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물

고교생일기 - 1부 5장

본문

설마 뭐 이상한거 하려는건 아니겠지? "




임소연은 익숙하게 보안패드를 해제하고 집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었다.


엄청 친절한 남자다.


나이도 자신과 동갑이였는데, 마음씀씀이가 누구와는 다르게 깊은데가 있어서 꽤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그래도 이웃이라는 이유로 자기 집을 거리낌없이 비워준다는건 그녀의 상식으로는 어쩐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맨 가방을 내려놓고 보기만해도 푹신해지는 소파에 몸을 던졌다.




" 으음.. "




온 몸을 감싸안는듯한 포근한 소파에 누우니 어쩐지 익숙지 않은 낯선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아까 그 남자냄새다.




흐응- 하고 들이켜보니 나쁜 향기는 아니다.




" 운동한다고 그랬는데.. "




몸도 좋을것같다.




" 그런데 나,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 




갑자기 더워져서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 열고 손부채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게 있었다.


그래도 염치는 있으니까, 친절에 보답해야한다.


남자 혼자 살면 식사같은건 어떻게 하겠어.


내가 해줘야지, 그래도 해외에서 가끔 얼굴이나 보는 부모님덕에 요리실력이 일취월장해 친구들은 임셰프라고 추켜세워준다.




" 뭘 좋아할까? "




소연은 가방을 다시 매고 혼자 신이 나서 마트로 향했다.




*




" 뭐 먹고싶어? "




" 그냥 나가서 먹어요. "




윤아영은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 내가 문과여서 하는말이야. 비록 경영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너처럼 돈을 물쓰듯이 쓰면 안된다는건 알아. 알만한 애가 왜 그래? "




누나한테 호기부리고 싶어서요.


미인 앞에서는 누구나 뭔갈 어필하고 싶어하지 않나?




" 나는 돈 말고 내세울게 없나? "




코발트색 후드티와 면바지를 입고나니 왠지 좀 불편했다.


집에서 내가 이렇게 입고 다녔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쩐지 아영이 누나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도 한몫 했기때문인것같다.




" 이건 문과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식모로서 하는말이에요. 뭐 먹고싶어? "




누나요. 아니,




" 한식이요. 얼큰한게 먹고싶은데. 집에 뭐 식재료는 있나 모르겠네요. 가서 장부터 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




" 여기 있어. 저 앞에 롯데마트 맞지? "




" 같이 가죠, 뭐. 짐 들어주는거야 그렇다쳐도.. "




누나가 웃으니 어째 눈이 반사적으로 애교점으로 향한다.


고개는 아래를 보는데 초인적인 인내로 눈을 위로 돌리니 모양 참 우습겠다.




" 킥킥.. 근데 너 얼굴이.. 킥킥킥.. "




" 내 얼굴이 뭐가 어때서요? "




" 그냥 보면 되지, 뭘 그렇게 눈치를 봐? 집주인이 세입자 눈치를 보니 안웃기겠어? 호호.. "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 누나, 강적이다.




-




" 근데 부모님은 어디계셔? "




그냥 녹음해서 가지고다닐까?




" 돌아가셨어요. 그렇다고 미안하실 필요는 없고.. "




" 으응. 어떻게 미안하지 않을수가 있어, 에휴. "




" 덕분에 누나랑 장보러 가고, 그러잖아요. "




누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 코, 입.. 또 맑고 하얀 피부. 하나씩만 봐도 미인인데 그것들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고 옵션으로 애교점까지.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걸 꼽으라면 아무래도 힘들겠지만 난 결국 눈을 고르게 되지 않을까.


동화에 나오는 장난을 자주 치는 여우의 눈이 연상되는 섹시한 두 눈은 크기도 크지만 맑아서 마치 니가 뭔 생각을 하는지 뻔하지, 라고 말하는것같았다.




누나는 무슨 말을 하려는듯 했지만, 이내 배시시 웃고는 말했다.




" 누나는 무슨. 지금은 가사도우미 윤셰프야. 셰프님이라 불러. "




" 알았어요. 셰프님, 오늘의 메뉴는? "




누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것같다.


부모님 없는 놈이 저런식으로 말한다면 듣는 사람은 얘가 진심인지 반신반의할것이고, 그 다음은 측은함을 느낄것이다.


