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의 시대 - 단편
본문
2045년 마침내 테러와의 전쟁이 종식되었다.
20세기 후반 공산주의가 몰락하며 소련이 해체된 이래... 계속될 것만 같았던 미국의 번영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큰 도전에 직면했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된 미국이였지만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진행되며 계속된 각 지역의 뿌리깊은 멸시와 차별에 의해 세계 여러곳에서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조성되었었다.
특별히는 이슬람 지역이 미국에 대한 반감은 그 정도가 남달랐다. 당연한 것이였다. 당시 미국에게 중동의 갖는 의미는 특별했다. 중동은 미국에게 가장 큰 원유 공급원이였고, 이곳에서 패자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에너지 수급에 중대한 차질이 생길수 밖에 없었고 세계 제1의 석유소비국인 미국의 산업구조는 타격을 받을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군다나 중동이 갖는 지정학적 의미 역시 남달랐다. 중동은 바닷길의 주요한 루트였고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와 연결된 요충지중의 요충지였다. 즉 다리와 같은 지역이였다. 이곳을 거치지 않으면 바닷길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즉 중동은 미국에게 너무나 중요한 지역이였다. 때문에 이 지역에서 미국이 국가적 역량을 동원.... 사활을 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였다. 정확히는 중동에서 패권국가가 등장하지 않고 평화가 유지되는것이 미국으로선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이미 70년대 OPEC의 결정에 의한 석유가격의 폭등을 경험한 미국이였기에 이곳에서 패권국가가 등장 국제석유가격을 떡주무르듯 조정한다면 상당히 곤란했다.
결국 미국... 정확히는 미국 월가의 자본가와 워싱턴 정치가들의 선택은 한가지였다. 절대 중동을 포기할수 없다. 그들의 정책은 너무나 간단했다. 중동에 친미정권을 세우고 군대를 파견... 이들 국가를 보호해준다. 그리고 보호비 명목으로 석유를 싸게 사온다. 이게 바로 미국의 대 중동정책이였다. 사우디에서 그랬고, 쿠웨이트에서도 그랬다. 카타르에서 그랬고, 아부다디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탄압하고 차별적인 정책을 실시해도 미국은 뒷짐만 졌다. 미국이 필요한 것은 정확히는 석유일뿐 미국은 중동국가를 믿지 않았다. 심지어 우방중의 우방인 사우디도 안믿었다. 왜냐..... 이미 1970년대 이란의 팔레비 왕가를 그렇게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당시 최신예 전투기 F-14 톰캣까지 팔아주며 돈독한 우의를 과시했지만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은 하루아침에 반미국가로 돌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였다.
언제 사우디에서 이슬람 혁명이 발발 자신들에게 칼을 겨눌지 알수가 없는 지라 미국이 사우디를 믿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미국이 믿는 것은 이스라엘이였다. 이스라엘은 미국에게 중동의 등대였고 나침반이였다. 중동에 영토가 없는 미국에게 정보를 수집하여 가장 먼저 알려주는 스파이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였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미국에게 이스라엘이 요긴했기 때문이였다. 이용가치가 있었기에 그냥 쓰는 것일 뿐이였다. 정확히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됐다. 정의고 나발이고 그런걸 떠나서...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들도 영국의 탄압을 피해 자유에 대한 열망에 독립운동을 했고 그렇게 건국된 미국이였지만 팔레스타인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외면한다. 뒷짐만 지고 구경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이스라엘 편만 든다. 아랍민족이 미국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했다. 원래 아랍민족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광활한 지역에 걸쳐 하나의 언어 아랍어를 쓰며 같은 알라를 믿는 이슬람을 신봉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시리아와 이라크, 요르단, 사우디, 오만, 예멘등등으로 갈라져 국경이 그어져 있다. 같은 아랍어를 쓰는데도 나라가 갈라져 있다.
무엇보다 지도층은 미국의 로비를 받아 미국에게 국가의 재산을 아낌없이 헐값에 막퍼주며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다. 테러조직의 창시자 오사마 빈라덴이 치를 떨며 반미테러에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였다. 그의 눈엔 미국이야말로 도적중의 도적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였을 것이다.
