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 - 3부 1장
본문
군대에서 제일 바쁜 계급이 무엇인줄 아는가?
바로 일병이다.
일을 하두 많이 해서 일병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암튼 이등병 시절에 비해 많은 일들을 해야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은 잠을 잘 때일 뿐 눈을 뜨면 긴장과 일이 기다리고 있다.
어서 상병으로 진급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병을 단지도 3개월 되던 어느 가을 일요일 아침.
종교활동시간이어서 일이병은 어쩔수 없이 종교행사를 참석해야했다.
말이 종교활동이지 일이병에게는 두려운 시간이다.
일병주임이 인솔해가서 평시에 고참들 눈 때문에 하지 못한 집합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구타가 많이 없어진거는 사실이나 아직까지 약간의 구타와 얼차려는 남아있었다.
하지만 집합의 두려움은 어쩔수가 없다.
집합시간에 보초라도 나가면 그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집합시간이 정해지고 그 시간이 다가올 때의 두려움과 무기력함에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생긴다.
하지만 막상 집합이 끝나면 후련하거나 무사히 또 한번의 집합을 넘겼다는 안도감이 든다.
암튼 오늘의 종교행사에서 집합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병주임을 제외하고는 모두 숨도 제대로 못쉬고 종교활동을 가고 있었다.
교회에 도착하자 잠시 담배 피울 시간을 주더니 곧 교회 뒤로 모이게 했다.
오늘 집합의 원인은 군가소리였다.
군가소리가 작다는 것이다.
집합때마다 나오는 지적사항이다.
속으로 짜증이 났다.
"씨발. 목이 쉴 정도로 소리치는데 소리가 작다니..."
일병주임이 짬밥순으로 나란히 서있는 우리에게 다가와 쪼인트를 차례차례 깐다.
그리고나서 머리박고 한소리 또 듣는다.
아침이라 날이 훤해서 집합시간은 짧게 끝났다.
긴장도 풀린다.
다들 그나마 이정도로 끝난게 다행이다는 표정들이다.
담배를 피우며 주임들이 장난을 치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씻어낸다.
교회에서 예배가 끝나고 나오면서 우유와 쵸코파이를 하나씩 받아든다.
사회에 있을 때 쳐다보지도 않던 쵸코파이.
달달한 쵸코로 뒤덮힌 빵에 하얀 마시멜로우.
이거 하나에 군생활의 고단함도 잠시 달콤함에 젖어든다.
그렇게 부대에 복귀하자 나를 기다리는 소식이 있었다.
종교행사 복귀를 일직사관에게 보고하고 들어가려할 때 나를 불렀다.
"장도하."
"일병 장도하!"
"가족이 면회왔다. 언능 옷 갈아입고 면회준비해라."
"일병 장도하 예 알겠습니다!"
"엄마만 혼자왔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얼굴도 보지 못한 체 복귀한지가 3개월이 되었다.
복귀하고나서 몇번이나 전화를 하려했지만 차마 통화할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해도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세수를 대충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신고를 하러 행정반으로 향한다.
일직사관이 상부의 지시로 인해서 영내면회만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면회실로 뛰어갔다.
문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갖갖이 음식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면회실 내부를 주욱 훑다고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다.
면회실 한구석 테이블에서 아빠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테이블 맞은편에 두여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벌써 나를 발견한 누나가 손을 흔든다.
엄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잠깐이지만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바로 엄마의 눈은 다른 곳을 향했다.
곧장 테이블로 향해간다.
아빠가 일어나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신다.
"잘 지내고 있었냐?"
"네 아빠. 잘 지내셨어요?"
악수를 하며 대답했다.
"네가 고생이지 우리야 뭐 잘 지내고 있다. 옆에 앉아라."
난 아빠 옆에 앉았다.
엄마가 맞은편 의자 왼쪽으로 앉아있었다.
"도하야 너 완전히 시커먼스다. 크크크."
누나가 검게 그을린 내얼굴을 보고 놀린다.
"당연히 군인이니 햇빛에 그을려 검게 탔지. 보자마자 시비네?"
아빠와 누나가 웃었다.
엄마를 보니 어색한 웃음을 보인다.
아빠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하셨다.
"야! 네 엄마가 말야. 너 부대복귀하고 네 걱정하느라고 며칠을 끙끙 알았단다.
여보! 이제 건강히 잘 있는거보니 안심이 좀 돼?"
