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 9부
본문
9) 덫인가, 늪인가?
"간혹... 간혹 말입니다!"
다시 입을 열었다.
거의 그 혼자 소주 두 병을 비운 후였다.
그의 혀도 조금씩 꼬여가고 있었다.
"간혹...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일이 있죠? 천재지변이라든지... 극복되지 못한 병이라든지..."
나는 전 아내의 이야길 꺼내려는가 보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의 입을 통해선 들은 바 없으니까...
"그런 일을 당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힘없는 존재인가 알게 되죠!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떠벌이면서 하느님의 대리인쯤으로 생각하는 우리가 얼마나 건방지고 별 볼일 없는 미미한 존재인지를..."
그렇게 말하고 또 술잔을 들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 저리 뜸을 들일까? 답답했다.
그래서 그가 하고 파 하는 말을 도와주려 말을 거들었다.
"사실 저, 그간 하 선생님에 대해서 많이 알아봤어요. 그렇다고 뒷조사는 아니고... 그 만큼 호감을 갖고 관심을 가졌다 여기면 될 거예요. 가신 전 부인에 이야기라든지 따님 얘기라든지 선생님 나이나 직책, 회사에서의 위치, 능력과 회사 인정도... 그리고 선생님의 인품 등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여 고맙다는 뜻인지 그럴 줄 알았다는 뜻인지 몰라도 아무튼 공손한 경의를 표했다.
그런데 다음에 할 내 말이 막혔다.
알아봤는데 어땠다 말해야 할까,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말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서 술잔을 들고 뜸을 들이는데 그가 잔을 부딪혀 왔다.
그래! 이렇게 잔을 부딪히며 오순도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싶다. 이제 정말 그러고 싶다.
내 인생의 소모를 부채질하는 감정 싸움은 이제 없애고 싶다.
"선생님! 저 있잖아요. 이번에는 자신 있어요! 오순도순 인생의 소모를 줄일 묘안들을 찾는데 골몰할 자신이 생겼어요! 인생의 소모를 늘일 묘안이 아닌..."
말을 뱉어내고 보니 끝말을 괜히 붙였다는 생각을 들었다.
안 밝혀도 될 나의 과거, 나의 치부를 스스로 들어낸 거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때 아줌마가 와서 매운탕을 할거냐 물었다.
밥도 같이 달라 하여 내보냈다.
나가는 뒤통수에다 술도 한 병 더 갖다달라 그가 시켰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스로 횟점을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아셨다니 말씀드리기 편합니다만 사실 그 사람 자궁암이었지요. 칠칠치 못한 제가 혼전에 저지른 일로 중절을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원인이 아니었나 싶어 죄책감에 많이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가버렸지요. 내 죄를 씻을 여유도 없이..."
"3년이나 애쓰셨다면서요?"
"그녀와 산 세월이 10년인데 그깟 3년으로 씻어지나요? 옷에 잉크물 떨어뜨리는 데는 단 1초도 안 걸리지만 그 물을 빼고 말리는 데는 하루해가 걸리는 거잖아요?"
그 말을 들으니 그에 대한 믿음이 더 확고해지는 거였다.
내 생에, 반이나 좀 먹혀버린 내 생애에 어디서 이렇게 믿음이 가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저 무거움은 무어란 말인가?
대체 그게 무엇이길래 이토록 뜸을 들인단 말인가?
왜 이렇게 애태우는 걸까?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매운탕이 날라져 왔다.
배초향(방아잎)의 독특한 냄새가 구미를 당겼지만 쉽게 내 구미를 채우고 싶진 않았다.
잘 끓여진 구미 한 숟갈을 떠서 그가 든 술잔 앞에 기다리는 재미를 누렸다.
오래간 잊었던 재미다. 아니, 잃어버렸던 재미다.
이제 다신 잃고 싶지 않은 재미... 그 염원, 그 작지만 소중해진 정성을 키우고 싶었다.
그가 드디어 내 정성을 알아보고 재빨리 잔을 비우고 입술을 내밀었다.
저 입술에 내 입술을 떠 넣고 싶다.
저 입술에 내 달아오른 구미를 비비고 싶다.