미국과 결탁한 사우디의 왕가는 미국의 맨하튼에 빌딩을 사고 시티은행 최대주주로서 언제라도 국내 혁명이 발발하면 미국으로 튈 준비를 해둔 것이였다.
즉 빈라덴의 조국 사우디의 왕가에게 국가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였다.
빈라덴의 눈에 그들 역시 배신자들이였다. 그들은 미국이 주는 달콤한 과실에 눈이 어두워 형제를 배신하고 국부를 외국에 막 퍼주는 병신들이였을 따름이였다. 날이 갈수록 깊어진 빈라덴의 증오는 마침내 테러라는 이름으로 실행된다. 이미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지도층의 한심한 작태에 동조자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심지어는 국적도 불문하고 세계 각국의 아랍국가에서 젊은이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사람이 모이자 그들의 테러는 더욱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군사시설에만 테러를 했으나 나중에는 증오심이 깊어지며 민간인 시설에도 테러가 이어졌고, 결국 고층 빌딩에 비행기를 납치 충돌시키는 9.11 테러와 같은 말도 안돼는 테러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 전쟁은 끝날줄을 모른다. 서로에 대한 무지와 멸시에 서로에 대한 증오심은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미국은 매번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새로운 신흥세력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2030년..... 테러는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기술이 발달했고, 무인기, 무인병기들.... 첨단 무기들이 개발되었지만.... 그것이 테러를 막지는 못한다. 어떤 기술도 한길 물속은 알아도 열길 사람속은 알수가 없었다.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알길이 없었고, 테러를 진압해도 테러리스트는 계속 등장했다. 즉 죽여도 죽여도 끝이 안보이는 전쟁이였다.
더군다나 개발된 미국의 첨단 무기들을 테러리스트들이 가장 많이 상주하는 자국의 영토인 뉴욕에 쓸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테러들.... 이제 테러는 미국에서 일상이 되어갔다. 그리고 2030년은 테러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제 이슬람 전사들만이 테러를 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테러뉴스에 이제 다른 문명권 역시 테러에 가세하게 된다.
일단 러시아의 테러리스트..... 원래 러시아는 소련을 계승한 국가로서 강대국이였지만 우크라니아등 각국이 독립하며 많은 영토를 상실 그 국제적 지위가 상당부분 상실되었다. 무엇보다 20세기 후반 냉전이 종식되며 많은 양보를 한 러시아에게 미국의 태도는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즉 나토의 확대를 통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며 안보위협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차별을 일삼았다. 물론 천연가스를 값싸게 약탈하며 그들 정치, 권력자와 결탁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사실 미국의 행위는 정말 가혹했다. 많은 양보를 한 러시아게 미국이 안긴 것은 정치,경제, 군사적인 고립이였던 것이였다. 러시아인들이 반감을 품는것은 아랍못지 않은것이 당연했다. 결국 러시아 역시 미국에게 등을 돌렸다. 아니 정확히는 러시아의 권력층은 여전히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계속되는 차별에 러시아에서도 민족주의가 꽃을 피운다. 말도안돼는 빈부격차와 실업..... 그리고 마피아.... 러시아 국민의 피폐한 삶은 그들 역시 테러로 몰아넣고 있었다. 삐뚤어진 애국심은 온러시아를 뒤덮는다. 그러다 말이 아닌 행동을 기치로 내건 테러단체가 결성됀다.
