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 9부
본문
운전수가 스위치를 내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톱날의 요란한 회전을 끝냈을 때 사내들은 누군가의 전화벨이 울리고 있음을 알았다.
돌격대 머리가 황망히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영감님? 음. 일이 있어서 못 들었어. 응,응. 그래요?"
잠시 송화구를 막은 사내가 광길에게 말했다.
"형님. 그 절름발이 영감태긴데요,10분후에 도착한다는데..어떡할까요?"
그가 피바다를 만들어 놓은 벽 구석을 가리켰다.
"시체처리 안됐잖아, 임마. 야. 아직 많이 남았어?"
사각머리가 대답했다.
"거의 됐습니다."
"환풍기 좀 돌리구..그럼 넉넉히 30분 쯤후에 오라고 해."
광길은 열중쉬어 자세로 아무 가림도 없이 고스란히 노출된 그녀의 전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통화를 끊낸 돌격대 머리가 널찍하게 재단된 밤색 PVA 필름을 펼치자 사내들은 부위별로 잘린 고깃덩이를 포장하는 것처럼 시체조각을 옮겨서 포장하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할 옷이 떨어져 대책없이 벗겨 놓은 마네킹처럼 완전히 드러난 그녀의 나체를 봤을 때 광길이 처음 한 생각은 이거 제대로 꼴리는데..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거의 접대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그에게 여자는 유희의 상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선물로 주고 선물로 받고..섹스는 많은 경우 조용히 멈춰져 있는 기계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열쇠였지만 전능하진 않았다.
그 열쇠는 핀이 맞지 않아 실리더를 돌릴 수 없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사태가 이렇다면 성상납이 어떤 남자를 무너뜨리는데는 유효하지만 모든 남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만도 하건만 고집스럽게도 광길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실패를 하는 원인이 단지 섹스를 즐기는 개인의 성향 차이라고 생각했다.
즉 뭔가 잘못된 여자를 넣어준 것이다.
만약 상대의 이상형을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그 자식이 아무리 대쪽같은 원칙주의자라고 해도 그를 녹여버리는 섹스돌은 반드시 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눈 앞에 서 있는 거품같은 육체, 밀가루의 천연오일이나 미네랄조차 깨끗이 없애 하얗게 구워 낸 흰 빵처럼 한 줌의 지방이나 티끌도 없을 것 같은 미려한 크림색의 알몸을 보고 있자니 광길은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그야말로 자기가 소유하고 정복하고 마음껏 쥐어짜고 싶은 이상적인 몸이었다.
그는 그의 머리 윗쪽에서 둥근 유선형으로 튀어나와 늘어짐 없이 매달린 소담한 젖부터 즐기기로 했다.
물갈퀴 없는 오리발처럼 손을 좍 벌려 양 손으로 두 젖을 쥐자 그는 마치 압력없이 부풀은 수지방울을 쥐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저항감없이 눌려지는 살갗의 촉감, 그러면서도 곧 제 모양을 유지하는 스프링같은 탄력.
그녀가 충분한 수치감을 느낄 수 있도록 유방을 느리고 부드럽게 맛사지 하며 그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납작하게 앉아있는 젖꼭지를 끄집어 냈다.
그건 연한 핑크색의 작은 젖줄 돌기들로 뭉쳐진 손톱만한 크기의 나긋나긋한 기모근 조직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외로 숙인 채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물고 있었다.
"다리 좀 더 벌려봐라. 잘 안보이네."
가볍게 젖꼭지를 비비며 광길은 그 촉감을 즐겼다.
생고무로 만들어진 말랑말랑한 미니볼을 만지는 느낌, 그러나 그보다 훨씬 부드러워 녹기직전의 왁스를 만지는 것 같았다.
광길은 요것들을 유방 끝에 세워 놓고 그 모양을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다리를 조금 움직였지만 당연히 광길의 성에 찰 리 없었다.
"이 년아. 보지 보려구 그러는거야. 더 벌려. 활짝."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녀가 옆에서 누가 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떨며 흐느꼈다.
흡사 열도에라도 와 있는 양 그녀의 가슴 사이로 땀이 흘러내렸다.
운전수가 코팅된 면장갑으로 뒤굴뒤굴 굴러다니던 시체의 머리통을 잡아 대전된 필름으로 깨지기 쉬운 커다란 유리냄비처럼 보일만큼 칭칭 말고 나서야 포장 작업이 끝났다.
사내들은 피범벅이 된 바닥을 닦기위해 물청소를 시작했다.
세차호스의 분사기를 통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내용을 잘 알 수 없게 단단히 포장된 시체더미들은 큼직한 비닐봉투 세 개에 나뉘어져 담겼다.
