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 5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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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을 전달하고 차에서 대기한다는 인호의 연락이 있어 일어서려는 참에 마리코가 강주를 붙잡아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다.
“오빠,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얘기를 해 주고 가야지.”
“음...... 글쎄, 붙잡고 있는 그 친구를 언제까지 잡아 둘 수도 없고...... 풀어주게 되면 바로 경찰서로 뛰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그래도 이제 다 끝난 일인데 상관없지 않겠어요?”
“그렇지가 않은 게 일단 수사가 시작되면 주식가격이 조작되었다는 것도 결국은 드러날 거고...... 한 날 한 시에 십억 이상의 매도가 동시에 일어나고 같은 날 납치사고가 있었다면 당연히 의심을 하게 될 거 아니야?”
“어머! 그러면?......”
“허허...... 그렇지만 안심해도 돼. 전부 노숙자들 명의로 처리한 거라서...... 나한테 송금할 때는 또 전혀 다른 사람 명의로 보내기 때문에 들킬 염려는 없어. 그렇지만 나도...... 일단 수사 대상에는 포함이 되겠지.”
“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을 언제까지 붙잡아 둘 수도 없는 일이고......”
강주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마리코를 다시 바라본다.
“마리코...... 아빠가 그렇게 영향력이 크다니까 하는 말인데...... 실제로 패션회사를 연결시켜 볼 수는 없을까? 그러면 저 친구를 풀어줘도 우리가 추진했던 일들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게 증명될 테니까 우리 주장에 어느 정도는 무게가 실리게 될 텐데......”
“음...... 그러면 그런 것을 전화로 할 얘기도 아니고...... 그럼 일단 아빠한테 가 봐야 할 텐데......”
“아! 그래야 하는가?......”
“음...... 그럼...... 일단 내가 일본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게요. 무슨 말인가 알겠어요.”
“남편하고 같이 안 가도 괜찮아?”
“아유, 그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래, 그럼 그 친구를 지금 풀어 주라고 해도 되겠지? 오래 붙잡고 있어봐야 잘못하다간 괜히 얼굴만 팔릴지도 모르는데......”
강주는 즉시 전화를 들어 박부장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마침 마리코의 남편이 객실로 들어온다. 마리코의 통역으로 얘기를 들어보니 마침 고영준 의원의 비서관을 통해 강주에 대한 얘기를 전달했다는 말이었다.
“자, 그럼 나는 이만 가 볼 테니까 전화로 얘기하자.”
“네, 오빠...... 조심해서 가요. 나는 첫 비행기로 돌아갈 테니까......”
영통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강주는 다시 강원장에게 전화를 넣는다.
“나요. 어떻게 된 겁니까? 아직도 연락이 없어요?”
“아, 아...... 네, 이거 무슨 일인지...... 이거 큰일 났네요.”
“이 양반아, 그럼 빨리 실종신고하고 출국금지 시켜야지.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어쩌면 벌써 외국으로 날랐는지도 모를 일 아니야?”
“네, 네?......”
“허...... 참, 나야 당신하고 유미에게 뒷돈만 댄 거니까 내 돈 십 몇 억에 대한 채권을 당신들한테 행사하면 그 뿐이지만, 유미나 당신은 사업주체가 되니까 금융사고가 터졌다 하면 그게 전부 당신하고 유미가 뒤집어 쓸 일인데 뭐 하는 거야? 지금......”
“네?...... 뭐라고요?”
“아! 뭐해요? 빨리 신고하지 않고...... 나는 그 회사에 투자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걸 몰라요?”
“아, 아...... 네, 알았습니다.”
사실이 그렇다. 강주는 회사에 대한 채권을 확보하고 있으니 회사의 대표인 강원장과 유미에게 채권행사를 하면 그 뿐인 것이다. 다만 이미 유미의 전 재산은 강주에게로 넘어와 있는 상태니 회사의 세금과 인건비를 정리하고 남는 돈이 있다면 그 돈을 회수하겠지만 이미 그 금액을 맞춰서 인출을 했으니 결국 회사건물과 강원장의 집, 그리고 의료기계 따위를 처분해서 강원장의 옷만 벗기면 그만인 것이다.