두번째는 일본의 테러리스트들이였다.... 계속되는 세계화로 일본의 산업과 농업은 무너지며 대량의 실업자가 양산된다. 일본 역시 장기불황의 시대에 접어들며 과거 화려했던 태평양 전쟁의 시절을 회상하게 됀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한국인, 중국인들에 대한 반감에 혐한, 혐중 시위로 시작된 그 시위는 2030년에는 마침내 미국에 대한 불만으로 폭발하게 된다. 사실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을 안겨준 국가가 미국이였기에 그것은 당연했다. 그들 역시 타도 미국을 기치로 대동단결하여 테러에 가담하게 된다. 그 시작은 도쿄의 한 선술집에서 시작된 카미카제단이였는데... 원래 자살 공격은 일본이 원조였다. 계속되는 이슬람의 테러에 자극받은 그들은 테러를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그들은 곧 일본의 실업자와 젊은이를 선동하였고 일본사회에서 이슬람 무자헤딘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며 인원을 모으며 국제사회에 테러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그밖에도 중국과 인도의 테러단체.... 아프리카의 테러단체.... 심지어 남미 체게바라의 후계자들까지 테러에 나서게 됨으로서 미국사회는 일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이 세계에 뿌려놓은 세계화의 씨앗.... 미국의 글로벌 기업과 월가의 자본이 번영할수록 그들의 반감 역시 깊어진다.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과거 테러가 미국밖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이들 국가의 테러집단들은 미국의 영토내로 야금야금 들어와 미국의 영토안에서 테러를 자행했다.
뉴욕에서 시카고에서 덴버에서 미주리에서 이들의 테러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지역에서 행해지게 된다. 희생자는 나날이 늘어갔고, 사회불안은 가중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뿌리깊은 인종차별까지 가세하며 이제 흑인들까지 폭동을 일으키고 심지어 독립까지 요구하기에 이른다. 거기에 라틴계가 많은 텍사스와 같은 주는 노골적으로 독립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제 테러는 미국에서 일상이 되며 미국은 하루가 다르게 안전하지 않은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대통령은 암살되고.... 사회지도층들은 미국을 떠났다.
결국 미국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키운 군대를 자신들의 국민에게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정치인이 평화와 인권을 원했지만 연방의 분열만은 용납할수 없었기에 오래전 치룬 남북전쟁때처럼 신속하게 군대를 투입하는 안건은 연방의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었다.
불심검문이 일상화되고 미국은 자유국가에서 경찰국가로 탈바꿈했다. 자유를 부르짖었던 미국은 과거 소련처럼 모든 국민을 감시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국가로 변모해갔다. 그 몰락은 소련의 퇴장과 유사했다. 소련역시 핵보유국에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결국 사회의 혼란에 국가가 무너진 것이였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첨단 무기들이 개발되었고 핵무기 역시 건재했지만 그것이 국가의 존속을 보장해주는 못하는 것이였다.
사회혼란에는 답이 없기는 미국이나 소련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그렇게 한때 자신의 경쟁자였던 소련처럼 그렇게 무너져갔다. 그리고 국제적인 위상 역시 추락.... 달러화에 대한 패권역시 상실했다. 계속되는 혼란에 세계 어느곳에서도 이제 달러를 반기지 않는다. 가장 군사력이 강한 국가였지만 연일 계속되는 혼란에 그것은 당연한 것이였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의해 유지되던 힘의 균형이 그때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국과 연줄관계를 맺었던 각국의 지도자들은 미국이 자국의 일에 바쁜틈을 이용 이때부터 군사력을 강화 영토전쟁의 시대가 다시한번 열린 것이다. 이제 미국의 눈치따위 볼 필요가 없는 것이였다. 전쟁에서 승리가능성이 보이면 일단 선전포고를 하고 본다. 세계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다시한번 전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였다. 중국과 러시아의 충돌.... 일본과 한국의 충돌.... 심지어 나토가 무너지며 프랑스와 독일마저 전쟁에 돌입하며 증오의 시대는 다시한번 막을 올리게 된 것이였다. 그리고 마침내 중동에서는 아랍의 민족들이 그렇게 원했던 통일국가가 등장하게 된다.
이라크의 북부 쿠르드족이 건립한 쿠르디스탄 왕국은 여타의 다른 아랍국가와는 달리 부패가 덜하고 건국왕 압둘라 1세는 유능한 지도자였다. 외교술이 탁월했던 압둘라 국왕은 각국의 지도층을 뇌물과 여자.... 공작으로 구워삼아 재빨리 국가의 승인을 받는다.
