고, 두 번에 걸쳐서 옥선을 치료했으니 아무리 극마지경에 이른 풍운이라도 피곤했던 모양이다.
옥선이 눈을 뜬다. 그녀는 풍운이 치료하는 과정에서 많은 땀이 흘려 온몸이 척척했다. 땀이 옷에 스며들어 속옷이 모두 젖은 모양이다. 하지만 몸은 예전에 비해 한걸 가벼워진 느낌이다. 옥선이 뒤를 돌아보니 풍운이 담담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제가 어떻게........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제가 왜 살아있어요?”
옥선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보자 풍운을 가슴 밑바닥에서 욱하는 감정의 덩어리가 올라왔다. 생각 같아서는 뺨이라도 한때 때려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옥선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위로의 말이다. 풍운은 손을 들어 옥선의 뺨으로 가져간다. 옥선은 자시의 뺨으로 다가오는 풍운의 손을 보면서도 피하려하지 않았다. 옥선의 뺨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뽀송뽀송하고 부드럽다.
“당신........또다시 죽으려고 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제 당신 목숨은 당신 것이 아니야. 내가 당신을 살렸으니까 당신 목숨은 내꺼야. 무슨 말인지 알아. 죽고 싶으며 나한테 허락 맡고 죽으라는 말이야. 앞으로 당신은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죽을 자유도 없는 거야. 알았지.”
옥선의 뺨을 타고 또다시 눈물이 흐른다. 풍운의 딱딱하고 투박한 말속에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옥선은 고개를 끄덕인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곤하다. 당신도 피곤하지.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이야기하자. 누워!”
풍운은 옥선을 침상에 눕힌다. 옥선은 반항하지 않고 침상에 누웠다.
“혼자두기 불안하다. 내가 옆에서 자도 되지.”
풍운은 옥선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그녀의 옆에 누웠다. 옥선은 첫날밤 새색시처럼 얼굴이 붉히며 어찌 할줄 모른다. 풍운이 옥선의 몸을 살짝 끌어당기니 옥선은 풍운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였다.
“당신도 그만 자.”
풍운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옥선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의 세포들이 긴장해서 잠이 오질 않는다. 옥선은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보니 풍운은 한 팔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눈을 감고 있다. 잠든 모양이다. 옥선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을 옆에 두고 태평하게 자고 있다니.......야속한 사람이다. 옥선도 눈을 감았다. 풍운의 품에 안겨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풍운은 옥선의 탈력 넘치는 몸이 자신을 뱀처럼 휘감고 있으니 몸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오며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지경이었다. 풍운은 피가 끊는 청춘으로 바로 옆에 아름다운 여인이 누워있으니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피가 한쪽으로 솔리며 방정맞은 물건이 용트림을 한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옥선에게 흥분의 열기를 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안 된다.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옥선을 욕보일 수는 없지 않는가? 풍운은 억지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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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상회의 근거지는 악양에서 멀지 않은 림상이라는 곳에 있다. 마수는 다른 십이사들과 헤어져 림상에 들어갔다. 대륙상회는 단일 세력이 아니라 중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상인들이 힘을 합친 연합채로 명원조의 건국과 동시에 결성되었다. 그들은 동정호와 가까운 림상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대륙의 강과 수로 및 관도를 통해 거미줄 같은 유통망을 확보하여 단숨에 중원 상권의 절반이상을 장악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마수가 림상에 들어온 이유는 풍운이 살펴보라고 했던 사해방 또한 이곳 림상에 있기 때문이다. 사해방은 대륙상회의 물자를 강과 수로를 통해 중원각지로 배달하던 뱃사람들이 만든 방파다. 그들은 장강수로십팔채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어 해적들의 위험을 물리치고 대륙상회의 물자를 안전하게 운송하며 부를 축적한 방파이기도 하다. 림상은 대륙상회의 근거지답게 상업이 발달하여 거리에 생기가 넘치고 길가는 사람들도 다른 곳의 사람들에 비해 활력이 넘친다. 마수는 길가는 사람들에게 사해방의 위치를 물어 보았다.