고압분사 되는 물줄기를 따라 밀대가 달린 뻣뻣한 솔을 바닥에 문지르는 인원을 빼고는 모두 호기심과 음욕이 가득 찬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살살 돌리면서 입으로는 주저대는 그녀를 몰아세우며 그녀가 다리를 벌려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겨우 만족해서 윽박지르기를 멈췄을 때 그녀는 자기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려는 컴퍼스처럼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어야 했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유두 속에 숨어있던 근섬유 조각들이 수축하는 바람에 약간 이른 석양처럼 선명한 분홍색으로 발기된 젖꼭지에서 손을 뗀 광길은 젖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그 모양을 충분히 살펴보았다.
변곡선의 뾰족한 정점에서 물오른 팽팽함을 보여주는 유두는 먹음직스럽게 수컷을 유혹하는 빨간 찔레 열매 같았다.
눈물이 흐르는 그녀의 오뚝한 콧날을 보며 더없이 만족감을 느낀 그는 이번엔 몸을 낮춰 과도하게 벌어져 더이상 무엇도 감출 수 없는 그녀의 가랑이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젖과 젖꼭지의 색깔도 만족스러운 것이었지만 그녀의 치골에서 밑으로 변해가는 음부의 색조야말로 그를 감탄하게 했다.
프레리독의 잔털처럼 보드라운 터럭으로 일부 가려져 있었지만 비실같은 붉은 자주빛이 도는 음순은 하얀 허벅지나 복부와는 전혀 틀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음부로 손을 가져가 느리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충격으로 굳어진 그녀의 입에서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 허리를 뒤로 뺐으나 그의 손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젖을 쥔 손으로 그녀의 몸을 당겨 올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사타구니를 잡아끌어 만지기 좋은 자세로 그녀를 다시 세웠다.
"색깔이 좋아. 아주 참한 보지같아."
그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구멍 주위 날개처럼 덮인 얇은 살을 적당히 주무르며 천천히 문질렀다.
민감하고 보드라운 피부가 기분좋게 밀려다녔고 아직 애액이 나오지 않아 메마른 터럭들은 버석거리며 그의 손에서 부서졌다.
억지로 세워졌지만 그녀의 몸은 비소를 긁는 그의 추잡한 애무에 강풍을 만난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그녀가 뒤로 맞잡은 두 손은 손가락 끝으로만 겨우 얽힌 채 간신히 맞잡아 열중쉬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란한 분위기는 사내들의 몰입도를 한껏 높여놓았다.
아마 물소리마저 없었다면 깃털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만큼 조용했을 것이다.
"날 잘봐."
반쯤 정신이 나가 아무 것도 보지못하고 있는 그녀의 시선을 그가 붙잡았다.
"똑바로 보라고 이 년아."
그녀가 눈물로 가득 차 있는 시선을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이마는 전투함의 뱃머리처럼 삼각형으로 각이 져 있었고 헤어스프레이를 뿌린 머리칼은 좌우로 갈라 빗겨져 딱딱한 나무껍질처럼 굳혀져 있었다.
코는 심이 뭉뚝하게 주저앉았다가 끝으로 와서 솟으며 작살처럼 넓게 퍼져 얼굴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고 깎다 만 것같은 아주 짧은 수염이 인중 주변으로 짙게 나 있었다.
고집세고 잔혹스런 인상이었다.
눈은 뱁새처럼 찢어져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악의와 가학적인 즐거움으로 일렁거리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벌써 4년이 지났으니까. 아니, 5년인가.
그 짧은 시간동안 그의 모습은 모질게 깎여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저질렀던 그 모든 더러운 일들이 그의 분위기가 되었고 인상이 되었고 그를 잠식해들어가 인간 자체가 되어 버렸다.
지금에 비한다면 4,5년 전의 자신은 어린애에 불과했다.
어린애는 크는 법이고 모습은 크면서 바뀌는 법이다.
그 날 회사 앞에서 스쳐지나가던 그녀를 보지 못했더라면 아마 그도 잊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도 지났고 옛날에 살던 그 지방도시도 아니었지만 우연인지 악연인지 그녀와 마주친 순간 그는 너무도 수월하게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녀가 변함없이 예뻤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
그는 그녀의 음부를 주무르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젖과 젖꼭지를 주무르던 다른 손은 아주 간사한 방법으로 그곳에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상체를 약간 뒤틀었다.
눈물이 턱 밑까지 흘렀다가 방울져 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는데 그녀의 기억은 낯선 그의 윤곽에서 밀봉된 옛 일을 더듬고 있었다.
저 얼굴 선..지금은 각이 졌지만 이보다 약간 둥글고 약간 퍼지고..그리고 더 어렸던가.
그러다가 어두운 숲 속 나무 그림자 사이에서 이빨을 드러낸 야생곰이 덮쳐오는 듯 갑자기 어떤 깨달음이 닥쳐왔다.
그의 손이 그녀의 외음부를 샅샅이 훑으며 오르내렸다.
