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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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준비된 결별
다음 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들은 돌아가고 없었다.
시계를 올려다보자 9시가 넘고 있었다.
애고, 내가 미쳤지! 9시라니...
평**면 여섯 시면 자동으로 눈이 뜨이던 나였다.
후닥닥 잠자리에서 빠져 나와 기지개를 켜는데 예상외로 몸이 가뿐했다.
푹 잔 잠 탓인가...?
아들이 학교를 안 간다니까 내 몸까지 이리 가뿐하네.
애구구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빨리 아들 밥 주고 가게에 나가야지!
거실로 나오자 소파와 테이블 위로 창 넘어온 햇살로 온통 볕 잔치다.
욕실로 들어가 우선 눈곱만 떼고 주방으로 향하는데 식탁 위에 쪽지가 하나 놓여 있다.
"엄마 나 독서실 가요! 다음 월요일에 모의고사 있거든요. 지갑에서 점심 값까지 7천원 꺼내가요! -헤^^ 엄마 아들-"
"헤^^ 엄마 아들"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안에 만원짜리도 있었는데 그거 한 장 안 꺼내가고...?
아들 밥 챙길 필요가 사라지자 내 허기는 저절로 멎는다.
다시 욕실로 들어가 세안을 하고 안방에서 대충 찍어 바르고 집을 나섰다.
가게에 도착하니 막 10시, 이만하면 평소보다 조금 늦은 편이다.
그런데 가게문에 쪽지 하나가 또 끼어 있었다.
예상대로 하 선생이었다.
"아직 못 나오셨군요. 어젯밤 그렇게 보내드려 너무 죄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떠나신 후 내내 걱정하다 전화를 드렸더니 핸드폰을 거기 두고 가셨더군요. 그것도 전해드리고 어젯밤 사과도 드리려 왔습니다만... 많이 피곤했을 겁니다. 전화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하진봉-"
내가 정말 주책이었네.
그것도 모르고... 아직도 그걸 못 알아차리고...
이 주책 아줌마! 한심한 이 주책바가지!
하하하 흐흐흐 히히히...
그럼에도 왜 웃음이 나오는 걸까?
느닷없이 웃음이 터지는 걸까? 호호호... 호호호......
그 웃음 속에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터널 속에서 갑자기 시동을 꺼트려 당황하는 그 모습이..
깔깔깔... 낄낄낄... 껄껄껄......
한참 웃어제키다 이건 웃는 게 아니라 하 선생을 비웃는 거란 걸 깨닫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가 남긴 쪽지에 눈물이 번졌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비웃음의 눈물이...
나는 황급히 그 쪽지를 쓰레기통에 감추고 다소곳이 앉아 전화기를 돌렸다.
"하진봉입니다."
"아, 저 손명순인데요, 어제는 제가 너무 생각이 짧아 결례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너무 민망해 하시는 거 같아 그만..."
"아, 아닙니다. 제가 결례했죠! 더구나 그 밤길에 혼자 보내다니... 너무 큰 죄를 지어 잠 한숨을 못 잤습니다. 이렇게 무사하신 걸 보니 이제 안심입니다."
"여러 가지로 폐만 끼친 거 같아요!"
"그 말씀은 제가 해야하는 걸요? 그나저나 점심시간 시간 좀 낼 수 있나요? 핸드폰도 전해드려야 하고..."
"선생님 바쁘시니 시간에 맞춰 제가 그리로 갈게요!"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어젯밤은 누가 뭐래도 내가 도망친 거다. 내 민망함에 나 스스로 달아난 거다.
처음 당하는 남자의 임포보다 나를 잠재우려 그가 손수 자위해줬다는 그 민망함이 날 더 못 견디게 만든 거다. 그걸 보면 난 정말 이기적이다.
상대방이 받을 충격보다 내 자존심이 더 크게 느껴진 거다.
이걸 어떻게 사과하나? 어떤 식으로 사과를 표해야 하나?
그때 또 전화벨이 울렸다.
"예 부띠끄입니다!"
"야! 네 핸드폰이 왜 그에게 가 있니? 벌써 그렇게 된 거니?"
