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그룹

미술학원 친구를 강간하다 - 1부 2장

본문

동정병기J님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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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주인공J


임가희


유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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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원은 주로 도시의 중심지에 몰려있다. 보통 네다섯개의 미술학원에 실용음악학원 한두개 해서 한 거리를 통채로 점령한다. 대부분 전국 체인의 학원들로, 건물앞에는 항상 "홍익대 xx과 00명 합격! yy시 최고의 합격률을 보장합니다!"라는 둥의 광고 문구가 있기 마련이이다. 그리고, 미술학원의 원생, 아니, 미대를 준비하는 학생중 대부분이 여학생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처음에 미술학원에 등록하러 갔을때 내가 느낀 것은 "당혹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학원 안팎에는 온통 여자, 여자, 여자 뿐-물론 남자도 있었지만 눈에 안들어 왔다. 당연하잖아?-, 남녀공학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남고"생활을 하고 있던 나에게는,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온통 여학생뿐인 미술학원가에서 나는 적응을 할 수 없었고, 이런 내가 최초로 사귄 친구란 것이-하필이면-우리 학교 앞의 남고생, 유재완이었다. 이 놈은 키가 크고 허우대도 멀쩡한 놈이 머리는 순 꼴통이라, 늘상 까불대기만 하고 제대로 할줄아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의외로 의리같은것은 투철했던지,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적어도 남학생들은 그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저녁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 학원가 뒤쪽의 도서관-학원가는 중심지이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오래된 도시들은 모두 그렇듯, 중심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달동네와 교회가 있었다. 그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시에선 꽤 큰 규모의 도서관을 짓고 주변의 산성을 문화사업으로 추진하였고,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는지 현재 달동네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럭저럭 평범한 산중턱의 주택가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다-으로 가는 언덕길에 쭈그려 앉아 근처 슈퍼에서 사온 빵과 우유를 먹고 있었다. 한참 방황하던 중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택한 미대준비였기에, 당시의 나는 꽤 우울한 모습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야 새꺄 뭔일로 그렇게 뒈져가는 표정을 짓고 있냐?"




이 더러운 주둥이를 놀리는 놈이 바로 유재완이었고, 그와의 첫만남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도서관주변에서 서성거린 이유는 도서관에서 파는 빵이 젤로 맛있어서 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다. 이걸 상대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 한마디 툭 던졌다.




"넌 뭐야?"


"너, 항상 빵쪼가리만 먹으면 누렇게 뜬다?"


"그럼 뭐 니가 살꺼냐? 나 돈없어서 빵쪼가리나 먹는데."




이때 나의 빈대근성이 눈을 뜬 듯하다. 놈은 두고두고 이때 한말을 후회하게 되는데, 내가 주구장창 빈대붙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빈대를 붙는다 해도 아주 가끔씩은 내가 크게 쏘기도 하는 등-용돈은 풍족했으니-뭐 이정도면 내가 보기엔 원만한 공생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 말에 놈은 피식 웃더니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후리며 말한다.




"살꺼다 좆병신아. 잔말말고 따라와라."




이끌려 따라간 곳은 학원가 뒷골목의 분식점이었는데, 외진 곳에 있어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물론, 여학생들로 바글거리는 학원가내 분식점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녀석은 주인 아줌마와 친한지 떡볶이와 만두, 순대와 김밥을 시키고는 딴에는 애교넘치는 목소리로 




"누나 왕창 주세요^.^"




이런 소리나 지껄이고 있었다. 한순간 나는 "내가 여기 왜 있는거지?"하고 의아해졌으나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뭐, 쏘겠다는데 군말없이 받아야지 별 수 있을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재완이 말을 건다. 마치 수작을 부리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악의가 없다는 것은 장난기가 가득한 표졍에서 알수있었기에, 나 역시 별 경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야, 우리 학원 애들 존내 이쁜애들 많지 않냐? 너 누구 찍은애 있냐?"


"...뭐?"


"새끼야, 딱 보니 니 아직 못뗀것 같은데 아무나 한명 골라봐라 이 횽이 맺어주마"


"...대체 뭐하자는 개소리냐?"




