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푸른 날 - 2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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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전화기를 내려놓아 버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러다가는 나의 그녀가 큰일 나겠어.
손이 덜덜 떨려왔다.
내 안에서는 지금 선 과 악이 갈라져 전쟁을 하고 있었다.
욕망의 추구 때문에 그녀를 희생 제물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묘한 것이 뭔가가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녀에게 나를 지배하게 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나는 전화를 다시 할까 말까 고민했다.
그때 전화 벨이 울렸다.
“네 삼정 전자 경리과 직원 김 현정 입니다.”
“아~! 그쪽이 삼정 전자였던 가요?”
“네?”
“이쪽은 미스 엔 마스터입니다. 전화 하셨었죠?”
내가 전화를 맘대로 끊어 버리자 그쪽에서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어떻게?
“전화 번호는 어떻게 아셨죠?”
“발신 번호를 보고 알았죠. 그런데 왜 그냥 끊어 버리셨어요?”
“아니..요.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래도 없었던 일로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왜 요?”
“저의 욕심을 채우려고 남을 희생 시켜서는 안되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그녀가 파트너를 해주기 바라죠?”
나는 부인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죠.”
“그렇다면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우리가 그녀를 완벽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자부 합니다.”
“네?”
그녀의 말이 아주 엉뚱하게 들렸다.
바꾸다니?
뭘 바꾼다는 말 인가? 혹시 나의 그녀를?
“그런 것은 당사자의 결정에 달렸어요. 당신들이 바꾼다고 떠들어댈 문제가 아니라고요!”
나는 조금 화가 나 톡 쏘아 붙여줬다.
여자는 조금 당황한 듯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화가 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면 일단 그 분에게 의사를 묻는 것은 어때요?”
“의사를 요?”
미스 엔 마스터 측의 사람은 정말 완벽하다 할 정도로 그녀를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녀와 통화를 끝냈을 때 머리가 멍할 지경이었다.
“정말 그런 것으로 가능할까?”
나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점심시간을 보내버렸다.
직원들이 돌아오고 나의 그녀도 점심시간이 끝나고 얼마 안가 돌아왔다.
“현정 씨 식사 맛있게 했어요?”
“......”
“현정씨~!!”
“네. 네에~~?”
주위에서 키득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이상한 전화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그녀의 음성을 또 놓치고 만 것이다.
“정말~ 언제쯤이나 그런 멍청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겠어요?”
평**면 기분이 상했을 법도 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말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의 신경은 온통 미스 엔 마스터 쪽으로 쏠려 있었다.
“자 ~ 오늘 도 수고 많았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퇴근 시간은 찾아왔다.
동료들은 하루를 정리하는 지금 기지개를 켜면서 쌓였던 몸의 긴장을 털어냈다.
그들은 마치 경주를 하듯 사무실 출입 문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럼 내일 봐요.”
사무실은 마술이라도 걸린 듯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내밀어 물었다.
“언니 오늘 바쁜 일 있어요?”
“아니. 별로.”
둘 만 있을 때 이렇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다시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책상 위를 정리하다가 시선을 나에게 맞추었다.
“우리 오늘 은 기분 좀 내 볼까?”
“응?”
“중국음식 시켜 먹는 거 어때?”
“여기서?”
“물론 우리들의 집에서 지. 그 편이 훨씬 분위기 있지 않겠어?”
나는 반대 할 이유가 없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우리 둘 만의 특별한 시간이 허락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우리 의 집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나에 대한 감정을 자연스레 표현했다.
나는 정말 기뻤다.
“언니 향수 냄새 좋은데요?”
“아! 작년에 미국으로 놀러 갔을 때 샀던 거야. 샤넬 넘버 5 는 흔히 들어봤을 거야.”
“샤넬 넘버 5 ? 그거 아직도 판매 하고 있어요?”
“아직도 라니? 샤넬 이 그 제품으로 성공한 만큼 향수 하면 간판 스타 나 다름 없는데. 예전의 샤넬 넘버5 하고는 질 적으로 많이 달라졌어.”
“그래? 가격도 비싸겠네?”
“사실 이건 좀 그랬어. 우리 돈으로 백 이십 만원이나 했으니까. 하지만 직판 이 아니라 수입 품이니까 관세 같은 것을 따지면 그렇게 하는 것도 이해가 되.”
“명품이라는 애기죠?”
“그러니까 좀 그랬다고 하잖아?”
그녀는 약간 과한 소비로 인한 지출 의 흔적을 나에게 들켜버리고 부끄러워했다.
세상에~ 돈 많은 인간들이 우리 언니 반 만 닮아도 경제 가 한참이나 좋아지겠다.