비비고 싶다, 비비고 싶다... 그 염원의 농도만큼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걸 보았을 텐데... 그 떨림을 숟갈을 통해 전해 받았을 텐데...
분명히 그랬을 텐데...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하느님은 없는 죄를 만들어 벌주지는 않는다 했지요! 그래서 내 벌은 당연한 거라 여겨요! 그럼에도 가끔 일탈을 꿈꾸고... 배반을 하게 되는... 그래서 인간인지도 모르죠. 그렇게 위안하고 싶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걸까?
조바심과 두려움이 상존하는 궁금증이 나를 혼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덕에 술잔만 연거푸 몇 잔을 비웠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이래선 안 된다 하면서... 이건 아닌데 하면서... 그러나 확인해주고 싶었습니다. 내 진상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었는데... 그대 손 여사께선 그게 무슨 대수냐며 오히려 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했지요!"
"그 모습이 어떤 거지요? 그리고 고백이며 위로가 어떤 거였지요?"
"기억나지 않습니까? 둘만 남은 지하 룸에서...?"
그날 밤을 말하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술이 취해 필름이 끊겼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는 체 맞장구를 칠 수도 없고...
"하긴 손 여사, 그날 밤 많이 취하셨지요! 취한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게 해주셨지요. 여자의 모성애라는 거, 연인간에 부부간에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도 가르쳐주셨지요. 그래서 무척 달콤한 밤이었지요!"
조마조마했다.
기억 속에 없는 나의 치부가 혹시라도 드러날까 봐 두려웠다.
하긴 그런 치부를 내가 보였다한들 그의 입으로 배설할 위인은 절대 아니리라는 정도의 믿음이야 있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두렵고 부끄러웠다.
우린 그때 연인도 아니었고, 부부는 더더욱 아니었으면서 다음날 아침 불륜 남녀의 적나라한 모습으로 누워 있지 않았던가?
갑자기 화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더구나 그의 입에서 "취한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자의 모성애라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그래서 무척 달콤한 밤...?" 등의 표현을 한 걸로 보면 내가 뭔가 저지르긴 저질렀구나 여겨졌다.
다만 그가 내 허물들을 좋은 말들로 덮고 있을 뿐일 것이다.
그 배려에 한편 고마웠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의 어깨에 기대어 세세한 내막들을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쿡쿡 웃었으면 좋겠다.
그건 연인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란 이름이 아니던가?
"선생님! 저 밖을 걷고 싶어요. 밤 해변을 걷고 싶어요!"
저 컴컴한 해변을 걷노라면 정말 그가 하고픈 말을 할지도 모른다.
내 이 단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도 몰라.
일어서려던 그가 비틀했다.
제법 취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를 부축하여 팔짱을 낄 수 있었다.
한동안 그는 아무 말도 않았다.
마음껏 수다를 떨리라 작심하고 나온 나도 말문이 막힌 건 마찬가지였다.
이 남자, 원래의 모습은 지금처럼 과묵하고 속을 잘 안 드러내는 전형적인 그런 남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매일 꽃을 갖다 바치던 그 모습은 어쩜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비롯된 상투적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거였다.
뭔가 있어! 뭔가 숨기고 있는 거야! 나로선 받아들이지 못할 엄청난 비밀일지도 몰라...
바닥에서부터 부글부글 괴어 올라오는 막연한 불신감에 나는 적잖이 혼란했다.
그래서 팔짱을 풀고 좀더 생각해보자는 심사로 보행을 늦추었다.
"왜 그러세요? 손 여사...?"
당황한 나는 발에 모래가 들어간 양 신을 벗어 모래를 털었다.
그가 내 힐을 받아들고 탁탁 튼 뒤 내게 건네주었다.
신겨주면 더 좋을 텐데... 그래, 적당한 간격이 필요할 지도 몰라?
그를 향한 내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모래에 힐이 빠져 더 걸을 수 없었다.
그 자리 주저앉았다.
저쯤 앞서 걷던 그가 돌아와 곁에 앉았다.
영화 속에서 보던 상투적인 장면... 그가 윗저고리를 벗어 내 어깨를 덮어주었다.