회음부를 거치며 느린 속도로 올라와 소음순 사이 속살을 갈라 쓰다듬다가 음핵을 만져준 후 내려가는 식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머리 속에다 배가 터질만큼 잔뜩 전기신호들을 충전한 앰프를 쑤셔박은 거 같았다.
그리고 방금 방아쇠를 당기듯 픽업 신호를 보낸 것이 틀림없었다.
폭발하는 진동이 그녀의 머리 속을 아수라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것이 더욱 뻔뻔스러워진 그의 능욕 때문인지 옛 기억이 되살려낸 그의 정체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많이 변했지만, 정말 많이 변해서 길거리에서 봤다면 절대 알아보지 못했을 테지만 그는 본 적이 있을 뿐 아니라 게다가 기억이 맞다면 그는 자기가 가르치던 학교의 학생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갔을 뿐 아니라 보육원에서 가출하는 바람에 중학교도 1년 늦어 그의 나이는 또래보다 두 살이 더 많았다.
학교는 지겨웠고 선생은 거지같았고 친구는..친구라기보다 주변에 있는 녀석들은 어리고 멍청했다.
그는 체육관 뒤 응달에 앉아 제일 멍청한 놈 몇을 부하로 만들었고 좀 덜 멍청한 놈들한테 줄창 돈을 뜯었으며 그 돈으로 줄창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 담배가 떨어진 어느 날 집 안에 돈 좀 쌓아놓고 사는 애들을 모아서 클럽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말이 클럽이지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 순진한 놈들한테 재미있는 거 좀 보여주고 재미있는 곳에서 놀게 한 다음 회비나 걷을 계획이었다.
말하자면 삥 뜯기가 귀찮아 아예 사금고 차릴 생각을 한 것이다.
반면 그녀는 막 들어온 교사였다.
영어선생님이었다고 기억하는데 1학년을 가르쳤고 그래서 광길이 그녀를 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새로 들어 온 선생님이 예쁘다는 소문을 들었고 일부러 복도에 서서 지나가는 것을 구경해본 적도 있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마주 댄 건 교무실에서였다.
첫 대면이 마지막이었다.
어느 날 주임선생한테 불려 교무실에 간 광길은 주임선생 책상 옆에 이미 불려와 있던 1학년 학생을 보았다.
그녀는 성난 듯 가늘고 길게 다듬어진 눈썹을 세우고는 그 1학년 옆에 서 있었다.
발목을 향해 그녀의 다리를 타이트하게 조여들어가던 베이지색 면바지가 생각난다.
평범한 바지였음에도 그 속에 들어있는 멋진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세련된 맛이 그녀에게 있었다.
광길은 그 와중에도 은근히 꼴리는 욕망에 그녀를 힐끗댔다.
주임선생은 그가 1학년 학생을 사주해서 벌인 일을 털어놓으라고 야단이었다.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1학년 놈은 그의 클럽 신입생으로 신고식을 하던 중이었다.
신고식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뤘는데 대부분 클럽회원들이 공범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 뭔가를 훔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하찮은 소지품 중 하나를, 예를 들어 화장품이나 생리대 같은 것을 훔쳤을 것이다.
창피해서 어디 가 털어놓기 힘든 것들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따위 좀도둑질을 자신이 시켰다고 호락호락하게 털어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그런 적이 없다고 바득바득 우겨댔으나 보아하니 멍청한 1학년 놈이 대부분 털어놓아 선생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는 잡혀 온 1학년 놈 선에서 대충 잘못을 시인하고 넘어갈 생각도 있었지만 주임선생이 말끝마다 들고 있던 막대기로 계속 머리를 쳐대는 통에 빡 돌아서 더 버텼고 그래서 상황이 아주 안 좋아졌다.
그때 그녀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1학년 녀석이 아닌 다른 회원 녀석의 신고식, 그러니까 또다른 놈의 절도 사실을 가지고 그를 추궁했고 비로서 그는 이 사건이 1학년 녀석 선에서 간단히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이 년, 이거 클럽에서 했던 일을 전부 알고 있는 거 아냐..그게 다 털리면 소년원행 정도는 실히 보장되고도 남았다.
어떤 놈이 불었을 수도 있고 또 그럴 만한 놈들도 있다.
몇 녀석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래서 잘 사는 새끼들은 믿을 수가 없다.
그는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 교무실을 휘저었고 놀란 나머지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 집의 멍청한 영감인형처럼 한 손을 들고 있던 주임선생에게서 막대기를 빼앗아 집어던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미운 것은 그녀였다.
이쁘고 그래서 꼴렸는데..씨발..자신을 적대하고 폭로하고 궁지에 몰고 그래서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1학년 놈을 잡은 것도 그녀고 증거를 들이대는 것도 그녀고 자신을 여기서 쫓아내는 것도 그녀였다.
그러자 치가 떨릴 정도로 증오감이 솟아올랐다.
그는 그곳에서 튀기 전에 그녀가 평생 처음 들어보았을 욕설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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