"아, 언니구나. 말 마쇼. 어젯밤 쇼가 벌어졌우!"
"뭐? 쇼...? 나 지금 시내인데 금방 가께!!"
어지간히 성질도 급한 여자, 언니가 부리나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짜고짜 따져 묻는다.
뭐, 임포였다고?
그래서 혼자 도망쳤다고?
얘! 너무 심했따아!!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그래서 너 고민 중이구나?
그런 걸 보면 하느님은 참 공평한 거야! 이거 저거 다 주진 않거든... 등등등등
한 바탕 웃음과, 한 바탕 동정과, 한 바탕 위안을 주고 언니가 사라지고...
한 시간쯤 후, 그의 회사 근처의 어느 해물탕 집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진짜 밤 새워 날 걱정한 건지, 아니면 자신을 걱정한 건지 하루 사이 핼쑥해진 기분이었다.
"오늘은 저희 회사 쉬는 날이고 해서 손 여사 전화 받고 바로 사우나 가서 쉬다가 그 덕에 이발도 했는 걸요!"
그래서 그렇게 보였나?
양복과 타이가 어제 그대로인 걸 보면 어쩜 그는 그 모텔에서 밤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도 서로에게 부담이 될지 모를 일, 더 이상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는 내게 "오늘 휴일인데 손님이 있나요?"라 물었고, 나 또한 "휴일에도 나와 일해야 하나요?"라 물었다.
그런 중에 "오늘 모처럼 휴일인데 지금이라도 양가 가족나들이 어때요?"라 묻길래 내 아들 지금 시험 준비한다고 독서실 갔다 하자 더 이상 할 얘기가 소진되고 말았다.
나는 해물탕의 국물만 자꾸 입에 떠 넣었다.
차라리 어젯밤처럼 발가벗고 누우면 할 말이 오히려 많아질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식사를 끝내고 근처 찻집에 들러 씁쓸한 쑥 차를 한잔씩 마시면서도 둘은 별 말이 없었다.
그의 차에 나를 태워 내 가게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잔뜩 무거워져 있었다.
나 또한 그 기분은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우리는 끝나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었다.
무엇이 그런 예감을 부채질 한 건가?
무엇이 그와의 결별을 부채질 한 건가?
사실 언니가 돌아가고, 그와의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어젯밤 꿈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너무나 생생한 꿈...
분명히 아들과 같은 침대에 잤는데...
돌아누운 내게 다가선 아들의 보챔...
그리고 잠... 비몽사몽의 꿈...
필시 그 꿈은 하 선생과의 꿈이 아닌 아들과의 생시였을 거라는 결론이 나오는 거다.
그렇다면 이제 어떡해야 하나?
둘째를 떼면서 난관을 묶어버려서 임신 걱정이야 없다손 치더라도 더는 있어선 안 될 일이 아니던가?
만약 이 상태에서 하 선생과 재혼을 하게 된다면 하 선생과의 불만에 대리만족 할 곳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 거다.
그는 돌아가고 햇살이 밀려들어온 창가에 무거운 커피 잔을 들고 오후 내내 서성거렸다.
오히려 기분이 가뿐했다.
조금 섭섭하지만, 조금 아까운 면도 있지만... 이 정도에서 마음을 정리하는 편이 쌍방 모두에게 덜 힘들 것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임포 때문이라고 자책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간 쏟아온 정성에 너무 무성의하게 답한 꼴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내 아들과의 일을 고백할 수는 없는 일... 오히려 잘 된 일이야! 적당히 욕하다 말겠지...
나는 그 길로 가게문을 닫고 퇴근길에 올랐다.
오는 길에 시장에 들렀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시장 냄새가 좋다.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는 살 부대낌이 좋다.
생선 비린내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어느 수족관 앞에 멈추었다.
"이 장어 요즘 어떻게 해요?"
"키로에 3만원! 얼마나 필요하신대요?"
"애 고아 먹이려고요. 근데 이거 자연산이요?"
"자연산요? 그건 값이 엄청 비싸요. 1.5키로 한 마리에 5십만원 달라면 사겠어요?"