"손 여사께서 보고싶어한 파도를 볼 수 없어 유감입니다. 대신 이 하진봉의 가슴에서 치는 파도만 보게 한 거 같아 미안합니다."
어쩜 말을 저리도 잘 할까?
말 잘하는 사람의 말은 믿지 말라 했는데... 내 가슴속엔 그에 대한 막연한 반감만 커져가고 있었다.
그가 내 어깨를 감싸왔다.
와이셔츠 차림의 그도 추우리라 여겨 내 어깨에 둘렀던 저고리를 함께 두르게 한 뒤 그의 가슴에다 얼굴을 파묻었다.
풀쩍풀쩍 뛰는 그의 박동을 들을 수 있었다.
내 머리 숲을 더듬던 손이 목덜미를 당기더니 입술을 맞추었다.
그날 밤도 이런 과정들을 거쳤겠지...? 내 두 팔이 그의 목덜미를 감싸안자 그의 손은 내 허리를 안았다.
그리고 한 손이 블라우스 위로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벌써 탱탱해진 젖가슴은 그의 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맨살을 만지게 해주고 싶었다.
그의 손을 잡아 블라우스 밑으로 집어넣어 주었다.
다소 써늘했지만... 얼마 만이던가? 내 젖을 만지는 남자 손의 이 떨림이...
"아아......!"
곧 이어 그의 입술이 내려왔다.
뻔한 거다. 그나 나나 이미 프로... 그 이후의 수순을 경험이 10년이 넘는 프로들이 놓칠 리 만무하다.
그 입술은 더 아래로 타고 내려올 거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능할까? 너무 춥다. 기운을 뺏어 가는 밤 기온... 써늘한 바닥... 열기를 달아오르게 하는 요소보다 식히게 할 요소가 더 많다.
하지만 그의 입술이 내 젖꼭지를 번갈아 핥아대다가 젖무덤을 통째로 빨아들이려 했을 때 내 손은 그의 아랫도리를 더듬고 있었다.
앞섶이 손안에 잡혔다.
그걸 빨아주고 싶다. 게걸스럽게 핥아주고 싶다. 꺽꺽 깨물어주고도 싶다.
그래서 그를 와락 밀어 눕혔다.
그도 그걸 알리라! 그도 그걸 원하리라!
처음... 반항했다. 보통 여자들이 그렇게 내숭을 떠는 건데... 그렇게 한 두 번쯤 빼보는 건데...
그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와락 떠밀려 누우려던 그가 반쯤 몸을 세우고 더 이상 밀려나지 않으려 했다.
내 얼굴로 배를 눌렀을 때야 풀썩 누웠다.
그 얼굴로 배에다 벽을 쳤다. 아들에게서처럼...
그에게도 지키고 싶은 부끄러움의 선일 거다. 그 선이 필요할 거다.
벨트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 옷 사이로 남근을 꺼내는... 꼭 같은 순서인 셈이다.
손안에 잡힌 그의 박동은 아직 미미했다.
그런 것이 무섭도록 험상궂게 변한다는 걸 난 이미 안다.
그 맛도 안다. 그래서 기대가 더 큰 거다.
내 입술로 그걸 감싸안았을 때 그는 움찔했다.
어떤 포옹이든 남자에겐 묘한가 보다.
까마득한 모성이 느껴지는가 보다. 그래서 더 깊이... 더 보채고 싶은가 보다.
내 부끄러움의 선을 넘으려는 그의 몸짓이 몇 번 이어졌다.
남자들이란 어쩜 다 똑 같을까? 여자의 부끄러움... 모성의 한계를 뭉개고 싶어 안달하는 걸까?
"손 여사!"
"......... .........."
"손 여사?"
몇 번을 불러대는 그의 목소리가 하도 간절하여 입술을 멈추었다.
그는 날 간절히 올려보고 있었다.
그 만큼 달아 있다곤 볼 수 없는 애처로움에 "왜, 여기선 추우세요?"라 물어 보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결혼 승낙부터 할까요?"
그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 임포라는 걸 그날 밤 보지 않았어요? 또 다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나중 준비가 되면... 그때도 늦지 않잖아요?"
그거였구나.
