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그룹

*검은 립스틱* - 45부

본문

교주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흠칫하는 여자는 다름이 아닌 대구에서 마취당해 끌려온 유서연이었다. 신들린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방순덕의 딸이었다. 유서연의 알몸을 더듬던 교주가 침대로 올라갔다. 유서연도 교주 허문한도 발가벗은 알몸이었다. 그가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고 앉았다. 허문한의 하복부에는 흉물스럽게 발기된 남성이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교주는 그녀의 허벅지를 벌리고 거대한 흉물을 밀어 넣었다.




“하 앗~!”




혼절해서 교주의 몸 아래 깔렸던 유선희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골반이 뻐근하고 보지 속이 으깨지는 진통을 느낀 유선희는 허우적거리며 주위를 들러 보았다. 자신을 겁탈하고 있는 남자가 다름이 아닌 어머니의 남자가 아닌가.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깔고 앉은 허문한의 가슴을 밀치며 발버둥 쳤다.




“이. 이럴 수는 없어. 개 같은 놈.......”




발악을 하며 욕설을 내뱉는 순간, 홍천녀들이 달려들어 유서연의 입을 타월로 틀어막았다. 마취제가 적셔진 타월이었다. 몸부림칠수록 그녀는 다시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몸속 깊은 곳을 짓이겨지는 충격 속에 그녀는 고개를 축 늘어트렸다. 거친 숨을 토해내는 교주 허문한의 엉덩이가 앞뒤로 흔들렸다. 그때마다 유서연의 알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정신을 잃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으 읏.........으........”


“허 어! 은총을 주노라.”


“천신님의 은총을......”




허문한의 숨소리가 거칠어질수록 방순덕은 신들린 사람처럼 중얼거린다. 자신의 남자에게 딸이 겁탈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방순덕의 기도를 하는 목소리는 높아만 간다. 유서연의 허벅지 사이에 틀어박힌 남성이 빠져 나왔다가 사라질 때마다, 벽화 앞에 피워진 향불의 연기가 크게 흔들렸다. 마치 말고삐처럼 우서연의 젖가슴을 움켜쥔 허문한의 엉덩이가 높이 치켜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거대한 흉물이 여자의 몸속을 으깨듯이 돌진하고 혼절한 상태에서도 유서연의 허리가 꿈틀거린다.




아직도 겨울의 찬바람이 일어나는 산속과는 다르게 도심지의 커피숍 안은 따뜻하고 조용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있다. 마주보고 속삭이는 연인, 책을 보고 있는 사람, 식어가는 커피 잔을 앞에 놓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강민우와 마주 앉아있는 송나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된 일인지 며칠째 서연이가 출근을 안 하고 있어요.”


“미스 유가 출근을 안 한다고.......! 그만 둔 건가?”




송나희의 말에 강민우는 놀랐다. 의자에 몸을 묻고 있던 그가 상체를 곧게 하고 앉았다. 술 취한 그녀와 같이 있던 시간이 떠올랐다. 허문한에 관해서 알아보려고 만났다가 충동적인 감정으로 그녀를 안았던 순간이 자책감을 느끼게 한다.




“사표를 낸 것도 아니고, 하루 휴가를 한다고 하더니 연락도 안 돼요.”


“혹시 어머니를 만나러 대구에 내려 간 것이 아닐까?”


“비상 연락망을 통해 대구에도 연락했으나 안 왔다고 하던데요.”


“그럼, 혹시........”




강민우는 모텔에 그녀를 혼자 재워놓고 나온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하루 휴가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가 모텔에서 자고 나온 것은 분명했다. 그날 저녁에 부끄러워하다가 마지못해 흘린 유서연의 말을 떠올린 강민우가 이어서 송나희에게 물었다.




“혹시 미스 유, 어머니와 재혼한 남자가 사이비종교의 교주라는 것을 알아?”


“교주라고요! 안 좋은 것처럼 말은 했으나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그 종교 본부를 찾아 갔을지도 몰라.”