거기에 그는 정치술 역시 탁월하였다. 수니와 시아로 갈라진 이슬람의 사회에서 그는 신앙심보단 능력과 실적으로서 관료를 임용하였고, 화해와 공존을 기치로 이슬람 세계를 하나로 묶는데 성공 그의 나라는 옛 이라크의 북부에서 번창을 거듭한다. 그의 정책이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에 세계에 대한 탁월한 그의 식견이 한몫했다. 원래 부족사회인 이슬람 사회는 이방인을 극도로 꺼린다. 정확히는 여행객이나 순례자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자신부족의 일에 이방인이 개입하면 그것을 큰 수치로 받아들인다.
그는 그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과거 이라크를 지배했던 사담 후세인이 실패한것이 시아파에 대한 차별이였고, 이라크 전쟁이후 수니파에 대한 차별이 IS같은 세력의 발호를 야기한 것임을 그는 간파하고 있었다. 물론 쿠르드족은 수니파지만 뿌리깊은 부족간의 반목역시 이들에게는 골칫거리였다.
각 부족은 자신들의 대표를 고위직에 앉히기를 원했고 그것은 부족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압둘라 1세는 정말 현명한 군주였다. 그리고 역사에 능통했다. 그는 오늘의 문제를 역사에서 찾고자 했다. 놀랍게도 그가 찾은 해법은 서유럽의 봉건제였다. 그는 이슬람 사회에서는 드물게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군주였다. 비록 영주와 군주로 갈라져 폐쇄적으로 보일법도 한 암흑기 서구의 중세제도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을 수탈했던 서구의 역사에서 찾고자 했다.
장원제를 기반으로 한 왕과 영주의 쌍무적 계약관계... 이게 바로 서구봉건제의 특징이였다. 즉 왕이 영주에게 봉토를 하사하면 영주는 그곳에서 세금징수권과 불입권의 특권을 누리며 이를 기반으로 왕에게 충성하는 제도가 서구 봉건제의 핵심이였다. 영주는 자신의 영지에서 그야말로 왕처럼 군림하는 제도가 바로 그것이였다. 하지만 압둘라 국왕의 눈에 이 서양의 봉건제야말로 부족간의 뿌리깊은 분쟁을 종식시킬수 있는 묘책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가 주시한 것은 바로 불입권이였다. 불입권.... 자신의 장원에 대한 영주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는 불간섭 조항.... 그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치고 있었다.
만약 그 지역의 족장이 수니든 시아든 자신들의 신앙을 선택할수 있다면.... 외부세력... 심지어는 왕조차도 영주의 장원에 대한 불간섭의 약속이 지켜질수 있다면.... 자신의 부족들이 사는 영토에만 힘쓸뿐 분쟁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일정비율의 세금만을 중앙정부에 납부하게 한다면 피로 얼룩진 중동의 역사가 적어도 쿠르드 민족사이에서는 사라지지 않을까... 그는 즉시 이 제도를 자신의 왕국에 도입하였다.
각 부족을 불러 각 부족의 영역을 규정한후 불간섭의 약속을 규정하였다. 물론 중앙정부에는 의회를 두어 인구비율로 각 지역의 대표를 파견하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건국한 나라에서 분쟁은 사라졌고, 전쟁으로 소진되던 에너지는 생산적인 일에 쓰여졌다. 그리고 건국 10년이 즈음했을무렵 주변의 할거하는 세력들은 너도나도 왕국에 연합으로 가입하기를 원하기에 이르고 있었다.
사실 이 제도가 중세의 봉건제이기는 했으나... 현대적으로 디테일한 수정을 거친 제도였고, 무엇보다 아랍언론에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것이 결정적이였다.
압둘라 1세가 정말로 머리가 좋았던 군주인 점은 중세에 기반한 봉건제를 부족 자결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세상에 소개한 데에 있었다. 모든 부족은 자신부족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외침은 너무나 달콤한 외침이였다.
그것은 전쟁으로 지친 중동의 모든 국가들을 이 새로운 국가아래로 앞다투어 모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랍연맹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랍연맹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아프간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강대한 연합체였고, 수천개의 부족은 그 안에서 자치를 이루는 형태였다. 무엇보다 부패하고 타락한 과거의 지도층과는 달리 신흥 영주세력중에는 유능한 인물도 많아 자신의 부족을 발전시키는 지도자도 많았다.