직원들이야 강주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모두 망해서 빛 잔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차라리 안정적으로 퇴직금을 포함한 임금을 받아 갈 수 있는 입장이 되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풀어준 직원은 그 길로 경찰서로 갔는지 강원장의 신고와 아울러 다음날 조간부터 매스컴에서는 희대의 사기사건, 강도사건으로 보도를 하며 야단에 법석이고 강원장과 유미는 즉시 연행되어 가고 강주에게도 며칠 뒤 참고인 조사를 한다는 연락이 오게 된다.
의류회사는 이미 영진의류로 개명을 했고 그 대표가 영진그룹회장의 딸이라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영진그룹 앞에는 주식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이 모여 농성에 돌입한다.
“어머! 최이사......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영진 회장으로부터 강주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이미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니 몹시 당황한 목소리로 강주에게 묻는다.
“아! 회장님...... 글쎄 모르겠어요. 그 자식이 돈을 빼돌리고서는 강도를 당했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갑자기 유미하고 강원장이 무슨 사업이야? 사업은?......”
“아! 그 일은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어서 말을 해보라니까......”
강주는 할 수 없다는 듯 유미의 결혼을 지켜주기 위해 유미와 함께 꾸민 일이라는 쪽으로 설명을 몰아가고, 강원장을 개입시킨 배경은 이혼한 민희의 문제로 강원장과 사장과의 알력을 풀어주기 위해 할 수 없이 개입시킨 쪽으로 설명을 한다. 어찌 됐든 주위 사람들의 입장을 배려하다가 자신도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어머! 그러면 그 돈을 들고 간 놈이 강원장 끄나풀이라는 거야?”
“네, 그런데 그 놈이 지금 뒤늦게 나타나서 강도를 당한 척 하고 있으니까 기가 막힌다는 거죠. 아무래도 강원장하고 짜고 하는 짓 같은데요.”
“뭐야? 이 새끼를 그냥......”
“아직 정확한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두고 봐야지요. 어쨌든 잘못하면 이 일 때문에 강원장 입에서 회장님과의 관계라든지 다른 불미스런 일로 불똥이 튀게 될지도 모르는데 변호사를 통해서 면회를 하시던지 강원장 입단속을 좀 해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참고인 조사에 응하라는 연락이 와서 조만간에 가봐야 합니다.”
강주는 회장을 배려하는 척 강원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모양이다.
“아유, 그러게 그냥 결혼이나 하라니까 무슨 사업을 한다고......”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유미가 죽어도 이혼은 못하겠다고 해서 저라도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아유, 이 미친 년...... 알았어, 일단 내가 강원장 입은 어떻게 해 볼게......”
“회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힘닿는 데까지 알아보겠습니다.”
“으응, 그래, 끊어......”
전화를 끊자 옆에서 숨죽이며 듣고 있던 혜영이와 민희, 희숙이가 배꼽을 잡으며 방바닥을 구른다.
“호호호...... 배우가 따로 없어......”
“어머! 그럼 자기도 검찰에 출두해야 하는 거야?”
민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주에게 묻는다.
“음, 가긴 가야 하는데...... 일단 일본에서 연락이 와야 가지.”
“인호씨는 어디 보낸 거야? 아침에 여긴 들르지도 않고......”
“으응, 뭣 좀 가지고 오라고 보냈어.”
마침 말 떨어지기 무섭게 인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응, 왜? 안 돌아오고......”
“아! 이사님, 여기 지금 일본 대사관인데요. 여기서 돈을 줄 수가 없답니다.”
“뭐야? 왜?......”
“여기서도 지금 신문에 난 기사 때문에 입장이 조심스러운 모양입니다. 우리가 자칫 자금 융통을 서툴게 하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잘못하면 국제문제로 비화한다면서......”