“어딘데요?”


“요즘 뉴스에 나오는 천궁교인데, 지리산에 있다고 들었어.”


“민우씨는 어떻게 알아요?”




송나희의 질문에 강민우는 뜨끔하였다. 유서연을 안고 흥분했던 열기만큼이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만 같다. 사랑해달라며 바라보던 애틋한 눈빛! 그러나 송나희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냥 대화중에 들은 얘기.”


“서연이 엄마도 거기 있데요?”


“그럴 걸로 생각하는데.”


“그럼, 별일은 없겠지요. 그렇다고 연락도 안하고.......”




“문제가 있을는지도 몰라.”


“왜요?”


“요즘 매스컴에서도 사이비 종교에 초점을 맞춰 기사화하고 있고, 검찰과 경찰에서도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아. 평범한 종교집단은 아니야.”


“어떤 종교집단 인데요?”




“흠~! 아마도 정치자금에 관련된 집단일지도 몰라. 나도 가볼 생각이야.”


“우리 상부에서도 지시가 있었던 건가요?”


“아니.......! 진아가 거기 있을지도 몰라.”




표정이 굳어진 송나희가 두 손으로 찻잔을 거머쥐었다. 그녀는 강민우를 주의 깊게 살펴달라던 오민국 차장의 말을 떠올렸다. 강민우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강민우는 이진아를 떠 올리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진아는 위험한 상태이다. 이진아를 체포하려고 합동수사본부가 차려졌고 공개수배령이 내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GIS에서도 이진아를 뒤 쫒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진아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위험해빠진 이진아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녀를 멈추게 해야 한다. 그녀는 반듯이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고 그곳이 허문한의 사이비종교집단이 있는 지리산일 확률이 높다. 매스컴과 언론에서 문제화되고 있는 사이비종교이니 수사당국에서 수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수사당국보다 먼저 허문한을 처치하려고 할 것이다.




대통령의 집무실, 대통령은 모처럼 소파에 앉아 잠시 책을 보고 있었다. 틈틈이 일고 있던 간디의 저서 ‘날마다 한 생각’이었다. 소파 옆의 탁자에 있는 벨이 울렸다. 대통령 관저의 내실과 연결된 인터폰이었다. 웬만해서는 내실의 영부인이 인터폰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통령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인터폰의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영부인의 목소리였다.




“여보! 지금 NXX 방송에서 특종 보도를 하고 있는데 보세요.”


“무슨 내용인데요?”


“하여튼 바쁘지 않으면 보세요.”




인터폰 수화기를 내려놓은 대통령은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전원스위치를 눌렀다. 채널을 돌려 NXX 방송에 맞추었다. 사이비종교 신도들이 광적인 울부짖는 가운데 교주가 설교를 하는 장면이었다.




“통일을 외치면서도 그들은 정권을 쟁탈하는 데만 눈이 어두워 있습니다. 우리 천궁교가 통일을 할 것입니다. 일본의 조총련에도 북한에도 우리 천궁교를 전파하고 민족통일을 이룰 것입니다. 모든 영생들은 천존님의 역사아래 뭉쳐야 합니다. 천존님은 세계의 영생들까지도 구원의 손을 뻗칠 것입니다.........”




방송을 보고 있던 대통령이 TV리모컨의 전원스위치를 눌러서 껐다. 며칠 전에 안기부장과 검찰총장을 불러 지시한 사항이었다. 그런데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보고도 받지 못했다. 차기의 대권을 노린다는 안기부장이나 법을 집행한다는 검찰총장이 괘씸했다. 정권을 비판하고 조총련, 북한을 운운하며 민족통일까지 들먹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무엇인가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대통령은 비서실로 인터폰을 눌러 경찰 총장과 NTIS 차장을 전화로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뒷집을 짚고 집무실 안을 배회하는 동안 전화기의 신호를 알리는 작은 불빛이 껌벅거리며 전화벨이 울렸다. 경찰총장과 연결된 전화였다.




“네. 각하! 경찰총장입니다.”