돌아가신지 채 반년도 안지났다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사람들은 그랬다.




" 지금 생각해 둔게 있긴 한데, 흐응. "




" 뭘 줘도 잘 먹으니까 셰프님 실력발휘좀 해봐요. "




" 킥킥.. 셰프님이래. 알았어. 근데 너 키가 왜 이렇게 커? 쪼그만게.. "




" 작다니 무슨.. 내가 누나보다 15cm은 더 클걸요? 나 루저 아니에요. 180 넘은지가 언젠데.. "




사람들이 가면서 자꾸 누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게 처음엔 불편했지만 이제 즐기고있다.


아무래도 이런 미인과 같이 다니면, 이 새끼 돈 많네. 라는 선입견보다는 부럽다던지 질시의 시선이 오갈게다. 


나는 그게 더 편하다.




아영이 누나는 여전히 옆에서 재잘대면서 팔짱을 꼈다.


팔꿈치에 걷다가 푹신한 유방이 가끔씩 닿을때면 나는 막상 내가 리드할줄 알았던 소소한 데이트에서 패배했다는 느낌까지 들어 어쩐지 비참했다.


장보러 왔더니 무슨 데이트냐고 하시면 할말이 없다.


남녀상열지사에 남녀가 함께 있으면서 신체접촉까지 하는데 데이트 이상이면 이상이였지 그 아래라고 보긴 도저히 어렵지 않나?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 또..




*




임소연은 까르보나라를 조리하기로 결심했다.


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쉽게 말해 크림치즈 스파게티다.


김은성같은 경우는 느끼하다고 별로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임소연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릇까지 먹어치울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알리가 없는 임소연은 교복차림으로 이리저리 마트를 돌아다니며 익숙하게 베이컨,크림치즈,파스타 면발, 브로콜리,파슬리.. 등등 필요한 재료를 능숙하게 구입하고 가녀린 팔로 그걸 들고 나왔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 에그, 무거워.. 그나저나 이름도 못물어봤네. 이따가 만들어주면서 꼭 물어봐야지. 이제 막 운동하고 올 시간 된것같은데.. "




" 뭘 줘도 잘 먹으니까 셰프님 실력발휘좀 해봐요. "




" 킥킥.. 셰프님이래. 알았어. 근데 너 키가 왜 이렇게 커? 쪼그만게.. "




임소연은 얼른 옆으로 비켜서며 김은성과 윤아영을 지켜봤다.


뭐라뭐라 서로 속삭이는것처럼 말하더니 깔깔대고, 팔짱까지 낀다.




" 뭐야 저 여자.. "




어쩐지 화가났다.


더불어 김은성,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에게 배신당한것처럼 갑자기 가슴이 저릿했다.




" 운동 갔다가 온다며? 뭐야, 씨.. "




임소연은 갑자기 그가 베푼 친절이 가식이였다던지 혹은 어떻게 해보겠다는 심산이였던것처럼 생각했다.


눈물도 날것같았지만 아직 팔에 들려있는 마트백은 놓지 않고 걸어갔다.




" 그 개새끼가 싸움을 잘하는거냐, 우리가 병신인거냐? "




" 핸드폰만 아녔으면 그냥 준태 불러서 밟으면 되는건데 헛소리좀 하지마라. 븅신아. 허수아비새끼. 옆에서 얻어터지기나하고.. "




" 넌 그럼 한대라도 쳤냐? 병신새끼가. "




" 알았다, 시발놈아. "




임소연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다.


비록 오늘은 무단결석해 뭔가 희열을 느꼈지만 그래도 일단 학적이 명성 외국어고등학교에 있는 학생이다.


다른 의미로는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뜻이다.




그녀가 다니던 여중에서는 상당히 유명하고, 또 질 안좋은 오빠들이라 마치 망태할아버지나 빨간마스크 괴담처럼 그들을 피해가기 일쑤라 마주치기 꺼려지는건 당연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배신감은 가슴 한켠에 비켜두고, 소녀다운 두려움에 걸음을 빨리 해 그들을 피해가려했지만 양아치가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 쟤 이쁘지않냐? "




" 잘 빠지긴 했는데 그냥 가자. 가서 뭐 김연지나 따먹지 뭐. 어차피 걸레라는것만 빼면 저정돈 되지 않냐? "




" 그건 니생각이고. 잠깐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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