“으음....... 그렇지. 우리가 그 생각을 미처 못 했어. 돈을 찾아오고서 일을 저지르는 건데......”
“어떻게 하지요? 일단 마리코상에게 전화를 해 보시지요?”
“그래, 잠시만 대기하고 있어라. 아니...... 그냥 돌아와라. 어차피 거기 있는 돈이 어디로 없어질 것도 아니고......”
“그럼......”
“그래, 마리코한테는 내가 전화를 해 볼 테니까...... 뭐, 당장 그 돈을 쓸 것도 아니니까 거기 있는 게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어.”
“네, 알았습니다.”
저녁 무렵 마리코와 통화가 연결되었다.
“그래, 어디니?”
“지금, 아빠하고 막 말씀 끝냈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고치고 다닌다고 혼났어요. 치......”
“으응? 하하하......”
“웃지 마요. 누구 때문에 혼났는데......”
“그래, 어떻게 해주신다고 말씀이라도 있었어?”
“응, 우리 일 도와주시는 아저씨한테 말씀하셨으니까 무슨 답이 있을 거야. 내가 다시 전화해 줄게......”
“응, 그래...... 그리고 지금 여기는 뉴스에 난리가 났거든. 나도 내일 쯤 조사 받으러 들어가야 하고.......”
“으응, 그래서?......”
“맡긴 물건을 걱정이 돼서 안 돌려주는 모양이야. 다음에 네가 건너와서 찾아줘야 되겠다고......”
“어머! 그래요? 푸훗...... 쌤통이다. 호호호...... 오빠, 이제 나한테 잘 보여야 되겠네......”
“허허...... 그래, 나중에 전화 걸어라.”
“네에......”
강주는 전화를 끊고 외출을 하려는지 옷을 갈아입는다.
“다 됐으면 나가요.”
“응, 그래......”
혜영과 강주가 다정히 포즈를 취하자 민희와 희숙이가 흰자위를 드러내며 째려본다.
“아유, 계집애들...... 눈알 튀어나오겠다. 호호호......”
“어디 가는데? 둘이......”
“으응, 무슨 국회의원이라던데....... 누구라고 했지?”
“국회의원이 아니고 그 비서관...... 혜영이 가게에서 만나기로 했어.”
“어머머! 오빠...... 이젠 그런 사람까지 만나는 거예요?”
“뭐, 그 사람들은 별다른 물건들이냐? 다 똑같은 사람들이지...... 갔다 올 테니까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어.”
“네...... 다녀오세요.”
하모니 카페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바로 자리를 안내해주고 기다리던 사십대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 앉으십시오. 제가 최강주입니다.”
“아! 네, 젊으신 분이시군요.”
“네, 그래...... 뵙자고 하신 이유는 뭡니까?”
“네...... 저희 의원님께서 본의 아니게 죄송하게 됐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하셔서......”
강주는 안 그래도 요즘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에 단지 사과를 하겠다고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작태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습니까? 그럼 행사하신 압력을 철회해 달라고 해 주십시오. 그 뿐입니다.”
“아! 네, 물론 그건 벌써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뭡니까?”
“아! 너무 그렇게 화만 내지 마시고...... 혹시 유이치 의원과는 어떤 관계이신지......”
고영준 의원으로부터 모종의 지시를 받고 온 모양이다. 아마도 마리코의 남편이 정확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은 모양이고 단지 일본의 유이치 의원 비서관의 부탁도 있으니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면 마찰을 일으키고 싶진 않은 모양이다. 의원들이 정치를 하며 이권을 쫓아다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이상할 것도 없는 노릇이다. 회장에게 받은 부탁을 일단 처리해 주긴 했지만 만약에 강주에게 다른 뒷배라도 있다면 곤란한 일이니 그것을 알아보고 피해가려는 모양새로 강주에게 고개를 들이민다.
“아! 유이치 의원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나는 그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아니, 그럼......”