“지금부터 내가 지시하는 사항을 즉시 처리 하세요.”




“방송되고 있는 그 사이비종교, 지리산의 천궁교 알고 있소?”


“네.......!? 네!”


“그게 뭡니까! 언제부터 종교가 국가정책을 수행하고 됐소? 빨갱이 집단 아니오. 즉시 모두 잡아들이시오.”


“아! 네, 네.”




역정을 내고 팽개치듯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어서 다시 비서실로 통하는 인터폰의 벨이 울렸다. 비서실장이 NTIS 오민국 차장의 전화가 대기 중이라고 했다. 인터폰을 내려놓은 대통령이 불빛이 깜박이는 다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오 차장이오?”


“네. 오민국입니다.”




“그 말이야. 천궁교라는 사이비 종교, 알고 있소?”


“네. 지시하십시오.”


“안기부장을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지금 경찰청장에게 지시했는데 경찰의 협조를 받아서 NTIS가 그 집단을 잡아 드리시오. 이거 안보에 구멍이 뚫린 일 아니오.”


“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대통령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서성거렸다. 아직도 레임덕이라고 하기에는 임기가 많이 남았건만 안기부장에게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인터폰을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집무실로 들어선 비서실장에게 대통령은 귓속말로 모종의 지시를 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오민국 국장은 경찰청장과 연락하여 사전 대책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NTIS 책임자들을 소집하였다. 회의실에 모인 책임자들에게 오 국장은 대통령의 지시를 설명하였다. 설명을 마친 오 국장이 책임자들을 둘러보다가 강민우 실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전 과장은 NTIS 요원들을 출동 대기시키고, 송 실장은 잠간 남아요.”




지시를 내린 오 국장은 팔짱을 끼고 돌아서서 창문을 내다보았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질 정치사회 분위기를 기다렸고 어쩌면 GIS의 독주를 막을 기회이기도 했다. 책임자들이 회의실에서 나가고 송나희만 남아서 있었다. 창문을 내다보고 있던 오 국장이 돌아섰다.




“강 실장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더군.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서 쉬는 중인가?”


“아뇨! 요즘 출근을 했는데, 호출을 해도 연락이 안 됩니다.”




“연락이 안 된다면.......!?”


“개인적으로 알아 볼 것이 있다고 했는데, 지리산에 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 사람 또 혼자서.......! 개인적으로 알아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멈칫거리던 송나희는 강민우에 대해서 더 이상 감출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강민우가 이진아를 만나게 된 동기와 이진아를 찾아다니는 강민우의 심정을 소상하게 말했다. 송나희의 말 중에는 오 국장이 이미 알고 있던 사항도 있었다. 강민우에게 직접 들었던 내용도 있고 신상정보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진아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지리산의 명칭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수많은 은자들이 이산에 숨어 도를 닦으며 정진해왔음을 말해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은 지리산의 산세가 높고 웅대하여 수 백리에 웅거하는 산으로,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라 하여 두류산이라고 부른다고도 전한다. 




지리산 뱀사골은 돌골돌이라고도 하며, 지리산반야봉에서 반선까지 산의 복사 면을 흘러내리는 길고 긴 골짜기를 말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여러 골짜기들 가운데서 가장 계곡미가 뛰어난 골짜기의 하나로 꼽히며, 전구간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이 계곡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곳곳에 있다. 뱀사골이라는 이름은, 골짜기가 뱀처럼 심하게 곡류하는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한다.