그때서야 엄마가 입올 여셨다.
"이이는 네가 언제 그랬다구..."
"허허. 이사람이. 야 내말이 거짓이냐?"
"맞아 도하야. 엄마 네 걱정 매일 했어."
누나까지 거들자 엄마는 더이상 변명을 못하고 난처해했다.
"헤헤헤. 엄마는 걱정도 팔자셔. 아들 이렇게 건강히 잘 있잖아요."
엄마가 우물쭈물 못하자 내가 어색함을 피우려 먼저 말을 했다.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셨다.
"그래 검게 그을리니 건강해 보인다.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
그렇게 말하지만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듯 누나가 입을 열었다.
"엄마 준비해온거 먹어요."
하고 엄마들 부추겼다.
엄마는 테이블에 놓인 보자기를 풀어 도시락을 꺼냈다.
"엄마가 너 좋아하는 거라구 아침부터 김밥이며 소갈비찜 준비하셨다. 참내. 딸이 어디가도 이렇게 해주실라나?"
누나가 웃으며 빈정거리자
"얘 너두 군대가면 이 엄마가 이거보다 더 잘해서 매일 면회갈께."
모두가 같이 웃었다.
누나의 농담에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역시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건네고 이야기를 해갔다.
엄마도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을 했으나 결코 나의 눈을 보지는 못했다.
나역시도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있어서 차마 엄마를 제대로 보질 못했다.
엄마가 싸온 음식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아빠의 회사는 일본쪽으로 큰건의 거래가 성사되면서 활기를 찾았다고 한다.
나는 군대 생활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안심시켜주었다.
얼마전에 갔다온 훈련을 자랑삼아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축구와 족구 이야기를 해주었다.
군에서 하는 일이 뭐 다 그렇지않은가?
작업, 보초, 축구 등등
나는 신나하며 이야기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늘 지루한 표정이다.
가족들이 좀 지루해 하길래 곧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이것이 군인과 일반인과의 벽인가보다.
음식을 다 먹고나니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진다.
면회실에서 모두 나와 면회소 주변의 정원을 같이 산책했다.
늦가을이라 낙엽도 다 지고 횡한 느낌마저 든다.
오래 있어봐야 할 것도 없다.
이야기 꺼리가 떨어지면 영내면회는 이렇게 썰렁해진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던 중 누나는 화장실을 가고 아빠는 차에 잠깐 가게 되었다.
엄마와 단둘이 남게 되자 난 뻘줌이 앉아 먼산을 쳐다 보고만 있었다.
엄마도 누나와 아빠가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침묵이 계속되자 마지못해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음....응..."
약간은 당황한 엄마의 대답이다.
그리고나서 또 침묵.
"넌 잘 지냈니?"
"네..."
나역시도 짧은 대답만을 하고 말았다.
"음..."
"..."
"이 말만은 엄마에게 꼭 하고싶었어요."
"..."
"미안해요...정말 미안해요..."
"..."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니 가슴이 조금 후련해지는 걸 느꼈다.
엄마의 대답은 조금뒤에 있었다.
"넌 잘못없어. 도하야."
"..."
"너 그렇게 보내구 가슴이 많이 아팠고 혹시나 네가 힘들어 하지않을까 걱정 많이 했었어."
"..."
"네가 엄마에게 미안해할 필요없어. 그냥 이제 조용히 묻어두자."
"..."
"엄마가 바라는 건 그게 다야. 네가 잘못한게 아니구 엄마가 정숙하지 못한게 오히려 잘못이야.
그러니깐 더이상 서로 미안해 하지말자."
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고마워서 고개만 끄덕이구 있었다.
멀리서 아빠가 손에 음료수를 들고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애써 웃음을 보였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좋아하냐?"
"당연히 좋져. 오랜만에 아빠 엄마랑 누나보는데 안좋겠어요? 흐흐흐."
"이구 이 녀석아! 군대가서 좀 어른스러워졌나 싶었는데 아직 멀었구만. 하하하."
아빠가 웃으며 나와 엄마에게 음료수캔을 하나씩 준다.
잠깐이지만 엄마와의 짧은 말 몇마디가 그동안의 어색함을 많이 없애주었다.
이젠 엄마도 대화에 좀더 끼어들기 시작했고 웃음도 보여주었다.