말그대로 개소리였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분식집에 데려오더니, 이젠 여자얘기를 꺼내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이새끼 대체 뭐하는 새끼야? 하긴 따라온 나도 나지만 말이다.


놈은 내 대답에 뒷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지갑을 꺼냈다. 별볼일없는 학생용지갑이었다. 문제는, 내용물이었다.




"봐라 새꺄 횽이 쏘는김에 제대로 쏜다"


"...이, 이건?"




말문이 막혔다. 놈이 지갑에서 꺼낸것은 돈이나 명함-일리도 없지만 어쨌든 지갑이라면 응당 있을만 한것들-따위가 아니라, 여자 사진이었다. 그것도 교복을 입고 정면으로 찍은 반명함판 증명사진. ...학생증용 사진인 것이다. 한번 찍을 때 일고여덟장 찍다보니 남는 사진은 친구끼리 교환하기도 하는데, 이놈은 어째 그 학생증이 수도업이 쏟아져 나왔다. 슬쩍 봐도 적어도 서른장은 될것 같은 사진이었다.




"...너 이거 어디서 났냐. 혹시 니가 바로 그 유명한 일본식 변태냐? 여자들의... 음... 흠, 스타킹이나 물건을 모은다는 그?"




말은 아니꼽게 해도 나 역시 호기심이 동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남자니까! 게다가 남녀공학이면서도 보이지않는 철망에 나뉘어진 불쌍한 남고생이고! 




"크크 너 이 새끼, 말은 그따구로 해도 꼴리긴 하는 모양이구나 옛다 바라 어... 이쪽이 우리 학원 애들이고, 이쪽, 이 반대편 애들이 요앞 xx학원애들이다. 죽이지? 그리고 이쪽은.. 그 yy음악학원애고. 여긴 기집애들이 별로 없으니 요거밖에 없는거다, 알았냐 마? 이건 나도 수집한지 얼마 안된 따끈따근한 신땡들이라고."


"...."




그렇게 놈과 나는 분식이 나온것도 잊은 채 여학생 증명사진을, 머리를 맞댄 채로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정말, 옆자리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의식의 저편에선 주인아줌마가 "학생들 팔팔허네~흐허허"하는 소리가 들릴듯 말듯했지만 무시했다.


사실, 아무리 남고-몇번이나 강조하지만 나는 남녀공학에 다니는게 아니라 남고에 다니는 거다~!-에 다닌다 해도 저멀리 지나다니는 여학생들이 안보일리가 없었고, 매점에서 빵을 사먹을때 남녀가 같이 줄을 서기도 했으며, 조회때나 체육시간때는 운동장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중학교적 좀 까졌다하는 놈들은 아쉬운 마음에 졸업앨범을 가져와 서로 교환하면서 돌려보기도 했으므로, 솔직히 말하면, 여자 반명함판으로 이렇게 넋나간 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 그것이 "특별한"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진짜 좆내 이쁜 애들이지 않냐? 진짜 우린 행운인걸 알아라"


"... ...왜."


"생각해봐라 이근처 학원다니는 여자애들이 바글바글한데, 세보면 아마 몇백명도 더 될걸? 그중에 이쁘다, 얼짱이다 소리 듣는 애들이 여기 이 애들인데, 봐라 새꺄, 이중 절반이 넘게 우리학원에 다니잖냐! 씨바 부모님께 감사드려라 새꺄!"




웃기는 이유로 우리 둘은 잠시 부모님께 감사기도를 올렸고, 나는 우리학원에 다니는 애들이란 말에 다시한번 사진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정말... 무지하게 이쁜 애들이었다. 그런데 내 눈을 잡는 한장의 사진이 있었으니.




"아, 너도 걔 봤냐? 햐 니네 학교 여자애들은 돼지들만 사는줄 알았더니 대체 어디서 요런 보물이 숨어있었을까?안그냐?"




놈은 끊임없이 주절거렸고, 나는 가볍게 귓등으로 넘겼다. 과연, 귀밑 8cm을 정확히 지킨 쇼트 컷. 앞머리도 단정하게 일자로 잘랐다. 그러나 이런 "범생이 스타일"이, 긴머리와 옅은 화장을 한 다른 학교 여자애들에 비해 레어도가 높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삐빅-삐빅"


"뭔소리냐? ...악 여섯시다! 야 씨바 수업 시작까지 5분남았어 아놔!!!"