얼마 안 있으면 철쭉꽃이 만발할 뱀사골로 오르는 산중턱에는 어둠이 내려 앉아 있다. 천궁교가 내려다보이는 암벽위에 검은 그림자가 초저녁부터 웅크리고 있었다.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배낭을 어깨에 메고 있는 그림자는 강민우였다. 망원경으로 천궁교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 그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긴장하였다. 섣부르게 천궁교에 진입할 수는 없어서 어둠이 내려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 속을 살피고 있던 그의 망원경이 한 곳에 머물렀다. 중앙의 건물 뒤쪽 나무숲에 사람의 움직임이 보인다. 팔이 뒤로 묶인 남자가 비틀거리며 사내에게 끌려오고 있다. 남자는 아마도 몹시 구타를 당했는지 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있다. 끌려오던 남자가 쓰러지면 사내가 발로 걷어차며 일으켜 세우고 질질 끌고 간다. 강민우는 암벽 옆으로 난 비탈길을 소리 없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코앞에 까지 다가온 강민우는 나무 뒤에 어둠 속에 은신하고 바라봤다. 사내가 남자를 걷어차면서 끌고 온 곳에는 삽을 든 또 다른 두 사내가 땅을 파고 있었다. 두 사내가 파낸 땅은 꽤 깊었다. 주변에는 땅을 파헤친 흔적과 무덤들이 보이고 음산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남자를 발로 걷어차는 사내가 침을 뱉으며 언성을 높인다.




“이장호! X 같은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배반을 해! 네가 윤정이를 도망치게 했지?”


“그, 그래. 천벌을 받을....... 악마 같은....... 놈들아.”




쓰러져 있던 이장호라고 불리는 남자가 가래 끓는 신음을 흘리며 꿈틀거렸다. 땅을 파던 사내 한명이 길게 숨을 내쉬며 남자를 구타하는 사내에게 물었다.




“춘보 형님! 이만하면 되겠습니까?”


“좀 더 파! 깊이 묻어 버리게.”




사내들에게 내뱉듯이 지시를 한 춘보가 이장호의 뺨을 후려쳤다. 얻어맞은 이장호의 턱이 돌아가고 입에서 침과 피가 튀었다.




“네 놈이 천신님의 여자를 도망치게 해! 그년 어디 있어 말해?”


“난.......모른다. 천신님이라고........!? 사람의 귀한 생명이나 빼앗고.......여인들이나 짓밟는 악마들 집단.......”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는 이장호의 말에 춘보는 발끈했다. 땅을 파고 있는 사내들에게서 삽을 빼앗아들고 이장호의 몸을 내리쳤다. 이장호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다.




“이런 X새끼! 모른다고!? 그년하고 만나서 살 생각이었지. 말하지 않으면 네놈을 생매장하고 하고 말거다.”


“차라리.......차라리 죽여라! 네놈들은.......저주받아 망하고........말 거다.”


“머라고 지껄이는 거야!”




삽날로 이장호의 머리를 찍어 내리려고 춘보가 삽을 높이 들었다. 그 순간 어둠속에서 그림자가 번개같이 날아와 춘보의 가슴을 걷어찼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남자. 나무 뒤에 은신하고 있던 강민우였다. 강민우는 여유를 두지 않고 땅바닥에 뒹구는 삽을 들어서 휘둘렀다. 바위에 부딪는 쇳소리처럼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춘보는 바닥에 쓸어졌다.




“헉! 머야?”




갑작스런 사태에 움푹 파인 땅굴 속에 있던 사내들이 허겁지겁 땅위로 기어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강민우의 발끝에 채인 한 사내가 뒤로 벌렁 나가자빠지고 있었다. 땅 굴 속으로 뛰어든 강민우는 바람처럼 다른 사내의 고환을 올려 찼다. 사내는 하복부를 붙들고 쩔쩔맸다.




“하 악~! 이, 이런.......”




다시 강민우의 손에 쥔 삽이 허공을 날랐다. 머리를 강타당한 사내는 신음소리도 못 내고 쓸어져 버렸다. 강민우의 발끝에 채였다가 뒤로 넘어졌던 사내는 삽시간에 동료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사내는 도망을 하려고 땅굴을 기어오르며 허우적거렸다. 휘잉!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등판을 겨냥하고 삽자루가 날아들었다. 삽자루에 얻어맞고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온 사내의 목이 강민우의 구두 발에 짓밟혔다.