각국은 아랍연맹내에서 경쟁하며 오히려 기술발전은 촉진되었다. 그리고 2045년 마침내 이스라엘마저 아랍연맹의 한주로 가입하게 되는데.... 물론 그 이스라엘조차 불간섭주의는 보장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였다.
그리고 그때 쯔음...... 미국의 내전은 종식되며 공식적인 테러와의 전쟁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미국은 만신창이였다. 하늘을 수놓던 고층 빌딩들은 뼈대만 남았고,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는 부지기수였다. 무엇보다 각주는 독립하며 이제 과거 아랍처럼 갈라지며 서로를 증오하는 형태로 변해버린 것이였다.
유럽의 전쟁이 끝난것도 그때쯤이였다. 유럽 역시 만신창이였다. 이제 세계의 패권은 아랍연맹이 이끌게 된 것이였다. 그리고 세상은 변했다. 신흥 강대국인 아랍연맹의 제도는 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보급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분쟁으로 얼룩진 증오와 피로 얼룩진 한세대를 보낸 각국에서는 아랍연맹의 제도가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국가의 분열이였다. 유럽에서는 각 도시가 독립을 선포하고 중앙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형태의 지방분권형 정부가 유행하게 되었다. 즉 과거로의 회귀였다. 더이상의 전쟁을 원하지 않은 중앙정부 역시 이제는 그것을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에서도 중세의 봉건제는 크게 유행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역시 이러한 시대의 유행을 거스를순 없었다. 세계가 전쟁을 겪으며 혼란을 겪은 대한민국 역시 분쟁에 휩싸여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혼란의 시대를 겪은 것이였다. 이 혼란의 시대를 처방하는 방법은 서로 안보는 것이 최선이였다.
처음에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독립을 선포.... 우리 지역의 운명은 지역민이 선택한다는 기치로 정부에게 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시민운동의 형태로 진행되었지만 사실 그것은 지역의 유지들 즉 자본가들이 뒷돈을 대줬기에 가능한 것이였다.
그렇게 전라도와 경상도가 폭넓은 자치권을 인정받자 충청도, 강원도 역시 같은 지위를 획득하였고, 이듬해에는 인천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였다. 이나라는 더욱 쪼개지게 되었다. 수원에 삼성 왕국이 들어서고 울산에는 현대왕국이 들어서며 이나라는 수십개의 소국으로 분열되기에 이른 것이였다. 그리고 2045년 즈음에는 세습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며 이나라는 본격적인 계급사회로 돌입하게 된다. 아랍연맹에서 시작된 이 봉건제는 한국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변질되고 말았다. 그것은 불교가 한국에 와서 타락하고 유교가 한국에 와서 타락하고 기독교가 한국에서 타락한 역사를 답습한 한국에서는 변질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가까운 시대의 과거 대한민국이라 불렸던 남쪽의 한 도시의 이야기이다. 이 도시에 공장을 둔 기업이였던 일신이라는 기업은 이 혼란한 시대... 지역민을 선동... 재빨리 도시를 독립시켰다. 그리고 중앙정부로부터 일체의 불간섭 조항을 획들.... 세습을 법률에 정함으로서 진정한 봉건제를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도시민의 땅을 강제로 몰수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조폭이라 불렸던 용역이라 불렸던 군대가 개입.... 반항하는 자는 가차없이 노예로 삼았고, 재산몰수는 당연한 것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세상이 달라져 중앙정부의 개입은 없었다. 이것은 이 군주제가 시행되는 현대적인 도시의 이야기이다.
** 이사기념으로 써본 겁니다. 아아... 당분간은 제가 어느분의 소설을 이어쓰기로 해서 그걸 써야해서... 그건 카페에 쓰고 있고... 이건.... 나중에 한번 써볼까 하고 준비해본 겁니다. 쩝.... 조만간 쓸 예정입니다. 프롤로그가 다소 장대하긴 하나 심각한 소설 아닙니다. 걍..... 뭐... 노예소설이죠.... ㅋㅋㅋㅋㅋㅋ 야한 장면도 이제 나오겠죠...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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