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길들이기 - 3부
본문
다음 날.
태근은 적이 놀랐다. 그의 교실 맨 뒷자리에는 늘 불량 헤어스타일의 표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녀석이 앉아있었는데 오늘은 어찌된 요량인지 말끔하기 이를 데 없다. 제 아무리 두발자유화라곤 하지만 선생님들이 내심 정하는 남자머리의 기준길이가 있는데, 재혁이 그 길이에 딱 들어맞는 머리를 하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방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반장을 넌지시 바라본다. 굳게 입을 다물고 또릿또릿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는 반장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어느 정도는 계획대로인 것 같다. 그는 학생들 전체를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자! 아직 성적표는 안 나왔지만 조금 있으면 꼬리표가 나오겠지?"
학생들의 야유가 들려왔다. 태근은 그게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너희가 한 대로 나오는 게 성적이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고 받아들여. 할 놈들은 성적이 나오든 말든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테고, 안 할 놈들은 성적 안 좋게 나와도 그때 뿐이야.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봐라. 정말 길게 보고 잘 준비하면 나 같은 놈도 이렇게 교사가 될 수 있으니까 말야. 기운 내라고."
누군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선생님 같은 놈이 어떤 놈인데요?"
다들 와하고 웃어버렸다. 태근도 껄껄 웃는다. 학기 초에 말 한번 잘못한 재혁이 맞고 기절까지 했었다. 그런 강펀치를 휘두른 교사라는 선입견 때문에 처음에는 학생들이 태근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그러나 학생 하나하나를 꼼꼼히 보살피고 때로는 형처럼, 오빠나 삼촌처럼 다정하게 대하는 그의 품성을 알게 된 아이들은 이제 그를 무척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질문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태근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어떤 놈이냐.... 일단은 말야. 예전에 나는 하기 싫은 거라고 집안일도 때려치고 나와버리고 막 그랬거든. 생각없는 놈이었지. 처음에는 그게 멋있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결국은 내 손해더라구. 그래서 다시 돌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준비는 멈추지 않았어.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시간이 조금 걸려서 그렇지 말야. 그러니 조금 멍청하더라도 꾸준한 놈이라고 할 수 있지."
태근의 말투가 막 조리있거나 논리적인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차근히 말하는 그의 태도는 퍽 많은 공감을 얻었다. 학생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태근의 말은 이어졌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너희가 가진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그건 결코 무한한 자원이 아니란 말야..... 아, 이거 오랜만에 안 어울리게 어려운 말 너무 많이 했더니 목 마르다. 누가 가서 매점에서 음료수 사올래? 좀 마시자."
좀처럼 진지해지지 못하는 담임의 말투에 애들은 또 와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정말로 태근이가 지갑을 꺼내자 남자애들 몇 명이 나서서 돈을 받아갔다. 담임이 말하는 음료수 좀 마시자는 이야기는 혼자 먹겠다는 게 아니라 반 전체에 돌린다는 이야기임을 여태까지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근은 그런 식으로 조회를 마쳤다.
"그럼 오늘 하루도 열심히 하라고. 이상."
예지가 일어나서 구령을 붙이고 인사를 했다. 반 전체의 인사가 끝나자 태근은 손짓으로 예지를 불렀다. 교실을 나와 복도에서 태근이가 말했다.
"우와, 혹시나 했는데 정말 되네? 재혁이한테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반장."
"네? 마법....이요?"
"저 녀석 머리 봤어? 난 저 놈이 젤 안 바르고 학교에 온 거 처음 본 거 같은데? 게다가 머리 길이도 깔끔해졌고?"
".....바르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머리도 뭐..."
예지는 어쩐지 재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태근은 예지를 격려하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이르고는 교무실로 돌아갔다. 고개를 꾸벅하곤 자리로 돌아가던 예지는 문득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자신을 보고 있던 재혁과 눈이 마주쳤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주머니에 든 핸드폰이 부르르- 하며 떨렸다. 열어서 확인한다.
[담탱이랑 뭔 이야기 한거야? 또 내욕했냐?ㅋㅋㅋ]
재혁이가 보낸 문자였다. 예지는 신경질적으로 키패드를 꾹꾹 눌렀다.
