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향기 - 166부 > 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166(광풍폭우(狂風暴雨))-17

풍운이 음소빈을 안고 무경과 옥선이 있는 방으로 들어오니 정담을 나누고 있던 무경과 옥선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치일행을 만나겠다고 나간 풍운이 몸매가 확연히 드려나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을 안고 들어왔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운랑.......그 여자는 누구에요.” 

“나루터로 떠내려 왔다는 여인이야.” 

“그래요. 그런데 운랑이 왜 그녀를 데려온 거죠.” 

“바로 흑룡방주의 딸인 음소빈이 이 여자야.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살리고 보자.” 

풍운은 음소빈을 바닥에 눕히고 맥을 짚어보니 맥이 너무나 미약하다. 다행이 나루터를 지키던 무사들이 응급처지를 해서 죽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두면 위험할 수 있다.

“옥선........음소빈을 앉혀봐~” 

풍운의 말에 옥선이 소빈의 상체를 일으키니 풍운이 소빈의 등에 손을 대고 수라기를 끌어올려 소빈의 탁(濁)한 기운을 몰아내고 막힌 기혈을 뚫어주었다. 

“음~” 

음소빈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난다. 풍운은 숨을 들이키며 음소빈의 등에 붙이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옥선 가서 죽을 좀 만들어와. 정신이 들면 배가 고플 거야.”

“알았어요.” 

옥선이 밖으로 나가자 풍운은 음소빈을 침상에 눕혔다. 

“운랑........잠시만 자리를 피해 주세요.” 

무경이 침상 옆으로 다가와 풍운에게 나가라고 했다. 

“나가라고. 왜~” 

“소빈소저 옷을 갈아입혀야죠. 이런 옷은 숨쉬기도 답답할 겁니다.” 

“아~ 알았어.” 

풍운이 밖으로 나가자 무경은 소빈의 물옷을 벗기고 다른 옷을 찾아보니 방에는 옥선의 옷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빈은 옥선보다 키도 크고 몸도 크기 때문에 옥선의 옷이 맞지 않는다. 무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불로 소빈을 덮어주고 소빈의 물옷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 보니 풍운이 방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운랑 가셔서 이 옷과 비슷한 옷을 구해 오세요. 옷을 갈아입히려고 하는데 맞는 옷이 없네요.” 

“나보고 옷을 구해오라고........쩝~ 알았어.” 

풍운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무경이 찌려보자 쓰게 웃으며 소빈의 옷을 받았다. 풍운은 총채를 돌아다니며 여자 옷을 찾아보았지만 총채에는 대부분 남자들뿐이라 마땅한 여자 옷을 찾을 수 없자 무사들의 가족들이 살던 마을로 가서 그곳을 지키던 무사에게 여자 옷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무사는 마을의 집들을 뒤쳐서 음소빈의 옷과 비슷한 크기의 옷을 구해 주었다. 풍운이 옷을 준비해서 총채로 달려가니 방문 앞에 무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으셨네요. 옷은 준비해 오셨어요.” 

“마을까지 다녀오느라 늦었어. 이거면 대충 맞지 않겠어.” 

풍운이 옷을 전해주자 무경이 크기를 맞추어본다. 

“대충 비슷하군요. 운랑은 여기서 기다리세요. 소빈소저가 옷을 다 입으면 제가 부를게요.”

무경은 옷을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 다시 나왔다. 

“들어오세요.” 

풍운이 무경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소빈이 침상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음소빈이 인사드립니다. 마수마랑께서 절 구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구한 것이 아니라 나루터를 지키던 무사들이 구해준 겁니다. 그래~ 몸은 괜찮아요.”

“옥선님이 주신 약을 먹고 많이 좋아졌어요.” 

풍운이 방안을 살펴보니 침상 옆에는 먹다 남은 죽과 음식들이 있었다. 옥선이 죽과 약을 먹인 모양이다. 

“어떻게 하다가 나루터까지 흘려오게 된 겁니까?” 

“혁린무의 배에 타고 있다가 물속으로 뛰어내렸어요. 그러다가 폭우를 만나서 정신을 잃은 거죠.” 

“음~ 그래요? 저는 소저도 포양호로 돌아갔을 줄 알았는지 그게 아니었군요.” 