강주는 은근히 이 사내의 기를 죽이고 싶은 생각에 마리코에게 들은 대로 말을 던진다.
“네...... 그저 일본에 계신 내 의부께서 유이치 의원을 돌봐준다고만 들었습니다. 그곳에 갔던 비서관은 제 매제 녀석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국제적인 관행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웃나라의 정치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 없는 정치현실에서, 그것도 잘 나가는 현직의원의 뒤를 봐주고 있는 실세 중의 실세라는 얘기이니 이만하면 비서관 따위가 만나러 올 일이 아니었음은 물론, 건드려도 잘못 건드렸다는 말을 강주는 복선을 깔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자, 하실 말씀 다 하셨으면 전 이만 일어서 보겠습니다.”
“아...... 자, 잠깐만이요. 그러시면 혹시...... 유이치 의원이 자주 말씀하시는 다카하시 회장님 자제분이시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마도 마리코의 아버지가 다카하시인 모양일 테니 모른 척 넘어간다.
“네, 그렇습니다만...... 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제 앞으로는 제 문제에 되도록 관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으니 그렇게만 전해 주십시오.”
“아! 자, 잠깐만이요.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사내는 대단히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가려는 강주를 식은땀을 흘려가며 만류한다. 상황이 반전되며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 강주도 모른 척 팔짱을 끼고 앉아 짐짓 차가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럼 말씀하십시오.”
“네...... 사실은 그런 부탁이 오면 사소한 일은 의원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저희들이 알아서 조치를 취할 때가 많습니다. 이번 일도......”
이 사내도 주인을 모시는 입장일 터, 자신의 주인이 오히려 외곽으로 몰릴지도 모르는 일에 그 잘못을 대신 뒤집어써서라도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양이니 강주의 액션에 김이 빠져 버린다. 살벌한 정치판에서 이런 사내를 만나게 되니 오히려 기분이 흐뭇하다.
“허허...... 그래요? 알았습니다. 저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테니 그 얘긴 그만합시다. 내일 검찰에도 나가야 하는데 이제 그만 쉬어야 하겠습니다.”
“아! 그럼 혹시 그 회장님 자제분이 연루되었다는 그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네, 사실은 그 회사가...... 제가 뒤에서 투자를 하던 회산데 일이 이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아! 그러시면 저희가 뭐 도와 드릴 일이라도......”
“허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뭐, 없어진 돈이라도 찾아주실 겁니까?”
“아! 하여튼 그럼...... 그렇게 알고 물러가겠습니다. 일간 한 번 의원님께서 찾아뵙도록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뭐...... 그렇게 하시던지......”
사안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아서인지 잠자리에 들 무렵 고영준 의원으로부터 강주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절절하게 사과를 해 오는 고영준 의원에게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며 더 이상의 개입을 멈추라는 말과 함께 자신에 대해서는 회장에게 함구하라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는다.
날이 밝아 식구들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중에 인호가 들어선다.
“응, 어서 와라. 어제 고생 많았지?”
“아닙니다. 고생이라니요? 요즘 재미있습니다. 하하하......”
“어머! 그런데...... 삼촌, 그럼 그 돈은 그 마리코라는 여자가 없으면 못 찾는 거 아니야?”
“글쎄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허허허...... 뭐, 그런 생각을 해?”
“아유, 자기는?...... 한두 푼도 아닌데?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아? 어제 전화 해 주기로 하고선 아직까지도 전화가 없잖아? 어서 자기라도 전화를 해봐.”
“그거 참......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아이 참, 해 보라니깐...... 죽 쒀서 개 주는 수도 있으니까 그러지......”
“아유, 얘 민희야. 재수 없게...... 말이라도......”
민희의 입방정에 혜영이가 꾸짖으며 입을 막는다. 아닌 게 아니라 마리코의 연락이 없어 강주도 전화를 여러 차례 해 보았지만 연결이 되질 않는다. 다만 식구들이 걱정할까 봐 발설을 하지 않은 것뿐이니 누구보다도 이 시간 속이 타는 사람은 강주일 것이다.
