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삽입면허 - 31부
본문
“뚜우...... 뚜우......”
머리맡의 인터폰이 울림과 거의 동시에 기찬은 눈을 뜨게 되고, 팔을 뻗어 수화기를 집어 든다. **는 머리카락이 잔뜩 헝클어진 채 네 활개를 치고 너부러져 있으니 아직도 약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간혹 앓는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아! 네......”
“네, 세탁물이 도착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음, 그러면 올려 보내 주세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곁에 있는 가운으로 대강 몸을 가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입구로 걸음을 옮긴다. 세탁물을 배달원에게 받아들고서야 비로소 어제 **를 겁탈하려던 녀석의 양복까지 비닐에 섞여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후훗, 차라리 잘 됐군. 이거라도 있어야 **가 상황을 이해하기 쉽겠지.”
다시 가운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던 기찬은 하체가 왠지 불편하다는 느낌에 시선을 보낸다.
“우웃! 이, 이건......”
자신의 체모가 잔뜩 엉겨 붙어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손으로 정리를 하자 비로소 그것이 선혈이 엉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누워있는 **의 엉덩이를 굳이 돌려볼 것도 없이 그 주변의 시트는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온통 검붉은 흔적에 체액의 냄새까지 어우러져 비릿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 이것 참...... 이거, 잘못하면 성질 더러운 계집애한테 꼼짝없이 물리게 생겼는데...... 어떻게 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기찬은 우선 개운치 못한 몸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서고, 차가운 물줄기를 맞으며 샤워를 할 뿐이었다.
“후훗, 자기가 어쩌겠어. 할 수 없는 일이지. 사돈 간에 들어붙을 리도 없는 일이고, 제 언니를 생각해서라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지......”
나름의 복안도 필요 없는 일이었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근심을 날려버리고, 미소를 짓는다. 사실 기찬의 주변에 여자들이 많다고 해 봐야 실제 숫처녀를 접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의 첫 정을 거둬 갔다는 것이 은근한 자부심처럼 느껴지기도 해, 푸근한 마음에 쏟아지는 물줄기마저 개운한 일이었다.
“어, 어머! 너, 너......”
“으응? 왜, 왜?......”
샤워하는 소리에 잠이 깰 수 있었던 것인지 **는 이미 눈을 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눈을 뜨고 바라본 주변의 정경은 몹시 생소한 것이었고, 비로소 자신의 몸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벼락처럼 일어나 바라본 하초는 잔뜩 피범벅이 되어 있었으니, 그 냄새만 하더라도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모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서둘러 흘러내려가 있는 시트를 끌어당겨 몸을 가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자니, 옷걸이에는 자신의 옷과 신랑감의 옷이 드라이된 채 걸려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어젯밤에 밖에 나와서 술을 한 잔 더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아유, 창피하게 결혼식까지 가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이람......”
어처구니없이 **는 간밤의 일을 하나도 기억을 못하는지 지금 이 상황이 자신과 결혼 약속을 한 사내와 동침을 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신보다 일찍 일어난 사내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 앞에 꺼떡거리는 물건을 앞세우고 기찬이 나타나고 있었으니, **가 기절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는 황급히 시트를 끌어당겨 몸을 가려보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노릇이었다.
“뭐, 뭐야? 너 이 나쁜 새끼...... 이제 내가 곧 결혼할 거라는 걸 잘 아는 새끼가...... 게다가 언니는 이제 어떻게 하려고......”
기찬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건지, 상황에 대한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 곁에 있는 베개를 던지는 **가 어이없어 기찬은 머리를 털어 말리다가 잠자코 하는 대로 두고 보기만 하고 있었다. 계속 소리를 지르며 해 대는 모습을 보니 기찬도 비로소 **가 간밤의 일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모양이었다.