난 허둥거리는 그의 모습을 한차례 비웃어주곤,




"잘 봐라 애송이, 이것이 바로 xx"남"고 오의! 1분안에 먹기다!! 작렬!"


"오오오옷! 질수없지! 난 30초 먹기다!!"




이렇게 우리 둘은 떡볶이 국물을 튀겨가며-물론 사진은 번개같은 속도로 갈무리 하고-정말 각각 30초, 48초안에 그 많던 떡볶이와 순대, 만두, 김밥을 해치웠다. 녀석이 18초 빠르긴 했지만, 소화시간까지 딜레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랑스런 xx"남"고의 승리!!




"제..젠장, 먹는 것에서 내가 지다니?! 내 유일한 장기가..."


"좆병신. 앞으론 xx고 알기를 하늘알듯 하거라."




우리 둘은 도보로 8분거리를 단숨에 주파했고, 그 여파로 인해 화장실에서 한번 시원하게 토해내야했다.


이미 완연한 지각. 등록한지 삼일도 안되서 지각을 해버렸지만, 기분만큼은 뭐 어떠랴 하는 생각으로 가벼웠다.




"너 이새끼, 정말 처먹기도 잘하고 뜀박질도 잘하는군, 맘에 들었다."


"난 니놈이 맘에 안들지만 앞으로 얼마나 쏘는지 봐서 심사를 보류해주겠다."




이후 우린 15분 지각한 채로 입실했고, 당연한 얘기지만 강사에게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겉으로는 엄숙하고 용서를 구하는 표정을 가장했지만, 속으로는 오랜만의 뜀박질에 무언가 응어리가 풀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혼나면서도 까불거리는 놈을 보며 의외로 순 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새끼... 빚하나 졌다."




---




"...뭐 이정도? 난 다 말했다. 아씨 쪽팔려..."


"큭큭큭. 그래, 결론은 유재완이가 너한테 보여준 사진에 나도 있었다는 거지?"


"...어."




나와 그녀, 임가희는 통학버스안에서 진실게임을 하고 있었다. 학교생활과 학원생활에 대해 일상적인 안부를 묻고 나자 대화거리가 궁해졌고, 그녀가 제안한 것이 진실게임이었다.




"그런데, 대체 걔는 어떻게 내 사진을 가지고 있었데?"


"...어라, 그러고 보니 여태 그걸 못물어봤네. 소문으론 뭐 교환을 한다나 뭐라나..."


"에엑, 교환? 무슨 교환?"


"글쎄... 더 이상은 모르겠다. 다음에 그 놈 타면 물어봐야지. 그런데 어째 이놈은 연짱 이틀을 학원엘 안와?"


"흠, 보통은 너랑 4호차를 탄다고 했었지?"


"어. 어젠 뭐 다른 차타고 갔다거나 했지만 학원엔 없었고... 똘추긴 하지만 그래도 시키는 건 잘해서 성실하게 학원은 잘 나왔는데..."




그랬다. 어쩐일인지 유재완은 이틀연속으로 학원에 무단결석을 하고 있었다. 진학률이 높은 우리학원의 원생 관리 시스템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라, 지각 세번이면 결석 1회 처리, 결석 네번이면 자동 퇴원으로 스파르타식 교육을 지론으로 삼고 있었다. 이런 학원에서도 녀석은 단 한번도 결석을-지각은 몇번헀다만 아직 간당간당한 듯 했다-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일까.


걱정에 어두워지는 내 안색을 보자 가희가 위로를 건네며 화제를 바꾸려 했다.




"그래.. 난 걔 잘 모르지만 니 말 들어보니 괜찮을 거야. 좋은 애 같기도 하고... 나도 만나보고 싶지만! 딴 얘기하자!"




며칠전의 그녀와 달리, 일단 말을 터놓은 그녀는 무척 활달하고 밝았다. 아까만 해도 매점에서 팔을 잡아 끌고 빵을 사러 가는 것을, 나는 얼굴이 붉어져서 뭐라뭐라 꿍얼거렸던 것이다. 물론, 싫진 않았지만 그 왜 시선이라는 것이... 아, 이럼 안되는데.