“지금은 가고 싶어도 못가요.” 

“예? 그게 무슨 말이죠.” 

“운랑........소빈소저를 쉬게 해 주세요. 조금 전에 깨어났기 때문에 무척 피곤할 겁니다.” 

“아~ 그렀지.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쉬세요.” 

“운랑..........도치님을 만나려 가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이제 가세요.” 

“도치나 만나고 오라고.......쩝~ 알았어.” 

풍운은 방에서 쫓겨났다. 풍운은 방문 앞에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옥선이나 무경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자신이 음소빈을 방에까지 데려와서 삐진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옥선이나 무경이 이렇게 차갑게(?) 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풍운의 착각이었다. 옥선과 무경은 음소빈의 얼굴에 그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음소빈을 간호하며 그늘의 원인에 대해 물었고 무경은 그동안 자신이 겪은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경이 풍운을 방에서 쫓아낸 것은 음소빈의 이야기를 풍운이 들어 좋을 것이 없고, 음소빈도 풍운이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풍운은 방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도치일행을 찾았다. 도치일행은 풍운이 있는 옆 건물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방에 있지 않고 정원에서 자신들의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일사님 오셨어요.” 

“다들 쉬고 계시는 겁니까?” 

“전투가 끝났으니 할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무기들이나 손질하고 있었어요.” 

풍운의 돌아보니 금막비의 말대로 사우나 천유도 자신들의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참~ 무기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이번기회에 일사님도 무기하나 장만하시죠. 언제까지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만 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번에 무림군의 공격을 받았을 때처럼 언제 또 그런 위험이 닫칠지 모르고..........적수공권보다는 무기가 있는 것이 유리합니다.” 

“무기라?.......어디 쓸만한 무기가 있어야죠.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제가 음양검법을 사용하면 검(劍)이 버티지 못하고 깨져버려요. 음양검법 뿐만이 아니죠. 사사무량도법이나 지옥십팔검을 몇 번만 사용해도 검(劍)이나 도(刀)들이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가죠. 그나마 무림십대 기병 중 하나인 설비가 있지만 설비는 사사천교의 신물이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부담됩니다.” 

금막비도 풍운이 음양검법이나 지옥십팔검을 펼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풍운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다. 

“설비가 일사님의 기(氣)를 감당한다면 다른 십대 기병들도 가능하다는 말씀이네요. 하지만 십대기병이 흔한 물건들도 아니고.........간단한 문제가 아니네요.”

“현실에 존재하는 무기가 없다면 내면의 무기를 사용해 보세요. 저번에 벽궁세가의 지하석실에서 보셨듯이 각 차크라에 형성된 선천강기를 하나로 합칠 수 있다면 무형검(無形劍) 같은 기(氣)의 검(劍)을 만들 수 있습니다.” 

천유가 바닥에 사람의 그림을 그리고 각 차크라의 위치를 그린다음 각 차크라를 연결하는 선을 그리더니 선들을 몸의 중앙에 모으고 다시 모여진 선(線)을 손목으로 연결했다. 풍운은 천유의 그림을 보고 벽궁세가에서 보았던 아수라의 그림과 내면세계 여인이 있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내면세계에는 2명의 정령이 있었는데 한명은 자신에게 선천강기를 전해주고 죽었으며(?) 한명은 내면세계가 살아지며 몸속으로 숨어 버렸다. 몸속에 숨어버린 정령은 ‘천상의 검, 천상의 향기, 천향(天香)’이라고 했다. 천유의 말은 자신의 몸속에 숨어 있는 천향(天香)을 불려내라는 말이다.

“음~ 깜박 잊고 있었는데 천유의 말대로 무형검 같은 검(劍)이 존재해. 그런데 그걸 불려내는 것이 가능할까?”

“예전에 할아버지께 듣기로 국선도나 음양도가 극성(極聖)에 이르려 각 차크라에 숨어 있는 힘을 하나로 합치면 하나의 무기로 형상화시킬 수 있다고 하셨어. 또 기(氣)로 뭉쳐진 무형검은 일정한 형태가 없이 자유로워 검(劍)이 될 수도 있고, 도(刀)가 될 수도 있으며 원반(原盤)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어. 쉽게 말하면 여의(如意)병기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야. 내가 보기에 풍운은 이미 7차 차크라까지 각성된 상태라 조금만 노력하면 전설의 여의병기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천유의 짤막한 설명에 풍운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천유의 말이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다. 