엄마의 그런 모습에 나역시 조금씩 안도를 하게 되었다.
지난일에 대해 죄책감을 덜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날 이후로 엄마와 짧지만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게
너무나도 좋았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더 전하고 싶지만 둘만이 따로 시간을 낼 수 없다보니 아쉽기만 했다.
엄마와 중간중간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이제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따스한 눈웃음이 나를 반겨주었다.
어느덧 복귀시간이 다 되어서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갔다.
"아빠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응 그래. 너두 몸조심하고 남들 다 하는 군생활이니깐 힘들더라도 잘 하리라 믿는다."
아빠가 양어깨를 힘차게 치며 격려해준다.
아빠가 운전석으로 타고 누나가 차안에서 손을 흔든다.
"야! 휴가나오면 이 누나 많이 청겨줄께. 몸건강하고 휴가때 보자."
엄마가 차에 타지 않은 상태에서 차를 등지고 나를 향한다.
"몸건강하구...엄마 괜찮으니깐 걱정말구..."
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다.
이윽고 엄마가 손가방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조용히 바지주머니에 찔러넣는다.
엄마가 순간적으로 쉿하는 입모양을 한다.
그리고나서 돌아서서 차 조수석으로 탄다.
차에 시동이 걸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차장입구로 차가 향하자 마지막 인사들 나눈다.
서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차가 줄발했다.
잠시 차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피운다.
아빠앞이라 피우지 못한 담배를 맘껏 들이마신다.
돌로 만들어진 벤치에 앉아 주머니를 뒤적인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몰래 넣어둔 편지봉투를 꺼낸다.
봉투가 좀 두둑한게 용돈을 제법 넣으셨나보다.
"엄마는 뭔 이런걸 다 챙기신데..."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꺼내자 하얀 편지지와 만원권 지폐가 여러장 같이 나온다.
돈은 그대로 집어넣고 편지지만 꺼낸다.
편지지를 펼쳐 꺼내 읽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 글을 쓰려고 몇 번이나 펜을 들었다 놓았다 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글을 써본다.
이 편지가 너에게 전해질지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혹시나 너에게 전해주지 못할까 또 걱정이구나.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구나.
지금 나의 심정은 두렵단다.
나의 섣부른 행동이 너에게 얼마나 많은 혼돈을 주었으며,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무엇보다도 그날의 일들로 인해 네가 나를 떠날까 너무나도 두렵단다.
모든게 엄마의 섣부른 행동으로 그렇게 되었으니 나를 용서해주렴.
예전처럼 엄마와 아들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손모아 기도한단다.
그날과 그전에 있었던 너와 나의 일들을 잊어버리자.
그리고 예전처럼 다시 돌아가자.
요즘들어 옛 기억을 더듬게 된단다.
너를 임신하고 기뻐하던 순간.
배속에서의 너의 움직임.
힘들게 출산하고나서의 너의 첫 울음소리.
그리고 너를 처음 안았을 때의 감동.
네가 처음 엄마라고 불렀을 때.
네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너의 초등학교 입학식.
이제는 하나 하나 추억으로 남게 되었구나.
넌 엄마에게는 언제나 어린 아들로 비춰지리라 생각했어.
하지만 이젠 너도 다 큰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단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의 욕심이겠지?
군에 가서 늠름해진 너의 모습이 자랑스럽단다.
다음부터는 어른처럼 대해 주어야겠다.
날씨가 이젠 제법 쌀쌀하다.
군대는 유낙히들 춥다고 하는데 걱정이구나.
추우니깐 옷 항상 단단히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가끔 너의 빈방에 앉아 너를 생각하곤 한단다.
너의 손때가 묻은 책과 책상.
한번씩 너를 느끼려 손을 대어 본다.
여지껏 떨어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너의 빈자리가 무척이나 크게 느껴진다.
네가 있을 때는 못했는데...
암튼 네가 빨리 제대하고 이 빈자리를 채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두서없이 생각나는데로 써내려서 글이 엉망일꺼야.
네가 이해하구 읽어주길 바래.
사랑하는 아들 도하야.
네가 이 편지를 읽고나선 너와 내가 예전처럼 든든한 아들과 편안한 엄마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젠 그날의 일을 머리속에서 지울께.
너역시도 그러리라 믿을께.
면회를 가서 보거나 휴가를 나왔을 때 너와 웃으며 이야기하기를 기대하며...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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