뭔가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멈춘 그녀를 멍하니 보다가, 다시한번 보채는 통에 어물쩡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나와의 대화를 한시라도 늦추고 싶어하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묘하게 행복한 느낌이었다.




"어... 그래, 무슨 얘기 했더라? 진실게임이었나?" 


"...! 그, 그래. 니 차례야."


"후... 잠만 생각 좀 할게... 그래, 넌 어떻게 날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가 하던 진실게임이었다. 묵찌바 삼세판에서 삼패를 당한 나는 내 가위를 망연자실 바라보았고, 그녀는 승리의 브이사인을 그리며 킥킥킥, 웃으며 내게 하나의 대답을 요구했다. 바로, 어떻게 처음 자신을 알았느냐고.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상한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취했던 태도였다. 유재완과 분식집에서 생사를 건 타임매치를 치른 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보았다는 것을 곧 잊어버렸다. 일단 수업이 무척 고되어 다른 생각할 틈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당시 지하1층에서 데생 및 초급 발상을 하던 나와는 달리 각종 도구를 능숙히 다루는 지상4층의 고급반에서 대회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할 일도 없었기에 자연히 마주칠 일도 없었고, 일상에 묻혀 어느덧 그날의 사진사건도 완전히 지워질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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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취월장하는 내 실력에 어느새 나는 중상급반에 올라와 있었고, 주변의 시기의 시선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삼년간 준비한 아이도 중급반에 머물 정돈인데 삼개월도 안되어 중상급반에 올랐으니 배알이 꼬일만도 했다. 


그날도 지정주제를 이용해 그려나갈 구도를 탐색하던 중이었다. 준비해온 소재들이 하나같이 강사에게서 빡구를 맞은데다, 짜증스럽게도 화장실이 급해졌기에, 나는 미술용 걸레와 붓을 빨고 물통도 갈 겸 자리를 떴다. 당시엔 2월 초순으로 한겨울은 벗어났지만, 여젼히 무척 추웠다. 몸을 덜덜덜 떨며 도구들을 들고 2층 화장실로 향하는데, 계단에 가지런히 신문지가 깔려있었고, 그 위에 차례대로 초록색 방석, 스케치북, 문고본, 4B연필이 놓여져 있었다.




"이건 대체...?"




도대체 어떤 머저리가 이런 곳에 생명같은 스케치북을 떨구고 갔을까 싶었던 나는,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아, 아무도 없었다. 도구들을 살며시 내려놓고, 주인없는?물건들에 손을 가져갔다. 연필은 비록 양산형이긴 했지만 전문가용 고급품이었다. 슬며시 "이거 고급반 놈들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관둘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시작한거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문고본과 스케치북을 들어올렸다. 문고본의 표지에는 약간의 장식이 있을 뿐, 제목도 작가명도 인쇄되어있지 않았다. 뭐 그럴수도 있지 하고 나는 문제의 스케치북을 양손으로 잡았다. 밋밋한 스케치북을 펼치자, 안에는...




"너, 뭐야."




고음의,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올려다보니 한 소녀가 계단을 내려오며 나를 노려보는게 아닌가. 턱, 턱, 턱, 내가 선 계단에서 두 칸위에 선 그녀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봤지?"


"어."


"그럼 내놔."


"어."




이상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대화였다. 그녀는 내게서 문고본과 스케치북을 받고는, 신문지와 방석, 연필을 갈무리했다. 나는 그러한 일련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쏘았다.




"뭐야, 할말있으면 말해. 올라가야하니까."




짐을 정리하여 옆구리에 낀 그녀는 내쪽을 돌아보았다. 생갔났다. 그놈, 유재완이 보여준 사진에서 본 그녀다.


우리학교의 그애다.




"너... 우리학교애 맞지?"


"우리학교라니, 너 나를 알고 있니?"




매서운 추위가 지속되는 동안이라 원생대부분은 교복위에 코트나 자켓을 걸쳐 언뜻봐선 어느 학교 학생인지 구별이 불가능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같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어.. 알긴 알아..."