오늘 밤 그 입술의 무거움이 그거였구나. 내내 애태운 그것이 그 말이었구나.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있었다.
그날 밤 그래서 어떻게 했단 말인가?
서지도 않는 그를 일으켜 세우려 온갖 짓을 다하며 혼자 단 몸으로 그의 구겨진 자존심 위에서 헐떡이진 않았을까...?
부끄러웠다.
나는 바지 속으로 그의 풀죽은 자존심을 구겨 넣었다.
"저, 너무 밝히는 여자죠?
부끄러운 그 말을 그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으로 내뱉었다.
"대책 없이 마음만 앞세운 제 탓입니다. 제발 용서하세요!"
그가 옷을 여미는 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내 어깨에 손을 감아 안고는 왔던 길을 돌아나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암 진단을 받던 그 시점부터 그랬어요! 내 죄책감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죄 값으로 그렇게 된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평생을 혼자 살려 했는데... 미안해요, 손 여사!"
"그게 어디 선생님 죄겠어요? 사회가 만든 악성 바이러스 같은 거겠지요. 날만 궂으면 재채기를 해대는 알레르기성 비염, 그런 거와 비슷한 거라 생각해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해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사실 저도 스스로는 그렇게 크게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함께 누려야 할 파트너에겐 너무 큰 죄를 짓는 거라는 생각입니다!"
"아니라니까요!"
괜히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필시 그건 나에 대한 울화일 것이다.
내 위선에 대한 울화일 것이다.
그의 차가 세워진 곳까지 와서 대리운전을 부르고... 나란히 뒷좌석에 올라 기사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건만 이제 박동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좀처럼 기사가 나타나지 않자 그의 손안에 잡혀있던 내 손을 만지작...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따분해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드디어 기사가 나타났다.
행선지를 확인한 차가 곧 출발하고 비포장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차가 요동치며 맞잡았던 손이 내 허벅지를 들락날락했다.
나는 그때마다 그의 가슴에다 달뜬 숨소리를 뱉어놓았다.
그와 상관없이 달아버린 내 몸이 제동을 거부하고 있는 거다.
그도 그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의 손이 허벅지를 더듬다가 치마 밑으로 들어가 두덩을 덮었다.
곧 손가락 하나가 팬티의 밑단을 젖히고 계곡 속으로 진입했다.
"아아......!"
입 밖으로 새나가려는 신음을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대신 그의 가슴에 입술을 비비면서 아래 허리끈 속으로 손 하나를 찔러 넣었다.
웅크린 그가 꿈틀하며 내 손을 맞았다.
곧 일어설 듯 보였다.
앞에 기사만 없어도 아까처럼 빨아준다면 당당히 일어서서 걸을 것만 같았다.
풀쩍풀쩍 뛸 것만 같았다.
"기사 아저씨! 요 앞에 세워주세요!"
한참 달리던 기사가 끼익 하고 브레이크를 잡았다.
수고비를 받아 챙긴 그가 앞을 향해 뛰어갔고, 우린 그 자리, 노견에 차를 붙여둔 채로 반대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나쳐온 길가의 모텔을 그도 본 모양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는 중 "내가 왜 이럴까?"를 몇 번이나 채근했다.
그래서 막상 모텔 앞에 서선 내 발길이 머뭇거렸다.
그가 내 팔을 잡고 위로 안내했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노골적으로 물었다.
"나, 정말 밝히죠? 이런 여자 싫죠?"
"아니에요! 손 여사의 거리낌없는 그런 모습이 매력인 걸요! 다만 제가 미안할 뿐이죠..."
"선생님의 절망은 너무 이르다는 생각에... 오늘 제가 그 절망을 걷어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
"손 여사의 그 배려가 절 구원할 거요! 저도 그렇게 믿어요."
옷장 속에 저고리를 걸고 와이셔츠를 벗는 그의 아래에서 그의 벨트를 풀었다.
제법 불룩해 있는 앞섶이 나를 흥분시켰다.
지퍼를 풀고 팬티와 함께 밑으로 내리자 덜렁 드러난 그의 남근이 내 입술을 향해 절을 꾸벅꾸벅 해댔다.
