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 7부
본문
접이식 탁자가 치워졌다.
모로 선 광길이 주머니를 뒤져 쥐기 적당하도록 납작하고 컴팩트하게 변형된 까만 브레스 너클을 꺼내들었다.
그는 4개의 홀에 손가락들을 맞춰 오픈앵커에 나사못 들이박듯 관절 끝까지 빡빡하게 너클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이 워낙에 굵은지라 충진기 노즐을 힘겹게 빠져나오는 소시지처럼 보일 정도였다.
다른 손 역시 같은 방법으로 무장한 광길은 이대리가 잘 보이게끔 주먹을 들어 자신의 턱 밑에서 살짝 흔들었다.
중앙에 별이 새겨져 있는 너클의 금속 표면이 잘 닦여진 돌처럼 검은 윤기를 흩뿌렸다.
광길이 티셔츠 사내에게 눈짓하자 그는 그녀를 좀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다시금 무릎 꿇렸다.
"너 이제 나랑 개인적으로 말 좀 하자."
겁에 질린 이 대리를 빤히 보며 광길이 가드를 올리고 오른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마치 타이틀 전에 나선 복싱선수 같은 오소독스 스탠스였다.
"의자 좀 잡아라."
무슨 귀찮은 일 억지로 하는 양 말 뒤 끝을 길게 끄는 어조로 명령을 내리자 조직원 둘이 나와 양쪽에서 의자를 잡았다.
무거운 바위라도 미는 것같은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권투 해봤냐?"
그는 무릎을 굽혀 몇차례 가벼운 위빙과 더킹을 해보였다.
"선데이 펀치라는게 있어. 내가 제일 잘 칠 수 있는 펀치를 선데이 펀치라고 해. 내 장기는 바짝 붙어서 이렇게 치는 짧은 훅이야. 졸트라고 하지."
그가 팔꿈치를 몸에 붙이고 발을 내디디며 허리를 회전시켜 이대리의 안면을 가격했다.
피가 터졌다.
비명지를 새도 없이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그 서슬에 의자가 삐걱이며 뒤로 밀렸으나 사내들의 힘에 멈춰졌다.
"이 새끼야. 먹을 돈을 먹어야지."
그가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짧고 빠른 훅을 얼굴에 적중시켰다.
광길의 손에 두른 금속이 이대리의 얼굴에 흉칙한 골을 패어 놓기 시작했다.
수찬은 건물이 보이는 곳에 멈춰서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넉넉한 덩치에 할 일 없는 한량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주차 견인 표지판에 기대 담배 끝에 불을 붙이면서 눈으로는 이리저리 자기한테 전화를 했던 부하를 찾았다.
잠시 뒤 그 건물에서 좀 떨어진 후미진 골목에 스쿠터를 집어넣고 그 밑에 쭈그려 앉아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는 녀석을 찾았다.
그가 주변을 살펴보며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야, 어떻게 됐어?"
모바일 게임에서 눈을 뗀 녀석이 황급히 일어섰다.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아무도 안 나갔어?"
"얼마 전에 한 명 나갔습니다."
"아는 애야?"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쪽 팀 셋째 있잖아요. 좀 띨하게 생긴."
"셋째? 셋째가 어떤 새낀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왜 있잖습니까. 그 머리 이상하게 하고 다니는 놈요."
수찬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인디안처럼 하고 다니는 새끼?"
"예,예. 걔가 나갔어요."
수찬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을 멈추고 담배를 한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돈 찾았나부다. 저 새끼들."
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광길이 새끼 들어간지는 꽤 됐지?"
"예. 두 세시간 됐는데요.."
"돈 찾으러 보내고..나머지는 안 나오고.."
수찬이 건물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고기 써나부다. 그 새끼."
"예?"
수찬은 세워 둔 스쿠터의 안장에 기대 앉았다.
"여자가 들어갔다는 소리는 또 뭐야?"
"아, 예."
녀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차가 한 대 왔는데요. 여자를 하나 끌어내서 메고 들어가더라구요. 누군지는 모르겠구요."
"젊었어? 나이가 어떻게 돼 보여?"
"잘 못 봤습니다. 늘어져 있는데다 어깨에 메고 금새 들어가서..뚱뚱하진 않고 날씬한거 같던데.."
수찬이 하릴없이 스쿠터의 빈 악셀을 몇번 당겼다.
"그 새끼 대체 뭔 수작이야?"
그녀는 사태의 끔찍함에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거친 숨소리와 욕설, 판대기에 금이 가는 듯한 비명, 물이 가득 찬 부대자루를 두드릴때 나는 북소리같은 둔중한 파열음들, 흩어지는 핏방울, 수시로 터져나오는 고함소리가 그녀의 넋을 빼 놓았다.
비록 자신이 직접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들겨 맞아 폐품이 되어가는 저 남자가 겪는 고통이 그저 남의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티셔츠를 입은 사내는 이런 종류의 폭력에는 이미 둔감해져 버린 듯 팔짱을 끼고 서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지 눈을 감는지를 확인하다가 아무 말 없이 따귀를 날리곤 했다.
눈물을 흘리건,오열을 하건 그녀로서는 반드시 지켜봐야 하는 광경이었다.