모르면 몰라도 적잖이 마신 술에 약까지 먹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어이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차근차근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해 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희한하게도 **와 살을 섞을 때는 분명한 의식이 있었건만 **는 아무런 기억의 단편도 갖고 있지 못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창밖은 이미 사람들이 오가는 웅성거림이 느껴질 정도로 밝은 대낮이었다. **는 여전히 시트로 몸을 가린 채 침대 머리맡으로 바짝 올라앉아 고개를 숙인 채 웅크리고 있었고, 예상치 못했던 **의 반응에 상황을 달리 설명할 수 없었던 기찬은 설명과정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할 수 없이 ** 앞에 수사관 신분을 밝혔는지, 앵혈이 엉겨 붙은 시트 위에는 기찬의 표찰이 놓여 있었다.
“그, 그러면 내가 약에 취해서 너에게 달려들었다는 거야? 그 뿐이야?”
“그래, 나도 할 수 없었어. 네가 토했다는 걸 보고받아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위세척을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약기운이 강력할 줄은 몰랐지.”
“......”
“네 몸이 얼마나 달아올랐는지 열이 보통이 아니었다니까...... 나도 당황이 돼서 어쩔 수 없었어.”
“흐흑...... 나쁜 새끼......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둘 것이지......”
기찬은 상황을 피해 가기 위해서 타고 난 듯 거짓말을 흘려대고 있었지만, **는 정말 울고 있었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기찬을 원망하고 있었다.
“뭐, 뭐?......”
기찬만 입을 다물어 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건 **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언니 보라와 이미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는 기찬과 자신마저도 살을 섞었다는 것이 기가 막히기도 한 일이었고, 더욱이 이것이 사기결혼인 줄도 모르고 부모님과 친지들에게도 선을 보여 버린 상황이니 이 난국을 넘어갈 것이 몹시 고단할 노릇이라는 것이 더욱 난감하여 흐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죽어 버릴 거야!”
한 순간, 눈을 똑바르게 뜨고 기찬을 노려보던 **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바닥으로 내려오려 하고 있었다.
“아, 아야......”
“괜, 괜찮아?”
“저리 가. 이 나쁜 새끼야...... 너도 똑같은 인간이야.”
정말 죽을 결심이라도 했다는 것인지 **는 몸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기찬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야! 내, 내가 뭘......”
“언니도 네가 수사관이라는 것을 모른다면서...... 심지어는 형부나 너희 엄마까지도......”
“그게 뭐가 어때서......”
“흥! 그동안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비웃었겠니? 자기 신분을 위장한 채 백수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네 속마음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조롱했을 거 아냐? 그러다가 언니도 우연을 가장해서 겁탈한 거겠지. 지금처럼......”
“야! 그건 너희 언니한테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접 들었잖아?”
“미친 놈, 그건 네가 수사관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지. 지금이라도 언니한테 네 정체를 말해 줘 볼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네가 그런 신분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지경까지 가지 않고서도 범인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건 네가 언니를 욕심내 오다가 겁탈할 기회를 얻으려고 여관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던 거잖아. 이 나쁜 새끼야......”
“어, 어......”
기찬은 조목조목 반박해 오는 **에게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고, 당시에는 정식 수사관도 아니었지만, 형수 보라가 자신이 현재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가 만에 하나라도 앙심을 품고 언니에게 이런 일을 말해 버리면 자신은 꼼짝없이 형수를, 그리고 그 동생을 겁탈해 버린 파렴치범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느덧 **는 샤워기 앞에서 물줄기를 맞으며 몸을 씻고 있었다. 당당한 그 몸짓은 정말 무언가 대미를 장식할 만한 큰일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처럼 거칠 것이 없어 보여 기찬으로서는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계집애가 정말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아...... 이런 젠장...... 어쩌다가 이 계집애한테 코를 꿰여 갖고......”
“야! 저리 비켜......”
이제 몸도 가리지 않은 채 욕실에서 나오는 **가 퉁명스럽게 기찬을 밀어낸다. 아직은 기찬도 **의 반응에 놀라워 옷을 입는 것조차 잊고 있는 처지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는 속옷을 찾는지 곁에 둔 서류봉투를 열어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참, 내가 속옷 사가지고 왔어. 저기......”