이대로 검찰에 들어간다면 어수룩한 일처리로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일이고 차라리 강원장의 끄나풀을 더 붙잡아두는 것만 못한 일이 되어 버리는 셈이다. 시간이 되어 감에도 연락이 없으니 정말 마리코의 마음이 바뀌어 일이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이미 엎지른 물, 강주도 범행계획은 인정하고 강원장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으로 몰고 가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들어가 보자. 일단은 오라는 시간에 들어가야지. 공연히 시간을 끌면 더 의심을 사게 되니까......”
“네, 차 준비하겠습니다.”
앞서 가는 인호를 뒤따라 집을 나선다.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도 계속 전화를 넣지만 마리코에게 연결이 되질 않아 강주의 애를 태운다.
할 수 없이 청사 안으로 들어가지만 수 없이 달려드는 카메라 기자들로부터 터지는 플래시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내에 따라 이내 걸음을 옮긴다.
“음...... 우리가 조사를 해 보니까 명백한 주식사기사건이라는 답이 나오는데...... 우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은 없으십니까?”
“주식사기요?......강도사건이 아니고......”
검찰이 바보가 아닌 바에야 모두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의뭉스럽게 다시 한 번 질문을 해 전혀 모르는 바라고 피력을 한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납치강도는 주식사기를 덮어 버리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강원장이 그 돈을 모두 가로채려고 그런 짓을 벌렸다는 겁니까?”
“음...... 그건 지금 수사 중이니까 곧 드러날 것이고, 아직은 누구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요. 최이사, 당신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저 두 사람은 일단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위치에 있으니까 구속을 했지만 뭔가 최이사 당신이 일본과 합작을 하기로 했다는데 현재 구체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어요. 그건 어떻게 설명을 하실 겁니까?”
“아! 네, 그건...... 구두 합의만 있었기 때문에 아직 달리 자료는 없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허허...... 백억 대의 땅을 구입하려 했다면서 단순한 이행각서 따위도 없었다는 겁니까? 그것도 외국기업과의 거래에서......”
“그야 우리가 약자 입장에서 매달리다시피 추진한 일이어서 그렇고...... 설혹 그게 잘못 되더라도 부동산에 투자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그랬던 겁니다. 조만간에 답을 주기로 되어 있었다니까요.”
“뭐, 좋습니다. 그것도 조사해 보면 다 나오게 되니까...... 그럼 그 일본 회사가 어느 회사라는 정도는 밝혀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상담을 했던 담당자가 어느 부서의 누구인지도......”
이제는 올 때까지 온 모양이다. 더 이상 어물거릴 수도 없는 일이고 다시 한 번 마리코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역시 통화가 되질 않는다면 할 수 없이 사전계획은 있었으나 오히려 강원장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쪽으로 몰고 갈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순간 신뢰를 보냈던 마리코가 원망스러워지고, 그보다 더욱 소홀하게 일처리를 해 버린 자신의 한없는 바보스러움이 발등을 찍는다.
때 마침 인터폰이 울려 전화를 받던 조사관은 조사실 밖으로 나가고 강주도 이 기회를 틈 타 마리코에게 전화를 넣는다.
여전히 전화는 연결이 되질 않고 잠시 후 다시 조사관이 들어 와 할 수 없이 전화를 덮어 버린다.
“이게 맞습니까? 방금 누가 가져 왔다는데......”
조사관이 내미는 서류에는 뭔가 잔뜩 영어로 기재되어 있고 말미에 가서는 일본어로 적혀있는 것을 보아 마리코가 보낸 서류로 짐작이 된다.
“아! 네, 바로 여기입니다. 직접 갖다 주기로 했었는데......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서류를 들고 따라 온 여 사무관이 영어로 꾸며진 서류를 읽어보고는 내용을 설명해 준다.
“어머! 그럼 이거...... 국제 사기일 수도 있겠는데요? 여기에 쓰인 그대로라면 계약대로 이행하지 못할 시엔 영진의류에선 막대한 위약금을 물게 돼 있는데요?”
