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성기숙사 - 프롤로그 2
본문
아직 겨울의 그림자가 남아있는지 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대학 신입생이란 티를 내려는 듯 번듯한 케주얼 정장을 입은 덕분에 목덜미를 통해 찬바람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꽃샘추위가 시작되었다더니 눈이라도 올 것처럼 차가워진 기온 때문에 자꾸만 움츠려드는 어깨를 애써 펴보지만 곧바로 허리가 오그라들고 어깨가 움츠려진다.
“야- 남대문.”
뒤쪽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돌아가려는 고개를 멈추고 머리를 되뇌었다.
‘고등학교 까지는 내 별명이 남대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남대문이 아니다. 당당하게 내 이름 남문(南文)을 찾아야해.’
애써 고등학교 때 별명을 외면하려고 했지만 그 사이 더 가까이 다가온 듯 바로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야- 남대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와 어깨를 툭치며 다시 내 별명을 불렀다. 끝가지 외면하려던 내 의지는 허공에 퍼지는 담배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어? 말대가리. 너 역서 멋하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자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남대문’이란 내 별명을 부르고 다가왔던 녀석도 ‘마종길(馬宗吉)’이란 이름을 두고 ‘말대가리’란 별명으로 불리자 얼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진다.
“이 새끼가. 종길이란 좋은 이름 두고 말대가리가 뭐냐?”
“그믄 애초에 남대문이라고 안 부르믄 되제.”
“자식아. 성이 동상 별명 좀 부를수도 있제. 그란다고 니도 성아 별명을 함부로 부르믄 못 쓴 것이여.”
“개새끼 염병지랄하네. 성아 좋아하네. 니가 나보다 생일이 빠르냐? 아니믄 니가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묵었냐? 어째 니가 성이다냐?”
사실 내 생일이 9월이라 그리 빠른 편은 아니지만 종길이는 11월에 태어났다. 우리 학년에서 종길이 보다 생일이 늦은 사람은 몇 명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생일을 들먹이자 잠시 말문이 막힌 종길이가 능글맞은 미소를 떠올리더니 반격을 한다.
“니가 암만 애써도 나를 따라올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너도 알제? 니가 나보다 더 얼굴이 길믄 내가 너한테 두말없이 성이라고 할란다. 어쩌냐?”
사실 종길이 얼굴 길이는 고등학교때 우리학교에서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 모아도 따라올 사람이 없이 긴 얼굴이었다. 그 긴 얼굴 때문에 얻어진 별명이 ‘말대가리’였다. 종길이 말대로 얼굴 길이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씨발놈이 할 말 없은께 벨소리를 다허네. 누가 니가 말대가린지 모른다고 그따구 소리허냐? 새끼야 그믄 니 좆대가리하고 내 좆대가리하고 누껏이 더 큰지 대볼래?”
“아. 씨발 개새끼가 할 말 없은께 좆대가리 큰거 가꼬 유세를 떠네. 그래 자식아 너 잘났다. 니 좆대가리 허벌나게 크다. 됐냐?”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들이 ‘좆문고’라고 부르던 우리 모교인 ‘종문고등학교(從文高等學校)’에서 좆 크기로만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였다. 언제나 바지춤 앞으로 툭 튀어나와 멀리서도 티가 날 정도였다. 오죽하면 내 이름 ‘남문’에 큰대(大)자를 끼워 넣어 남대문이란 별명으로 불렀겠는가? 1학년 때부터 우리학교의 여자 선생님들 까지 자연스럽게 나를 ‘남대문’이라 부를 정도였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겠다.
“근디 넌 어째서 여그 촌구석까지 왔냐? 나야 맨나 노니라고 공부하고는 담싼 놈이라 이런 촌구석에 있는 대학도 감지덕지하고 댕긴다만.....”
“니나 나나 똑 같애. 니야 고등학교 삼년동안 띵까띵까 놀았지만 나는 중학교 때부터 육년 동안 책가방만 들고 댕겼지 공부하고 담싸기는 마찬가진께. 니같이 맨나 학교 밖으로 싸돌아 댕기지만 안했을 뿐이제..... 그나마 촌구석에 있는 대학이라도 합격했다고 우리 꼰대가 얼마나 좋아헌지 니는 모를거이다.”
“하기사 느그 아부지가 니 대학에 들었다고 좋아했다는 말은 나도 들었다. 근디 이놈의 학교는 이름이 해필 똥통대학교냐?”
“씨발놈 개새끼 좆같은 소리만 하고 자빠졌네. 동동대학교란 좋은 이름 나두고 지가 다니는 학교보러 똥통이란 놈은 또 첨보네.”
“학교가 좆 같은께 글제. 썩을 놈의 학교가 어떻게 된 것이 건물이 다 낡아서 벽이 다 금이 가갖고 금방 쳐 무너질거 같냐? 기숙사도 좁아터져서 우리맹키로 전라도서 역까지 유학 온 놈들 들어갈 방도 없다고 글더라.”
“너 기숙사 못 들어갔냐?”