[니 칭찬한거야. 욕한거 아냐.]
답장은 금방 왔다.
[아진짜. 이런 빙신같은 머리했다고 칭찬받다니. ㅋㅋㅋ]
[빙신같은 게 아냐. 단정한 거지.]
[그게 빙신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빙신이든 뭐든, 앞으로는 그렇게 다녀. 약속했잖아.]
[언제? 무슨 약속? ㅋㅋㅋㅋㅋㅋ]
예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홱 쳐들고 재혁을 돌아보았다. 재혁은 딴청을 피우며 옆에 있는 다른 녀석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척 했다. 수업종이 울리고 있어서 아이들이 자리에 앉고 있었다. 예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을 서랍 쪽에 숨긴 상태에서 빠르게 쳤다.
[내가 암튼, 그러고 넌 머리 그렇게 하기로. 그게 약속이지, 뭐야.]
[난 약속이라고 한 적 없는데?ㅋㅋㅋㅋ]
[너 정말!]
교실 앞문이 열리고 1교시 수업의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예지는 핸드폰을 끈 다음,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렷! 경례!"
그녀의 구령에 맞추어, 그렇게 또 하루의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들은 한번씩 재혁을 쳐다보았다. 대부분의 선생은 니가 웬일이냐는 식으로 말하며 놀라워 했다. 재혁은 쓰게 웃으면서 대충 대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썩하게 놀면서 식당으로 간 재혁은 급식을 먹는 동안 문자 하나를 받았다. 예지의 문자였다.
[밥먹고 문예부실로 와.]
재혁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시른뎈ㅋㅋㅋㅋ]
그러나 예지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재혁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학생들로 우글거리는 식당에서 키 작은 예지의 모습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재혁의 옆에 있는 누군가 팔꿈치로 툭 치며 묻는다.
"야, 누구 찾아?"
"어? 어...뭐. 아냐. 암것도."
재혁은 서둘러 식판을 비우곤 친구들에게 먼저 간다고 말하고 나왔다. 그리고 별관 3층에 있는 문예부실로 향했다. 어디 있는지는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발길을 하지 않았던 곳이다. 입구의 미닫이 문은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안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예지가 말한다.
"들어와."
"문을 왜 잠그고 있어?"
"괜히 귀찮게 하는 사람이 들어올까봐."
"다른 부원은?"
안으로 들어가던 예지가 재혁을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너도 나한테 관심없는 건 맞네. 문예부는 나 하나야. 나 졸업하고 나면 없어져."
재혁은 별 말없이 예지를 따라갔다. 안쪽에 놓인 테이블에는 찻잔과 책이 놓여져 있었다. 문제집인가 싶어 들춰보니 책이었다. 재혁은 표지의 제목을 읽었다.
"스티븐 킹 단편선?"
두껍고 삽화도 없고 글자로 가득한 책이었다. 만화를 즐겨보는 재혁이가 보기에는 무척 재미없어 보이는 책이었다. 거기에는 코팅지로 싸인 네 잎 클로버가 책갈피로 꽂혀 있었다.
"남의 책은 왜 만져?"
벽쪽에 있는 낮은 선반에서 잔을 꺼내던 예지가 재혁을 흘겨보았다. 재혁은 의자 하나를 끌어다 앉으며 말했다.
"그런 니는? 어제 내 방에 와서 교과서 꺼내보고 있더만."
"그거야, 뭐...."
재혁의 앞에 작은 찻잔이 하나 놓인다. 뜨거운 물에 녹차티백이 담겨 있었다. 재혁은 그걸 보고 혀를 길게 내밀었다.
"우웩. 이런 걸 왜 마시냐?"
"모처럼 사람이 큰 맘 먹고 대접을 했더니... 그럼, 도로 내놔."
"싫은데?"
재혁은 예지가 내민 손을 쳐내고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워. 젠장."
"......당연히 뜨겁지, 그럼 찰까?"
예지 역시 자기 잔에 두번째 차를 타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머그컵을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너 말야. 아침에 그거 무슨 뜻이야?"
"아침에 뭐?"
"내가 앞으로 그렇게 다니라고 했더니, 약속이 아니라며. 그럼 어제 그건 대체 뭔데?"