"뭐? 어물쩡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당황하여 우물거리는 내 말투에 그녀는 짜증을 냈다. 알수없게도 나는 고개를 숙이게 되었는데, 우연히 그녀의 손가로 시선이 가게 되었다.




"파스텔과, 물감 투성이...!"




그야말로 미술도구와 전쟁을 치룬 손이었다. 경험자이므로, 저정도로 손이 더러워지려면 몇시간 동안 쉬지않고 그림을 그렸는지 알수 있었다. 아마 학원에 도착한 뒤 곧장 시작하여, 지금까지 쉬지않고 몰두했으리라. 짜증을 낼만도 했다. 비록 수용성 도구들이긴 하나, 오랜시간 종이에 파스텔을 칠하거나 하면 지문이 벗겨지는 등 자잘한 상처가 많아, 그림을 다 그리거나 교육시간이 끝나 집중력이 풀어지면 피곤과 함께 짜증이 몰려드는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을 보고 나는 지금 그녀가 얼마나 힘들어 할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곤 자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힘들겠구나, 너도."




어느새 돌아서려던 그녀는 한순간 움칫했다. 뭐라고 중얼거린 듯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말을 내뱉은 나는 미련없이 뒤로 돌아 계단을 내려갔고, 볼일을 보지 않았다는 것도 잊은채 멍하니 과제에 매달렸다. 마치 내손 역시 그녀의 손처럼 더러워져야 한다는 듯. 


--- 


"... ...난, 널 2학년 때 처음 알았어. 물론, 널 직접 본게 아니라... 음.."




회상에 젖어있던 의식의 저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를 채운다. 




"그 왜... 이박진 샘이 2학년 중반에 전체 수행평가로 내준 거 있잖아? 검정유착잉크로 도색된 아크릴지를 송곳으로 긁어 그림그리는 거..."


"아. 생갔났어. 난 아마 다 쓰러져가는 전망대에서 해원을 바라보는 소녀를 그린것같은데."




그녀의 생기발랄한 눈에 반짝임이 감돈다.




"그래, 맞아. 나 2학년 초반부터 미술시작헀잖아. 이박진 샘이 초급 발상과제같은거 조언도 많이 해조서.. 꽤 친했는데.. 2학년 중반때 말야.. 난 위쪽이 전투기인 말벌을 그렸거든.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지만, A+도 받았고 꽤 자신있었어. 그날도 발상과제로 조언을 얻으려 미술실로 찾아갔는데, 샘은 없더라... 대신 평가내릴 애들 작품들이 쌓여있었어. 그중 몇개는 책상위에 펼쳐져 있었고... 그리고 내가 본거야."


"내 그림을?"


"응. 니 그림을. 온통 어질러져 있는 미술실에서, 유일하게 니 그림과 평가서만이 질서를 지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어. 헤헷. 사실 나 여기서 영감얻어서 대회에 써먹은 적도 있었는데. 나 그 때 은상먹었다?"


"잘나셨어. 그래서? 계속해봐~"


"응. 난 그림을 향해 갔어... 마치 이끌린 것처럼... 그리고 니 그림을 보고 느낀 게 말야... 아니다. 너 있지, 넌 니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린거야?정말 궁금했는데 이제야 물어보네."




내 그림? 뭔생각으로 그렸냐고? 그야... 당시 어떤 생각들을 했느냐, 이게 많이 반영되었겠지.. 그때의 나는 막 방황을 시작하던 때였고... 나름대로 상징적으로 그리려고 꽤 노력하긴 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그래서 포기한 상태였는데, 문득 스친 영감이 그 그림이었다. 먼 해원을 바라보는 소녀. 전망대는 높긴 하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하다. 그런 전망대에서 소녀는 위험하게 몸을 기울여 해원쪽을 향하고 있다. 글쎄, 왜 이런 영감이 떠올랐을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하아.. 역시 그렇지? 뭐, 별 생각없이 그린것 같긴했어."




틀린말은 아니므로 나는 그냥 싱겁게 웃고 말았다. 그녀도 나와 함께 킥킥킥.


이윽고 우리는 학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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