“저기.......저쪽으로 한식경 정도 걸어가면 5층 건물이 보일 겁니다. 그 건물에 사행방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대륙상회는 어디에 있는 거죠.”
마수의 질문에 길 가던 행인은 피식 웃으며 동서남북을 가르친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마수는 행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가 알려준 곳으로 가보니 언덕에 거대한 두 채의 건물이 보인다. 특이한 것은 건물 주위에 담이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언덕에 덩그러니 건물만 두 채만 있는 것이다. 마수가 언덕을 올라 건물들을 살펴보니 한 채의 거대한 건물에 대륙상회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바로 옆에 있는 건물에 사해방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마수는 기가 막혔다........중원 상권의 절반이상을 장악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륙상회의 건물치고는 너무나 낡아 초라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만 보아서는 도저히 대륙상회의 건물이라고 밑을 수 없을 정도다. 한마디로 웬만한 장원에 있는 건물도 앞에 있는 건물보다는 화려하고 웅장할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건물을 지키는 경비무사 한명 없다는 것이다. 저 건물들이 사해방과 대륙상회란 말인가? 마수은 어의가 없어서 길가는 사람을 붙잡았다.
“저기.......저는 사해방을 찾아왔는데.......저기 보이는 건물이 사행방이 맞습니까?”
“당신이 이곳 분이 아닌가 보군요. 저기 보이는 건물은 사해방과 대륙상회의 회의장 입니다.”
“회의장? 그럼 사해방이나 대륙상회은 어디에 있는 거죠?”
“정확하게 사해방 어딜 찾아오신 겁니까?”
“저는 그냥.......그러니까? 방주님을 만나려 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저쪽 동쪽으로 가보세요. 사해방 사람들은 동쪽 마을에 살고 있으니 그곳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마수는 사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동쪽으로 가다보니 배가 고프다. 그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객점에 들어갔다. 마수는 객점에서 점소이를 불러 대륙상회와 사해방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대륙상회는 일반인들이 상상하듯이 높다란 담장에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한 곳이 아니다. 림상이란 도시 자체가 바로 대륙상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 림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륙상회에 소속된 사람들이고, 림상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바로 대륙상회의 건물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해방은 림상의 동쪽에 있다하는데 사해방 또한 대륙상회와 마찬가지로 담도 없고 특별한 건물도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모두 사해방에 소속된 사람이고, 마을에 있는 건물들이 모두 사행방이라는 말이다. 마수는 식사를 마치고 동쪽 마을로 가보니 구리 빛 피부에 산만한 덩치의 사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해방주가 있는 곳을 물어보니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을 알려주었다. 그 건물에 사해방주가 있다는 것이다. ‘폭풍창 육철량’ 사해방주의 이름이다. 마수는 육철량이 살고 있다는 건물에 가보니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경비무사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하지만 그건 눈에 보이는 것일 뿐이고 건물 주위에 싸늘한 냉기가 흐르는 것이.........눈에 보이지 않은 곳곳에 경비무사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수는 건물에 잠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멀리서 건물을 감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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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어 눈을 뜨니 창문을 통해 들어온 아침햇살이 풍운의 눈을 자극한다. 풍운은 한손으로 눈을 비비고 침상에서 일어나려는데 가슴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진다. 풍운이 고개를 숙여 밑을 내려다보니 하얀 팔이 자신의 가슴 위에 있다.
“음~”
그때 옆에서 미약한 숨소리가 들린다. 풍운이 고개를 돌려보니 뽀얀 피부에 조각처럼 아름다운 옥선의 얼굴이 보인다. 옥선은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 자고 있었다. 정말 새끼고양이처럼 귀여운 여인이다. 풍운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어제일이 생각났다. 자신의 알몸을 보았다고 책임지라고 때를 쓰던 여인........자신이 거절하자 스스로 경략을 끊어 자살하려 하려고 했던 여인.........참으로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이지만.........결코 미워할 수 없는 여인.........풍운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옥선의 뺨을 만져본다.