개나 소나 외국에 퍼나르느라 정신없는 판국인데. 향수 백 이십 짜리 한개 샀다고 미안 해 하는 이런 착하고 성실한 부자 집 여인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녀의 집 앞에 도착 아니 우리 들의 집 앞에 도착 하자 중년의 여성 한 사람이 우편 함에서 기웃대고 있었다.
“어? 아줌마 웬일이세요?”
“유정이구나. 아니 조금 전부터 누군가 집 앞을 서성이고 있기에 이상해서.. 그런데 옆에 아가씨는 누구야?”
“제 친구 동생이에요. 자취방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저희 집의 부모님이 지방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집도 썰렁해지고 해서 당분간 같이 생활 하기로 했어요. 아줌마도 아시다 시피 이런 처녀가 함부로 혼자 자취를 하다가 보면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그야 그렇지.”
나의 그녀는 나와 의 문제를 열심히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하긴 우리 사이가 좀 이상해 보이기는 할 거야.
“잘 부탁드립니다. 김 현정 이라고 합니다.”
“아가씨가 아주 똑 부러지게 생겼네. 나도 잘 부탁해요. 유정이 엄마 하고는 친구 사이에요.”
그 아줌마는 바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다시 집 앞을 유심히 살폈다. 정말 뭐하는 거야?
“어디 갔지?”
“네?”
“아니 그놈이 이제 안 보이네?”
“놈이요?”
“집 앞에서 기웃 대던 아!! 저기 저 놈이다!”
갑자기 여인이 내 뒤쪽을 가리키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뒤에 중년의 나이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김 유정씨?”
남자는 다짜고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뭐야 이건?
“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카드 키 만든다고 하고 이제 오면 어떻게 합니까?”
“아!”
나의 그녀는 뭔가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난 듯 손으로 이마를 한번 치더니 그 남자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의 말을 했다.
“죄송 합니다. 깜박 잊고 있었어요.”
“나 참! 당신 때문에 여기서 삼십 분을 넘게 기다렸어요. 이래도 되는 겁니까?”
“정말 죄송해요.”
“됐어요. 카드 키 나 이리 넘겨요.”
뭐가 어떻게 되가는 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백에서 카드 키를 꺼내 남자에게 주었다.
남자는 카드키를 유심히 보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비교해 보며 잠깐 동안 시간을 보냈다.
“아이고! 내가 잘못 알았나 보네. 열쇠 때문에 그렇게 서성이고 있었던 모양이었구만.”
그 남자는 집 앞에 대충 주저 앉아 중년의 여인을 쏘아 보면서 일을 계속 했다.
“도둑이 아니라서 미안하구만!”
“오 호호.. 죄송해요. 유정아 나 그럼 이만 가볼게.”
“아! 예.”
여인은 부끄러웠는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하여간에 아줌마들의 호기심이란..
남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카드 키를 이상하게 생긴 기계 안에 밀어넣고 열심히 조작하더니 오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다시 나의 그녀에게 넘겨줬다.
“열쇠 복제는 다 되었으니까. 비용이나 지불해요.”
“정말 죄송해요.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됐으니 어서 비용이나 줘요.”
그녀는 백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그 남자에게 내밀었다.“
“이런 것으로 보상은 되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백 만원 짜리 수표? 열쇠 값은 출장비 까지 합해서 십 오만 원 쪽인데?”
“아저씨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은 대가를 지불한 것 뿐이니 받아주시고 그만 화를 푸세요.”
“아...하하하.. 정말 받아도..”
“괜찮다니까요.”
그는 갑자기 입이 귀에 걸려 너털 웃음을 터뜨리면서 칭찬의 말을 시작했다.
“세련되어 보이는 이런 아가씨가 이 집의 주인이라니 집이 좀더 확 사는 기분이네요.”
까지 말고 그만 가!
남자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갔다.
하여간에 돈의 위력이란..
“이거 현정이가 가지고 있어.”
복제된 카드키를 그녀는 나에게 내밀었다.
“이걸 왜 나에게?”
“왜 라니? 내가 항상 현정이 와 같은 시간대에 퇴근 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러면 언제 까지나 나를 기다렸다가 집에 돌아올래?”
“나 언니 물건 훔쳐가지고 어디로 잠적 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막 믿어도 돼?.”
“오호호홋~! 너라는 아이가 퍽이나 그렇게 하겠다.”
무시하는 투라 약간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를 믿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나 늦을 때는 이 키로 먼저 들어가 쉬어.”
“고마워요 언니.”
“당연한 일인데 뭘.”
우리는 욕실에 들어가 같이 거품 목욕을 했다.
이 놈 의 집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지 몰라도 커다란 방 같은 욕실이 네 개나 딸려 있었다.
손님 접대 용 인가?
그녀의 몸은 정말 아름다웠다.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만큼
그녀의 손이 내 등에 닿으며 부드럽게 목욕 스펀지 와 움직일 때는 전기가 몸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2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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