"그렇게나 비싸요."
"양식한 것도 그 못지 않으니까 이거 싸 가셔서 고아 먹여요!"
나는 실한 놈 몇 마리를 거금을 들여 샀다.
그 몇 놈을 사들고 오는데 얼마나 무겁고 날뛰던지 집에 와 문을 따자마자 풀썩 놓고 말았다. 봉지마저 찢어져 물난리에 장어 난리로 한 바탕 법석을 떨었다.
장어집 주인이 시킨 대로 장어를 먼저 넣고 뚜껑을 꼭 쥔 후 장어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놈들 힘이 보통이 아니어서 두 번이나 실패하고 결국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들은 저녁때가 훨씬 지난 8시쯤에야 돌아왔다.
그때까지 기다리며 나는 물만 계속 마셨다.
아마도 하 선생과 먹은 해물탕이 짰던 모양이다.
민망한 시선을 피하느라 국물만 계속 떠먹은 그 탓일 거다.
아들의 힘으로 기어이 장어의 힘을 누르고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진동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간 아들은 시험 준비하느라 집에서도 제 방에서 꿈쩍 않는다.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11시가 넘은 시간에야 처음 짜낸 진액을 들고 들어갔다.
착한 아들은 이 엄마의 정성을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사발을 받아들고 나오려는데 아들이 뒤돌아보며 묻는다.
"오늘도 엄마하고 자도 돼?"
"시험이라면서..."
"그럼 시험 끝나면...?"
"성적 봐서..."
얼굴을 돌려버리는 아들을 보며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왔지만 내가 지금 아들과 무슨 거래를 하고 나온 건가? 하는 자책을 해야 했다.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던 걸까? 왜 매정하게 거절하지 못했을까?
나의 한계를 또 한번 절감했다.
나의 한계라 규정 짓는 이거야말로 도피처를 만들고 있었던 걸 거다.
새벽 세 시쯤에 벌떡 잠이 깼다.
가스레인지 위에 얹어 놓은 장어가 생각난 거다.
다행히 졸아붙지는 않았다.
그걸 내려두고 아이 방을 슬쩍 보는데 아직도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을 켜놓고 잠이 들었나? 살며시 열어보는데 아들은 아직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졸거나 엎드려 있는 게 아닌 그때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미련한 이놈을 어떡하나? 그래, 이 엄마와 자려 밤을 샌단 말야...
그 울화에 아들의 등을 찰싹 때려 일으킨 뒤 침대로 밀어 눕혔다.
"이러다 내일 시험시간에 졸면 다 허사가 되는 거 아냐??"
아들이 이불을 덮는 걸 보고 나왔다.
이런 모든 게 쟤 아빠가 없는 빈자리 탓일 거다.
한동안 안 붙여오던 아이 학업비를 요즘 꼬박꼬박 붙여오는 걸 보면 제법 형편이 풀렸는가본데 그쪽으로 보내 버릴까?
그래버리면 아이와의 쓸데없는 고민도 않게 될 거고, 이미 벌어진 그 일도 차츰 잊게 될 게 아닌가?
그럴까?
그가 받아줄까? 아이가 승낙할까?
안 될 듯 하다.
우선 그에 대한 내 반감이 너무 깊다.
그건 아들도 마찬가지 같다.
아들이 절대로 승낙하지 않을 거다.
결론 없는 고민에 시간만 간다.
우선은 내일이 급하다.
내일 아침 아들 밥이 급하고, 또 우리 밥줄인 내 가게가 급하다.
자야지. 자야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대다 겨우 잠이 들었다.
괘종시계의 시끄러움에 겨우 눈을 떴을 때 여섯 시가 넘어 있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반찬을 준비했다.
서둘렀건만 식사준비가 끝난 시간은 아이에게 빠듯했다.
몇 번 깨워뒀는데도 어느 새 꼬꾸라져 조는 아이를 이불을 젖혀 깨운 뒤 등을 떼밀어 욕실로 집어넣었다.
거기서도 조는 아이의 얼굴을 세면기 앞에 구부려 물을 끼얹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잠뿐인 잠뽀 녀석이 공부한다고 밤샐 요량을 하더니...