“천유 때문에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어. 고마워~” 

“참~ 일사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곳에서의 일은 대충 끝났잖아요.” 

도치가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으로 풍운에게 물어본다. 

“저도 그것 때문에 왔어요. 도치님의 말대로 이곳에서 우리가 할일은 끝났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저도 도치님처럼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총채주님이나 다른 채주님이 오늘 밤 우리에게 할말이 있다고 하시니 내일 아침에 출발합시다.”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림산에 있는 마수일행과 함유할 생각입니다. 아직 사해방일이 끝나지 않았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도 준비해야겠네요.” 

풍운은 오랜만에 한가하게 동료들과 정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저기 모두 연무장으로 오시랍니다.” 

풍운일행이 정담을 나누고 있는데 무사하나가 찾아왔다. 

“연무장?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저를 따라오세요.” 

풍운일행이 무사를 따라가 보니 무사는 풍운일행은 연무장으로 안내했다. 연무장은 많은 횃불들과 장작불로 대낮처럼 밝았고 장작불에는 여러 가지 고기들이 통재로 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많은 음식과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채주들과 무사들이 잔치준비를 한 모양이다.

“일사님 일행이 오셨네요. 자자~ 이곳으로 오세요.” 

채주 하나가 풍운일행을 연무장의 중앙으로 안내하니 연무장 중앙에는 각 채의 채주들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이쪽으로 앉게.” 

풍운이 도착하자 바닥에 앉아있던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옆자리로 풍운일행을 안내했다. 

“옥선이나 무경이가 안보이네요.” 

“사람을 보냈으니 곧 도착할 거야. 자~ 모두들 내 술잔을 받게.” 

조철봉은 풍운일행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고, 그 사이에 옥선과 무경이도 연무장에 도착했다. 풍운은 조철봉이 일행에게 모두 술을 따라주자 조철봉에게 술병을 받아 조철봉과 옥선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자 모두 잔을 드세요.”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높이 들자 연무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들어 건배를 한다.

“먼저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을 대표하여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주신 풍운일행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모두가 여러분이 노력하여 얻어낸 승리입니다. 저희들은 단지 작은 도움을 드렸을 뿐입니다.”

조철봉이 풍운일행에게 감사인사를 하자 풍운도 답례를 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한 가지 발표할 것이 있습니다. 이건 다른 채주님들도 모두 찬성하신 겁니다.” 

“웅성........웅성” 

조철봉이 발표할 것이 있다는 말에 연무장에 있던 무사들이 웅성거린다. 도대체 무엇을 발표한다는 것인지 궁금한 모양이다. 

“조용히 하세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여기 있는 풍운님은 얼마 전에 옥선과 혼인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이번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만일 풍운님이 아니었다면 우리 장강수로십팔채가 이렇게 쉽게 승리하진 못했을 겁니다. 이건 모든 채주님들과 여러분도 인정하실 겁니다. 또한 저는 늙고 병들었습니다. 더 이상 여러분을 이끌만한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만 총채주직에서 물러나 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로 총채주직에서 물려나고 풍운님께 총채주직을 물려줄까합니다. 이건 다른 채주님들도 모두 찬성하신 겁니다.”

“웅성........웅성........웅성” 

조철봉의 폭탄선언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철봉의 말을 듣고 있던 풍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아무것도 아닌 공을 인정해 주신 총채주님과 여러 채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별 볼일 없는 저에게 총채주 같은 과분한 자리를 주시겠다는 여러분의 뜻도 마음속에 깊이 세계 두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총채주가 될 수 없습니다. 총채주가 될 재목도 아니며 총채주가 되기에는 나이도 너무 어립니다. 아직 배워야할 것이 많은 놈이며 부족한 것이 많은 놈이라 총채주직은 너무 버겁기만 합니다. 죄송합니다.” 