나는 속으로 "알고있어!"라 외치며 그걸 입에 물었다.
그도 내 치마와 팬티를 끌어내린 후 블라우스와 브래지어를 푸느라 내 등을 간지럽혔다.
이윽고 나까지 벌거숭이로 만든 그는 내 등을 핥고 있었다.
입 속에서 제법 위용을 갖춘 그의 남근을 느끼며 얼굴을 돌려 앞을 보았을 때 침대 옆 벽에 붙은 거울에서 우리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치고 있었다.
나이 들 대로 든... 아랫배까지 적당히 나온 두 중년 남녀가 마치 헐레 붙기 전의 소, 말 모습처럼 서로를 핥고 있었다.
그가 나를 안아들고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끈적한 혀로 내 목덜미서부터 핥아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세워둔 그의 위용이 혹여 줄어들까 봐 그걸 손안에 꼭 보듬어 안고 쉼 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옆을 보니 그 모습들이 낱낱이 기록될 듯이 비치고 있었다.
옆만이 아니었다.
위를 보았을 때 천장에도 거울이 달려 적나라한 우리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아, 이런 곳이 모텔이구나...
드디어 그의 입술이 내 혀를 찾았다. 예비동작은 끝났다는 신호가 아니던가?
나는 다리를 한껏 벌려 그를 받아들였다.
서서히 들어오는 그의 무게... 그의 위엄... 그의 체면...이 안을 가득 메웠다.
그가 조금씩 요동을 시작했을 때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던 손 하나를 풀어 그의 등과 엉덩이 사이를 쓰다듬으며 더 아래쪽을 파고 내려갔다.
내 속을 드나드는 그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철썩철썩 엉덩이를 때리는 굵직한 불알부터 먼저 손에 잡혔고, 곧 그 뿌리도 잡혔다.
그의 허리는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각도를 구사하며 요동쳤다.
"아잉... 잘 하시면서... 날 애태웠군요!"
그 말이 신호였을까, 그의 허리에 힘이 조금씩 빠지는가 싶더니 스르르 압박이 풀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황당한 일...
미리 말하지 않았던들 나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을 거다.
조금 쉬면 다시 돌아올 거란 기대로 그를 그대로 껴안은 채 등을 쓸어주며 기다렸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은 오지 않고......
어느 노랫말이던가, 정말 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점점 줄어들어 급기야는 내 속에서 빠져 나가버리는 거였다.
민망해하는 그를 끌어내린 후 그의 물건을 입과 손으로 핥고 주물렀다.
"그날 밤도 이랬나요?"
"예? 네!"
"그래서요?"
"지금처럼 밤새 애써주셨지요!"
"그래서...요?"
"조금 일어서면 다시 시도했다가... 그렇게 밤이 갔어요. 대단한 고집이었어요! 아무리 말려도 안 되더군요."
"그래서...?"
"결국 내 손으로 그대를 잠재우는 수밖에 없었어요! 더는 그대를 실망시킬 수 없었어요!"
"선생님 손으로...? 이렇게...요?"
그의 손을 끌어다 내 가랑이 속에다 집어넣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을 멈추었다.
내가 지금 그를 사랑하려 하는 게 아니라 그를 학대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욕망을 풀어주려는 게 아니라 내 욕망을 채우려한 것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날 밤의 내가 가증스러웠다.
오늘 밤 또한 가증스럽다.
나는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껴입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당황한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모든 걸 자기 탓이라 자책할 것도 뻔했다.
"좀더 확실한 방법을 연구해 와서 선생님께 도전할 게요! 오늘은 작전 실패란 걸 이제야 깨달았거든요? 용서하세요, 선생님!"
애교 섞인 어조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의아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마도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하여 애쓰고 있을 거다.
그러나 나는 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저 이 자리를 벗어나고 파 다소 의외의 말로 그의 생각에 연막을 쳤을 뿐이다.
그도 함께 일어나 옷을 껴입으려는 걸 만류했다.
이곳은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아 일부러 바래다 줄 필요도 없고, 혹시 누가 본다면 제 입장만 난처해진다고 그럴듯하게 그를 구슬렸다.
나 혼자 조용히 나가고 싶은 내 심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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