식탁 앞에서조차 꾸벅꾸벅하는 놈의 입에다 밥을 떠 넣고 반찬을 집어 쑤셔 넣고... 그러다 겨우 잠이 쫓은 양 제 손으로 밥을 떠먹었다.
그래도 집을 나설 때는 내 허리를 한번 불끈 안았다 놓으면서 "다녀오겠습니다!" 꾸벅하고 사라졌다.
어쨌든 씩씩해서 좋다.
아침의 이 한 바탕 회오리... 그러나 이건 내게 활력소다.
이거마저 없다면 이 집은 유령의 집 같을 거다.
이 가슴속엔 퀭한 거미줄만 쳐져 있을 거다.
손에 들려 있는... 아들이 감사히 비우고 간 사발의 입술 자국 위로 내 입술을 꾹 찍어눌렀다.
"그래, 건강해라! 네가 건강해야 엄마도 건강하단다!"
오늘도 나는 아들이 다 비우지 못한 밥을 마저 비우고 잘 나오지도 않는 휘파람을 불어대며 출근 준비를 했다.
아침에 기분이 좋은 날은 매상도 많이 오른다.
매상이 많이 오르는 날은 곧 부자가 될 듯 마음부터 부푼다.
요즘은 정말 돈걱정 하지 않아 살만하다.
오빠가 보내온 돈도 아직 남아 있고, 걔 아빠가 애 앞으로 붙여온 돈도 통장에 쌓여 있고, 가게에서 빠진 돈도 꽤 불어 있다.
손님이 한가한 시간을 틈타 백화점에 들렀다.
백화점도 옛날 같지 않다.
IMF 탓에 질 좋은 저가 상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곧 겨울인데 아들 코트라도 하나 장만해줘야겠다 생각한 거다.
물론 내가 옷장사인데 그럴듯한 옷을 싸게 사는 방법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아들에겐 그런 짜가나 싸구려를 입히고 싶지 않다.
당당한 메이커 제품을 정당한 가격에 사 입히고 싶은 거다.
층층 다 들렀으나 적당한 걸 못 구하고 돌아왔다.
옷은 못 샀지만 기분은 좋다.
여자들이 아이쇼핑으로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를 모르는 이에겐 이해하기 힘든 말일 거다.
다음엔 직접 아이를 데리고 가볼 요량을 한다.
가게로 돌아왔을 때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으나 받지 않았다.
하 선생의 전화번호가 떴기 때문이다.
곧 핸드폰이 울렸다.
안 받으려 하다가 더 도망갈 곳은 없다는 판단 아래 전화를 받았다.
"하진봉입니다. 오늘 가게 안 열었습니까?"
"선생님! 저 곰곰 생각해 봤는데요, 저 아무래도 선생님과 인연이 아닌가 봐요! 절 욕해도 어쩔 수 없어요. 그간 베풀어주신 사랑 고맙고요. 더 이상 제 마음을 속이는 건 선생님에게도 저에게도 부담만 키울 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 다시는 절 찾아오지도 전화도 말았으면 해요!"
"아니, 손 여사! 손 여사..."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으나 매정하게 끊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순서일 뿐이다.
혹시 다시 걸어올까 봐 핸드폰의 바테리를 빼버렸다.
요즘 내 기분은 온랭을 번갈아 오간다.
지금은 가슴 밑바닥까지 식어버린 냉이다.
하지만 준비된 냉이다. 그래서 오히려 홀가분하다.
일치감치 문을 내리고 퇴근하는데 아파트 입구에서 언니를 만났다.
잔뜩 근심어린 눈초리다.
"벌써 와?"
"언니는 이렇게 빨리?"
"시장에 들러 안주거리 좀 사 가려고... 그런데 넌 괜찮니?"
"왜?"
"고장난 기계 소개해줬다고 욕하고 있진 않지?"
"언니도 참, 표현이 멋지다! 사실 나 그만 만나자 했어. 몇 번 만나보니 보기보다 고지식하고 과묵하여 숨막히게 하는 구석이 있더라고. 나 그런 거 딱 싫거든..."