풍운이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밝히자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풍운이 총채주직을 거절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스스로 밝힌 대로 나이가 너무 어리다. 풍운은 이제 18살인데 장강수로십팔채의 채주들은 대부분이 30대 이상이다. 일반 무사 중에서도 풍운보다 나이어린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또한 풍운은 십이사들이 만든 비룡문의 문주이며, 사사천교의 태상장로다. 물론 나이가 어리다고 문제될 것도 없고,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 문제될 것도 없다. 풍운이 총채주직을 거부한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바로 무림공적이기 때문이다. 무림공적이 총채주가 된다면 장강수로십팔채도 무림공적이 된다. 배화교와의 전투로 전력이 약해진 장강수로십팔채에게 자신이 짐이 될 수는 없다.

“풍운님 이건 우리 모두의 뜻입니다. 풍운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풍운님만이 우리의 총채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 제발 우리들의 청을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풍운님.........우리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형제입니다. 풍운님은 우리 삶의 터전을 다시 찾아주셨으니 새로운 삶을 주시거나 똑같습니다. 풍운님이 아니면 누가 감히 총채주가 된단 말입니까? 제발 우리의 청을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조철봉 대신 쾌인채주와 신동채주가 풍운에게 간청하니 다른 채주들도 모두 풍운에게 간청을 한다. 

“휴~ 제가 왜 거절하는지 모르세요. 여러분은 제가 무림공적이란 사실을 잊으셨어요. 무림공적이 총채주가 되면 여러분 모두가 무림공적이 되는 겁니다. 왜~ 그걸 모르세요.” 

“흥~ 백도 놈들이 풍운님일행을 무림공적이라고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영웅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부터 백도 놈들 눈치 보며 살았습니까? 그깟 백도 놈들이 무슨 말을 하던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런 멍청한 놈들이 무슨 말을 하던 상관없습니다. 풍운님은 우리의 영웅입니다.” 

풍운의 말을 각 채주들이 즉각적으로 반박하게 나섰다. 장강수로십팔채는 정사중간으로 백도나 흑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여러분...........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풍운님이 우리들의 총채주님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세요.” 

풍운이 계속해서 대답을 하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자 채주 한명이 무사들을 보고 소리를 치자 무사들이 서로의 눈치를 본다. 

“당연히 풍운님께서 총채주님이 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풍운님만이 우리의 총채주님이 되실 수 있습니다.” 

무사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풍운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풍운은 무사들의 반응을 보고 쓰게 웃고 말았다. 자신이 총채주직을 계속 거부하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분위기다. 

“풍운님........그만 고집부리고 우리들의 뜻대로 총채주가 되어주세요.”

조철봉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풍운에게 말하니 풍운은 길게 한숨을 쉬고 아랫배에 기를 불어넣어 사자후를 터트렸다. 

“모두 조용히 하세요.” 

풍운의 사자후에 장내에 떠들고 있던 무사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좋습니다. 제가 총채주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도 어리고 해야 할일이 많기 때문에 당장 총채주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분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 운랑이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시니 일단은 아버님께서 계속 총채주직을 맞아주시고 운랑을 차기 총채주로 내정하는 겁니다.” 

무경은 분위기를 살피더니 옥선의 귀에 속삭였고, 무경의 이야기를 들은 옥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야기하자 조철봉이나 채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철봉과 채주들은 자신들끼리 숙덕거리더니 조철봉이 다시 일어났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시간 부로 풍운님이 우리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에 내정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조철봉과 각 채주들도 옥선의 의견에 찬성했다. 풍운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장강수로십팔채의 차기 총채주가 되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 것이다. 쉽게 말해 조철봉은 상징적인 총채주이고 실질적인 총채주는 풍운이 된 것이다. 무경과 옥선은 쓰게 웃고 있는 풍운 보며 자기들끼리 킥킥거린다. 무경은 잔머리를 굴려 풍운을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채주들은 풍운에게 축하의 말과 함께 술을 올렸고 풍운은 채주들이 주는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술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풍운도 시간이 지나감에 많은 술을 마셔서 서서히 취기가 올라왔다. 

“옥선.........나는 그만 숙소로 갈게. 너무 취했다.” 

“아버지.........운랑이 많이 취하신 모양입니다. 제가 숙소로 모시고 갈게요.”

옥선의 말에 조철봉이 풍운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채주들과 무사들이 따라주는 술을 계속해서 마셨으니 풍운도 취했을 것이다. 풍운은 도치일행과 채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풍운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옥선이 풍운을 부축했고 옥선의 옆에 있던 무경도 일어났다. 세 사람은 연무장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운랑 많이 취하셨어요.” 

