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노리로리 - 9부

본문

그럼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 시켜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다…”




지도교수의 연구실을 나오면서 흘끗 본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힘들지는 않지만 흥미롭지도 않은 서류업무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서두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빨리 끝낼 생각이 없었다고 보는 쪽이 맞겠다.


하지만 평범한 업무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스승과 제자는 해가 지기 전에 헤어졌다.


지도교수는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나는 썰렁한 원룸으로.




“휴우…”




집단 세뇌란 것은 무서운 일이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드라마에서도 크리스마스 이브엔 연인들의 애정행각이 넘쳐난다.


크리스마스란 어떤 날인가? 2000년쯤 전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한 것을 기념하는 성스러운 날이 아니던가. 언제부터 남녀상열지사로 얼룩진 날이 된 것일까. 원래 그런 날과는 거리가 멀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마치 홀린 것 마냥 데이트 약속을 하고, 선물을 사고, 러브호텔을 예약하고… 


…별로, 올해 성탄절에 혜경이가 없어서 외롭다는 말은 아니다.




큰 길로 나오면서 연구실에 있던 초콜릿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작년 2월엔가 은정이가 연구실에 기증한 초콜릿 한 바구니 속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물건이다.


달콤하면서도 쓰다. 인기가 없어서인지 마지막까지 남은 다크 초콜릿이군.


집 근처에 도착한 것은, 그 맛과 향이 입 안에서 녹아 사라질 때쯤이었다.




“…아.”




순간 난 멈춰 서서 내 눈을 의심했다. 회색빛 원룸 건물 앞에 서 있는 까만 코트 차림의 여자는 분명 혜경, 그녀였다. 살짝 웨이브진 긴 머리의 날씬한 자태. 나는 그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건물 문 앞에 서 있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어, 어멋…!”


“…….”




그녀는 눈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슬며시 고개를 떨군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웬일이야…?”


“…그냥, 근처 지나가다가…”




근처 어디…?


내가 알기로, 이 근처에 그녀가 다니던 곳은 내 원룸밖에 없다.




“그만…가볼게.”




혜경은 애써 내 모습을 외면한 채 내가 오던 방향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난 무작정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말없이 앞서 갔지만, 따라오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


우린 아무 말도 없이, 몇몇 상점들을 스쳐 지나쳤다.


그 속엔 그녀와 함께 들어갔던 곳들도 많았다.


식당, 찻집, 서점, 꽃집… 우리의 달콤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무수한 공간들.


…하지만 이들은 지금, 그 때와는 다른 우리들을 보면서 어리둥절해하고 있지 않을까.




“오랜만이네.”


“…응.”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던 중, 침묵을 깨고 내가 말을 건넸다.


깨어진 (것 같은) 커플이 오랜만에 만났을 때, 남자가 할 수 있는 말에는 무엇이 있을지…




“변호사랑은 잘 돼 가?”




아, 이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비틀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닌데.


물론 궁금하긴 하지만 말이다.




“…몇 번 정도 더 만났어.”


“…그래.”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돌린 채로 나직하게 답하는 혜경.


넌 도대체 왜 다시 나타난 거지?


맞선 상대와도 잘 되어 간다면서 내 집 앞에 다시 나타난 이유는 뭐냐고.




“오빤… 잘 지냈어?”


“나야 그냥 그렇지.”




너 때문에 지옥같이 괴로웠다고, 사실대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힘들어서 급기야는 원조교제까지 저질렀다는 얘기는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았다.




……


꽤나 길고 천천히 안부를 묻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역 앞이다.




“집에… 가는 거니?”


“…….”




말 없이 한 두 발짝 정도를 떼다가, 그녀가 돌아서며 처음으로 내 눈을 보았다.




“오빠, 우리 얘기 좀 해…….”


“…어...? 응.”




……


스타벅스 2층 한 구석에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창 밖으로 조금씩 눈이 흩날리는 것이 보인다.




“우리 만난 이래 크리스마스에 눈 오는 건 처음이네.”


“그러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타조 차이를 한 모금 마셨다.


침묵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커피컵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말을 걸었다.




“…얘기 하자며.”


“…아.”




그녀의 예쁜 얼굴이 다시 날 바라본다.




“네가 왜 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결혼 때문에 그런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


“차마 축하는 못 해주겠다만…”




그래.


그녀가 내게로 다시 돌아오기로 한 것이 아닌 이상, 오늘의 방문은 이별의 선고 혹은 그저 마지막 방문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뭐 어떤가.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나는 딱히 할 일이 없다.