아무 말 없이 기찬이 가리키는 곳에서 포장을 뜯어 속옷을 꺼낸 **는 다시 한 번 기찬을 노려보고 있었다.
“변태 같은 새끼...... 너, 언니한테도 이런 거 사다주고 그러니?”
**의 손에 들려 흔들리고 있는 것은 매듭으로 만들어진 끈 팬티였다. 뒤에서 보면 티 팬티요, 앞으로는 매듭을 만들어서 여닫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 딱히 그런 소리를 듣게도 생긴 일이었다.
“어, 어...... 난 그, 그저 애인 줄 거라고 예쁜 것으로 달라고만 했을 뿐인데......”
“저기 브래지어나 가지고 와......”
“으응...... 그, 그래.”
어느새 **에게 분위기를 빼앗겨 버린 기찬은 허둥지둥 **의 말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는 뺏듯이 기찬의 손에서 낚아챈 브래지어를 허리에 감아 채우고는 빙 돌려 팔을 꿰고 있었다. 매듭으로 만들어진 티 팬티에 브래지어만 걸친 **는 또 전혀 다른 묘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고, 기찬은 **의 변화에 마치 넋이 빠진 듯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어? 너도 어서 그 흉한 물건이나 좀 가리지?”
기찬은 비로소 자기가 아직도 벗은 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정작 급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으니 침대에 걸터앉아 셔츠를 입고 있는 **에게 다가간다.
“아! 그래, 너...... 이제 어떻게 하려고......”
“뭘 어떻게 해? 속아서 몸을 더럽혔으니 이제 죽어야지. 새끼야. 그것도 언니하고 살 붙여 지내는...... 허엉...... 엉엉...... 이 나쁜 새끼야......”
표독스럽게 바라보며 말을 하던 **는 순간 서러움이 받쳐 올라오는지 기찬을 두들겨 패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덤벼드는 바람에 **를 끌어안고 침대로 넘어져 버린 기찬은 어쩔 수 없는 노릇, 엉거주춤한 자세로 천장만 바라보며 달래듯 **의 등을 쓸어가고 있었다.
**는 한참이나 그렇게 기찬의 품에서 흐느껴 울고 있었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기찬의 머릿속도 그만 하얗게 색이 바래는 것만 같은 그런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는 다시 몸을 일으켜 퉁퉁 부어버린 눈에서 눈물을 훔치며 셔츠의 나머지 단추를 꿰고 있었다.
“**야, 우리...... 결혼하자.”
엉뚱하게도 기찬은 **에게 결혼을 제의했고, 순간, 멈칫하던 **는 돌아보지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야, 못 들었어? 우리 결혼하자니까...... 너 그러면 정말 죽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내가 네 순결을 가져갔으니까 남자답게 책임질게. 앞으로 우리 서로 사랑하고 살면 되잖아. 나 사실 너 좋아하는가 봐. 그러니까 그렇게 너한테 짓궂게 굴었겠지.”
거푸 기찬은 **에게 자신의 의견을 이어가고 있었고, **는 그제서 고개를 돌려 젖은 눈으로 기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보같이...... 우리는 사돈 간인데 어떻게 결혼을 하니? 거기다가 언니도......”
“아, 겹사돈이라는 말도 있잖아? 너하고 나하고 결혼하는 데에는 법적으로 아무 장애도 없는 일이야. 내가 적당할 때 사돈어른, 아, 아니 너희 부모님 찾아뵙고 너를 달라고 할 테니까...... 그리고 보라를 위해서도 그게 낫지 않겠어?”
자신에게 청혼을 하던 기찬이 말의 끝에 가서 언니를 거론하자, **의 눈이 다시 처연해진다.
“풋, 그러면 그렇게 나하고 결혼을 하고서도 언니를 만나겠다는 말이니?”