숙소로 가던 중 옥선이 물어보자 풍운은 옥선의 팔을 풀었다. 

“취하긴 했지만 몸도 못 가눌 정도는 아니야.” 

“혼자 걷을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풍운은 호기 있게 한발자국 걸어가다가 비틀거리며 곧이라도 넘어지려 한다. 옥선이 다급하게 풍운을 다시 부축하려하려 풍운은 옥선을 팔을 뿌리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안 되겠군.” 

풍운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기(氣)를 끌어올려 몸속의 술기운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풍운의 몸에서 진한 취향(醉香)이 펴져나가며 몸에서 하얀 연기가 난다. 

“쩝~ 아깝군. 자~ 이제 가요.” 

“운랑 지금은 정신이 드세요.

“취기는 많이 가셨어. 할말이라도 있어.”

무경의 말에 풍운의 무경을 쳐다본다. 풍운은 아직 취기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정신은 또렷한 모양이다.

“저기........소빈소저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말해.”

“소빈소저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혁린무라는 놈.........정말 나쁜 놈입니다. 소빈소저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더군요.”

“무슨 짓을 했는데.”

“차마 자세한 것을 말씀드리기 힘들고.........혁린무라는 놈.........같은 여자입장에서 당장 죽이고 싶을 만큼 못된 짓을 많이 했어요.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흑룡방 방도들을 살리기 위해 상상하기 힘든 고난을 인내한 거죠. 다행이 운랑을 만나 흑룡방 방도들을 배화교의 마수해서 구해내기는 했지만 정작 자신은 구하질 못했어요. 이미 몸과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어서 여자로써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린 거죠.”

무경의 설명을 듣고 풍운은 음소빈이 그동안 어떤 고난을 당했는지 대충은 예상할 수 있었다. 군산이 배화교의 수중에 있을 때 풍운이 군산에 잠입한 일이 있다. 그때 마을 여자들은 배화교 놈들에게 무참히 강간당하고 있었다. 아마 혁린무라는 놈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놈도 많은 여자들을 강간했을 것이며 볼모로 잡은 음소빈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녹림대탑에서 음소빈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멍하니 창문을 보며 울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대충은 예상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도와줄 방법도 없잖아.”

“그녀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아버지와 흑룡방을 걱정하고 있어요.”

“대단한 여자군.”

“휴~ 그건 아닙니다. 죽더라도 아버지와 흑룡방 방도들이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겁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바람인지도 모르죠.”

“무슨 소리야. 죽기는 왜 죽어.........그놈에게 복수하고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남자들은 그게 가능하겠죠. 하지만 여자는...........모르겠어요. 하여튼 운랑이 그녀를 도와주세요.”

“쩝~ 알았어.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울게. 그만 가자.”

풍운은 옥선과 무경의 손을 잡고 숙소로 들어가 보니 음소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라~ 음소빈 소저가 안보이네. 어디 갔어.” 

“다른 방에서 주무시고 계세요.” 

“하긴 이방에서 쉬기는 힘들겠지........우리도 그만 자자.” 

풍운은 대충 겉옷을 벗더니 그대로 침상으로 올라갔다. 기(氣)를 끌어올려 술기운을 몰아내기는 했지만 취기가 모두 가신 것은 아닌 모양이다. 풍운이 침상에 누워버리자 옥선과 무경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고개를 숙인다. 

“옥선소저가 운랑이 같이 주무세요. 저는 다른 방으로 갈게요.”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무경소저가 같이 주무세요.” 

옥선과 무경이 서로 풍운을 양보(?)하겠다고 싸우고 있는데 침상에 누워있던 풍운이 벌떡 일어나 옥선과 무경의 팔을 잡고 끌어당기니 둘 다 침상으로 쓰려졌다. 

“어머. 운랑~” 

“다 같이 자면 되지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아.” 

무경과 옥선은 침상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풍운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다. 

“운랑 놓아 주세요.” 

“운랑..........제발.”

“둘 다 그만 자라고 했잖아.” 