눈 내리는 창 밖을 보면서 마지막 만남을 갖는 것도 좋겠지.


아무렇지 않게. 유쾌하게.




……


“에이 정말? 설마…”


“아니 정말이야. 요새 진짜 이혼 많이 하더라고.”




우린 아무렇지 않은 듯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화제는 몇 개를 거쳐 그녀의 직장 동료가 얼마 전 이혼한 이야기에 이르고 있었다.




“넌 결혼해도… 이혼 같은 거 하지 마라. 이쪽 저쪽에 귀찮아지거든.”


“저기 오빠…”


“음?”




그녀가 갑자기 얼굴빛을 고치며 말한다.




“나 아직 시집간 거 아니거든?”




이게 무슨 말인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뜻이지?”


“해석해 봐. 오빠 그런 거 잘 하잖아.”


“그건… 내가 아직 장가가지 않았단 말과 같은 뜻인가?”




그녀가 의외의 대답이라는 듯 피식 웃더니 나름대로 긍정적인 미소를 피워 올린다.


어, 이것은… 그렇다면…!!




(삐리비리빗~ 삐리비리빗~)




전화벨이 울린다. 이 중요한 순간에 도대체 누구야.


무시할까 했는데 계속 울린다.




“받아봐….”


“아, 응.”




나는 마지못해 폴더를 편다.




“여보세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들려오는, 조심조심 곱지만 약간 장난기 어린 목소리.


아, 여고생이다.




“여보세요… 어, 너 웬일이냐?”


“저기… 어디야…?”


“나…? 지금 신촌 스타벅슨데…”


“어? 나두~! 오빠 어디야? 아냐, 내가 찾을게. 지금 올라간다~”


“아니, 야…”




(삐익)




…이런.


약속 있다던 애가 왜 느닷없이 전화해서 온다고 그러지.


혜경은 누구에게서 온 전화인지 궁금한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둘을 소개시켜 줘야 되나…?


노리를 뭐라고 소개해야 한다지.




“누구야…?”


“아… 아는 애.”


“아는 애?”




말을 몇 마디 잇지 못한 상황에서, 노리가 2층 계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도 오는군. 전화를 끊은 지 30초도 안 된 것 같다.




“오빠아~!”


“아…”




나를 발견한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손을 흔든다.


오늘따라 굉장히 어른스럽게 차려 입고 나왔군. 코트 속으로 검은 블라우스에 크림색 치마가 보인다.


키도 좀 큰 것이 힐을 신은 것 같다.


설마 날 만나려고 차려 입고 나온건가…?




“헤햇, 1분도 안 걸렸지? 아…”


“…….”


“…….”




차가운 날씨 탓인지, 흥분 탓인지 상기된 얼굴로 말을 쏟아내려던 노리.


내 묘한 표정과 앞에 앉은 혜경이를 보고 입을 다문다.


혜경은 얘가 누군가 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가 나를 힐끔 본다.


난 어색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기, 소개하지. 여긴 정혜경. 내가 전에 말한…”


“…죄, 죄송해요…!”




노리의 안색이 순간 변하는가 싶더니, 깊게 고개를 숙인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와 함께 몸을 돌려 나가는 그녀.


걸어왔던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그녀의 몸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아, 아니…”


“오빠, 쟤 누구야? 아까 전화한 그 아는 애?”




당황해 하는 내게 혜경이 물어온다.




“혹시 요즘 새로 만나는 여자야?”


“아니… 그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우연히 원조교제로 만난 여고생이고, 한 번 같이 잤으며, 영화를 봤고, 몇 번 만났다고…


연락은 취하고 있지만 사귀는 건 아니라고… 


…내가 들어도 좀 말이 안 되는 얘기긴 하다.




“정말…”


“그건 아니야. 몇 번 만난 것 뿐이고…”


“만난 거 맞아?”


“아니… 쟤는 고딩이라니까…?!”


“여고생이랑…??!”




얘기가 점점 꼬인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미안, 혜경아, 자, 잠깐만 기다려…”


“오, 오빠…!”




어이없다는 표정의 그녀를 일단 주저앉히고, 나는 황망히 노리의 뒤를 쫓았다.




……


…순간적으로 뛰쳐나오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었다.


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기다리던 혜경과 다시 만났는데. 의외로 좋은 분위기로 가고 있었는데…


왜 난 그녀를 남겨두고 여고생을 쫓아가고 있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역 근처에서 겨우 따라잡았다.