"아아~ 니가 나한테 팬티 보여준 거?"
"야! 조용히 말해!"
"뭐, 어때. 여기 다른 사람도 없구만."
얼굴이 빨개진 예지 역시, 이 방에 둘 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이런 식으로 헛소리할 게 뻔하기에 처음부터 재혁 보고 이쪽으로 오라고 한 거였다. 여기라면 남에게 들킬 염려가 없었다.
"아...아무튼, 내가 그렇게 하면.... 너.... 머리 똑바로 한다고 했잖아. 그게 약속이지."
예지는 차마 "팬티"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재혁이 손가락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건 약속이 아니라, 계약이라고 하는 거야."
"뭐라고?"
"너.. 공부만 잘하지 다른 쪽으로는 역시 멍청하구나? 니 팬티 보여주기 대 내 머리 병신 만들기. 1대1의 등가 교환 계약이잖아."
"등가... 뭐?"
"그럼 고작 그런 식으로 팬티 한번 보여주고는, 내가 남은 평생 이 미친 머리 모양으로 하고 학교를 계속 다니란 거였어? 진짜? 그게 말이 되냐?"
예지는 재혁의 난데없는 논리에 당황했다.
"말이.. 왜 안 돼?"
"큭큭. 몰라. 나는. 아마 내일이면 어제 봤던 거 다 까먹고 기억이 안 나서 그냥 머리 모양 원래대로 하고 올지도 모르겠다. 여차하면 포인트도 줄 겸 염색이라도 하고 오던가."
"야이, 나쁜 자식아!!"
"그래. 그건 니도 잘 알고 있네. 내가 나쁜 놈이라는 거. 근데 그 나쁜 놈이랑 계약을 맺은 건 너야.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니가. 니 의지로."
예지는 기가 막혔다. 낮은 목소리로 음산하게 말하는 재혁을 보면서 가슴이 턱턱 막혔다. 어제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어제도 단 둘이서 이렇게 방에 있었다. 물론 여기는 문예부실이고, 거긴 재혁의 방이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어제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른다. 건들거리며 비아냥거리는 재혁의 태도에 지친 예지는 이제 추천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그냥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재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니가.... 추천 받도록 도와줄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재혁의 수락에 예지는 마음이 급속도로 풀어졌다.
"뭐? 정말?"
놀라운 마음에 반문도 조금 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재혁은 그리 순순히 협력할 녀석이 아니었다.
"단,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
살짝 웃음마저 걸린 재혁의 표정을 보면서 예지는 조금 불안해졌다. 재혁은 뭔가 궁리하는 듯 하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난 말야, 사람은 도와줘도... 곰돌이는 도와줄 수 없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말했잖아. 사람이면 도와줘도 곰돌이는 안 된다고. 니가 여전히 곰돌이 팬티나 입고 다니는 녀석이라면 난 별로 도와주고 싶지 않아."
"안 입어!"
"거짓말."
"진짜 안 입는다니까!"
"그럼 지금은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고양이? 강아지?"
"진짜!! 그림 같은 거 없는 그냥....."
소리치려던 예지는 순간 입을 닫았다. 내가 왜 내 팬티 모양에 대해서 이 녀석에게 대답해주어야 하지? 그런 의문이 막 들 찰나였다. 그러나 재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차 따져물었다.
"말로는 누가 못 해. 입으로만 안 입는다고 하면 누가 믿냐?"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봤어?"
"거짓말? 잘 하던데?"
"내가 언제...."
"암튼, 난 너 못 믿어. 분명히 아직도 곰돌이 팬티나 입고 그러고 다니겠지."
재혁의 말투에 예지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좋아. 보여주면 되잖아."
자기 자신도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대체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살짝 화까지 나있는 상태였고 자신을 향해 빙글거리며 놀려대는 저 악동에게 한방 먹이고 싶었다.
"진짜?"
재혁의 얼굴에 살짝 놀란 기미가 있는 것이 조금 고소하게 생각되었다. 예지는 손을 내밀고 말했다.
"나도 조건이 있어. 일단 니 머리! 그 너저분한 머리부터 일단 차분하게 하고 오면 보여줄게."