중앙에 있는 천존궁 이층에서는 만찬이 벌어지고 있었다. 천궁교의 그들이 천존의 아들 천신이라고 숭배하는 교주 허문한의 생일 축하 만찬이었다. 진시황제의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만큼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이 차려진 큰 상이 놓여 있다. 오늘의 주인공인 교주가 중앙에 붉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떠 버티고 앉아있고, 교주 뒤에는 흰 두루마기를 걸친 이십여명의 백천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한쪽에는 5인조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는 수리가 흥을 돋우었다. 교주 양 옆에는 천후와 홍집사. 청집사. 그리고 음식이 차려진 상 둘레에는 홍, 청, 백의 두루마기와 점퍼를 걸친 신도들이 앉아서 술과 음식을 마시며 먹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천녀대와 천위대의 간부들이었다. 홍천녀 한명이 술병을 들고 일어나서 교주에게 술을 따랐다.




“지존이신 천신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하하~! 오늘은 영생을 위하여 자유롭게 마시고 먹도록 해.”


“부디 건강하시어서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연달아 천위대와 쳔녀들이 교주의 생일을 축하했다. 어떤 천녀는 술을 따르며 교주의 가슴에 안겨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술에 취하기 시작한 교주 허문한은 열기를 못 이는지 두루마기 자락을 걷어 붙였다. 두루마기 속에는 팬티 차림이었다. 그는 삼천궁녀를 거닐고 있는 황제처럼 가들먹거렸다. 가까이 있는 천녀들의 젖가슴을 움켜쥐기도 하고 무릎에 앉혀 놓고 사타구니를 더듬기도 한다.




대부분의 천녀들은 천신님의 은총이라면서 교주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술기운이 거나해지고 천녀들을 괴롭히는 교주의 손길은 노골적으로 심해졌다. 좌석에 있는 천녀와 천위들은 교주의 거칠어지는 행동을 노리삼아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젖가슴을 더듬으려는 교주의 손길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앉는 백천녀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강제적으로 이끌려 천궁교에 들어온 나이어린 백천녀였다. 그녀로 인해 흥겨웠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그녀는 두려움에 양손으로 앞가슴을 가리며 웅크렸다. 천후인 방순덕이 날카롭게 외쳤다.




“저런 못된 년! 천신님의 은총을 뿌리치다니. 독방에 가두어 놓고 공덕을 쌓게 해”




독방에 갇히면 일주일간은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구타를 당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천위대 두 명의 남자가 교주를 거부한 백천녀를 끌어내려고 다가섰다. 백천녀는 눈물을 흘리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청 집사가 천위대를 제지시켰다.




“그럴 거 뭐 있습니까! 나이어린 순결한 백천녀입니다. 오늘 천신님의 생신인데 너그럽게 저 천녀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지요.”




청집사의 교활한 눈빛이 교주를 향했다. 천궁교 안에서 신도들의 운명을 쥐고 있는 사람은 마지막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력자였다. 모두들 천존의 계시를 받고 있는 교주의 결단을 기다렸다.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허문한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아이가 마음에 안 드네. 오늘 기분 좋은날이니 그 아이는 놔두게.”


“그럼 천신님께서는 어느 천녀가 마음에 드십니까?”




간사한 목소리를 흘린 청집사가 교주의 눈치를 살폈다. 허문한은 마치 물건을 고르듯이 주변의 천녀들을 살펴보았다. 허문한의 시선이 머문 백천녀는 바로 이진아였다.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는 교주의 팔이 들어 올려졌다. 교주의 손끝이 이진아를 향했다.




“난, 저 천녀에게 은총을 내릴 것이다.”




허문한의 손끝을 의식하는 이진아가 소리 없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이진아가 기다리던 순간인지도 모른다. 항상 신도들이나 집사들에게 둘러 싸여있는 교주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허문한에게 복수할 기회가 온 것이다. 백천녀중에서도 교주의 은총을 받는 천녀는 천후 다음의 영광을 누린다. 모든 천녀들은 천신의 은총을 받는 백천녀를 모두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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