무슨 마음에서 마리코가 서류를 그리 꾸몄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강주는 일단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기사회생한 셈이다. 돈을 찾는 것은 추후의 문제이고 이젠 여기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한 숨 돌릴 수 있는 처지가 되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니 사람 팔자가 시간을 두고 이리도 달라질 수 있는 모양이다.
“지금 그 돈을 못 찾으면 회사는 어차피 개털인데 회사 간 위약금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거 참......”
“아! 일단 알았습니다. 수사 결과는 차차 알려 드릴 테니 최이사께서는 일단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다시 연락이 있으면 출두하셔야 하고 물론 당분간 출국금지를 당하시게 될 테니까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조사실 밖으로 나오니 어제 만났던 고의원 비서관이 대기하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니? 선생이 여긴 어떻게......”
“아! 마침 일본에서 유이치 의원 비서관이 이쪽에 있으니 그리 연결을 했던 모양입니다. 저희에게 도움을 청하셔서 팩스를 저희 사무실에서 받아서 들고 온 겁니다. 동생 분께서는 지금 의부님에게 붙잡혀서 못 나오신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게 그렇게 된 겁니까?”
“혹시 몰라서 그 의류회사의 디자이너를 급파해준다고 했는데...... 아마 공항에서 지금 이 쪽으로 오고 있을 겁니다. 저희 비서관 한 명이 마중을 나가 있습니다.”
“아! 그래요?”
“네, 이 사건이 모두 종결될 때까지 한국에 체류하도록 일본에서는 조치가 끝났답니다.”
“그런데...... 선생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아!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다만 그렇게 전하라는 심부름만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이 신세는 잊지 않겠습니다.”
할 수 없이 강주는 고의원 비서관과 다시 마리코의 남편이 있는 호텔로 돌아가 기다리기로 한다. 마리코에게 아직도 석연치 않은 점이 없지 않지만 순간이라도 의심을 하여 마음이 편치를 않다. 만일 조금이라도 일처리가 지연되었다면 낭패를 보았을 생각을 하니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 일이었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가고 자칫 신세를 망칠 뻔하였다.
아직도 마리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팔십억의 자금이 수중에 떨어진 것은 아니다. 마치 미결수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출감날짜를 기다리듯이 초조한 마음뿐이다.
“실례합니다.”
객실로 들어서는 고의원 비서관 뒤로 예쁘장한 여자가 들어선다.
여자는 즉시 강주에게 인사를 하고 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전화기를 강주에게 내민다. 얼떨결에 전화를 건네받는다.
“여, 여보세요?”
“어머! 오빠...... 저 마리코예요. 도착했나보네?”
“너......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호호호...... 미안해요. 오빠...... 아빠한테 잡혀가지고...... 그래서 거기 보냈다는 여자한테 전화로 부탁해놓았어요. 도착하는 대로 연락해 달라고......”
“으응, 그런거야?”
“오빠, 나 의심했지?”
“에이...... 그럴 리가 있나?”
“호호...... 좋았어. 그리고 대사관에도 아빠가 전화했어요. 내가 막 졸랐거든...... 오빠 믿어도 된다고...... 나중에 오빠가 직접 가면 처리해 줄 거예요.”
“아! 그래? 그럼 다 잘 됐다. 수고 많이 했어. 아버님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해 드리고......”
“말씀이야 드리겠지만 오빠도 한 번 건너와야지.”
“그럼, 그래야지. 그러면 너는 당분간 일본에 그냥 있을 거니?”
“분위기 봐서 또 도망쳐야지. 후훗......”
“그래, 그럼 너한테는 이 친구 통해서 연락하면 되는 거야?”
“응, 당분간은...... 그 여자 얼굴 예뻐?”
“으응? 아니......”
“쿡...... 거짓말...... 너무 좋아하지는 마. 질투할지도 모르니까......”
