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고교생일기 - 1부 3장

본문

혹시 밥해주는 사람 있어요? "




" 밥이요? "




이 여자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혹시 내가 생각하는 쪽은 아닐것같아 미끼를 던져봤다.




" 식사나 청소같은건 가사도우미 아줌마한테 페이를 줘서 처리해요. 돈이 의외로 들어서.. "




나는 경제력은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데나 뿌리고 다니지는 않는 주의라 왠지 이쪽은 필요없는 지출이다. 라는 뉘앙스로 접근했다.


여자가 웃자 흰 피부에 있는 애교점이 눈에 들어왔다.


또 붉은 입술도.. 나는 그냥 딴청을 피웠다.




" 그래요? 혹시 얼마나 쓰시는데요? "




" 백이십만원요. "




고등학생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백이십만원, 여자는 나를 먹잇감으로 볼까? 아니면 양아치들에게서 구해준 영웅으로 볼까?


후자는 사실 어쩌면 내 낭만적인 상상일지도 모른다.


전자는 돈으로 이 여자와 한번 어떻게 해보겠다는, 갑작스레 벼락부자가 된 고교생의 발칙한 기대감일게다.




" 와~ 이 PC방 알바 시급 제가 4천원 받거든요. 그것도 09년에 법 개정된거랑 성인이라 그 정도 받지, 전에 있던 애는 3천원도 안되는 돈 받았다던데.. "




" 사장새끼가 그걸 몰랐을리는 없고.. "




여자가 덧붙였다.




" 솔직히 PC방 그만두면 이제 도서관 사서도 꽉 차서.. 수입이 없거든요. 과외는 1학년이 하기엔 좀 그렇구요. 혹시 가사도우미에 과외선생님까지 겸해서 쓸 생각 없어요? "




대학생은 돈이 많이 드나보다.




" 뭐 그거야.. 과외선생님요? "




" 검정고시 학원 다니기에는 좀 그렇지? 분위기도 안좋다던데.. "




굳이 저 이유때문만은 아니라는걸 여러분은 잘 알고계십니다.




" 누나 그런데 요리 잘하세요? "




" 나 아는사람들은 밥 사달라고 안하고, 밥 해달라고 해요. 그래서 내 별명이 윤셰프에요. "




비슷한 뉘앙스 어디서 들어본것같다.




" 식사나 청소같은건 안하셔도 돼요. 혹시 여기서 자취하세요? "




PC방 알바를 할정도면 집에서 돈을 부쳐주긴 하되 여가생활을 즐길만큼은 부쳐주지 않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대학생 1학년이 이런 고약한 일을 할까.




" 와, 나 선수한테 걸렸나봐요. 어떻게 해? 이제 하려고 했었는데.. "




여자가 갑자기 박수를 짝 쳤다.




" 히히, 그러면 나 거기서 자면서 공부 가르쳐주고 청소해주고 밥해주면 되겠네요. 잠실에서 신촌까지 좀 먼데.. "




신촌이면 어디지? 연세대랑 이화여대?


어느쪽이던 일단 공부는 잘 하는 모양이다.


설마 명지대는 아닐거아냐.




" 여기서 숙식하시게요? 오피스텔이라 조금 불편하실수도 있어요. "




" 뭐 그래도 돈 안들이고 좋잖아요. 그래도 나 연대생이고 본캠 학생이니까 제대로 가르쳐줄게요. "




참고로 나는 아직 결정도 안했다.


가타부타 표현도 안했지만 이 여자가 오는건 이미 기정사실화 된것같고..


아줌마 불쌍하네.


가사도우미 회사에 전화해서 빼달라고 해야겠다.




*




" 와~ 집 넓다. "




28평, 오피스텔로는 꽤 제법이다.


서울권쪽에서 살게될때는 설마했지만 오고나니 아무것도 아니였다.


가끔 이웃집 소연이는 거의 엄마랑 살면서 가끔 아빠만 기웃기웃하는듯 했다만.




" 그렇게 넓은건 아니에요. 그래도 뭐 식기세척기나 청소기, 관리시스템.. 이런거는 다 있고 스포츠 시설도 무료사용이니까.. "




여자가 배시시 눈웃음을 치면서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렀다.




" 그거 자랑이죠? 그래도 손님 아니였으면 신촌 근처 버블 잔뜩 붙은 꼬질꼬질한 원룸에서 살았을텐데 내가 이렇게 호강도 누려보고.. "




" 아니 뭐.. 그런건 아니고요. 아, 맞다. "




미모 꽤나 흘리고 푼수끼가 있으면서도 묘하게 실리는 챙기는 이 여자때문에 놓친게 있다.


집에 소연이가 없네.


친구 찾으러 갔나?




" 학교도 안 끝날 시간 아닌가? 야자가 아홉시나 되서야 끝날텐데. "




" 뭐가 맞아요? "




" 그.. 아무것도 아니.. 아니라. 존댓말 하시기 힘드실텐데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 고1이에요. "




" 그럴까? "




" 진짜 나 동거하는건가? "




미인과의 동거는 환영이였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몇달 전 뼈저리게 경험했기때문에 다음엔 뭐가 올지 궁금했다.


부모님이 죽어서, 돈 좀 만졌다.


소연이를 만나고, 또 아직 이름도 모르지만 과외선생님에 가사도우미를 겸한 룸메이트..까지 만났다.


다음은?




" 근데 아직도 서로 이름도 모르고 짝짜꿍 한거야? 너나 나나 정말 정신없는거같아. "




여자가 주섬주섬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학생증을 꺼내 보여줬다.




[ 윤아영.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학사과정 심리학과 ]




" 사실 재학증명서도, 성적증명서도 없이 좀 급조된 티가 나는 커플이지만.. "




커플. 아마 별 뜻 없이 그냥 파트너로 쓴 말이겠지만 나는 갑자기 두근거리는것 같았다.




" 잘 할수 있을것같아. 그치? "




나는 또 그 잘빠진 다리에 시선이 가는것을 초인적으로 인내하고 예, 하고 건성으로 들릴지도 모르게 대답했다.


아영이 누나가, 아니 과외선생님이, 혹은 새 가사도우미 누나가 갑자기 팔을 뻗어 내 얼굴을 붙잡았다.




" 말할땐 사람을 보고 말해야지. 잘 할수 있죠? "




눈웃음치는,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여우같은 섹시한 두 눈과 도도해보이는 오똑한 코, 작고 붉은 입술은 기막히게 어울렸다.


하나하나가 예쁜 사람은 드물지만 잘 어울리는 사람은 십중 이, 삼도 안되는데.




나는 물건에 힘이 들어가는걸 느끼고 윤아영에게 예, 라고 한 뒤 재빨리 침실로 들어갔다.




" 누나, 그.. 일단 저 옷좀 갈아입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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