“아, 아니...... 그 뜻이 아니라 너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더 이상은 보라가 만나자고 하지 않을 것 아니냐는 말이지. 내가 다른 사람하고 결혼을 하고서 보라를 피하면 그건 보라가 오해를 하겠지만...... 단지 그, 그런 뜻이지......”
기찬은 자신이 왜 이렇게 **에게 끌려 다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지금 이런 기분은 자신도 처음 느껴보는 기분으로 **에게는 그저 져주고 싶고, **는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마저 느끼고 있었다. 단지 **가 언니나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악감정을 풀어놓을 것을 우려했던 그것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어쩌면 유일하게 자신을 막 대하고, 다그치는 **에게서 잊고 있었던 색다른 느낌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뭐야? 이, 이런 감정이......”
**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손만 만지작거리다가는 일어서서 드라이해온 바지를 꺼내서 입고 있었다.
“소, **야......”
“걱정하지 마. 죽지는 않을 테니까...... 어서 너도 옷이나 입어. 나, 배고파.”
비록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지만, 기찬은 **의 그 소리에 뛸 듯이 기뻤다. 펄쩍 일어서서 **를 끌어안고 빙빙 돌며 좋아하는 기찬을 보고서야 **도 비로소 미소를 되찾고 있었다.
“어서 내려 줘. 옷도 안 입고 뭐 하는 거야? 징그럽게...... 빨리...... 어지러워......”
“그, 그럼 우리 이제 결혼하는 거지?”
“그,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 해.”
“다시 얘기할 게 뭐가 있어. 우린 이미...... 그리고 부모님께는 내가 찾아가서 말씀 드린다니까...... 알다시피 이젠 내가 백수도 아니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아시게 될 텐데......”
“언, 언니 문제가 있잖아...... 나중에 내가...... 언니를 일단 만나보고......”
“아! 그, 그래?...... 그, 그래. 일단 만나보고...... 하지만, 난 지금 ** 네가 사랑스러워서 죽을 지경이야. 갑자기 왜 이런 감정이 몰아치는지 모르겠어. 아마 지금까지는 네가 사돈이라는 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감정을 억지로 눌러놓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어. 이제 비로소 알 것 같아. 그동안 내가 너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기, 기찬 씨......”
비록 뒤늦게나마 자신을 끌어안고 사랑을 고백하는 기찬에게 **는 다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이 맺어질 것이라고 본다면 그 고백이 결코 뒤늦을 것도 없는 일이니 간밤의 풍랑은 그저 기찬과의 사랑에 있어 그 서장을 연 것뿐이었고, **는 여전히 사랑 안에서 순결한 여자가 되는 것이었다.
“**야, 사랑해.”
“기, 기찬 씨...... 흐흑...... 고마워......”
차를 타고 나온 곳은 한강변의 전망 좋은 식당이었다. 마주앉은 두 사람은 이제 격앙된 감정이 많이 가라앉은 듯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으나, 여전히 마주치는 시선에는 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기찬 씨는 내가 다른 사람하고 결혼하려고 했었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
“으응? 그게 뭐가 어때서...... 그거야 내가 눈이 있어도 내 사랑을 알아보지 못해서 그런 것뿐인데......”
“피...... 그래도 나는 걱정돼. 기찬 씨 어머니가 뭐라고 하시겠어? 어제 그 남자랑 결혼한다고 선까지 보여드렸는데...... 형부도 그렇고......”
아닌 게 아니라 **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지식한 어른들이 그런 일을 용납할 리 없는 일이니 두 사람 앞에 당면한 문제가 비단 보라와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 너하고 나하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결혼을 약속했던 사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야. 그리고......”
“으응, 그리고......”
**는 기찬의 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내가 수사관이라는 것을 공개해야지. 할 수 없잖아. 음지에 숨어있는 그 결혼 사기단을 끌어내기 위해서 너하고 나하고 연극을 꾸민 것이라고 하면 그래도 설득력이 있는 편 아니겠어?”