"어쩌지. 네게 상처만 준 거 같아서..."
"언니 그렇게 생각하지 마! 몇 일 잘 데리고 놀았잖아. 나 아무렇지도 않아!"
"그럼 다행이고..."
언니는 마음의 짐을 내렸다는 양 총총 사라져 갔다.
상가 슈퍼에 들러 저녁 찬거리를 사들고 현관을 들어서는데 아들의 신발이 놓여져 있다.
너무 졸려 조퇴한 건 아닐까?
아이의 방문을 열자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엄마 오셨어요?" 갑자기 경어다.
"아니 너, 어젯밤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거 아니니?"
"아이 참, 이 아들을 어떻게 보고... 시험 있는 날은 일찍 마치잖아요!"
아아 그렇지! 그렇구나...
나는 멋쩍게 돌아 나와 달여둔 장어 곰을 데워 들고 다시 들어갔다.
머리 싸매고 책상 앞에 앉은 모습이 사유야 어떻든 대견하다.
곰 사발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껴안았다.
아들이 사발을 잡자 포옹을 풀어주었다.
한 입에 꿀꺽꿀꺽 삼킨 후 맛있다는 듯 입맛을 다셔 보인다.
이럴 때 징그러운 나이 임에도 아들이 귀엽다.
그래서 결국 손을 벌리고 말았다.
"엄마 한번 안아 봐 줄래?"
단박에 일어선 아들이 날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한 바퀴 휙 돌린 후 내려놓는다.
이 아이에겐 어릴 적 이 모습을 비행기 태워준다 했다.
"엄마 비행기 한번만 더 태워줄래?"
아들이 또 한번 날 안아 들었다.
또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이제 서려다 옆으로 핑글 하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
천장이 돈다. 창문도 돌고, 바닥도 돈다.
호호호호... 하하하하....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에 속이 후련하도록 웃었다.
아들도 같이 넘어져 내 위에 엎드려선 그도 웃음이 터지는지 키들키들 웃고 있다.
그 웃음이 그의 배를 통해 내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치골 위에 놓인 그의 섶을 의식하며 그를 밀어 내리며 일어섰다.
아직도 돈다.
아직도 입가에선 웃음이 줄줄 샌다.
히히히히......
너무 웃은 탓인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느낄 수 있다.
분명 이런 걸 행복이라 할 텐데...
행복이어야 할 텐데...
아들은 벌러덩 누워 있다.
날 빤히 올려다보며 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는 것만 같다.
마냥 그렇게 날 올려다보며 누워 있을 것만 같아 손을 내민다.
내 손을 잡은 아들이 벌떡 일어난다.
나는 그만 다시 북받쳐오는 감정을 못 추스르고 아들을 껴안는다.
"넌 날 떠나지 않을 거지?"
"그럼요! 끝까지 엄마 곁을 지킬 거예요!"
"끝까지...?"
"예, 끝까지......!"
나는 아들을 더욱 껴안았다.
아들의 섶이 배꼽 아래를 찔러대는 걸 느끼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제 조금을 지겨운 모습을 보이는 아들을 조용히 떼 책상 앞에 앉히고 사발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주방을 서성대다가 멍하게 식탁 앞에 앉아 있자니 내 감정에 못 이겨 아들의 가슴에 불만 질러놓은 거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이라도 아들이 날 부르거나, 벌겋게 단 눈으로 달려나온다면 어떤 식으로든 아들의 욕구를 풀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까지 서슴없이 드는 거였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이미 터져 버린 일인데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 의식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전화라도 걸려오지 않았다면 마냥 그렇게 멍한 상태로 밤을 맞았을지 모른다.
"여보세요?"
"나야. 아까 만났을 때 부탁하고 와야 하는데 깜박 했어!"
"승민이 저녁 말이구나? 걱정 마! 안 그래도 지금 올라가 보려는 중이야!"
"고마워, 얘!"
일 하나를 찾은 셈이었다.
>> 점점 더 재미 없어지는 거 같죠??? 다음으로 끝맺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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