길게 치고 짧게 치고 샌드백을 두드리듯 황동합금으로 된 너클을 이용해서 이대리를 때리던 광길이 반원을 그리듯 몸을 회전시키며 늘어진 이대리의 하관을 향해 미들킥을 넣었다.
흔히 하듯 발등으로 찬 것이 아니라 발목 위쪽 정강이 뼈를 사용해 찍어누르듯 휘두른 후려차기였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의자가 기우뚱 했으나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뭐야, 죽었나?"
광길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제자리에서 위 아래로 스텝을 밟는 모양이 살인이 아니라 가벼운 몸풀기를 한 것 같았다.
"벌써 죽었나? 엉?"
그의 말에 의자를 붙들고 있던 사내 중 하나가 꺾인 남자의 목에 손을 갖다 대더니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개새끼."
광길이 가슴 쪽으로 떨어져있는 남자의 얼굴을 향해 큰 훅을 날렸다.
힘이 없어진 남자의 목은 강한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괴상한 방향으로 꺾여 올라가 어깨 뒤로 접혀 그녀 쪽을 향해 클립으로 낀 것처럼 고정되었다.
피로 가득 차 벌어진 입, 주저앉아 흔적만 남은 코, 해바라기처럼 부어오른 뺨과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방식으로 꺾인 목, 그리고 그녀를 응시하듯 반쯤 홉뜬 눈을 본 순간 그녀는 낮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따귀가 날아와도 그 눈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사각이마가 시체를 묶었던 줄을 풀고 쓰레기를 차듯 발로 밀어 비닐이 깔려 있던 바닥으로 고꾸라 트렸다.
그들이 묵직한 철제 의자를 뒤로 빼가는 동안 광길은 곳곳에 피가 튄 싸구려 방수 트레이닝복을 벗어 시체 옆에 던져 놓았다.
낡은 껍질을 벗은 뱀처럼 상하의 트레이닝 복을 벗어던지자 그는 이런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셔츠에 글렌체크 팬츠차림이 되었다.
마치 방금 면접을 마친 간부직 구직자 같은 모습이었다.
비닐 면적 밖으로 벗어나며 그가 말했다.
"잘라."
언제나처럼 짧은 광길의 지시가 떨어지자 그녀를 태우고 왔던 원색 남방의 운전수가 상자에서 30cc 짜리 가솔린 엔진이 달린 체인톱을 꺼내 들었다.
스타터를 당기자 강하고 날카롭게 시동이 걸렸다
광길은 그녀가 꿇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야, 의자 좀 가져와라. 힘들다."
사내 한 명이 좀 전까지 시체를 묶어놓았던 의자를 끌고 왔다.
광길이 의자를 건네받아 거칠게 잡아끌어 그녀 앞에 놓고 그 위에 털썩 앉았다.
"너 이리 와봐."
그녀가 흠칫 놀라며 광길을 보고 보호자라도 되는 양 옆에 서 있던 티셔츠 사내를 보았다.
그녀를 내려다 보던 티셔츠 사내의 눈꼬리가 살짝 찌푸려졌다.
그동안 얻어맞았던 그녀의 뺨은 새빨갛게 달아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넣어 일어서 쭈볏거리며 그의 앞에 섰다.
걸쳐 입었던 망사 가디건은 어디 갔는지 간데 없고 부드럽게 패인 원피스의 상의 부분은 이미 땀에 젖어 있었다.
"봤으니 알겠지만 우리는 한번 일을 치룰 때마다 좀 냄새가 난다. 그치?"
그가 자기 팔뚝에 코를 대고 킁킁대는 시늉을 했다.
전기톱 소리가 빈 지하실 내부에서 부글거렸다.
사각이마와 돌격대 머리를 한 사내가 비닐을 잡아 끌어 넓게 배수시설을 만들어 놓은 벽 가장자리로 시체를 끌고 갔다.
시체를 처리하는 쪽 세 명을 빼고 나머지 세 명은 그 자리에서 느물대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날카롭던 모터소리가 갑자기 무딘 톱질소리로 떨어졌다.
"직각으로 넣어야지,이 새끼야."
작업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사각이마가 소리쳤다.
고기 갈리는 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가 곧 딱딱한 나무켜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녀는 그 쪽을 보지 않으려고, 그리고 소리도 듣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아..씨발..이 피냄새, 응?"
광길은 마치 피가 손에 있다는 듯이 천천히 손을 털며 컴컴하게 그늘 진 벽구석 속 어둠처럼 음침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우린 이렇게 일이 하나 끝나잖아. 그러면 위로가 필요해. 피냄새도 없애주고..사기도 올려줄 만한 걸루다."
소란한 와중에도 그의 소리는 또렷하게 들려왔다.
억양은 평이한 듯 했지만 분명한 악의가 전해졌다.
장난감을 뜯어보듯 그녀를 이리저리 재보다가 그는 얼굴을 낮추어 그녀의 눈과 억지로 시선을 맞추었다.
"뭐가 좋을까?"
"네?"
그녀는 토끼처럼 놀랐다.
무슨 소리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위로가 되려면 뭐가 좋겠냐구."
육질이 갈리느라 낮게 죽었던 회전톱날 소리가 일순 다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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