“헉…헉… 야, 꼬맹이. 너 거기 좀 서 봐.”


“왜…?”




그녀는 웃으면서 돌아선다.




“와, 진짜 있었네. 여자친구. 진짜 이뿌다. 능력도 좋아 오빤.”


“…….”


“나 그냥 심심해서 나왔던 거니까 신경쓰지 말구 들어가. 안녕~!”




그녀는 웃으면서 몇 마디 빠르게 내뱉은 뒤 다시 등을 돌려 걸어간다.


한숨이 나온다.




“야, 노리야.”




다시 쫓아가 그녀를 잡아당긴다. 갸날픈 그녀의 몸이 끌려오듯 가볍게 돌아선다.


고개를 푹 숙이는 그녀.




“…노리야.”


“……흑…흐윽…”




몇 초 전까지 웃고 있던 그녀의 하얀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그리고 고운 두 볼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




“가라니까 왜 자꾸 따라오구 난리야… 흑… 히잉…”


“……야.”


“오빤 좋겠다. 그 언니, 얼굴두 이쁘구, 키도 크구, 흑… 나 같은 어린애보다 훨씬… 흐윽… 세, 섹시…하구… 흑…”


“…어휴…”




눈물이 볼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팔을 들어 코트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노리.




“왜… 난 만나구 그런거야… 힝… 왜… 끅… 이쁜 여친 놔두고… 응?”


“…….”




혜경이랑 오늘까진 사실상 헤어진 상태였다는 거 얘기 안 했던가?


게다가, 지금까지 대개 네가 만나자고 불러내곤 했잖아…


…란 말을 할 분위기는 좀 아닌 것 같다.




“어차피… 나 같은 거… 흑흑… 나 같은 거… 으흑흑…”




건물 한 구석이긴 했지만, 점점 높아가는 그녀의 흐느낌에 수많은 행인들이 쳐다보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얘가 우는 걸 달래야 한다…




“흑…으읍?!!”


“…….”




눈물로 젖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고 입을 맞췄다.


아이고, 이 짓까지 하게 되다니…




“휴, 이제 좀 조용해졌네.”


“훌쩍… 나…”


“…응?”


“나… 이거… 처음인데…”




크헉. 첫 키스였나!!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굉장히 난감하다.


에라, 이참에 할말 다 해 버리자.




“노리야. 넌 내가 좋냐?”


“응…?”


“징징 울면서 돌아갈 정도로 내가 좋냐구.”


“응…우웅.”


“거짓말 하지 마.”




난 짐짓 그녀를 떠본다.


그녀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어린다.




“아, 아냐…! 정말…이야…”


“그런데 왜 넌 왜 나한테 네 얘기를 하지 않지?”


“……!”


“나 아직까지 너 어디 사는지도 모르잖아.”




일단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을 꺼내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렇다.


얜 나한테 숨기고 있는 게 너무 많다.




“맞아, 지금 너 나 때문에 우는 거 아니잖아.”


“아니야…”




부인하지만 뭔가 목소리에 힘이 없다.


나는 그녀의 두 어깨를 붙잡고, 재차 추궁했다.




“무슨 일 있지? 그래서 지금 갑자기 신촌으로 뛰쳐나오게 된 거지?”


“…….”


“노리야, 말해봐라, 응…?!”




다시 그녀의 두 눈이 감기면서 눈물이 샘솟기 시작한다.




“…나, 집에 못 가…”




……


……


백색극장 앞에 쭈그려 앉아 얘기한 지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대충 집안 사정에 대해서 얘기를 마치고 난 그녀는 진정된 듯 했다. 


그런데, 차분하고 어쩐지 어두운 그녀의 모습은 지금까지 나와 만나 재잘대던 그녀라기보다는 비오던 토요일의 원조녀로 처음 만난 그녀에 더 가까웠다.


약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난 사실 니네 집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정말? 어떻게…?”


“너같이 멀쩡한 애가 이유도 없이 원조교제하러 나오는 거 보면 뻔하지 뭐.”


“…….”


“그리고 너 집에 갈 때만 되면 잠깐 얼굴 찡그렸던 거 알아?”


”…그랬나….”




상황전개상 담배라도 물고 싶지만 끊은 지 오래다.


안 어울리지만 주머니 속에 남은 초콜릿을 까서 입에 물었다.


달콤쌉싸름한 맛이 입 안에 퍼진다.