“음~”
옥선은 풍운의 손이 귀찮은지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려버린다. 풍운은 피식 웃더니 옥선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팔을 빼내고 침상에서 일어났다.
“누구?”
옥선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난 모양이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비비더니 기지개를 피며 눈을 뜬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풍운과 눈이 마주쳤다.
“일어났어요. 피곤한데 더 주무세요.”
풍운의 말에 옥선은 얼굴을 붉히며 얼른 일어났다.
“아........아니에요. 그만 일어나야죠.”
옥선이 고개를 숙이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볼을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다. 풍운은 자신의 충동을 억누르며 침상에서 내려왔다.
“잠깐 다녀올게요.”
“어디........가세요.”
“저기........세수도 하고........산책을 좀 하려고요.”
“저도 같이 갈게요.”
옥선은 자신도 침상에서 일어나 풍운을 따라나선다. 풍운은 옥선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멀리 포양호와 호변을 따라 넓게 펼쳐진 송림(松林)이 보인다. 풍운은 옥선과 함께 송림으로 들어갔다.
“첨벙~ 첨벙~”
포양호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간간히 물위로 튀어 오르며 아침의 정적을 깨트린다. 풍운은 옥선과 함께 송림에 난 오솔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포양호변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강바람에 옥선의 머리카락이 날린다. 옥선은 가던 길을 멈추고 포양호를 바라보며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풍운도 발걸음을 멈추고 옥선을 돌아본다.
“풍운님........왜 아무 말씀이 없죠. 제가 나쁜 년이라 말씀이 없는 건가요?”
옥선의 말에 풍운은 옥선을 돌아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왜 옥선님이 자살까지 하려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 그 이야기는 그만하죠.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옥선님이 나쁜 여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요.”
옥선은 쓸쓸한 표정으로 포양호를 바라본다. 풍운이 여자가 아니니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자신을 이해하길 바라는 것은 자신의 욕심일 것이다. 사실은 자신도 자신을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이 풍운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풍운은 매력적인 남자다. 잘생긴 외모에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 몹시 세상(世上)을 놀라게 함을 이르는 말)할 무공을 익히고 있다. 자신은 풍운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는지 모른다. 풍운이 자신을 구해주었을 때.........풍운이 자신이 알몸을 보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이건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풍운의 여자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풍운이 자신을 거부했다. 그건 충격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옥선은 어제 일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음 짓는다. 풍운은 왜 다시 자신을 구해주었을까? 단순히 죽어가는 자신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일까? 그럼 어제 풍운이 했던 말은 무엇일까?
“어제 하신 말씀.........제 생명이 풍운님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진정이세요.”
풍운은 옥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한번의 행동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옥선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단순히 손만 잡았을 뿐인데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빨라진다.
“옥선소저.......힘들죠.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리 넓은 가슴은 아니지만 옥선소저가 원하시면 언제든지 빌려드리겠습니다. 그 대신.........다시는 죽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알았죠.”
옥선은 살며시 풍운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이제 옥선의 목숨은 풍운님 겁니다.”
풍운은 옥선의 허리를 안아주며 옥선을 바라보니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킨다. 아름답다. 무림사봉 중 한명인 옥선은 초벽하나 하후소하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은 미모를 가지고 있다. 풍운은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옥선의 눈을 보다가 살며시 고개를 숙이니 옥선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자신의 입술을 향해 다가오는 풍운을 바라본다.
“음~ 흡~”
풍운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포개진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몸이 물먹은 솜처럼 힘이 빠진다. 마치 한 마리 새가 되어 공중에 붕 뜬 느낌이다. 풍운은 옥선의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니 옥선의 몸이 밀착된다. 풍운의 혀가 옥선의 입술을 두드린다. 하지만 옥선의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풍운은 굳이 옥선의 입술을 열려하지 않고 입술을 거둔다.
“하이........하이........하이.”
옥선은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풍운은 한손으로 옥선의 턱을 잡고 얼굴을 들게 하고 다시 입술을 가져간다. 옥선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와 미칠 것만 같다.
