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야설

지워지지않는 흔적 - 1부 1장

본문

한참을 달려 도착한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팬션.


그는 이미 내게 그곳에 나와 함께 가보고 싶다고 했었다.


인적은 드물지만 참 예쁘게 바다의 모습을 담아내는 팬션이 있다며 그곳에 나와 함께 가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곳에 처음 만날 날 데리고 와주었다.


그는 색맹환자처럼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세계 속에 갇혀 시들고 있던 나를 색이 있는 세상으로 꺼내어 주었다.


발코니에서 바다와 바다를 닮아 있는 하늘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던 나를 그는 뒤에서 꼭 안아 주었다. 


그의 숨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오고 그의 숨결이 내 머릿결을 스치며 내 귀를 간질이는 그 순간 나는 내게 주인이 생긴다면 그건 그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품안에서는 정말 강아지가 되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 그런 생각을 알았을까 그는 고개를 숙여 내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 이젠 옷을 벗어야지 하고 말했다. 짧은 인사 뒤 그의 입 밖으로 나온 첫 말이었다.


여전히 뒤에서 나를 안고 있던 그였지만 내 눈동자의 흔들림을 보기라도 한 듯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를 뒤에 세워두고 나는 짧은 망설임의 시간 뒤 옷을 벗었다.


티셔츠와 스커트 그리고 속옷. 그것이 나를 감싸고 있는 전부였다.




발코니에는 알몸이 된 나, 그리고 나를 흔들림 없이 바라보는 그뿐이었다.


그의 손에는 목걸이가 들려있었다. 개목걸이.


따뜻함에 망각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난 지금 그의 앞에 사람으로 서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주인이 있을 수 없다. 


난 그를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이게 네 목에 채워지면 너의 그 두 손도 발이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무슨 말인지 알았지만 대답하지는 못했다. 스스로 한 결정이었지만 망설임과 두려움은 여전했다.


그는 무서운 말로 위협하거나 거친 행동으로 일부러 위화감을 주진 않았지만 표정 없는 얼굴, 따뜻함인지 차가움인지 알 수 없는 그 모호함이 나를 긴장하게 했고 그를 두려운 존재로 여기게끔 했다.


난 그에게 건넨 첫 인사 외에는 아직 입 밖으로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침을 삼켜도 입안은 여전히 바짝 말라 목안을 따갑게 했다.


그는 내게 대답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는 조용히 나의 목에 그 목걸이를 채웠다. 그리고 나의 두 손은 땅을 짚고 있었다.




베이지색 면바지에 은색의 가는 세로줄이 들어간 하얀색 셔츠를 입은 그의 발밑에 나는 알몸인 채로 목에 개목걸이만을 걸고 두 손도 애초에 발이었던 듯 땅을 짚고 엎드려있었다. 내 목줄의 끝을 그가 잡고 있다. 그가 내 주인이다.


그의 움직임에 나 역시 따라 움직였다. 그가 나를 이끌고 팬션 안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 그의 움직임대로 네발로 기어 팬션 안으로 들어갔다. 복층으로 된 팬션에 2층이 침실이었다.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 킹사이즈의 침대가 놓여있는 아늑한 침실로 나를 안내했다. 그가 가져온 제법 큰 가방 안에서 그는 안대를 꺼내어 내 눈을 가리고 움직이지 말 것을 명하고 그는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무릎이 아팠다. 익숙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 조금의 움직임에도 내 무릎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목안도 이젠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말을 해야 했다. 그를 어떻게 불러야할지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할지 내가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난 지금을 참을 수 없었다. 


나를 혼자 방치해두고 그는 아래층에서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점의 빛마저 허락 받지 못한 채 나는 그가 내는 작은 소리에 귀를 집중하며 애써 그의 움직임을 파악하려 했다. 


그의 시선을 느낄 때보다 그의 방치가 더 나를 뜨겁게 했다. 기다림, 그것이 가지 무한의 두려움을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나무로 된 층계를 오르는 발소리가 들려옴에 난 마음으로 안도하였다. 계단을 오르던 발소리가 멈추고 그의 인기척이 근처에서 느껴지자 조금씩 몸도 마음도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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