“자식이...... 알았다. 이만 끊어.”
비로소 안심이 된다. 이제 마리코에 대한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졌지만 이 체험으로 강주는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는 듯 보인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오직 신뢰가 바탕이 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그런 일로 속을 끓이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고 없이 넘어가게 되었지만 이 일로 더욱 심기를 깊게 가져가야 한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검찰의 소환에 응해야 했지만 그 때마다 일본 측의 성의 있는 대응과 고의원 측의 작업으로 여러 분야의 실세들이 압력을 행사해 와, 강주는 오히려 성장할 수 있었던 기업가가 사기에 휘말려 피해를 당한 입장으로 조명되고 사건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은 채 금융 사고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강원장과 유미를 짓누르고 있었다.
“허억...... 아흑.......”
“후욱...... 후욱...... 후욱......”
“아학, 이제...... 어쩔 거야? 하악......”
“뭐를?...... 후욱.......”
“유미 말이야. 하악......”
“으으으흑........ 울컥....... 꿀럭.......”
“아아아악.......”
강주는 회장의 엉덩이를 깔고 엎드려 회장의 몸속으로 분신들을 밀어 넣는다. 단단한 엉덩이 위에서 마지막 용트림으로 좆을 밀어 넣어 자극을 끌어 올린다.
“하아아아악...... 너무 깊어...... 아유, 짓궂어......”
강주는 나란히 누운 채 회장의 어깨를 끌어안아 젖가슴을 주무르며 마지막 애무를 즐기고 입술을 빨아준다. 여전히 겉으로는 회장을 사랑하는 남자일 뿐이다.
“쭈우웁...... 후루룹......”
“아학, 말 좀 해 봐...... 아유...... 숨 차.”
“역시 몸 푸는 데는 장모만한 사람이 없어.”
“장모는 무슨...... 기껏 이혼까지 시켜 놓으니까 유미랑 결혼도 안 한다면서......”
유미의 남편은 결국 회장의 강요에 이혼을 하고 말았다. 유미도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되고 나니 더 이상 희망의 끈을 쥐고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야 유미의 마음이 정리되려면 시간이 걸릴 건데 서두르지 말아요. 그보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유미 어떻게 할 거에요?”
“그러게...... 저대로 둘 수도 없고......”
“유미가 나오려면 그냥은 어려울 거고 정치적으로 뒷거래를 해야 할 텐데...... 잘 아는 정치인들 없어요? 내가 한 번 만나보게......”
강주는 넌지시 속내를 감추고 회장을 떠 본다. 강주의 속을 알 리 없는 회장은 강주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되묻는다.
“정치인? 있긴 있지만...... 어떻게 하려고?......”
“지금 그 회사가 영진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그룹이 사회적 인식으로는 전혀 무관한 입장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부모 자식 간이니 더 그렇고......”
“그래서?......”
“정치적으로 합의를 보자는 거지요. 어차피 사고 난 금액을 모두 다 뱉을 수는 없을 거고...... 적절한 선에서 맞추어 나가자면...... 건설은 너무 작고, 유통 정도를 내 놓으면 어떻게 합의가 되지 않을까요?”
“유통을 내 놓는다고?”
“안 그러면 어떻게 할 거에요?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나빠져서 어떻게든 해결을 안 보면..... 점점 더 악화 될 텐데...... 지금 무역도 타격을 받는다면서요? 일단 하나를 버리고 나서 다시 일으켜도 일으켜야지요.”
“아유, 참...... 그래도 그건......”
“일단 아는 사람 있으면 소개 해 주세요. 내가 나서서 합의를 끌어내 볼 테니까......어차피 나야 기왕에 관계자로 알려진 사람이니까 내가 나서는 게 자연스러울지도 모르잖아요.”
회장은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할 수 없다는 듯 강주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간다.
“그래, 알았어. 그럼 최이사가 한 번 맡아서 해 봐. 잘 해야 돼. 난 지금 믿는 사람이라곤 자기밖에 없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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