“쪽”
풍운의 뜨거운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재빨리 물러난다. 아쉽다. 갈증이 난다. 어떻게 해야 타는 듯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풍운이 갈증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풍운의 입술이 다시 다가온다. 옥선은 눈을 감고 온몸에서 힘을 풀었다. 모든 것을 풍운에게 맡긴 것이다. 풍운은 옥선의 입술을 혀로 핥다주니 옥선의 입술이 힘없이 벌어진다. 옥선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풍운의 혀가 입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옥선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으니 풍운의 혀가 옥선의 천장과 잇몸을 핥다주다 옥선의 혀를 찾아본다. 옥선의 혀는 안쪽 깊이 숙어 있었다. 하지만 곧 풍운의 혀에게 발각된다. 좁은 입속에서 도망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풍운의 혀가 옥선의 혀를 살짝 건드린다. 옥선의 혀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온다. 혀와 혀가 엉키며 입안가득 침이 고인다. 옥선은 입안에 가득고인 침을 삼키니 몸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온다. 풍운은 옥선의 몸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혀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오니 옥선의 혀가 따라온다. 풍운은 자신의 입속에 들어온 옥선의 혀를 빨아준다. 옥선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지금까지 숨이 참고 있었기 때문에 숨이 턱까지 찬 것이다. 풍운은 손으로 옥선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살며시 입술을 거두니 두 사람의 침이 길게 일어진다.
“하이........하이........하이.”
옥선은 풍운의 가슴에 고개를 기대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천유는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침상에서 일어났다. 어제 무리를 해서 그런지 몸이 뻐근하다. 천유는 창문을 열었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호흡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멀리 포양호가 보인다. 어제는 잘 몰랐는데 객점이 포양호변에 언덕에 위치하여 창문을 열자 포양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천유는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포양호를 바라보다가 송림에 있는 풍운과 옥선을 발견했다. 천유는 명궁이다. 백장 밖에 있는 개미새끼도 천유의 화살을 피하지 못한다. 당연히 천유는 시력은 남들보다 몇 배나 뛰어나서 멀리 떨어진 풍운과 옥선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풍운과 옥선이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보인다. 천유는 눈살을 찌푸리며 창문을 닫아버린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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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는 사해방주의 숙소가 한눈에 보이는 객점의 창가에 앉아 있었다. 마수가 살펴본 결과 자신의 실력으로 사해방주의 숙소에 잠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수가 술을 홀짝거리며 마시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해방주의 숙소 앞에 화려한 마차한대가 도착하더니 마차 문이 열리고 20대 중반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나오는 장면이 보인다.
“저.......저놈이 어떻게 여기에 있지.”
마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당연히 신강배화교에 있어야 할 놈이 이곳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원.........바로 배다른 형이자 마양의 형이다. 그놈이 나타난 것이다. 마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사해방주의 숙소 건물로 들어갔다. 마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마차를 살펴보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차를 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마수는 그들이 배화교의 정보조직인 사안에 소속된 무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원 그놈이 사안 무사들과 함께 나타났단 말이지. 대충 감이 잡히네.”
마수는 밤이 깊도록 탁자에 앉아 마원이 건물에서 나오길 기다렸지만 건물에 들어간 마원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만 가봐야겠군. 더 볼 것도 없어.”
마수는 객점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악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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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령은 아침에 일어나자 손바닥만한 종이에 서찰을 섰다. 그녀는 서찰을 소매 속에 갈무리하고 객점을 빠져나와 마을 이곳저곳이 이상한 표식을 남겼다. 바로 사천당가의 비밀 암호문이다. 당령이 다시 객점에 돌아오니 모든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위해 탁자에 앉아 있었다.
“어디 갔다 온 거야.”
금막비의 말에 당령은 빙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풍운은 점소이를 불려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에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어요. 우리는 식사가 끝나면 이곳을 떠날 겁니다. 당령님..........당령님은 어디로 가실 거죠.”
풍운이 당령을 보고 질문하자 당령은 금막비를 힐긋 쳐다본다. 금막비는 애써 당령의 눈을 피해버린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같이 갈게예요.”