“뭣이여? 그라믄 니는 기숙사에 들어갔단 말이냐?”
“하-ㅇ.”
“이런 씨벌- 참말로 좆 같은 학교네. 어떤 새끼는 기숙사에 들어가고 어떤 새끼는 기숙사에도 못 들어가서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게 생겼으니.... 니기미 좆도...”
이번에 입학한 동동대학교는 건물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부실공사 때문에 건물 곳곳에 금이 간 곳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에 새로 지은 기숙사는 재단 쪽에서 꽤 신경을 써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완공을 하여서 안전하게 지었다고 한다. 문제는 기숙사 규모가 작아서 많은 학생들이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행히 나는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종길이는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진 모양이다.
“야! 종길아. 내가 어저께 입학식 끝나고 기숙사에 가본께 말이야. 다른 방은 거지반 두명씩 다 들어왔는디 우리방하고 다른 방 몇간디는 아직 다 안찬 것 같드라. 그란께 몇일만 더 지둘려보고 그때까정 사람이 다 안차믄 행정과에 가갓꼬 말해보자. 또 아냐 재수 좋게 한사람이라도 빈 방이 있을줄?”
“말이사 고맙다만 땝둬라. 요새 것들이 어떤 자석들인디 기숙사가 비겄냐? 씰데없시 헛수고 허덜 말고 그 심 냉겨뒀다가 딸딸이라도 한 번 더쳐라.”
종길이 말에 내 머리를 불현듯 스치고 지나는 생각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지원을 받지 않아서 전라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으로 와서 원서를 쓸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되던 과 이름이 떠올랐다.
“아- 그라고 본께 우리학교 과이름 정말로 웃기드라. 내가 입학한 과는 사회정의관디 줄여서 사정과드라. 딸딸이 좆나게 치고 허천나게 싸라고 사정관갑드라. 너는 먼 과냐?”
“나는 자치위국과. 줄여서 자위과. 좆나게 딸딸이만 치고 씹은 한 번도 하지 마라는 과다.”
“그래. 니기 과는 좆나게 딸딸이만 치는 자위과고, 동성애과도 있드라. 동방성악애호과. 중여서 동성애과. 여러분들은 절대로 이성과 사귀거나 씹을 하면 안돼고 꼭 동성하고만 놀아나야 됍니다. ㅋㅋㅋ”
“임마 그래도 그건 양반이다. 자지 보지과도 있응께.”
“그래 그래. 자지 보지과도 있다. 머라드라 자유 머하고 보건 머였는디.....”
“자유지향과를 줄이믄 자지과가 되블고 보건지도과를 줄인께 보지과제.”
“맞어. 자유지향과 하고 보건지도과가 자지과랑 보지과드라. 첨에 과이름 보고 얼매나 웃었등가 배가 막 아퍼블드라야. 근디 젤로 재밌는 것이 먼지 아냐?”
“먼디 그라냐?”
“우리학교가 있는 여그 땅이름이여.”
종길이는 호기심 가득찬 어린아이의 표정을 하며 내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땅이름이 어쩐디?”
“남접면 여교읍 아니냐?”
“근디?”
뜸 들이지 말고 빨리하라고 재촉하듯 종길의 대꾸는 바로바로 이어졌다.
“남접하고 여교를 서로 풀어놓고 헤쳐 모이믄 바로 남녀교접이 된당께. 남녀간에 씹을 많이 하는 땅이란 말여.”
“와따 니는 베라벨 것을 다 연구했는갑다. 대치나 니 말을 들응께 남녀면 씨팔읍이 된다야. 아따 니 대가리 좋다-.”
“사실 내가 공부를 안해서 글제 대가리를 좀 잘 굴린다.”
“하이고 개새끼 염병지랄을 하네. 기를 쪼까 살려줄락했드만 대가리 꼭대기까정 올라올락하네. 씨발놈아 좆대가리만 허벌나게 크고 지 대가리는 좆나게 작은 새끼가 대가리 굴려봤자 거그서 거그제 머 있겄냐?”
“이런 니기미 씨벌 개 좆같은 새끼가 말을 해도 꼭 개 좆같이 하네.”
“아 씨발 좆도. 그라믄 머시마 새끼가 가시내같이 말해야것냐? 곧 죽어도 하고자픈 말은 해부러야 머시마 새낀거여.”
우리는 말을 하면서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를 쓰면서 점점 말소리가 커졌다. 옆을 지나치는 학생들이 마치 싸우는 사람이라도 쳐다보듯 힐끗거렸다.
* 작가의 말 *
- 상상의 대학과 가상의 학과가 등장합니다. 지명을 거론하면 그 지역에 사시는 분이 기분이 나쁠 것 같아서 지명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인공과 친구의 사투리가 많이 나오는 관계로 두 사람의 고향이 전라도라는 것만 밝힙니다.
- 생업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짬을 내어 적는 글이다 보니 빠른 연재는 어렵습니다. 주 1회 정도 연재를 생각하고 있으니 독자여러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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