“앞으론 그런 일 있으면 얘길 해라. 아닌 척 하지 말고.”


“으응……”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좌우간 그러는 게 좋겠어.”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는 노리.




“그리고 너희 어머니가 데려오신 분 말인데, 내 생각에는 네가 어머니를 이해해 드려야 할 것 같다.”


“…….”


“게다가 그 남자분이랑 무슨 관계인지도 아직 모르잖냐.”


“…그러네.”


“지레짐작하고 뛰쳐나오다니, 역시 애기라니까.”


“애기 아닌데…”


그녀의 어두운 얼굴이 삐죽거리는가 싶더니 약간 밝아진다.




……


…아, 대충 정리됐다.


이쯤에서 혜경이한테 전화를 해 줘야 될 것 같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니… 7통의 전화와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젠장, 이 시끄러운 길바닥에서 주머니 속 전화벨소리가 들릴 리가 없지.


문자는 간단했다.




((안녕))




…아이씨.




……


“…아, 역시 안 받는 걸.”


“안 받아…?”


“…….”




응답 없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난 일어서서 벤치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좀 있다가… 다시… 해 봐…”




차분해진 노리는 벤치에 앉아, 빨갛게 부은 눈을 하고 나를 미안한 듯 올려다 보고 있다.


역시, 이 분위기와 자세는 우리가 처음 만나던 순간을 연상시킨다.




“…야.”


“왜…?”


“너 때문에 나 또 채였다. 꼬맹아.”


“또 꼬맹이래…”




작게 한숨을 쉬며 푸념하는 노리. 하지만 이번엔 그다지 발끈하지 않는다.




“가… 난 그냥 집에 들어갈 테니까.”


“야야, 다 망쳐놓고 이제 와서 선심 써봤자 하나도 안 고마워…”


“……미안…”


“…그리구 너 집에 못 간다며.”


“…….”




절로 새어나오는 한숨이 마치 안개처럼 어린다. 나와 그녀에게서 동시에…


아마도 혜경으로부터의 연락은 더 이상 없지 싶다. 난 어쩌다가 이런 짓을 해버렸을까?


정말이지 망쳤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왠지 가슴 한 구석은 개운하다. 이상하게도.


…이 녀석 때문일까?




……


잠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멀리 지하철 이대입구역이 보인다.


말없이 곁에서 따라오던 그녀가 내 옷소매를 가볍게 쥔다.




“저기… 미안해…”




물기가 가신 동그랗고 큰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


“미안해…응…”




이 아이가 정말 미안한 얼굴을 하면 화를 낼래야 낼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괜찮다는 거짓말은 못 하겠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받았니?”


“…선무울?”




난 대답을 회피한 채 다른 얘기를 한다.


그녀가 잠시 얼굴을 찡그린다.




“몰라, 그런 거…”


“네가 못 받으면 남한테 해 줄 생각을 해야지.”


“그런가…”




나의 어쩐지 곱지 않은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더욱 위축된다.


이런. 이러려고 얠 따라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긴 듯한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린다.


머리카락 한 두 가락을 입에 문 듯한 하얀 얼굴이 애처롭다. 




“선물 하나 해 줄까?”


“응…?”


“잠깐만…”


“…어…?”




전방 50미터 지점에 풍선을 들고 있는 소년이 보인다.


나는 불현듯 어느 영화에선가 보았던 장면을 떠올리고, 그 소년에게 뛰어갔다.


잠깐 동안의 흥정을 통해 무사히 풍선을 얻었다.




“헉… 헉… 휴우.”




갑자기 뛰어가던 나의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던 노리에게 풍선을 쥐여 주었다.


받아든 손이 차갑다.


잠시 풍선과 함께 그 차가운, 조그만 손을 잡아주었다.




“헤헷… 따뜻해”




노리는 아직도 눈물이 괸 듯한 얼굴로 방긋 웃는다.




“노리… 크리스마스.” 




눈이 계속 내린다. 내일 아침엔 눈길을 밟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분위기상 컷된 마지막 부분.)




“…아하하하 오빠 마지막 대사 열나 유치해~ 하나도 안 멋있어 푸하하핫”


“…….”


“노리 크리스마스래 크크큭 아우 배땡겨”


“…그만 좀 하지…? 나 화낸다”


“미안, 미~이.안. 이안 오빠.”


“……야, 울다 웃으면 *구멍에…”


“와, 더 유치해~ 언제적 속담을…후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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