“우리랑 같이 가면 위험해. 돌아가라.”
풍운 대신 금막비가 짧게 대답한다.
“싫어요. 형부랑 같이 갈 게예요.”
“우리가 놀려가는 줄 알아. 잔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고 돌아가.”
“흥~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는 형부를 따라갈 겁니다.”
“이게 돌아가라면 갈 것이지.”
금막비가 주먹을 쥐고 당령의 머리를 쥐어박으려 했다. 금막비의 눈에는 아직도 당령이 나이어린 꼬마아가씨로 보이는 모양이다. 당령은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때려보라는 도발적인 행동이다.
“흥~ 때린다고 제가 갈 것 같아요. 대려봐~ 때려 봐요.”
“어휴~ 이걸........”
금막비는 인상을 쓰면 고개를 돌려버린다. 당령의 고집은 사천당가에서도 유명하다.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엄마아버지도 못 말리는 고집이다.
“당령님.......우리를 따라가는 것은 자유에요. 그 대신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가 가는 길은 위험한 길입니다. 당령님은 자기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아무도 당령님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아니 도와줄 사람도 없을 겁니다.”
“풍운님........제가 함께 가도 되는 거죠. 와~ 풍운님이 최고야.”
당령은 풍운의 뒤에 말은 듣지도 않은 모양이다.
“일사님 안 됩니다. 당장 돌려보내야 합니다.”
“당령님!! 금막비님이 안된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하죠.”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갈 겁니다.”
풍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여기서 빠지겠습니다. 두 분이서 해결 하세요..........옥선님은 우리랑 같이 가셔야 합니다. 우리랑 가는데 특별한 문제는 없겠죠!”
풍운은 당령에게 눈을 돌려 옥선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예! 없어요. 저는 풍운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갑니다.”
옥선의 말이 끝나자 음식들이 나왔다. 풍운일행은 식사가 끝나자 객점을 나섰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풍운이 금막비를 돌아보며 물어보자 금막비는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당령의 쇠심줄 같은 쇠고집에 항복한 모양이다. 풍운은 점소이가 끌고 온 혈선의 등에 옥선을 태웠다.
“말이 혈선밖에 없네요. 일단 말부터 구하려가요.”
풍운일행이 악양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악양으로 가는 길에 마(馬)시장을 들려 각자 타고갈 말을 구입했다.
“어~ 당령소저가 안 보이네.........금막비님 당령소저 못 봤어요.”
풍운이 상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와보니 당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글쎄요.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천유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령을 찾는다.
“집에 간 모양이죠. 잘 됐네. 우리끼리 출발합시다.”
금막비가 말에 오르면 말하니 나머지 일행도 말에 올랐다.
“잠깐 기다려요.........저도 같이 가야죠.”
멀리서 당령이 달려온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말위에 올랐다.
“어디 갔다 왔어.”
“절 걱정하신 거예요.”
금막비가 물어보자 당령이 밝게 웃으며 답한다. 금막비는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출발한다.
“형부 같이 가요.”
당령도 급하게 말을 몰아 금막비의 뒤를 따른다.
“저 두 사람 분위기 이상하네.”
풍운은 혼자 중얼거리며 금막비를 따라 출발하니 나머지 일행도 악양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당령은 풍운일행이 말을 고르는 잠깐사이에 사천당가가 중원에 깔라놓은 비밀 연락책을 만났다. 아침에 당령이 남긴 표식을 발견한 사천당가의 연락책이 풍운일행의 뒤를 밟은 것이다. 그는 풍운일행이 말을 고르는 시간에 당령에게 신호를 보냈고, 당령이 신호를 보고 그를 만난 것이다. 당령은 아침에 작성한 서찰을 연락책에게 건너 준다.
“이 서찰을 전신구로 세가에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연락책은 당령의 서찰을 받자 다시 연기처럼 살아졌고 당령이 다시 풍운일행과 출발하자 당령이 전해준 서찰을 사천당가로 날려 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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