“기찬 씨...... 자기 그 신분을 노출해도 되는 거야?”
“으응? 자, 자기?...... 큭큭큭...... 그 말이 왜 이렇게 반갑냐? 큭큭......”
“아이, 웃지만 말고 말해 봐. 그래도 되는 거야?”
“으응, 괜찮아. 뭐, 가족들이 일부러 내 신분을 노출할 리도 없는 일이니까......”
**는 기찬의 말에서 희망을 찾은 모양인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린다. 계속되는 기찬의 임기응변이 **에게 병을 주기도 하고, 약을 주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제 내가 중간에 분명히 정신을 차렸었다는 게 진짜야?”
“그래, 진짜야. 물론 내가 짓궂어서 그랬던 거지만, 분명히 네가 날 알아보고......”
“나쁜 놈......”
“어, 어? 애써서 말해 줬더니......”
“푸훗, 그러면 다행이고......”
“다행?...... 뭐가?......”
“피...... 내가 첫날밤을 엉뚱한 사람으로 알고 치렀으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야. 지금 기억은 못하지만 자기한테 첫 정을 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다행한 일이지. 뭐......”
“하하하......”
“어쩌면 나도 자기를 사랑했었나 봐...... 그렇게 아옹다옹 싸울 때는 몰랐는데...... 푸훗, 참 신기하지? 우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니까 우리가 천생연분이라는 거잖아. 자, 그만 일어나자. 너, 집에서 걱정하시겠다. 내가 태워다 줄게.”
“으응. 그래......”
기찬의 차 뒷좌석에는 아직도 어제 그 사내 녀석의 양복상의가 놓여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의 눈빛이 순간 서늘해지고 있었다.
“저, 저 옷은 어떻게 할 거야?”
“아, 그거? 나중에 그 자식 갖다 줘야지. 어차피 조금 있다가 가야 돼. 내가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었는데, 이제 우리 일도 있으니까 경찰에게 넘겨서 정식으로 수사하라고 해야 되겠지.”
“그럼 가는 길에 들렀다가 가. 내가 가 봐도 되는 거지?”
“가 봐도 되긴 되지만...... 왜? 설마 그 자식한테 그 사이 정이라도 들은 거야?”
“어머!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 자식 한 대 때려주고 싶어서 그러지.”
“하하하, 그래. 그럼 같이 들렀다가 가자.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자신과 **의 결혼에 관한 일만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그 사건은 비밀리에 처리하고, 자신의 관내인 종로 서로 이관시켰을 것이지만, 이제 사건을 드러내야 하게 생겼으니 그저 용산으로 바로 넘겨 줄 모양이었다. 덕분에 용산 서의 고위 관계자들과 면식을 넓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니 그것도 기찬의 영향력이 점차 넓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 어머!”
“하하, 왜?”
“저, 저 사람 얼굴이......”
“그러게 내가 그냥 웃고 말았잖아. 우리 **에게 그따위 짓을 한 놈을 내가 그냥 뒀을까 봐......”
유치장까지 따라들어 와 얼굴을 확인한 **는 기겁을 하고, 바로 전경의 안내를 받아 유치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 부어오른 얼굴 모습이 차마 끔찍해 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과천으로 차가 들어서자 **는 또 생각나는 것이 있었는지 기찬을 은근한 시선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으응? 왜, 왜?...... 무섭게......”
“기찬 씨...... 그 때, 그 여자는 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누, 누구?......”
“누구는 누구야? 알면서...... 이러는 것 보니까 진짜 수상한데......”
“아아! 난 또 누구라고...... 아, 아니야...... 거기는 내가 수사상 필요해서 비밀 아지트로 쓰는 술집이라니까...... 그 마담은 내 정보원이고......”
“정말이지?”
“아, 그렇다니까......”
“피...... 뭐, 아니어도 할 수 없지. 그 대신 앞으로는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리기 없기......”
“후훗, 물론이지. 그럼 ** 너...... 앞으로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콜!......”