예지가 가리킨 것은 목덜미를 덮고 있는 재혁의 머리 길이였다.
"핫? 진짜지?"
"속고만 살았어?"
"그럼 잠깐 여기서 기다려."
재혁은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방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예지는 방을 서성거리면서 계속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대체 뭐하러 저런 자식한테....."
그렇게 끊임없이 자책하고 또 생각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 십 분쯤 지났을까. 재혁이가 방으로 돌아왔다. 목덜미까지 내려오던 그의 머리가 짧게 잘라져 있었다. 덜 마른 상태로 보아 머리까지 감고 온 모양이다.
"버...벌써 미용실에 다녀온거야?"
그러자 재혁은 예지를 힐끔거리며 침대에 앉았다.
"아니, 그냥 아줌마한테 잘라달라고 했어. 미용실 간 사이에 곰돌이 도망가면 어떡하냐."
"곰돌이 아니라니깐!"
"그럼 보여줘봐."
예지는 마음을 굳혔다. 치마 자락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빙글거리며 놀리던 재혁도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예지는 느낌이 이상했다.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자신의 속살을 간지럽히는 것 같다. 치마 앞부분을 반쯤 들어올렸다. 목소리가 저절로 떨린다.
"봐....봤지? 곰돌이 아닌 거....?"
"안 보이는데?"
"왜 안 보여! 분명히...."
"니 지금 까만색 팬티스타킹 입고 있잖아. 가려서 안 보여."
예지는 분통이 터졌다. 까만색이라고는 하나 스타킹 재질상 팬티가 비쳐보이기 때문에 그게 안 보일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혁은 한사코 안 보인다고 주장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한 손으로는 치마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팬티스타킹을 끌어 내려야만 했다.
"자.... 봐봐... 이제는 곰돌이 안 입는다고!"
"흐음.... 음....."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예지는 무언가 이상한 기척에 깜짝 놀랐다. 살짝 비명을 지른다.
"너 왜 그렇게 가까이....!!"
"가만 있어봐. 흔들리잖아. 제대로 봐야지."
"그...그래도....."
"아주 작은 무늬로 곰돌이가 그려져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냐. 자세히 봐야 알지."
"마...말도 안 돼..."
치마를 들어올리고 있는 그녀의 바로 앞에, 재혁이 무릎을 꿇은 채로 다가와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어어... 치마 자꾸 내리지마. 그러면 무효니까."
"이런 거에 무효고 유효가 어디 있어?"
"검사잖아. 제대로 검사가 안 되면 통과가 안 되는 거지."
"나...쁜 놈....."
예지는 처음 느껴보는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보여지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부분을 재혁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녀석의 숨결이 와 닿을 정도로 바짝이다. 다리를 배배 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또 무효라면서 다시 걷어올리라고 할까봐 저어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예지에게 있어서는 천년보다도 긴 시간 같았다. 재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음. 확실히 곰돌이는 아닌 것 같네."
재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치마를 확 내렸다. 그리고 두 손을 치마 속으로 넣어 팬티스타킹도 바로 했다. 뒤로 한발자국 물러선 재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항상 짓고 있는 비웃음이나 무표정한 얼굴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지만 예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녀석의 볼따구를 잡아버렸다. 재혁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게 어제의 일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예지는 현실로 돌아와 퍼뜩 놀랐다. 방금 전까지는 1미터 가량 떨어져 앉아있던 재혁이가 바로 앞까지 와 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아...아무 것도."
그러자 재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자, 그럼 빨리 또 보여줘."
"뭐...뭐라고?"
사색이 된 예지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모아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다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을 재혁에게 들킬 것 같았기 떄문이다.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무슨..... 말?"
"딴 생각 하고 있던 거 맞네. 어제 했듯이 오늘도 검사해 봐야지. 오늘도 곰돌이 팬티를 입었나 안 입었나."
"안 입었어!"
"말로는 소용이 없잖아."
재혁은 빙긋 웃었다.
"보여줘야 확실히 알지."
예지는 뭔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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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문예부에 혼자 있는 여학생이라... 너무.... 그거 같나....;;;
*
9편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므로, 지금 "기승전찍"의 "기"와 "승" 사이에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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