풍운은 옥선과 무경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들을 한 팔에 한명씩 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옥선과 무경에게는 이런 상황이 부끄럽고 낯설지만 풍운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 모양이다. 무경과 옥선은 불안한 심정으로 풍운의 품에 안겨 있었으나 풍운이 별다른 나쁜 짓(?)은 하지 않고 그대로 잠을 청하니 그녀들도 안심하고 잠을 청한다. 새벽이 되자 풍운이 깨어나 보니 무경과 옥선이 자신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 풍운은 옥선과 무경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니 욱하고 욕정이 솟구쳤다. 당장 그녀들을 안고 싶지만 욕정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 그만 일어나야지 더 있으면 못 참겠군.” 

풍운은 옥선과 무경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밖은 이제 막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풍운은 기지개를 펴다가 정원을 살펴보니 누군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풍운은 신발을 신고 자신도 정원으로 내려와 보니 음소빈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험~ 험~ 잘 주무셨어요.” 

풍운이 인사를 건네자 음소빈도 정신을 차리고 풍운에게 인사를 했다. 

“벌써 일어나셨어요.” 

“평소에 잠이 없는 놈이라 빨리 일어났어요. 소빈소저도 잠이 없는 모양이죠.” 

“어제 너무 많이 자서 일찍 일어났어요.” 

“그래요.” 

풍운은 소빈의 옆으로 가서 자신도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음소빈도 별다른 말없이 풍운의 겉에 있었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계속되자 음소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오늘 떠나시다고 하시던데........사실인가요?” 

“예~ 이곳에서의 일이 끝났으니 그만 떠나야죠.” 

“저기.......새벽에 무사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풍운님께서 새로운 총채주님 되셨다고 하시던데........사실입니까?” 

“쩝~ 지금은 아니고 언젠가 총채주가 되겠다는 말입니다.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님은 계속 조철봉님입니다.” 

“무사들 이야기하고 틀리군요. 무사들은 모두 풍운님이 새로운 총채주가 되었다고 했어요.” 

“그래요.” 

풍운은 쓰게 웃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저기.........풍운님께 부탁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군산해전에서 장강수로십팔채가 비록 저희 흑룡방을 믿고 그냥 보내주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모든 은원관계가 끝난 것은 아닐 겁니다. 장강수로십팔채는 우리 흑룡방이 호인채를 전멸(全滅)시킨 것을 잊지 않고 있으니 아마 복수하려 하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장강수로십팔채 무사들은 의리를 생명처럼 여기며 은원관계가 확실한 사람들이거든요.” 

“저도 알아요. 그래서 풍운님께 또 한번 염치없는 부탁을 드리려 합니다. 이번에 장강수로십팔채도 배화교와 싸우면서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제가 포양호로 돌아가서 아버님과 좌우호법들을 설득해서 장강수로십팔채에 투항시키겠습니다. 물론 저희들을 무조건 용서해 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죄는 받아야겠죠.”

“무슨 말씀이지 알았어요. 배화교가 흑룡방을 가만두지 않겠죠. 제가 총채주님과 채주님들께 흑룡방을 용서해 달라고 부탁해 보겠습니다.” 

“저.......정말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소빈소저 말대로 장강수로십팔채 입장에서도 흑룡방이 투항한다면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배화교와의 전쟁으로 전력이 많이 약해졌으니 흑룡방과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죠. 그런데 그일 때문에 고민하고 계셨습니까?” 

“꼭 그런 거 아니지만.........하여튼 풍운님께 그렇게 해 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총채주님과 채주님들이 허락하시면 그때 고맙다고 하세요. 아직 날씨가 차군요. 소빈소저는 그만 방으로 들어가세요. 저는 총채주님을 만나보아야겠네요.” 

풍운은 그길로 녹림대탑으로 가서 조철봉을 찾았다. 조철봉도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채주들도 오늘 중으로 자신들의 채들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챙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풍운은 조철봉에게 음소빈의 말을 전했고 조철봉은 채주들을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조철봉은 그길로 채주들을 소집했고, 채주들은 풍운과 조철봉의 뜻에 따라 흑룡방이 투항해 온다면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풍운은 그 소식을 음소빈에게 전했고 음소빈은 그길로 포양호로 갔다. 풍운은 도치일행과 함께 짐을 챙겨 조철봉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 배에 올랐다. 드디어 길고도 길었던 군산해전을 마무리하고 다시 육지로 향하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