“어머! 미쳤나 봐......”
“참! 그 팬티는 어때? 괜찮아? 입을 만해?”
“아이 참...... 그런 걸 왜 물어 봐? 정말 변태같이......”
“하하하,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야! 정말 그 점원 아가씨 웃기네. 단지 애인 줄 거라고만 그랬는데 그런 것을 주고...... 하하하, 그 말 대로 애인에게 입히게 돼서 정말 다행이긴 하지만......”
“아이, 이상해...... 꼭 안 입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 아까 보니까 예쁘기만 하던데 뭘...... 잘 적응해 봐. 편하면 좋은 거지.”
“피...... 변태......”
어느덧 과천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는 망설여지는 것이 있는지 아무 생각 없는 것처럼 무심하기만 해 보이는 기찬을 잠시 바라본다.
“왜?”
걸음을 멈추고 뒤처져있는 **를 바라본다.
“으응, 자기 설마 지금 집에 가서 말씀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기다릴 거 뭐 있어. 나는 하루라도 빨리 너와의 사이를 인정받고 싶은데......”
“미쳤어. 언니하고 이야기부터 해 본다니까......”
“아, 참! 그랬었지?......”
“그리고 어차피 결혼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을 아시게 되면 그 때 물어 오실 텐데, 그 때 말씀 드리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겹사돈이 되는 것을 반대하실지 그것도 모르는 일이니 차라리 내가......”
“네가 뭐?......”
“아이, 그런 문제는 여자인 내가 엄마에게 조용히 말씀드리는 게 차라리 낫다는 말이지. 우리 관계를......”
“아! 하하하, 그렇지. 그런 문제야 내가 말씀 드리기 난감한 일이지. 차라리 임신했다고 해 버리든지...... 하하하......”
“아유, 조용히 해. 미쳤어. 사람들 쳐다보잖아.”
당황한 **는 황급히 기찬을 아파트 입구로 끌어들이고, 기찬은 **를 밀어붙여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한다.
“아이, 왜, 왜?......”
“후훗, 그냥 가기 싫어서 그래...... 자, 뽀뽀......”
“정말 미쳤어. 사람들 보면 어쩌...... 흐읍...... 흐으음......”
발을 구르던 **는 결국 기찬에게 입술을 내주고 말지만, 품에 안긴 채 등을 두들기던 그 팔은 이내 기찬의 목을 감싸 안고 만다.
“하악...... 하악...... 나, 갈 거야. 변태......”
이미 두 사람은 한 몸이라는 공감대를 나눈 후였지만, 노출된 아파트 계단에서의 입맞춤이 **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몹시 당황하여 엘리베이터도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을 뛰어올라 기찬의 시선을 피해 버린다.
“하하, 그래...... 전화할게...... 사랑해......”
유라를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됐던 **의 사기결혼 소식, 그로부터 파생된 두 사람의 인연이 새로이 시작되고 있었다. 서로가 오랫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단지 사돈 간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는지 그저 속없이 장난질로만 일관했던 사이가, 급물살을 타는 셈이었다.
한 번도 이성으로서 생각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소리 없이 쌓이는 은근한 정은 있었을 것이었다. 가족이면서도, 가족이랄 수 없는 사돈 관계라는 것은 그렇게 묘한 것이었다. 어쩌면 서로가 그런 것들을 인정하려거나, 혹은 생각할 기회조차도 없었을 그런 것들이 육체관계를 맺고 난 후, 몰아치는 감정의 홍수 속에서 자신들도 모른 채 실마리를 찾아 가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여보세요......”
이제 차에 올라타고 있는 기찬의 전화벨이 울린다.
“네, 여기 용산입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용의자를 출두시켜서 보호 중에 있습니다. 지금 오실 수 있는지......”
“아! 알았습니다. 여기는 과천인데 거기까지 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습니다. 일단은 두 사람이 마주치지 못하도록 조치만 해 주십시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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